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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파생상품, 유로스타트, 그리고 골드만삭스

그리스의 경우에 미국의 은행가들은 가상의 환율을 통한 특수한 종류의 스왑을 고안해냈다. 이를 통해 그리스는 100억 달로 또는 엔에 해당하는 실질적인 유로의 시장가치를 훨씬 초과하는 금액을 수취할 수 있었다. [중략] 일종의 스왑을 가장한 이러한 신용은 그리스의 부채 통계에 나타나지 않았다. [중략] 때가 되면 그리스는 그들의 스왑 계약들을 상환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재정적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채권의 만기는 10년에서 15년까지이다. 골드만삭스는 이 계약들에 대해 천문학적인 커미션을 받았고 2005년 한 그리스 은행에 이 스왑 들을 팔았다.[How Goldman Sachs Helped Greece to Mask its True Debt]

일반인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이러한 파생상품 거래가 오늘날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그리스의 경제위기의 한 국면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교묘한 스왑 조건이 담긴 이 거래 등을 통해 그리스는 부채를 기술적으로 감출 수 있었고, 이에 따라 그리스는 엄격한 재정요건을 요구하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조건을 충족시켜 유로존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후 그리스의 신용도는 비정상적으로 상승하였고 종국에는 갚지 못할 엄청난 돈을 서구 은행으로부터 차입할 수 있었다.

Loudiadis의 지시를 통해 골드만은 그리스가 발행한 채권이 실제의 금액보다 적어보이도록 역사적인 환율로 책정된 달러나 옌과 스왑을 행하였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 스왑들을 통해 그리스는 국민 계정에서 약 2%의 부채를 사라지게 했다. [중략] Christoforos Sardelis는 블룸버그 뉴스 에이전시에게 Loudiadis가 소위 “맛보기 이자율(teaser rate)”이라 알려진 스왑 또는 3년의 거치기간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리스의 관리는 3개월 후에 이 거래가 그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Greek debt crisis: Goldman Sachs could be sued for helping hide debts when it joined euro]

이 기사를 통해 거래의 대강을 짐작할 수 있다. 즉, 그리스는 국채를 역사적으로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달러 등과 스왑 또는 3년 동안 비용 없이 발행한다. 그렇게 되면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로 계산되는 재정상황에서 부채는 과소평가된다. 그러면 거래상대방은 이 기간에 발생한 손실을 언제 보충할까? 아마 남은 기간에 할증된 거래조건으로 되받게 될 것이다. 필시 더 좋은 환율에 기간 동안 발생한 이자까지 포함해서 받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리스는 유로존에 가입하게 되었고, 채권자는 좋은 조건에 채권을 인수했고, 골드만삭스는 거래를 성사시켜 주면서 막대한 수수료를 받았다. 모두 다 행복한 시기였다.

룩셈부르크에 위치한 유럽 통계청 유로스타트(Eurostat)는 오프마켓스왑(off-market swaps)을 통해 부채의 표면상의 크기를 줄이려 했던 그리스 재정부의 시도를 알지 못했다고 다시 한 번 밝혔다. 그러나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리스의 골드만과의 거래는 유로스타트의 2002 회계 기준의 청사진과 유사하다. [중략] 2002년 전에는 이러한 거래는 유럽의 회계원칙에서 회색지대에 속했다. [중략] 2002년 5월 ESA95 회계원칙의 발표는 피가의 우려에 대한 명백한 답변이었는데, 그러한 거래를 허용하는 한편 국가채무의 표면상으로 어떻게 줄여서 산정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용례를 제공하였다.[Eurostat rules described ‘Greek-type’ swap]

