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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의 삼성활용론 중 국민연금의 역할에 관하여

지금 삼성전자의 경우, 국민연금공단이 7~8%의 지분을 갖고 있다. 회장 유고가 발생하는 경우, 국세청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3세들로부터 상속세를 삼성전자 주식으로 받아(주식 가격을 더 높게 쳐줄 수도 있다) 국민연금공단에 인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공단이 삼성전자의 확고한 최대 주주가 되고 삼성 가문의 지분은 크게 줄어든다. [중략] 삼성전자가 국민경제에 유리한 방향으로 경영하도록 압력도 행사할 수 있다. 이건희의 후계자가 엉뚱한 경영을 일삼는다면 일정한 기간 뒤에 CEO 자리에서 쫓아낼 수도 있다.[“필요하면 삼성법도 좋다”]

장하준 교수는 국내의 좌우 진영 모두에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현실주의자” 혹은 “실용주의자”의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에 대한 위와 같은 입장이 그의 전형적인 시각인데 어느 진영도 선뜻 동의할 수 없는 해법일 것이다. 좌파의 입장에서는 “봉건적인” 기업 지배권을 보장해주는 것이고 우파의 입장에서는 “연기금 사회주의”의 도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법 제102조(기금의 관리 및 운용) 보건복지부장관은 국민연금 재정의 장기적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킬 수 있도록 제103조에 따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한 바에 따라 다음의 방법으로 기금을 관리·운용하되…

국민연금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금 운용원칙은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우파의 이념공세를 막을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원칙 자체가 국민연금을 주주 자본주의로부터의 방패막이로 사용하려는 장 교수의 생각과 배치되는 것이다. 국민연금 역시 다른 주주처럼 단기차익을 시현하려는 맘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누가 보장하는가?

기관투자자에 포함되는 펀드, 연금기금, 생명보험사는 청구권의 만기(maturity of liabilities)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펀드, 특히 공포펀드의 경우 환매요청과 거의 동시에 자금을 인출할 수 있으므로 청구권의 만기는 초단기에 해당한다. 반면, 생명보험사의 보험계약은 비교적 장기이며, 퇴직연금, 국민연금 등 연금기금의 청구권의 만기는 초장기라 할 수 있다.[기관투자자가 자본시장 발전에 미치는 영향 및 정책과제, 자본시장연구원, 2014년 2월]

청구권의 만기가 길다는 점은 확실히 연금의 단기수익 추구 성향을 경감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다소 안정적인 경영에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연금은 수익 추구 집단이다. 주식시장 부양을 위해 연금을 동원한달지 하는 여태의 행태가 장 교수가 “국민경제에 유리한 방향”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또 다시 연금을 호출한 명분은 아닌 것이다.

국민연금에 돈을 붓고 있는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분명 연금은 궁극적으로 수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연금의 주주행동주의가 옳은 것이냐 혹은 국민경제에 유리한 방향이 연금에 유리한 방향이냐 등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운용원칙이 좀 더 고유특성에 맞게 조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시장질서에 위배되는 한국의 전력시장, 침묵하는 자본

한국전력공사의 적자폭이 커지면서 상반기(1∼6월)에 1조3000억 원이 넘는 손실을 본 것으로 집계됐다. 한전 측은 “전기요금이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력 판매가 늘면서 적자폭이 커졌다”고 설명했다.[한국전력 상반기 적자 1조3000억 원 넘어]

2008년 말 기준으로 가정용 전기 사용량은 전체 사용량 대비 14.9%, 공공기관은 4.4%에 불과하다. 상업용 등 서비스업과 전철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모두 합쳐도 30% 남짓이다. 나머지 51.5%가 산업용으로 사용되는데 그 중 48.9%를 제조업체에서 사용한다.[전력 51.5% 쓰는 산업용, 너무 싼게 문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산업용 전력소비가 전체전력의 50%를 넘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경제초점] 4번의 여름, 5번의 겨울]

특히 OECD 국가 최저 수준인 전기요금이 강점이라는 평가다. 실제 한국 전기요금은 주요 선진국 대비 40~50% 수준이다.[글로벌 데이터센터 한국에 몰리는 이유는]

