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공기업의 역할

최근 내 관심을 끄는 두 가지 사건은 모두 공기업과 관련이 있다. 4대강 정비 사업에서의 수자원공사의 참여, 코레일의 인천공항철도 민간투자사업시설 매입이 그것이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정부가 수행하고자 하는 사업을 자신의 돈을 들이지 않고 공기업을 끌어들여 수행하려 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이렇게 공기업을 끌어들이려는 것은 마치 민간이 특정사업 수행에서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여 off-balance sheet(설명 보기) 효과를 노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에서다.

즉, 4대강 정비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이나 부실화된 인천공항철도를 정부가 직접 매입하게 되면 정부의 대차대조표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게 된다. 그러므로 형식상 정부의 재정악화와는 크게 관계없는 공기업들이 이러한 일들을 거듬으로써 현재의 재정악화 없이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사기업이 앞서 말한 특수목적법인 설립을 통해 사업의 재무제표를 본사의 재무제표와 절연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우선 수자원공사의 4대강 정비사업 참여의 경우를 들여다보자.

국토해양부는 4대강 사업에 소요되는 국토부 예산의 절반 이상을 수자원공사(이후 수공)가 부담키로 함에 따라 수공이 사업 시행자로 참여해 4대강 하천 주변을 직접 개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개발 우선권도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8일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4대강 사업은 수공의 투자와 역할이 큰 사업인 만큼 개발사업 시행자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4대강 본예산 15조4000억원 중 정부가 7조4000억원, 수공이 8조원을 충당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수공의 4대강 사업 참여 및 하천 개발권 부여 등은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에는 없던 내용이다.[4대강 결국 ‘개발사업’ 변질]

정부는 지금 막대한 재정지출 – 호기롭게 4대강 정비, 복지지출, SOC지출을 모두 소화해내겠단다 – 과 감세라는 한 열댓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겠다고 큰 소리치고 있다. 하지만 무슨 신통한 재주가 없는 한은 결국 그것은 불가능한 약속이다. 그러하기에 4대강 본예산의 반절이 넘는 돈을 수공에게 부담시키겠다고 나선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공기업이라도 정부가 하는 것처럼 반대급부 없는 사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수공에게 하천 개발권을 부여하겠다고 한 점이다. 하천 개발의 성공여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해당 기사에도 지적하듯이 땅값 상승 등 부동산 투기를 부채질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엉성한 사업계획 및 집행으로 박살이 난 경우가 바로 – 비록 민간투자사업이지만 – 인천공항철도 사업이다. 이 사업은 허다한 수요예측 실패 사례 중에서도 전범으로 남을만한 데, 당초 수요예측 대비 7%의 처참한 운영현황을 보이고 있는 사업이다. 이에 따라 향후 막대한 재정보조가 예상되자 정부는 해당사업을 매입하기로 하고 이를 코레일에 떠넘긴 것이다. 수공사업이 사업의 타당성 여부가 불투명함에도 일단 희망이라도 가져볼 수 있다면 이 경우는 향후 막대한 적자가 기정사실화된 사업의 폭탄처리 역할이라는 점에서 더 안쓰럽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항철도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2039년까지 13조8000억원의 세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번 계약으로 부담을 6조7000억원 이하로 낮출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코레일이 인천공항철도를 인수하게 되면 정부와 코레일은 재계약을 맺어 투자수익률을 조정하는 절차에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인천공항철도 인수로 코레일의 경영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매입대금을 조달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해야 하는 데다 최근 수익개선 사업으로 추진중인 용산역세권 개발 등이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인천공항철도, 1조2045억에 팔려]

