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적이었던 UAE원전, 이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인가?

오늘자 매일경제 종이신문을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저축은행이긴 하지만 금융권인 부산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소식은 한편에 제쳐놓은 채 ‘이슬람채권 무산위기 꼬이는 원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머리기사로 올렸기 때문이다. 이어 신문은 머리기사를 포함, 네 꼭지의 기사들을 통해 이슬람채권, 이른바 수쿠크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의 잡음을 전하고 있다. 신문의 논조는 대체로 수쿠크의 활성화를 위해 관련법률이 통과되어야 하는데, 이해관계자(?)들의 맹렬한 반대로 인해 벽에 부닥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수쿠크인가?

수쿠크, 즉 이슬람채권은 이슬람국가들이 발행하는 채권으로 이자를 금지하는 이슬람율법에 따라 개발되었다. 이자를 받지 못하는 투자자들은 이자 대신 배당금으로 수익을 배분받게 된다. 일종의 꼼수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금융권의 시야에 존재하지 않았던 수쿠크가 왜 갑자기 등장하기 시작한 것일까? 이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가 치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UAE원전 수주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 블로그에서도 그렇고 언론 지상에서도 그렇고, UAE원전 사업이 단순발주 사업이 아닌 프로젝트파이낸스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밝혀진바 있다. 문제는 1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부담분이 너무 막대한 금액이라는 점이다. 국내에서 유력한 자금조달창구인 수출입은행도 이 정도면 벅찬 규모다. 따라서 조달방식 다변화를 위해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방식이 수쿠크를 통한 오일머니 조달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3일 기재위 조세소위 회의록을 보면, 임종룡 기재부 1차관은 “유에이와의 계약 내용 자체가 저희가 반 정도 파이낸싱을 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본래 지난해 12월 원전사업에 이슬람국가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이슬람채권에 과세특례를 주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으나, 기재위 의원들의 반대에 부닥쳐 무산됐다. 임 차관은 파이낸싱이 안 되면 계약 자체가 파기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파이낸싱을 하도록 했으니까 저희는 해야 되겠다”며“계약서 내용 자체는 잘 모르지만 파이낸싱을 해야 한다는 부분은 틀림없이 들어가 있다. 186억달러 중 100억달러 이상을 파이낸싱해야 한다”고 말했다.[“UAE원전 수주 조건, 한국에 유리” 한전, 작년 국회에 ‘거짓보고’ 의혹]

이 정부 들어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해외사업들은 UAE원전, 터키원전, 브라질고속철도 등이 있다. 이러한 사업들의 특징은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단순발주 사업이 아닌 일종의 수출금융 성격의 프로젝트파이낸스 성격의 자금조달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국내금융기관은 국책은행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 정도 규모의 해외사업, 특히 발전소와 같이 현금흐름이 안정적이지만 장기간 운영되는 방식의 사업의 요구조건을 맞추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에서 내놓은 대안이 바로 자금수요자가 이슬람채권을 발행하여 이슬람의 국부펀드 등에게 팔아 자금조달에 쓰는 것이었다. 로컬뱅크에게 돈을 끌어다 쓰려는 심산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투자자 수익을 이자로 볼 수 없는 이슬람채권의 특성에 맞게 사실상의 이자라 할 수 있는 투자자 수익에 대한 역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배당소득세, 양도세, 취등록세, 부가가치세 등을 면제해주려는 조세특례제한법을 통과시키려 한 것이다.

엉뚱한 방향으로 튀고 있는 수쿠크

그런데 별 문제없으리라 여겼던 – 원전을 우리 돈 빌려줘 가면서 지어주어야 하느냐는 좌파들의 비난은 개무시한다 하더라도 – 원전 자금 조달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바로 근본주의적 성향으로 치닫고 있는 국내 개신교계의 반대에 부닥친 것이다. 목사님이 절 앞에 가서 “예수 믿지 않으면 공산당”이라는 극언을 늘어놓는 이 나라에서 “이슬람”이 연관된 투자는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이 법의 통과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단체는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다. 이들의 대표적인 반대논리는 △투자수익의 테러단체로의 지원가능성 △수쿠크 자금이 이슬람율법의 적용을 받게 되므로 금융주권의 침해 우려 △다른 나라와 달리 지나치게 많은 세제혜택 등을 꼽고 있다. 이들은 “법 개정 반대가 자칫 종교적 갈등으로 비치는 걸 경계하고 있다”지만 어쨌든 개신교 단체가 가장 심하게 반대하는 사실만큼은 변함없다.

한장총과 한기총의 공식입장은 저렇듯 점잖은 표현이지만 기재위 국회의원 등에 대한 일반교회의 공세는 감정적으로 치닫고 있다. 한기총은 이미 안상수 씨를 찾아 낙선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밝혔고, 한 의원은 “윤증현과 함께 기독교2적으로 규정하고 행동으로 빈말이 아니란 걸 보여주겠다”는 협박 문자도 받았다. 요컨대 고의든 아니든 교회일반에게 수쿠크의 허용은 국내 이슬람교의 세력 확장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치적(?)과 종교와의 갈등

경제는 무당파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정부는 스스로를 실용주의적 정부라 부르고 MB는 자신이 정치와는 무관한 경제 대통령임을 강조했다. 원전 수주도 어떻게 보면 – 적어도 처음에는 – 무당파 적이고 종교와 무관한 경제행위로 보였다. 하지만 이 사업방식이 수출금융 성격이라는 사실에 진보진영이 분노하고, 다시 그 조달방식이 이슬람채권이라는 사실에 교회가 분노하면서 사업은 지극히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고 있는 일차적 책임은 현 정부의 제멋대로 “실용주의”라고 생각한다.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생략된 사회적 합의, 합리적인 수준에서의 정보의 공개, 올바른 사업타당성의 평가가 뒤늦게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비판이 거세어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억울하달 수도 있는 과잉반응까지 낳게 된 것이다. 다원화 사회에서의 일방통행이 소신과 실용주의로 포장되는 상황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또 하나의 사례다.

