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초의 주식회사에 관하여, 그리고 딴 소리

1.

회사(會社)란 무엇인가? 상법상의 정의는 상행위(商行爲) 및 기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단법인(社團法人)이다.(주1)자본주의의 발전은 회사라는 이러한 영리 단체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자본주의 이전에도 이윤을 위해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사업을 벌인 일은 많다. 하지만 그 당시의 사업공동체는 오늘날의 주식회사로 대표되는 사업체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조악한 것이었다.

특히 회사가 자연인이 아니면서도 권리와 의무를 갖는 존재라는 점에서 중세의 수도원과 대학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유한책임 – 특히 주식회사 – 의 원리는 길드와 상인조합의 그것을 적용한 것이다.

위와 같은 폐쇄적 공동체에게 주어졌던 특권이 공개적 사업공동체에 주어진 것은 1555년 영국에서의 일이었다. ‘머스코비 회사(Muscovy Company)’ 혹은 ‘러시아 회사(Russia Company)’로 불린 사업공동체에 법인의 지위가 부여되고 주식 발행 및 거래가 허용된 것이다. 이 회사는 정부로부터 ‘무역에 관한 특허권’을 부여받았기에 ‘수탁회사(Chartered Company)’라 불리었다.

이 회사는 여왕 메리 1세로부터 러시아무역독점의 특허권을 획득한 후 6천 파운드의 자본금으로 3척의 상선과 기타 상품을 구입하여 설립되었다. 이 시대 이전의 대부분의 무역상들도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끌어 모으긴 했지만 – 예를 들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처럼 – ‘주식’을 발행하고 법인의 성격을 지닌 것은 최초라 할 수 있다.

머스코비 회사가 활약하던 이 시기는 영국이 아프리카와 서인도제도에서 노예독점권을 깨뜨리면서 스페인과 제해권 다툼에서 승리한 시기이고, 신대륙의 발견과 더불어 영국해군의 사기가 한껏 고양된 시기였다. 그러므로 머스코비 회사를 비롯하여 이후 설립된 여러 수탁회사들의 목적은 콜럼버스, 마젤란 등이 발견한 신대륙의 상권을 정부와 상인이 공동으로 장악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라 할 수 있는 머스코비 회사는 17세기에 네덜란드 상인이 강력한 경쟁자로서 대두하고, 러시아 황제의 영국 상인에 대한 태도가 냉담해지자 점차 쇠퇴하여 갔다. 그렇지만 1600년 설립된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 등 뒤를 잇는 수탁회사들은 200여 년을 넘게 존속하는 등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며 성장해갔다.

2.

21세기 세계화가 일상적인 화두가 되어버린 요즈음은 ‘회사’ 또는 ‘기업’은 이미 한나라에서, 그리고 지구촌에서 가장 강력한 법적권리주체다. 그들의 선조인 수탁회사들이 정치권력의 비호 아래 그들의 잇속을 챙겨주는 한편으로 부를 축적한 ‘정치권력 기원의 정경유착’의 형태를 보인 반면(주2) 오늘날에는 경제 권력의 극대화를 위해 정치권력을 조율하는 ‘경제권력 기원의 정경유착’의 형태로 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주3)

개인적으로 기업의 행태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들을 비롯한 친기업주의자들의 논리가 오랜 인류의 역사를 통해 축적한 보편타당의 원리의 왜곡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극대화를 위한 행동을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정당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프랑스 혁명 등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자유주의 사상의 발전에서 ‘침해받을 수 없는 인권’ 등을 ‘침해받을 수 없는 이익추구 행위’ 등으로 치환함으로써 자신들의 사익추구를 정당화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의 전 시기에서 기업은 일상적으로 권리를 제한받아 왔다. 대표적으로 ‘주식회사 설립금지’가 바로 그 사례다. 주식회사는 주주가 회사의 채무 등에 대하여 유한책임을 진다는 것으로 이익추구 행위를 정당화한 이 중 가장 유명한 아담스미스마저 반대하였던 방식이다. 그리하여 오랜 기간 주식회사는 여러 법적제한을 받아오다. 19세기가 되어서야 허용되었던 제도다.

