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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 오류가 낳은 비극적(?) 상황에 대하여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작년 말 IFC를 인수한 브룩필드 프로퍼티 파트너스가 매입 당시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삼정KPMG에 맡긴 실사 보고서의 오류가 뒤늦게 발견돼 투자에 참여한 기관투자자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중략]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5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임대차 계약을 맺은 홍보대행사 마콜은 현대 IFC2빌딩 16층에서 1,329m2와 222m2로 두 개 공간을 나눠 사용하고 있는데 삼정KPMG는 마콜의 임차 면적을 실제 보다 약 20~30배 가까이 크게 계산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동산금융 업계 관계자는 [중략] “컨설팅 업체에서 엑셀로 계산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으며,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일”이라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여의도 IFC 투자자들, 가치평가 오류에 패닉]

재밌는 기사가 있어 소개한다. 여의도IFC는 3개의 프라임 오피스 빌딩과 복합쇼핑몰 IFC몰, 5성급 호텔인 콘래드 서울로 이뤄져 있고, 지난 해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라 할 수 있는 2조5천억 원 수준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진 매머드급 자산이다.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AIG에게 99년 임차권이라는 특혜를 주며 AIG에게 개발을 독려하였고, 이후 한동안 공실률이 높아 여의도 오피스 시장의 착시현상을 부추기던 자산이라는 눈총도 받은 바 있는 여러 구설수에 올랐던 자산이기도 하다.

인용기사를 보면 에쿼티 투자자로 보이는 브룩필드 프로퍼티 파트너스가 선·중순위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한 실사보고서에 하자가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 실사보고서라 함은 영어로 Due Diligence라 표현하며 투자자들에게 매입자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기초자료라 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기술, 법률, 수요, 세금 등 각종 사업위험에 대한 타당성 분석을 제공하는 종합적인 검토보고서라 할 수 있으며 통상 기사에 언급한 삼정KPMG와 같은 회계·컨설팅 업체가 보고서의 취합을 책임진다.

오류가 발견된 부분은 여러 타당성 중에서 수요에 관한 부분이다. 회계 혹은 재무모델 담당자는 예상매출과 예상비용이 입력된 예상재무제표를 만들어 현금흐름 분석모델을 만들어 예상영업수익과 예상수익률 등을 계산하여 투자자들에게 제공한다. 그 과정에서 수요의 예측은 모든 개발 사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가장 꼼꼼하게 따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한 예측수요를 과대 추정하는 오류가 발견됐다면 투자를 유치하려는 이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주는 일인 셈이다.

과대 추정한 임차면적은 사실 연면적 50만5236㎡에 달하는 IFC의 전체 면적에 비해서는 그리 크지 않은 비중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엑셀 오류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일”일 정도로 극히 드문 일도 아니다. 다만 거래의 규모 등으로 인한 화제성을 비추어 볼 때 브룩필드나 삼정KPMG에게 무척 곤혹스러운 일임은 분명하다. 더구나 이렇게 기사화까지 됐다는 것은 분명 내외부에 시기하는 적이 있다는 정황도 있다. 사업 리스크 중에 거론되지는 않지만, 바로 “실무담당자 리스크”가 발생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컨설팅 오류가 발생하면 엄청난 손실이 아니라면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확실히 클레임을 걸어 손해를 배상하게 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브룩필드가 삼정KPMG 등에게 클레임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삼정은 명성에 오점을 남기는 것 뿐 아니라 금전적 손해를 입을 지도 모르겠다. 타당성 분석기법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엑셀이 한편으로는 편리한 만큼이나 치명적인 흉기로 둔갑할 수도 있다는 한 사례로 기록될 만 하다.

‘신용평가사’라는 도끼

지난번 글에서 살펴보았던 KT ENS “대출사기“건에 대한 더벨의 분석기사다. 전체적인 그림보다는 대출과정에서의 신용평가사의 부실한 자산실사에 대해 지적한 기사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KT ENS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자산 유동화의 기초자산에 대한 실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또 기초자산이 지나치게 과다 계상됐는데도 자산유동화 과정에서 가치의 적정성에 대해 아무도 의심을 품지 않은 점을 의아하게 여겼다. 자산유동화를 위한 합리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데다 기초자산의 가치도 적절치 않지만 신용평가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략] 증권사 구조화금융 담당자는 “규제의 유무와 상관없이 유동화를 하면서 실사와 가치 평가를 빼먹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절차가 법이나 규제로 강제되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절차를 생략할 가능성도 항상 열려 있다”고 평가했다.[구조화 신용평가, ‘위험고지·여과’ 기능 부실, 2014년 2월 17일, 머니투데이 더벨]

