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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스위스의 대조적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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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2-euro” by This photo (C) Lars Aronsson – Own work. Licensed under CC SA 1.0 via Wikimedia Commons.

가상의 독일마르크에 비해 유로가 상대적으로 싸다는 사실은 독일에게 이로운 점이다. 독일의 재정적 질서 이외에도 통화 연합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그리스 등 모두 최근의 독일만큼 성공적이지는 않은 나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유로의 힘에 영향을 주었고, 독일의 수출업자에게는 이로운 것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수출은 독일 경제의 주요 축이다. 강한 통화는 국제시장에서 생산품 가격을 높임으로써 독일 수출업자를 어렵게 할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ING의 이코노미스트 Carsten Brzeski는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 정책이 더 약한 나라를 도와주는 경향이 있으며 이 정책 경향이 독일과 같은 수출국에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통화는 당신 자신의 통화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언제나 절하되어 있는 상태일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지난 한 해 동안의 ECB의 순응적인 통화정책 덕택에 더 싸지는 단일통화로 인해 독일 경제에 250억 유로가 더해졌을 것이라고 예측했다.[How Does Euro Membership Help Germany?]

유로존에서 탈퇴해야 할 나라는 그리스가 아니라 독일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바로 경제력이 질적으로 차이 나는 국가들이 단일통화를 쓸 경우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의 경우 통화가 비싸지고 이로 인해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독일의 경우 단일통화권에서 그런 상황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혁신적으로 재분배가 되지 않은 한, 독일의 경제선순환과 경제력이 약한 나라들의 경제악순환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금요일에 스위스의 중앙은행인 스위스국립은행(SNB)은 2분기 200억 스위스프랑(200억 달러)의 손실을 발표했다. 금년의 좋지 않았던 첫 석 달에 연속하여 SNB의 2015년의 현재까지의 손실은 501억 스위스프랑이라는 터무니없는 금액에 달하는데, 이는 스위스 GDP의 7.5%에 해당한다. SNB의 손실은 매우 크지만 예상 못한 것은 아니다. 몇 년간, 은행은 스위스프랑이 1유로에 1.2 프랑으로 2011년 9월 세팅된 환율캡 위로 올라가지 않도록 외환시장에 개입해왔다. 1월에 ECB가 1조1천억 유로에 달하는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가동하자 SNB는 돌연 통화 페그 정책을 포기했다. 이로 인해 즉각적으로 프랑의 가치는 유로에 비해 20% 이상 상승하였다.[Switzerland’s central bank makes a massive loss]

또 하나의 수출 강국 스위스가 단일통화권에 합류하지 않아서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기사다. 통화정책의 자주성은 견지하고 있지만 양적완화와 같은 비정상적인 조치에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스위스는 결국 올 1월 통화 페그를 포기했고 그 대가는 매우 비쌌다. 수출업자는 경쟁력 악화로 인해 피해를 입었고 – WSJ글에 따르면 업체의 1/3 정도가 영업 손실이 예상된다고 – SNB는 5,5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에 엄청난 환차손을 감내해야 했다. 다시 돌아가서 독일은 이런 혼란을 겪지 않고 싼 유로의 단물을 빨아먹고 있다.

유로존이 어떤 식으로든 수술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스위스 프랑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 대한 斷想

