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 그 지출측면에서의 해법에 대한 좌우의 시각차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위기

미국의 금융위기가 전 세계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웬만한 국가들은 예외 없이 구제금융 등 천문학적인 재정지출, 초저금리라는 통일된 해법으로 경제난국을 헤쳐 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 – 혹자는 닷거브(dot gov)버블이라 함 – 경제침체가 어느 정도 반전되어 제2의 대공황으로 추락할지 모른다는 공포심은 다소 잦아들었고, 서서히 출구전략을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다소는 배부른(?)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세계경제의 청신호를 교란시키는 잡음이 (주로) 자본주의 주변부에서 들려오고 있어서 우리의 신경을 거스르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은행원들이 어부로 전직했다는 소식은 소국(小國)의 가십 정도로 여겨졌지만, 이후 구름도시 두바이나 남유럽 등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부터는 시장이 바짝 긴장하고 있고 각종 지표도 요동치고 있는 상황이다. 점점 위기가 중심부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리라.

세계 공통의 위기, 재정적자

세계경제에 대한 낙관의 의지를 꺾는 이러한 양상의 근저에는 재정적자라는 필연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남유럽의 위기는 해프닝에 가까운 아이슬란드와 두바이의 모험주의와 달리 유로존의 일원으로서의 나름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에 의한 재정운용의 행태를 보였을 것임에도 국가살림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물론 재정통계 분식회계와 같은 꼼수도 있기는 했지만 두바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뜬 구름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위기는 남유럽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표적으로 자본주의 중심부인 미국, 영국, 일본 등도 사상 최대의 부채와 재정적자에 신음하고 있다. 다만 남유럽과는 다른 나름의 면책사유 덕분에 간신히 신용등급을 유지하여 체면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어쨌든 이들 국가의 재정적자의 원인은 공급 측면에서는 경상수지 악화 및 세수감소, 지출 측면에서는 구제금융 등 재정방출, 고착화된 악성 재정지출구조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재정적자에 대한 좌우의 현저한 시각차

경상수지는 일본 등 일부국가를 제외하고 공통으로 마이너스다. 자연히 세수도 줄었다. 그런 와중에 각국은 위기 진화를 위해 양적완화를 시행했다. 향후 일부 투입자금이 회수되겠지만 당분간 재정에 부담이 된다. 또한 신자유주의 기조에도 불구하고 지속된 경직성 지출은 재정악화의 주요원인 중 하나다. 다만 이 비용의 삭감은 민심이반과 연결되기에 우익이 집권하더라도 쉽게 줄일 수 없었다. 민심이반의 결과는 그리스가 현재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보수진영의 해법은 명쾌하다.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그들은 천문학적인 구제금융 등에는 불가피성을 옹호하면서도 복지지출은 포퓰리즘으로 폄하한다. 조선일보는 그리스 퇴직자가 연금으로 임금의 90%를 받는다고 비아냥거렸다. 진보진영은 자연히 반대 입장이다. 그들도 재정적자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이 있는 건 아니지만 – 굳이 들자면 증세 – 여하튼 복지축소 등을 통한 재정수지 개선은 답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 쪽에겐 금과옥조, 다른 쪽에겐 절대악

이렇게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우익과 좌익의 구분은 연금, 건강보험과 같은 공공서비스의 공급주체에 대한 관점으로 나뉘는 경향이 강하다. 당연히 우익은 시장에 의한 공급, 좌익은 비(非)시장에 의한 공급을 선호한다. 전자는 효율성을, 후자는 공익성을 준거가치로 내세운다. 예를 들어 민영화에 대한 이들의 호불호도 극명하게 갈라진다. 한 쪽에선 금과옥조인 것이 다른 쪽에서는 절대악으로 전락해버린다. 접점이 별로 없다.

영국의 대처 수상이 기간산업에 대한 민영화를 단행한 데에는 하이에크의 팬으로서 관치에 대한 혐오라는 이념적 동기도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자본주의 국가에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재정위기에 대한 처방도 한 요인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복지지출 등 공공서비스 공급이 단기간 내에 소비를 진작시켜 선순환 되는 상황이 가시적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케인스주의적인 낙관만으로 버틸 수는 없다는 위기감도 작용한 것이다.

그럼 복지삭감이 정답인가?

