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클레이스의 LIBOR 조작 스캔들 단상

영국의 투자은행 바클레이스의 LIBOR 조작 스캔들의 여파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사건은 금리를 민간 기업이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조작이 정부당국의 묵인 하에 이루어졌을 개연성이 있다는 사실로 인해 시장에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금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금융회사에게 있어 생산원가나 같은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금리 조작은 가격담합과 같은 의미를 가지기에 이번 행위를 셔먼 반독점법 위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셔먼법 제1조는 부당하게 거래를 제한하는 계약(contract), 담합(combination) 또는 결탁(conspiracy)을 금지하고, 제2조는 단독의 독점행위 및 독점의 시도 행위와 함께 독점하려는 결탁을 금지한다. 그리고 클레이튼법 제3조는 임차인이나 구매자가 임대인이나 판매자의 경쟁자의 상품을 이용하거나 거래하지 않는다는 조건, 합의 또는 양해 아래 체결된 임대차 또는 상품 매매계약을 위법하다고 규정한다. (…) [The Sherman Antitrust Act (1890), 출처, 재인용]

이 사건은 당초 내부고발자의 고발에 따라 미국의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2008년 5월부터 수사에 착수한 건이다. CFTC는 2010년 봄에 금리조작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가지고 영국의 금융당국에 협조를 요청했고, 이후 사건수사는 영미의 공조 하에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관련 기사 보기) 현재 바클레이스는 혐의사실을 인정하고 법정에 가지 않는 대신 영미의 규제당국에 4억5천만 달러의 합의금을 내는 것으로 면죄부를 받았다.

그렇다면 바클레이스는 왜 Libor를 조작했는가? 은행은 2007년 후반기부터 2009년 5월까지 자체 조달 금리를 낮게 보고한 것을 인정했는데, 은행이 금융위기 동안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고(속이고?) 싶었고 다른 은행들도 다 그렇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트레이더들이 파생금융상품에서 돈을 벌기 위해 금리신고에 부당하게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관련 기사 보기) 금리조작으로 투자자도 속이고 돈도 벌고 일석이조인 셈이다.

리보를 기준으로 산정된 이자를 받는 채권 투자자는 은행들이 금리를 낮게 조작하면 그만큼 손실을 보게 된다. 금리가 올라갈 경우 이득을 보는 파생상품을 보유한 투자자들 역시 손실을 입는다. 영국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리보를 조작한 뒤 관련 파생상품에 투자, 부당한 이익을 얻은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현재 리보에 연계한 금리 파생상품의 전 세계 시장 규모는 약 800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못믿을 리보…소송 확산 가능성]

한편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허술한 Libor 산정 방식 때문이다. Libor는 영국은행협회(BBA)가 매일 오전 16개 은행으로 구성된 패널이 제출한 금리 가운데 중간값 평균으로 정한다. Libor는 사실상 자체 조달 금리인데, 이 금리를 당사자가 보고한 셈이다. 그런데 BBA는 금리를 물어보지만 사실여부 체크는 안 한다. 트레이더는 매일 몇 베이시스포인트 씩 금리를 낮추는 것이 일반적으로 용납되고 있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보기)

주) 몇 개 은행이 금리를 제출하는지는 보도마다 다른데 어떤 언론은 20개라고 하고, 예전에 번역하여 정리한 자료에는 15개의 금리라고 한다. 하나금융연구소의 보고서에서는 18개라고 서술하고 있는데 개별 은행들의 리스트를 적어놓아 가장 신뢰도가 높다.

그렇다면 맑고 깨끗한 금융시장에서 바클레이스만이 악랄하게 금리를 조작한 것인가? CFTC는 이번 조사 과정에서 여러 은행들이 공모해 금리 조작을 조직적으로 진행해왔을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씨티그룹, HSBC, RBS, UBS 등도 함께 조사하였다. 특히 영란은행(BOE)이 바클레이스의 행위를 공모했을 것이란,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역시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혐의는 사태의 의미를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

이 시점에서 ‘금리라는 것이 무엇일까’하는 물음을 던져봐야 할 것 같다. 금리는 돈에 대한 가격이다.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은행 시스템이 미래의 돈의 가치에 대한 최상의 추측에 기초해” 결정할 것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 금리가 틀렸을 상황을 가정해보라고 말하고 있다. 금리란 것이 전능한 존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어떤 “주어진 가격”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약삭빠른 인간들이 금리를 자기들 이익을 위해 조작하는 경우 말이다.

우리는 은행 시스템이 미래의 돈의 가치에 대한 최상의 추측에 기초해 오늘의 이자율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추측이 결국은 미래 돈의 공급 및 수요와 관련한 전 세계 수없이 많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무수한 시장 예측에 기반하고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가 틀렸다고 해보자. 은행가들이 이자율을 조작해 당신이 빌리거나 그들에게 되갚아야할 돈을 두고 내기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 내기는 그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줄 것이다. 그들은 시장이 실제로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한 내부 정보, 당신과 공유하지 않을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리보 스캔들’, 월가가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금리의 제일 밑바닥 금리는 각국의 중앙은행, 더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에서 책정하는 정책금리에 바탕을 둔다고 할 수 있다. 지급불능의 위험이 사실상 없다고 간주하는 이 금리는 정부의 신용도를 바탕으로 하는 돈의 가격이며, 그 다음 단계로 금융기관, 기업, 가계 등이 자신의 신용도에 따라 가산 금리를 더하는 방식으로 금리가 정해질 것이다. Libor는 이 중에서도 벤치마크 금리로 인기 있는, 신용도 높은 금리로 행세해왔다.

하지만 금융위기 당시 신용이 깨지면서(credit crunch) 정책금리를 내리는데도 시장은 서로를 믿지 못하여 금리가 큰 폭으로 오르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 와중에 바클레이스는 스스로의 신용을 조작하기 위하여 Libor를 조작한 것이다. 일반기업으로 치면 회사가 멀쩡하다고 선전하기 위해 회사채를 낮은 금리에 발행하는데 성공했다고 사기를 친 셈이다. 자신의 조달 금리를 스스로가 보고할 수 있는 금융회사의 특권을 악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한 토론에서 경제전문가인 Max Keiser는 바클레이스의 이러한 조작, 이를 방임 내지는 공모한 영란은행의 행위를 두고 “공산주의적 방식”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시장이 가격을 결정하게 내버려 두라고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시장이 결정하는 그 가격의 기초가격은 다른 가격과 달리 중앙은행의 정책금리를 통해 결정되는 태생적 한계가 – 물론 정책금리는 중앙은행이 원하는 시장금리로 유도하는 역할에 그치지만 – 있음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즉, 금융업이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1,2차 산업 가치생산의 촉매 역할을 통해 가치를 전유(appropriate)하는 것이라는 ‘노동가치론’적 입장에서 본다면, 그 체제가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정책입안자는 거시경제 이익률의 선순환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정책금리를 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금리와 시장금리에 괴리가 발생하면 이를 조정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든다. 그런 면에서 담합이나 가격조작은 사실 국가 차원에서는 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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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바클레이스의 LIBOR 조작 스캔들 단상

  1. indiz

    동감합니다. 돈을 빌리면 지급하기로 하는 금리도, 더 나아가 돈이라는 것 자체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약속이자 무언의 합의일 뿐이니 태생적으로 ‘조작’은 당연한거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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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icky Post author

      결국 “가격”이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문제에 직면하게 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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