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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비 7000만원

먼저 이사비 7000만원이 결정타였다는 것이다. 이때 사실상 승부가 났다고 지적했다. 한 도시정비업체 관계자는 “이사비 7000만원은 조합원들이 거부할 수 없을 만한 달콤한 조건이었다.”면서 “그런데 GS건설이 중간에서 이를 가로막는 형국이 되면서 조합원들 사이에 미운 털이 박혔다”고 했다. 실제 이날 총회장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GS건설은 지네들이 줄 것도 아니면서 왜 현대건설이 주겠다는 것을 막느냐”고 언성을 높였다.[피 말리는 개표 중 “막걸리나 먹자”던 현대건설, 이유 있었다]

“이사비”가 웬만한 서민의 집값 혹은 전세보증금에 육박하는 금액이라면 그 돈으로 이사를 가는 분들의 살림살이는 대체 얼마나 호화로운 살림살이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게 만드는 기사다. 하지만 사실 강남의 노른자 땅의 거주민이라 할지라도 상상을 넘는 호화로운 살림살이는 아닐 것이 분명하다. “떡값”이 떡값이 아니듯 이 혈투에서 현대건설이 제공하겠다던 “이사비”도 이사비와는 거리가 먼 돈일 것이다. 그 돈은 강남의 노른자 땅에서 살고 있는 이가 그 땅이 개발됨으로써 더 커질 교환가치의 일부분을 개발업체와 나눠먹는 돈이다.

좁은 국토에서 살면서 토지이용을 고도화(高度化)하기 위한 대안으로 정부가 선택한 아파트는 오늘날 가장 일반적인 주거형태가 되면서, 거주의 수단이자 동시에 욕망의 수단이 된지 오래다. 인프라가 잘 갖춰진 입지에 대규모로 건설되는 아파트 단지는 거주를 균일화시키는 단점이 있을지 몰라도 브랜드화와 일괄개발을 통해 거액의 교환가치를 재창출하기에 적합하기에 매우 매력적인 상품이다. 그러니 아무리 집값을 잡겠다고 정부에서 불방망이를 휘둘러도 그 희소성으로 인해 강남의 아파트값은 쉽사리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울 송파구 잠실·미성·크로바 재건축조합은 26일 이사비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수주전이 한창인 이 사업지에서는 롯데건설이 사업제안 조건으로 ‘이사비 1000만원과 이주촉진비 3000만원’을 앞세워 과열 논란이 번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조합원들의 입장에서는 낮은 공사비와 선물 제공 등 건설사들이 벌이는 양적 경쟁에 휘둘리지 말고 시공품질과 특화 설계 등 질적 경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물량가뭄이 만든 출혈경쟁 정부·건설사·조합 모두 변해야, 건설경제신문, 2017년 9월 229일]

인용한 기사의 제목처럼 건설시장의 물량가뭄과 강남권 대규모 개발이라는 상황이 맞물려 이런 과열양상을 빚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전국적인 관심이 쏟아지게 되자 또 다른 재건축조합은 아예 이사비를 받지 않기로 못을 박았다. 이번처럼 주목을 받게 되면 아무래도 재건축조합역시 운신의 폭이 자유롭지 못할뿐더러 종국에는 시공품질의 저하로 이어질 개연성도 있다는 점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치 정치인이 유권자에게 향응을 제공한 비용은 당선 이후 비리로 다시 만회하듯이 장사꾼도 밑지는 장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건축이라 함은 낡아서 사용가치가 떨어진 주택을 다시 지어 사용가치를 높이겠다는 개념이고 재건축 비용은 원칙적으로 집주인이 부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라는 주택형태는 건폐율과 용적률의 조합을 통해 일반분양분을 만들어내 원래 집의 재건축 비용을 부담해줄 수요자를 창출해내는 마술을 부릴 수 있다. 거기에 가구당 7000만의 이사비까지 안긴다는 것은 단순셈법으로 보자면 일반분양분에 해당비용을 보태도 판매가 가능하다는 계산일 것이다. 아마도 7000만원이 아무도 부담하지 않고 공중에 사라지는 마술은 불가능할 것이다.

Unité d'Habitation de Marseille 2.JPG
By AnapuigOwn work, CC BY-SA 3.0, Link

아파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였던 르꼬르뷔제(Le Corbusier)의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를 만날 수 있다. ‘빛나는 도시’ 등의 개념 디자인을 통해 거대도시의 생활행태의 개념을 제시한 르꼬르뷔제는 이 집단거주지에서 거주민들이 일종의 공생의 공동체 의식을 쌓기를 바랐던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의도가 성공한 것도 같다. 적어도 거주민의 주택에 대한 교환가치의 보존 내지는 극대화라는 공동의 목표의 관철에 있어서만큼은 욕망이 표준화된 아파트만큼 효과적인 주거형태가 또 있을까 싶다.