자산실사는 여러 의미로 쓰이지만 주로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회사 혹은 취득, 합병, 기타 유사한 금융 계약 이전에 잠재적 인수자가 그 목적회사나 자산의 가치와 위험을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KT ENS 매출채권 유동화 건에 있어서의 자산실사 시에는 유동화의 기초자산인 KT ENS와 협력사의 재무상황 및 회계의견이랄지 계약서에 대한 법률의견, 나아가 기초자산의 과다계상 여부 등이 면밀히 검토되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용기사를 보면 해당 신용평가사가 꼭 그렇게 하지만은 않은 것 같은 뉘앙스다.

자산실사를 영어로는 Due Diligence라고 한다. 왠지 “자산실사”란 우리말과 딱 들어맞지 않아 어색한데, 이러한 과정은 영미권의 금융시장에서 처음 시작하며 그들이 쓰기 시작한 것인 만큼 그들의 표현이 오리지널이고, 이 과정을 들여온 우리가 그 본래의미에 맞게 고쳐 쓰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용어는 1933년에 제정된 미국의 증권법 제11조의 조항 제목으로 처음 등장하였는데, 브로커 또는 딜러가 그들이 파는 주식을 소유하는 회사를 조사/분석하도록 강제한 조항이다. 이러한 어원을 살펴보면 대충 그 의미가 와 닿을 것이다.

다시 해당 사건으로 돌아가 살펴보면, 기사는 과연 신용평가사가 그러한 “상당한 주의(due diligence)”를 기울였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기관은 여신승인의 절차로 제3의 전문기관의 의견을 그들의 승인근거로 삼으려 신용평가사에 기대고, 신용평가사는 제한적 정보로만 자산을 판단하였다는 것을 핑계로 – 심지어는 스스로 언론기관이라는 핑계로 – 책임지지 않는 평가 등급을 매기고, 금융기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책임 없는 평가 등급을 근거로 여신을 승인한다. “신용”이란 표현이 굉장한 불신용의 관계 속에 엮인 셈이다.

중요한 혁신사항은 수단과 목적의 지위 차이를 제거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도끼잡이 axemen 에 대한 승리로 귀결되는 도끼 axes 의 독립 전쟁이다. 이제 목적을 고르는 것은, 다시 말해 어느 머리를 잘라야 할지 정하는 것은 도끼라는 말이다. 도끼잡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설의 마술사의 도제와 같은 방식으로 도끼를 멈추는 것이다. 도끼에는 없는 생각을 바꾸도록 하거나 혹은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이것은 일기가 아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택광/박성훈 옮김, 자음과 모음, 2013년, pp244~245]

괴테의 ‘마술사의 도제’라는 이야기를 바우만이 인용하며 현대사회에서 “수단과 목적의 지위 차이가 제거”된 상황의 설명에 사용했다. 현대 사회에서 도끼는 도끼 잡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움직인다. 도끼는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 때로는 자체의 생존의지로 – 작동한다. 현대 전쟁의 학살자는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의 컴퓨터 조작자처럼 ‘실행 버튼’을 누를 뿐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의 신용평가사도 어쩌면 도끼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지도 모른다.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된 존재. 그렇다면 그 도끼의 도끼 잡이는 누구일까?

구조화 금융, 그 자체가 악(惡)인가?

어찌 보면 구조화 금융도 사실 말이 어려워보여서 그렇지 기존의 자금조달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수도 있다. 자금조달은 금융시장 혹은 자본시장에서 돈을 빌리고 싶은 사람(또는 기관)과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또는 기관)이 시장에서 존재할 때에 발생한다. 즉 수요와 공급이 상호 맞교환되는 상황이다. 구조화 금융은 이러한 기존의 자금조달에서 몇 가지 특수한 기법이 더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구조화 금융의 가장 큰 특징을 들라면 ‘맞춤식 금융’이라고 이야기하겠다(어쩐지 동어반복처럼 들리지만). A 회사가 1백억 원의 자금이 필요할 경우 회사는 자체적인 판단으로 증자를 할 것인지 아니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것인지 결정하고 그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였다. 구조화 금융은 금융자문사가 그 자금조달의 목적 및 성격을 분석하고 그것의 자금조달 방안을 쪼갠다.

