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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교환수단이 부차적 기능이었던 화폐

Poshumous Alexander the Great tetradrachm from
By Ancientcointradershttps://www.ancientcointraders.com, CC BY-SA 4.0, Link

화폐의 광범위한 발전과 그 이후의 「화폐의 지속적 발전」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화폐적 「교환거래」의 필요성들이다. 「원시화폐」는 개인적 상품, 재보 또는 귀중한 용도를 가진 물건 등이었다. 이러한 물건들은 「장신구」, 「무기」, 「도구」등과 같이 그 자체로 즉각적인 「수요충족」을 제공하는 것들이며, 「교환수단」으로서의 서비스는 말하자면 단지 부차적으로만 수행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화폐로 사용되는 재화는 점차 더욱 이러한 본연의 기능에서 멀어지고 있다. 「장신구」, 무기, 도구 등의, 「화폐재화」가 동시에 가지고 있던 다른 용도들은 보다 덜 중요하게 되어 뒤로 물러나 결국에는 완전히 사라지고, 당연히 「화폐재화」들의 여타 「활용성」에 대한 고려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화폐 계급 사회, 빌헬름 게를로프 저, 현동균 번역 역주 해제, 진인진, 2024년, 207쪽]

원시화폐는 귀중한 용도로 쓰인, 누군가 교환을 통해 획득하고 싶은 물건이었다. 즉, 이미 교환수단 이전에 장신구, 무기, 혹은 다른 도구로 충분히 사용가치를 내재하고 있는 재화였던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교환기능은 이러한 본래의 기능에 부차적인 기능이었다. 그러나 본래의 기능으로 인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환기능이 더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됨에 따라 화폐는 점점 화폐 고유의 기능에 맞게 디자인이 바뀌어 갔을 것이다. 소지가 편하도록 손안에 들어올 수 있게 작고 동그란 모양을 갖게 되었고, 권위를 부여할 수 있도록 당대의 권력자나 신(神)의 모습이 새겨졌고, 누군가 화폐의 옆을 깎는 짓을 하지 못하게 옆에 금을 그어놓기도 했다. 화폐는 그렇게 그만의 기능에 맞게 모양새가 만들어져 갔을 것이다. 이는 화폐가 ‘축장화폐’가 아닌 ‘교환화폐’의 기능을 갖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교환화폐의 존재 없이는 노동의 분업도 불가능하다.

화폐는 늘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개념으로서의 사회에서는 화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회적 삶의 수단」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특정사회 형태, 특히 가장 발달한 사회 형태는 화폐 없이는 그 구조와 작동을 상상할 수 없거나 적어도 화폐 없이는 매우 불완전할 것이다. 이 같은 이야기는 「사회교류화」(Vergesellung) 과정 내에서의 경제 영역에 포함되는 것들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것」을 훨씬 뛰어넘는, 인간들 사이의 권력 및 종속 관계를 그 내용으로 하는 다른 많은 구조에도 적용된다. [과거에는] 「부과물」의 모든 종류들, 제물, 「공물」, 기증(Beiträge), 정부적 강권(Gewalt)에 대한 다양한 의무적 급부, 같은 지위의 사람들이나 하위의 사람들에 대한 「선물분배」 등은 최초에는 대부분 현물, 즉 물리적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이러한 모든 것들의 대부분이 점차 「화폐형식」을 채택하게 되고, 더욱이 그러한 재화들이 「화페형식」의 발전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관여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화폐 계급 사회, 빌헬름 게를로프 저, 현동균 번역 역주 해제, 진인진, 2024년, 178쪽]

화폐의 발달사에 대해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현재까지의 책의 내용이 이 인용문에 잘 요약되어 있는 것 같아서 옮겨 적었다. 인용문에서도 언급하다시피 저자는 화폐의 발전은 처음에는 – 거의 대부분 국내외의 왕족과 귀족들 간에 이루어진 행위겠지만 – 제물, 공물, 기증, 그리고 선물의 형태로 이루어진 상호교류 행위가 진행되어오다가 점차 이러한 행태가 시장에서의 교환이라는 형태로 발전하면서 화폐라는 “사회적 삶의 수단”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그러하기에 화폐라는 수단은 계급적이고 특권적이고 불균등할 수밖에 없다.

