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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진보세력은 지식생태계부터 연대하라”

블로그 이웃인 Periskop님의 ‘개혁-진보세력은 지식생태계부터 연대하라’라는 글의 일부다.

그러니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앞에서 질러놓은 거대담론을 구체화할 정책지식은 사후에 국책연구소나 기업연구소의 역량을 빌릴 수밖에 없다. 물론 국책연구소와 기업연구소가 지식생산자로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연구소들은 나름 투철한 ‘고객만족’의 마음가짐 ? 컨설턴트라면 무슨 의미인지 잘 아실 것이다 ? 으로 접근하는데 능란하다. 보완적인 정책지식 생산자로 잘 활용할 여지도 많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전 정책지식이 빈약한 정권은 이를 보완적으로 활용하기 보다는, 뒤늦게 현실의 벽을 절감하고 거꾸로 휘둘려가기 쉽다. 거기에 대통령의 의중, 정치구도의 변화까지 겹치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로 인해 나오는 결과물들은 누더기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진보세력의 과제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부분의 하나를 잘 짚어주셨다. 위의 인용문처럼 행동한 대표적인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그러한 행동이 행동에 있어서는 진보적이나 철학에 있어서는 불충분했던 노무현, 그리고 그를 따르는 세력들의 불철저함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나, 더 근본적으로 Periskop님이 지적한 바와 같은 현실적 장벽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여하튼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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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기사읽기 습관”에 대하여

항상 밀도 있는 글들로 나의 무지함을 일깨워주시는 periskop 님이 내가 올린 글에 대해 좋은 지적을 해주셨다.(해당 글 보기) 지난번 ‘북한의 미사일보다 더 무서운 것’이란 글에서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지출”이 OECD 평균의 10배에 달한다는 기사를 인용한 바 있는데, periskop님이 이 기사의 사실관계와 판단방식이 옳지 않음을 지적해주신 것이다. 세심한 배려에 감사드린다.

새삼 나는 또 다시 자문해본다. 우리는 신문과 방송 등 매스미디어의 내용전달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 것인가? 물론 코흘리개 시절에야 매스미디어에 대한 신뢰도는 절대적이었다. 서로 주장이 엇갈리다가도 ‘신문에 나왔다’고 우기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스스로 사고를 하게 되었다는 ‘착각(?)’에 빠지면서 매스미디어에 대한 신뢰를 불신으로 변했다.

‘땡전늬우스’, ‘조중동’, ‘사이비 기자’ 등은 매스미디어에 대한 권위의 내부적인 붕괴를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권위는 외부적인 환경변화에도 위협을 받았다. ‘블로그’, ‘시민사회’, ‘인터넷 포럼’, ‘내부고발’ 등 대안매체 또는 독립적인 목소리의 등장 등이 이러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여하튼 매스미디어의 안팎을 둘러싼 사회적 변화는 상호조응하면서 발달해왔고, 이제 매스미디어는 그 스스로 새로운 역할과 위상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다.

요컨대 현 시점은 결국 매스미디어가 흔히 ‘언론(言論)’이라고 부르는 것들에서 압도적인 정보의 우위를 점하는 미디어였지만, 그것이 언론 그 자체는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periskop님의 집요한 사실추적과 그것의 공표행위는 매스미디어가 더 이상 ‘정보의 성역’이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인터넷과 블로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 기사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반박하는 데에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했을 것이고 효과가 미미하였을 것이다.

다시 애초 발단이 된 기사로 돌아가 보자. 일단 periskop님의 지적에 따르면 기자는 크게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첫째, 그는 기획재정부 배포자료에 ‘교육기관에 대한 민간의 지출액’이 0.8%임에도 0.3%라고 잘못 받아 적었다. 둘째, 그는 ‘교육기관에 대한 민간의 지출’을 ‘사교육비’라고 간주하는 판단의 실수를 저질렀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기사는 “한국 사교육비 OECD 10배”라는 엄청난 제목으로 탄생했고, 나같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기사를 읽었다.

periskop님은 글 속에서 은연중에 앞서 내가 회고하였던 매스미디어의 권위약화를 암시하면서 “오히려 독자로서 비판적 기사읽기 습관을 더 연마”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우리는 매스미디어를 대하면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토를 달고 싶은 것이 있다. 위에 periskop님이 지적하신 기자의 두 가지 실수 중 첫 번째 실수에 대해서까지 우리가 ‘비판적’인 확인절차를 거쳐야 하는 가이다. 아직도 여전히 상대적인 권위를 유지하고 있는 매스미디어에 대해 그 정도까지 확인절차를 밟아야 하는 가이다.