한편 이러한 거래의 합당성 여부를 감독해야 할 유로존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인용기사에 의하면 유로스타트는 2002년 회계원칙 발표를 통해 회색지대에 속했던 해당 거래의 모호함을 제거하는데 기여했다. 한편 앞서 인용한 인디펜던트의 보도에 따르면 유로스타트는 이러한 거래를 2008년에야 금지시킨다. 하지만 유로스타트에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는 이때에도 해당 거래 사실을 유로스타트에 보고하지 않았다. 결국 적어도 2008년까지는 부채를 축소산정하기 위한 파생상품 거래는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거나 정당하였고 2008년 이후 그리스의 보고의무 해태가 문제시될 수 있다는 잠정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2009년 Ethos는 포르투갈의 국유 철도/지하철 기업인 Metro do Porto와 협업하기 위한 계약을 따낸다. 계약들과 관련한 의회 조사국에서 발간한 문서에 따르면 Jabbour 씨의 임무는 1억2천6백만 유로에 대한 이자율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목적이었지만 그 대신 다른 포인트에서 당초의 대출 자체보다도 훨씬 더 큰 손해를 초래한, 골드만삭스 및 노무라와 맺은 한 쌍의 상쇄 파생상품 계약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당시 골드만과 노무라는 Metro do Porto에게 계약의 동일한 요소를 취소하려면 2천6백만 유로가 소요된다고 말했다. Jobbour 씨는 이들을 재구조화하여 골드만과 노무라에 그 돈을 지불하는 대신 거래의 상쇄 부문을 최소하는 대가로 Metro do Porto가 거의 2천만 유로를 벌어들이게 하는데 도움을 줬다. [Banker in Middle of Fight Between Goldman Sachs and Libya]

Jaber George Jabbour는 Ethos 캐피털 자문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2008년에 골드만삭스에서 잘렸다.(또는 자발적으로 사퇴했던지) 이후 그는 “은행들이 스왑 같은 복잡하고 구조화된 거래에서 공공기관을 우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공공기관에 도움을 주는 자문사를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인용기사처럼 포르투갈의 국유기업이 투자은행에 돈을 무는 대신 오히려 돈을 벌며 계약을 해소하게끔 해주었다. 그런데 인디펜던트의 기사에 따르면 바로 이 사람이 그리스의 구원투수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모두가 행복했지만 파국을 몰고 왔던 이 거래에서 과연 골드만은 어떤 비용을 치를지 자못 궁금하다.


골드만삭스가 유럽 금융계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출처)

유럽의 “약한 고리”가 된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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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is Tsipras Syriza” by FrangiscoDer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진작부터 예상되어온 시리자(ΣΥΡΙΖΑ)의 승리로 말미암아 유럽 경제와 정치 상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가십을 좋아하는 이는 그리스에서 마흔 살의 역대 최연소 총리가 탄생했다는 것을 입에 올렸고, 전 세계 좌파들은 유럽에서 “진성” 좌파 정당이 집권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투자자들은 강경주의자가 – 요즘에는 “대중영합주의자”가 더 자주 쓰이는 것 같다 – 그리스 정치를 장악했다는 사실이 그들의 투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주판알을 굴리고 있다. 제각각 반응이 틀린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예상되었던 이번 승리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 쉽게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유럽이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단일경제권을 형성함으로써 이전 세기의 정치적 위기를 경감시키고 미국에 대항하는 강력한 공동체를 구성할 것이라는 이상주의자들의 꿈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파탄이 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구성원들의 아슬아슬한 합의 하에 여태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단일 경제권이라는 시도가 정치적 위기를 오히려 증가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주되게 유로존이 단일통화를 쓰면서도 미국과 같은 재정동맹으로 엮인 단일 중앙권력의 연방이 아니라는, 즉 정치주권과 경제주권이 불일치하는 근본적 한계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점에서 애초에 설계부실이다.

그래서 가장 실현가능한 대답은 임시변통의 조치다. 그러나 그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치프라스가 세금 유예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그리스 유권자의 신뢰를 몽땅 잃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의 위치에 대해서 약간의 개선만 얻어낸다 할지라도, 이는 다른 나라들의 반반을 불러올 것이다. [중략] 설상가상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긴축에 대한 반대뿐 아니라 이들 국가의 유로 멤버십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좌우 진영의 대중영합주의자들이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하한의 임시조치도 기술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유럽중앙은행은 치프라스 정부가 채권자들과의 합의된 프로그램 안에 있지 않는다면 그리스 은행들에게 긴급 유동성을 부여한달지 채권을 사준달지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여하한의 곤경은 그리 은행들의 뱅크런을 야기할 수 있다. 만기를 연장함으로써 이러한 몇몇 상황을 피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치프라스에겐 너무 인색한 것이고 메르켈에게 있어서는 너무 후한 것이다.[Syriza’s win could lead to Grexit, but it should lead to a better future for the euro]