가계부채 단상

두 번째 척도는 2000~2005년 급격히 변화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신용(간단히 말해 가계부채) 비율이다. 이는 일부 국가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체코공화국의 경우 2000년 8.5퍼센트였던 수치가 2005년 27.1퍼센트로 상승했고 [중략] 한국은 33퍼센트에서 68.9퍼센트로 증가했다. [중략] 성숙한 시장경제 국가들의 경우 비율 자체는 높지만 증가율은 신흥 시장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를테면 일본은 2000년 73.6퍼센트에서 2005년에는 77.8퍼센트, 미국은 104퍼센트에서 132.7퍼센트로 증가했다.[축출 자본주의, 사스키아 사센 지음, 박슬라 옮김, 글항아리, 2016년, p163]

읽고 있는 책에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가의 가계부채 문제가 언급되어 있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세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고 있어 인용해보았다. 이 인용문에는 특이한 두 범주의 네 국가가 언급되어 있다.. 2000~2005년 기간 동안의 추세를 볼 때 체코와 한국처럼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크진 않으나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나라들과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크지만 증가세가 둔한 나라들이 언급된 나라들이다.

그런데 그 증가세나 비중의 변화를 보면 확실히 한국은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두드러진 나라랄 수 있다. 해당 기간 동안 한국은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50% 미만에서 그 이상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는데 증가율은 109%다. 그 기간 동안 가계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하여 마침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벌어진 미국의 28% 증가율보다 훨씬 높은 증가율이란 점이 인상적이다. 비중의 변화나 증가율에 있어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두드러진 나라였다.

최근 추세는 더욱 극적이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해당 비중은 160.7%다. 2005년 기준 132.7%였던 미국의 비중은 2013년 기준 115.1%, OECD의 비중은 135.7%다. 미국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부채청산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의 경우 금융위기 당시에도 인위적인 저금리 상황을 조성하면서 제대로 된 부채청산이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부채청산의 이연은 저금리 기조 하에 더욱 더 지연되고 있다.

2016년 1분기 기준 가계대출은 예금취급기관 825.5조원, 기타금융기관 332.9조원으로 도합 1,158.5조원이다. 이에 실질적인 가계대출이라 할 수 있는 개인사업자대출 243.3조원을 합하면 전체 가계대출은 1,401.8조원에 달한다.1 이 대출규모는 가처분소득 대비하여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도 위험하거니와 정부, 가계, 기업 부채의 비중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전체 부채 중 가계부채 비중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이렇게 질과 양에 있어서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비정상적이라 할 수 있는 가계부채의 용도는 무엇일까? 최근 몇 년간의 가계대출 증가가 주택담보대출 규제완화 이후 급증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투입됐다.2 덕분에(!) 최근 수도권 집값은 오르고 있다. 아파트고 단독주택이고 할 것 없이 경매시장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다. 소위 “갭투자” 열풍과 브렉시트는 미국의 금리인상을 늦출 것이라는 예측 하에 불꽃은 더욱 더 화려하다.

관건은 그 불꽃이 언제까지 타오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고 한다. 올 8월부터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의 일시상환이 시작된다. 연도별 주택매매 건수는 2015년 119만 건으로 사상 최대 건수의 주택거래가 이루어졌다. 2017~2018년 신규로 입주할 가구 수는 70만 가구로 예측된다. 과연 그때 현재 청약열풍에 편승한 이들이 모두 새 아파트에 입주할 것인가? 빚으로 산 집을 가지고 시도한 “갭투자”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파트를 둘러싼 재산권 투쟁

아파트라는 독특한 주거형태는 그 물리적 형태뿐 아니라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단독주택과는 매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동일한 평형, 동일한 설계, 동일한 자재, 동일한 입지에 지어지는 아파트는 분양할 때에도 이른바 “로열층”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유사한 분양가에 판매된다. 주거, 즉 상품의 사용이 시작된 이후에도 한 가구의 판매가가 바로 다른 가구의 판매가에 영향을 미치는 등 군집적인 가격형성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밀도 탓에 우리나라는 근대화 이후 아파트를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일상적인 수단으로 삼아왔다. 일제 강점기의 몇몇 공동주거양식의 주택이 건설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1958년 종암 아파트, 1964년 마포 아파트 등이 세워지며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가 열렸다. 이후 아파트 전성시대는 공기업의 주택공사의 주공아파트나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같은 고급형 아파트가 인기를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아파트 주거문화와 시장이 형성되어왔다.