최근 스위스 프랑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몇몇 사태는 제3자의 시각으로 관전하기에는 – 몇몇 실패자에게는 무척 고통스러운 상황이었겠지만 – 매우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자국 통화를 유로에 고정시켜놓거나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수준까지 내려 실질적인 통화 보관료를 받는 등 환율 방어에 힘썼던 스위스가 “기습적으로” 페그 정책을 포기한 후 스위스 프랑의 가치가 급격히 올라갔고, 이로 인해 몇몇 주요투자자들이 천문학적인 손실을 기록하여 펀드를 접는 등의 일련의 혼란스러운 사태가 요 며칠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실시 계획을 눈앞에 두고 스위스 중앙은행이 내린 결정이 원인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스위스의 정치적 특수성, 스위스의 무역구조 특성, 유럽의 경제상황 등이 다층적으로 맞물린 상황이 이번 혼란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당사자나 언론이 투자자들의 손익계산서를 계산중인 모양이지만 일단 가장 극적인 실패를 맛본 이는 스위스 프랑의 약세에 돈을 걸었다가 주요 펀드 하나를 통째로 잃어버린 에베레스트 캐피탈이라는 회사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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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 Everest as seen from Drukair2 PLW edit” by Mount_Everest_as_seen_from_Drukair2.jpg: shrimpo1967
derivative work: Papa Lima Whiskey 2 (talk) – This file was derived from: Mount_Everest_as_seen_from_Drukair2.jpg .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이들의 극적인 패배는 러시아의 경제상황에 올인했다가 역사적인 패배의 사례가 되었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제로섬 게임에 가까운 환율변동에 돈을 걸었다가 몇몇 투자자들이 참패를 맛본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또 다시 펀드 자본주의의 투기적 성격이 도마에 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실패의 배경이었을 단기적 성과주의, 높은 레버리지, 투기적 투자성향 등이 펀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다. 하지만 정작 헤지펀드들이 그러한 비판을 감수하면서 거둔 성적은 무척 초라하다.

이는 펀드 투자 자체가 제로섬 게임은 아니지만 그 업계도 지나친 경쟁으로 말미암아 진작 뜯어먹을 시체도 별로 없는 레드오션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보다 더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을 투자자들의 인내심의 주기는 점점 더 짧아진다. 펀드 매니저로서도 못해먹을 노릇일 것이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일부 탑클래스의 매니저들은 영구자본의 비중을 늘리거나 투자자에게 환매가 아닌 다른 투자자로의 주식 매도 등으로 펀드를 빠져나가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펀드 투자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사실 지속적으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극히 일부의 매니저에게나 가능한 시도일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펀드 투자가 이렇게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수익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펀드 자본주의는 투기 자본주의’라는 선입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자본주의 체제 건전화의 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펀드가 레버리지보다는 안정적인 영구자본을 투자재원으로 삼는다면 적어도 이번처럼 하루아침에 에베레스트에서 수직 낙하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폴 크루그먼의 책을 읽고 든 상념 트윗 모음

기업은 돈이 시중에 많이 풀렸다고 해서 가격을 높이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제품의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가격을 높여도 매출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에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다.[폴 크루그먼 지음, 박세연 옮김,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엘도라도, 2013년, pp214~215]

# 이 설명은 시중의 높은 유동성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는 통화주의자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하지만 통화주의자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현대의 부채 경제에서 유동성과 낮은 금리는 소비주체가 높은 가격에 너그러워지게 한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거품.

# 통화주의자의 오류는 유동성을 가격 인상의 거의 유일한 원인으로 보는 아집이다. 일본은 엄청난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디플레에 빠질 정도였다는 반증이 존재함에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재정건전성 요구와 결합하면 질리지도 않고 반복되고 이게 먹힌다.

# 그리고 통화주의자와 재정건전론자의 이론적 지원을 받는 정치인이 요구하는 것은 낭비성 예산 삭감인데 대부분 국방예산과 같은 그들의 이해와 직결된 예산이 아닌 공립학교와 같은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에 대한 공격이다. 홍준표는 이런 도움 없이도 병원을 날렸고.

# 개인적으로 공공서비스에 대한 이런 이론적이거나 실제적인 공격은 단기간 내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 보는데, 증세는 인기낮은 선택이고 기본적으로 예산체계가 경직성 복지 예산의 증가로 말미암아 지속적으로 재정압박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까이고 또 까이고.

인도경제의 관전 포인트 하나

그러나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경제권인 인도는 어느 나라보다 위험하다. 지난 2년 동안의 경제 관련 뉴스는 실망스러웠는데 성장률은 4~5%로 떨어졌다. 이는 2003~2008년의 호황기의 반절이다.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소비자 가격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10%로 고정되어 있다. [중략] 외국자본에 대한 인도의 의존도 역시 높은 상태며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는 2012년 말 GDP의 7% 정도 까지 치솟았다. 금년엔 4~5%에 머물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말이다.[Why India is particularly vulnerable to the turbulence rattling emerging markets]

