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국민연금

연기금의 딜레마

캘리포니아의 가장 큰 세 개의 펀드들은 – 2008년 중반 현재 총 4,421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 그들의 예상되는 부채를 7.5%에서 8%까지의 수익률(rates of return)에 근거해서 산정하였다. 이 가정들로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554억 달러의 차이(즉 부채와 자산의 차이 : 역자주)를 보이는데, 연간 개인분담금을 조정함으로써 쉽게 보충할 수 있다. 그러나 펀드 매니저가 20세기 동안의 미국 주식 상승률인 5.3%를 능가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장밋빛 시나리오는 타당해보이지 않는다. 스탠포드의 연구진들은 한층 더 보수적이고 — 과거 그리고 최근 역사 모두를 고려하여 — 현실적인 4.14%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대략 펀드들이 리스크가 없는 미재무부 채권에 투자할 경우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수치다. 이 결과는 공식수치보다 예상되는 단기부채가 10배 증가하는 것이다.[Pretend pensions]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진들이 캘리포니아 주의 연기금에 대해서 그 타당성을 검토한 결과 공식적으로 예상하고 있는 상황보다 현실이 더 가혹할 수 있다고 경고한 내용의 기사다. 인용한 부분은 향후 예상되는 부채가 더 늘어날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계산은 간단하다 잉여와 부채는 결국 유입과 유출의 차이로 설명될 것인바, 유입은 투자수익과 개인분담금이고, 유출은 지급할 연금과 운용비용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투자수익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정확한 예측이 가능할 것이므로 관건은 투자수익이고, 이것을 예측할 때 수익률(rates of return)을 적용한 것이다.

연구진도 지적하고 있다시피 7.5%~8%의 수익률은 매우 낭만적인 수치로 보인다. 어떤 상품이 매년 평균 그 정도의 투자수익을 안겨줄 수 있을까? 미국의 연기금이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입장에서 주식편입비율을 높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기사에서 나와 있다시피 주식의 평균 수익률은 5.3%였다. 가장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은 미재무부 채권 수익률에 근접한 4.14% 정도 일 것이니 연기금 측의 입장은 현실과 많이 차이난다. 신문기사는 펀드매니저가 이런 “비현실적인 목표에 부응하기 위해 과도한 리스크”를 떠안을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일단 수치상으로 별 차이가 없어보일지 몰라도 수익률이 4% 정도 차이가 난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라는 것을 지적해둔다. 기간을 얼마나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4% 정도의 수익률이 매년 복리로 계산된다면 일정기간 후에는 수익이 순식간에 몇 배 이상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런 관계로 목표 수익률의 설정은 보수적으로 잡는 것이 맞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신문이 지적한 바처럼 펀드매니저는 과도한 리스크를 떠안을 것이고, 그러한 리스크 부담의 대표적인 사례는 90년대 중반 바로 캘리포니아 주의 오렌지카운티에서 실제로 발생하였다.

결국 위와 같은 분석결과처럼 연기금의 예상부채가 비현실적일 경우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수령연금의 규모를 축소시키거나, 개인분담금 액수를 높이거나, 또는 두 가지 조치를 동시에 취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캘리포니아 만의 문제도 아니다. 프랑스에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연금제도의 개혁에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역시 연금제도 이슈가 개혁이 시시때때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다수가 적자 보전 대책에는 부정적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러한 개혁은 유권자들의 반발을 불러오게 되므로 정치인들이 싫어할 옵션이다.

지난번 ‘2010년 대한민국 재정’ 관련 글에서 알 수 있다시피 우리나라는 아직은 이러한 연금고갈의 문제가 짧은 시일 내에 도래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적어도 현재까지 거의 30조원에 달하는 흑자를 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이비부머가 본격적으로 은퇴하기 시작한 후부터 수령연금의 규모는 눈덩이처럼 늘어날 것이다. 그러한 만큼 새로운 세대가 개인분담금으로 자산을 메워주거나 혹은 일정정도의 수익률을 시현하여야 할 것인데 둘 다 그리 만만해보이지는 않는다. 인구구조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고, 눈먼 돈은 쉽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큰 판이 새로 짜여야 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전후 자본주의의 성공을 보좌했던 연기금이 21세기 자본주의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인지?

연기금의 주주행동주의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KB금융지주는 최근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회장 내정 과정에서 사외이사들만으로 회장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사외이사들의 집단 권력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중략]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의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한 적은 없다. 국민연금은 KB금융지주 지분 5.49%(9월2일 기준)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추천 인사들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사외이사에 선임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파견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국민연금 “KB금융 사외이사 추천하겠다”]

속 보이는 해프닝으로 끝난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건과 연계하여 흥미로운 일이 하나 진행되고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이 국민연금이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민연금은 지분 5% 이상을 가진 국내 상장사가 140여개에 달하지만 내가 아는 한은 사외이사 추천 등의 적극적인 의사결정 개입은 매우 드문 일이다. 다른 보도를 보면 이러한 국민연금의 행동이 일회성에 그칠 것 같지는 않다.

