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투자은행

우리가 민간투자사업이라 부르는 사업방식을 영국에서는 PFI(the Private Finance Initiative)라 부른다. 시작된 역사는 1990년대 중반으로 비슷하나, 그 제도나 응용에 있어서는 영국이 더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고 여겨지곤 한다. 영국은 특히 NHS, 즉 ‘국가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에 쓰일 병원을 민영화하여 운영하고 있다.

They’ll certainly be cleaning the windows as usual today at the Cumberland Infirmary in Carlisle, the first hospital completed under the Private Finance Initiative (PFI) system, where the Government borrows money from the private sector to build public infrastructure in return for part-privatisation. Opened in June 2000 by Tony Blair and hailed as a flagship, the ₤87 million Infirmary has 442 beds and acres of glass, all paid for privately and leased back to the NHS for 45 years. Three old district hospitals were closed and amalgamated to make way for the new hospital, staff were “rationalised” and patients got used to paying for parking.[The pros and cons of PFI hospitals]

위 내용을 찬찬히 되짚어보자. 국가는 부분적인 민영화에 대한 대가로 공공 인프라를 짓는데 사적부문의 돈을 빌린다. 민간은 병원을 지어 NHS에 45년 동안 임대하고 이에 대한 임대료를 받아 투자재원을 회수한다.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민간은 수익창출을 위해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주차서비스까지 부대사업으로 하는 것 같다.

PFI, 찬반(贊反)의 논리

정부가 PFI를 추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공공재원의 부족, 이로 인한 시의적절한 서비스 제공의 부족이다. “공공부문의 자본이 부족할 때 PFI 아니면 파열뿐이다(when there is a limited amount of public-sector capital available, it’s PFI or bust)” 반대자의 논리는 민영화로 인해 민간에게 더 많은 이자를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둘 다 일리가 있다. 영국은 재정적자가 GDP의 13%에 육박할 정도로 엄청난 재정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낡은 NHS 병원은 시급히 새로 지어야 한다. 결국 미래 세원을 담보로 전당포로 달려간 셈이다. 반면 비판자들은 전당포가 잡은 담보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매긴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 결정적인 비판자의 논리가 있다. 결국 PFI는 일종의 야바위라는 것인데, 이를 통해 정부는 자신들의 재무제표에서 증가하고 있는 부채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즉 사적부문이 지어준 병원에 대한 임대료는 채무가 아닌 계정으로 잡히지만 실질적으로는 채무이기 때문에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말장난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민간투자사업에 대해 공공서비스의 공급이 해마다 늘어나야할 상황에서 재정문제에 시달리는 국가가 시의 적절하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해당사업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는 것이지만, 그것이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결국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뿐더러 현재 부채현황 상에 잡히지 않게 하는 꼼수까지 동원되고 있다는 것이 현 주소다.

PFI는 무용지물인가?

이렇게 결국은 돈의 문제로 귀결되는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찬반논리의 각론에는 민간의 이윤추구논리로 인한 질 낮은 서비스, 잘못된 위험분담으로 인한 형평성 문제, 가격결정시스템의 혼선, 잘못된 수요예측으로 인한 비용발생 등 허다한 장애물이 놓여 있다. 이러한 장애물들은 추진하는 이나 반대하는 이들의 명쾌한 논리의 장애물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결국 어떠한 서비스를 국가가 제공하건 민간이 제공하건 의사결정의 참여자가 많고 그것을 감시하는 이가 많다는 것은 – 찬성자건 반대자건 – ,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덜 쓸모없는 서비스일 가능성이 높고 서비스의 과부족이 자율 조절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재는 시행착오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한편 민간투자사업으로 인해 더 많은 비용을 제공하여야 한다는 비판으로 돌아가 보자. 이것은 사실이다. 민간투자사업은 분명 정부가 직접 제공하는 것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얼마 전 민자고속도로 건설에서 폭리를 취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또한 은행에는 더 많은 금리를 지불해야 한다. 자연히 서비스 가격이 올라간다.

전자는 사업시행 초기 단계에서의 가격검증 시스템의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여겨지고, – 관발주 사업보다 해당 시스템의 정비가 덜 되었다는 문제 – 더 많은 금리의 지불은 차주가 엄연히 정부가 아닌 민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물론 일반 부동산 개발보다는 낮은 리스크가 적용되어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를 적용할 수는 있다.

민간투자사업의 대안, 국영투자은행?

여기서 발생하는 희한한 상황이 하나 있는데 바로 금융위기 때 있었던 국유화 등과 관련한 정부의 모순된 입장이다. PFI의 본류인 영국정부는 2008년 2월 모기지업체 노던록을 국유화했다. 경제자유주의의 천국 미국에서는 세계최대의 보험사 AIG를 국유화하였다. 돈 없어서 민간투자사업 한다는 정부가 금융기관들을 국유화한 것이다.