지난해 산업용 전력 평균 판매단가는 Kwh(킬로와트)당 76.73원으로, 전력 생산원가인 96원보다 19.27원 싸게 공급받았다. 이는 또 전체 평균 전력 판매단가인 87원보다 10.27원 더 싼 가격이다. 대기업은 전기를 사용할 수록 상대적으로 이익을 얻은 셈이다.[“한전, 대기업 지원하다 거덜”‥전기 1.5조 싸게 공급]

정리해보면 한국전력이라는 거대 공기업이 적자폭이 커져가고 있는데, 이는 원가보다 싼 – OECD 중 제일 싼(!) – 요금에 OECD에서 가장 전력소비 비중이 높은 기업들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제조업체 및 수출업계에 대한 전략적 지원을 통해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국가자본주의적 통치행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는 장하준 교수가 그의 저서에서 말했듯이 엄밀하게 말해서 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자유 시장은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은 이를테면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우리는 탈산업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계획 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 등의 흥미진진하고 도전적인 주제들이다. 이전의 그의 저서들의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적잖이 있지만 그게 흠이 될 순 없고 결국 각각의 주제들은 그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국가, 규제, 계획은 非자본주의적인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며, 어떻게 규제하고 계획하느냐가 관건이다’라는 메시지로 수렴되고 있다.[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이 말하지 않는 두어가지]

전력시장만을 놓고 볼 때,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은 자유 시장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일부 전력기업들을 민영화하여 부분적으로 경쟁시키고는 있으나, 이후 민영화 일정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 노조 등의 반대투쟁, 현실적인 민영화 프로세스의 어려움 등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국가가 통제하는 공기업적 시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장에서는 여전히 ‘국가의 규제와 계획’이 엄존하고 있다. 다만 그 계획은 불편부당하다기보다는 자본에 유리한 계획이다.

전경련은 이날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대한 의견’ 성명서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경직적인 정규직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정규직의 과도한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보다 많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전경련 “비정규직 대책, 시장질서 위배”]

얼마 전에 정부가 난데없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뜬금없는 소리를 하자 – 결국 립서비스에 불과한 – 이에 화들짝 놀란 전경련이 노발대발했다는 기사다. 이 기사를 보면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자본이 정부의 계획과 규제에 얼마나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시장질서에 위배”된다는 말 한마디는 그들이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만능무기다. 다만, 그들에게 유리한 “시장질서 위배”엔 침묵하는데, 전력요금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포항제철 건립의 자금조달에 관하여

식민지와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난 약소국 남한은 – 또는 적어도 그 당시의 위정자들은 – 하나의 꿈이 있었다. 그것은 ‘산업의 쌀’이라는 철을 생산하는 제철소를 갖는 것. 특히 철강생산 능력이 북한에 크게 뒤떨어진 남한은, 이승만 정권 이래 지속적으로 제철소 건립을 추진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드디어 제철소 건립이 가시화된 것은 1966년 이었다.

그해 미국,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 4개 국가와 이들 나라의 7개 철강업체로 구성된 대한국제철차관단(KISA : Korea International Steel Associates)이 정식으로 발족되었다. KISA의 합의사항은 한국에 종합제출 건설을 위해 차관단이 1억 달러, 한국이 2천5백만 달러를 출자하여 1967년 봄까지 공장을 착공하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 공염불이었다. KISA와 남한과의 합의각서에는 자금 조달시기, 배분율, 책임소재 등에 대한 명시가 없었다. 이 때문에 사업성이 미진하거나 자국 및 자사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발뺌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이 난국을 타개한 것은 포철사장 박태준 씨였다.