만약 이 자금이 부동산 개발사업에 쓰일 돈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회사의 운용자금과는 달리 일정수익의 창출이 기대된다. 그러므로 미래의 현금흐름의 분석이 중요하다. 큰 수익창출이 기대되면 이것을 바탕으로 자금공급자들에게 보다 유리한 조달조건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융자문사는 이 사업타당성을 검증해줄 객관적인 신용평가기관을 선정하여 자산실사(Due Diligence)를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의 좋은 평가는 상품(즉 1백억 원의 자금조달)의 가치를 높여준다.

그 다음으로 자금조달 주체를 결정하는데 이 말은 A회사가 차주가 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주체가 차주가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소위 ‘부외금융(off-balance sheet financing)’ 기법인데 보통 A회사가 주주가 되는 ‘특수목적법인(Special Purpose Company)’인 B회사를 설립하여 B가 차주가 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통제받지 않고 대출을 증대시킨 주범으로 간주되고 있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SPC설립의 목적 중 중요한 것 하나는 자금의 사용을 A회사와 절연시켜 부동산 개발이라는 사업목적에만 쓰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B회사의 설립 여부가 결정되었으면 이제 1백억 원의 자금조달 구성방법이다. 일단 금융자문사는 A회사가 일정비율의 자본금(예를 들어 1백억 원의 20%)을 태워 책임감을 부여시키려 한다. 더불어 A회사 입장에서도 출자를 해야 그 배당을 얻게 된다. A사가 가장 많은 위험을 부담하는 동시에 가장 많은 수익을 가져갈 것이다. 그 다음으로 금융자문사 – 이제 주선의 기능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 는 80억원을 부담할 은행을 찾아 나선다. 은행은 A회사의 신용등급, 자산실사의 결과 등을 감안하여 B회사에 자금을 대출해준다. 이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신생회사인 B는 A회사에 준하는 대접을 받게 된다. 위험은 A회사보다 적고 수익(대출이자) 또한 상대적으로 적다.

1백억 원을 투입하여 부동산 개발을 하고 분양을 하여 1백 5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가정하자. 먼저 B회사는 대출이자를 10억원 내고 세금을 15억원 낸다. 나머지 25억 원은 A회사의 배당으로 지급된다. 그리고 B회사는 청산된다. 모두가 행복한 상황이다. 이것이 선순환이다. 그런데 분양에 실패했다고 가정하자. 실패한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어쨌든 은행으로서는 부실대출이 된 셈이고 국가는 세금을 못 걷고 A회사는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 악순환이다.

이 과정이 악순환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거시적인 차원이나 미시적인 차원에서 다양한 것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1) 경기가 좋아서 사람들이 구매력이 있어야 할 것이고, 2) 해당 사업의 사업성이 우수하여야 할 것이고, 3) 이러한 과정을 신용평가기관이 자산실사에 충실히 담아야 할 것이고, 4) A회사의 사업수행능력이 뛰어나야 할 것이고, 5) 금융자문사가 구조를 잘 짜야 할 것이고, 6) 은행이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잘 이해하고 부실대출 방지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말이 그렇지 쉽지 않은 일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대출업체의 막가파식 대출 – 즉 6번 과정의 실패 – 이 한몫했지만 이는 또한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집값이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는 1번 과정에 대한 과신이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금융기관들이 그렇게 광적으로 그 시장에 몰려들게 한 것은 3번 과정에서의 심각한 실패가 한몫하였다. 이 과정은 어쩌면 금화를 만듦에 있어 실질적으로 담겨야 할 금의 양보다 적게 만드는 악화(惡貨)의 주조과정과 비슷하다. 예전에는 그런 짓을 탐욕스러운 군주가 저질렀지만 이번에는 탐욕스러운 신용평가기관이 저질렀다.

예전에는 화폐 자체를 악으로 보기도 하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죄악시하기도 하고, 금융기관 자체를 금권주의의 상징으로 간주하기도 하고, 불태환 지폐를 사기라고 여기기도 하고, 지급준비율이 엉터리라고 하기도 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열거한 기능을 시장에 필요한 요소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느냐 하는 문제는 어찌 보면 보다 큰 시스템적인 문제일 것 같다. 같은 이치로 이번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구조화 금융 그 자체를 지목하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화폐가 나빠서 신용위기가 왔다기보다는 그 화폐를 지배하는 자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사용했는지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