바로 이 사례가 미연방과 유로존이 가지는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에서는 플로리다 주가 가혹한 긴축정책에 대항하여 주지사를 좌파로 뽑아 채권자들의 가혹한 상환 프로그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저항하고 이에 대해 부유한 주인 뉴욕 주에서 이행을 강요하는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개별 정치 주권을 가지고 있는 유로존에서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더불어 각 나라의 인종도 틀리고 남유럽 유권자들이 통화 통합으로 인한 무역불균형 등으로 부자 나라에게 뺏긴 것이 많다고 여기는 상황은 유로존의 공동체 정신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스페인에서 시리자와 비슷한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는 포데모스(Podemos)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 상황은 유럽연방주의자들이 한층 더 공포심을 가질만한 상황이다. 그야말로 유럽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의 ‘약한 고리 이론’ 내지는 ‘공산주의 도미노 이론’이 전개되는 상황인 것이다. 스페인의 유력 정치세력들은 “스페인은 그리스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지만 각기 다른 원인의 해법이 결국 대규모 채무와 긴축재정 프로그램으로 동일했다는 점에서는 스페인 역시 그리스고 그에 대한 정치적 저항 프로그램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아주 개연성 없는 시나리오는 아닌 것이다.

그리스 국민은 그들이 지고 있는 빚이 “부도덕한 빚”이었다며 이에 대한 탕감은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인용한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독일이 나머지 유럽 국가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프로그램의 이행을 강요했다면서 메르켈의 후퇴를 점치고 있다. 이러한 정황에 비추어 볼 때 그리스의 시리자 집권은 그동안 금칙어로 설정되어 있던 채무 프로그램 조정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 같다. 금융위기 이전의 유로존 경기부양 프로그램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면 지금의 부채상환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약한 고리를 강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은 계속 춤을 출 투자자

‘경제위기국’ 낙인이 찍혔던 키프로스, 그리스, 에콰도르 등이 잇달아 국채 발행에 성공하며 국제금융시장으로 속속 복귀하고 있다. [중략]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면서 해당 국가의 국채 수익률이 저조하자 투자자들이 과거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국가들의 국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는 것이다.[‘경제 위기국’ 국제 금융시장 복귀 러시, 서울경제, 2014년 7월 2일]

서구의 투자자들이 자국의 낮은 금리로 조달한 금액을 이머징마켓이나 경제위기국에 투자하여 차액을 챙기는 이른바 “캐리트레이드(currency carry trade)”가 계속 되고 있다. 최근 EU의 문제아로 낙인찍힌 그리스가 5년물 국채를 5%에 조달하는가 하면 2008년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에콰도르조차 10년물 국채를 7.95%에 조달했다고 한다. 이런 “비이성적인” 투자는 선진국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과 막대한 유동성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저금리가 마냥 계속될 수는 없다”고 말하지만 투자자는 음악이 흐를 동안은 춤을 춰야 하는 모양이다.

채권 투자자는 보통 채무자의 신용 리스크, 환(換) 리스크, 인플레이션 리스크 등을 부담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큰 손으로 행세하고 있을 서구 투자자는 이 중에서 환 리스크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많은 국채들이 기축통화 표시채권으로 발행되기 때문이다. 신용 리스크가 가장 큰 리스크 인데 자국정부가 국제정치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신용 리스크 또한 상대적으로 경감될 수 있다. 1990년대 멕시코의 페소 위기 당시 서구 채권자에 대한 채무불이행이 우려되자 빌 클린턴이 구제 금융을 통해 불이행을 막은 것이 한 예이다.

