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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불균형에 대한 버냉키 의장의 시각과 의미

현재의 경제위기의 근저에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국제무역불균형(Global Imbalance)’이 자리 잡고 있다. 즉, 한쪽은 열심히 쓰는데 한쪽은 열심히 팔기만 하고 있으니 쓰는 쪽은 빚내서 쓸 수밖에 없고, 결국 그것이 한계에 도달하여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에서는 무한정 개미와 무한정 베짱이만 있으면 곤란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짧지만 알찬 글을 발견하여 소개한다. 미국의 재정적자의 근본적 모순, 달러약화에 대한 미국의 입장, 아시아 국가의 외환보유액 증가 배경, 제2의 플라자합의가 불가능한 이유, 각국의 대안 등이 조밀하게 잘 설명되어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파일 다운로드는 회원만 가능한데 무료회원이므로 등록하여 들를만한 곳이다.

세계 경제 불균형에 대한 버냉키 의장의 시각과 의미

금리정책과 통화정책

향후 10년 동안 누적으로 7조1천억 달러로 예상되는 재정적자 대신에 백악관은 9조 달러 정도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수치는 연간 재정적자가 2019년 GDP의 4%를 훨씬 초과할 것이라는 것과 부채누적의 속도가 예상 GDP 성장을 초과할 것을 암시한다. 이는 유지 가능한 회계 경로가 아니다.[중략]
이번 회계연도의 1조6천억 달러의 적자 중 거의 3분의 2는 – 2차 대전 이후 기록인 GDP의 11.2% – 지난 10월 통과된 7천억 달러의 금융부문 구제안과 2월부터 적용된 7천8백7십억 달러의 경기부양 패키지 명목으로 현재까지 쓰인 부분에 해당한다.[중략]
만약 최소한 부채의 증가속도가 경제의 성장속도 범위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투자자들은 채무이행 의무에 대해 점차 신뢰하지 않을 것이고, 정부의 비용을 증가시킬 것이다. – 그리고 재정적자 위기는 재정적자 소용돌이로 휘말릴 것이다. 최악의 경우 고삐 풀린 부채로 말미암아 1970년대의 두 자리 수의 인플레이션과 이자율로 회귀할 수도 있다. 다만 이번에는 중국과 일본이라는 외국 채권자들에 대한 미국의 천문학적인 이행의무가 함께 한다.

Instead of a cumulative $7.1 trillion deficit over the next decade, the White House now projects a $9 trillion deficit. These figures imply average annual budget deficits greater than 4 percent of gross domestic product through fiscal 2019, a rate of debt accumulation faster than projected GDP growth. This is not a sustainable fiscal path.[중략]
Almost two-thirds of the current fiscal year’s $1.6 trillion deficit — a postwar record 11.2 percent of GDP — is attributable to the $700 billion financial sector bailout passed last October, and what has been spent so far under the $787 billion counter-recession stimulus package adopted in February.[중략]
Unless it can at least limit the growth in debt to the growth of the economy, investors will gradually lose faith in Treasury obligations, increasing the government’s borrowing costs — and turning a deficit crunch into a deficit spiral. In the worst case, unchecked debt could trigger a return to the double-digit inflation and interest rates of the late 1970s, only this time with massive U.S. obligations to foreign lenders such as China and Japan.[출처]

인용문에 언급된 1970년대 미국의 경제는 암울했었다. 베트남 전쟁과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부터 급격하게 늘어난 사회복지예산 등으로 말미암아 국내 인플레이션은 만성적인 현상이 되어버렸다.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은 민주당의 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물려받은 닉슨에게서 이러한 위기를 보수주의적 경제정책으로 풀어나가길 기대했다. 하지만 뾰족한 답이 없었던 닉슨은 오히려 물가와 임금을 통제하는 등 민주당 정권보다 더 국가개입적인 정책을 시도하여 보수층을 실망시켰다.

결국 끝없는 혼란은 자신의 임무가 ‘인플레이션 용(inflationary dragon)’을 잡아 죽이는 일이라고 주장한 FRB 의장 폴 볼커가 진두지휘한 초고금리를 통해 안정되었다. 그는 1979년 10월 6일 토요일 할인율(중앙은행이 민간은행에 대부해줄 때의 이자율)을 무려 12%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당시 언론은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내경제는 침체에 빠져들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는 등 노동계급의 엄청난 희생이 따랐다.

어쨌든 레이건 시절까지 이어졌던 이러한 고금리 정책으로 말미암아 인플레이션은 진정되었다. 전반적인 물가가 안정이 된 만큼 경제는 다시 탄력을 받았고 80년대 초부터 미국경제는 새로운 도약을 맞게 되었다. 그런데 폴 볼커의 무기는 고금리 말고 또 하나가 있었다. 바로 통화 공급의 축소였다. 금리정책과 함께 통화정책은 물가수준을 잡는 주요수단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금리와 함께 너무 많은 돈이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라면서 “그 방정식에서 너무 많은 돈 부분을 공격(attack the too-much-money part of the equation)”했다고 주장하였다.

요컨대 정부가 경제를 조절할 수 있는 두 가지 큰 무기는 금리와 통화조절이다. 이를 유념하여 현재의 상황을 보면 현 위기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일단 금리의 경우 제로금리에 가까우니 금리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 만약 2차 침체기에 접어든다 하더라도 각국 정부가 쓸 수 있는 금리정책은 없다. 오직 통화 공급만 늘릴 뿐이다. 한편 인플레이션 기미가 보일 때는 금리를 높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통화 공급 축소가 쉽지 않다. 국가의 지출은 70년대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커진데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지출이 이미 막대해 뿌려진 통화를 회수할 여력이 급격히 소진된 탓이다.

