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식인이 고안해낸 “한국적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비극적 결과

임방현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에 박정희 정권을 지지하면서 한국 정부의 정책을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데 앞장섰다. 임방현은 1974년(1973년의 오기인 듯하다 – 편집자)에 출간된 이라는 저서에서 지식인이 담당해야 할 책임을 열거하면서 동시에 박정희 정권이 지식인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유신체제가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비판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중략] 그는 “산업화된 국가에서 추구하는 민주주의 논의의 […]

박정희의 “인플레를 활용하는 방식의 경제개발”에 관한 보론

특히 한국은 수출 증가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데, 이 목표를 추진하기 위해서 국내적으로 많은 반대가 예상되는 조치들을 취해야 했다. 미국은 우선 원화의 가치절하를 주장했다. 원화의 가치가 절하될 경우 한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조언을 받아들여 원화의 가치를 1달러당 130원에서 256원으로 절하하는 환율 조정을 단행하자, 곧바로 격렬한 저항과 반대가 일어났다. [중략] 한 신문은 […]

박정희 정권의 “인플레적인 경제개발” 정책

셋째로 인플레적인 경제개발이었다는 점이다. 인플레적인 경제개발이라 함은 경제개발이 인플레를 유발할 뿐 아니라 인플레를 활용하는 방식의 경제개발이라는 것이다. 돈을 찍어 내자를 공급함으로써 투자는 인플레를 유발하였다. 한편 인플레가 되면 채권자와 예금자는 손실을 보고 채무자와 대출받은 자는 득을 보게 되어 은행돈으로 공장을 세운 대기업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작용을 한 것이다. 그래서 경제개발과정에서 줄곧 높은 인플레가 지속되었는데 이것은 서민가계는 압박하고 […]

귤이 바다를 건너와 탱자가 된 또 하나의 사례, “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는 의사결정의 권력을 기업의 주주에서 보다 공공의 지분소유자인, 노동자, 소비자, 공급자, 근린주구, 더 많은 이들 등 보다 큰 그룹으로의 이동을 제안하는 사회경제학적 철학이다. Economic democracy is a socioeconomic philosophy that proposes to shift decision-making power from corporate shareholders to a larger group of public stakeholders that includes workers, customers, suppliers, neighbors and the broader public.[wikipedia.org] […]

용서받지 못한 자의 변명으로써의 예술의 효용성

말론 브랜도(Marlon Brando) 주연의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라는 영화가 있다. 부도노동자인 테리 멀로이(Terry Malloy; 말론 브랜도)가 항구의 부패한 노조의 끄나풀로 일하다가 양심과 사랑을 위해 불의에 맞선다는 내용으로, 강렬한 스토리텔링,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충격적인 사회적 메시지 등에 힘입어 미국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에 늘 꼽히는 작품이다. 한편 이 영화의 좀 더 깊은 속내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면 […]

우리는 누구 덕에 잘 살게 되었을까?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가진 이들은 흔히 “누구 덕에 이렇게 잘 살게 된 줄 아느냐?”라는 호통을 치며 박정희의 “영도력”을 내세우곤 한다. 그 “영도력”은 가난한 신생국이 주기적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대의민주제를 곧바로 수용하기 보다는, 독재나 변칙적인 대의민주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곧잘 사용하는 표현이다. 현시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가 그 “영도력”을 통해 경제개발에 성공한 소수의 나라 중 하나기에, 우익들은 스스로를 […]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박정희 체제”의 종식

재벌의 모순은 급속한 경제개발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50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남한은 한정된 자원에서 어려운 선택을 했던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풍요를 일구어냈다. 정부는 특정 기업들을 선정하여 업계를 주도해나가도록 했고, 승자가 되게끔 판정했으며, 그들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질 때까지 경쟁으로부터 보호했다. [중략] 오늘날,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남한의 1,800개 상장기업 중 1,600개 정도가 55개 대기업 […]

종이마패

포철 1기 설비구매는 대금지불과 설비선정의 절차에 비능률과 잡음을 부르는 혼선이 깔려 있었다. [중략] 포철은 정부기관은 ‘주일구매소’를 통해 설비구매를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 주일구매소는 포철이 면밀한 검토를 거쳐 선정한 설비공급업체를 성능이나 가격에서 트집 잡았다. 그러면서 포철이 2류로 돌린 업체와 계약하겠다고 주장했다. 공급업체에서 상납과 리베이트를 받아내려는 정치인들의 협잡까지 개입했다. [중략] 단단히 준비하고 있는 그에게 기회가 왔다. 1970년 2월 […]

포항제철 건립의 자금조달에 관하여

식민지와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난 약소국 남한은 – 또는 적어도 그 당시의 위정자들은 – 하나의 꿈이 있었다. 그것은 ‘산업의 쌀’이라는 철을 생산하는 제철소를 갖는 것. 특히 철강생산 능력이 북한에 크게 뒤떨어진 남한은, 이승만 정권 이래 지속적으로 제철소 건립을 추진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드디어 제철소 건립이 가시화된 것은 1966년 이었다. 그해 미국,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 4개 국가와 이들 […]

박정희의 ‘중도 실용주의’ 노선?

박 대통령이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주재하는 회의 중의 하나가 내각 기획조정실의 국가기본운영회계에 대한 분기별 심사분석회의이다. 내각 기획조정실은 국무총리 직속기관으로 행정부 또는 국무총리 소속 여러 기관의 장기, 중기, 단기 기획의 조정 및 예산편성의 기준인 행정부기본운영계획의 목표와 방침을 결정하고 조정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중략] 3개월마다 하는 심사분석 보고에는 국영기업체도 심사분석 대상에 포함되었으며 배석하고 있는 평가교수들의 평가비평도 받았다. 한국 경제는 민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