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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ost World

도라 버치(Thora Birch)가 캣우먼 마스크를 쓰고서는 짓궂은 미소를 짓는 스틸 컷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판타스틱 소녀백서’(원제는 Ghost World지만 우리나라 수입사에서 이런 황당한 제목으로 소개했다.)는 우리나라에 원작만화보다 먼저 소개되었다.(영화는 2002년에 소개되었고 만화는 2007년에 국내 출간되었다) 맛깔스러운 스타일의 웰메이드 성장영화였고, 솜털이 보송보송한 스칼렛 요한슨(Scarlett Marie Johansson)을 만날 수 있었던 영화였지만 – 그 당시야 물론 무명이었고 – 흥행실적은 형편없었을 것이다. 내가 보러갔을 때에도 관객은 열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었으니까…….

원작은 로버트 크럼(Robert Crumb)(이 사람은 만화에 해당하는 영단어를 comics가 아닌 comix라고 칭했다고 알려졌는데 이 작가의 원작 Fritz the Cat을 기초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은 그에 걸맞게 헐리웃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X등급을 받았다 한다) 등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만화 전통의 맥을 이었다고 평가받는 대니얼 클로즈(Daniel Clowes)가 1993년에서부터 1997년까지 잡지에 연재한 만화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이니드와 레베카의 일상을 다룬 에피소드가 주요내용인데, 현지에서는 ‘만화로 그려진 소녀 판 호밀밭의 파수꾼’(눈 좀 아래에서 위로 조금 치켜뜨면 너도나도 ‘제2의 제임스딘’이라고 평가받는 것처럼 말이다)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그 평가에 걸맞게까지 와 닿지는 않지만, 어쨌든 솜씨 있는 인물묘사와 깔끔한 선(線), 청춘의 우울함과 좌충우돌이 생동감 있게 묘사된 에피소드들이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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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ostWorldSoundtrack” by Derived from a scan of the album cover (creator of this digital version is irrelevant as the copyright in all equivalent images is still held by the same party). Copyright held by the record company or the artist. Claimed as fair use regardless.. Licensed under Wikipedia.

영화와 만화를 다 감상하면 이니드와 레베카를 상호 비교하는 재미가 추가된다. 이니드 역의 도라 버치는 만화 속 이니드가 그대로 튀어나온 듯이 근사하면서도 생동감 넘친다. 반면 레베카는 영화 속 레베카, 즉 스칼렛 요한슨이 원작보다 더 매력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느슨하다. 캐릭터 설정 자체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아직까지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가 어설픈 탓도 있다. 물론 대스타가 된 쪽은 도라 버치보다 외모가 더 돋보였던 스칼렛 요한슨이었다.

원제 Ghost World는 이니드와 레베카가 걸어 다니던 길거리 담벼락에 누군가가 큼지막하게 낙서해놓은 단어였다. 왜 그 낙서를 하는지는 설명이 되고 있지 않지만 – 원작에서 이니드가 그 낙서 꾼을 발견하고 반가운 맘에(?!) 그를 부르지만 그는 도망쳐버린다 – 원작에서 그려진 우울한 일상을 잘 대변해주는 단어다. 아웃사이더 이니드와 레베카에게는 세상은 뭘 해도 자신과 반대이고 혐오스러울 뿐인 ‘유령의 세계’였던 것이다.

여하튼 이 글은 오랜만에 엊그제 만화를 꺼내 읽고 그 느낌을 적어두기 위해 쓴 글이다.

책 소개
책 소개(영문)
영화소개

Billy Liar 와 River’s 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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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movie poster for the film Billy Liar” by http://www.moviegoods.com/movie_product.asp?master%5Fmovie%5Fid=1884. Licensed under Wikipedia.

청춘을 다룬 영화가 노년기를 다룬 영화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그들이 영화의 주된 소비계층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 시기가 인생에 있어 어느 시기보다도 이야깃거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방황하는 청춘’이니 ‘분노하는 청춘’이니 ‘아름다운 청춘’이니 하는 표현들의 형용사는 분명 ‘노년’이라는 명사보다 ‘청춘’이라는 명사에 더 착 달라붙는다. 그래서 질풍노도의 이 시기는 그들의 일상생활 자체가 영화가 될 수도 있다. Dazed And Confused처럼 말이다. 젊음은 분명 아름답다. 그 어느 시기보다 밝게 빛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어른의 몸과 아이의 마음을 가진 모순된 시기이기도 하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이어서 행동은 빠르지만 책임은 지기 싫어한다.

Midnight Cowboy로 유명한 John Schlesinger가 메가폰을 잡은 Billy Liar 의 Billy(Tom Courtenay)가 바로 그런 무책임한 청춘이다. Keith Waterhouse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청춘영화에서 Billy는 거짓말을 또 다른 거짓말로 돌려막는 대책 없는 젊은이다.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두 명의 약혼녀와 회사 상사, 그리고 부모에게 있지도 않은 사실을 지어내고는 상상력이 풍부해서라고 둘러댄다. 상대가 자신의 거짓말을 간파하자 그들을 총으로 쏴 죽여 버리는 상상을 한다(이런 장면들은 루이스브뉘엘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표현되는데 그러한 점에서 다른 kitchen sink realism 계열 작품과 비교된다). 그렇지만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인 Liz가 함께 런던으로 떠나자고 하자 그마저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소심한 젊은이기도 하다. 밉상도 이런 밉상이 없다.  

동시대에 프리시네마 혹은 브리티시뉴웨이브를 주도했던 Lindsay Anderson이나 Tony Richardson이 신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소통불능의 원인을 주로 제도권의 기성세대 탓으로 돌리며 은근히 신세대 편을 들어준 것과는 달리 John Schlesinger는 신세대 역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넌지시 충고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Billy에 대한 애정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캐릭터가 제법 인기를 얻어 연극, 뮤지컬, 심지어는 TV시리즈로도 인기를 얻었다. 이미 몇 차례 감상문에서 등장한 문학소년(?) Morrissey 역시 이 소설에 감화 받아 그의 노래의 가사 곳곳에 이 소설을 언급하였고 The Smiths 의 히트곡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 이 바로 Billy Liar를 소재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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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vers-edge-poster”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movieposterdb.com/poster/ded40d63. Licensed under Wikipedia.

한편 현대로 넘어올수록 청춘의 무책임은 점점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Tim Hunter의 River’s Edge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마냥 냉정한 시선으로 탈선하는 청소년을 영상에 담아내었다. 큰 강을 접하고 있는 미국의 한 시골마을에 사는 John 은 여자친구 Jamie 를 강변에서 살해한다. 단순히 자신에게 심한 말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Billy는 상상을 했지만 John은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리고는 친구들에게 스스럼없이 그녀를 죽였노라고 이야기한다. 친구들이 강변으로 달려가 확인을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시신을 거두거나 John을 신고하지도 않는다. 정말 무책임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그나마 죄책감을 느낀 Matt(Keanu Reeves)가 신고를 하지만 이미 이들의 이기심과 무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까밝혀지고 난 후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Stand By Me, Gummo, 그리고 Blue Velvet 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놓은 것 같은 매력적인 작품으로, 이 영화 덕에 Keanu Reeves는 Kathryn Bigelow의 눈에 띄어 ‘폭풍 속으로’에 캐스팅되었고 Tim Hunter는 Twin Peaks TV시리즈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이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보다 밀도 있는 다큐멘터리적인 영상으로 청소년들의 삶을 포착해낸 Larry Clark 감독의 Kids와 비교하여 감상하면 흥미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