Bond issued by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in 1623

최근 아르헨티나를 디폴트로 몰아넣을 수 있는 헤지펀드와의 소송도 좋은 예다. 200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는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채권자들에게 부채 조정을 요구했고 신용 리스크에 노출된 채권자 상당수는 불가피한 헤어컷에 동의했다. 하지만 이에 불복한 미국의 한 헤지펀드는 완전한 변제를 요구하며 법정 투쟁을 벌였다. 미국에서 발행된 채권이니 만큼 미국 법원에서 벌어진 재판에서 재판부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채무를 모두 갚으라고 판결했다. 어쨌든 서구 투자자는 다른 지역의 투자자라면 누리지 못할 보호막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환(換)과 신용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고 금리 아비트리지 까지 향유할 수 있다면 서구 투자자가 경제위기국에 대한 투자를 망설일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중앙은행은 기축통화를 저리에 융자해주고, 채무국의 채무불이행이 우려되면 정부나 법정은 채무이행을 강제할 것이고 – 물론 그마저도 안 통할 때도 있지만 – , 투자자는 차익을 향유할 것이다. 어쩌면 현재 상황에서 투자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투자일지도 모른다. 바닥을 기고 있는 美국채를 사는 것이 멍청한 일 아니겠는가? 언제까지 음악이 흐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알자지라의 취재 다큐멘터리 “그리스의 저항”

그리스 – 유럽의 문명과 민주주의라는 아이디어가 처음 시작된 곳. 그러나 오늘 날 이 나라는 위기에 처해 있다. 통일된 유럽이라는 꿈을 파괴할 수 있는 그런 위기. 제2차 세계대전의 악몽으로부터 태어난, 하나의 통화를 통해 서로 다른 국가들을 함께 묶는다는 이 꿈은 비극이 되었다. 유로존에 가입한 이후 10년 후, 그리스의 경제는 붕괴했다. 생활수준은 곤두박질쳤고, 수십만의 사람들이 해고되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새로운 미래를 찾아 나라를 떠나고 있다. 많은 그리스인들은 EU, 그리고 특히 독일을 그들의 위기에 대한 책임자로 비난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군사적 패배 이후 거의 70년이 지난 오늘날,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나라의 정치적 리더십은 그리스의 미래를 그 손안에 쥐고 있을 정도다. 알자지라 기자 Barnaby Phillips가 왜 이 두 나라가 역사와 문화에 있어 서로 엮이고 이제 갈등에 처해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그리스를 여행했다. 왜 과거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했던 유럽인들의 비전은, 그렇게 되는 대신에 다시 그들을 상처의 표면으로 되돌려 놓아지게 되었는가? 그리고 누가 비난받아야 하는가? – 그리스인들? EU 또는 오래된 적인 독일?

Al Jazeera Correspondent – The Greek Resistance

유럽 상황 단상

올해는 유럽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이 금년에 경쟁적으로 정권이 뒤바뀌는 시기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 그리스, 한국 등등. 정권이 바뀐다는 것은 어쨌든 경제기조도 어느 정도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두 나라가 현재 프랑스와 그리스다. 두 곳 다 “좌파”로 분류되는 정치집단이 득세했다.

이 시점에서 왜 유럽이 유로라는 화폐를 만들었는지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유럽이 ‘하나의 유럽’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사실 정치적인 이슈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럽지도자들은 ‘하나의 유럽’을 꿈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치적 연합으로 가는 과도기가 경제연합이었다.

1950년대 중반에 접어들 무렵 서유럽 지도자들은 경제연합이 곧 정치연합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샤를르 드골 대통령의 고문이자 경제학자인 자크 뤼에프는 1950년에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유럽은 화폐를 통해 연합하던가 아니면 아예 연합하지 않던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유로화의 종말,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 지음, 정향 옮김, 골든북미디어, 2012, p46]

이러한 정치적 동기는 역사적으로 볼 때 지속적으로 충돌을 빚어왔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영국 정도의 이슈였지만 어쨌든 그들의 동맹세력들, 그리고 유럽인이라 불리기 원하던 주변국들이 가세하면서 유로통화권이 탄생했다. 문제는 이 통화권이 재정동맹이 없는 희한한 하나의 통화권이란 점이다.

그런 모순을 가지고 출발한 통화권이었음에도 시장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예를 들면 그리스의 신뢰도를 독일의 분데스방크 급의 신뢰도로 간주한 것이다. 1999년 그리스의 10년 만기 국채의 실질금리는 5%였지만 2005년에는 0%로 떨어졌다.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에도 비슷한 기적이 일어났다.


출처
 

이런 낮은 금리의 혜택으로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는 활성화되었다. 문제는 이것이 생산적인 분야로 흘러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고유의 제조업 기반이 미약했다는 점, 유로화의 사용으로 인해 경쟁력을 얻는 독일제품이 밀려들어왔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결과적으로는 부동산의 앙등이 경제를 이끌었다.