서양의 주요한 경제지에는 최근에 연일 인도 관련 소식이 주요기사로 올라오고 있다. 이들 언론은 대체적으로 이 나라의 경제 위기에 대한 단기적인 원인을 미국 경제지표의 호전, 이에 따른 美연준의 양적완화 축소 기조 가능성, 그리고 연쇄적인 서구자본의 인도에서의 자금회수를 들고 있다. 이로 인해 인도 및 주변국들의 통화가 급락하는 등의 즉각적이고 심각한 부작용이 언론의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유동성이 풍부한 통화로 신흥국에 투자하는 소위 “캐리트레이드”의 주된 통화는 한동안 일본의 엔貨였다. 미국이 신용위기에 직면하여 연준이 일본 당국의 해법과 비슷한 저금리 기조와 통화팽창으로 대응하자 美달러가 새로운 캐리트레이드의 통화가 되었다. 결국 신용위기의 발단이었던 풍부한 유동성에 따른 서브프라임모기지 대출 사태가 지구적인 범위에서 확대된 셈이고 인도가 그 주요 대상국이었다.

값싼 통화가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곳으로 흘러들어가는 투자는 기발하다고 할 것도 없는 투자기법인데 역사적으로 볼 때 주기적으로 그 위험이 파괴적인 규모로 반복되고 있음에도 또한 투자자는 주기적으로 그 위험을 간과하며 그 불구덩이에 뛰어든다. 특히 인도의 경우에는 2008년 이후 성장세가 정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위험이 더한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빚의 상환재원이 빚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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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ealogic Project Finance Review(1H 2012)

이런 인도의 상황과 관련하여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 위의 표는 최근 5년간 전 세계 민간투자사업(PPP, Public Private Partnership)의 지역별 추이다. PPP는 정부에서 필요한 인프라시설을 건설할 때 민간의 자금을 빌리는 방식으로 통상 경제성장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지만 재정이 부족할 때 쓰는 방식이다. 즉, PPP방식으로 투자를 하면 단기적으로는 단기적으로 재정도 건전해지고 경제성장률도 올라간다.

표를 보면 인도의 PPP 활용도는 워낙 압도적이어서 Dealogic이 아시아와 별개로 떼놓았을 정도다. 경제성장 여력이 있던 2008년까지 미미하던 인도의 PPP투자는 2011년에 이르러서는 압도적으로 증가한다. 역시 경제성장률을 위해 인프라 투자를 주도했던 중국이 재정을 활용한 것과 달리 인도는 민간자본을 이용했고, 이는 결국 미래의 빚으로 이연된다는 점에서 인도의 경제상황은 생각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일본 엔화 하락으로 돈 번 사람들,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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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Y Banknotes” by Tokyoship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조지 소로스 하면 1992년 파운드를 방어하려는 영국중앙은행과 맞장을 뜬 “환투기꾼”이자,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사유하는 “철학자”라는 독특한 삶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인물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이 억만장자 철학자가 일본 엔의 하락세에 베팅하여 파운드 전쟁에서의 노획물에 버금가는 10억 달러의 이익을 거둔 사실을 – 물론 물가가치를 고려하면 그때의 혁혁한 전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 보도했다.

엔화의 하락에 베팅하는 것은 소심한 이가 할 짓이 못된다. 일본은 몇 년간 자신의 화폐를 절하하여 경제와 주식시장을 재점화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해 왔다. 그 기간 동안 엔화와 일본 국채에 대해 숏포지션을 취한 많은 이들이, 화폐와 채권이 오히려 상승함에 따라 두들겨 맞았다. 일본은 월스트리트에서는 “과부 제조기”로 알려지게 됐다.[중략]

소로스의 예전의 영국 파운드 하락에 대한 매도와 달리, 소로스와 다른 헤지펀드들의 최근의 움직임들은 일본이나 엔화를 불안정하게 만든 것 같지는 않은데, 이는 부분적으로 일본 엔화의 거래가 투자자들이 좌지우지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광범위한 시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일본의 부채는 국내 투자자들이 가지고 있고, 비관적인 투자자들의 그 나라에 대한 숏포지션이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다.