오늘 날 거칠 것 없이 영역을 확장하는 금융자본 역시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서구 전반에 걸쳐 각종 제재를 받아왔었다. 그러던 것이 미 정부의 경제정책과 더불어 탈규제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오늘날 금융세계화로 지칭되는 지구촌 전반의 금융 탈규제와 자유화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각종 탈규제와 이를 통한 기업집중 및 거대화, 이후의 초국적화는 기업을 어느덧 국가라는 단위를 넘어선 거인으로 둔갑시켰다. 이미 오래전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경제단위 중 대다수를 국가가 아닌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주4)

그러다보니 어느덧 자유주의는 ‘정치적’이라는 수사 대신에 ‘경제적’이라는 수사를 대표하는 표현이 되었고 ‘기업의 자유’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자유’가 되어버렸다. 그 하이라이트가 ‘WTO협정’과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이들 ‘자유’라 이름 붙여진 협정 들은 머스코비가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특허권(charter)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예전의 특허권이 개별 회사가 일개 국왕에게 개별 사업에 대해 부여받았던 한시적인 독점권이었다면 이번 특허권은 전체 회사가 – 물론 초국적 독점기업이 가장 유리하다 – 세계 모든 정치지도자에게 모든 사업에 대해 부여받는 영구적인 독점권이다. 심지어 한미FTA는 ‘투자자-국가소송제’라는 국가의 항복문서까지 별책부록으로 있다.

East India House by Thomas Malton the Younger.jpg
East India House by Thomas Malton the Younger” by Thomas Malton the Younger (1748-1804) – Yale Center for British Art [1].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3.

그러면 기업을 하지 말란 이야기냐 혹은 정부의 과도하고 무원칙한 규제가 타당하다는 이야기냐 하는 분이 계실까 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몇 마디 더 적도록 하겠다.(물론 무원칙하고 과도한 규제는 반대한다)

기업은 1인1표가 아닌 1주1표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배치되는 개념이다. 민주주의라 함은 자유주의와 함께 인류가 오랜 투쟁을 통해 쟁취해낸 보편타당한 정치원리다. 경제체제가 어떻게 되었든 민주주의는 사회구성원의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를 지켜야 하는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복지제도 등 공적 부조는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주5)

기업은 한편으로 사회구성원 대다수에게 일자리를 주는 순기능을 하면서도 이윤극대화라는 내부동인에 의해 자신들의 자유를 외치면서 사회전체의 공익을 침해하면서 발전해온 측면이 크다. 더욱이 오늘 날 가속화되고 있는 민영화 논리는 민간의 효율성이라는 또 다른 자유주의 논리로 무장하고 사회적 자산과 복지제도를 공격하고 있다.(주6)

자연인도 극단의 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 사회를 위해 그의 자유는 일정 정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세금을 내지 않으면 사회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뼈 빠지게 일해서 세금으로 내는 것이다. 오늘날 초국적 기업은 세금감면을 미끼로 던지는 국가, 혹은 지방정부로 이리저리 자유롭게 움직인다.(주7)

이를 가리켜 비판자들은 ‘바닥을 향한 경주(race to the bottom)’라고 부른다. 개별 정부는 고용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기업에 단물만 빨리고 공적재원은 세금감면 탓에 바닥날 것이기 때문이다.

4.

두서없이 이야기했지만 이상이 바로 사람을 닮은 또 하나의 거대한 권리주체, 기업의 자유가 제한되어야 할 이유다. 기업의 건전한 경제활동은 사회 공공성이 침해받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사회전체의 경제적 효용이 있는 한에서만 허용되어야 한다. 선출되지 않는 권력 기업이 극단의 자유까지 보장받게 되고 나머지 사회의 공공성은 해체된다면 그것이 가져올 결과는 공멸뿐이기 때문이다.

 

(주1) 오늘 날의 회사 형태는 합명회사, 합자회사, 주식회사, 유한회사 등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주2) 아직도 부르주아지는 평민들과 함께 제3계급일 뿐이었다

(주3) 어쩌면 우리는 이미 기업이 하나의 국가권력과 동일시되는 ‘로보캅’이나 ‘에일리언’과 같은 디스토피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4)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상품은 ‘Made in USA’나 ‘Made in China’가 아니라 ‘Made by Samsung’ 혹은 ‘Made by Google’이라고 해야 타당할 것이다.

(주5) 복지제도는 어쩌면 체제 옹호적이고 사회재생산에서 자본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기능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주6) 복지제도에 대한 극단적 자유주의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았는지 보려면 마이클무어 감독의 Sicko를 보라

(주7) 개인도 이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개인이 이렇게 하면 비참한 이주노동자 신세로 전락할 뿐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