대일청구권 자금을 포철 1기 건설에 투입하자는 박태준의 절묘한 아이디어는 확인하나마나 현실성을 담보했다. 3억 달러의 무상자금만 해도 1966년부터 10년간에 걸쳐 지급하도록 되어 있으니 아직 절반은 남았을 터, 대외경제협력기금(유상자금) 2억 달러에서도 여유가 있을 터. [중략] ‘하와이 구상’을 서둘러 실현하려면 장애 하나를 넘어야 했다. 양국 정부가 농림수산업 발전을 위해 사용한다고 합의해둔 자금의 용처를 바꾸는 것. 먼저 박정희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일본 내각을 설득해야 했다.[세계최고의 철강인 박태준, 이대환, 2004년, 현암사, pp273~274]

박태준 씨가 자금조달로 어려움을 겪을 당시 머리를 식히러 찾은 하와이에서 떠올랐다는 이 아이디어 덕분에 자금조달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고, 결국 남한 경제사에 큰 획을 그은 포항제철의 건설은 본 궤도에 접어들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박태준 씨가 사용한 자금이 결국 “농림수산업 발전을 위해 사용한다고 합의해둔 자금”이었다는 점이다.

“농림수산업의 발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당시 일본의 통산상 오히라의 말을 빌리자면 “경제원칙 상 산업화의 첫 단계는 농업자립화이므로, 남한은 비료공장, 농기계공장을 세워 농업부터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원칙이 옳건 그르건 간에 결국 당시 대한중석의 사장 지위였던 박태준 씨는 일개 기업인으로 대일청구권의 용도를 바꾼 셈이다.

드디어 1969년 12월 韓日간에 종합제철에 관한 기본협약이 체결되어 건설에 착수하게 되었다. 韓日 국교정상화 때 양국간에 합의된 청구권 및 對韓차관 공여액은 무상자금 3억 달러, 유상자금 3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 이상으로서 무상 및 유상자금 각 3억 달러에 대해서는 항일독립유공자보상, 對日민간청구권보상, 평화선철폐에 따른 어민보상 등 국민적 요구가 방대했다. 朴대통령은 국민적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을 각오하면서 낭비보다는 건설이라는 견지에서 종합제철건설에 상당한 액수를 투자하는 대영단을 내렸다.[김정렴, 한국경제정책30년사, 중앙일보사,  pp138~139]

당시 재무부/상공부 장관을 역임한 김정렴 씨의 진술은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즉, 남한이 일본과의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받아낸 각종 자금은 “농수산업의 발전”뿐만 아니라 일제(日帝)시대로 인해 고통 받은 이들과 국교정상화로 피해를 입는 이들의 청구권이기도 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이런 보상을 “낭비”로 보고 종합제철 건설에 투자하는 “대영단”을 내린다.

이러한 일련의 모습은 남한경제의 주요특징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요소투입 주도 성장모델의 한 단면이다. 일단 외자(外資)든 내자(內資)든 – 거의 외자였지만 – 동원하여 정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업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의식적으로 해당산업을 육성하는 것, 자유시장 경제원리와 별로 맞지 않는 이 방법을 박정희가 채택하였고 포철이 그 대표사례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작가 장하준 씨는 이러한 국가주도형 자본주의 모델에 대해 긍정적인 편이다(또는 적어도 그 존재의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이러한 의식적인 경제정책이 가지는 함의에 공감한다. 만약 당시 경제관료들이 ‘남한은 농업국가가 적당하다’는 국제사회의 충고(?)를 받아들였으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눈에 선하다.

문제는 경제근간이 자본주의인 사회에서 그 요소투입 모델이 성공한 이후다. 이후 포철에서 만든 철로 농기계를 만들어 농업 발전에 기여한 정황은 있었겠으나 포철이 창출한 잉여로 항일독립유공자나 위안부들의 뒷바라지를 해주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것은 악덕기업이어서가 아니라 주주의 이익 – 또는 노동자의 이익 역시 – 을 반하는 짓이었기 때문이다.