동시에, 소로스의 파운드에 대한 술수는 영국중앙은행의 정책들에 반하는 것이었던 반면, 지금의 헤지펀드들은 디플레이션을 극복하려는 일본중앙은행의 정책이 성공하길 기원하면서 거래를 했다.[U.S. Funds Score Big by Betting Against Yen]

그러니까 소로스를 비롯하여 이번에 큰돈을 번 투자자들은, 1992년의 전투에서와 같이 정부의 의지에 반하는 묘수를 부릴 필요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정부로부터 욕을 먹을 일도 없었다. 그들은 떨어지는 엔화의 급류에 몸을 맡기고 돈을 벌어들이는 재미를 만끽하기만 하면 됐다. 문제는 WSJ기사에서도 말하듯 내리막이 생기는 시점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엉뚱한 때에 몸을 던졌다가는 과부만 제조되기 때문이다.

엔화 약세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을 아베 정권 등장과 “무제한적 양적완화레토릭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WSJ도 지적하듯 이전 정권도 그런 시도를 했지만 지금처럼 성공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본 시티은행의 다카시마 수석 애널리스트는 IMF의 새로운 환평가 모델에 근거해 적정 환율이 1달러당 95엔이고 지금 그 시점으로 복귀하는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아베는 한 계기일 뿐이란 것이다.

다카시마는 그 예로 2001년에서 2006년에도 일본은행이 양적완화를 실시했지만 외환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사례를 들고 있다. 당시 일본의 양적완화를 무력화시킨 것은 Fed의 금리인하와 이에 수반된 달러 약세였다. 흥미롭게도 지금의 Fed 수장인 벤 버냉키는 당시 일본이 과감한 통화정책을 통해 불황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논문을 썼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은 현재 호의적인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환율에 관해서 할 말이 많을 폴 크루그먼은 한발 더 앞서가 “환율전쟁”이라는 표현은 “순전히 오해(it’s all a misconception)”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 다른 저명한 경제학자 베리 아이켄그린의 주장을 빌어 1930년대의 상황조차 최악의 경우에라도 경쟁적인 환율 약세를 통해 “최초의 지점(where they started)”으로 회귀한 것이며, 이번의 “환율전쟁”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에는 “순이익(a net plus)”으로 남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벤 버냉키나 폴 크루그먼이나 “환율전쟁은 근린궁핍화 정책이다”라는 전통적인 주장에서 동떨어져 있는데, 과연 그들의 예언이 어느 정도나 현실에서 실현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폴 크루그먼은 1930년대 당시 상황 악화의 원인을 금본위제 탈피에서 들고 있지만 어쨌든 당시의 상황을 “전쟁”으로 표현하는데 무리는 없고, 플라자합의도 넓게 봐서는 “환율전쟁”의 파편이 심각한 외상을 입힌 사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p.s. 현재의 “환율전쟁”이 서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코노미스트의 긴 글이 있으니 흥미있으신 분은 읽어보시도록…(난 안 읽었다능)

미국 대선은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이념전쟁터가 되어버린 것일까?

부진한 경제성장과 우리의 치명적인 부채부담은 망가진 연방정부의 결과다. 워싱턴은 우리의 천부적인 권리를 보호하고, 미국을 안전하게 지키고, 모든 이 – 특별히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 기회를 증진시키는 것 등의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 당은 수 년 동안 지탱할 수 없는 수준까지 지출을 늘림으로써 정부를 그 핵심적인 기능이상으로 밀어붙였다. 연속되는 불완전한 미봉책은 미국이 잃어버린 10년 또는 잃어버린 세대로 접어드는 상황으로 몰고갈 뿐이다. 확실하게 부채를 줄이고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구조적 개혁이 이러한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Republicans must return to free-market principles]

밋 롬니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면서 일약 공화당의 새로운 젊은 피로 떠오른 폴 라이언이 부통령으로 지명받기 전인 7월에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인용문도 그렇지만 글 전체의 논지가 깔끔하고 선명한 색깔을 띠고 있어 4년 전의 부통령 후보 사라 페일린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공화당이 바라던 지식인상에 가깝지 않은가 생각될 정도다.

이러한 이미지에 부합하기라도 하듯 폴 라이언은 부통령으로 지명되자마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아인 랜드 등 대표적인 보수주의 사상가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미국 대선을 난데없는 이념투쟁의 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베인 캐피탈의 은행가로서의 길을 걸었던 롬니와 보수주의의 십자군과 같은 캐릭터 폴 라이언이라는 재밌는(?) 조합이 탄생한 것이다.