 

이 거품은 아시다시피 미국의 신용위기와 맞물린 시점부터 터졌다. 부동산의 속락, 이를 기초자산으로 해오던 금융권의 붕괴, 그리스 등 주변국의 변칙적인 재정운용, 채무불이행의 위험, 원칙을 벗어난 금융지원, 긴축재정의 강요, 이로 인한 국가 간 갈등 등 수면 아래 있던 수많은 상처가 속속 드러났다.

그 와중에 오랜 기간 세 가문의 지배를 통한 과두정치가 온존했던 그리스에서 긴축재정을 거부하는 좌파연합 시리자가 실세로 등장했다.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일이지만 막상 이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게 되자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있다. 애써 유럽에서의 그리스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지만 상황은 단순하지 않아 보인다.

그리스 정치권의 강경한 입장으로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이었던 긴축재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이는 거의 그리스의 유로 탈퇴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어렵게 지켜오던 통화권의 분열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며, 스페인 등 여타국가의 신용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문제는 작지 않다.

그렇다면 독일이나 프랑스는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탈퇴시키고 후련하게 손을 털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 이미 유로존의 출범과 함께 그들의 경제는 어느 정도 유기적으로 얽혀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유럽의 은행들은 그동안 주변국들에 열심히 돈을 빌려줘 이들의 신용거품을 조성하는데 일조하였다.

유럽의 은행들은 위기를 겪고 있는 유로존 국가들을 상대로 막대한 양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시티그룹의 이코노미스트인 윌렘 뷰이터와 에브라힘 라바리는 “현재 프랑스와 독일 정부의 선택지는 그리스를 살리느냐 자국의 은행을 살리느냐이다.”라고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유로화의 종말,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 지음, 정향 옮김, 골든북미디어, 2012, p242]

그리스의 반항에 대해 강경자세를 계속 취할 경우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그리스의 채무불이행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은행들이 부실해지게 된다. 이미 형식적인 스트레스테스트로도 그 부실이 위험수준이었던 은행들이 새로이 자산이 부실해진다면 그것은 새로운 위기의 시작을 의미하기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유로화의 종말’의 저자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는 독일이 유로존을 떠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책의 서문을 쓴 로버트 앨리버는 이는 독일의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하고 있다. 유로존 탈퇴는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의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의 탈퇴를 더 현실적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식이 되었든 급진세력에게 표를 던진 그리스의 국민들에게 물러날 곳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직장을 찾아 독일로 떠나고 있고, 독일에 대한 증오심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고, 자살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이나 유로존에게 더 뺏길 것도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게 일정 정도 사실이고.

참고할만한 글들

Greece Can No Longer Delay Euro Zone Exit
What Happens If Greece Leaves?
Greece’s predicament: Lessons from Argentina
장하준 교수한테 듣는 유럽재정위기 세계경제위기
그리스, 벼랑 끝에 서다
그리스, 몰락과 회생 사이
Debtocracy

유로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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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 coins and banknotes” by Avij (talk · contribs) – 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요즘 ‘유로화의 종말’이란 책을 읽고 있다. 현재는 저자인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가 유로화가 탄생한 역사적 배경을 경제/정치적으로 두루 소개하면서 유로가 가지는 한계가 무엇인지를 설명해나가는 부분을 읽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경제이론 중 하나는 로버트 먼델이란 경제학자가 초석을 다진 ‘최적 통화 지역(optimum currency area)’라는 이론이다. 최적 통화 지역이란 “ 단일통화가 통용되기에 가장 이상적인 크기의 지역”을 의미하며, 해당 이론은 특정 지역이 단일통화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조성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연구라 할 수 있다.

그리 복잡한 이론은 아니며, 이 이론에 따르면 최적통화지역을 구성하기에 유리한 조건은 △각국의 경제구조가 유사해 경제적 충격이 대칭적일 것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 이동이 자유로울 것 △역내 국가들 간 경제연관성이 높을 것 △역내 각국의 산업구조가 다변화돼 있을 것 등을 들 수 있다. 저자는 유럽이 바로 이러한 조건을 결여 – 내지는 부족 – 하고 있기 때문에, 유로라는 단일한 통화동맹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 진단하고 있다. 일례로 저자가 들고 있는 성공한 통화연맹은 미국의 통화연맹이다. 여러 조건 중 노동의 이동에 관한 구절을 인용해보자.