대처리즘 이후 금융위기 전까지 대세를 이루었던 신자유주의 흐름에 대한 사회적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복지축소와 맞물린 자본의 세계화가 화학적 상승작용을 일으켜 각국의 인민들을 더욱 피폐한 삶으로 내몰고 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2차 대전 이후로 국한하여 보자면 ‘국가 개입확대 – 개입축소 – 개입확대’로, 공공서비스나 국가역할에 대한 사회적 시각의 사이클이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직 체제 내에서 어느 특정 모델이 다른 모델을 압도한 것 같지는 않다. 또한 특정 모델의 채택이 반드시 특정 정권의 이념적 성격을 촘촘하게 규정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즉, 통념과 달리 국가에 의한 공공서비스 공급은 자본주의 기업의 임금압박을 완화해주기 위한 ‘좌익적’ 변주곡, 실제로는 고도의 ‘우익적’ 대안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몇몇 공공서비스가 내포하고 있는 소득형평성 재고효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공공서비스의 대안은? 재정위기에 대한 대안은?

연금제도가 체제순응을 목적으로 비스마르크에 의해 도입되었다는 사실은 제쳐두고라도 오늘날 연금운용이 일부의 희망사항처럼 그리 진보적이지 않음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예전 한 진보정당의 유력인사가 ‘국민연금을 통한 기업 사회화’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공약을 내놓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자금이 주가부양에 투입되는 등 체제 순응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유동성 공급은 금융위기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요컨대 복지모델이 실패했다고, 또 그것이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해서 우익이 고소해하고 좌익이 실망할 상황인가 하고 묻고 싶다. 원초적으로 현 체제에서 노동자가 ‘착취 없이’ 정당한 임금을 받고 있다면 그런 공적 부조가 없더라도 무리 없이 생활해야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이 국가재정의 짐이 된다면, 은밀하게 혜택을 받고 있던 누군가에게 전향적으로 더욱 많이 부담 지워야 하지 않을까?

4 thoughts on “재정위기, 그 지출측면에서의 해법에 대한 좌우의 시각차

  1. tomahawk28

    ‘좌익적 변주곡’이란 단어 맘에 드네요, 복지축소가 대세라는 분들이 육아비용을 전면 지원하겠다고 바뀌는건 ‘우익적 변주곡’쯤 되겠군요 ㅎㅎ 같은 생각을 해도 정리하는 이런 글솜씨가 정말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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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ryuhda

    남유럽 클럽메드 국가의 문제를 재정측면에서 명쾌하게 짚어주셨네요. 공감합니다만, 문제의 近因은 재정적자이지만 그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경상수지 부문이고, 경상수지의 불균형을 자율조정하는 기능이 환율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본질적 문제의 遠因이 “유로화”라는 단일통화의 딜렘마가 아닐까요? (트리핀의 역설에 또다른 반쪽이거나 다른 버전인 셈인듯,,,) 이 통화체제로 재미본 독일이 일정부분 부담하는 것이 오히려 응당하다는 생각이 유러피안들에게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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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네 맞는 말씀입니다. 이 글은 다만 지출측면에서만 관찰한 것이고 근본적인 부분은 경상수지 부문의 불투명한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손보느냐 하는 것이겠죠. 한편 저 역시도 유로체제로 인한 최대의 수혜국가 독일이 어떤 식으로든 유로체제의 큰 형으로서의 역할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그게 일국단위라면 큰 마찰없이 이루어지겠습니다만 – 사실 일국 내에서조차 이탈리아 같은 경우도 갈등이 많죠 – 이렇게 다국단위의 공동통화 체제에서 그게 과연 가능할지는 매우 의심스럽죠. 정치적 권력의 공간범위와 화폐적 권력의 공간범위의 불일치, 다들 하는 이야기지만 이 문제가 향후 유럽의 생존을 위협할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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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김증말

      앞으로가 정말 재밌겠네요. 제일로 재밌을 관전 포인트 요새. 저거 잘 헤쳐나가면 정말 박수쳐주고 싶네요! 그리고 푸그님의 ‘재정적자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이 있는 건 아니지만 – 굳이 들자면 증세 – 여하튼 복지축소 등을 통한 재정수지 개선은 답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런 태도등이 여튼간 진보라는 분들의 가장 취약한, 안타까운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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