일견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자본주의의 기업원리를 고수하려 한다면 애초에 자금용도가 제철소 건립을 위한 상업차관이 아니었던 – 어찌 보면 일제로 인해 피해 입은 국민 모두의 것인 – 배상금을 쓰지 않았어야 할 일이다. 그래야만이 포철이 투입과 산출이 자본주의 경제원리에 그대로 부합하는 기업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이 말하지 않는 두어가지

장하준 씨의 등장은 경제학계에, 특히 한국경제학계에 있어 매우 신선한 등장이었다. 소위 “좌익” 경제학자가 아니면서도 경제학, 특히 자유 시장 경제학이 쌓아놓은 여러 우상들을 편안한 말투로 파괴해가는 그의 행로를 바라보는 것은 매우 독특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된 그의 등장 초창기, 한 유명한 “좌파” 지식인은 왜 우익 박정희를 옹호하느냐며 따지고 들었지만 결국 스스로의 경제학에 대한 무식만 폭로한 셈이 되었고, 그로 인해 장하준 씨의 독특한 이론적 지형이 다시 각인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그가 쓴 <쾌도난마 한국경제>,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일련의 대중 경제학 서적들은 ‘경제학 서적은 곧 財테크 서적’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한국 독서계에서 이례적으로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흥행 포인트는 앞서도 말했지만 그만의 독특한 언어와 시각으로 – 아시겠지만 일례로 그는 책에 그래프를 쓰지 않는다 ― 경제학의 우상을 하나하나 부셔나가는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카타르시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역시 이전 저서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미덕을 충실히 지니고 있다.

책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이 책은 자본주의 및 자유 시장에 관해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23가지 선입견에 대해 – 주로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주입한 – 하나하나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반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누가 – 저자?, 영국 편집진? 한국 편집진? – 적었는지 모르겠으나 책 서두에 적혀있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는 7가지 방법”에는 각각의 궁금증을 풀려면 어느 어느 장을 보라 일러주고는 제일 마지막에 “또는 그냥 순서대로 쭉 읽는다”라고 쓰여 있다. 나는 이 방법을 따랐고 무리 없이 읽힌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은 이를테면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우리는 탈산업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계획 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 등의 흥미진진하고 도전적인 주제들이다. 이전의 그의 저서들의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적잖이 있지만 그게 흠이 될 순 없고 결국 각각의 주제들은 그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국가, 규제, 계획은 非자본주의적인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며, 어떻게 규제하고 계획하느냐가 관건이다’라는 메시지로 수렴되고 있다.

요컨대 그는 “자본주의는 나쁜 경제 시스템이지만 다른 모든 시스템이 더 나쁘기”(p328) 때문에 1980년대 이후 득세하고 있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만 걷어내어 수리해서 쓰자고 주문하고 있다. 결국 그는 수정자본주의 시절을 향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케인즈 주의적이며, 그러한 길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을 규제 및 계획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학파적으로 보인다. 물론 “스스로 좌파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장하준은 BBC로부터 좌편향이라고 묘사되는 사람”이라며 권위에 기대어 좌파라고 둥쳐서 딱지 붙이는 바보도 있다.

이제 그가 앞으로 행보에서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적어보자. 우선 과연 자유 시장 자본주의는 그가 묘사하고 암시하고 있듯이 자본주의의 변종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물음을 답해주었으면 좋겠다.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가 좋았던 수정 자본주의 시대의 이론적 공세에 의해 발생한 종양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수정 자본주의 속에 내포되어 있던 필연적인 자본주의의 경로라면 어떻게 되는가? 사회주의 득세에 대항하기 위해 유지되어 온 국가주도 복지 자본주의 모델은 과연 지속가능한 모델이었나 하는 물음이 뒤따라온다.

