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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의 권리는 人權이다”

헤지펀드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강경한 전술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또 하나의 전략을 찾아냈다. : 그리스가 채무를 이행하도록 인권법정에 제소하기. [중략] 이 전술은 그리스가 모든 민간 채권자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게끔 할 – 반면 약 500억 유로의 그리스 채권을 보유하여 가장 많은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은 이에서 제외하는 – 법률을 통과시킬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짐에 따라 변호사들과 헤지펀드들이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부상하였다. 법률전문가들은 그리스가 채권의 조건을 변경하였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그들이 받아야 할 돈보다 적은 금액을 받게 되고 이는 재산권 침해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케이스가 성립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 그리고 유럽에서는 재산권은 인권이다.[Hedge Funds May Sue Greece if It Tries to Force Losses]

‘유럽경제의 화약고’ 그리스에 관해서 연일 새 소식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 소식은 그 중에서도 이색적인 소식이다. 과문하여 채권자들이 채무국을 법정에 끌고 갈지언정, 인권침해 혐의로 ‘인권’법정에 세울 것을 고려한다는 것은 여태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용문의 나머지 기사를 보면 이 케이스가 판결을 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협상에 미칠 영향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채권자들은 인권침해라는 신선한 소재를 통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여론의 동정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른 보도에 따르면 채권자들이 인권침해라고 생각하는 구체적인 조항은 이른바 “단체행동 조항(collective action clause : CAC)의 소급적용”이다. 2001년 아르헨티나의 채무조정 과정에서 처음 적용된 이 조항은 채권자들의 상당수가 동의하는 채무조정안은 이를 반대하는 채권자들에게까지 적용된다는 조항이다. 그리스의 채권에는 이 CAC이란 단서조항이 붙지 않았지만 이제 이 조항을 소급적용하여 적용하겠다는 것이 그리스 측의 생각이고, 채권자들은 이를 재산권의 침해, 나아가 인권침해라고 본 것이다. 논리의 흐름으로 보면 채권자들의 처지에 동정이 갈 수도 있는 상황이라 여겨진다.

채무이행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는 것이 미국 법률의 일반적인 모습을 아닐 것 같지만(맞지?), 만약 당신이 법률 시스템이 말한 모든 것을 무시한다면 종국에는 감옥에 들어갈 것이다. 똑같은 일이 국가채무자에게도 적용될 것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 경우도 있다. [중략] 그러나 미국법률이 그렇게 작동하는 반면, [중략] “국제적” “법률”은 그렇지 않다. 누구도 아르헨티나를 침공하지 않았다. [중략] 보다 구체적으로 만약 그리스가 호주머니를 뒤집어 까고 비꼬는 표정을 지은 뒤 어깨를 들썩거리는 팬터마임을 하면(돈 없으니 배 째라는 상황을 묘사한 것임 : 역자 주) 분명히 인권침해는 없는 것이다.(누구에게나 공평히 돈을 갚지 않았으니까? : 역자 주) 당신은 언제나 한 국가에 – 또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 돈을 빌려줄 때에 그들이 되갚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가정하고 있다. 그들이 갚지 않는다면 당신은 슬프고 화가 나겠지만, 법정에 가서 당신이 물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중략] 이는 사실상 “법”이 아니라 시장이며 레버리지며 협상이다.[Hedge Fund Rights Are Human Rights]

Dealbreaker의 칼럼니스트는 위와 같이 채권자들의 인권이 침해되었다는 주장을 한껏 조롱하고 있다. 그는 채권자들이 인권침해라고 주장하는 CAC의 소급적용과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일방적인 채무조정이 그들의 주장에 어느 정도 해당한다고는 할 수 있겠으나, 아예 돈을 안 갚아버리면, 인권침해도, “국제법”의 견지에서 판단하건데 위법도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안은 “국제법”을 적용할 대상이 아닌, 시장 안에서 협상해서 풀어야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가 생각하는 최악의 경우는 CAC을 소급적용하고도 빚을 아예 못 갚는 경우이므로 그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영리하거나 사려 깊은 투자자라면 그리스와 같이 채무불이행의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에 돈을 빌려줄 때에는 좀 더 안전한 투자가 되도록 사전에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는 인권처럼 당연히 보장되는 기본권리라고 생각해서 그에 대한 대비책을 따로 해두지 않는 경우와는 – 예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보장이 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는 보험은 존재하지는 않는다 – 차원이 다른 문제다. 실제로 그리스 채권자중 일부는 그리스법의 변경에 구애받지 않는 영국법에 의한 그리스 채권을 구입한 이들도 있고 CDS의 매입을 통해 리스크를 헤지한 이도 있다.

