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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푸어” 단상

“하우스푸어”의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대중 다수가 가지는 – 특히 무주택자 – 당연한 정서지만 급진주의자라면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도 부채를 부추기는 현대 자본주의의 희생자라는 견지다. 그들의 문제는 상투를 잡았다는 것일 뿐.

정책적으로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게 무주택 빈곤자의 방치는 장기적인 사회비용 이외에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하우스푸어를 내버려두면 부채의 질을 악화해 금융 시스템을 교란시킬 우려가 크다. 자의든 타의든 금융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투입규모나 로드맵을 볼 때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규모도 작을뿐더러 결국 집주인이 집을 포기하는 셈이어서 한계에 몰린 이들만이 정책에 호응할 뿐이다. 결국, 정책효과가 크지 않은, 가진 자에 대한 구휼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한 세기 전엔 정부도 절약을 강조했지만, 전후 케인스의 영향 등으로 개인도 빚을 얻고 신용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부채사회의 최대 비극은 2008년. 현 체제의 대안은 부채사회의 청산인데 그 경우 경제가 죽는 모순에 처해 있다는 점이 비극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 정치권은 이념 성향을 가리지 않고 소유권 사회라는 기치로 매진해왔고 그 수단은 높은 레버리지 대출이었다. 그것은 ‘정부의 실패’가 아닌 ‘부채 사회의 실패’다.[출처]

아파트

어쨌든 아파트는 뭔가 떨어지고 분리되어 존재하는 주거공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어원 語源은 불어의 아파르트망 appartement으로 알려져 있다. 18세기 프랑스 귀족의 대저택에는 가족과 하인 이외에도 매일 수십 혹은 수백 명의 사람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거하기 위해서 집은 몇 개의 공간 군群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가령 아파르트망 드 파라드 appartement de parade는 공적인 용무로 수십 명의 사람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었고, 아파르망 드 소시에테 appartement de societe는 안주인이 서너 명의 친구와 친척들을 초대하여 간단한 티파티 tea party를 dus는 곳이었으며, [중략] 그런데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귀족계급이 몰락하면서 그들의 대저택 역시 주인을 잃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틈바구니를 비집고 새로 성장한 도시중산층이 귀족의 대저택을 아파르트망별로 나누어 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아파트의 기원이라고 한다.[아파트에 미치다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이숲, 2009년, p20]
아파트 건설초장기만 해도 국가 최고지도자의 관심은 비상했다. [중략] 박정희 대통령(당시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또한 1962년 마포아파트 준공현장에 직접 나가 주거생활의 문화적 향상을 역설했다. 그는 축사에서 [중략] “여기에서 생활혁명이 절실히 요청되는 소이 所以가 있으며 현대식 시설을 갖춘 마포아파트의 준공은 이러한 생활혁명을 가져오는 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박정희 대통령은 “본 (마포) 아파트가 혁명한국의 한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고까지 했다.[같은 책, p39]

아파트의 역사를 두고 두 개의 혁명이 관통하는 모습이 재밌어서 옮겨 적어보았다. 하나는 근대 혁명의 시대를 연 역사적 사건 프랑스 혁명이고 또 하나는 남한의 정치에 큰 획 하나를 그은 516혁명(옳게는 516군사 쿠데타)이다. 둘 모두 변혁의 시기를 거치면서 이전의 주거양식과는 전혀 다른 주거양식이 삶의 공간으로 채택되었거나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적어도 2010년 남한 땅에서 아파트라는 주거형태가 오히려 수구적인 공간이 되었음을, 적어도 더 이상 혁명을 꿈꿀만한 공간이 아님을 목격하면서 묘한 상념에 빠지게 된다.

보금자리 주택 단상

반값아파트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로망이다. 정주영의 말 그대로 “반값아파트”가 그랬고, 홍준표의 “대지임대부 분양주택”(주1)이 그랬고, 현 정부의 “지분형 아파트”가 그랬다. 하지만 그러한 구상들은 제각각 이런저런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실현되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생산될 아파트들이 결국 불완전 상품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즉 소유할 자산이 온전히 구입자들의 재산권 행사에 적당치 않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나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재산권 행사를 온전히 할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주택에 대해 사회 상당수가 사용가치 지향적으로보다는 교환가치 지향적으로 사고하는, 그리고 주류사회가 그것을 당연시하는 현실 속에서 그 재산권의 행사가 온전치 못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반값아파트’는 어쩌면 이 사회에서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유니콘(?)과 같은 존재였다. 적어도 “보금자리 주택”이 나오기 전까지는.

