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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스미드는 현대의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데이빗 리카도와 아담 스미드는 무역협정 안에 들어 있는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의 포함에 대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그들은 생물학 약품의 판매에 5년 혹은 8년의 독점권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우리의 무역 파트너들에게 기본적인 노동 및 환경 조건을 준수하도록 확인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환율조작은 어떠한가? 그리고 대량의 자본이동에 따른 인터넷이나 해외에서의 일자리에 대한 서비스의 거래는 어떠한가? 비교우위 이론은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아직 이것들은 현재 TPP 협정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들이다.[Sander M. Levin – Testimony before the U.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미국 국제 무역 위원회의 ‘TPP에 대한 미국경제와 특정 산업분야에 관한 영향’ 청문회에서의 샌더 레빈 미 하원 민주당 의원의 발언이다. 레빈 의원은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기본적으로 미국에서의 노조 등 노동자 측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미FTA 체결 시에는 한국이 자동차 시장을 충분히 개방하지 않았다는 등의 주장을 하면서 반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입장에서 상기 발언을 읽어보면 미국의 진보진영이 가지고 있는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일면을 관찰할 수 있다.

위에 나열한 여러 현대적 자유무역협정에서 당연시되고 있는 조항들에 대해 과연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아담 스미드는 상당히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아담 스미드가 주창한 자유무역은 기본적으로 농산물 수입 통제 등을 통해 이득을 보려던 경쟁력 떨어지는 자산가의 기득권 타파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런데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나 장기 독점판매권이 아담 스미드의 그런 이상과 부합하는 것일까? 오히려 기득권의 보호가 국제적으로 확산된 측면이 있다.

샌더 의원의 이어지는 증언에도 언급되고 있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자유무역”에 대한 서구의 – 특히 미국의 – 믿음은 1980년대 미국의 對일본 무역적자에 대한 경험으로 강화되어 온 측면이 있다. 하나의 신조가 된 더 적은 정부개입과 “자유”무역은 이후 NAFTA나 각종 FTA로 정당화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무역협정에서 당사국들은 어떤 교훈을 얻은 것일까? 여전히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나 독점적 판매권을 “자유”무역이라 여기는 것일까? 이 글 등을 읽어보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기도 하다.

이번이 생물학 생산품에 대한 시장 독점권에 대한 조항이 등장한 첫 사례다. 그리고 이는 많은 TPP 조약국들에 대한 새로운 의무조항이다. 이 조항으로 인해 다음 개발단계에 있는 제네릭 약품이나 바이오시밀러(biosimilar)의 경쟁이 지연될 것이고, 이는 적정한 약품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 개발도상국 혹은 심지어 호주에서의 많은 시민들이 이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 의미한다. TPP 의무조항은 장래에 적정한 약품에 대한 접근을 향상시키기 위해 취해질 시스템의 개혁을 어렵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현재의 지적재산권을 옥죌 것이다.[TPP Intellectual Property Chapter is “A Disaster for Global Health”]

환율방어를 위한 당국의 “실탄”은 누구의 실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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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currency exchange AIGA euro money” by Copyleft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30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6원 내린 1018.0원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1020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8년 8월 8일(1017.5원) 이후 5년9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의 하락은 월말을 맞아 수출업체들이 미 달러화 매도 물량을 대규모로 내놓은 데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미 달러 약세 현상이 나타난데 영향을 받았다. 원·달러 환율은 1020원선이 무너진 뒤 당국의 ‘실탄 개입’ 물량이 나오면서 오전 10시 30분 현재 전날보다 0.3원 하락한 1020.6원을 기록했다.[환율 1020원선 붕괴]

당국의 “실탄”은 어디서 마련될까?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통화안정증권을 통해 조달된다. 아래 기사를 보면 통화안정증권을 “잠재적 국가부채”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은행의 부채는 국가부채로 계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도 썼듯이 중앙은행의 부채가 정부와 관련 없는 “독립적인” 부채라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한국은행의 경우 자체 적립금으로 적자를 메우지만 이 적립금이 고갈될 경우 한국은행법국가재정법에 따라 정부재정으로 메우게 되어 있다.