이 의문은 다시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한다. 자본가는 자본주의자인가? 보다 정확히 말해 장하준 씨가 꿈꾸는 이상적인 자본주의에 선선히 동의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일단 저 물음에 답해두자면 자본가는 자본주의자, 적어도 자유 시장 자본주의자는 아니다. 그들은 기업을 계획하고 – 그들은 공정거래위원회를 아주 싫어 한다 – 국가의 규제를 – 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제와 지원만을 – 원한다. 그런 면에서 장하준 씨의 손을 들어주겠지만 장하준 씨가 국가의 이니셔티브를 주장하는 순간 얼굴표정이 바뀔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을 순위를 매겨보자면 초국적 기업들이 대부분의 나라를 밀쳐내고 리스트를 대부분 차지해버린다는 사실은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페이스북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인구를 가진 사이버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간섭받지 않는 권력이 선거에 의해 정기적으로 교체되는 행정 권력의 행정지도에 얼마나 선선히 응해줄지 심히 의문이다. 그가 어느 정도 향수를 가지고 있는 박정희 시절의 공권력을 오늘날 동원할 수 있는 이는 차베스 정도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장하준 씨도 경제가 정치적인 힘의 균형의 문제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시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는 청맹과니의 말을 온전히 믿는 이들은 행정부나 자본 내에 아마 없을 것임에 그들은 경제운용에 관한 일종의 타협을 한다. 그는 이 상황에서 결국 상대적으로 공익을 대변하고 있는 행정부의 이니셔티브를 주문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아직 그가 그 이니셔티브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에 대해선 별로 이야기한 바가 없다는 점이다. 그의 다음 책의 제목은 <그들이 접수하지 않은 권력 23가지>정도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BIS비율

2008년 11월 21일(금) CBS의 <김현정의 뉴스쇼>의 김현정 앵커와 장하준 영국 캠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의 대담 중 일부내용이다. 이 글에서 보면 장하준 교수는 이 시점에서 굳이 은행이 BIS비율을 맞출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은행 문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최근 국내 은행들이 BIS 비율이 하락하면서 국제신용평가회사에서 장기전망을 부정적으로 바꾸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 악재들을 맞고 있는데, 이것도 예상하신 결과인가요?
— 그렇죠. BIS 비율 자체가 문제가 있습니다. 이게 자산 대비해서 대출할 수 있는 비율을 정해주는 건데. 예를 들어 자산이 100만큼 있으면 대출은 1,250만큼 할 수 있다든가 이런 식으로 그 비율을 정해주는 건데. 문제는 경기가 안 좋으면 자산 가격이 내려가면서 자기네 가지고 있는 자산 규모가 줄어들면서 BIS 비율이 자동으로 내려가게 돼 있거든요. 그러면 은행은 대출을 안 줄일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경기가 하강이 되고. 또 그 과정에서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BIS 비율은 더 떨어지고.  이거 저만 하는 얘기가 아니라 외국 전문가들도 계속 BIS 가지고 얘기할 때 논란이 되는 거거든요. 그리고 호황 때는 반대로 거품을 조장하는 면 있고. 이걸 자체를 바꾸어야 해요. 은행들이 물론 조금 잘못해서 BIS 비율이 내려가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산 가격이 떨어져서 그런 거거든요. 

어떻게 바꿀 수 있나요?
— 그것도 국제적인 규약을 바꾸어야죠. 그리고 정 급해지면 우리나라만 나서서, 우리나라는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앞으로 2년 동안 BIS 비율을 중지하겠다, 이게 국제적 협약도 아니거든요, 권장 사항이지.

그런데 그 BIS 비율이라는 건 은행이 얼마나 튼튼한가를 보여주는 지표 아닌가요?
— 일리가 있는 지표죠. 문제는 뭐냐 하면, 개별 은행 입장에서 봤을 때는 BIS 비율을 따라서 경기가 안 좋을 때 돈을 안 빌려주고 틀어쥐고 있는 게 맞는 거지만, 전체적인 경제 전체 입장에서 볼 때는 그렇게 하면 다 같이 피해를 보는 거죠.[출처]

장 교수는 대담에서 경기가 좋지 않으면 은행이 BIS비율을 지키기 위해 대출을 줄이고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은행의 자산 가격이 내려가면서 – 보다 정확히는 은행의 위험가중자산이 증대되면서 – BIS비율이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지금은 위기상황이니 우리나라 금융기관이 BIS비율을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하라는 과격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어 매우 놀랍다. 금융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흔히 BIS비율하면 금과옥조처럼 지켜야 하는 국제적 기준으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 글을 보자.