Dealbreaker의 칼럼니스트가 국제적인 채권채무관계는 법정에 갈 사안이 아니라고 썼지만, 많은 채권자들은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법정을 이용한다. 유사사례로 거론되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경우 법정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고, 그리스에서도 채무조정이 비자발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채권자들의 제소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10년 지난 아직까지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또한 만약 그리스의 채권자들이 이 사안을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로 가져간다면 모를까, 유럽인권재판소에 가져간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이런저런 이유로 여전히 뜬금없어 보인다.

이자를 받는 행위는 오랫동안 문명사회에서 금기시되어오던 이윤추구행위였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는 한동안 율법으로 이를 금지했고, – 이슬람에서는 여전히 금지하고 있어 수쿠크 등의 대안금융을 동원하고 있고 – 나머지 문명권에서도 떳떳하지 않은 행위로 간주되어왔다. 자본주의 지식인이었던 막스 베버마저 금융은 유대인이나 하는 “천민자본주의”라고 욕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이윤추구행위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될 것을 요구하는 이가 나타났다. 새로운 가치관이 대두되는 상황을 보는 느낌이다.

도미노 현상이 될 개연성이 높은 남유럽의 위기

BIS에 따르면 월스트리트는 그리스에 작년 말 기준으로 단지 약 7십억 달러를 빌려줬다. 그건 대단한 돈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나 다른 유럽의 빚을 짊어진 나라들의 디폴트는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데, 이들이 그리스(그리고 기우뚱거리는 다른 유럽의 나라들)에 많은 돈을 빌려줬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월스트리트가 등장한다. 월스트리트의 대형은행들은 독일과 프랑스에 많은 돈을 빌려줬다. 유로존에 대한 월스트리트의 전체 익스포져는 2.7조 달러다. 프랑스와 독일에 대한 익스포져는 전체의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걱정되는 것은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에 대한 월스트리트의 대출뿐만이 아니다. 월스트리트는 유럽에서 발생하는 온갖 파생상품 – 에너지, 통화, 이자율, 그리고 외환 스왑들 – 에 보험을 걸거나 베팅을 한 상태다. 만약 어떤 독일 은행이나 프랑스 은행이 망가지면, 파급효과는 측정할 수 없을 것이다.[Follow the Money: Behind Europe’s Debt Crisis Lurks Another Giant Bailout of Wall Street]

유로존이 작동하는 구조를 볼 수 있는 글이라 소개한다. 유로라는 동일통화로 묶인 유로존은 시작부터 모순을 내재한 채 출범한 체제다. 동일한 경제체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라들이 하나의 통화로 경제 통일을 이룬 이 사건을 다큐멘터리 Debtocracy는 헤비급 복서와 페더급 복서가 결투를 벌인 꼴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 결과 유럽 주변국들은 경상수지 적자를 해외차입으로 메울 수밖에 없었는데 그 주요한 대출자는 프랑스와 독일의 은행들이었다.

결국 그리스 등 주변국들은 프랑스와 독일의 돈을 빌려와 프랑스와 독일의 물건을 산 셈이다. 이런 상황을 확대하면 미국과 중국이 처한 상황과 비슷해진다. 차이점이라면 미국은 달러를 발행할 수 있지만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의 채무국들은 내놓을 게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이들 채무국들이 채무불이행을 선언해버리면 Robert Reich의 말대로 그 여파는 프랑스와 독일의 은행들, 그리고 월스트리트로 전파되어 예측할 수 없는 파괴로 이어질 것이다.

Debtocracy는 이런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선택적인 채무불이행 선언을 주문하고 있다. 즉, 소위 “혐오스러운 대출(odious debt)”은 상환의무가 없으니 갚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다. 월스트리트가 들으면 기절초풍할 이 방법은 남미 좌익전선의 일원인 에콰도르가 시도했었다. 재밌는 사실은 후세인 정부를 전복시킨 미국의 강경파들도 후세인 독재정권의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며 같은 주장을 했다는 점이다. 부메랑이 될지도 모르는 이 주장을 말이다.