국민연금공단은 18일 제12차 이사회에서 내놓은 ‘2010년도 사업운영계획보고’에서 내년 국민연금이 주요주주로 있는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이날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국민연금이 주요주주인 기업에 대해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겠다”고 전했다.[국민연금 “내년 투자기업 의결권 행사 강화”]

즉, 국민연금이 이전의 소극적으로 행사해오던 주주권을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의지인데, 이는 사회책임투자나 주주행동주의를 주장하는 서구의 행동주의자들의 의견과 비슷하다. 기업윤리운동 등을 주도하는 시민단체들의 의견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사회책임투자 주창자들은 결국 적극적인 투자행태, 그 중에서도 주주로서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는 행위가 투자수익의 향상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를 경험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한편 연기금 중 주주행동주의로 유명한 곳은 세계최대의 연금펀드라 할 수 있는 캘퍼스다.

이러한 기업지배구조는 일반적으로 주주행동주의라는 미국 전통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은 1980년대 후반 이래 가장 큰 기관투자가로 군림해온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에 의해 강제적으로 미국 내에 생겨났다. 이 연금은 캘퍼스(Calpers)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주주행동주의를 이끈 선구자 중 하나다.[사회책임투자 세계적 혁명, 러셀 스팍스 지음, 넷임팩트 코리아 옮김, 홍성사, 2007년, p252]

결국 국민연금이 국민은행에 사외이사를 추천한다는 계획과 ‘2010년도 사업운영계획보고’의 내용은 이들이 캘퍼스가 추진해오던 주주행동주의 노선을 다져나가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개입주의적 노선이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당연한 노선으로 하여야 하는 이른바 우파 정부 하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과거 정권에서 민주당도 지적하였듯이 연기금의 주식 투자를 ‘경기 부양용 도박자금’, ‘연기금 사회주의’라고 비판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일면 모순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미 시작부터 대운하 건설, 금융시장에 대한 적극적 개입, 노동운동에 대한 적극적 개입 등을 통해 국가개입주의적 노선을 분명히 해왔다. 이전의 두 정부가 신자유주의 노선에 연성의 개입주의를 구가하였다면 이 정부는 과거 정부가 박아놓은 못 – 이를테면 좌파적 정책? – 을 빼야한다는 강박관념이 금융위기 상황과 맞물려 그 개입주의의 정도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남한의 우익들은 개입주의적 모델을 당연시 했던 박정희식 모델의 전력도 있거니와 ‘연기금 사회주의’를 부르짖은 것도 박근혜였지(주1) 이명박은 아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의 이번 주주권 강화 계획을 이명박 정부의 어떤 흑심이 있는 음모로 간주하고 반대하여야 할까? 엄밀하게 ‘주주권 강화’ 자체만 놓고 보자면 나는 그것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주주권의 행사는 당연한 권리인데, 국가의 의사결정능력은 시장의 그것보다 열등하다는 선입견으로 말미암아 국가 혹은 국가에 준하는 기관의 투자는 당연히 의사결정을 나머지 주주에게 일임한다는 식으로 간주하였던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도 혹은 노선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지만 그것을 운용함에 있어 결국 국민연금 혹은 그 의사결정 위임자가 주주권을 어떠한 목적으로 행사하느냐가 중요한 가치편향적인 시각을 제공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번 2010년 사업운영계획 보고에서는 주주권 행사의 목적이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라고 밝혔다. 문구상으로만 보자면 그것은 캘퍼스의 주주권 행사 목적과 유사하다. 특히 ‘장기적 가치’를 높이겠다는 것을 문구 그대로 받아들이면 단기적 이익에 주력하는 주주자본주의의 맹점도 보완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다만 위 인용기사의 다른 부분을 보면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기사에 따르면 “기금운용본부장의 하부조직으로 있던 준법감시인을 이사장 직속으로 확대·개편해 내부통제기능을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솔직히 나는 이것이 내부통제기능을 강화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얼핏 이사장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사회간접자본(SOC)과 민영화 기업 등 대체투자 분야로 투자를 넓힐 방침”도 수자원공사의 4대강 투자와 맞물려 괜히 찝찝해지는 대목이다. 과연 국민연금은 정부의 4대강 투자요청을 뿌리칠 자신이 있을까?

예전에 민주노동당 시절 심상정씨의 한 팸플릿에도 국민연금을 활용한 기업사회화의 시나리오를 제시한 적이 있다. 이를 사회주의적 본원적 축적이라고 여긴다면 그리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닌 만큼, 연기금은 좌우익 모두에게 명분 있는 주요 투자재원으로 여길 건더기가 많다. 문제는 어느 진영이든지 그것을 주주(즉 연금가입자)의 투자이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자신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투자사업에 활용하고픈 유혹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연기금을 통한 주식시장 부양은 박근혜씨가 표현한바 ‘연기금 사회주의’가 아니고 그저 ‘연기금 오용(誤用)’일 뿐이다.

(주1) 그렇다면 박근혜씨는 아버지가 사회주의자였음을 인정하는 것일까?