숫자틀린 행위와 숫자를 다르게 해석하는 행위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끔 주류 경제연구소의 논조에는 반대하지만 그들의 기초 자료에 대해선 거의 전적으로 신뢰하는 편이다. 조중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기자의 저런 어처구니없는 실수에까지 사실 확인절차에 시간을 쏟아야 한다면 차라리 신문구독이나 뉴스 시청대신 통계청 자료에 전적으로 사실관계를 의존하여야 할 것이다.(사실 통계청 자료도 때로는….) 이것은 나의 매스미디어에 대한 당연한 요구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신문 산업이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기자들도 거의 기사를 ‘찍어내는’ 수준으로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린다고 한다. 질(質)보다는 양(量)으로 승부하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실수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날밤을 새서 피곤해서 숫자를 잘못 봤어도 직업인으로서 그런 기초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실수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자신이 책임질 일이다. 그런 기초적인 실수가 ‘독자의 비판적 기사 읽기’를 통해 밝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

foog 2009/01/07 12:31
잘 아시겠지만 이 다큐는 동명의 책을 기초로 만들어진거죠. 요즘 그 책을 읽고 있답니다. 다 읽고 다큐를 감상하려 했는데 이렇게 맛뵈기로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1/07 15:41
마침 그 책을 읽고 계셨다니 재밌는 우연이네요. 책과 다큐멘터리가 논조가 미묘하게 다르게 잡혀 있으니 독서와 시청을 연달아 하시면 훨씬 느낌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한창 신자유주의가 전성기(?)를 구가할 때 읽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느낌이 확 다를 것 같습니다. 번역판에서는 자그만치 “국가 주도 경제의 쇠퇴와 시장 경제의 승리”라고 부제를 달아놨는데 10년도 안 되어 상황이 이렇게 역전이 되다니……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foog 2009/01/07 16:39
제 현재까지로의 감상은 이렇습니다. 물론 그 책이나 여타 경제현상을 다룬 책들이 신자유주의 혹은 그와 다른 입장들의 우위를 기조로 하는 내용들이 대다수이고 이 책도 그러한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러한 부분들보다는 ‘결국은 어떠한 입장이든지 간에 혁신하지 않는 고인 물은 썩게 된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소비에트 모델도 어찌되었든 한때는 다른 국가들의 부러움을 산 적이 있습니다. 케인즈 모델도 서구자본주의의 전성기를 구가하게끔 만들어 주었던 모델이고요.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만 신자유주의 모델도 케인즈적인 국가개입주의 모델의 부담을 덜어냈다는 점에서는 혁신이었죠. 하지만 그 부담을 덜어냄의 과함, 즉 균형점을 찾지 못한 일방적인 자유화때문에 또 다시 이전의 모델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거죠. 결국 인간은, 그리고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모델을 찾아헤매고 그것이 혁신적일 때까지는 유효한 그러한 좌충우돌의 시스템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Periskop 홈지기 2009/01/08 13:56
옳으신 말씀입니다. 가만히 다른 곳에 올라온 글들을 보노라니 이 다큐멘터리를 1편만 보고 단순히 “신자유주의 찬양”으로 아는 분들도 있더군요. 사실 전편을 다 보면 어느 한 쪽을 편들려는 것보다는 그렇게 돌고 도는 자본주의의 큰 흐름을 전달해주려는 것임을 알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저도 우리 현실을 영위해나가는 시스템에 있어 만인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그런 영속된 균형잡힌 체제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면 완벽하겠지 하는 믿음이 들다가도 한 구석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며 썩어가기 마련이죠. 그런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구해온 노력들이 있어왔고, 그것이 어느 순간 격렬한 파도와 맞물려 세상은 바뀌는게 아니겠습니까.

[원문보기]

위 대화는 어느 책에 대한 나와 ‘Periskop 홈지기’님과의 대화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책은 ‘시장 對 국가’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소개된 The commanding heights라는 책이다.

The commanding heights : the battle between government and the marketplace that is remaking the mord
다니엘 예르긴, 주명건 역, 세종연구원, 1999.09.01

<시장 대 국가>는 시장과 국가 역할의 역전과 재역전 드라마가 전개된 지난 50여 년간의 세계경제사를 하나의 서사극처럼 펼쳐내고 있다. 에너지 문제 전문가로서 석유산업의 역사를 소설처럼 그려낸 저서 <상>(The Prize – 황금의 샘으로 번역됐음)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예긴은 이번에도 방대한 사료와 현장답사를 통해 작가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출처]

책 소개에도 나와 있듯이 이 책은 지난 50년간의 국제경제에 있어서의 시장과 국가의 주도권 쟁탈전을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물론 전체적인 톤은 결국은 시장이 국가보다 우월하다는 뉘앙스가 풍기기는 하나 보다 근본적인 교훈은 위의 대화에서도 말하였듯이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소비에트 모델의 ‘경직성’, 케인즈 모델의 ‘방만함’은 그 모델의 한때의 참신성에도 불구하고 그 열정의 소진을 재촉하는 촉진제가 되고 말았다. 이후의 시장근본주의 모델은 시장이 이른바 ‘창의와 효율’을 통해 늘 새로운 열정을 불어넣어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운용되어 왔지만 결국 그 시장역시 자기만족적이고 아전인수적인 편견으로 말미암아 좌초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이러한 잔재들의 교훈과 반성 속에서 새로운 모델을 찾아나서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Periskop 홈지기’님과 대화를 나눴던 곳은 ‘Periskop 홈지기’님이 위 책에 기초하고 살을 붙인 동명의 다큐멘터리의 소개 글에서였다. 나도 아직 보지 못했지만 책내용으로 볼 때 충분히 기대해도 좋을 내용으로 판단된다. ‘Periskop 홈지기’님의 멋진 소개로 더욱 구미가 당긴다. 다큐멘터리 소개는 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