미국이 이 바젤은행감독위원회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80년대 자기자본비율을 규제하면서부터였다.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의 전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볼커가 이 자기자본비율의 국제적 통일을 제안한 이후 바젤은행감독위원회를 중심으로 자기자본규제의의 국제적 통일에 대한 연구와 토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1986년 9월 동위원회의 최종보고는 각국 은행시스템의 다양성을 중시하여 최저자기자본비율의 획일적 적용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미국은 바젤은행감독위원회에서 전체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을 단념하고 미국의 제안에 찬성하는 영국을 파트너로 삼아 반대국가들을 개별적으로 공격하는 전략을 채택하였다. 독일과 일본은 초기에는 미국과 영국의 제안에 대해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였지만 미국의 집요한 설득과 회유에 이끌려 자기자본비율의 국제적 통일에 최종 동의하였다. 이 동의에 기초하여 1987년 12월 바젤은행감독위원회 제안이 발표되고 6개월간 민간금융관계자들의 토의를 거쳐 1988년 7월에 BIS자본비율이 국제규준으로 채택되었다. (중략) 요컨대 80년대 볼커 주도하에 이루어진 은행의 자기자본비율 규제라는 새로운 규준의 확립, 월가를 중심으로 한 자본시장 규율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려는 시도, 1933년에 제정된 글래스-스티걸법의 사실상의 폐지와 1999년 그램-리치-블라일리법(Gramm-Leach-Bliley Act)으로의 대체를 통한 금융겸업화와 복합금융집단(financial conglomerate)의 제도화, 공적 연금=사회보장체제 축소에 의한 사적 연금 확대, 확정급부형 기업연금의 확정갹출형 기업연금으로의 전환 등 이 모든 금융제도개혁은 이 부활한 금융자본헤게모니 아래서 추진된 것이다. 미국은 이런 제도개혁을 세계적 표준으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미국의 금융헤게모니를 관철시키고자 하였다.[신자유주의적 금융화와 미국자본주의의 구조변화, 전창환 한신대학교 국제경제학과 교수, 미국자본의의 해부 중에서, 풀빛, 2001년, pp29~30]

애초 세계은행이나 IMF에 그늘에 가려 찬밥 신세를 받았던 BIS(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 ; 국제 결제 은행)가 미국의 금융헤게모니 전략의 일환으로 BIS비율을 국제적으로 관철시키는 도구로 활용되어 – 자기 혼자 지키면 경쟁력 떨어지니까 – 화려하게 국제금융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스토리다. 좌파적인 뉘앙스 때문에 거북해하실 분도 계시겠으나 BIS비율은 아무런 강제할 법적 권한이 없는 권고사항임은 분명하다. 물론 그 권고사항을 지키지 않고 장하준 교수의 말대로 하면 법보다도 무서운 신용 마피아들의 철퇴가 내리꽂힐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off-balance sheet

현재 진행되고 있는 월스트리트의 위기에 대해 차베스나 그린스펀만큼이나 할말이 많으실 것 같은 – 또는 논평을 집요하게 강요당하실 것 같은 – 장하준 교수께서도 한겨레21에서 평소 그의 지론에 입각하여 현 사태를 비판하셨다. 역시 평소의 그답게 깔끔하고 명쾌한 해석이 돋보이므로 일독을 권한다.(포카라님의 글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이곳으로 가실 것)

인터뷰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관련해서는 파생상품·복합상품이 너무 많고 손실 보고가 안 되는 ‘오프 밸런스 시트’ 같은 것도 있어서 금융사 자신도 정확한 피해규모를 모른다.

파생상품이니 복합상품이니 하는 단어는 여기저기서 조금씩 들어보셨을 것으로 판단되어 “오프 밸런스 시트”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이 단어는 off-balance sheet,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부외금융(簿外金融)이다. 우리말이 더 어렵다.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A기업이 돈 100억 원을 빌려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고 싶다. 한데 부채비율이 300%여서 돈을 빌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면 이 회사는 자본금을 5천만 원의 B라는 부동산 개발 전용 회사를 설립한다. 그리고 C은행에 가서 부동산 사업의 사업성을 담보로 돈을 빌린다. 이른바 ‘프로젝트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인 셈이다. 물론 은행이 사업성만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진 않는다. A의 지급보증 등이 채권보전책으로 강화된다.