공공정책 수행의 제약조건

지난번 [공공의 이익 vs 사적 이익]이라는 글에서 아래와 같이 적은 바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은 국민의 돈을 걷어서 그들이 늙었을 때 적정수익을 합쳐 연금을 줘야 하는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기관이다. 국민연금은 그래서 마땅히 최대의 수익을 추구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연금이 터널을 인수해 MRG를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려고 했는데 도가 승인권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혈세”를 절감하였다. 이때 국민, 더 구체적으로 강원도민은 국민연금 편을 들어야 할까 강원도 편을 들어야 할까?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국민연금이 대변하는 이해관계자의 숫자가 강원도가 대변하는 이해관계자의 숫자보다 크다. 강원도민의 세금이 “혈세”1인만큼 국민연금 납부금도 “피의 납부금”일 수 있다. 액면으로만 보면 강원도는 세금절감이라는 이유로 보다 큰 공공의 이익을 침해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내 미래의 연금수익이 미시령 터널을 통과하는 통행자가 더 싼 값에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쓰였다는 소리다. MRG가 있기에 또한 통행료 인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독자들이 헷갈리게끔 일부러 약간 트릭을 썼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위 사례를 단순히 보면 언뜻 강원도가 국민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글에서 밝히고 있다시피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이해관계와 강원도의 이해관계가 꼭 상충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은 그것이 금전적이냐 사회효용이냐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즉 국민연금은 연금가입자에게 화폐가치로 환원될 수 있는 투자이익의 최대화가 사업추진의 목적이라면 강원도는 어느 정도는 미시령 터널 이용이라는 – 화폐가치로의 환원이 쉽지 않은 – 사회적 효용의 극대화가 사업추진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그 사회적 효용이 정당하다면 우리는 갈등하는 이해관계자들의 수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일정 정도의 타협을 감수할 수도 있다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어느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에서 수적 다수의 의견이 대체적으로 옳은 의견이고 설사 그렇지 않다 치더라도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특정 사안이 결정되면 그에 따라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결정하여야 할 것이 다수일지라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는 상대적 소수의 의견이 여전히 관철되어야 할 것들이 다수 존재함을 유의해야 한다. 즉 수적으로는 다수이나 권력관계에서 소수인 자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뿐만 아니라(주1) 수적으로도 소수인 이의 이해관계가 상대적 다수의 이해관계를 침해한다 할지라도 보호해야할 가치가 있다면 이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적 다수가 금전적 이해에 매몰되어 상황을 그르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지난 총선 여러 선거구에서 불었던 이른바 뉴타운 열풍으로 인한 다수당의 승리도 이러한 경향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국제관계에서 보면 거대한 인구의 중국이나 미국이 경제적이나 정치적인 이해관계때문에 적은 인구의 나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나는 “다수에 의한 이기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각설하고 질적 양적 소수를 보호하여야 함이 타당한 가장 전형적인 사례로 장애인에 대한 교통정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은 분명히 권력관계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수적으로도 소수다. 그렇기에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대중교통을 장애인까지 배려한 방식으로 조직하려면 사업타당성 측면에서는 분명히 비효율적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배려하기 위한 비용은 지출되어야 하고 오늘날에도 많은 장애인들이 이를 관철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점점 사회적 인식도 바뀌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러한 질적/양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배려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개인적으로는 그 배려를 통한 효용의 가치측정의 어려움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연금이 미시령 터널 인수를 통해 얻어지는 이익은 수익률이라는 숫자로 명확하게 표시되고 주주에 대한 배당금으로 실현된다. 하지만 미시령 터널 이용을 통해 사람들이 얼마만큼의 효용을 얻었는지는 참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심지어 일부 사회적 효용은 그 정당성마저 의심받을 때도 있다.(주2) 이것이 공공정책 시행의 딜레마다.

사회적 효용을 계량화시키는 방식에 대해 사회 대다수가 동의할 시점이 언제쯤이나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주1) 이에 관련하여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여기 등장하고 있는 국민연금이고 또한 국민건강보험이다. 이들 공적기금은 각각 가진 사람이 더 내고 못 가진 사람이 더 혜택을 받는 평등주의적 성격이 강한 공적부조다.

(주2) 이를테면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피해 받는 어느 도롱뇽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이 문제는 혹자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환경과 생태보호의 차원으로 다가오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그깟 도롱뇽 몇 마리 때문에 뭐하는 짓이냐는 비난을 받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특히 도시정책에서는 때로 사회적 효용이라는 것이 이해관계자에 따라 제각각으로 나눠지기도 한다

공공의 이익 vs 사적 이익

“민자로 건설됐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던 미시령 관통도로㈜가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매각된다. 이에 따라 해마다 도가 수십억원의 혈세로 적자를 보전해 주던 부담이 어느 정도 줄게 됐다. 3일 강원도에 따르면 도는 최근 미시령관통도로㈜ 등과 ‘미시령민자터널 재정지원 개선’ 협상을 마무리, 통행료는 현행대로 동결하고, 통행량 부족에 따라 연 수십억원씩 지원해주던 도의 결손분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적자’ 미시령 도로 팔렸다…강원도,수익보전 부담금 줄 듯, 쿠키뉴스, 2008년 7월 3일]

민간투자사업의 사업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이라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의아해할 것이다.

– 적자사업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가?
– 적자인 민자사업을 왜 국민연금이 인수했나?
– 국민연금이 인수했으면 사실상 공공시설이 된 것인가?
– 그런데 어떻게 도는 수십억원을 적자보전부담을 줄였을까?

