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미 사회주의 세계일지도?

유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거가 주식회사의 공개는 사회주의 세상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자본주의에서 기업의 지배권이 바로 주식인데 이를 대중에게 팔면(특히 연기금에) 그게 바로 자본이 사회화되는 것이고 바로 그것이 사회주의 아니냐는 소리다.

딴에는 일리 있다. 삼성이 누구 것인가? 이건희 것도 아니고 이재용 것도 아니다. 주주의 것이고 주주는 바로 기관 투자자에서부터 소액투자자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사회화되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삼성이 이건희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만리장성을 진시황제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부분 좀 있다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날 금융계는 더 이상 기업대출을 통해 이자만 따먹는 장사가 아니다. 소위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은 전통적인 은행업의 영역을 넘어서 개발사업, 발전사업, M&A, IPO 등 다양한 수익원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 미국 등 서구에서는 투자은행 부문이 상업은행 부문을 압도한지가 한참 되었고 우리나라는 IMF 이후 은행의 대형화를 통해 이제 투자은행으로 크겠다고 내부공사가 한창이다.

그런데 이 투자은행의 투자형태가 재미있다.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도 그대로 써먹었던 방식인데 부동산, 원자재, 사회간접자본 등의 자산의 현금흐름을 담보로 대출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을 일으키거나 이들 자산을 담보로 자산담보부증권(ABS : Asset Backed Securities)을 발행하여 자금을 모집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흔히 해당 사업만을 사업목적으로 하는 특수목적법인(SPC : Special Purpose Company)을 설립하는데 이를 자금의 도랑 역할을 한다 하여 도관체(conduit)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투자의 진행방식을 보면 하나의 기업이 세워지고 성장하고, 이를 통해 주주들이나 다른 투자자들이 이득을 취하는 기업의 생애주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예전에는 개별기업이 다양한 사업을 자기의 기업대출이나 증자를 통해 자금조달을 하였다면 이제는 사회의 모든 자산들이 이렇게 개별사업 단위로 펀딩되고 증권화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투자형태가 아직까지는 사모(私募)형태가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부동산투자신탁(REITs)의 경우 공모(公募)를 의무화하고 있기도 하다. 여하튼 작년에 열풍이 불었던 주식펀드도 일종의 간접투자펀드이고 위에 언급한 사업들도 넓은 의미에서 간접투자펀드의 형태다. 그리고 그 소유주는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다. 그리고 기관투자자 역시 비공개기업을 제외하고는 계속 파고들다보면 다수의 개인투자자들로 쪼개진다.

자 이렇게 보면 주식의 소유가 편중되었다 뿐이지 결국 현대 자본주의 기업, 혹은 개개의 사업들은 인민들의 소유가 아닌가 말이다. 그러면 앞서 언급한 피터 드러거의 말이 맞는 것이 아닐까? 이 세상은 이미 사회주의 세상이 되었다. 이건희나 이재용은 사회주의 세상에서 사회화된 기업의 대리인, 또는 도관체에 불과한 것이다. 멋져부러~(이말 한번 쓰고 싶었다)

문제는 이런 사실에 동의하는 이가 얼마 안 된다는 것이다. 자본가들도 뭔 소리? 할 것이고 사회주의 혁명가도 무슨 자다 봉창 뜯는 소리냐고 할 것이다. 회사 앞에서 농성 중인 해고노동자분들이 이 글 보면 열 받아서 날 찾아올지도 모른다. 왜 이럴까?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기업은 사회의 것이 되었는데 왜 아직까지 사회구성원 절대 다수는 기업은 자본가의 것이라고 생각할까?

결국은 경제에 정치가 끼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도 자신을 대리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대리인이 가지는 파워가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주주 전체의 파워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회구성원이 암묵적으로 동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총수가 되었든 펀드의 펀드매니저가 되었든 이들이 가지는 사적이익은 이해관계가 저마다 틀린 주주 또는 투자자의 공적이익을 압도한다. 그래서 대리인의 사모님은 ‘행복한 눈물’을 벽에 걸어 놓고 감상하고 주인은 손가락 빨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있다고 생각하는 공적이익은 투자단계에서 개입되지 않는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사적이익은 투자이익률로 환산이 가능하지만 공적이익은 수치로 환원되기가 쉽지 않다. 그런 것을 도입하고자 하는 것이 예를 들면 사회책임투자인데 이것도 사실 수치로 검증되지 않는다. 군수산업이 식목산업보다 돈이 더 되는 데야 공적이익이 끼어들 여지가 적어진다.

결국 도관체에서 특정소수집단의 이익이 관철될 확률이 높다. 흔히 다수가 소수를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에는 그러한 상식을 깨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바로 자본주의에서 자본이 돌아가는 이치가 그렇다. 기업을 공개하면 사회주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노동자에게 투표권을 주면 사회주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15 thoughts on “어쩌면 이미 사회주의 세계일지도?

  1. Jayhawk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결국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 특히, 획득이나 자본으로써의 이익)은 없는 것이고, 공공의 이익은 개념적인 사고 수준에 머문다고 생각 합니다. 공공의 이익 개념이 빨리 드러날 수록, 이익이란 셈(계산)은 더 빨리 사유화로 진행되고 어쩌면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고까지 생각되더군요.