‘잠재적 국가부채’로 불리는 한국은행 발행 통화안정증권(이하 통안증권)이 급증, 연간 이자 부담만 6조원에 달하면서 국가재정을 위협하는 악성(惡性)부채가 돼가고 있다. 한은이 통화조절용으로 발행하는 통안증권은 외환위기 이후 외환보유고를 쌓는 과정에서 풀려난 통화 환수와 환율 방어에 동원되면서 발행 잔액이 급증했다. 지난 97년 23조원 수준에서 지난 9월 현재 160조원으로 8년 사이 7배 늘어났다.[‘통화안정증권 160兆’ 韓銀 사상최대 적자]

“통화안정증권”이라 이름 붙여졌지만 당국이 개입하는 것은 통화약세를 위해 개입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위해서 말이다. 다른 나라는 국채조달을 통해 정부가 개입한다면1 우리는 통안증권을 통해 개입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첫 인용기사를 보자. 월말 변수라고는 하지만 수출업체들이 달러를 매도했을 때는 1020원 언저리에서 매도했을 것이다. 원화 가격이 하락하자, 즉 원화강세가 되자 당국이 “실탄”으로 다시 1020원을 만들어줬다. 수출업체가 달러 대량매도로 인해 지불하는 기회비용은 없다.

한국은행은 작년 말 현재 부채가 448조3천993억원으로, 1년 전보다 13조4천865억원(3.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고 20일 밝혔다. 이는 5년 전인 2008년 말(307조4천445억원)에 견줘서는 무려 45.8%(140조9천548억원)나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대표적인 가계빚 통계인 가계신용은 2008년 723조5천215억원에서 작년 1천21억3천383억원으로 41.2% 늘었다. 결국 한은 부채가 가계 빚보다 가파르게 증가한 셈이다.[한국은행 부채 448조원… 5년전比 46%늘어]

이로 인해 한국은행의 부채는 신용위기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한은부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163조원(36.4%)이 넘는 통안증권이다. 지난 5년간 유동성 공급을 위한 화폐의 증가율이 가장 높았지만 통안증권 역시 36조원 이상이 증가했다. 내수와 수출 진작을 위한 정책이 병행된 셈이다. 어쨌든 이런 수출기업에게 가장 큰 혜택이 갈 한은의 역할이 계속됨에도 지난 2월 기획재정부가 새로 편재한 공공부문 부채 산정에 통안증권이 빠짐에 따라 한국 특유의 부외금융(off-balance sheet financing)은 계속되고 있다.

국가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자동차의 환율흐름과 영업이익률을 비교한 결과 상관관계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략] 현대기아차는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2000억원 정도 이익이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략] 다만 해외 공장에서 생산해 현지에 판매하는 물량이 늘어나면서 환변동에 따른 여파가 과거에 비해서는 줄어드는 추세다.[삼성전자·현대차, ‘원高 영향’ 덜 받는다]

대표 수출업체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이야기다. 정부가 통안증권이라는,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수단을 강구해서 이들을 도와주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구책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해외 제조기지 건설은 환위험 헤지 등을 위한 당연한 경영전략이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업체가 그런 전략을 구사하기에 앞서 영업을 시작한 이후2 그들을 세계적인 업체로 키우기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 나아가 국민이 들인 노력과 지불하고 앞으로 지불할 비용에 대해서는 얼마나 보상했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셀던 위기에는 무엇이 해법이 될 것인가?

