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hwon [1]

정말 오랜만에 소설을 – 잡글 – 다시 써봤습니다. 장르는 스페이스환타지추리소설. 너무 황당한 장르지만 하여튼 ‘뭐 이런 글이 있어’라고 탓하지 마시고 재밌게 읽어주시길…. 연재로 이어집니다.

순이의 일기 2057년 7월 4일

어제 존이 죽었다. 내 사랑. 살해당했다. 하지만 모두들 시큰둥한 반응이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을 목숨이라는 체념? 우리란 난파당한 우주선 erehwon 호의 승무원들을 말한다. 태양계를 넘어 인류의 새로운 거주지인 신천지를 개척하는 – 적어도 선장의 말로는 – 임무를 부여받고 지구를 떠난 우리 일곱 명의 우주인들은 태양계를 벗어난 순간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주동력원인 헬륨3 잔량의 97%가 사라져버리는가 하면 주요전자기기의 기능이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다. 덕분에 우리는 말 그대로 우주의 미아가 되어버렸다. 그 사고가 있은 지 56일 동안 얼마 남지 않은 전기와 물, 그리고 식량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눈물이 흐른다. 그가 그립다.

존의 죽음에 침묵하는 동지들. 동지? 살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 폐쇄된 우주선 공간 안에 존의 살인자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숨 막힌다. 그 살인자가 당장이라도 내 방에 뛰어들어 나를 덮칠 것만 같다.

스즈끼의 일기 20057년 7월 4일

사실 삶에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삶을 갈구하고 사랑하기에 태양계를 벗어나 신세계로 나아가는,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모험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 두 강대국 간의 끊임없는 분쟁으로 얼룩진 지구, 환경오염으로 그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는 지구, 그 지구의 대안을 찾기 위한 힘겨운 첫걸음이었다. 그렇지만 결과가 이렇게 허무할 줄은 몰랐다. 우주선이 주기능이 정지된 – 다행히 약간이나마 전력은 남아있다 – 원인도 모르고 고칠 방법도 모르겠다. 지구와의 교신도 끊어졌고 그나마 유일한 밥줄인 식물원의 식물도 점점 죽어가고 있다. 가져온 비상식량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기능이 정지된 우주선은? 우주선은 그냥 우주를 힘없이 유영하고 있을 뿐이다. 죽음 같은 침묵의 우주로 무의미하게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마치 지금의 나처럼.

조금 이른 죽음

존의 죽음은 공식적으로 2057년 7월 3일로 기록될 것이다. 다른 이들의 예정된 죽음보다 몇 주 앞섰다. 발견될 당시 가슴에 스웨덴제 군용 칼이 꽂혀있었다. 존 자신의 칼이었다. 지문은 없었다. 누구라도 드나들었을 그의 방에서 용의자의 흔적을 찾는 것은 무의미했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그다지 놀란 눈치가 아니다. 싸늘한 침묵만이 감돌뿐이다. 그저 죽음이 자신들보다 조금 빨랐다고 생각하는 그런?

“순이 오늘 중식 당번이야” 앨리스가 말했다.

“이봐 플리즈~”

챈이 앨리스에게 호소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순이의 심정을 알지 않느냐는 표정이었다. 앨리스는 그런 그에게 ‘어쩌라고’하는 표정을 지었다.

“순이 내가 식사 준비 할테니 너는 좀 쉬어.”

“아냐 내가 그냥 할게.”

“그렇다면 내가 도와줄게.”

챈이 뒤따라 나서며 말했다. 앨리스는 그런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앨리스와 휴게실에 남은 미구엘은 무표정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다 읽고 있던 책으로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앨리스가 책 제목을 흘낏 쳐다보았다.

‘쥐덫’

“흠 고전추리소설이군. 어쩐지 우리 처지랑 닮았는걸? 폐쇄된 공간에서의 살인극이 말이야. 차이가 있다면 그 작품의 등장인물은 죽음을 두려워했고 우리는, 적어도 나는 죽음을 냉소하고 있다는 정도?”

미구엘은 약간 미간을 찡그렸다. 이때 앤디가 들어왔다. 그는 지구방위대 소속 수사관 신분이다. 어떤 의미에선 이번 살인사건의 수사책임을 맡고 있다 할 수 있다.

“저런 때맞춰 들어오시네 수사관님이. 가만 있자 쥐덫에선 수사관이 범인이었는데 말이지.”

앨리스는 짖궂은 표정으로 앤디를 바라보았다.

“집어치워 그놈의 냉소 짜증나!”

여태 무관심하게 책을 읽던 미구엘이 책을 팽개치며 소리쳤다. 앨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앨리스를 바라보던 미구엘은 휴게실을 나가버렸다.

“쟤 왜 저래?”

앨리스는 짐짓 모르는 체 빈정거렸다. 그런 앨리스를 보던 앤디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다시 휴게실을 나갔다. 앨리스는 이번에는 아무말 없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식물원

미구엘은 식물원 담당이었다. 식물원에는 승무원들이 먹을 식량들을 재배하고 있었고 인공태양열과 물을 자동으로 생성하고 제어하는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기능이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마비되어 버렸다.

미구엘은 그렇지 않아도 내성적인 성격인데 더욱 말이 없어져 버렸다. 이 사태가 꼭 자기 책임인 것 마냥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습관적으로 식물원에 와서 시간을 보냈다. 아직 소량의 물을 먹고 살아가고 있는 식물들이 살려달라고 무언의 항변을 외치고 있었다. 미구엘은 시들어가는 사과를 만지작거렸다.

문득 존이 떠올랐다. 평소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니 원래는 둘도 없는 절친한 사이였다. 둘은 우주사관학교 동기였다. 학교성적은 미구엘이 더 우수한 편이었지만 룸메이트여서 스스럼없이 어울리곤 했다. 그러나 그런 우정은 존에 의해 깨졌다. 미구엘이 순이를 사랑한다고 수줍게 존에게 털어놓은 후 존은 관심도 없던 순이를 여자친구로 삼아버렸다. 그것은 고의적인 것이었다. 미구엘은 나중에야 존이 자신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있었고 이를 통해 그런 콤플렉스를 극복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구엘이 더욱 화가 났던 것은 순이의 존에 대한 애정이 진실되었다는 사실이다. 반면 존의 그것은 다분히 장난기어린 것이었다. 미구엘은 용기를 내어 이런 사실을 erehwon 호의 멤버가 결정되기 전에 순이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순이에게 승무원에 지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순이의 대답은 간단했다.

“No thanks”

상념에 젖어있던 미구엘은 문득 등 뒤로 인기척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 너구나. 저… 아까는 미안….”

미구엘은 말을 잇지 못했다. 존을 찔렀던 그 칼이 그의 가슴에 꽂혔기 때문이었다. 불에 데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정신이 희미해지는 와중에 ‘왜 왜!’라고 외쳤다. 미구엘의 가슴을 칼로 찌른 검은 그림자는 칼을 뽑아들고 식물원을 빠져나갔다.

(계속)

9 thoughts on “erehwon [1]

  1. 책공

    배경이 마치 베르베르가 쓴 파피용 같네요ㄷㄷ 지구를 벗어난 우주선… 다음 편은 언제쯤 나오는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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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베르베르의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는데 그런 소설도 썼군요. 사실 영화 선샤인의 장면을 상상하면서 썼습니다. 🙂 다음 편은 주말쯤에나 가능할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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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targazer

    제가 이쪽 문학을 좋아해서.. 무척 반갑네요. 다음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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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Pingback: nuordr's me2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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