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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보 모랄레스, 쿠데타, 그리고 일론 머스크

한때 전 세계 좌파들에게 건강한 진보적 대안이 되리라 여겨졌던 ‘중남미 사회주의 블록’은 우고 차베스의 죽음과 베네수엘라의 처참한 경제난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물론 베네수엘라의 이러한 불행은 단순히 체제 실험의 실패로만 간주할 수 없는 보다 복잡하고 구조적인 역사, 정치, 경제적 맥락이 존재하지만, 어쨌든 베네수엘라의 난맥상은 그 지역의 좌파 블록을 주도했던 나라로서의 상징성으로 인해 많은 진보주의자들을 심난하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로기 상태에서의 또 하나의 결정타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前 대통령의 사임이었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前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함께 중남미 좌파 블록의 하나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사회주의자라는 이념적 지향성과 더불어 스페인이 볼리비아를 점령한 이래 470년 만에 그 나라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미국이 반대하는 코카나무 재배를 합법화시켰다는 이유로 당시에 큰 화제를 몰고 왔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4선을 무리하게 시도했다는 이유 등의 군부의 반대로 국외 망명을 하게 되자 중남미 좌파 블록의 큰 두 축이 모두 경제적 정치적으로 큰 외상을 입게 된 것이 현재까지의 상황이었다.

한편, 그의 국외망명의 원인을 두고 제기된 설 중 하나가 바로 리튬(Lithium)의 확보를 위한 서구 자본의 기획이라는 설이 있다. 원자번호 3인 리튬은 오늘날 고효율 배터리의 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자원이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처음 등장한 1991년 이후, 아직까지 리튬을 완전히 대체할 차세대 충전식 배터리 소자는 개발되지 않고 있다. 전자기기의 이동성이 계속 강조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리튬은 오랜 기간 동안 미래경제를 위한 유용한 자원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볼리비아는 주요한 리튬 산지이기도 하다. 그러한 정황이 바로 에보 모랄레스 망명 음모론의 배경이 되고 있다.

모랄레스 정부는 최근 중국 및 독일회사의 총 30억 달러에 달하는 리튬 개발계약을 체결한바 있다. 그런데 작년 11월, 그는 독일과의 계약을 파기했다. 계약 파기는 개발지역인 포토시(Potosí) 지역의 저항 때문이었다. 결국 이러한 정황은 모랄레스의 사임은 다국적 기업의 이해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에 대해 포린폴리시는 리튬이 중요한 자원이기는 하지만, 석유와 같은 자원은 아니라고 말한다. 즉, 중요한 자원이기는 하나 채취보다는 기술개발이 핵심이라는 취지다. 그러니 서구가 리튬 확보를 위해 모랄레스를 쫒아낸다는 것은 좌파의 망상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이와 관련 트위터에서 지난 7월 재밌는 해프닝이 있었다. 주인공은 테슬라의 아이언맨 일론 머스크다. 지난 7월 24일 일론 머스크는 “사견으로는 다른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국민들의 최선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트윗했다. 이에 historyofarmani 라는 계정이 “국민이 최선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뭔지 아냐? 미국 정부는 볼리비아에서 에보 모랄레스를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조직했고, 당신은 거기에서 리튬을 계속 조달할 수 있다”고 그를 비난했다. 그러자 일론은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그 누구든지 쿠데타로 몰아낼 것이다. 받아들여!”라고 대답한 것이다.

지금은 그 트윗 들을 볼 수 없지만, 정부의 부양책을 비판하는 자본가의 트윗에 그의 위선을 지적하는 댓글, 다시 그것을 초강력 핵펀치로 반박하는 자본가의 대댓글은 당시 언론에 기사화될 정도로 화제를 낳았다. 이를 본 많은 이들은 복잡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괴짜로 소문난 일론 머스크이니 만큼 그의 개성을 높이 산 이도 있었을 것이고, 다국적 자본의 본질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일갈한 좌파도 있었을 테고, 농담이든 실언이든 그러한 무심함에 분노를 한 볼리비아인도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 발언은 서구 자본가의 오만함을 보여주는 한 편린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최근 그 트윗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바로 모랄레스 정부의 경제 장관을 지낸 루이스 아르세가 이번에 치러진 대선에서 54.5%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새 정부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많은 트위터 좌파들은 다시 일론 머스크의 그 트윗을 거론하며 그를 조롱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 선거결과가 지리멸렬해가고 있는 중남미 좌파 블록의 새로운 희망이 될지 중남미 포퓰리즘의 한 사례로 남을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팬데믹와 저유가 상황, 그리고 자원수탈 위주의 경제는 이 블록에게 지속적인 위협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의 사회화’를 넘어서 ‘투자의 사회화’로

[상략]집권 초기 4년 동안 모랄레스는 원주민에게 더 많은 권리를 부여하고 천연자원과 경제에 대한 국가의 더 많은 통제권을 부여하는 것을 내용으로, 제헌의회가 제정한 새 헌법에서 예고하였듯이 볼리비아의 거대한 가스전을 부분적으로 국유화하였다. 새로운 국영 산업에서 발생하는 부의 대부분이 사회의 빈곤한 부문에 혜택이 돌아가는 다양한 사회적 개발 프로그램에 직접 투입되었다. 

