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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스트는 “사회주의의 구원자”였을까?

나치의 반자본주의적 수사에는 중요한 특징이 둘 있다. 첫째, 비생산적 자본 또는 금융자본에 대한 공격은 동시에 유태인 자본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리고, 둘째로 나치는 또한 공산주의와 맑스주의, 노동자의 자율성 요구와 계급투쟁의 고양에 대해 끊임없이 공격했다. 유태인-볼셰비즘 음모론이 존재하며, 이 음모는 동시에 금융자본의 지배 메커니즘이기도 하다는 주장을 통해, 이 두 특징이 나치 이데올로기 속에 결합된다. 나치는 유태인-볼셰비키의 통치에 대항한 투쟁을 통해 사회주의의 구원자임을 자처한다.[파시즘, 마크 네오클레우스 지음, 정준영 옮김, 이후, 2002년, 114p]

이런 주장은 유키아바라 최의 “그림자 정부”나 쑹홍빙의 “화폐전쟁”과 같은 음모론 서적들을 읽어본 이라면 그리 낯설지 않은 주장일 것이다. 금융업 종사자와 볼셰비키에 특히 유태인들이 많았다는 사실은 역사를 음모론의 왜곡된 프레임으로 보는데 중요한 틀을 제공했다. 그 프레임을 통해 세계가 거대한 음모집단에 – 필시 유태인이 수괴로 있는 – 의해 조종되어 종내는 세계정복의 시나리오로 나아간다는 것이 이런 종류의 음모론자의 생각인데, 책 정도로나 발간되면 다양한 지적(?)토양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겠으나, 나치처럼 행동으로 나설 경우엔 참혹한 비극이 되고 만다.

나치들이 이렇게 금융자본과 볼셰비키를 한 울타리에 엮는 무리수는 유태인이 “무(無)민족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즉, 그런 특성 때문에 유태인 환전상은 국경을 넘나들며 금융업을 한 것이고 볼셰비키는 민족주의가 아닌 국제주의를 주장하며 민족이라는 우월한 개념을 파괴하려 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인 셈이다.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계급을 민족에 복속시켜 스스로가 우월한 민족의 해방자임을 자처하려 한 나치스트/파시스트에게 있어 국제주의를 통해 민족의 틀을 깨려는 유태인은 공산주의자든 금융자본주의자든 모두 파시즘/나치즘의 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왜곡된 사상은 – 인용한 책의 저자의 표현으로는 “반동적 모더니즘” – 사실 당시의 상황에서 예외적이고 변태적인 주장은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은 거센 사상적 소요상태에 휘말리는데 공산주의 운동이 인기를 얻는 한편으로 민족주의적 기운을 고취시키려는 사상적 조류도 만만치 않았다. 전혀 파시즘과 관계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상가 막스 베버조차도 예를 들면 근대 이전의 금융자본 위주의 자본주의를 “천민자본주의(Pariakapitalismus)”라 폄하하고 청교도적 윤리를 강조하는 산업자본을 근대적 자본주의의 지향으로 이해하려 했다는 점이 그 한 예다.

(상략)이와 같이 베버는 근대 이전의 자본주의를 근대자본주의와 엄격히 구분하여 비합리적 자본주의, 정치기생적 자본주의 등으로 불렀는데 천민자본주의도 이러한 표현의 하나이다. 베버가 이 기묘한 표현을 쓰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은 중세에 ‘천민민족 Pariavolk’으로 불리며 주로 상업, 금융업에 종사했던 유태인이었지만, 보통은 근대 이전의 낡은 자본주의의 특징을 가리키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천민’이라는 표현이 붙은 것은 중세의 상인금융업자가 일반적으로 특수한 신분을 형성했으며 그 직업이 종교적, 도덕적으로 천하게 여겨졌었기 때문이다. 이 용어는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용어로서 사용되지는 못하고 있으며 특히 자본주의를 시대를 초월한 현상으로 보는 입장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경제학 사전, 풀빛편집부 편, 조용범/박현채 감수)

