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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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ok of dogs (1919) Timber wolf and coyote” by Louis Agassiz Fuertes – The book of dogs; an intimate study of mankind’s best friend.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지미(jimy)는 사슴들로부터 바람의 반대방향에 위치한 수풀속에서 자리잡고는 멀리서 달려오는 사슴떼를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서 웅크리고 있는 동료들 역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참을성있게 사슴떼가 가까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쪽 멀리서는 무리의 알파(alpha)인 데코(deco)가 무리를 이끌고 사슴떼를 쫓고 있었다.

지미는 무리의 베타(beta)였다. 지미일행의 임무는 혼비백산한 사슴떼들이 정신없이 달아나는 측면(側面)을 공격하여 대열을 흐트려놓고는 그중 어리거나 나이 든 사슴을 타겟으로 정하여 공격하는 것이었다. 어느덧 사슴떼는 ‘붉은 해가 지는 들판’으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명칭은 그들 무리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장소인지법인셈이다. 그들 무리는 ‘아침을 등지는 언덕’에 살고 있었다.

사슴떼가 어느새 그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갈색수풀이 우거진 들판’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일행은 언제라도 뛰어나갈 기세로 귀를 앞으로 한껏 내밀고는 이빨을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제일 먼저 뛰어나간 것은 역시 지미였다. 그것을 신호로 나머지 무리들이 빠른 속도로 사슴떼의 측면을 치기 시작했다.

사슴떼의 대열은 갑작스런 측면공격으로 인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지미의 눈에 띈 목표물은 왠지 달음질이 서투른 새끼사슴이었다. 지미는 각기 자신의 목숨을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어른사슴사이에서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는 새끼사슴을 맹렬한 속도로 쫓았다. 새끼사슴이 계속 갈짓자 걸음으로 지미의 혼을 빼놓으려 했으나 노련한 지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지미는 어느 정도 사슴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껑충 뛰어올라 사슴의 목을 힘껏 물었다.

한두번 요동을 치던 사슴이 맥없이 쓰러졌다. 그러자 지미를 따라오던 몇몇 무리가 잽싸게 사슴의 코를 물었다. 몇번의 발버둥도 무의미하게 새끼사슴은 곧 축늘어져버렸다. 데코는 어느새 새끼사슴의 옆에 와 서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마리 새끼사슴의 희생으로 인해 목숨을 건진 사슴떼들은 저만치 달아나 발걸음을 약간 늦췄다. 그러나 여전히 데코 일행에게 긴장의 눈길을 떼지 않고 있었다.

새끼사슴이라고는 했지만 어느 정도 성장한 사슴이어서 제법 살집이 도톰했다. 데코와 지미가 사슴의 가슴살을 정신없이 파헤쳐 포식을 한후 뒤늦게 도착한 무리들은 게걸스럽게 나머지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침을 등지는 언덕’에 다다랐을 즈음 어느덧 해가 늬엿늬엿 지고 있었다. 늑대무리는 포만감에 젖어 제각기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아있던 무리들도 이에 답하듯이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는 울어대기 시작했다.

지미는 아내를 위해 따로 떼어놓은 고기를 입에 문채 그의 토굴로 돌아왔다. 아내인 제니(jenny)의 품안에는 그들의 아기들이 곤하게 잠들어있었다. 모두 네마리다. 지미는 고기를 땅에 내려놓고는 파란 기운이 감도는 아기들의 하얀 털을 애정어린 몸동작으로 핧았다.

문득 앤디(andy)가 졸린 눈을 떴다. 제니는 지미에게 왜 공연한 짓을 해서 애를 깨우느냐는 투정어린 시선을 보냈다. 지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애정이 담뿍 담긴 눈길로 앤디를 바라보았다. 앤디의 눈은 파란색을 띄고 있었다. 앤디도 자라면 그의 부모처럼 갈색눈으로 변할 것이다.

어느새 하늘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떠있었고 무리중 누군가의 포효소리만이 밤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지미는 제니의 곁에 자리를 잡고 엎드려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앤디는 정말 정신없이 자랐다. 두달이 지나자 비틀비틀거리며 걷던 앤디도 어느새 곧추 서서 뛰어다니며 어른 흉내를 곧잘 내곤 했다. 앤디는 땅바닥을 기어가는 거미를 마치 사냥감이라도 되는 양 이리저리 발로 채가면서 가지고 놀았다. 제니는 그런 앤디옆에서 가만히 아이가 하는 짓을 바라보곤 했다. 앤디는 그의 형제자매들보다도 성장이 빨랐으며 – 네마리의 새끼중 둘은 병치레로 한달을 넘기지 못했다 – 머리회전도 빨랐다. 그래서 부모들의 행동을 곧잘 흉내내곤 했던 것이다.