그 뒤 1970~8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 주거안정이나 자산형성의 범위를 넘어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간주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에 따라 아파트 수는 전체 주택수 대비 1975년 현재 8만9천여 개로 1.89%에 불과했지만 2010년 현재 8백만 개를 넘어 58.96%를 차지하고 있다. 동기간 전체 주택수는 2.93배 늘어난 와중에 아파트 수는 91.71배 늘었다. 이쯤 되면 가히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러도 하자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연도별 종류별 주택수 추이1

이 아파트 공화국에서 최근 서울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새 입주민이 이사하는 것을 막는 사건이 벌어졌다. 신용위기 이후 미분양 아파트가 늘고 건설사가 위기타개를 위해 할인분양에 나서면서 이런 볼썽사나운 사태가 벌어진 적이 종종 되지만 이번에는 특히 새 입주민이 “사회적 배려 대상자”였다는 점에서 비난이 더 거세다. 기존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라면서 새 입주민의 출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사회적 배려”는 “재산권 침해” 앞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이러한 부동산을 둘러싼 “재산권” 보호 투쟁이 특히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벌어지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아파트는 비슷한 조건으로 만들어진 공동주택이기에 할인분양이나 급매물로 인한 가격하락이 본인의 집값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여기게 마련이고 실제 그런 경우가 많다. 이로 말미암아 집값 유지를 위한 투쟁은 ‘이불 베란다에 널지 않기’에서부터 ‘싼 값에 들어오는 입주민 가로막기’까지 다양하다.

아파트의 가격 형성이 군집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이런 특성 이외에 “재산권 침해”에 대한 반응이 이토록 격렬한 근본 배경은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구성 때문일 것이다. 2014년 5월 현재 국내 가계의 총자산대비 금융자산 비중은 34.3%로 미국, 일본의 70.4%, 60.2%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자산 중 주택을 비롯한 부동산 비중이 압도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인 시장가격의 형성과정인 할인판매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가진 것을 다 뺏기기 때문에.

이번이 처음도 아니며 끝도 아닐 것이다

“하우스푸어” 단상

“하우스푸어”의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대중 다수가 가지는 – 특히 무주택자 – 당연한 정서지만 급진주의자라면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도 부채를 부추기는 현대 자본주의의 희생자라는 견지다. 그들의 문제는 상투를 잡았다는 것일 뿐.

정책적으로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게 무주택 빈곤자의 방치는 장기적인 사회비용 이외에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하우스푸어를 내버려두면 부채의 질을 악화해 금융 시스템을 교란시킬 우려가 크다. 자의든 타의든 금융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투입규모나 로드맵을 볼 때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규모도 작을뿐더러 결국 집주인이 집을 포기하는 셈이어서 한계에 몰린 이들만이 정책에 호응할 뿐이다. 결국, 정책효과가 크지 않은, 가진 자에 대한 구휼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한 세기 전엔 정부도 절약을 강조했지만, 전후 케인스의 영향 등으로 개인도 빚을 얻고 신용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부채사회의 최대 비극은 2008년. 현 체제의 대안은 부채사회의 청산인데 그 경우 경제가 죽는 모순에 처해 있다는 점이 비극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 정치권은 이념 성향을 가리지 않고 소유권 사회라는 기치로 매진해왔고 그 수단은 높은 레버리지 대출이었다. 그것은 ‘정부의 실패’가 아닌 ‘부채 사회의 실패’다.[출처]

아파트

어쨌든 아파트는 뭔가 떨어지고 분리되어 존재하는 주거공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어원 語源은 불어의 아파르트망 appartement으로 알려져 있다. 18세기 프랑스 귀족의 대저택에는 가족과 하인 이외에도 매일 수십 혹은 수백 명의 사람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거하기 위해서 집은 몇 개의 공간 군群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가령 아파르트망 드 파라드 appartement de parade는 공적인 용무로 수십 명의 사람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었고, 아파르망 드 소시에테 appartement de societe는 안주인이 서너 명의 친구와 친척들을 초대하여 간단한 티파티 tea party를 dus는 곳이었으며, [중략] 그런데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귀족계급이 몰락하면서 그들의 대저택 역시 주인을 잃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틈바구니를 비집고 새로 성장한 도시중산층이 귀족의 대저택을 아파르트망별로 나누어 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아파트의 기원이라고 한다.[아파트에 미치다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이숲, 2009년, p20]
아파트 건설초장기만 해도 국가 최고지도자의 관심은 비상했다. [중략] 박정희 대통령(당시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또한 1962년 마포아파트 준공현장에 직접 나가 주거생활의 문화적 향상을 역설했다. 그는 축사에서 [중략] “여기에서 생활혁명이 절실히 요청되는 소이 所以가 있으며 현대식 시설을 갖춘 마포아파트의 준공은 이러한 생활혁명을 가져오는 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박정희 대통령은 “본 (마포) 아파트가 혁명한국의 한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고까지 했다.[같은 책, p39]