물론 비상상황에서의 비상조치라고는 하지만 일단 재정위기에 대응하여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한다는 논리가 조금은 무안해지는 상황이고, 또 하나 재밌는(?) 것은 금융기관이 이처럼 국유화되고 그 기관에서 제공하는 자금이 민간투자사업에 투입될 때에는 굳이 그것이 시장이자율에 상응하게 비쌀 필요가 있는가 하는 주장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즈음에서 제안할 수 있는 개념은 이 같은 개발사업 자금을 시장금리보다 싼 값에 조달할 수 있게끔 해주는 ‘국영투자은행’이다. 다만, 관료들과 정치인의 정치논리에 의해 금융정책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등장한 독립된 중앙은행처럼, 다양한 의사결정 시스템의 한 축으로 개발 사업을 공공적이면서도 ‘독립적으로’ 바라보는 투자은행 말이다.(주1)

물론 이 논의 이전에 국가가 직접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전의 현실 사회주의 블록이나 국가주도의 자본주의 국가군에서 보아온바 경제논리나 타당성 논리보다 정치논리가 – 정치논리가 반드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 사업추진 여부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다양한 의사결정 주체로서의 독립된 한 축

대표적인 것이 현재의 이른바 ‘4대강 살리기’ 사업이다. 그것의 실제 사회편익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지극히 제한된 의사결정 단위가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추진하고 있다는 상황은 국가의 일방적 사업주도가 가지고 있는 폐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의사결정이 다른 단위의 논의 및 사업검토가 병행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한축은 현재 4대강에 대한 대표적인 반대자인 시민사회, 진보세력, 그리고 종교계 등일 것이다. 다만 그들의 반대논리는 환경피해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생명존중 등 약간은 형이상학적인 당위성에 치우쳐 있는 느낌이다. 한편 이를 독립적 국영투자은행이 판단할 경우 앞서의 도덕적 잣대와 함께 경제적 타당성과 지속가능성도 병행 검토할 수 있다.

만약 4대강 사업을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하였다고 한다면 – 우선 많은 반대가 있었겠지만 –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순수 시장논리만으로도 쉽사리 추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해당 사업만 놓고볼 때 경제적 편익을 가늠하기 어렵고(주2) 결국 투자자들은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반드시 나쁘게 작용하지만은 않는 상황일 수 있다.(주3)

그러한 프로세스에 공공에 대한 사회적 편익이 시중은행보다 더 강력한 모티브가 되는 ‘독립적인’ 국영투자은행이 있다면 우리는 국가 단위 투자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좀 더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과거의 기업금융 중심의 은행에서 점점 더 프로젝트 중심의 금융이 활성화될 향후 사회에서 고려해봄직한 대안이다.

 

(주1) 이와 유사한 개념에서 현실에서도 존재하긴 한다. 우선 기업금융 중심으로 국가주도 자본주의의 개발정책을 도왔던 산업은행, 기업은행과 같은 이른바 국책은행이다. 또한 수출을 도모하기 위해 정책금리로 개별사업을 도와주는 수출입은행이 있다. 또한 국민연금이나 우리은행처럼 사회적 소유 또는 국가소유의 금융투자자들이 있다. 우선 앞서의 두 행위자들은 국가로부터 ‘독립적’이라 보기 어렵고 특수목적을 지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후자들의 투자논리에선 시중 다른 민간투자자와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주2) 최근 강주변의 관광지 개발권 등을 부여하여 민간자금을 조달할지도 모른다는 보도도 가끔 나오고 있는데 현재와 같이 부동산 시장이 급냉인 상황에서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아보이는 방안이다.

(주3) 유사 시장으로 공기업인 수자원공사가 있을 것인데 현재 상황에서는 시장의 논리를 무시한 채 일방적인 정부의 의지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 thoughts on “국영투자은행

  1. 말씀하신 것 같은 국영투자은행은 역설적이게도 지금처럼 시장이 관권을 압도하는 시절이
    오기전인 5공화국 이전의 체제에서 추진되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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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주석에 달아놓은대로 그당시에 유사한 은행이 있었죠. 프로젝트 단위가 아닌 특수목적으로 설립된 국책은행요. 물론 독립적이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국가단위 의사결정의 보조를 맞추는 금융기관이었다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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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네, 거게에다 시장과 관으로부터 그리고 특히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적인 그런 이상적 조직이 생겨났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초현실적 생각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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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투자은행이든 아니든 국영이라면 결국 기관장을 나라에서 임명하고 맘에 안 들면 쫓아낼 게 뻔한데 과연 정확한 시장 분석이나 공공편익 분석을 해서 프로젝트에 뛰어들지는 않을 거고, 정부가 돈줄을 대라, 하면 대야 하는 것일 텐데요..
    대체에너지 투자라든지 당장 시장상황에서 어렵지만 장기적인 국가 발전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라면 좋다는 생각이 들지만 4대강 같은 경우 참 애매합니다. 그냥 해라, 그러면 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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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뭐 아이디어일뿐이에요. 낙서장에 끼적거린 :)~ 구체화된다면 엄청 고민과 사회적 논의가 많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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