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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임기를 맞이한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 목표는 거칠게 두 가지 정도가 관찰된다. 1) 관세1로 중국을 때리겠다 2) 관세로 나머지 나라를 때리겠다. 언뜻 생각해봐도 둘을 각자 추진하기도 벅차거니와 동시에 추진하기에 만만치 않은 목표인데,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야심차게 둘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처음에 각국의 경제전문가들은 ‘트럼프는 협상의 달인인데 그는 관세 카드는 하나의 블러핑으로 이를 발판삼아 미국에 유리한 무역조건을 협상할 것이다’라는 의견이 적잖았는데, 이제는 ‘트럼프는 관세에 진심이다’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그래서 계산법이 엉터리든 아니든 “아름답고” 폭력적인 관세 탓에 전 세계 자산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트럼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그의 관세 폭탄이 즉흥적이라거나, 일시적이거나, 전술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궁극적인 전략으로 간주할 수 있는 이유는 제법 이론적 배경이 탄탄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트럼프가 대(對)중국 전략을 세우는데 기여한 이론가로는 피터 나바로(Peter Kent Navarro)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선임 고문이 거론되고 있다. 그는 2011년 『중국이 부른 죽음(Death by China)』라는 책을 – 제목이 내용을 말해주는 책 – 그렉 오트리(Greg Autry)와 함께 썼고,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한2 이 책은 트럼프가 ‘좋아하는 책 10권’ 중 한권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더구나 그는 트럼프 행정부 1기 동안 근무한 후 2기에도 발탁된 경제 관료다. 1기가 숙적 중국을 향한 폭탄을 장전한 시기라면 2기는 그걸 발사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 2기는 1기에 비해 훨씬 악화된 문제가 하나 있다. 정부부채. 기축통화의 발권력을 바탕으로 거침없이 당겨쓴 빚이 이미 엄청난데 거기에다 조 바이든 시기 코로나19 대응과 집권연장을 위한 재정 퍼주기 등으로 빚을 내면서 정부부채는 역대 최고로 치솟았다. 이미 이자 지출로만 국방비를 초과하는 지탱 어려운 상황임에 트럼프는 또 하나의 이론가로 스티브 미란(Stephen Ira Miran)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지론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 미국의 빚, 즉 국채를 100년 무이자/저리 채권으로 리볼빙 ▲ 이 채권은 동맹국이 사준다 ▲ 채권매수의 대가는 안보 보장과 달러 스왑라인 제공 등의 내용이다. 경제이론이 아니라 동네 건달이 길가는 중고생 삥뜯는 방법 같은 가이드라인을 세웠다.3 4
사실 트럼프가 불평하는 전후 국제경제 질서를 만든 장본인은 미국이다. 전후 양극체제에서 자본주의 맏형이 된 미국은 비용적 측면과 안보적 측면을 고려하여 아시아 등 저비용 국가에게 제조업을 하청하는 국제적 분업체계를 확립하였다.5 이러한 분업체계는 소련의 붕괴와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의 “자유무역협정”으로 한층 강화되었다. 하지만 자유무역은 자연스레 미국 내 제조업의 공동화를 초래하였다. 그들의 일자리는 “중국 촌놈(peasants)”이 차지했다. 미국은 각국의 촌놈(peasants) 덕에 견실한 성장세와 낮은 물가상승이 공존하는 상태라고 불리던 ‘골디락스 경제(Goldilocks Economy)’를 향유하였다. 미국의 금융자본과 빅테크는 천문학적인 부를 쌓았지만,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고 정부는 일극체제 유지를 위한 비용으로 빚이 늘어갔다.