폴 라이언은 지난 기간 양당 모두가 정부지출을 과도하게 늘렸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시각은 오바마의 과도한 정부지출이 부시의 해법의 연장선에 있다는 현실인식에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그 비판은 그의 정신적 지주 면면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정부의 존재에 대해 가장 호전적인 우익이라 할 수 있는 리버타리안적 성향이기에 가진 시각일 것이다.

그의 이러한 호전적이고 학구적인 정책 드라이브가 채택된 것인지, 아니면 밋 롬니가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 롬니 캠프는 폴 라이언이 “구조적 개혁”이라 부를만한 놀랄만한 공약을 발표했다. 바로 ‘금본위제로의 복귀’와 ‘연방준비제도의 회계감사’다. 가장 강한 수준의 재정적 견실주의적(fiscal prudence) 조치라 할 것이다.

재정적 견실주의는 굳이 하이에크까지 바다 건너가지 않더라도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경제적 신조다. 물론 이러한 신조는 거의 정치적 레토릭에 가까웠고 실제로는 오히려 공화당 치하에서 군비지출 등 재정지출이 더 증가한 정황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가장 최근 금본위제 복귀를 검토한 것도 레이건 정부였고, 이번이 그 리바이벌이다.


출처 : whittier.edu
 

우선 금본위제는 여러모로 한심한 공약이다. 닉슨이 금본위제를 유지할 수 없었던 근본적인 한계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둘째 치고, 스스로 가장 강력한 화폐인 美달러의 통화량을 제어할 수단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위기가 근본적으로 각국이 통화주권을 포기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최근의 경험도 무시한 발상이다.

Fed를 회계감사 하겠다는 것도 비슷한 발상이다. 여태 Fed가 저지른 짓을 보면 사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그들의 재무제표를 뒤집어 까고 싶을 것이다. 거기에다 정부의 경제적 개입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리버타리언적 입장에서는 Fed는 “또 다른 재무부”이기에 감사를 통해 금융견실주의를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시장근본주의적 원리를 관철시키겠다는 발상이다.

사실 이런 시장근본주의적 조치는 시장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오바마가 포드와 같은 자동차업체를 구제한 것을 비난하지만 시장은 좋아했다. 자본가는 사실 자본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Fed가 돈을 풀지 않으면 자본가들의 먹거리도 줄어든다. 그래서 전 세계의 경영자들 사이에서 오바마의 지지율은 롬니의 지지율보다 22% 더 높다.

이데올로기로써의 재정적 견실주의는 그러한 견실주의가 경제를 망친다는 케인즈의 발상에 확실한 대척점을 긋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부의 역할을 극단적인 야경국가로 한정하고 있는 티파티와 같은 극우주의 정치집단의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을 반영한 공화당 경제노선의 선명성은 십자군적 캐릭터 폴 라이언이 나섬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져 보인다.

하지만 유명한 경제평론가 배리 리트홀츠는 누가 대선에서 이기든지 경제 로드맵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각 시기의 대통령은 대개 경제순환주기의 큰 흐름에 발을 걸쳤을 뿐이라는, 이번에는 증세와 같은 재정확대밖에는 해답이 없다는 냉소적 진단이다. 어떠한 “혁명적” 조치가 없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난 그의 입장에 공감한다.

유럽 상황 단상

올해는 유럽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이 금년에 경쟁적으로 정권이 뒤바뀌는 시기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 그리스, 한국 등등. 정권이 바뀐다는 것은 어쨌든 경제기조도 어느 정도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두 나라가 현재 프랑스와 그리스다. 두 곳 다 “좌파”로 분류되는 정치집단이 득세했다.

이 시점에서 왜 유럽이 유로라는 화폐를 만들었는지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유럽이 ‘하나의 유럽’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사실 정치적인 이슈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럽지도자들은 ‘하나의 유럽’을 꿈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치적 연합으로 가는 과도기가 경제연합이었다.

