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telephone)

“이제 오늘의 설교를 듣는 것과 관련해, 만일 그러길 원한다면, 교회에 가도 되고 아니면 그냥 집에 있어도 되오.”
“내가 집에 머물러 있으면 어떻게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까?”
“단지 우리와 함께 적당한 시간에 우리 집에 있는 음악실에 가서 편안한 의자를 고르면 되오. 아직도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의 설교는 공중 시설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음악 연주회를 듣는 것처럼 가입자들의 집과 전선으로 연결된, 음향 시설이 갖추어진 방으로 전달되지요. 만약 당신이 교회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면 기꺼이 같이 가겠지만, 나는 당신이 어디에 가든 집에서보다 더 훌륭한 설교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소. 신문을 보니 오늘 아침에 바턴(Barton) 목사가 설교하기로 되어 있더군요. 그분은 전화(telephone)로만 설교를 하는데, 그 설교의 수신자가 종종 15만 명에 이르기도 하오.”[뒤를 돌아보면서:2000-1887, 에드워드 벨러미 Edward Bellamy 지음, 손세호 옮김, 지만지 고전천줄, 2008년, p 182]

지난번에도 언급했다시피 이 소설은 1888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그런데 이글에 보면 “전화(telephone)”라 불리는 장치는 – 그 단어가 이제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지만 ‘소리(phone)를 원거리(tele)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 오늘 날 우리가 라디오(radio)라 부르는 그 장치의 원리와 거의 근사하게 맞아떨어진다. 또한 신문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소개한다는 발상도 오늘날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어떠한 메시지를 먼 곳으로 전송시킨다는 발상은 실제로는 1901년 마르코니가 무선진신을 이용하여 대서양 건너로 무선신호를 보내면서 실현되었고, 위와 같은 브로드캐스팅 개념으로 라디오가 상용화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 이후부터였다.

2 thoughts on “전화(telephone)

    1. foog

      네 물론 지나친 낙관주의적 관점이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세상을 보는 작가의 혜안에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멋진 소설이더군요.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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