이 의문들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이 사업은 당초 국비로 건설될 예정인 사업이었다. 하지만 국비 지원이 늦어지자 강원도가 민자사업으로 추진하여 2006년 완성된 도로였다. 2000년대 중반까지 민간투자사업에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소위 ‘운영수입보장(MRG : Minimum Revenue Guarantee)’라는 제도가 있었다. 이는 비록 민간사업으로 시행된다 할지라도 사회간접자본의 사업자가 파산할 경우 발생할 기회비용이 더욱 크다는 점과 민간투자사업의 초기시장에서의 사업자 유인 차원에서 사업자의 예상수요의 일정부분을 정부가 책임져주는 제도였다.

그런데 막상 도로 등 민간투자사업 시설이 운영에 들어가자 실제 수요는 당초 예상에 많이 못 미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주무관청은 해마다 막대한 비용을 사업자에게 보전해주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소위 MRG가 있는 민간투자사업은 ‘혈세 먹는 민자사업’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그리고 미시령 터널 역시 통행량이 당초 예상의 65% 대에 불과하여 ‘혈세 먹는 민자사업’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기자는 “적자를 면치 못하던”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또 희한하게 그 적자사업이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매각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경쟁 입찰이었다고 한다. 인수가격은 자본금만 살펴보면 코오롱 건설 등 당초 대주주들의 주식발행가인 주당 5천원의 2배인 1만 원 선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소위 ‘자금재조달(refinancing)’이라 불리는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바로 해당 사업이 MRG가 있는 사업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즉 국민연금을 포함한 입찰참여자는 주당 1만원을 주고 사업을 인수해도 MRG를 감안할 경우 현재와 같은 금융상황에서도 내부적인 목표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민연금이 해당 시설을 인수했다고 해서 소위 ‘민자시설이 공공시설이 되었다고’ 하는 표현은 무리가 있다. 어차피 해당 시설의 소유권은 원래부터 주무관청에 있고 인수된 것은 다만 시설의 운영권에 있을 뿐이다. 더불어 국민연금이 국민의 돈으로 운용되는 공공적 성격이 강한 주체이긴 하나 엄밀히 말해 금융시장에서는 이미 민간금융기관의 펀드나 기관투자자들과 같은 수익률을 좆는 플레이어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번 사례에서 보듯이 국민연금은 뛰어난 자금조달능력(!)을 바탕으로 현재 시장에서 가장 공격적인 플레이어다.

마지막 의문인 도의 예산절감에 대해 알아보자. 도는 주무관청으로서 이번에 인수된 운영권에 대한 인수 승인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도는 그 승인권과 함께 ‘자금재조달’ 시 이에 따른 수익을 공공과 민간이 50:50씩 나눈다는 민간투자사업 관련법령상의 제도에 따라 새로운 인수자와 재협상을 벌여 MRG수준을 당초 90%에서 80% 수준까지 낮춘 것이다. 이를 두고 기자는 “혈세로 적자를 보전해 주던 부담이 어느 정도 줄게” 되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 사례를 소개하는 이유는 위와 같은 의문을 풀어주기 위함도 있거니와 흥미로운 시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지역적 이슈, 사업의 특성, 연금의 자본시장 내에서의 독특한 지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사례를 통해, 공공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금융 플레이어가 민간투자사업 시설을 인수함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사적(私的) 이익을 위한 것인가’, 또는 ‘공익(公益)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은 국민의 돈을 걷어서 그들이 늙었을 때 적정수익을 합쳐 연금을 줘야 하는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기관이다. 국민연금은 그래서 마땅히 최대의 수익을 추구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연금이 터널을 인수해 MRG를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려고 했는데 도가 승인권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혈세”를 절감하였다. 이때 국민, 더 구체적으로 강원도민은 국민연금 편을 들어야 할까 강원도 편을 들어야 할까?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국민연금이 대변하는 이해관계자의 숫자가 강원도가 대변하는 이해관계자의 숫자보다 크다. 강원도민의 세금이 “혈세” 인만큼 국민연금 납부금도 “피의 납부금”일 수 있다. 액면으로만 보면 강원도는 세금절감이라는 이유로 보다 큰 공공의 이익을 침해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내 미래의 연금수익이 미시령 터널을 통과하는 통행자가 더 싼 값에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쓰였다는 소리다. MRG가 있기에 또한 통행료 인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답은 없다. 어떻게 보자면 국민연금은 강원도와의 협상결과에도 불구하고 목표 수익률 달성이 가능하다고 봤기에 도와 합의하였을 것이다. 시장에서의 이해관계자들이 서로의 몫을 챙긴 후 타협을 한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실물자산의 증권화 현상이 대세인 앞으로의 시장에서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다. 미국의 공무원 연금이 케냐의 하수시설을 인수할 것이고 두바이의 국부펀드가 우리나라의 선물시장에 투자를 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적어도 나는 ‘도대체 공공의 이익과 사적 이익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라고 끊임없이 의문을 품을 것 같다.

노동자의 돈이 노동자를 목조르는가

2년 전에 쓴 글인데 ‘어쩌면 이미 사회주의 세계일지도’라는 제 글에 달린 이승환님의 댓글에 대한 답변으로 다시 퍼 올립니다.