그리스는 지금 극단적인 내핍경제를 운용하고 있으며 나라의 재산들을 헐값에 매각하고 있다. 스페인은 국민들의 원성을 피하기 위해 폐지했던 부유세를 부활하였다(비록 그 조건은 보다 강화되었고 예상조세액도 미미한, 상징적인 수준이지만). 하지만 이런 미온적이고 장기적인 조치가 남유럽과 유로존 전체의 위기를 해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채무자나 채권자 모두 함께 즐겼던 “혐오스러운 금융시스템”을 털어버리지 않는 한에는 말이다.

그리스 의회의 긴축재정안 통과의 의미와 그 앞날에 대한 단상

새로운 프로그램에 따라 공공부문에서 15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고, 공공지출과 헬스케어에서 감액이 예상되며, 이와 함께 중간 소득에 대한 엄청난 증세가 잇따를 것이다. 술집과 레스토랑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는 13%에서 23%로 상승한다. 그리스는 그러한 소규모 비즈니스에 상당부분 의존하는바, 이 조치는 수천 개의 자영업을 도산시키고, 경기후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여태까지는 긴축프로그램의 옹호자였던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칼럼니스트인 Wolfgang Münchau 조차 이번 긴축조치는 “재무적으로 무모하고 정치적으로 무책임한” 조치라 결론내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상태 그대로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라고 그는 적고 있다.

그럼에도 EU는 그리스 의회에게 그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라고 엄청난 압력을 가해왔다. 경제담당 집행위원인 Olli Rehn은 만약 긴축 패키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리스는 파산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즉각적인 디폴트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의회가 이 수정된 경제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것뿐이다.” 한 연설에서의 그의 발언이다. “금융원조의 다음 트랑쉐(tranche)를 받고 싶으면 그들이 승인해야 한다. 다른 옵션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디폴트를 피하기 위한 플랜B는 없다.”[Greek austerity package: Social counterrevolution in Europe]

결국 그리스 의회는 긴축재정안을 155대138로 통과시켰다. 집권 사회당의 의석이 155석인데, 희한하게 찬성의원수가 이 의석수와 일치한다. 모든 사회당 의원들이 정확히 찬성하진 않았겠지만, 결국 투표 결과는 집권당과 야권의 의견이 이만큼 극명하게 갈라져 있을 정도로 그리스 정치의 분열이 심각한 양상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살인적인 고금리와 긴축조치로 수많은 서민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던 우리의 이전 세기 외환위기가 연상되는 이런 조치들은, – 우리는 의회의 승인절차조차 없었다. – 가장 큰 피해자가 우리의 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절대다수의 서민들임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좌익” 정당임을 자처하는 사회당 치하에서 자행된 조치다.

한편, 그리스의 최대 채권국인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구제방안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독일이 이른바 “강제 채무 조정”을 원하고 있다면, 프랑스와 유럽중앙은행(ECB)은 리파이낸싱을 통한 “연성 조정”을 선호하고 있다. 독일의 안이 채권자들의 상당 부분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주류 안이 아니라는 점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

독일은 원금을 깎거나 차환 채권을 새로 발행해 기존 채권을 대체하는 등 채무구조조정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사태에서 그리스 국채에 투자한 민간이 보유한 고금리 단기 채권을 저금리 장기 채권으로 전환하자는 것입니다. 독일은 민간 채권자들도 고통분담에 동참하라고 주장하는데 유럽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한 기금 EFSF(유럽재정안정기금) 4400억 유로를 조성했는데요.

27%를 부담하는 독일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는데 여론때문에 리파이낸싱에 동의하기 쉽지 않습니다. 반면 프랑스와 ECB(유럽중앙은행)은 리파이낸싱 방식을 선호합니다. 즉 추가로 돈을 빌려주고, 이 돈으로 기존 빚을 갚아 돈을 갚는 시점을 뒤로 미루는 방식을 원하는데 프랑스 은행들이 550억 달러 정도 그리스 채권을 보유하고 있어 더 손해를 볼 것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그리스 재정수혈 ‘난항’··민간참여 놓고 獨· ECB ‘대립각’]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가디언이 보도한 것처럼, IMF 총재였던 Dominique Strauss-Kahn이 성폭행 혐의로 총재 자리를 비운 사이, JP모건 부회장 출신인 미국인 John Lipsky가 집행대행을 맡으면서 갑자기 강경노선으로 돌아서서 독일의 입장을 굽히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폭행, 미국인, 독일, 그리스 구제금융의 재밌는 조합이 만들어진다.