그뿐만 아니라 미국은 화폐통합을 이루기 전부터 자본과 노동의 높은 유동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의 노동시장과 임금은 여전히 유럽통화연맹 국가들보다도 덜 엄격하다. 유로존 내에서는 0.1% 이하의 인구가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영구적으로 이동하지만 미국의 주들 간에 인구 이동 비율이 2.5%에 달한다. 노동력의 유동성은 미국이 유럽의 3배나 높다.[유로화의 종말,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 지음, 정향 옮김, 골든북미디어, 2012년, pp 111~112]

이런 묘사는 경제학이나 고용 등에 대해 심오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즉각 와 닿는 묘사다. 한때 총칼을 겨누고 싸울 만큼 지역적인 분열도 있었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일찌감치 연방정부가 있었고 단일한 언어를 쓰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도 유럽보다는 더 일체감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지적하였듯이 미국에서는 정치연맹이 통화연맹보다 수십 년 앞서서 이루어졌다. 반면 유럽의 통화연맹은 훗날 정치연맹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이렇기 때문에 노동의 이동은 다른 많은 요소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가 유럽에서보다 훨씬 자유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라스케바와 같은 수많은 그리스인들이 그들의 고향에서의 나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독일로 향하고 있다. 약 25,000 명의 그리스 이민자들이 작년 독일 당국에 등록을 했는데, 이는 2010년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함부르크 이민 전문가 바실스 치아노스는 이런 수치가 독일당국에 등록하지 않은 이민자들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므로, 작년에 독일에서의 신규 그리스 이민자는 6만 명에 달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대부분이 학위가 있는 경제적 난민인데, 변호사, 엔지니어, 그리고 건축가들이다. [중략] 그러나 아파트를 구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우리는 그리스인에게 세를 놓지 않아요.” 그녀가 종종 들은 말이다. 파라스케바는 누구라도 어떤 회원국에서든 일할 권리가 있다는 단일시장으로서의 유럽연합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이었는지에 대해 재빨리 깨달았다.[Young Greeks Struggle to Gain Foothold in Berlin]

위기 전에는 이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던 자유로운 노동이동이 위기로 말미암아 더 증폭되고 있는 상황을 묘사한 슈피겔의 기사다. 유럽연합은 회원국 내의 노동이동권을 보장하고 있으니 이동이 수월할 것이라 기대는 하지 않았겠지만 파라스케바가 처한 상황은 그러한 명시적 선언이 없는 국가 간에서 국력의 차이에 따른 차별받는 노동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파라스케바와 독일인이 같은 화폐를 쓴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동질감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에 비하면 미약할 뿐인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화폐는 경제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개념이다.

“헤지펀드의 권리는 人權이다”

헤지펀드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강경한 전술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또 하나의 전략을 찾아냈다. : 그리스가 채무를 이행하도록 인권법정에 제소하기. [중략] 이 전술은 그리스가 모든 민간 채권자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게끔 할 – 반면 약 500억 유로의 그리스 채권을 보유하여 가장 많은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은 이에서 제외하는 – 법률을 통과시킬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짐에 따라 변호사들과 헤지펀드들이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부상하였다. 법률전문가들은 그리스가 채권의 조건을 변경하였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그들이 받아야 할 돈보다 적은 금액을 받게 되고 이는 재산권 침해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케이스가 성립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 그리고 유럽에서는 재산권은 인권이다.[Hedge Funds May Sue Greece if It Tries to Force Losses]

‘유럽경제의 화약고’ 그리스에 관해서 연일 새 소식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 소식은 그 중에서도 이색적인 소식이다. 과문하여 채권자들이 채무국을 법정에 끌고 갈지언정, 인권침해 혐의로 ‘인권’법정에 세울 것을 고려한다는 것은 여태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용문의 나머지 기사를 보면 이 케이스가 판결을 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협상에 미칠 영향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채권자들은 인권침해라는 신선한 소재를 통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여론의 동정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른 보도에 따르면 채권자들이 인권침해라고 생각하는 구체적인 조항은 이른바 “단체행동 조항(collective action clause : CAC)의 소급적용”이다. 2001년 아르헨티나의 채무조정 과정에서 처음 적용된 이 조항은 채권자들의 상당수가 동의하는 채무조정안은 이를 반대하는 채권자들에게까지 적용된다는 조항이다. 그리스의 채권에는 이 CAC이란 단서조항이 붙지 않았지만 이제 이 조항을 소급적용하여 적용하겠다는 것이 그리스 측의 생각이고, 채권자들은 이를 재산권의 침해, 나아가 인권침해라고 본 것이다. 논리의 흐름으로 보면 채권자들의 처지에 동정이 갈 수도 있는 상황이라 여겨진다.