막스 베버는 파시스트가 아니었다. 하지만 파시스트는 근대에 대한 이러한 고찰에서 대중을 자극할만한 재료를 찾아와 무차별적으로 섞어서 그들의 논리를 재구성했다. 본래부터 반(反)계몽과 반(反)지성을 주장하던 무리였으므로 이런 저런 주장을 섞어 거대한 궤변을 만들어내는데 별 무리가 없었다. 종내는 스스로를 자본주의와 볼셰비즘을 넘어선 “사회주의의 구원자”를 자처한 이들인 만큼 그들의 뇌 속에 사상적 모순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자본주의와 볼셰비즘을 넘어선 “제3의 길”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변태적 모습을 취하며 체제 위기를 돌파했다는 점이다.

파시즘은 자본주의적 상품생산보다는 금융자본과 화폐자본을 ‘적’으로 간주하는 반동사상의 전통 속에 안락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 전통의 목표는 무계급사회를 구현하거나 착취를 철폐하는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근대 사회의 금전적 만능주의를 억제하는 ‘인민들’의 공동체를 추구한다. 자본에 대한 파시스트들의 공격은 항상 자본주의 생산양식보다는 금융 또는 은행자본에 대한 공격에 집중된다. ‘사회주의’라는 라벨을 붙이고 작동하고 있지만, 파시즘의 공격은 자본주의 사회의 토대에 대해서는 걸고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다.[파시즘, 마크 네오클레우스 지음, 정준영 옮김, 이후, 2002년, p110]

결국 파시스트/나치스트에게 있어 주적(主敵)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볼셰비즘으로 상징되는 국제공산주의 운동이었다. 국제주의를 부르짖는 사회주의자들과 “기생적”으로 다른 자본을 착취하는 은행자본만 통제 하에 둔다는 생각이었고, 이러한 상황에 당시 독일의 자본가들은 안락함을 느끼며 나치에 협조한다. 일례로 코카콜라는 나치 정부의 비호 하에 무력한 저임금 노동자를 활용하여 독일에서 사세를 키웠는데 베를린 올림픽에서 독일 운동선수에게 알맞은 건강음료로 홍보하고, 나치의 홍보기구를 적극 후원하는 등 친(親)나치 행각을 일삼았다.(앞서의 책 124p) 그리고 이윤은 더욱 커졌다.

그럼 현대적 의미에서의 파시스트는 누굴까? 유럽 각국에서는 극우정당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부류보다 더 무서운 집단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집단이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에서 활동하는 티파티(Tea Party) 등이다. 표면적으로는 정부의 독단에 맞선 시민운동으로 포장한 이들의 탄생배경이 미국 금융의 몰락에 대처한 정부의 부당한 구제금융에 대한 정서적 반감에서 시작됐다는 점, 그러면서도 지향하는 바는 정부의 역할을 축소시키려는 리버타리안적 행태를 보인다는 점, 표면적으로는 대중동원을 통해 그들의 주장을 관철한다는 점에서 유사 파시스트적 모습을 보인다고 여겨진다.

물론 당시의 구제금융은 명백히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였고, 이는 사회적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행태였다. 하지만 구제금융의 시작이 오바마가 아닌 부시였고, 종내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복지예산 삭감이나 환경규제 완화라는 점에서 정당한 분노가 엉뚱한 해법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최근 뉴욕시장 선거에서도 티파티를 후원하는 막강한 자본가가 후원하는 유사단체가 벌써 기승이라니 이들 파시스트의 향후 행보가 우려스럽다.