이제 한번 살펴보자. A는 C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렸을까? 아니다. B가 차주이고 A는 지급보증만 선 것이다. 그러므로 A의 대차대조표(balance sheet)에는 100억 원이 부채로 잡히지 않는다. 다만 지급보증을 주석에 기록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off-balance sheet 효과다. 그리고 B라는 부동산 개발 전용 회사는 일종의 도관체(conduit)다. 정작 A가 사업을 한 것인데 B라는 도관을 이용한 것이다.

결국은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 거네!’라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신용도가 낮은 회사가 유망한 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좋은 구조이기도 하다. 은행입장으로서는 대출금이 엉뚱한 곳에 쓰이지 않고 – 회장님의 술값 등 – 자신들이 경제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업에 올바르게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B라는 회사의 재무제표만 감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게 부실한 업체나 투자은행 등에서 남발되면 금번과 같은 대형사고의 진원지가 된다는 것이다. 부실한 업체 D의 부실한 회계감사에서 드러나지 않는 온갖 파생상품과 부실사업들은 곪아 썩어문드러질 때까지 투자자의 시야에 잡히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에 엔론이 이런 식으로 사세를 고질라처럼 불려나가다가 빵하고 터져버렸다. 물론 이번 월스트리트가 사고 친 걸 보고 있자니 그때의 사건은 자그마한 해프닝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사후약방문이긴 하지만 회계규칙은 이러한 off-balance sheet를 차단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투자은행들의 경우 바젤2 등을 통해 위험가중치를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규제 없는 시장은 없다. 규제가 나쁜 것이 아니라 시대를 못 따라잡거나 비합리적인 규제가 나쁜 것이다.

세 얼굴의 미키마우스

1998년 미국의 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법은 ‘저자 생존 시와 사망 후 50년, 법인에 의한 저작물인 경우 75년’이던 저작권 보호 기간을 ‘저자 생존 시와 사망 후 70년, 법인에 의한 저작물인 경우에는 95년’으로 늘렸다. [중략] 하지만 1998년의 법은 불명예스럽게도 미키마우스 보호법(미국식 표현으로 ‘미키마우스’는 ‘수준 이하’ 혹은 ‘엉터리’라는 의미가 있다. – 옮긴이)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은 디즈니가 (만화영화 <스팀보트 윌리>를 통해) 1928년에 최초로 만든 미키마우스 탄생 75주년을 내다보고 저작권 연장 로비를 주도했기 때문이다.[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나쁜 사마리아인, 2007, 부키, p207]

위에 잘 설명되어 있다시피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캐릭터인 미키마우스는 아이들의 절친한 친구인 동시에 자동 소멸될 저작권을 억지로 늘인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이중적인 모습의 미키마우스 (two faces?) 에게 또 하나의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 (three faces?)

LA타임스는 최근 Disney’s rights to young Mickey Mouse may be wrong 이라는 기사를 통해 디즈니가 저리도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미키마우스의 저작권이 사실은 원인무효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디즈니는 브랜드 전문가들이 3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 미키마우스의 브랜드 가치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는 셈이다.

기자가 첫 번째로 제기하는 의문은 저작권을 얻었던 예전의 캐릭터와 지금의 캐릭터의 묘사의 차이에 관한 것이다.

저작권 문제는 예전의 묘사에 관한 것이다. 미키의 연출은 여전히 알아볼 만 한 것이지만 약간은 다르다. 첫 동시녹음 만화인 “스팀보트 윌리”와 다른 초기 고전들의 스타였던 오리지널 미키는 더 긴 팔, 더 작은 귀, 그리고 보다 뾰족한 코를 가지고 있었다.
Copyright questions apply to an older incarnation, a rendition of Mickey still recognizable but slightly different. Original Mickey, the star of the first synchronized sound cartoon, “Steamboat Willie,” and other early classics, had longer arms, smaller ears and a more pointy n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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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key Mouse concept art” by San Francisco Sentinel; from the collection of The Walt Disney Family Museum.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Mickey Mouse“>Fair use via Wikipedia.