존재 불가능한 ‘반값아파트’를 갑자기 정부에서 공급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까닭은 무식할 정도로 단순하다. 바로 싼 땅에 짓겠다는 것이다. 여태의 정권이 건드리길 꺼려했던 바로 그린벨트를 해체하여 아파트를 짓겠다는 구상이다. 여태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안한 – 미래세대를 위해? 아니면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 것을 현 정부는 거리낌 없이 해내버렸다. 수십 년간 짓눌려온 지주들의 보상심리로 인해 땅값이 정부의 의도만큼 낮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예측이지만 현 정부라면 또 억지로 싸게 사들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도시의 허파 기능을 해야 한다는 본연의 목적보다는 오히려 도시 연담화의 촉매제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쨌든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인정되던 그린벨트가 사실상 이번 조치로 인해 해체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녹색시대를 외치는 정부에서 말이다. 결국 자생적으로 팽창하는 서울과 인근도시들의 희미한 경계선 역할을 해오던 그린벨트는 그 의미가 퇴색되고 실질적으로 수도권은 한국 인구의 1/4 이상을 수용하는 초거대 도시권으로 성장할 것이다.

한편 조선일보의 어느 칼럼도 주장하였듯이 보금자리 주택의 전량을 임대하지 않고 상당 부분을 분양하는 것은 현 정부가 이것을 기회로 부동산 시장의 활황세를 이끌어보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막대한 시세차익이라는 기대감이 바로 보금자리 주택의 흥행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그것의 분양이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의무주거기간과 환매제한 기간의 도입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이 제도가 판교에서 얼마나 쉽게 무력화되었는지는 시장(市場)이 더 잘 알고 있다.

진정 현 정부가 반값아파트를 그들이 수요층으로 생각하고 있는 월 300만 원 이하의 서민층에게 공급하고 싶다면 서울시의 시프트처럼 장기임대로 내놓던가, 아니면 최소한 분양분에 대해 투기가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있도록 환매제한 따위의 꼼수부리지 말고, 분양분을  정부가 다시 물가상승분만을 반영하여 되사는 방식을 채택함이 옳다. 그러면 지금처럼 청약통장이 갑자기 금값이 되는 등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달아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시장의 냉철함은 정부가 바라는 바가 아니긴 하다.

결국 보금자리 주택은 △ 주장하는바 정말 땅을 싸게 매입할 수 있는가 △ 반대로 지주들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인정해줄 수 있는가 △ 그린벨트의 고유목적을 훼손하는 일은 없는가 △ 실수요 층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가 △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키지는 않을 것인가 등 허다한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4대강 몰아붙이기가 그러한 것처럼 이 정책도 반대자들이 생각할 틈을 갖지 못할 정도로 번갯불에 콩 볶아먹기 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 정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랄 수 있을까?

(주1) 아파트 분양시 건설회사는 건물만 분양하고, 대지는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이 무주택 서민들에게 원가 수준으로 사실상 영구 임대함으로써 아파트 분양가를 낮춘다는 주택공급 방식

선분양과 전세

사실 우리나라는 그 경제발전 정도에 비해 부동산 금융이 상응하여 발전한 나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구에서는 어느 정도 일반화되어 왔던 모기지 제도도 뒤늦게 들어온 편이다. 그리고 건설업체들이 건설업을 영위하는데 있어 대규모 금융을 일으키는 관행도 비교적 늦은 편이다. 이는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금융조달 방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아파트 선분양과 전세다.

공급자의 입장에서 선분양은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조달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 아니 오히려 금융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통상의 금융조달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선분양이 가능했던 것은 제도적 뒷받침과 함께 아파트라는 주택상품의 대표적인 특징인 ‘표준화’와 ‘동질화’가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선분양은 주택수요시장을 무시한 무리한 주택공급을 부추기고 업체부도시의 소비자의 피해가 크다는 등의 인식 하에 노무현 정부에서 후분양을 채택하기에 이르렀고, 묘하게 그 시기가 부동산 시장 하락기와 맞물려 그 이전에 밀어내기로 공급된 많은 아파트들이 이제는 ‘미분양 사태’의 한복판에 놓이게 되었다.

한편 전세 역시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만의 독특한 임대방식이다. 이 제도를 금융조달로 보는 데에는 바로 수요자의 시각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즉 잘 알고 있다시피 이제 막 집을 구해야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전세를 이용하여 자기 돈을 절약해가며 집을 살 수 있다. 아파트 값이 2억 원이고 전세 시세가 1억5천만 원이라면 은행에서 5천만 원만 빌려서 집을 사고 전세를 놓으면 자기 돈은 한 푼도 안 들어가는 멋진 구조가 나오는 것이다. DTI/LTV니 equity loan 이니 하는 표현들이 무색해진다. 많은 이들이 사실 이렇게 해서 투기를 하고 있다.