예를 들어 Inez Mamani 는 그녀의 갓난아기를 돌보는데 도움이 되는 정부 연금을 받고 있다. 이 자금은 국영 가스 회사 덕분이다. 다섯 아이를 낳은 Mamani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 국영 공공라디오의 Annie Murphy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다른 아이들에게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우리가 그들을 키운 방식은 매우 슬퍼요. 이제 그들에게는 우유, 옷, 기저귀가 있고, 정부가 우리를 돕는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에요. 전에 천연자원은 개인 소유였고 이러한 종류의 지원이 없었어요.”

어머니들에 대한 지원과 더불어 정부는 또한 젊은 학생들과 노인들에게도 연금을 제공한다. 연금수령자는 2009년 기준으로 2백만에 달한다. “저는 교사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학교에 오는 것을 지켜봐요. 왜냐하면 그들은 거기서 아침밥과 보조금을 받기 때문이죠. 그들에게 돈을 어떻게 쓰는지 물어보면 일부를 신발을 사는데 쓴다고 말해요. 몇몇은 전에 신발도 없었지요.” 엘알토에서 투표를 마친 뒤 Irene Paz가 로이터에 한 말이다.

워싱턴의 ‘경제정치 리서치 센터(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 : CEPR)’에 따르면 그러한 원대한 정부 프로그램과 사회주의 정책 덕분으로 모랄레스 치하의 4년 동안의 볼리비아의 경제성장은 지난 30년의 그 어느 때의 경제성장보다 더 높았다.

“국가의 천연자원에 대한 정부의 소유 통제가 없었더라면 이러한 일이 불가능했을 거예요.” CEPR 공동 책임자 Mark Weisbrot의 말이다. “지난 시기 볼리비아의 재정적 경기부양은 그 경제를 비교할 때에 미국에서의 우리 경기부양보다 더 엄청나게 많은 것이었습니다.”

모랄레스가 새 임기를 맡고 의회 양원의 3분의 2를 장악한 동안 ‘사회주의 운동(The Movement for Socialism ; Movimiento al Socialismo, MAS)’ 정부는 금년 1월 국민투표를 거쳐 통과된 새 헌법에서 규정된 더 많은 변화를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MAS는 토지개혁, 공공서비스에 대한 더 광범위한 접근, 개발 프로젝트를 목말라 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그들의 정부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거대한 변화에 대한 청원과 요구가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더 격렬하다.[후략]

The Speed of Change: Bolivian President Morales Empowered by Re-Election 中에서

 
확실히 낯선 방식이다. 천연자원 개발과 그 이용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회사의 수입이 ‘곧바로’ – 적어도 기사내용으로 짐작컨대 – 빈곤층의 보조금으로 지급되는 상황은 결코 ‘자본주의’적이지 않다. 물론 자본주의 기업도 각종 기부 등을 통해 사회적 기여 프로그램을 가동하지만 그것은 사업목적에 맞는 여유자금의 운용을 통해 기업을 성장시켜 사회에 기여한다는 기업의 본래 목적과 거리가 멀다.

국가가 천연자원 내지는 주요부문에 대한 소유권 또는/그리고 통제권을 쥐고 고유한 정부 프로그램을 통해 운용하는 것은 전통적인 사회주의 블록에서나, 또는 자본주의 내에서의 공기업 등에서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또한 철도, 주택, 체신 공기업 등은 요금차별화를 통해 상대적인 경제약자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볼리비아의 경우처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양쪽을 – 천연자원과 빈곤층 지원금 – 직접 연결하는 프로그램은 이와는 다른 방식이다. 어떻게 보자면 변칙적인 전용(轉用)처럼 느껴진다.

또한 기사에 상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러한 빈곤구제 프로그램 등의 가동이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었다는 면도 쉽게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성장기에 있는 국가는 부의 평등한 분배보다는 보통 요소투입을 통하여 산업부문을 무리하게 보일 정도로 성장시키는 것이 성장을 지속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박정희 정권 시절 일본의 배상금을 직접적 수혜자였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주지 않고 포항제철을 설립하는 데 쓴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정 반대로 자원개발을 통한 부를 빈곤층에게 나눠준 것이다.

