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정책 수행의 제약조건

지난번 [공공의 이익 vs 사적 이익]이라는 글에서 아래와 같이 적은 바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은 국민의 돈을 걷어서 그들이 늙었을 때 적정수익을 합쳐 연금을 줘야 하는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기관이다. 국민연금은 그래서 마땅히 최대의 수익을 추구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연금이 터널을 인수해 MRG를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려고 했는데 도가 승인권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혈세”를 절감하였다. 이때 국민, 더 구체적으로 강원도민은 국민연금 편을 들어야 할까 강원도 편을 들어야 할까?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국민연금이 대변하는 이해관계자의 숫자가 강원도가 대변하는 이해관계자의 숫자보다 크다. 강원도민의 세금이 “혈세”1인만큼 국민연금 납부금도 “피의 납부금”일 수 있다. 액면으로만 보면 강원도는 세금절감이라는 이유로 보다 큰 공공의 이익을 침해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내 미래의 연금수익이 미시령 터널을 통과하는 통행자가 더 싼 값에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쓰였다는 소리다. MRG가 있기에 또한 통행료 인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독자들이 헷갈리게끔 일부러 약간 트릭을 썼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위 사례를 단순히 보면 언뜻 강원도가 국민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글에서 밝히고 있다시피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이해관계와 강원도의 이해관계가 꼭 상충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은 그것이 금전적이냐 사회효용이냐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즉 국민연금은 연금가입자에게 화폐가치로 환원될 수 있는 투자이익의 최대화가 사업추진의 목적이라면 강원도는 어느 정도는 미시령 터널 이용이라는 – 화폐가치로의 환원이 쉽지 않은 – 사회적 효용의 극대화가 사업추진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그 사회적 효용이 정당하다면 우리는 갈등하는 이해관계자들의 수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일정 정도의 타협을 감수할 수도 있다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어느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에서 수적 다수의 의견이 대체적으로 옳은 의견이고 설사 그렇지 않다 치더라도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특정 사안이 결정되면 그에 따라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결정하여야 할 것이 다수일지라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는 상대적 소수의 의견이 여전히 관철되어야 할 것들이 다수 존재함을 유의해야 한다. 즉 수적으로는 다수이나 권력관계에서 소수인 자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뿐만 아니라(주1) 수적으로도 소수인 이의 이해관계가 상대적 다수의 이해관계를 침해한다 할지라도 보호해야할 가치가 있다면 이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적 다수가 금전적 이해에 매몰되어 상황을 그르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지난 총선 여러 선거구에서 불었던 이른바 뉴타운 열풍으로 인한 다수당의 승리도 이러한 경향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국제관계에서 보면 거대한 인구의 중국이나 미국이 경제적이나 정치적인 이해관계때문에 적은 인구의 나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나는 “다수에 의한 이기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각설하고 질적 양적 소수를 보호하여야 함이 타당한 가장 전형적인 사례로 장애인에 대한 교통정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은 분명히 권력관계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수적으로도 소수다. 그렇기에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대중교통을 장애인까지 배려한 방식으로 조직하려면 사업타당성 측면에서는 분명히 비효율적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배려하기 위한 비용은 지출되어야 하고 오늘날에도 많은 장애인들이 이를 관철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점점 사회적 인식도 바뀌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러한 질적/양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배려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개인적으로는 그 배려를 통한 효용의 가치측정의 어려움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연금이 미시령 터널 인수를 통해 얻어지는 이익은 수익률이라는 숫자로 명확하게 표시되고 주주에 대한 배당금으로 실현된다. 하지만 미시령 터널 이용을 통해 사람들이 얼마만큼의 효용을 얻었는지는 참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심지어 일부 사회적 효용은 그 정당성마저 의심받을 때도 있다.(주2) 이것이 공공정책 시행의 딜레마다.

사회적 효용을 계량화시키는 방식에 대해 사회 대다수가 동의할 시점이 언제쯤이나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주1) 이에 관련하여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여기 등장하고 있는 국민연금이고 또한 국민건강보험이다. 이들 공적기금은 각각 가진 사람이 더 내고 못 가진 사람이 더 혜택을 받는 평등주의적 성격이 강한 공적부조다.

(주2) 이를테면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피해 받는 어느 도롱뇽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이 문제는 혹자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환경과 생태보호의 차원으로 다가오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그깟 도롱뇽 몇 마리 때문에 뭐하는 짓이냐는 비난을 받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특히 도시정책에서는 때로 사회적 효용이라는 것이 이해관계자에 따라 제각각으로 나눠지기도 한다

2 thoughts on “공공정책 수행의 제약조건

  1. xarm

    개인의 효용을 효용함수로 표현하는 데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고 쉽지 않은데,
    사회의 효용을 계량화 한다는 건 더더욱 어려울 거 같네요.
    개별 이해 집단의 목표나 가치관에 따라 가중치는 다를테고,
    소수자나 장애인의 경우처럼 과거에 비해 점점 가중치가 높아지는 문제도 있으니
    ‘이거다’하고 한 번에 결정지어질 수도 없을 거 같고..
    사회적 효용의 계량화.. 쉽지 않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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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거기다가 주류경제학에서는 소위 ‘효용체감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으니 더 헷갈립니다. 뭐 딱 사회적 효용에서의 그 효용에 매치되는 개념은 아니긴 하지만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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