한편 일부 개신교 단체들의 반응은 종교적 갈등으로 비치는 걸 경계한다는 그들의 발언과 무관하게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한 예로 이슬람율법 샤리아에 의해 운영되며, 이에 저촉되면 자금을 회수해서 혼란을 야기하기에 수쿠크를 허용할 수 없다는 논리를 보자. 샤리아에서는 비도덕적인 사업에의 투자를 금하는데 술, 도박, 매춘, 무기 등의 사업이다. 이러한 투자 가이드라인은 영국 개신교 단체 등도 운용하는 사회책임펀드에서도 동일하다.

이외에도 유례없는 특혜와 테러단체로의 지원 여부 등의 각론의 문제제기 등은 어떤 면에서는 총론의 반대를 위한 방패막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혜가 있다면 각론에서 그 부분을 조정하면 될 일이다. 테러단체로의 지원은 논리가 궁색해서 달리 반박할 대항논리가 없다. 아예 중동과 –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테러리스트가 주요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지역 – 경제행위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과 유사한 느낌인데, 사실 최고의 거물 테러리스트는 국내 개신교 단체가 부흥회에 초청했던 “조지 War 부시”다.

MB 정부 최대의 레임덕?

한편 이번 사태는 향후 정치지형에서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짐작된다. 스스로가 교회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은 재임기간 이래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든지 간에 불교계와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왔다. 그 와중에 개신교계와는 지극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이제 개신교계가 MB정부의 새로운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실용주의가 종교적 근본주의와 갈등을 빚게 되었다는 국내정치에선 볼 수 없던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당황한 정부는 황급히 발을 빼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자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가 법안을 발의하고도 국회에서 처리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하고 있다”고 정부를 질타했다. 결국 개신교계의 입김이 먹혀들어 국회통과가 어렵게 되면 레임덕은 당연하고, 최악의 경우 정부 스스로의 치적으로 포장했던 UAE원전의 계약무효 가능성까지 점칠 수도 있다. 구제역 등으로 사나운 민심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

다시 원전수주와 수쿠크로 돌아가면 애초에 이러한 일의 진행이 실용주의적으로 되었으려면 수주의 공은 한전 컨소시엄에게 돌아가는 것이 타당하였고, 수쿠크는 원전PF라는 특수상황에 의해서가 아닌 외화표시 채권의 역차별 방지라는 본래의 목적 하에서 진행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UAE원전에서 시작된 업적 주의적 행태와 임기응변식 처방 모색은 결국 자신의 최대 지지 세력까지 적으로 돌려버리는 자충수를 두는 상황으로까지 몰린 것이다.

10 thoughts on “치적이었던 UAE원전, 이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인가?

  1. easybird

    돈이 종교인 나라에서 돈의 종교적 성격을 따지고 들다니 황당하네요.. 협박문자는 테러리스트 뺨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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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궁금

    저 내용중에 궁금한 내용이 있어서 댓글남깁니다. 제가 잘 몰라서요.. 죄송합니다. “정부에서 내놓은 대안이 바로 자금수요자가 이슬람채권을 발행하여 이슬람의 국부펀드 등에게 팔아 자금조달에 쓰는 것이었다.” 라는 문장에서 ‘자금수요자’가 우리나라 정부를 의미하는건가요?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이슬람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건가요? .. 죄송합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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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icky

      채권발행을 허가받은 기관, 예를 들면 증권사 등이 자금수요자(즉 한전 컨소시엄)를 대행하여 발행하고 이 자금을 그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이겠죠. 정확한 흐름은 case by case니 저도 정확히는 알 수 없네요. 🙂 암튼 큰 틀에서 우리나라가 수요자니까 우리나라 측에서 채권을 발행하고 중동자금이 그 채권을 구매하는 절차는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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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다시다

    어이구. 세상 일 돌아가는 게 참 복잡하네요. 한기총이 반대한다길래 막연히 이슬람에 대한 거부감에 돈꿔주는 방식은 반대라는 건가 했더니, 수쿠크 채권을 저희 쪽에서 발행한다는 거군요.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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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Pingback: 치적이었던 UAE원전, 이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인가? | Finance Planet

  5. sticky

    조용기 “정부가 이슬람 지하자금을 받기 위해 이슬람을 지지하는 일이 생기면 철저히 이 대통령과 현 정부와도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이건 단순한 돈이 아니다. 이슬람 포교가 수반되는 것이다” -_-; http://icio.us/Lgifh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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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icky

      좋은 글 링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결론 부분에서 “원전 건설은 공사기간이 매우 장기이고 공사 진척도에 따라 필요할 때 마다 수시로 자금의 조달이 이루어 져야 하므로 채권 발행 보다는 대출 형식으로 실행될 것입니다” 언급은 약간 이견이 있는데, 원전 을 비롯한 프로젝트파이낸스 일반은 사실 진척도에 필요할 때마다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므로 착공 전에 사업비가 어느 정도 확정되어 일괄적으로 자금조달이 이루어지는 것이 통례입니다. 비중으로 보면 채권보다는 은행권의 직접대출이 더 많이 차지할 것이나 이른바 인프라 채권의 발행이 특수한 상황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SOC채권의 발행 사례 등이 있고요. 또한 UAE원전에 대한 관료들의 발언을 봐서도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UAE원전에 대한 파이낸스와 연계되어 있다는 정황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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