독일 은행들이 그리스 구제에 참여키로 함에 따라 그리스 사태가 돌파구를 찾아가고 있다. [중략]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의 요제프 아커만 회장은 “민간 채무자들을 구제에 참여시키기 위해 프랑스가 제안한 안이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도 나섰다…그리스 낙관론 대두]

독일과 프랑스의 안이 온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어쨌든 그리스에 대한 채무조정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비록 채권자들이 그리스가 긴축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파산시키겠다고 협박했지만, EU나 IMF가 쉽게 그리스를 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인접국으로의 위기확산과 채권자들의 큰 손실을 의미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상황은 그리스 인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긴축재정안을 그리스가 수용하고, 채권자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프랑스안을 수장이 갈린 IMF 등이 독일을 압박하여 관철시키는,  채권자에게는 최상의 결과가 만들어졌다. 결국 그리스는 단기구제는 받을지언정 쉽게 빠져나올 것 같지 않은 악성채무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과연 그리스를 포함한 유럽의 주변국들이 어떤 사연으로 이런 험난한 길에 접어들었는가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으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현재의 체제 하에서의 이러한 조치들은 결국 위기를 이연시킬 뿐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긴축안이 통과하자 전 세계 증시는 일제히 오르며 그리 길지 않을 즐거운 망중한을 보냈다.

CDS 라는 희한한 상품

In wide-ranging testimony, Lord Turner also said that regulators should seriously consider preventing investors from buying credit default swaps on both corporate and sovereign debt unless they are using it to hedge an existing investment.
While downplaying the role played by so-called “naked CDS” purchases in the Greek debt crisis, Lord Turner said that a ban on speculative purchases “is something that should be discussed”.[FSA eyes role in approval of new products]

영국의 금융당국이 헤지의 목적이 아닌 소위 ‘네이키드 CDS’의 구입은 금지할 것을 심각히 고려중이라는 소식이다. 이 같은 주장이 나오고 있는 배경에는 그리스의 경우처럼 재정악화 상황에 놓여있는 국가들에 대한 투기성 CDS 구입이 해당 국가의 위험지수를 온전히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을 더욱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즉 투기자들이 특정단위의 CDS 구입에만 몰두할 경우 CDS 가격이 올라가면, 다른 시장참여자들은 그 단위는 자금조달은 더욱 어려워지고, 그에 따라 CDS 가격은 더 오르는 자기 충족적 악순환이 반복될 소지가 있다. 이 현상은 실제로 지난해부터 그리스 등 재정위기에 빠진 국가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 과정을 좀더 고급스럽게(?) 진행시키는 사례는 뭐가 있을까? 단순히 CDS에만 베팅하지 않고 아예 국가의 부채상황을 조작하여 시장의 눈을 속인 후 자신은 그 반대편, 즉 CDS에 베팅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최근 벤 버냉키 FRB 의장은 미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골드만삭스 등 대형 투자은행의 그리스 관련 파생상품에 문제가 있다”는 발언을 했다.

골드만이 그리스 정부와의 통화 스왑을 통해 그리스 정부의 부외부채를 조성해주면서 날선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사실은 이미 전달한 바 있다. 이 계약으로 그리스의 외화 표시 부채는 27억 달러 줄고 국가부채비율은 105.3%에서 103.7%로 줄었다 한다. 한데 골드만은 이 와중에 그리스 국채 CDS에 투자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인 것이다.

골드만삭스 등의 대형 은행들이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대해 부채를 숨기는 방법으로 EU에 합류시키고는 그리스의 위기가 터지기 직전이었던 지난 해 9월에 바로 골드만삭스나 JP모건 등이 출자한 영국의 <마켓>이라는 회사를 통해서 이들 유럽지역의 나라들에 대한 CDS 프리미엄을 매매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었고 이들을 통해 그리스의 CDS를 잔뜩 사들였다는 것이었다.[미국, 과연 위안화 평가절상 원하고 있을까?]