“그러면 이게 내 조건일세. 자네는 경제적 매수 행위나 가전제품 무역 같은 서투른 정책을 버리고 우리 선조가 시험을 끝낸 외교 정책으로 되돌아가야 해.”
“선교사를 보내서 이웃 나라를 정복하는 정책 말인가?”
“맞아.”
[중략]
“셀던 위기란 개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적 힘에 의해서 해결되는 거야. 해리 셀던이 옛날 우리 미래를 계획했을 때 그가 믿은 건 훌륭한 영웅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의 거대한 흐름이었어. 그러므로 여러 가지 위기는 그때마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힘으로 해결해야만 했어. 이번 경우, 그 힘은 바로 무역이야!”
[파운데이션,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황금가지, 2013년, pp309~311]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걸작 ‘파운데이션’의 일부로 무역상이었다가 시장이 된 호버 말로가 그의 政敵 조레인 서트와 나누는 대화다. 파운데이션의 창조자라 할 수 있는 해리 셀던이 예언한 셀던 위기가 도래했음을 동감하는 두 사람이지만 그 해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두 사람의 상반된 관점을 이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전통주의자인 서트는 이전의 셀던 위기 때 前 시장이 시도했던 종교라는 수단을 옹호하고 있다. 이에 現 시장인 말로는 자신의 특기인 무역이라는 수단을 옹호하고 있다.

사이언스픽션이라고는 하지만 아시모프의 이 작품은 작가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감화를 받아 쓴 작품이라는 탄생의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가 지나온 과거 역사의 교훈에 소재를 기대고 있다. 작품의 배경인 은하제국이 – 작품을 쓸 당시 각광받는 새로운 에너지인 – 원자력에 기대어 살고 있고 광속을 뛰어넘는 우주선이 등장하는 미래의 제국이지만, 그것이 묘사하는 정치체제나 인간군상은 명백히 로마 시대 또는 그 이후의 서구가 걸어왔던 모습이 미래에 투영되어 있다.

종교가 꽤 오랫동안 한 문명의 다른 문명에 대한 지배수단이 되었다가 그 지위를 무역이 대체한다는 설정 역시 현실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종교도 그것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해온 권력자의 이해관계의 감추는 외피로 기능하기도 했지만 대다수 인민은 꽤 오랫동안 종교가 던지는 메시지 자체를 삶의 교본으로 삼고 살아왔다. 그러다 자본주의 체제가 주요 경제체제로 자리 잡고 이자를 받는 것이 더 이상 죄악이 아닌 시대에 접어들자 이제 무역이 종교가 해오던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

바티칸이나 메카가 구체제의 상징이라면 신체제의 상징은 WTO, FTA, 바젤III와 같은 것들이다. 이들 상징은 자유무역, 자금의 이동, 차별 없는 서비스 조달과 같은 교리의 구체성을 부여하고 이의 이행을 감시한다. 이렇게 세계화된 무역은 세계를 종교가 수행했던 하나의 공동체로 유지시킬 것이며 때로 그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불량국가를 응징하는 수단이 된다. 무역제재, 투자자금 인출 등이 그런 용도로 쓰인다. 쿠바, 북한과 같은 조무래기나 우크라이나를 노리는 러시아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바티칸에 등장한 구체제의 – 그러나 신선한 – 전도사낙수효과 같은 경제법칙은 엉터리라고 이야기하자 신체제의 순기능에 회의적인 이들은 환호하는 반면, 맨큐와 같은 신체제의 전도사는 원색적으로 그를 비난했다. 구체제 역시 합리성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낡은 시스템이 온존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합리성과 진보를 요구하는 이가 등장해서 반성을 요구하고 있는데 신체제의 전도사는 이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가 보다. 새로운 셀던 위기에는 이런 친구가 서트와 같은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

말로는 서트를 감옥에 처넣고 그만의 해법으로 셀던 위기를 극복한다.

“해외직구”가 왜 늘어났을까? 소비자의 과소비? 또는 반란?

오늘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주제는 흥미롭게도 경제와 관련된 주제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들이 최근 해외에서 인터넷 등을 통해 물건을 직접 구매하는, 이른바 “해외직구”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타임라인을 때 아닌 해외직구 이야기로 채워지게 한 기사는 세계일보의 이 기사로 짐작되는데, 이 기사는 FTA등으로 구매비용이 절감되자 늘어난 소비자들의 해외직구로 인해 내수가 피해를 입고 있으며 정부가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관세청이 파악하고 있는 직접구매 규모는 약 1조1천억 원이다. 관세청에 잡히지 않는 소액 구매까지 합하면 실제 시장은 두 배가량일 것이라는 것이 기사의 주장이다. 대체 2조2천억 원으로 우리나라 내수시장이 무너질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지만 만약 그럴 조짐이 보인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보다 깊은 속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이 언론, 정부, 학계, 그리고 근본적으로 생산 및 유통업계가 할 일일 것이다. 그런데 기사를 보면 현재의 현상인식은 “해외직구 나빠”정도인 것 같다.