interest(이자)의 어원

에드워드 1세는 1290년 영국에 거주하고 있던 모든 유태인을 추방함으로써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중요 재원을 스스로 상실하게 되었다. 계속되는 십자군의 실패는 가장 손쉬운 자위능력조차 없는 유태인에 대한 증오를 재발시켰다. 국민은 이들에게 모든 죄악을 뒤집어 씌웠다. 채무를 지고 있는 귀족들은 채무와 채권자가 일시에 사라지는 것을 환영했다. 왕이 실시한 방법은 과거의 집행 방법보다 훨씬 인도적이었다. 왕은 그들에게 동산을 휴대하는 것을 허락했고 도항 중에 유태인 선객을 살해한 선원을 교수형에 처했다. 유태인의 퇴거 후 영국에서 대금업을 경영한 사람들은 남부 프랑스의 까오르 Cahors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교회의 계율을 교묘하게 위반하는 방법을 썼다. 그들은 처음에 무이자로 단기간 금전을 대여했다가 기한내에 지불하지 않으면 지불할 때까지 배상금을 청구했다. 이것이 이자 interest라고 불리운 것인데 그 어원은 라틴어의 id quod interest(사이에 있는 것)이다. 얼마 후 점차로 은행업이 발전했는데 은행은 주로 이탈리아인이 경영했고 롬바르디아 Lombardia로부터 건너온 환전상들이 런던에 롬바드가 Lombard Street라는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그 후 영국인 스스로 금융계의 전문가가 되었고 유태인이 크롬웰 시대에 영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번영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중에 그들에게 관대하기는 하나 강력한 경쟁자를 발견하게 되었다.[앙드레 모로아著, 영국사, 弘益社(1981), 146p]

리카르도님이 댓글로 id quod interest 에 대한 번역서의 설명이 틀린 것 같다고 아래와 같이 지적해주셨다. 매우 중요한 지적이라 본문에 따로 옮겨온다.

글보고 지금 찾아보니 책설명이 좀 틀린것같네요. interest는 원래 interresse의 3인칭 단수 현재형으로 그 의미는 중요하다, 차이가 난다 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어원이 inter (사이) + esse (존재한다) 이긴하지만, 그 의미는 명백하게 중요하다 라는 뜻으로 쓰였다고합니다. 따라서 id quod interest 는 사이에 있는것이다 가 아니라 중요한것이다(something which is important) 라고 해석하는게 옳은것같네요

아마도 번역하는 사람이 라틴어를 몰라서 틀린것같습니다

이에 대해 내가 찾아본 바로는 현재까지 아래와 같다. 리카르도님의 친절한 설명에 깊이 감사드리며 그 의미에 대해 바뀐 부분이 있을 경우 본 글에 추가하도록 하겠다.

지금까지 뒤져본 바로는 그 뜻을 직접적으로 설명해놓은 자료는 못 찾았네요. 다만 아래와 같은 문장을 발견했는데요.

“By Roman law, where one party to a contract made default, the other could enforce, over and above the fulfilment of the agreement, compensation based on the difference (id quod interest) to the creditor’s position caused by the default of the debtor, which was technically known as mora, delay.”

http://encyclopedia.jrank.org/I27_INV/INTEREST.html

이에 유추하여 생각해보면 id quod interest 는 “on the difference”, 즉 “차이에 근거하여”라는 뜻이 아닌가 싶은데요? 리카르도님은 그 해석을 어떤 자료에 근거해서 하셨는지요?

쓰지 말아야 할 표현, “천민자본주의”

어떤 유명한 블로그에 들렀다가 대한민국의 ‘천민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만났다. 이 ‘천민자본주의’라는 표현은 반체제 혹은 반정부적인 비판자들이 통상 자본주의 발달과정에서 볼 수 있었던 성장일변도의 경제정책, 승자독식과 금전만능의 사회체제 등의 어두운 면을 비판하기 위해  애용하는 표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주의의 천박성을 비판하기 위해 쓰는 이 표현이 ‘천민’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고 그 단어가 명백히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면서, 자본주의의 천박성을 비판하는 이들이 현대 자본주의 시대까지 온존하고 있는 계급차별적인 선입견을 인정하고 있는 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 ‘천민자본주의’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첫째 이유와 연결선상이기도 하거니와 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될 수도 있는데 요즘 이 표현을 쓰는 사람의 취지와 원래 이 말을 처음 사용한 막스 베버의 취지가 다르다는 것 때문이다. 천민자본주의의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자.