    근래에 발전하고 있는 공익의 계량화 역시 공익을 사유화했을때의 투자수익률 게임이 아닐까요? 예컨대, 매우 우려스러운 260억 예산의 한국 우주인 배출사업정책의 경제파급효과와 같은… ^^;

    이익이란 개념에서 벗어난다면, 공공의 이익은 어떻게 하면 좀더 공짜로 공공의 쓸것(재화와 용역/Public Goods&Services)을 더많이, 더 지속적으로, 물론 쭉 공짜로 쓸 수 있는냐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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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일종의 공유지의 비극이라 할 수 있죠.. 우주관광객 사업도 공유지의 비극일까요? ^^ 여하튼 공익이 계량화되어야 하는 것이 하나의 시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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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민혁

    공익을 백날 계량화해봐야 결과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예컨대, 왜 그들이 삼성 주식을 갖게 되었는지에 주목한다면 답은 쉽게 나오지요. 투자자는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삼성 주식을 산 게 아닙니다. 오히려 스스로의 주권을 삼성에 갖다바치며 주권을 위탁한 것이지요. 왜 그런지는 익히 아시는 그대로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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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제가 말한 공익의 계량화는 투자개발에 대한 경제적 이익의 분석과 병행되는 사회적 효용의 계량화 쯤으로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주식의 매입이 스스로 주인됨이 아닌 일종의 권한의 위임이라는 지적은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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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히치하이커

    막말로 남의 돈 빌려 장사하는 놈들이 그 돈을 제 삼찟돈 마냥 여기는 게 불쾌하기 그지없습니다요. 제가 불쾌하다고 해봐야 달라질 건 하나도 없지만서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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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히치하이커님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바뀌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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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정환

    멋진 글입니다. 저도 사회책임투자에 대해서 약간 회의적인데요. 착한 기업이 돈을 더 잘 번다는 착한 생각에 그치지 않고 좀 더 과학적인 전략이 필요할 것 같아요. 최근의 주주 행동주의는 전혀 반대의 양상으로 가고 있는 것 같고요. 저는 요즘 지주회사 제도를 눈여겨 보고 있는데 왜 이에 대한 비판은 없는 것일까요. 지주회사 제도야 말로 재벌 못지 않게 소수 주주의 이해를 극대화하는 장치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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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이정환님이 칭찬해주니까 괜히 우쭐해지는데요? 🙂

      사회책임투자에 대해선 크게 두가지 카테고리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선 업종에 상관없이 의사결정과정이 민주적이거나 노사화합(진정한 의미에서)이 잘 되어 있는 기업에 대한 투자와 이른바 ‘착한’ 업종에 투자하는 것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짐작에 전자의 경우는 그나마 수익률이 좋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그런 기업이 일종의 우발적인 손실로부터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이랜드가 있겠죠. 좀더 노동자들에게 인간적으로 대했더라면 이런 사태까지 빚어지지 않았겠죠. 최근에는 매각설이 솔솔 피어오르더군요. 후자는 약간 회의적입니다.

      지주회사 제도에 대해선 저도 아직 깊이 고민해보지 않아 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이정환님이 언제 한번 가르쳐 주시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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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nekoneko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실제 미국 영어에서는 주식공모를 한다는 것을 go public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벤처 회사들이 go public하고 나면 그 회사는 더이상 오너의 소유(private)가 아니게 되는 것이죠. 실제 소규모 벤처들은 따라서 창업자들의 의사가 제한된다는 측면에서 go public하는 일정을 뒤로 미루려는 경향도 있더군요.

    최근에 정운찬 교수가 요즘은 기업은 벌어들인 돈으로 투자를 하지 않고 저축을 하고 가계는 저축을 하지 않고 펀드와 같이 투자를 하는 교과서와는 반대되는 흐름이 최근 한국경제의 문제점이라고 일침을 놓은 기억이 나는데… 어쨌든 일반 개인들까지 주식과 펀드를 논하는 점은 관심있게 보아야 할 트렌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제에 정치가 끼어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기 전에 소유의 분산과 권력의 집중은 principal-agent의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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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저도 글을 쓸때 말씀하신 주인-대리인 이론을 약간 염두에 두긴 했었습니다. 결국 정치라는 개념을 넓게 확장해볼 때 그 이론도 넓게 보아 정치의 한 유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썼던 것 같습니다. 🙂

      정운찬 교수의 지적은 약간 과장된 측면이 없진 않으나 그만큼 경제상황이 왜곡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는 면에서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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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김증말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백번 옳은 말씀이오나

    흩어져 있는 주주라는 것이 대부분 ‘외국인’ 자본들이고 실제 한국 대기업들이 형성되어 온 과정을 보면 순환출자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그 순환의 고리와 재벌의 지배가 단지 주주의 원리로만 비판받을 만한 것인지에 대해선 현실적으로 의문이 듭니다. 장하준 교수가 쓴 책에서도 차라리 인정을 하고 고용을 늘리는 방안으로 서로 상생하는 것이 어떠냐고 주장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상당히 저 같은 꼬꼬마로써는 새로운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이 됩니다.

    그리고 노동자 연기금이 주체가 되어 주주가 된다면 주주의 이익과 노동자의 이익이 합치가 되어 경영구조가 상당히 효율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분야이죠 정치권에서도 쌍용건설이나 경향신문이 이런 구조라고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방송에서 보았던 이탈리아 볼로냐의 조합 기업들도 이런 구조인 것 같더군요 그렇지만 지금의 현실이 노동자 자본보다는 그리고 노동자 자본이라 할 지라도 국내 노동자와 그리고 해당 기업의 노동자의 자본과 합치되는 자본이 아닌 이상 주주를 옹호하건 재벌을 옹호하건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인데 너무 어설픈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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