결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지고서야 미국은 다시 골디락스 경제의 근본적인 모순인 트리핀의 딜레마에 직면하였다. 이 용어는 1944년 출범한 브레튼 우즈 체제하에서의 미국 달러의 모순을 말한다. 즉, 준비 통화가 국제 경제에 쓰이기 위해선 준비 통화 발행국의 적자가 늘어나고, 반대로 준비 통화 발행국이 무역 흑자를 보면 준비 통화가 덜 풀려 국제 경제가 원활해지지 못하는 역설을 의미한다. 트럼프의 야심은 준비 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는 유지한 채6 무역 흑자는 달성하겠다는 모순된 목표다. 그의 세계관에서 중국과 중국의 우회로인 나머지 나라를 조지면 제조업 유치로 미국의 무역 흑자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전 세계 왕따화’의 총력전은 오히려 중국의 입지를 넓혀주는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7
트럼프가 자신이 지향하는 이러 경제적 정체성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표방한 것은 없지만, 히틀러가 독점자본주의에 대응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생뚱맞게 “국가사회주의”라고 칭한 것처럼 다소는 그간의 기득권층을 공격하는 듯 한 노동계급 친화적인 포퓰리즘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중국과 다른 나라들에 “뺏긴” 일자리는 제조업이기에 노조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이를 환영하고 있다. 관세 정책 등으로 인한 주가 하락에는 주식 보유자는 상층부이기에8 서민들에게는 피해가 없다는 식의 주장도 펼친다. 외국인 노동자 추방 시도 또한 하층백인의 외국인 혐오증에 편승한 시도다. 모든 것들이 2008년 이후 돌이킬 수 없는 금융자본주의의 파탄을 제조업 부흥으로 되살리겠다는 ‘자본주의 블록화’9 네오파시즘10의 징후다.
- 분명히 해두거니와 트럼프의 관세는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가 아니라 일방적인 관세다. 펭귄의 섬을 포함한 전 세계에 10% 일괄적으로 부과한 “보편관세(global tariff)”와 달리 일부 국가에 적용하는 징벌적인 추가 세율을 적용한 관세를 부르기 위해서 차별적인 호칭이 필요해서 일지라도 뭔가 주석을 달고 그 호칭을 쓰든지 다른 적당한 표현을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비판의식 없는 국내 미디어는 트럼프의 호칭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
- 이 다큐멘터리의 나래이션은 흥미롭게도 진보적 성향이라는 헐리웃에서도 진보적인 배우로 알려진 마틴쉰이 맡고 있다. 그가 왜 이런 국수주의적인 다큐에 나래이션을 맡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바로 이런 국수주의가 한편으로 노동자 친화적이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레토릭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 파시즘이 그러하듯 – 오히려 진보적 성향의 인사에게 어필하는 구석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
-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 영상 참조 ↩
- 한편, 이 트윗에서는 애초 스티브 미란의 전략은 점진적인 관세(최대 세율 20%) 책정이었으나 트럼프의 조급증과 즉흥적인 성향 때문에 미란의 의도와 다르게 관세가 시행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
- “대만을 방어하는 데 관심이 없는 미국인들은 Texas Instruments를 방어할 의향이 있을 수 있었다. 섬(대만 : 역자주)에 반도체 공장이 많을수록, 미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많을수록 대만은 더 안전해질 것이다. 1968년 7월, 대만 정부와의 관계를 완화한 TI 이사회는 대만에 새로운 시설 건설을 승인했다.”(출처) ↩
- 나중에 비트코인이나 스테이블코인으로 달러의 보완재 내지는 대체재를 마련할 계획도 있는 듯 하다. ↩
- “대규모 국내 경제를 가진 중국은 관세 충격을 견뎌낼 수 있다. 중국은 이미 국내 총 수요를 끌어올려야 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대학의 기초 과학 및 기술 연구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한 것을 횡재로 여길 것이다.”(출처) ↩
- 스콧 베센트(Scott Kenneth Homer Bessent) 재무부 장관 “가계 전체 주식 보유량을 보면, 상위 10%의 미국인이 주식(equities)의 88%, 주식 시장(the stock market)의 88%를 소유하고 있습니다.”(출처) ↩
- 때마침 중국도 경제권 블록화의 시동을 걸었다 ↩
- 트럼프의 파시즘적 성향에 대해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글을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