賤民資本主義[독, Pariakapitalismus]
(상략)이와 같이 베버는 근대 이전의 자본주의를 근대자본주의와 엄격히 구분하여 비합리적 자본주의, 정치기생적 자본주의 등으로 불렀는데 천민자본주의도 이러한 표현의 하나이다. 베버가 이 기묘한 표현을 쓰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은 중세에 ‘천민민족 Pariavolk’으로 불리며 주로 상업, 금융업에 종사했던 유태인이었지만, 보통은 근대 이전의 낡은 자본주의의 특징을 가리키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천민’이라는 표현이 붙은 것은 중세의 상인금융업자가 일반적으로 특수한 신분을 형성했으며 그 직업이 종교적, 도덕적으로 천하게 여겨졌었기 때문이다. 이 용어는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용어로서 사용되지는 못하고 있으며 특히 자본주의를 시대를 초월한 현상으로 보는 입장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경제학 사전, 풀빛편집부 편, 조용범/박현채 감수)

막스 베버가 생각하는 자본주의에서의 직업윤리는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에서 찾은 것으로 자기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개인의 쾌락이나 영예를 희생시키면서 엄한 규율과 조직 밑에 직책에 헌신하는 금욕주의적인 직업윤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금전욕에서 동기를 찾는 전근대적인 자본주의,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상징하는 유태인을 천민이라고 간주하였던 것이다.

Max Weber 189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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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베버는 프로테스탄트들의 금욕적 절약에 의한 투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전형적인 청교도들은 많이 벌고 적게 썼다. 그리고 그의 소득을, 절약하고자 하는 금욕주의적 열정으로부터, 매우 합리적인 자본주의적 사업에 자본으로서 재투자하였다.[The typical Puritan earned plenty, spent little, and reinvested his income as capital in rational capitalist enterprise out of an asceticist compulsion to save.]”

요컨대 베버의 사상에서 자본주의의 이해집단은 ‘돈벌이에만 집착하는 유태인 금융자본’와 ‘금욕적인 기독교적 윤리를 통해 자본주의를 발전시켜나가는 산업자본’이 대결하고 있고 후자를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으로 비추어 보면 많은 사람들이 ‘천민자본주의’를 원작자의 의도에 맞지 않게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우리는 그 어원을 살펴봄으로써 ‘천민자본주의’라는 번역이 잘못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태인들로 대표되는 중세의 금융업자들은 신분의 높고 낮음에 개의치 않고 금융업을 통한 치부를 몰두했던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다.(주1) 결국 그들은 자산가였고 그들은 군주의 돈줄이었다. 그런데 ‘천민자본주의’에서의 천민은 말 그대로 “고려 ·조선 시대 양천제(良賤制)라는 신분관념하에서 양인(良人)과 대비되는 하급신분을 가리키는 말”로 이들은 유태인 금융업자와 닮은 구석이 없는 피착취 계급이었을 뿐이다.

결국 우리가 현대 물질문명의 부정적인 측면을 비판함에 있어 ‘천민자본주의’라는 표현을 쓰는 순간, 그것은 원작자 베버의 의도에도 맞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그가 저지르고 있는 인종차별 혹은 계급차별에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동승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주1) 그러므로 사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의 샤일록을 우리는 고리대금업자로 알고 있지만 그는 그저 금융업자였을 뿐이고 기독교 사회는 이자를 받는 행위 자체를 죄악시, 금기시하여 왔다. 물론 그렇다고 수도원이나 기독교 성직자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들은 가장 적극적인 금융업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