얼마 전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주식투자 문제가 불거지자 박근혜씨를 비롯한 한나라당 수뇌부들은 이러한 시도가 소위 ‘연기금 사회주의’적인 조치라며 반발하였던 적이 있다. 당시 연기금의 자금동원이 연기금 자체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증권시장의 부양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추측이 강하게 일었고 결과론적으로 연기금의 전면적인 주식투자는 유야무야 되었지만, 이는 연기금이 한 나라에서 차지하는 꽤나 독특한 지위를 잘 말해주는 에피소드였다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가 노동자의 노후를 보장해주는 이른바 퇴직금 성격의 각종 연기금은 독일을 통일한 비스마르크의 작품이다. 또한 기업연금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적었던 미국을 중심으로 1차 대전 이후 발전해왔다. 이러한 제도는 날로 성장해가는 노동계급의 강성기조를 누그러트리기 위한 기회주의적인 조치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지만 어쨌든 이후 자본주의가 발전해감에 따라 연기금은 각국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국가 또는 기업의 공적 부조의 기본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 연기금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미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증권시장에 연기금을 재원으로 하는 펀드가 등장하였고 1940년대에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제네럴 모터스(General Motors : GM)의 찰스 윌슨(Charles E. Wilson) 회장이 기업 연금 도입에 앞장섰던 인물이라고 한다. 한편 경영 전문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이에 대해 “연기금 펀드가 주식에 투자하면 몇 년 안에 미국 내 주요기업의 소유주가 노동자가 될 것”이라고 엄살을 떨었고, 한때 미국의 전설적인 노동 투사 유진 뎁스(Eugene V. Debs)를 위해 선거운동을 했었던 윌슨 회장은 “바로 그렇게 돼야한다”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세계 최대기업의 우두머리가 실은 사회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는 낭만적인 추측도 해볼 수 있는 이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이미 미국의 경우 193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최근에야 일어났던 논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것의 사회적 함의는 차치하고서라도 연기금의 규모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한 나라의 전체 부(富)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 우리의 경우도 국민연금은 자산규모가 110조 원대에 달하여 한 해 예산을 넘어서고 있을 정도다 – 그것이 그 나라의 증권시장 또는 기타 자금시장에 본격적으로 투입될 때는 무시 못 할 주요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196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의 증권시장에서는 탄광노조가 1,600만 달러의 주식에 투자하였고 연방정부의 예산이 1천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1961년 미국 전체 무보장 연기금 펀드가 174억 달러 어치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등 연기금 펀드는 시장에서 막강한 플레이어로 활약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미국이 사회주의 국가인 것은 아니다. 보다 교묘해진 기업의 지배구조는 실질적으로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예언이 엄살이었음을 말해줄 따름이다. 오히려 노동자의 돈이 펀드에 투임 됨에 따른 예기치 못한(?) 부작용의 개연성만 늘어났다.

그와 관련해서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주요한 시사점 하나는 각종 자금들이 갈수록 서로 얽히게 됨에 따른 연쇄금융공황의 가능성이다.

신자유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전 세계의 미국화이다. 그렇다면 증권시장 역시 미국의 예를 따라가는 것이 순서이다. 뮤추얼 펀드는 1924년 처음 월스트리트에 등장하였다. 우리는 최근 몇 년간 크게 유행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은 1930년대에 연기금을 펀드에 투입하였다.

우리 역시 일부나마 연기금의 주식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변액보험 등 이른바 간접투자 상품도 크게 유행하고 있다. 알다시피 얼마 안 있으면 우리의 퇴직금도 DB형이다 DC형이다 하면서 증권에 투자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날이 갈수록 많은 나라의 연기금이 증권투자, 그것도 고위험 고수익 위주의 헤지펀드에 돈이 맡겨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전의 일반인 주식투자와 다른 점은 소위 간접투자라는 명목 하에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투기자본의 탄알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NHK에서 제작하고 방영한 ‘투기금융자본의 실체’라는 다큐멘터리에는 한 씁쓸한 에피소드가 소개되고 있다. 일본의 문구점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연금은 연금의 운용수익률이 저조하자 이 돈을 헤지 펀드에게 위임하였다. 헤지 펀드는 이 돈을 일본 증권시장에 투자하여 모처럼 문구점 연금에게 좋은 수익률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헤지 펀드의 투자방법이 주가가 떨어질수록 돈을 버는 ‘공(空)매도’라는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연금의 한 임원은 ‘우리가 일본의 주가가 떨어진다고 좋아해야할 상황이라 기분이 묘하다’는 발언을 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원소유주로부터 멀어진 자산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에 작용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해관계는 좀 더 복잡해진다. 어느 개인 스스로야 증권시장이 활황이어서 경제도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그의 돈은 주식폭락에 베팅되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점점 더 많은 노동자의 연기금 또는 보험금이 이렇듯 더 높은 수익률을 쫒아 헤지 펀드를 통해 유가증권 시장에 투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것이 전통적이고 단순하게 우량주를 중심으로 지수를 선도하며 투입된다면 별무 상관없겠지만 문제는 만일 펀드의 자금운용책임자가 돈을 헤지펀드에 맡겼을 경우 고위험 고수익을 전략으로 삼는 헤지펀드는 그 돈을 공매도, 환율변동에 대한 베팅, 적대적 M&A 등 사회전체의 부의 증가나 건전한 기업의 자금조달과는 별반 상관없는, 오히려 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점점 더 많은 소위 정상적인(?) 펀드들마저 이러한 머니게임에 동참할 수밖에 없게끔 채권시장 등의 수익률도 악화되어가고 있다.