인용한 책의 저자 게를로프도 그런 뉘앙스로 계속 이야기하지만 역사경제학자 페르낭 브로델도 그의 저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통해 끊임없이 물질문명의 발달사는 우리가 아는 것만큼 그렇게 균일하게 발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증기기관, 신용제도와 같은 문명의 이기들도 시장이 그것을 광범위하게 받아들이기 이전에 이미 발명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생산관계의 역학에 따라 국소적으로만 채택이 되었고 광범위한 범위에서 그것을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다는 것이다. 즉, 화폐는 특권적인 상품이다.


자료 출처

역사적으로 금은과 같은 쇳덩이가 화폐의 표준수단이 된 이후 패권국이 파운드나 달러 등 금에 연동하는 자국통화를 기축통화로 설정하였고, 현재는 달러가 독보적인 기축통화의 권세를 만끽하고 있다. 그런데 그 화폐패권을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이 – 러시아, 중국 등 – 금을 사들이면서 현재 금값이 폭등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트럼프가 암호화폐 확보를 지시하며 그쪽 거래소도 들썩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화폐형식이 지구화되면서 더 이상 전근대적이고 특권적인 수단이 아니라 평등한 수단이 되었다는 생각이 다소 이른 판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현재의 화폐 행태의 기술적 측면은 쇳덩이 확보라는 먼 과거와 전자적 화폐수단의 확보라는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근저에는 결국 통화증발이 불가능한 그 어떤 것, 즉 금과 비트코인이라는 수단이야말로 화폐라는 것에 대한 인류 공통의 고전적인 선입견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대안”에 접근할 수 있는 이나 국가는 예의 그렇듯 소수다. 어떤 이는 현재 상황을 “제2의 브레튼우즈” 상황이라 묘사하기도 하는데 화폐의 계급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중요한 변곡점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상류층의 행위 양태를 모방하여 확산한 화폐

「화폐소유」와 「화폐관용」은 그 초기 단계에 있어서 위상에 따르는 특권이자 귀족 계층의 생활양식에 속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화폐의 사용범위」가 이러한 최초의 사용자들의 범위를 넘어 확산되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가능하다. 이러한 확산은 상류층의 「행위양태」를 「모방」하여 하류 계층들이 「문화적 재화」를 유용하는, 이미 잘 알려진 과정에 따라 발생한다. [중략] 사회에서의 귀족 계층화가 소멸되고 사회가 경제적 「권력의 소유」에 기반한 사회로 바뀌어감에 따라, 화폐는 더 많은 사용자층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확산된 영역에서 새로운 역할을 가지게 된다.[화폐 계급 사회, 빌헬름 게를로프 저, 현동균 번역 역주 해제, 진인진, 2024년, p128]

인용한 책의 전반적 내용의 큰 틀이 이 문구에 설명되어 있다고 생각되어 옮겨 적어보았다. 요컨대 화폐는 처음에 지배계급이 일종의 “화폐관용”을 베풀기 위해 비축하고 있던 자산인데 물질적 재화의 비축품을 현재의 개인적 필요 수준 이상으로 쌓아놓는 것은 바로 지배계급의 특권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권의 상징이었던 화폐를 피지배계급이 마치 지배계급의 문화를 흉내 내듯이 화폐의 사용을 흉내 내면서 사용자층이 넓어졌고 마침내 화폐에게 교환수단 등의 새로운 역할이 부여됐다는 것이다.

American Express Centurion Card front.jpg
By Clemson from San Francisco, USA – AMEX Black Card, CC BY 2.0, Link

어찌 보면 현대문명의 실질적 화폐인 신용카드도 비슷한 패턴을 취하고 있다. 에드워드 벨라미가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묘사한 1887년 작 ‘뒤를 돌아보며(Looking Backward)’에서 그 기초적인 개념이 제시되었던 신용카드는 초기에는 백화점 고객이나 비행기 승객이라는 당시의 특권층을 위한 지불수단이었다. 그러던 것이 점차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면서 대중에게 일반화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즉, 초기의 화폐처럼 상류층의 행위양태를 모방하는 대중사회의 대량소비 패턴이 그대로 반복된 셈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카드 회사들은 대중화된 신용카드를 다시 세분화하여 상류층의 고객을 위한 별도의 카드를 만들어서 또 다시 이 현대의 화폐를 계급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멕스의 블랙카드는 아멕스 플래티넘 고객 중 최소 수십만 달러 이상 사용한 이들 중 심사를 통하여 발급한다고 한다. 이러한 기업의 마케팅 전략으로 신용카드라는 화폐는 다시 초기 형태의 화폐처럼 소유 자체가 계급의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역사 속의 장신구는 그렇게 때로 그 본질의 발현을 반복하고 있다.