해외직구는 경제가 세계화되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자연적으로 증가할 현상이다. 기업은 세계화를 위하여 WTO와 FTA 등을 통해 각종 경제장벽을 제거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 보다 더 수동적이긴 하지만 – 노동자들은 경계를 넘어 노동의 수요가 있는 곳으로 이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 역시 이러한 “합리적 경제행위” 주체가 되어야 한다. 생산업자와 수입업자가 같은 품질의 제품을 해외보다 비싼 가격에 팔고 있다면, 소비자는 그에 대응하여 해외직구로 비용을 절감하게 마련인 것이다.

보다 더 근본적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대개의 사람들은 소비자인 동시에 노동자다. 그러므로 그들의 소득으로 소비를 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가 소득이 준다면 소비행태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해외직구는 어쩌면 그러한 경향에서의 소비자의 자구책일 수도 있다. 최근의 한 연구는 이러한 가정의 전제인 가계소득 감소에 대해 매우 신빙성 있는 결과를 제공하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총소득(GDP) 대비 가계소득 비중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소득이 줄어드니 싼 제품을 사야하는 것이다.

2000년 69%에 이르렀던 가계소득 비중이 2012년에는 62%까지 하락한 반면, 기업소득은 같은 기간 중 17%에서 23%로 증가. 2000년대 이후 가계소득 비중의 하락 추세는 여타 OECD 국가들(24개국 중 18개국)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이기는 하나, 우리나라는 그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들 중 하나임. 이 기간 중 우리나라의 가계소득 비중은 6.4%p(2012년-2000년) 하락하였는데, 이는 헝가리, 폴란드에 이어 3번째로 빠른 하락세임.[KDI 경제전망 中 민간소비 수준에 대한 평가: 소득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 2013년 하반기, p46]

GDP 성장의 이면에는 그 소득이 누구에게 얼마만큼 분배되는가라는 질적인 문제가 있는데 우리는 그 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특히 좋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나 정부는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공직자가 여성인턴을 성희롱하면 여성인턴을 뽑지 않는 것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것처럼 내수를 살리기 위해 해외직구를 금지할 것인가? 국산 TV를 아마존에서 50% 이상 싸게 팔면서 국내 소비자를 “호갱님”으로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미국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정치적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일본 역시 내수 진작을 위해 대기업의 임금을 올리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극우노선을 걷고 있는 아베 정권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경기부양을 위해 가계소득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이념적 논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한 일이라고는 기억나는 것이 “시간제 일자리 늘이기” 정도다. 그리고 기억나는 것은 연봉 6천의 노동자를 “귀족노동자”라 비난한 정도다.

어느 경제학자의 사상전향서를 읽다 든 생각

마르크스경제학에서는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착취, 수탈하는 메커니즘’이라고 하고 있지만, 글로벌경제 이전의 자본주의에서는 맞지 않는 말이었다. 오히려 자본주의에서는 과도한 착취나 수탈이 마이너스로 움직인다. 적절한 재분배를 행하는 편이 자본주의 성장에 유리했던 것이다.[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 나카타니 이와오 지음, 이남규 옮김, 기파랑, 2009년, p106]

제목이 사뭇 거창하고 과격한데 원래 오리지널의 제목은 ‘자본주의는 왜 자괴(自壞)했는가 – 일본의 재생을 위한 제언’이라고 한다. 여기에 쓴 “자괴”란 표현이 마땅치 않았던 역자가 부득불 위와 같은 제목으로 대체한 것이다. 따라서 제목에서 보는 것만큼 책 내용이 그렇게 과격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은 저자의 살아온 길과 이 책을 쓴 의도에서 엿볼 수 있다.