위 기사에서 국토부 관계자는 세금부담을 13조8000억원에서 6조7000억원으로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숫자의 마술은 정부가 코레일이 해당 시설을 인수할 경우 민간사업자와 맺은 실시협상 상의 투자수익률을 낮추겠다는 의미다. 현재 미래 현금흐름의 할인율의 의미를 지닌 약정수익률이 민간기업의 요구수준인데, 공기업인 코레일이 인수할 경우 조달비용이나 신용등급 등을 고려할 때에 더욱 낮출 수 있으므로 이를 낮춰 결과적으로 미래에 보전해줘야 할 돈을 줄이겠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은행대출을 받았는데 6%금리 대출을 4%대출로 전환하면 지급이자가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과연 단순히 부실사업이 민간에서 정부투자기관으로 말갈아탄 것만으로 그러한 절감효과가 있다면 애초에 인천공항철도를 코레일이 추진하는 것이 옳지 않았느냐 하는 의문이 든다. 정부조달비용이 민간조달비용보다 싸니 말이다. 이는 이미 코레일의 인천공항철도 인수를 위해 채권을 발행하여야 한다는 위 기사에서 답이 나와 있다. 그들 역시 기존에 부채가 쌓여있는데다 신규로 채권을 발행해야 하는 부실기업이다. 부실기업에 부실사업을 떠넘기고 조달비용이 국가등급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담이 줄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두 사업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공기업이 가지는 위상과 그 활용에 있어서의 우리가 주의해야할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첫째, 공기업들은 정부 혹은 정치가의 정치적 의도에 휘말릴 소지가 상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이윤추구를 절대 진리로 하는 것도 아니고 소위 말하는 공익 추구도 아닌, 이번처럼 정부의 실패를 떠안는 창고로 전락하고 마는 경우다. 아무리 정부투자기관이라고는 하지만 조 단위의 막대한 사업의 사업권을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식으로 허술하게 결정해도 되는 것인지 하는 문제가 있다. 수공이나 코레일 자신에게도 이러한 사업수행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규모의 엄청난 의사결정인 것이다.

둘째, 그럼에도 그러한 부실이 정부 수준의 신용등급이라는 특수한 지위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재정자립도 낮은 지방자치단체, 심지어 그들의 지분이 투입된 지방개발공사마저 단지 정부(투자)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최상의 신용등급을 받는 특수상황이 연출되고 있어 이러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사업진행의 유혹에 빠질 개연성은 더 크다. 이번 금융위기의 진원지 중 하나가 신용평가사의 ‘묻지마’ 등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위험은 더욱 크다.

대안은 결국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사업수행에서의 철저한 타당성 검증과 적법하고 순리적인 의사결정이다. 그 타당성 검증은 사회적 효용과 경제적 효용이 공존하는 객관적 절차에 의해 수행되어야 하고, 의사결정은 내,외압에 휘둘리지 않는 공정한 의사결정단위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번 수공과 코레일의 사업 참여를 들여다보면 그 위험성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민간부문의 대안으로 정부부문의 역할을 주장하는 일종의 케인즈식(?) 해법이 과연 옳은 대안인가 하는 물음을 남기는 사례이기도 하다.

10 thoughts on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공기업의 역할

  1. RedPain

    마지막 문장에 ” ( ? ) “가 없었다면 살짝 기분 나쁠 뻔 했습니다.

    케인즈주의자 RedPain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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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onofspace

    쩝, 철도 노조가 안전운행을 위한 인원 충원과 근무 시간 감소를 줄기차게 주장할 때는 ‘적자가 얼만데’ 운운하다가 거침없이 1조 원짜리 부실사업을 떠맡는 모습을 보니 씁쓸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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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련

    참 답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할 일은 지적질을 죽지 말고 끝없이 하는 뭐 그런게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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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다시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중이 30% 밖에 안되는 게 자랑이던데.

    공기업이나 정부가 보증을 서고 있는 빚까지 합쳐서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떨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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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Inkyung

    그나저나 다음 정부는 죽었다고 복창해야 하나요? 철도공사에 수자원공사까지 다 말아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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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오준석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정부 욕한다고 바뀌는건 없고 아무튼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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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Pingback: 국가재정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알아도 별 관심 없었던 몇 가지 | fo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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