채무이행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는 것이 미국 법률의 일반적인 모습을 아닐 것 같지만(맞지?), 만약 당신이 법률 시스템이 말한 모든 것을 무시한다면 종국에는 감옥에 들어갈 것이다. 똑같은 일이 국가채무자에게도 적용될 것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 경우도 있다. [중략] 그러나 미국법률이 그렇게 작동하는 반면, [중략] “국제적” “법률”은 그렇지 않다. 누구도 아르헨티나를 침공하지 않았다. [중략] 보다 구체적으로 만약 그리스가 호주머니를 뒤집어 까고 비꼬는 표정을 지은 뒤 어깨를 들썩거리는 팬터마임을 하면(돈 없으니 배 째라는 상황을 묘사한 것임 : 역자 주) 분명히 인권침해는 없는 것이다.(누구에게나 공평히 돈을 갚지 않았으니까? : 역자 주) 당신은 언제나 한 국가에 – 또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 돈을 빌려줄 때에 그들이 되갚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가정하고 있다. 그들이 갚지 않는다면 당신은 슬프고 화가 나겠지만, 법정에 가서 당신이 물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중략] 이는 사실상 “법”이 아니라 시장이며 레버리지며 협상이다.[Hedge Fund Rights Are Human Rights]

Dealbreaker의 칼럼니스트는 위와 같이 채권자들의 인권이 침해되었다는 주장을 한껏 조롱하고 있다. 그는 채권자들이 인권침해라고 주장하는 CAC의 소급적용과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일방적인 채무조정이 그들의 주장에 어느 정도 해당한다고는 할 수 있겠으나, 아예 돈을 안 갚아버리면, 인권침해도, “국제법”의 견지에서 판단하건데 위법도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안은 “국제법”을 적용할 대상이 아닌, 시장 안에서 협상해서 풀어야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가 생각하는 최악의 경우는 CAC을 소급적용하고도 빚을 아예 못 갚는 경우이므로 그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영리하거나 사려 깊은 투자자라면 그리스와 같이 채무불이행의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에 돈을 빌려줄 때에는 좀 더 안전한 투자가 되도록 사전에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는 인권처럼 당연히 보장되는 기본권리라고 생각해서 그에 대한 대비책을 따로 해두지 않는 경우와는 – 예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보장이 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는 보험은 존재하지는 않는다 – 차원이 다른 문제다. 실제로 그리스 채권자중 일부는 그리스법의 변경에 구애받지 않는 영국법에 의한 그리스 채권을 구입한 이들도 있고 CDS의 매입을 통해 리스크를 헤지한 이도 있다.

Dealbreaker의 칼럼니스트가 국제적인 채권채무관계는 법정에 갈 사안이 아니라고 썼지만, 많은 채권자들은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법정을 이용한다. 유사사례로 거론되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경우 법정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고, 그리스에서도 채무조정이 비자발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채권자들의 제소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10년 지난 아직까지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또한 만약 그리스의 채권자들이 이 사안을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로 가져간다면 모를까, 유럽인권재판소에 가져간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이런저런 이유로 여전히 뜬금없어 보인다.

이자를 받는 행위는 오랫동안 문명사회에서 금기시되어오던 이윤추구행위였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는 한동안 율법으로 이를 금지했고, – 이슬람에서는 여전히 금지하고 있어 수쿠크 등의 대안금융을 동원하고 있고 – 나머지 문명권에서도 떳떳하지 않은 행위로 간주되어왔다. 자본주의 지식인이었던 막스 베버마저 금융은 유대인이나 하는 “천민자본주의”라고 욕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이윤추구행위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될 것을 요구하는 이가 나타났다. 새로운 가치관이 대두되는 상황을 보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