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ess Test, 그리고 물가변동에 관해 잡담

Stress Test 하면 나는 왠지 ‘어떤 얄미운 녀석을 몇 대 때리면 스트레스 수치가 얼마 증가하는가’ 분석하는 실험이 연상된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현 경제 상황에서 일정 시나리오대로 상황이 변동되면 금융기관의 자산이 얼마만큼 부실화(또는 건전화)되는 가를 가리는 작업이니 말이다. 흔히 말하는 ‘민감도 분석(Sensitivity Analysis)’이라 해도 무방하다.

예컨대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2% 감소하고 실업률이 8.4%에 달하며 주택가격이 14% 하락한다는 기본 시나리오와, GDP가 3.3% 떨어지고 실업률은 8.9%로 오르며 주택가격이 22% 폭락한다는 위험 시나리오 등을 가정해 금융회사들이 전체 대출금과 보유 유가증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추정손실을 산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美정부, 은행 `스트레스테스트’ 방안 발표, 연합뉴스, 2009.2.26]

오바마 행정부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얼마만큼의 자본 확충 등 정부지원이 필요한지, 아니면 도저히 소생가능성이 없는지 등을 가늠할 예정인 것이다. 자산실사의 신뢰도, 시나리오 설정의 편견, Counterparty Risk의 계량가능 여부 등이 염려되기는 하지만 안 할 수도 없는 분석일 것 같다. 예상은 굉장히 비관적이지만 말이다.

이런 스트레스테스트는 비교적 단기간의 분석이라는 점에서 물가상승률, 이자율과 같은 기간에 따른 기회비용은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장기간에 걸친 수익성 분석에서는 이러한 변수가 수익성 판단 여부에 굉장한 영향을 미친다. 물가를 3%로 보느냐 4%로 보느냐에 따라 수익률에 미치는 크기가 상당부분 반영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A가 100억원을 전액 금융권에서 조달하여 – 이를테면 10년 만기 채권으로 – 사업을 한다고 가정하자. 그가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은 무조건 조달금리 이상이다. 이보다 떨어지면 사업을 할 이유가 없다. 10년을 사업기간으로 간주하고 이 기간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3%이라 간주하면 소위 실질 조달금리는 [(1+명목 조달금리)/(1+물가상승률) – 1] 로 계산할 수 있다.

여기서 명목 금리는 실제세계에서 A가 금융권에서 조달한 액면금리이고 실질 금리는 물가효과를 제거한 금리를 말한다. 즉 물가가 상승하면 화폐가치가 절하하고 그만큼 A가 내야할 명목 이자는 실질 이자에 절하된 가치만큼을 더해주어야 한다는 이치다. 그리고 A의 실질 수익률은 이 실질 금리를 초과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제 물가가 상승하지 않고 연평균 2%씩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된다고 해보자. A의 수익성 분석 모델의 연간 매출액과 연간 비용에 3% 가 이난 -2%를 반영하여야 한다. 물론 디플레이션의 시대라고 해도 10년간 계속 떨어진다고 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으나 여하간 이러한 가정은 정말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우선 자기 돈으로도 사업을 할 이유가 없다. 매출은 분명 비용에 일정비율을 초과할 것인데 비용이 감소한다고 쳐도 매출도 역시 감소할 것이기에 사업을 할수록 손해다. 더 무서운 것은 사업비를 차입하였을 경우다. 명목 금리가 제로금리라 하여도 분모 부분이 작아지므로 실질금리가 명목 금리를 초과하게 된다.(주1) 은행에서 돈 빌릴 이유가 없어진다.

(주1) 물론 금리변동부 채권을 발행했다고 가정하면 리스크헤지는 되겠지만 말이다. 현실에서 사업자의 이런 식의 헤지는 흔치 않을 것이다.

6 thoughts on “Stress Test, 그리고 물가변동에 관해 잡담

  1. june8th

    이런 얘기를 듣다보니 드는 생각인데요. 규모가 좀 되는 금융회사라면 평상시에 어느정도 이런류의 예측을 꾸준히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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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이제 와서는 루비니 교수가 예언자인것처럼 떠받들여지지만 사실 호황기건 불황기건 간에 언제나 시장을 바라보는 이는 긍정론자들과 부정론자들로 갈라지게 마련이죠. 문제는 어느 한쪽의 의견이 극적인 우세를 점하기가 어렵다는 점일 것입니다. 모두 한정된 자원과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 경제예측이니까요. 결국 규모가 좀 되는 금융회사라 할지라도 엄밀한 객관성에 의해 경제예측을 하기보다는 경제 이데올로기의 선입견에서 비롯된 가치판단, 기업 내부의 사업기조에 대한 편향, 자기충족적인 예언, 거기에 비관적 견해는 아웃사이더로 간주하는 조직문화까지 가세하면 운신의 폭은 상당히 좁아질 수밖에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씨티의 CEO인가가 그랬다던가요? 음악이 연주될 동안은 모두 함께 춤을 추어야 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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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혜의길

    조금 헷갈려서 질문 드려 봅니다. 제가 디플레이션 상황에서의 사업자의 입장에 대해 이해하는 바를 아래와 같읍니다. 잘못 이해한 부분에 대해 코멘트를 부탁드립니다.

    인플레이션 상황 대비 디플레이션 상황일 경우, 명목기준의 이익(현금흐름)은 감소하지만, 명목 이자비용도 따라서 감소하므로 두 경우 모두 결과가 같다. 즉, 명목 이자율이 디플레이션 기대치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경우는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변수들이 동일하다면 디플레이션과 무관하다.
    그러나, 상당히 깊은 디플레이션이 예상되는 반면, 명목금리는 0% 이하로 내려갈 수 없는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업자는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이익 감소를 차입 이자 감소로 상쇄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실질이자율이 상승하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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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물가변동에 따른 부채의 특성을 사업성 분석 관점에서 설명해보려 했는데 제가 읽어봐도 그리 설명이 탐탁치 못하군요. 🙂 간단히 말하자면 부채는 자본에 비해 물가변동에 비해 신축적이지 못한 특성이 있습니다. 변동금리라 하여도 일단 원금은 무조건 상환되어야 하고 금리도 스테디한 성격을 가지죠.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시간이 흐르면 화폐가치가 절하되므로 원금의 실질적 가치도 떨어지고 이자부담도 적습니다.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화폐가치가 절상되므로 원금의 실질적 가치가 올라가고 이자부담도 늘어나죠. 수익률은 명목 수익률이 실질 수익률보다 높아야 하는데 이게 역전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부채의 경직성이 매우 유동적이라면 그 역전 현상이 물가변동률을 어느 정도 반영하겠지만 위에 말씀드린 특성때문에 사업자에게는 손해가 더 클 개연성이 높은 것이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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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eagle2

    저도 Stress Test 라는 말을 처음듣고선, 정부가 금융사를 막 갈구고 금융사는 묵묵히 참고 견디는 이등병 신세가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을…

    아울러 화폐증발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돈이 수증기처럼 증발되는 것, 즉 신용경색을 비유한 말인줄로 알았습니다. 아… 창피해. OTL

    (뻘소리만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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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스트레스테스트, 무슨 성질테스트를 연상시키죠. 화폐증발, 저도 같은 생각 했었습니다.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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