앤디가 태어나고 칠십이일이 되던 왠지 공기가 심상치 않은 아침이 밝아왔다. 이슬이 아직 이름모를 풀에 송글송글 맺혀있을 아침 무렵 데코는 자신의 영지(領地)를 한껏 느긋한 자세로 천천히 활보하고 있었다. 그가 지나갈때면 다른 늑대들은 그의 앞에서 고개를 낮추어 데코에게 머리를 부벼대며 복종의 의사를 표시했다.

그런데 왠일인지 켄조(kenzo)는 데코가 그의 옆을 지나가는데도 뻣뻣이 서서는 딴청을 피워댔다. 데코는 심사가 뒤틀려 잠시 켄조를 바라보다 무시하고는 계속 갈길을 걸어갔다. 이제 막 커가는 무리의 감마(gamma) 켄조는 슬슬 암컷을 그의 아내로 삼고 싶었지만 마땅한 배우자감이 없었다. 켄조는 자신의 넘치는 힘을 아무에게나 드러내보이고 싶은 젊은 혈기가 온몸에 뿜어나고 있었다.

모두가 우려했던 일은 해가 남동쪽 산에 걸터앉을 무렵 벌어졌다. ‘아침을 등지는 언덕’에 심상치 않은 공기가 감돌고 있어 모든 늑대들이 그 흉포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뒷날 늑대들 사이에서는 이날의 사건이 과대포장되어 제각기 자신의 말이 맞다고 주장하는 앞뒤가 뒤죽박죽인 가쉽거리가 되고 말았다. 혹자는 데코가 비겁하게 돌아서있는 켄조를 뒤에서 물었다고도 하고, 혹자는 정정당당한 결투끝에 켄조가 꼬리를 내리고 서둘러 도망갔다고도 말하였다. 누구의 의견이 맞는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의견이 일치되는 점은 켄조가 무리로부터 쫓겨났다는 사실이다.

무리로부터 추방된 켄조는 ‘아침을 등지는 언덕’으로부터 반나절 거리나 떨어진 늪지주변을 배회하는 모습이 몇몇의 눈에 띄었다. 그를 본 늑대들은 그가 국외자(局外者)답지 않게 털은 한층 윤기나는 갈색을 띄고 있었고 눈은 복수를 노리는 증오의 빛으로 광채를 띄고 있었다고 떠들어댔다.

켄조가 떠난지 며칠이 지났어도 반역(反逆)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데코에게는 더없이 불편한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데코는 한층 더 신경질적이 되어갔다. 무리의 젊은 늑대들은 공공연히 데코의 뒤에서 그를 무시하는 듯이 고개를 뻣뻣히 쳐들고는 그들의 알파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데코는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희생양은 무리의 베타인 지미로 정해졌다. 언덕을 감싸는 바람에 무더운 습기가 묻어나오는 한여름날의 오후 데코는 그날 사냥의 실패를 지미의 탓으로 돌렸다. 사슴을 쫓던 그날의 사냥에서 측면돌파조의 신참 탐(tom)은 성급하게 너무 일찍 사슴무리로 뛰어들었고 어이없게도 성숙한 숫사슴의 뒷발에 채이고 말았던 것이다. 경황없는 도중에 사슴무리는 늑대떼를 떼어버리고는 멀리 달아나버렸다.

측면돌파조의 선두인 지미였기 때문에 데코는 지미에게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보이며 그르렁거렸다. 난데없는 데코의 행동에 미쳐 복종의 자세를 취하지 않은 지미의 어리둥절한 표정은 잔뜩 벼르고 있던 데코에게는 반역의 의사로 비쳐졌다. 순간적인 적개심에 지미 역시 송곳니를 드러내 같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고 사냥터는 갑자기 서열다툼의 싸움판으로 변해버렸다.

패자는 지미였다. 귀에 깊은 상처를 입은 지미는 결국 꼬리를 내리고 발을 절뚝거리면서 무리로부터 멀리 도망쳤다. 제니는 무리로부터 추방되지는 않았으나 그동안 암늑대들 사이에서의 베타의 서열이 오메가로 추락하고 마는 수모를 감수해야했다.