이제 이 독특한 제도가 우리 부동산 시장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분양이 된 아파트들도 상투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입주예정자들이 중도금 지불을 거부하고 있고, 전세를 놓아 자기 돈을 아껴보려 했던 이들이 분양받은 아파트는 전세가 들어오지 않아 빈 집으로 버려져 있다. 부동산PF나 은행의 부동산 관련 가계대출이 위험수준이라지만 사실 이는 알려진 리스크이기에 오히려 관리가 용이하다고 생각된다. 더 심각한 것은 바로 선분양과 전세로 손쉽게 돈을 벌어보려 했던 건설업체와 투기세력들이 지어놓고 분양받은 집들에서 밤이 되어도 불이 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태파악 못하는 부동산 대책

인구 200명의 국가가 있다. 이중 100명이 1억원이라는 동일한 가격의 주택을 2채씩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국가의 주택의 자산가치는 200억원이 된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또는 투기적 요인으로 말미암아 주택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어느 날엔가 주택 한 채가 1억1천만 원에 거래되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주택의 자산가치는 220억원이 된다. 주택소유자들은 자신들의 재산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심리적 풍요로움을 느낀다. 그에 상응하여 소비도 늘어나고, 은행의 담보인정도 늘어난다. 누군가 이 매수세에 부응하여 대출을 받아 새로이 집을 사면서 신용도 추가 창출된다.

소위 말하는 ‘거품’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지극히 단순하게 살펴보았다. 지나치게 단순화시켰다는 제약조건이 있을지 몰라도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아파트라는 대규모 집단주거 형태가 집값의 핵심적인 가늠자로 행세하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거품 형성의 과정이 다른 나라보다 더 이러한 모형에 잘 부합할 것이다. 이에 다른 이의 부동산 가치 상승/하락이 곧 자신의 부동산 가치 상승/하락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 우리나라의 아파트 부녀회에서는 반상회를 집값 담합의 장으로 활용하시고, 각종 게시판에서 아파트 선전에 열을 올리고, 혹시 집값을 떨어트릴지 모르는 베란다에 이불 너는 행위를 금지한다. 심지어는 주택에 하자가 있어도 집값 떨어질까 봐 쉬쉬한다. 그만큼 우리 부동산 시장은 집값 하락에 대한 저항선이 만만치 않고 집단행동도 수월하다.

또한 그와 같은 맥락에서 집값 하락, 특히 아파트값 하락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말했듯이 아파트라는 대규모 집단주거 형태가 가지는 특성으로 말미암아 특정 주택의 가격하락은 곧 그와 유사한 브랜드, 유사한 평수, 유사한 지역의 동반하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산가치 하락은 최근 몇 년간의 서구 부동산/금융 구조가 그러했듯이 사회전반에 상호침투하는 연쇄반응을 불러올 것이다. 즉 [ 부동산 가치 하락 > 소비위축/대출상환능력 저하 > 건설을 포함한 실물경제 위축/은행 재무건전성 악화 > 실물/금융시장 여건 악화 > 추가적인 부동산 가치 하락 ]의 전형적인 패턴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단계적으로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해제하기로 한 것은 이러한 연쇄반응의 악순환을 막고자 하는 응급조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조치는 예로 든 인구 200명의 국가에서 220억원의 자산 가치를 온존시키겠다는 발상이다. 실질가치가 얼마인가 하는 규범적 가치판단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실수요자의 수요와 상관없이 지어진 미분양 주택들이 전국 곳곳에 널려있는데 서울, 인천, 경기에서 실수요가 아닌 투기적 가수요가 붙었던 곳의 거래를 허용하여 어쩌면 180억원(즉 한 채당 9천만원)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자산 가치를 220억원으로 보이도록 하는 착시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소리다. 미분양 주택도 팔리지도 않는 주제에 계속 1억1천만 원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이다.

반면 지난번에 내놓은 – 비록 표절이긴 하지만 – 미분양 아파트 펀드는 거래가격을 규범적 가치로 조율하여 연착륙을 유도하는 효과를 거둘 여지가 있는 제안이었다. 즉 현재 대규모로 미분양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은 규범적 가치가 1억1천만 원 아래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예측에 실패한 건설사에게 징벌적인 할인율을 부과하여 9천만 원에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인다면 전체 자산가치는 180억원으로 하향 조정될 여지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은 건설사, 금융업체, 기존 자산가의 일부 자산가치 하락을 감수하여 경제를 연착륙시킬 개연성이 더 높다. 반면 투기지역 해제는 거품 폭발의 이연효과만이 있을 뿐이다.

최근 20년간 서울시 아파트 매매/전세 가격 변동 추이

1986년부터 현재까지의 서울시의 아파트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상승추이를 나타내는 그래프다. 매매가격은 1986년부터 외환위기인 98년까지 매우 느린 속도로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후 거의 하락폭 없이 급등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매매가격의 추이를 전세가격과 비교해보면 재밌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외환위기 등의 시기 전세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한 반면 매매가격의 하락폭은 그에 훨씬 못 미쳤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주택가격과 전세가격의 괴리가 클 경우 보통 빚을 얻어 집을 얻은 후 세를 놓는 방식으로 주택보유를 유지하던 이들은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하튼 이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매매가격 하락에 대한 저항이 상대적으로 매우 크다는 사실. 그리고 (적어도 보이는 바대로는)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가 집값과의 전쟁에서 졌다는 사실. 외환위기 이후 상승폭의 가장 큰 요인은 분양가 자율화가 아닐까 싶다.


서울시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추이


서울시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추이

출처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