로마 황제들은 금화와 은화의 주조에 대한 권리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고, 원로원은 동화의 주조권을 가졌다. 라움에 따르면, 이러한 분권적 주화 주조권은 “사회적 위계의 표현 및 수단”이었다. 주화의 용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이야기가 적용된다. 보다 가치가 높은 주화는 귀족들과 혹은 귀족들 간에 거래할 때만 사용된다.[같은 책, p129]

『소유권』을 사회화하는 ‘화폐’라는 대상

영혼 깊숙이 뿌리내린 원초적 힘에서 비롯된 『가득 추구』(Erwerbssuch)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경제합리적 인간에게만 내재하는 독특하고 고유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토란이나 돗자리, 조개껍질 고리(디와라 Diwara)나 상아, 쇠괭이나 마닐라(Manillas), 동판이나 모직 담요 등을 축적하고자 하였던 원시인이 이미 탐닉하고 그에 지배되었던 것과 동일한 『열정』이다. 인간의 『인정에의 욕구』는 스스로 지속적으로 『탐구하여 구하는 마음』(貪求心)에 불을 지피며 자신을 충족시키는 중요한 수단을 바로 『소유권』과 그 『소유권』을 사회화하는 ‘화폐’라는 대상에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즉, 인간의 『평판에의 집착』(doxomania)은 스스로에게 필요한 치료약을 찾게 되었다.[화폐 계급 사회, 빌헬름 게를로프 저, 현동균 번역 역주 해제, 진인진, 2024년, p110]

화폐가 탄생한 기원과 그 발달 과정을 다룬 책에서, 인간 개인의 탐구심(貪求心)이 화폐를 통해서 사회화되는 과정을 짧게 설명해놓은 필력이 인상적이어서 옮겨 적어봤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s누군가 소유한 물건은 대개 대량생산 체제 하에서 특정한 상품명으로 판매되기에 그 소유자의 인정욕구는 그 브랜드를 드러내며 어느 정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꼭 고급소재의 옷이라고 자랑을 하지 않아도 “나 샤넬 옷 한 벌 샀어”라고 하면 대부분의 같이 어울리는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은 그 진가(眞價)를 알아주고 부러움의 시선을 던지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러한 브랜드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인간의 『평판에의 집착』을 충족시켜주는 수단이 있었으니 그게 화폐일 것이다. 샤넬의 진가는 몰라도 화폐의 진가를 모르는 이는 훨씬 적을 것이다. 바보라 하더라고 1만 달러가 1천 달러보다 더 값지다는 것은 알 것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창조해낼 미래형 자본주의

비트코인(Bitcoin)과 다른 가상화폐들이 다른 어떤 것과도 비슷하지 않다면 그것들은 무엇인가? 가장 적절한 비유는 아마도 1990년대 불었던 인터넷과 닷컴 붐일 것 같다. 인터넷처럼 가상화폐 역시 혁신과 그것을 통한 그 이상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들은 어떻게 은행과 같은 말하자면 책임지는 주체가 없이 공공의 데이터베이스(“블록체인”)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자체적인 실험이다. 예를 들어 그루지야는 정부기록을 보호하기 위해 그 기술을 쓰고 있다. 그리고 블록체인은 또 다른 실험들의 플랫폼이 되고 있다. 이더리움(Ethereum)을 예로 들자. 그것을 통해 우리는 비디오 게임에서부터 온라인 시장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프로젝트가 이 프로젝트들 내에서 거래되고 사용될 수 있는 토큰 – 필수적으로 사적인 금전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한 ICO(initial coin offerings)들이 주의 깊게 관리돼야 하지만, 그것들을 통해 발명을 촉진할 수 있다. 팬들은 이를 통해 아마존과 페이스북과 같은 과점 체제의 기술 거인들을 겨냥하는 신생기업들을 흥하게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What if the bitcoin bubble bursts?]