미루어 짐작하자면 현 시점, 볼리비아의 경제성장은 그간 독재정권과 사기업이 절대적으로 독점하던 사회적 부를 평등하게 분배하면서 발생하는 내수 진작 효과에 기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극소수의 부유층에게 극단적으로 부가 집중되는 사회에서라면 당연히 나머지 절대다수의 계층이 빈곤층이어서 소비여력이 없을 것이고, 당연히 각종 산업이 미발전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다. 모랄레스 사회주의 정부는 지금 그 전(前)자본주의적인 경제시스템을 해체하고, 그것이 경기부양책으로써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감히 짐작하자면 그것은 지속가능한 사회주의가 아닐 것이다. 현재 막대한 양적완화를 통해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세계경제가 지속가능한 자본주의가 아니듯이 말이다. 위 기사에도 나와 있듯이 “토지개혁, 공공서비스에 대한 더 광범위한 접근, 개발 프로젝트”들이 병행되어야 내수가 진작되고 독립적인 경제시스템을 갖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 바로 지난번 소개한 자원개발 프로젝트다. 이제 모랄레스 정부에게는 ‘소비의 사회화’를 넘어선 ‘투자의 사회화’의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볼리바리안 사회주의 단상

12월 6일 실시된 볼리비아 대통령 선거에서 에보 모랄레스 현 대통령이 압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로써 볼리비아 역시 맹방 베네수엘라와 함께 사회주의 노선을 더욱 강화할 것이 확실하다.

그간 볼리비아 정부 역시 베네수엘라처럼 꾸준하게 에너지 시설 등의 국유화를 통하여 정부 재산을 늘려왔다. 덕분에 미대륙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분류되는 이 나라의 경제상태도 많이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Since 2005 GDP in Bolivia, one of South America’s poorest countries, has jumped from $9bn to $19bn, pushing up per capita income to $1,671. Foreign currency reserves have soared thanks partly to revenue from the nationalised energy and mining sectors. The IMF expects economy to grow 2.8% next year, stellar by regional standards.[Evo Morales routs rivals to win second term in Bolivian elections]

하지만 단순히 기존 자산의 국유화 등을 통한 국부 증대는 한계가 있다. 코카 재배농이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이 가난한 농업국도(모랄레스 자신도 코카 재배농 출신이다.) 제조업 기반을 다져놓아야 한다. 관건은 역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성장 동력을 찾는 것, 그리고 그 성장 동력에 투자할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모랄레스 정부는 현재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석유자원 개발 등 에너지 분야를 설정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볼리비아의 多민족 사회주의 헌법에 규정한 볼리비아석유개발공사(Empresa Boliviana de Industrializacion de Hidrocarburos: EBIH)를 설립, 2010년부터 가동할 계획이라 한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바 투자자금의 확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석유자원 개발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약 십억 불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국유자산을 매각하지 않을 심산이라면 투자자, 특히 해외투자자의 투자가 절실하다.

이 나라는 현재 천연가스, 석유, 리듐 등 자원개발이 매우 유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일본, 캐나다, 프랑스, 러시아, 브라질, 이란 등이 이들 자원개발 프로젝트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볼리비아 광업국장 프레디벨트란 씨는 “現 볼리비아 정부는 이념 성향에 관계 없이 외국기업의 투자를 항상 환영하며 이윤추구 및 취득을 보장한다”며 투자자를 유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지난 세기 철저한 불모지였던 중동에서의 석유개발의 영광과 오욕의 역사가 연상된다. 대형유전의 가능성을 보고 뛰어든 부나방과 같은 서구인, 엄청난 이권, 자원민족주의의 대두, OPEC의 설립, 주요 석유기업의 국유화 등 석유를 둘러싼 역사는 현대 경제사의 큰 흐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역사가 볼리비아에서 작게나마 재현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민주주의를 지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서구열강이 석유자원을 위해 중동에서 절대왕정이라는 퇴행적 정치체제를 용인하고, 수구정치와 수탈적 자원분배 체제에 저항하는 이들을 착취하였던 것이 기존 자원개발의 역사였다면 이번에는 좀더 호혜 평등한 개발 파트너십을 구성할 개연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 개발방식은 역시 유전개발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금융조달 기법인 프로젝트파이낸싱이 될 것이다. 즉, 차주(借主)의 – 볼리비아의 – 부채상환 능력보다는 그 부존자원 내지는 프로젝트의 현금흐름을 담보로 하여 투자자와 대주(貸主)도 일정 부분 위험을 부담하는 금융기법이다. 일종의 벤처캐피탈인 셈이다.

성공의 관건은 일차적으로 부존자원의 예상 공급량이 되겠지만 그 외에도 투자수익의 분배방식, 해외송금의 보장, 해외투자자의 법적지위 보장 장치, 분쟁시 해소방안 등 각종 계약관계가 될 것이다. 투자계약, 넓게 보면 FTA, WTO 등에서 이러한 계약관계가 널리 다뤄지고 있고, 많은 이들이 국제계약을 비판하지만 역시 그 비판의 키포인트는 계약관계 자체의 거부가 아니라 상호공평한 관계의 여부와 공익성의 저해 여부다. 잘 맺어진 계약관계는 상생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즉, 볼리비아 정부 입장에서 볼리바리안 사회주의의 향후 진로는 이러한 개발 프로젝트에서 투자자본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계속하여 석유 부국 베네수엘라의 특혜에 의존하는 사회주의 노선은 ‘지속불가능한 사회주의’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참고 글 : 볼리비아, 석유개발공사설립[KO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