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의 정치적 이해관계

공급위주 경제학은 일률적인 대규모 소득세율의 삭감은 일반적인 선입견과 달리 오히려 세입을 증가시킬 것이며, 이에 따라 재정적자도 감소시킨다는 논리를 주장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소득세 과세 표준(the taxable income base)이 증가함에 따라 낮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세입 자체는 늘어난다. 소득세 과세 표준이 증가하는 것은 주로 총생산 및 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이며, 이것들이 증가하는 이유는 세율이 삭감되고 노동 및 저축에 대한 세후(稅後) 수익이 증가함에 따라 노동 및 자본의 공급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세금을 줄여주면 사람들이 세후 수익이 증대될 것으로 기대해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단순한 논리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논리가 지향하는 바는 ‘작은 정부’의 추구로, 이 경제학 이론이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전후 미국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보수적인 대통령이라는 평을 듣는 레이건 대통령 때부터였다. 아래 인용한 책의 저자 허버트 스타인에 따르면 실제로 세금정책이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주창자들은 개의치 않는다. 주창자들은 다른 원인으로 인해 약간이라도 정책효과가 있는 기미를 보였다면 자신들의 정책 덕이라고 포장하면 될 터이고, 만약 정책효과가 없거나 심지어 부정적으로 나타나더라도 정책의 실행 강도가 미약했다거나 다른 변수가 그것을 상쇄시켰다고 주장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험부담이 없고 이득의 가능성이 많기로는 공급위주 이론을 창시하거나 지지했고 또 정치인들에게 그 학술적 타당성을 인정해준 경제학자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그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일반인들에게 ‘증명할’ 방도가 없었다. 일반인들은 그들을 항상 자기들끼리 다투는 수많은 경제학이나 사회과학 학파들 가운데 하나의 지도자들로 여길 것이고, 누가 정말 옳은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이나 정치/경제사정에 따라 선택할 대상 정도로 이해할 것이다. 주요 정치인들이나 고액 납세자들은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이고, 그들은 상담역이나 연사로 여기 저기 불려 다닐 것이다. 설사 공급위주 이론이 와해되거나 시들어 버리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들은 그대로 유명인사나 예언자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대통령의 경제학, 허버트 스타인 지음, 권혁승 옮김, 김영사, 1999년, p279]

경제학자들이나 사회과학자들이 하나의 이론을 창시하여 그것이 정치인들과 일반인들에게 취사선택되고 재활용되는 과정이 이 한 문장에 잘 드러나 있다. 경제이론과 사회과학이론의 검증은 자연과학의 그것과 달리 밀폐된 공간에서의 실험을 통해 변수와 결과 간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틀린 이론을 주장하는 이조차도 즉각적인 변명거리를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실 대부분의 경제이론들은 이해관계자들이 가지고 있는 위와 같은 연결고리를 타고 한줌의 편견을 통해 취사선택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대개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물적 이해관계를 이롭게 하는데 사용된다.

현 정부 역시 감세를 통해 경기를 진작시킬 수 있다는 진부한 논리를 채택했다. 시작부터 빼들었던 칼은 종합부동산세와 상속세 등 이른바 참여정부가 박았다는 대못 빼내기였다. 이러한 세금들이 계급특정적인 특성을 가지는 반면 소득세는 무차별적인 세금혜택이라고 주장되었지만 감세의 혜택은 대부분 상위소득계층이 누렸다. 문제는 그렇다면 과연 이런 감세를 통해 남는 돈이 선순환 되고 있는가 하는 여부인데 많은 이들은 그 효과가 미진하며 – 특히나 현재와 같이 투자 자체를 꺼리는 형국에서는 – 오히려 재정건전성만을 악화시킬 소지가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 역시 이러한 우려 때문에 최근 소득세율 인하를 유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예산정책처는 “소득세율 인하가 민생안정에 미치는 효과 및 소비 진작에 미치는 효과가 제한적이고 소득세율 인하가 시급한 과제도 아니다.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소득 근로 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감면축소는 소득세율 인하 유보를 전제로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이들은 공급위주 경제학의 논리를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시작은 ‘작은 정부’를 외쳤던 보수 정권이 점점 상황논리를 부여해가며 ‘큰 정부’로 나아가고 있음에 세금정책은 또 편리한대로 취사선택될 수 있다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정치다.