얼마 전 흥미로운 외신 기사가 있었는데 앞서 언급했던 GM에 관한 뉴스이다. 최근 GM은 퇴직연금의 지급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확정급여형(DB) 방식을 취한 이 회사의 보수적인 투자운용으로 말미암은 수익성 악화 탓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가 동일하게 우리의 국민연금에게도 고민거리인 셈이다. 전 세계의 실질적인 경제성장이 저성장 또는 정체인 상태에서 연금을 지급할 수혜대상을 늘어가는 상황이고, 그것은 곧 각국의 주요 연기금마저 헤지 펀드에 돈을 맡기고 싶을 유혹이 커질 수 있는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미국의 증권시장으로 돌아가 보자.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은 허다한 이유가 있겠으나 마진론을 기반으로 한 일반인들의 봇물 같은 주식투자도 한 몫 하였다. 이후 몇 번의 대공황과 같은 위기가 미국에 있었으며 그것이 비록 1929년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자본주의 금융시장의 무정부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이 금융자유화로 인해 전 세계가 동일한 원리에서 움직여갈 때에, 그리고 어느 한 나라에서 금융공황이 발생하였을 때에 과연 그 폭발력은 어떠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분명하게도 그 폭발력은 연기금 등 노동자들의 자산에 의해 더욱 증폭될 것이다. 물론 연기금은 그 폭발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것이다.

노동자들이 미래를 위해 쌓아놓고 있는 연금, 보험과 같은 미래의 자산이 오히려 현재의 다른 노동자들을 해고시키는 M&A의 자산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 한 나라의 환율을 혼란에 빠트리는 환율조작의 자산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행여 있을지 모를 금융공황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실제로 그것이 전체 투기자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겠지만 비중이 늘어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개인투자자의 증권게임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연기금이나 변액보험의 높은 수익률로 기뻐하고 있을 즈음 어느 누군가는 아파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세계화된 금융시장의 고통스러운 자화상이다.

SERI의 고도성장을 위한 제언, 합리성과 형평성 결여

삼성경제연구소의 최신 보고서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은 가능한가?’의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국내 기업들의 대변자로서 새로이 들어서는 정부에 목소리를 분명히 내겠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한국경제의 적정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6%로 예상되며 이러한 고성장 기조 구축을 위해 내수기반 확충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활성화와 소비증대라는 두 가지 목표달성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각각의 목표달성은 전자가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 후자가 ‘국민부담의 경감’과 ‘자산시장의 안정화’에 의해 촉진된다.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는 이 보고서 아니라도 이미 재계에서 오랜 기간 줄기차게 요구해오던 사안이다.

법인세 인하

보고서는 우선 법인세 인하가 투자활성화와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시뮬레이션 등을 통하여 역설하고 있다. 윤종훈 회계사는 OECD의 보고서에서 같은 법인세 인하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작음이 입증되었다고 반증하였다(SERI 보고서에 대한 반박은 아니지만).

여하튼 보수색채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새 정부의 인수위는 이미 이러한 요구사항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그들도 인정하듯이 법인세 인하가 투자설비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실제로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는 사실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이 법인세 절감분을 투자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는 점이다. 우선 국내 시장여건이 신규투자를 자극할 만큼 긍정적일 것, 주주들이 신규투자를 허용할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두 가지 전제조건 모두 녹록치 않은 상황임을 잘 알 수 있다. 특히 펀드자본주의, 주주자본주의의 득세는 신규투자 축소를 통한 주주이익 극대화 경향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보고서의 시뮬레이션이 이를 적절히 반영하여 투자효과를 분석하였는지 궁금하다.

규제완화

규제완화 요구사항은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 상호출자 규제, 출자총액 규제, 영리의료법인의 진입제한(주1), 공공서비스의 독점구조, 총량규제 등 수도권 입지규제, 부동산 가격 상을 억제하기 위한 각종 규제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 사안 역시 시뮬레이션을 통해 규제강도가 낮을수록 설비투자는 증가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상관관계는 굳이 어려운 식으로 분석하지 않아도 당연하고 당연한 이야기다. 진입규제가 적으면 투자는 증가한다. 금산분리를 철폐하면 산업자본이 금융업에 투자할 것이고 영리의료법인 진입규제를 철폐하면 영리의료법인이 들어설 것이다. 요는 그것이 국민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다. 규제가 많다는 것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별도의 문제다. 보고서는 이러한 ‘필요한’ 규제와 ‘나쁜’ 규제를 구분하지 않고 규제의 양(量)을 문제 삼아 물타기를 하고 있다.

국민부담 경감

보고서 8쪽에 보면

한국경제의 高고장 기조 구축을 위해서는 내수기반 확충이 급선무이며, 내수기반 확충은 대외부문의 불안정성에 대한 완충(buffering) 역할을 하고 ‘투자 → 고용 → 소득 → 소비’로 이어지는 善순환 고리를 복원

이라고 하고 있다. 이에 앞서 보고서가 투자활성화의 제언을 하였으면 그 투자활성화가 어떻게 고용, 소득, 소비로 흘러가는가 하는 ‘흐름’을 짚어주고 그에 대한 제언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보고서는 난데없이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주2), 그리고 사교육비 부담이 너무 커서 소비여력이 소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보고서는 투자활성화를 통한 안정적 고용창출, 소득증가, 이에 따른 소비증대라는 가처분소득의 증가방안 제시라는 편한 길을 포기하고 난데없이 국가의 세부담 증대(주3) 와 사교육비 부담이라는 한정된 가처분소득에서의 가계비용 증가라는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

이유는 뭐 간단해 보인다. 현재의 소비침체의 주범으로 기업이 아니라 조세 및 준조세 부담의 주범이자 공교육 파괴의 주범인 국가를 지목하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국가에 별로 면죄부를 발행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기업이 이렇게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빠져나가는 꼴도 보기 편한 것은 아니다.