저자 나카타니 이와오는 1960년대 말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배운 철저한 시장주의자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시장주의적 개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자본주의”의 한계를 깨닫고 일종의 전향서로 쓴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일반을 폐지하자는 것은 저자의 생각이 아니다. 다만 시장자유주의에 대한 맹신을 경계하고 있을 뿐이다.

인용한 구절은 저자가 주류 경제학자로서의 길을 쭉 걸어왔기에 사실 이 반골(反骨)의 경제학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 못한다는 정황을 잘 보여주기 때문에 인용하였다. 즉, 저자는 세계화되지 않은 과거의 자본주의는 그 지역의 노동자가 동시에 소비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재분배를 하다 세계화가 진전되며 이런 메커니즘이 사라지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맑스가 자본론을 쓰던 당시의 영국은 이미 세계화된 자본주의 국가였다. 어쩌면 플라자 합의 이전의 일본보다도 더욱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제국주의 종주국으로서 영국은 인도 등 식민지와의 무역을 통해 원자재와 상품소비의 시장을 확보하고 있었고, 자국 노동자는 “자유”계약을 통한 “자유로운” 노예의 삶을 살고 있었고 어린이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이후 1차 대전 이전까지 자본주의의 중핵인 유럽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세계화 정도와 유사한 정도로 금융과 무역 등이 세계화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점증하는 자본주의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호무역주의를 선호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전쟁의 한 원인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본주의와 세계화는 따로 존재할 수 없는 두 축이다.

저자의 말처럼 “적절한 재분배”는 자본주의 성장에 유리하다. “복지냐 성장이냐”를 고르라지만 복지는 GDP에 반영되기에 성장의 다른 말이다. 하지만 자본가는 자본주의자가 아니기에 자본주의 성장에는 관심이 없다. “사회는 없고 자기책임만 있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의 본질이고 이것이 자본주의의 지탱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이 자본주의의 모순인 셈이다.

자유무역협정은 관세철폐가 주된 목적일까?

또 다른 옵션으로는 농업이나 데이터 보호와 같은 논쟁이 되고 있는 이슈들을 자유무역 협정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무역 협상에서 남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고 전체 프로젝트가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관세는 오늘날 평균 3% 정도로 이미 너무 낮아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Plan for Trans-Atlantic Trade Agreement Could Founder on EU Concerns]

유럽과 미국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협상을 하고 있고, 유럽의 시민단체들이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슈피겔의 기사다. 오늘날의 자유무역협정이 지니는 의미를 잘 표현해주는 문단인 것 같아 소개한다.

기사를 보면 미국의 농축산업 로비스트, 그리고 구글과 같은 기업들은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유럽의 까다로운 상품기준, 예를 들면 유전자조작 식품에 대한 규제나 개인의 데이터 사용에 대한 규제 등을 철폐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규제철폐는 미국기업에게만 이로운 것은 아닐 것이다. 유럽기업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가장 손해를 보는 집단은 미국소비자와 유사한 수준으로 질이 떨어지는 소비에 노출될 유럽의 소비자들일 것이다.

슈피겔이 지적하고 있다시피 오늘날의 자유무역협정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관세가 주요이슈가 아니다. 그러한 자유무역협정이 전 세계적으로 얽혀서 체결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기업 활동의 무한자유.

중국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TED 강연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한 논쟁에서 우리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놓치고 있다. — 전 세계로 상품을 팔기 위해 중국과 다른 개발도상국의 공장들로 몰려들고 있는 수백만의 사람들. 기자인 Leslie T. Chang이 중국의 번창하는 메가시티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찾아 나섰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TED에서 들을 수 있는 주제치고는 다소 무거운 주제일 수 있는 제3세계의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그 자신이 중국계인 기자가 노동자들과의 대면접촉을 통해 겪은 좀 더 생생한 경험을 재밌는 에피소드와 함께 들려주고 있다. 강연 와중에 Karl Marx의 소외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등 주제가 그리 가볍지는 않다. 해법은 다소 실용주의적으로 들리지만 강연의 질을 떨어트릴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명료한 주제의식, 재밌는 에피소드, 나 같은 반푼이도 얼추 알아들을 정도로 귀에 잘 들리는 발성 등 좋은 강연의 전범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