앤디는 이 모든 참상을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의 뼈는 많이 튼튼해지고 털도 윤기흐르는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었지만 – 특이하게도 그의 눈은 여전히 푸른색을 띄고 있었다 – 이 모든 난관을 해결하기에는 힘도 지혜도 모자랐다. 그 사이 앤디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베티(betty)는 어느날 그들의 영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에서 사냥꾼의 덫에 걸려 인간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제니역시 남편이 무리를 떠난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암늑대무리의 베타인 메어리(mary)와의 싸움끝에 심한 상처를 입고 무리에서 쫓겨나 시름시름 앓다가 ‘아침을 등지는 언덕’에서 한나절 거리만큼 떨어진 어느 이름모를 들판에서 쓸쓸히 죽었다.

언덕의 나뭇잎이 늑대들의 털색과 비슷해져가는 어느 저녁이었다. 달은 왠지 붉은 기운을 품고 있었다. 여느 달의 모양과는 다른 그 밤에 많은 늑대들이 저마다 하늘을 향해 짖어대고 있었다. 멍하니 앉아있던 앤디도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향해 울어대기 시작했다. 왠지 알 수 없는 분노가 가슴속에서 치밀어올라왔다. 외로움이 그의 혈기왕성한 몸을 전율시켰다. 몸안 어딘가에서 이상한 기운이 온몸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안면근육이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다음날 늑대들은 데코의 동굴에서 이상한 광경을 발견했다. 발가벗은 인간이 피투성이가 된채 데코의 동굴 어귀에 쓰려져 있었던 것이다. 늑대들은 본능적으로 송곳니를 드러내어 으르렁거리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엎드린채 쓰러져있는 인간의 옆에 조심스럽게 다가갔을때 늑대들은 그가 이미 죽어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왠일인지 그의 눈은 기쁨에 찬듯한 표정을 하고서는 동그랗게 뜨여져있었다. 눈동자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빨아들일것 같은 깊은 푸른색을 띄고 있었고 살색은 탄탄한 갈색이었고 머리카락 색깔역시 갈색이였다.

더없이 탄탄한 근육이 불거져 나와있는 상체에는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였고 결정적으로 목에는 이빨자국이 깊게 패여져 있었다. 그런데 인간의 이빨에 갈색털이 몇오라기 박혀있었다. 늑대들은 털의 냄새로 미루어 데코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서둘러 데코의 동굴안에 뛰어들어간 늑대들이 발견한 것은 목이 물린채 죽어있는 데코였다.

그뒤로 늑대들은 앤디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무리의 알파는 치열한 서열다툼끝에 서둘러 언덕으로 돌아온 켄조의 차지가 되고말았다. 그뒤로도 한동안 늑대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오묘한 그날밤의 사건에 대해서 갸우뚱거리며 입가에 옅은 미소만을 지어댈뿐이었다.

어느 눈보라를 예고하는 제법 강한 겨울 바람이 부는 공원벤취에 레인코트차림의 한 남자가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은채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읽고 있었다. 가판대에서 파는 썬(SUN)이라는 싸구려 취향의 이 신문은 있지도 않은 사실을 실제로 일어나기라도한양 부풀려 써갈겨대는 신문이었다. 일면에는 런던에 늑대인간이 나타났다는 기사였다.

“소호의 밤거리에 늑대의 이빨자국이 온몸에 찍혀져 있는 여인의 변사체가 발견되다”라는 부제가 붙은 기사를 남자는 무심한듯 읽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옆에는 남루한 옷차림을 한 중년의 홈리쓰가 빵을 씹어대며 남자의 신문을 흘낏거리고 있었지만 남자는 신경쓰지 않았다.

“쳇 늑대인간이라고? 썬지는 늘 이모양이라니까-”

입안에 잔뜩 빵을 우물거리며 홈리쓰가 중얼거렸다. 레인코트의 남자는 홈리쓰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미 그만 가요. 눈이 올것 같아요.”

저만치서 더플코트차림의 여자가 소리치며 벤취로 다가오자 지미는 보던 신문을 벤취에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4 thoughts on “늑대

  1. 무한

    아..
    여기서 또 자극을 받는군요 ㅋ

    개인적으로 시튼동물기와 NG의 매니아 인데,
    동물이야기는 잠깐 접어두고,
    비슷한 류의 글을 하나 써 봐야겠습니다.

    하지만 살짝 어려울지도…

    주말 잘 보내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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