물론 골드만이라는 회사는 초대형 기업으로 부서가 다양하기 때문에 각각의 부서는 그들 부서의 논리로 상반된 투자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골드만이라는 한 기업이 그리스라는 국가의 부채축소를 도우면서 반대편에서 그 국가의 파산에 베팅하는 것은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더 나아가 그 정보를 조작하면서 자신의 이해를 도모한 꼴이다.

어쨌든 버냉키가 금융위원회에서 해당 거래에 대해 각별히 조사하겠다는 발언을 한 직후 그리스의 CDS 프리미엄은 단 하루에 33BP나 하락했다고 한다. 그리스의 사정이 하루아침에 좋아졌을 리는 만무하고 그동안 붙어있던 투기적 거래자들 중 일부가 포지션을 청산하고 나왔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런 해프닝을 바라보면서 과연 시장가격이란 것이 시장상황을 온전히 반영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다시 한번 갖게 된다. 전통적인 이론은 시장가격은 등락을 반복하면서도 결국 적정가격에 수렴한다고 말하지만, 시장참여자들이 현재와 같이 거대화, 소수화 되어 있는 상태에서 가격은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 사건이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도가 발생하여 채권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대비하여 만든 CDS의 경우 부작용이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최대의 보험사 AIG는 과도한 CDS의 판매로 망했다. 나아가 CDS 시장은 점점 더 헤지 거래자보다는 거래상대자를 실제로 망하게 할 수 있는 거대 투기거래자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시장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CDS의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채비율, 국채수익률, 회사채 등급 등 전통적인 신용평가기준은 시장의 미시적인 상황에 대해 늦게 반응한다. 게다가 이미 이번 금융위기에서 보았듯이 몇몇 지표들은 참여자들에 의해 조작이 가능하다. 결국 다수의 참여자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CDS는 해당행위자에 대한 확실한 경고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다시 순환하여 돌아가서 때로 그 경고가 지나치게 약하거나 – CDS역시 사태가 본격화되기 전에는 과소평가되어 있는 경향이 있으니 – 지나치게 높거나, 심지어 이번 사건처럼 조작까지 가능하다는 점이다. 금융의 세계화, 패거리 행동(herding behavior), 소수 투자은행 및 헤지펀드의 비도덕적 행위 등은 이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결국 우리가 더 객관적이고 공평한 평가지수를 개발하지 못하는 한에는 CDS 자체를 금지시킬 수는 없다. 대안은 첫 인용기사에서 나온 것처럼 ‘네이키드 CDS’를 금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별 실효성 없는 대안이긴 하다. 여태 절대 다수의 CDS가 장외에서 거래가 되었는데 금융당국이 뭘 금한다는 것은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참 희한한 상품이다.

회색지대를 배회하는 투자은행

The Luxembourg-based European statistics agency Eurostat reiterated today that it was unaware of the Greek Treasury’s attempts to reduce the apparent size of its debt by using off-market swaps. But the controversial Greek deal with Goldman Sachs was similar to a blueprint in Eurostat’s 2002 accounting guide. [중략] Before 2002, deals of this kind occupied a grey area in European accounting rules. [중략] In May 2002, the publication of ESA95 accounting rules answered Piga’s concern by explicitly permitting the transactions and providing a worked example of how to calculate the apparent reduction in national debt — not, perhaps, the reaction Piga had expected.
룩셈부르크에 위치한 유럽 통계청 유로스타트(Eurostat)는 오프마켓스왑(off-market swaps)을 통해 부채의 표면상의 크기를 줄이려 했던 그리스 재정부의 시도를 알지 못했다고 다시 한 번 밝혔다. 그러나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리스의 골드만과의 거래는 유로스타트의 2002 회계 기준의 청사진과 유사하다. [중략] 2002년 전에는 이러한 거래는 유럽의 회계원칙에서 회색지대에 속했다. [중략] 2002년 5월 ESA95 회계원칙의 발표는 피가의 우려에 대한 명백한 답변이었는데, 그러한 거래를 허용하는 한편 국가채무의 표면상으로 어떻게 줄여서 산정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용례를 제공하였다. — 아마도 피가가 원하던 그런 대응은 아니었다.[Eurostat rules described ‘Greek-type’ swap]

지난번 ‘골드만삭스가 돈 버는 법, 최신버전’이라는 글에서 소개한 골드만삭스와 그리스 정부와의 통화스왑에 관한 이야기의 최근소식이다. Risk에 따르면 유로스타트는 해당 스왑이 국가채무를 속이려는 일종의 ‘분식회계(window dressing)’ 시도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Risk는 그들이 오히려 2002년에 회계원칙을 개정해 이러한 개구멍을 터주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뒤늦게 유로스타트가 2001년과 2008년 사이 이루어진 다양한 스왑계약을 조사 중이라고 전하고 있다.