아파트의 역사를 두고 두 개의 혁명이 관통하는 모습이 재밌어서 옮겨 적어보았다. 하나는 근대 혁명의 시대를 연 역사적 사건 프랑스 혁명이고 또 하나는 남한의 정치에 큰 획 하나를 그은 516혁명(옳게는 516군사 쿠데타)이다. 둘 모두 변혁의 시기를 거치면서 이전의 주거양식과는 전혀 다른 주거양식이 삶의 공간으로 채택되었거나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적어도 2010년 남한 땅에서 아파트라는 주거형태가 오히려 수구적인 공간이 되었음을, 적어도 더 이상 혁명을 꿈꿀만한 공간이 아님을 목격하면서 묘한 상념에 빠지게 된다.

보금자리 주택 단상

반값아파트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로망이다. 정주영의 말 그대로 “반값아파트”가 그랬고, 홍준표의 “대지임대부 분양주택”(주1)이 그랬고, 현 정부의 “지분형 아파트”가 그랬다. 하지만 그러한 구상들은 제각각 이런저런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실현되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생산될 아파트들이 결국 불완전 상품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즉 소유할 자산이 온전히 구입자들의 재산권 행사에 적당치 않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나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재산권 행사를 온전히 할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주택에 대해 사회 상당수가 사용가치 지향적으로보다는 교환가치 지향적으로 사고하는, 그리고 주류사회가 그것을 당연시하는 현실 속에서 그 재산권의 행사가 온전치 못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반값아파트’는 어쩌면 이 사회에서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유니콘(?)과 같은 존재였다. 적어도 “보금자리 주택”이 나오기 전까지는.

존재 불가능한 ‘반값아파트’를 갑자기 정부에서 공급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까닭은 무식할 정도로 단순하다. 바로 싼 땅에 짓겠다는 것이다. 여태의 정권이 건드리길 꺼려했던 바로 그린벨트를 해체하여 아파트를 짓겠다는 구상이다. 여태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안한 – 미래세대를 위해? 아니면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 것을 현 정부는 거리낌 없이 해내버렸다. 수십 년간 짓눌려온 지주들의 보상심리로 인해 땅값이 정부의 의도만큼 낮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예측이지만 현 정부라면 또 억지로 싸게 사들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도시의 허파 기능을 해야 한다는 본연의 목적보다는 오히려 도시 연담화의 촉매제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쨌든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인정되던 그린벨트가 사실상 이번 조치로 인해 해체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녹색시대를 외치는 정부에서 말이다. 결국 자생적으로 팽창하는 서울과 인근도시들의 희미한 경계선 역할을 해오던 그린벨트는 그 의미가 퇴색되고 실질적으로 수도권은 한국 인구의 1/4 이상을 수용하는 초거대 도시권으로 성장할 것이다.

한편 조선일보의 어느 칼럼도 주장하였듯이 보금자리 주택의 전량을 임대하지 않고 상당 부분을 분양하는 것은 현 정부가 이것을 기회로 부동산 시장의 활황세를 이끌어보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막대한 시세차익이라는 기대감이 바로 보금자리 주택의 흥행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그것의 분양이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의무주거기간과 환매제한 기간의 도입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이 제도가 판교에서 얼마나 쉽게 무력화되었는지는 시장(市場)이 더 잘 알고 있다.

진정 현 정부가 반값아파트를 그들이 수요층으로 생각하고 있는 월 300만 원 이하의 서민층에게 공급하고 싶다면 서울시의 시프트처럼 장기임대로 내놓던가, 아니면 최소한 분양분에 대해 투기가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있도록 환매제한 따위의 꼼수부리지 말고, 분양분을  정부가 다시 물가상승분만을 반영하여 되사는 방식을 채택함이 옳다. 그러면 지금처럼 청약통장이 갑자기 금값이 되는 등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달아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시장의 냉철함은 정부가 바라는 바가 아니긴 하다.

결국 보금자리 주택은 △ 주장하는바 정말 땅을 싸게 매입할 수 있는가 △ 반대로 지주들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인정해줄 수 있는가 △ 그린벨트의 고유목적을 훼손하는 일은 없는가 △ 실수요 층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가 △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키지는 않을 것인가 등 허다한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4대강 몰아붙이기가 그러한 것처럼 이 정책도 반대자들이 생각할 틈을 갖지 못할 정도로 번갯불에 콩 볶아먹기 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 정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랄 수 있을까?

(주1) 아파트 분양시 건설회사는 건물만 분양하고, 대지는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이 무주택 서민들에게 원가 수준으로 사실상 영구 임대함으로써 아파트 분양가를 낮춘다는 주택공급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