1950년대 중반에 접어들 무렵 서유럽 지도자들은 경제연합이 곧 정치연합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샤를르 드골 대통령의 고문이자 경제학자인 자크 뤼에프는 1950년에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유럽은 화폐를 통해 연합하던가 아니면 아예 연합하지 않던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유로화의 종말,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 지음, 정향 옮김, 골든북미디어, 2012, p46]

이러한 정치적 동기는 역사적으로 볼 때 지속적으로 충돌을 빚어왔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영국 정도의 이슈였지만 어쨌든 그들의 동맹세력들, 그리고 유럽인이라 불리기 원하던 주변국들이 가세하면서 유로통화권이 탄생했다. 문제는 이 통화권이 재정동맹이 없는 희한한 하나의 통화권이란 점이다.

그런 모순을 가지고 출발한 통화권이었음에도 시장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예를 들면 그리스의 신뢰도를 독일의 분데스방크 급의 신뢰도로 간주한 것이다. 1999년 그리스의 10년 만기 국채의 실질금리는 5%였지만 2005년에는 0%로 떨어졌다.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에도 비슷한 기적이 일어났다.


출처
 

이런 낮은 금리의 혜택으로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는 활성화되었다. 문제는 이것이 생산적인 분야로 흘러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고유의 제조업 기반이 미약했다는 점, 유로화의 사용으로 인해 경쟁력을 얻는 독일제품이 밀려들어왔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결과적으로는 부동산의 앙등이 경제를 이끌었다.

 

이 거품은 아시다시피 미국의 신용위기와 맞물린 시점부터 터졌다. 부동산의 속락, 이를 기초자산으로 해오던 금융권의 붕괴, 그리스 등 주변국의 변칙적인 재정운용, 채무불이행의 위험, 원칙을 벗어난 금융지원, 긴축재정의 강요, 이로 인한 국가 간 갈등 등 수면 아래 있던 수많은 상처가 속속 드러났다.

그 와중에 오랜 기간 세 가문의 지배를 통한 과두정치가 온존했던 그리스에서 긴축재정을 거부하는 좌파연합 시리자가 실세로 등장했다.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일이지만 막상 이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게 되자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있다. 애써 유럽에서의 그리스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지만 상황은 단순하지 않아 보인다.

그리스 정치권의 강경한 입장으로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이었던 긴축재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이는 거의 그리스의 유로 탈퇴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어렵게 지켜오던 통화권의 분열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며, 스페인 등 여타국가의 신용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문제는 작지 않다.

그렇다면 독일이나 프랑스는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탈퇴시키고 후련하게 손을 털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 이미 유로존의 출범과 함께 그들의 경제는 어느 정도 유기적으로 얽혀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유럽의 은행들은 그동안 주변국들에 열심히 돈을 빌려줘 이들의 신용거품을 조성하는데 일조하였다.

유럽의 은행들은 위기를 겪고 있는 유로존 국가들을 상대로 막대한 양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시티그룹의 이코노미스트인 윌렘 뷰이터와 에브라힘 라바리는 “현재 프랑스와 독일 정부의 선택지는 그리스를 살리느냐 자국의 은행을 살리느냐이다.”라고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유로화의 종말,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 지음, 정향 옮김, 골든북미디어, 2012, p242]

그리스의 반항에 대해 강경자세를 계속 취할 경우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그리스의 채무불이행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은행들이 부실해지게 된다. 이미 형식적인 스트레스테스트로도 그 부실이 위험수준이었던 은행들이 새로이 자산이 부실해진다면 그것은 새로운 위기의 시작을 의미하기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유로화의 종말’의 저자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는 독일이 유로존을 떠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책의 서문을 쓴 로버트 앨리버는 이는 독일의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하고 있다. 유로존 탈퇴는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의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의 탈퇴를 더 현실적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식이 되었든 급진세력에게 표를 던진 그리스의 국민들에게 물러날 곳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직장을 찾아 독일로 떠나고 있고, 독일에 대한 증오심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고, 자살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이나 유로존에게 더 뺏길 것도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게 일정 정도 사실이고.

참고할만한 글들

Greece Can No Longer Delay Euro Zone Exit
What Happens If Greece Leaves?
Greece’s predicament: Lessons from Argentina
장하준 교수한테 듣는 유럽재정위기 세계경제위기
그리스, 벼랑 끝에 서다
그리스, 몰락과 회생 사이
Debtocra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