통화스왑은 일정기간 동안 한 나라의 통화로 표시된 현금흐름을 다른 나라의 통화로 표시된 현금흐름과 서로 교환하기로 한 계약이다. 그 중에서도 이번 거래에 쓰였다는 오프마켓스왑(off-market swaps)에 대해서는 알파헌터님의 글이나 관련 용어해설을 참고하라. 여러 복잡한 설명이 헷갈릴 수도 있으나 무식하게 말해 결국 스왑을 하는 과정에서 골드만이 그리스에 돈을 빌려준 것으로 간주하면 무리가 없다. 그리고 그 돈은 그리스의 재무제표에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고, 유로스타트는 자기들 말로는 그런 줄 몰랐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런 상황을 접하고 개인적으로 다시 한 번 드는 생각은 ‘은행 본연의 임무, 존재의의, 그 수행역할, 그리고 윤리적 문제’ 등에 관한 의문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 오면서 어느 정도 정립된 은행(또는 금융회사)의 기능 및 역할에 대해 크게 분류하자면 세 개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은행의 감독 하에 수신과 대출만을 영위하는 유틸리티 은행(Utility bank), 그리고 일부 영리성 사업을 병행하는 상업은행, 자본시장 조성 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투자은행이 그것이다.

앞서의 두 은행을 찾아오는 이들은 대개 큰 문제없이 정상적인 대(對)은행 업무만으로도 충분히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정상기업 내지 정상국가다. 하지만 투자은행을 찾는 이들은 경영의 위기를 겪지 않더라도 이를테면 M&A, IPO, PF등 자금의 대규모 조달을 통한 전환기를 모색하는 이들이다. 그러다보니 투자은행은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통상적인 방법이 아닌 교묘한 방안을 도출하여 제시하여야 할 위치에 놓이게 된다. 즉 투자은행의 고객은 사실상 위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회색지대(grey area)’에 위치한 이들이 앞서 두 은행보다 통상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업무의 어디까지가 도덕적이고 어디서부터 비도덕적이냐 하는 윤리의 문제는 금융업이 생긴 이래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고 아직 그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중세시대만 하더라도 이자를 받는 행위 자체가 비도덕적으로 간주되고 금지되기도 했다. 대공황 이전에는 자본조성을 둘러싼 월스트리트의 이전투구가 비난의 대상이었다. 국가는 글래스-스티걸 법으로 이들을 단죄했다. 그리고 유사 공황기를 거치면서 이제 다시 이번 거래와 같은 투자은행의 현대적(?) 역할이 비난의 대상에 오르고 있다.

골드만삭스를 놓고 보자. 알파헌터님도 그런 뉘앙스고 로이터의 한 논객의 글도 골드만의 스왑 주선은 정상적인 투자은행의 업무 일뿐 비난받을 행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투자은행이 A기업에의 B기업에 대한 M&A를 주선하였는데, A기업이 LBO 차입금을 갚기 위해 B기업 자산을 매각하는 몰인정한 짓을 했다고 해서 투자은행을 비난할 수는 없다는 상황과 유사할 것이다. 일상업무인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상황을 유추하여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방의 어느 개발공사가 대규모 콘도 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콘도가 팔리지 않았다. 그리고 부채비율에 걸려 공사채권도 더 이상 발행할 수 없었다. 투자은행은 이 공사에게 이런 제의를 할 수 있다. 신설법인을 하나 설립하여 그 법인이 자금을 차입하고, 그 돈으로 콘도를 일시에 분양받으면 채권도 다시 발행할 수 있다. 그래서 더 돈을 조달해 개발 사업을 마무리 짓는 안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산유동화 기법이다. 불법도 아니고 남은 것은 윤리의 영역일 뿐이다.