보고서가 정말 한국경제를 걱정한다면 보고서는 현재의 ‘고용 없는 성장’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하는 해법을 제시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즉 보고서가 제시한 선순환 고리를 방해하고 있는 globalization(특히 금융자유화로 인한 금융시장 동조화, 펀드자본주의 득세, 주주자본주의의 강화 등), 비정규직 증가 등 고용의 질 저하, 자본집약적 산업 강세로 인한 고용효과 감소 등의 문제를 지적해주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이미 최근 한 막가파(?) 외국 지도자가 이러한 상관관계를 감지하고 좋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기업이윤의 1/3이 각각 주주, 종업원, 그리고 투자에 쓰이는 체제는 일관되고 논리적인 체제이다. 이윤분배가 구매력과 상관없다는 발언, (또는) 임금분배를 위해 내가 제안했던 것만큼이나 근본적인 혁명(적 조치 : 역자주)이 구매력과 상관이 없다는 발언은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다. 나는 소비력에 관한 이 문제를 (종업원)의 참여와 이윤분배에 대한 일종의 혁명으로 제안하고자 한다.[프랑스의 좌파 우파 대통령 사르코지]

일례로 고용의 안정이 어떻게 소비를 증가시키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최근 한 신문보도를 통해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지난해 일부 은행들이 비정규직 직원을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시키자, 해당 여직원들 사이에 ‘출산 붐’이 일고 있다.(원문보기)

정규직 전환으로 인한 각종 복지혜택의 증가와 더불어 정규직이라는 안정적 일자리가 출산이라는 가계차원에서는 엄청난 소비(?)를 촉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현재의 저출산 경향이 고용불안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자산시장의 안정화’는 더 난데없는 것이어서 논의를 생략하기로 한다.

씁쓸한 마음과 함께

삼성경제연구소가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부질없는 생각임은 분명하지만 최소한 학자적 양심(?)에 의해 투자와 소비의 상관관계, 그리고 기업의 책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짚어줬어야 하지 않은 생각을 하면서 보고서를 읽었다.

보고서를 보면 오로지 현재의 저성장(?)의 책임은 국가다. 국가는 과도한 세금을 기업과 가계에 지우고 규제를 통해 신규투자를 막고 있는, 그럼으로써 투자와 소비 모두를 동맥경화에 빠지게 한 불한당인 것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가 역사상 가장 작은 정부가 되겠다고 자처하였으니 보고서가 바라던 세상이 곧 올 것 같다. 그 거대한 실험이 종료되는 순간 보고서 작성자는 냉철히 자신이 주장하였던 바가 고도성장에, 그리고 보고서는 일언반구 없지만 그 고도성장이 어떻게 고르게 계층과 계급 간에 분배되었는지를 점검해주기 바란다.

(주1) 보고서는 이 규제 때문에 우리나라 의사수가 OECD 평균의 절반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2) 의료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보험료, 공무원연금 보험료 등

(주3) 보고서는 사회보장기여금을 준조세라고 치부함으로써 그것의 사회보장과 사회형평성 기능 등을 깡그리 부정하고 있다

인수위를 보면서 민영화의 본뜻을 곱씹어본다

적어도 인수위 내에서는 금산분리 완화 조치가 당연시되고 있는 분위기다. 언론은 금감위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자신들의 몇 개월 전의 강경한 금산분리 철폐 반대 입장에서 선회하여 금산분리 완화에 찬성하였다는 보도를 흘렸다.(주1) 경제신문은 금산분리 완화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철폐”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그것이 가지는 함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인수위 측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금산분리 철폐의 궁극적인 대상은 우리금융지주회사이고 이를 노리는 자는 삼성이라는 것이 통설인데 삼성에 대한 저잣거리의 눈길은 얼어붙을 듯이 싸늘하다.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허가하면 싱가폴의 테마섹과 같은 외국의 산업자본들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는 비판도 있다.

그래서 인수위는 현재까지는 지난번 이명박 당선자가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이야기했던 부분을 되풀이하고 있다. 즉 대기업의 참여에 대해서는 일정정도 불이익을 줄 것이고 그 대신 중소기업의 컨소시엄이나 연기금의 참여를 고려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제개혁연대는 성명을 통해 이러한 주장이 근거가 박약하다고 비판하고 있다(관련기사).