미키마우스의 초기 컨셉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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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key – Fantasia” by desktopnexus, originally from Fantasia.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Mickey Mouse“>Fair use via Wikipedia.

판타지아에서의 미키마우스

몇몇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충분히 의문을 제기할만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학문적 호기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과 법정에서 유효성을 다투는 것과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점이다. 연구 차원에서야 그런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 의의가 있을지 몰라도 이를 정색하고 법정에서 다룬다면 그것은 만화왕국이자 엄청난 재력을 자랑하는 디즈니와의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에 관한 또 하나의 미스터리는 전직 디즈니 직원이었던 Gregory S. Brown에 의해 제기되었다. Brown은 디즈니를 퇴사한 뒤 디즈니가 잊고 있었던 저작권 갱신을 이용하여 돈을 벌어보려 했다. 하지만 거대기업은 물러서지 않고 그에게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그에게 50만 달러의 벌금을 선고했다. 열받은 Brown은 1928년 Walt Disney Co. 가 창조하여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미키마우스의 정체성을 파헤쳐보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그는 “스팀보트 윌리” 만화에서 다음과 같은 타이틀카드(필름이나 슬라이드로 처리되는 것과는 달리 카메라에 잡히도록 만든 그래픽 카드 캡션 caption 이라고 한다)를 발견한다.

“Disney Cartoons
Present
A Mickey Mouse
Sound Cartoon
Steamboat Willie
A Walt Disney Comic
By Ub Iwerks
Recorded by Cinephone Powers System
Copyright MCMXXIX.”

이 타이틀카드가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요는 “월트 디즈니”라는 이름과 관계된 “저작권”이라는 단어의 위치다. 시네폰과 디즈니의 수석 스튜디오 아티스트 Ub Iwerks라는 이름도 있었던 것이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이 이 셋 중 어느 하나라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고, 이를 통해 1909년의 저작권법의 난해한 규정에 따라 어느 특정인의 권리주장을 무효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The key was location of the word “copyright” in relation to the name “Walt Disney.” There were two other names listed in between — Cinephone and Disney’s top studio artist, Ub Iwerks. Arguably, any one of the three could have claimed ownership, thereby nullifying anyone’s claim under arcane rules of the Copyright Act of 1909.

LA타임스는 이 기사의 나머지에서 이러한 Brown의 항변에 대한 법원의 무시, 한 법대에서의 이 케이스에 대한 연구, 그리고 그러한 시도에 대한 디즈니의 대응 등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결론은 디즈니의 작품이 늘 그렇듯이 (적어도 현재까지는) 해피엔딩이다. 물론 디즈니에게 말이다. 정의로 – 저작권의 횡포에 저항하는 이들이 생각하는 정의 – 가는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한가 보다.

기자는 한편으로 다음과 같이 디즈니의 모순된 행보를 고발하고 있다.

모순된 것이 이 회사가 비록 그들의 미키마우스는 방어하려 하지만 공공 영역에서 몇몇 캐릭터들에 대한 — 밤비나 피터팬 같은 —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경주해왔다. 디즈니의 가장 유명한 등장인물 중 많은 것들은 다른 이들의 창작품인데 이 중에는 신데렐라, 피노키오, 푸, 그리고 백설공주 등이 포함된다. 비록 회사는 그들의 묘사를 강력히 보호하고 있지만 말이다.
Ironically, the company has mounted international efforts to claim some characters for the public domain — such as Bambi and Peter Pan — even as it defends Mickey Mouse. Many of Disney’s most famous figures were the creations of others, including Cinderella, Pinocchio, Pooh and Snow White, though it has vigorously protected its depictions of them.

이는 타당한 주장이다. 자신이 창조한 – 또는 창조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 쥐 한 마리를 지키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다른 이들이 창조한 캐릭터들은 정당한 대가 지불없이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 디즈니의 현재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저작권, 지적소유권, 그리고 특허권에 대한 배타적인(exclusive)한 권리보호를 주장하는 거대기업들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행태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법이다.

여하튼 Boing Boing 의 한 독자는 이런 모순된 위치에 놓여 있는 미키마우스의 모습에 측은지심을 느꼈는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