참고로 우리나라 소득세 최고세율은 지방세 포함 38.5%로 OECD평균 42.3%보다 낮다.

8 thoughts on “세금의 정치적 이해관계

  1. 키다링

    헤헤 공급중시론자들의 이론이 언제부턴가 주류 – 정치 및 학문 – 로 자리매김한지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나게 되었군요. 재작년부터 그렇게 격한 세계적 금융 시장의 변화를 목도하고서도 우리나라는 소득세율에 관한 진부한 논의만 반복하고 있으니 황당할 노릇이에용. 세금하니 생각나는 뜬금없는 이야기에다가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간접세 역시 우리나라는 대단히 높죠. (총세금중 간접세 비율은 「94년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 – 그러나 2009년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으로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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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RedPain

    갑자기 레이건의 감세 이후 실업률 변화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생각나서 트랙백 걸었습니다.

    그런데 소득세 감면은 상위 소득 계층보다는 하위 소득 계층이 누렸다고 봐야죠. 1200만원 이하는 8%에서 6%로 낮아지고 8800만원 초과는 35%에서 33%로 낮아지니 하위 소득 계층이 훨씬 해택을 많이 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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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비록 일률적인 세율인하라 할지라도 감세효과가 절대액이나 일인당 금액이 상위소득계층에게 더 나타나는 것은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하위소득계층은 납세 자체에서 면제되는 층이 많고 특히 현대의 조세체계는 누진세율이 일반화되어 있으니 말이죠. 저는 그러한 측면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것이 계급차별적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고요. 말씀하신 시각으로 보실때에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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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RedPain

      08년에서 10년으로 종합소득세율이 변경되면서 연봉 1200만원인 사람은 종합소득세가 96만원에서 72만원으로 약 33.33% 인하되었고 연봉 2억인 사람은 5686만원에서 5286만원으로 약 7.57% 인하되었습니다. 물론, 절대액이 각각 24만원과 200만원으로 감세액은 8~9배 정도 차이가 나지만 실질적으로는 상위 소득 계층보다 하위 소득 계층이 더 많은 혜택을 본다고 봐야겠죠.

      종합소득세에는 이미 누진세율이 적용되고 있고 절대 인하액이 상위계층이 더 크다고 해서 상위계층이 더 많은 혜택을 본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foog님 말씀대로라면 하위계층만 인하해주는 방식 또는 하위계층만 인하하고 상위계층은 인상하는 방식 외에는 모두 상위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봐야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현 정부가 한 일 중에 종합소득세율 변경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워낙 높이 평가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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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말씀중에 실례입니다만, 통계적 수치로는 빵을 만들 수 없지 않습니까. 의미가 있는 것은 절대 액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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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foog

      저는 어쨌든 다양한 시각에서의 분석이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숫자라는 것이 사실 가치관이나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니 다양한 분석을 대하는 것이 시각의 조율에도 도움이 되니까요. 그래서 redPain님의 입장에 동의한다기 보다는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여하튼 다른 분석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은 6일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뢰해 받은 지난해 감세 및 올 증세효과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 정부의 올해 고소득층 기준인 개인소득 4800만원 이상인 사람에 대한 감세효과가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 감면효과까지 감안하면 76.4%로 나왔다고 밝혔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11061804005&code=9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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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login

    미국에서조차 검증 안된 일이, 우파정부의 선동질로 부시에 의해서 벌어졌죠. MB또한 부시를 카피엔 페이스트 하고 있고요..폴크루그먼은 공급경제학자들을 거의 사기꾼 취급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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