이제 당신이 담당자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어차피 콘도 회원권의 분양이라는 것도 유동화의 다른 말일 뿐이므로 신설법인이 분양을 받는 것이 하자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콘도 미분양분이 공사의 목을 죄고 있으므로 이를 풀어주어 사업을 마무리 짓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여태 콘도가 분양되지 않았다면 이 사업은 문제가 있는 것이고, 결정적으로 회원권 유동화를 통해 추가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편법이므로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쉽지 않은 대답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거의 모든 경제 주체가 경기변동, 자금흐름의 경색, 제도 및 정책상의 변경에 따라 그때그때마다 예측하지 못한 리스크에 노출된다. 그러한 리스크는 대부분 돈과 결부된 문제다. 그리고 내부유보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그들은 은행, 증권사, 투자은행 등 금융시장을 찾는다. 투자은행은 그 중 가장 해결방안이 오묘한 곳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현행 제도 안에서 가장 교묘한 방안을 도출해내어 고객들을 만족시켜야 할 위치에 놓여있다. 그래서 리스크가 존재하는 한 투자 은행업은 존속할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골드만삭스는 그런 문제가 발생한 주체가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일 것이다. 여태까지 그들은 안 되면 되게 했으니까.

골드만삭스가 돈버는 법, 최신버전

그러나 그리스의 경우에 미국의 은행가들은 가상의 환율을 통한 특수한 종류의 스왑을 고안해냈다. 이를 통해 그리스는 100억 달로 또는 엔에 해당하는 실질적인 유로의 시장가치를 훨씬 초과하는 금액을 수취할 수 있었다. 그러한 방식으로 골드만 삭스는 비밀스럽게 그리스를 위해 10억 달러의 추가신용을 조성해주었다.

일종의 스왑을 가장한 이러한 신용은 그리스의 부채 통계에 나타나지 않았다. 유로스타트의 보고 규정은 금융 파생상품과 관련한 거래들을 통합적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마스트리흐트의 규정들은 스왑을 통해 법적으로 완벽하게 회피할 수 있습니다.” 한 독일인 파생상품 딜러의 말이다.

몇 년 전에 이탈리아는 또 다른 미국 은행의 도움을 받아 진짜 빚을 감추는 유사한 트릭을 썼다. 2002년 그리스의 재정적자는 GDP의 1.2%에 달했다. 유로스타트가 2004년 9월 자료들을 검토한 후, 이 비율은 3.7%로 조정되었다. 현재 자료에 따르면 5.2%다.

때가 되면 그리스는 그들의 스왑 계약들을 상환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재정적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채권의 만기는 10년에서 15년까지이다. 골드만 삭스는 이 계약들에 대해 천문학적인 커미션을 받았고 2005년 한 그리스 은행에 이 스왑 들을 팔았다.[How Goldman Sachs Helped Greece to Mask its True Debt]

국가가 자신의 부채를 꼬불치는데 투자은행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설명한 슈피겔의 기사다. 골드만 삭스는 전형적인 통화 스왑에 특수한 조건을 끼워 넣어 거래당사자 중 어느 일방의 – 이 경우엔 그리스 정부 – 채무가 적게 보이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 슈피겔의 설명이다. 그 정확한 구조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여하튼 그리스가 이러한 꼼수를 부린 배경은 마스트리흐트 조약에서 EU 가입국에 요구하고 있는 조건 때문이다. 규정에 따르면 가입국들의 재정적자는 GDP의 3%를 넘을 수 없고, 이를 초과할 경우 막대한 벌금을 물게 되어 있다. 유럽이 경제공동체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조치이겠지만 사실상 경제의 여건이 현격히 다른 국가들이 일률적으로 지키기에는 벅찬 조건이었다.

골드만 삭스는 고객의 그런 고충을 간파하고 적정한(?) 서비스를 통해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켜주었다. 진정 뛰어난 투자은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 서비스가 당장의 수요는 충족시키지만 궁극적인 문제해결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기기묘묘한 스왑 계약을 맺어도 갚아야 할 돈이 사라지는 법은 없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각국 정부의 부채는 금융위기를 지나오면서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IMF는 선진경제의 GDP 대비 부채비율이 2007년의 75%에서 2014년에는 115%까지 늘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문제가 되는 나라는 사실 그리스를 포함한 PIGS가 아니라 미국과 영국이다. 엄한 돼지만 탓할 상황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