우리금융지주회사와 같은 큰 물고기의 경우 중소기업 컨소시엄으로도 펀딩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고 국민연금 등이 참여할 것 같으면 적극적인 주주행사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 정부는 ‘중소기업 컨소시엄’론으로 일부 지방은행을 떡밥으로 던져주고 궁극에 우리금융지주회사, 더 나아가 산업은행 등을 거대 산업자본의 사냥감으로 던져줄 개연성도 있다는 점에서 경제개혁연대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다소 애매한 점이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의 은행소유 론인데 현재 이들 연기금을 산업자본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의아한 점은 왜 연기금, 대표적으로 국민연금은 때만 되면 다 자기들 주머니인양 여기 투자한다 저기 투자한다 하는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형식상으로는 국민연금이 자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하는 대외선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으로부터 이 돈이 자유롭지 못하고 정치권이 정책집행수단으로 이 돈을 탐내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박근혜 씨로부터 ‘연기금사회주의’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주식투자비중과 BTL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높이려 했다. 대외적인 변명거리는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 제고였지만 속셈은 주식시장과 경기부양이었다.(주2)

새 정부가 과연 금산분리를 완화한 후 정말 국민연금이 은행을 소유하게끔 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어설픈 점쟁이 노릇으로 굳이 예측해보자면 중소기업 활용론과 국민연금 활용론을 들먹이다가 앞서 경제개혁연대나 박근혜 씨가 주장하고 있는 논리에 물타기를 하며 거대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정당화해버릴 수도 있다.

여하간 새 정부의 입장은 현재로서는 참여정부와는 약간 다른 입장에서 국민연금을 바라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의료보험 등과 싸잡아 공적부조에 대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벌써 인수위는 참여정부가 작년에 추진키로 한 실손형 민영의보 폐지정책을 무효화시킬 것을 공언하였다(관련기사). 해당 조치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 보험업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각종 공적연금도 마찬가지 노선을 걸을 가능성도 있다. 즉 공적연금의 폐지와 민간연금의 전면 확대가 그것이다.(주3) 때마침 기금운용 등 공적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도 극에 달해 있다. 게다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공적연금과 의료보험이 현재와 같은 추세로는 멀지 않은 시기에 재원이 고갈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관련기사). 그렇다면 시장친화적인 새 정부의 선택은? “골치 아프게 우리가 갖고 있지 말고 민영화시켜버리지!”

금산분리도 넓게 보면 민영화고 의료보험, 우정사업도 민영화하겠다고 한다.(주4) 이러한 민영화 쓰나미(아직 이 표현 쓰기는 좀 그런가?)의 논리는 제법 설득력이 있다. 관료주의, 정부의 비효율, 재원고갈 등 각종문제점을 좌파적인 反시장 정책의 결과로 비판하고 시장기능 활성화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논리일 것이다. 이는 상당부분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상당부분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영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엄밀히 지금 민영화에서 ‘민(民)’이라는, 즉 백성이라는 주체가 개입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사실 백성은 소위 ‘공공(公共)’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는 공공에 대한 영단어 public이 바로 라틴어(語)의 푸블리쿠스(publicus:인민)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공공이라 함은 그것이 정부의 형태를 취함에 있어 인민이 권력을 신탁한 것이라 보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이렇게 보면 ‘공’과 ‘민’은 사실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정시기를 거치며 공공 또는 국가소유의 재산을 기업에 불하하는 것이 ‘민영화’라는 인식과 거의 동일시되었는데 이는 실질적인 ‘민’이라 할 수 있는 대의체가 너무 미약한 탓이다. 결국 일부 시민사회가 일부 기능을 수행하기는 하였으나 절대다수의 정부기능의 민영화는 곧 기업으로의 민영화, 엄밀하게는 사유화(私有化)를 의미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재미있는(?) 말장난인데 민영화의 어원인 privatization 은 사실 앞서 표현인 사유화로 함이 맞다. 그러니까 사적인 주체가 소유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영화하면 민간이 운영을 한다는 운영의 개념으로 대체된다. 표현이 급격하게(!) 순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결국 지금 사회여론은 어떤 이유에서건 민영화(사유화 whatever)에 대해 그리 적대적이지 않다. 문제는 그 공적기능을 떠안을 주체가 백성 중에서는 가장 강한 기업이라는 백성밖에 없다는 점이다. 은행이든 연금이든 의료보험이든 우리나라와 같은 가당찮은 시민사회서 뿐만 아니라 제법 헛기침 좀 한다는 서구사회에서조차 기업에 비해서는 절대적인 열세다.

그래서 제시되는 것이 연기금의 사회적 책임투자(주5), 자본과의 사회협약,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등의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을 정치적 세력이 유의미하게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 현재 시점에서의 우리나라의 정치적 지형도는 암담하다. 보수 세력이 국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그나마 진보정당이라고 자처하는 세력이 지리멸렬이다. 인민은 스스로가 공적연금, 은행, 기타 여하한의 생산수단의 운영주체임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이들에게 권력을 신탁하여 버렸다.

 

(주1) 다른 보도에서 금감원은 이를 부인하였다.

(주2) 요즘은 사모펀드와 해외자원개발펀드에까지 투자하고 있다. 투자다변화는 좋은데 이런 위험도 높은 사업에 투자할 능력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주3) 이렇게 공적연금을 아예 폐지한 대표적인 사례로 칠레가 있고 서구언론에서 연금개혁의 성공사례로 칭송받고 있다.

(주4) 기타 통신 등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수위조절을 하겠다고 한다.

(주5) 연기금 자체가 민영화의 공격대상이라는 점에서 약간 도돌이표 식인데 결국 연기금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보면 실질적인 ‘민영화(own by public)’이라는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현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