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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 랜드의 정부에 관한 생각에 관한 생각

사태가 악화되어감에 따라 정부는 이러한 과정을 축소하기는커녕 더 확대시킴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한다. 그 과정은 세계적 규모로 진행되게 되는데, 외국에 대한 원조, 외국정부에 대한 부실(지불이 되지 않은) 여신, 다른 복지국가(복지수혜국) 들에 대한 보조, 국제연합에 대한 보조, 세계은행에 대한 보조, 외국생산자들에 대한 보조, 그리고 외국소비자들이 우리의 재화를 소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신용 등을 위해 모든 자금을 소요하는 반면, 그 모든 것에 대해 돈을 지불하고 있는 미국인 생산자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버려지고, 그들의 자산은 이 지상의 전염병 발원지에 사는 족장이 다 차지해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철학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 中 평등주의와 인플레이션(1974년), 아인 랜드 저, 이종욱/유주현 역, 자유기업선테, 1998년, pp 228~229]

1905년에 러시아에서 태어나 1926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시민으로 살아간 소설가이자 사상가 아인 랜드(Ayn Rand)의 에세이 중 일부다. 소비에트 치하에서 잠시나마 사회주의 지옥을 맛본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사상가의 집단주의에 대한 혐오와 자본주의에 대한 신념은 그 어떤 사상가보다도 굳건하여 오늘날 리버타리안(Libertarian)이라 불리는 극단적인 경제적 보수주의 사상의 공헌자로 간주되기도 한다.

인용문을 보면 그의 정부에 대한 혐오는 명백하다. 정부는 정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쓸데없는 곳에 정부가 걷은 세금을 낭비해버리고 이로 말미암아 “미국인 생산자”가 아닌 “전염병 발원지에 사는 족장”이 자산을 차지해버렸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정부는 당장 해체되어야 할 것이고 실제 리버타리안의 생각은 그러하다. 이런 취지에서 같은 에세이에서 작가는 정부의 역할을 경찰, 군대, 법원으로 한정한다.

그렇다면 정부의 위와 같은 행위의 열매를 실제로 “전염병 발원지에 사는 족장”이 차지해버렸나? 역사적으로 볼 때 그랬을 확률은 낮다. 나열한 여러 정부지출은 마샬플랜과 같은 원조, 국제기구 설립, 대외여신,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공급 등의 행위로 여겨지는데 이는 대개 미국의 전후패권 유지와 자본주의의 새로운 소비시장 개척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상당부분 “미국인 생산자”가 차지했다.

현실세계의 자본가가 아인 랜드의 주장을 접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질색을 하며 반대할 것이다. 정부가 정말 작가가 주창한대로 일체의 행위를 중단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날 유럽은 “유로 소비에트”가 되었을 수도 있고, 멕시코의 외채 위기 당시 미국의 투자은행은 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을 수도 있고, 오늘날의 기축통화는 위안화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물론 가정법이니까 아인 랜드가 책임질 일은 없다.

“이 지상의 전염병 발원지에 사는 족장”이라니 대체.

Enron이 Moron이 될 뻔한 사연, 그리고….

다름 무엇보다도 엔론 직원들 사이에는 우월의식이 팽배했다. 여러 컨퍼런스에서 스킬링은 공공연히 경쟁 기업들을 조롱했다. 그는 거대 석유기업들은 멸종할 운명을 타고난 공룡에 불과하다고 말하곤 했다. [중략] 1999년 12월 직원회의에서 한 직원이 스킬링에게 모빌Mobil과 같은 회사와의 합병을 고려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스킬링이 대답했다. “글쎄, 아쉽기는 하지만 모빌은 이미 엑손과 합병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모빌이 아니죠. 정말로 아쉬웠습니다. 우리가 모빌과 합병했다면 ‘모론Moron’이 되었을 테니 말이에요.”[엔론 스캔들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의 몰락, 베서니 맥린/피터 엘킨드 지음, 방영호 옮김, 서돌, 2010년, p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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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ron Logo” by En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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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이름을 날리다가 엄청난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망해버린 엔론의 CEO 제프 스킬링의 수준 높은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일화다. 엑손과 모빌이 합쳐져 기껏 엑손모빌이라는 둔탁한 이름보다야 ‘모론’이란 이름이 훨씬 멋있지 않은가? 물론 그의 이 유머에는 인용문의 앞부분에서 언급하였듯이 당시 너무나 잘나가고 있던 혁신적인 기업 엔론의 오만방자함이 잘 드러나 있어 다소 거북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름 짓는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하자면 사실 이미 엔론은 이런 농담을 하기 이전에 “모론”스러운 짓을 저지른 바 있다. 당초 ‘휴스턴 내추럴 가스’와 ‘인터노스’가 합쳐져 탄생한 엔론은 1986년 새로운 회사 이름을 짓기 위해 한 컨설팅 회사에 이 작업을 의뢰했다. 4개월간의 고심 끝에 태어난 이름이 ‘엔터론Enteron’이었는데 이 단어는 ‘소화기관인 창자’를 뜻하는 단어로 엄연히 사전에까지 올라와 있는 단어였던 것이다.

사실 요즘 읽고 있는 이 ‘엔론 스캔들’의 추잡한 비화들을 생각해보면 한편으로 ‘창자’라는 그 이름이 썩 어울리는 이름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수많은 부외금융 거래를 통한 매출 부풀리기, 투자자를 속이기 위한 트레이딩룸 연극(마치 영화 ‘스팅’에서처럼), 적자 상황에 개의치 않는 임원들의 천문학적 보수수령 등 엔론이 저지른 수많은 부정부패를 보면 창자 중에서도 아주 썩어문드러진 창자에 속한다는 생각이 든다.

엔론 사태에서 자본주의 기업 시스템의 여러 기이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의아한 점은 어떻게 감독기관, 회계법인, 주주, 신용평가기관 등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눈들의 감시를 피한 채 그런 부정을 저지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 의문은 역시 이들 감시자들이 실은 공모자에 가까웠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회계법인 이었던 아더앤더슨은 거의 한 몸이 되어 분식회계를 조장하는 수준이었다.

의사 내지는 검진자의 입장에서 창자를 들여다봐야 할 이런 감시기관이 창자 속에 같이 들어가 함께 분탕질을 한 이유는 역시 엔론이 감시대상인 동시에 수수료를 지불하는 클라이언트라는 모순적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모순은 엔론 사후에도 해결되지 않고 또 다시 더 큰 위기를 불러오는 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급기야 이번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에 이르러서는 신용평가기관의 존재의의에 대한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즉, 신용위기 당시에는 이해자와의 모순된 관계로 인해 위기 직전까지 올바른 시그널을 보내지 않았던 신용평가기관이 위기 이후에는 오히려 각 국가들의 신용등급을 선제적으로 또는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면서 오히려 위기의 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고, 이번 S&P의 미국 신용등급에 대한 강등 사태에서도 그러한 징후를 읽을 수 있었다. 그 필요성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면서도 이제는 시스템리스크 자체가 되어버린 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일개 기업이나 일개 국가가 엔론 같은 짓을 한다면 옳지 않은 일이지만, 적어도 평가기관과 감독기관이 불편부당하게 처신한다면 시스템리스크로까지는 전염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기관이 썩으면 미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경제체제에 대한 자유지상주의적 관점의 모순이 존재한다. 일개 기업이 자기소유권(Self-ownership)에 근거하여 자의적인 결정을 할 자유가 있을지 몰라도, 심판자인 평가기관에게 그런 자유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