미국의 이번 회계연도 재정적자는 우리 돈으로 2천조 원으로 예상된다.(주1) 이런 상태에서 인용문에서 주장하다시피 경제성장률이 부채증가율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재앙적인 상황이 될 것이다. 세금은 걷히지 않고, 더 많은 구제책이 마련되어야 하고, 투자자들은 신뢰를 상실할 것이다. 이미 중국이 달러 포트폴리오의 조정에 착수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금리정책과 통화정책 모두 외다리 신세가 되어버린 미국이 믿을 것은 이제 채권자들 밖에 없는 상태인데 또 외다리이기는 두 나라 모두 마찬가지다.

(주1) 우리나라 예산이 280조원 정도니까 미국의 재정적자가 우리나라 예산의 7배가 넘는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직면한 재정위기, 그리고 대안

비즈니스에 대한 국가의 점증하는 개입은 이 위기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정책결정자는 대규모의 경기부양 패키지를 시행하고, 비틀거리는 기업들을 지원하고, 규제개혁을 맹세하고 있다. 그들은 한때 경영자들이나 이사회의 고유영역이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이전의 위기로 정부의 역할은 영원히 바뀌었고, 이번에도 똑같을 것이다. 경영자들은 다음의 두 가지 점에 대해 그들의 전략을 재고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 새로운 규제 체제를 형성하는데 돕고 그 아래서 경쟁하는 것을 준비하라.
둘째, 여러 산업에서의 급격하게 지출을 늘리고 있는 주요고객으로써 공공부문의 중요성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

그러나 현재의 위기를 넘어 점증하는 적자와 인구 노령화 현상은 많은 나라에서 미래의 재정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정부는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할 막대한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공공과 민간 부문 간의 창조적인 파트너십이 이러한 도전에 응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될 것이다.

[원문출처 Trend to Watch: A Bigger Government Role]

인용문에도 서술되어 있다시피 정부가 각 산업분야의 주요고객이라는 사실은 이제 돌이킬 수 없다.(주1) 그 정부가 경제정책에 있어 자유주의(또는 진보주의) 정부이건 보수주의 정부이건 간에 마찬가지다. “이전의 위기”, 즉 대공황으로 말미암아 현대 자본주의는 정부 또는 국가가 더 이상 야경(夜警) 국가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에 양 측 모두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1930년대에 발생해 여론을 분열시키고 혼란을 야기했던 몇몇 문제들에 대한 국가적 합의를 이루어냈다. 경제가 자동적으로 안정을 이루면서 만족스런 수준의 낮은 실업을 유지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경제 안정과 높은 고용에 공헌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도 인정되었다. 이를 위한 기본적 임무가 총수요의 성장을 안정시키는 것임도 합의되었다.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 도구가 정부예산이라는 점도 인정되었다.[대통령의 경제학, 허버트 스타인 지음, 권혁승 옮김, 김영사, 1999년, p89]

물론 아직도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은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위기를 심화시킨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러한 시장의 완결성과 자주성에 대한 신화는 거의 지탱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미국 자본주의에서 복지예산 지출 등을 포함한 공공서비스의 증가와 해외에서의 전쟁수행을 위한 군비지출이라는 – 정치적으로 상반되지만 경기부양이란 효과측면에서는 유사한 – 정부지출의 두 가지 축은 그 효과를 이미 입증하였고, 정치적 고려사항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저항도 만만치 않다. 공공서비스에 관해 현재 미국은 헬스케어 개혁을 둘러싼 거대한 이데올로기 전쟁에 직면하여 있고, 그것을 넘어서서 인구노령화 및 사회간접자본 노후화와 이로 인한 소요비용 증가라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군비지출은 2차 대전이나 베트남전 등에서 국내 경기부양 효과는 입증되었지만 원초적인 문제는 국지전이 경기부양을 위해 주기적으로 일어나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일으키려 조작하면 – 부시처럼 – 그것이 바로 전쟁범죄다.

일단 오바마 정부는 어느 면에서는 전통적이지만 이전과는 뉘앙스가 다른 정부의 역할을 수행하려 하고 있다. 즉, 환경친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녹색경제 – 예를 들면 고속철도 -, 헬스케어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세제개혁을 통한 재정건전화를 노리고 있다. 문제는 하바드비즈니스가 지적한 것처럼 공공서비스 제공에 있어 막대한 재정 압력에 시달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현재 금융위기 때문에 쏟아 부은 돈이 그 압력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지난 번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오바마 정부 들어서도 변함없이 국가채무는 늘어나고 있고(그래프 보기) 재정적자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이와 더불어 국가채무도 위험한 상태로 다다르고 있다. 균형예산이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는 아니지만 늘어나는 빚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그러한 면에서 현재의 경제호조 분위기는 다분히 일시적인 착시현상 일뿐이라는 심증이 강하게 든다.

궁극적인 재정건전화 및 이를 넘어선 경제건전화는 소모적인 예산 및 자원낭비를 통한 눈가림식의 경기부양이 아니라 – 애맨 땅을 팠다가 다시 묻어도 GDP는 증가한다 – 선순환적인 생산 프로세스에 도움이 되는 곳으로의 자원투입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평범하지만 당연한 진리다. 물론 공공서비스에로의 투입방식(목적 및 투자주체)의 정당성 여부와 순환효과에 대해선 갑론을박의 여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다분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의 헬스케어나 한국의 4대강 정비처럼 말이다.

(주1) 원문에 따르면 1903년 GDP대비 6.8%에 불과하던 정부지출은 2010년 예산 기준 GDP대비 41.3%로 증가하였다(그래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