비트코인의 폭등세가 연일 계속되면서 사람들이 ‘도대체 비트코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1 개인적으로는 2년여쯤 전에 비트코인을 구입하여 지갑에도 담아보고 그 동전으로 외국 업체에 서비스 사용료를 지불해보기도 했지만, 정확히 어떤 원리로 구현되는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2 “비트코인의 창시자가 일본인이다”, “사이버 채굴을 통해 돈이 모아진다”3, “일종의 암호통화(cryptocurrency)다”라는 사이버펑크스러운 소리만 들어도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진다. 그리고 “블록체인”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면 ‘이건 작정하고 진지하게 네트워크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기초개념조차 파악이 쉽지 않겠구나’하는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어쨌든 능력이 안 되는 머리를 쥐어짜서 이 글에서 그 개념에 대한 윤곽만 잡아보자면 “블록체인”은 “블록”과 “체인”의 합성어다. 개별 블록들이 체인으로 이어져있다는 의미인데, 결국 데이터베이스가 통상적인 서버처럼 중앙서버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분산되어 있고 그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이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유행했던 개념인 “클라우드 컴퓨팅”에서 더 나아가 P2P식으로 분산된 모델로 만들어진 거대한 거래장부를 “블록체인”으로 보는 편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이 블록체인에 기록된 정보는 일방향으로 암호화되어있어 타인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뛰어난 익명성과 보안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또 이더리움은 무엇인가?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둔 클라우드 컴퓨팅 플랫폼 또는 프로그래밍 언어다. 인용문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처럼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이더리움을 통해 조성된 사이버 환경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 대부분에 자금이 소요될 것인데, 우리는 이 자금을 비트코인과 같은 토큰이 암호화폐를 활용한 ICO라 이름붙여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조달할 것이다. 이 자금은 IPO(initial public offering)와 달리 자금의 소유주를 특정할 수 없다. 그리고 IPO처럼 자금조달을 규제할 수 있는 정부규제도 없을 것이다. 소유주도 규제도 없는 스타트업이 탄생한다는 의미다.

최초의 ICO는 2013년 Mastercoin에서 활용됐다. 이후 ICO의 인기는 치솟아 새로운 웹브라우저 프로젝트인 Brave의 ICO는 30초 만에 3천5백만 달러를 모았다. ICO는 IPO와 달리 투자회수가 훨씬 쉽다. 그들은 언제든 투자지분을 암호통화에서 법정통화로 환전하여 회수할 수 있다.4 개인적으로 흥미 있는 부분은 투자자의 익명성이다.5 이 시장이 앞으로 유의미할 정도로 성장하면 이제 자본주의 체제가 지니는 전통적인 자본가의 의미는 포스트모더니즘적으로 해체되는 체제가 될지도 모른다. 단일 자본가에서 주식회사, 그리고 LBO 펀드 등으로 끊임없이 질적으로 변해왔던 자본주의 기업이 익명의 사이버 자본가 연합으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블록체인이 주류기술이 되지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어쨌든 금융 시스템은 이미 질적인 전환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은 튤립도 금(金)도 아닌 다른 어떤 새로운 개념이다. 그리고 블록체인과 이를 활용한 이더리움 등은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무엇인가로 진화할 것이다. ICO가 좀 더 일상화되면 각국은 자금세탁방지 등 익명화 방지수단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갈수록 초현실적이고 반(反)물질적으로 진화해가는 금융시장을 개별정부 혹은 국제금융기구 등이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인지, 또는 노동자는 앞으로 쟁의를 할 때 어떤 자본가에 대항해야 할 것인지 등에 상상을 하다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전 세계 노동자가 단결하는 동안 전 세계 자본가는 분산되고 있는 것인가?

  1. 물론 그 질문의 대부분의 의도는 ‘어떻게 하면 비트코인으로 돈을 벌 수 있는가’로 귀결되겠지만
  2. 아쉽게도 당시 코인을 몇 만 원어치만 구입했고 그마저도 다 처분했다. 몇 년 전의 나놈을 때려주고 싶다.
  3. 비트코인 채굴 현장
  4. 전통적인 투자자들이 싫어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 규제의 무정부성이다. 가치의 과대평가, 통제부재 등이 마치 초기의 닷컴 붐처럼 ICO에서도 번져가고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5. 얼마 전에는 외국에 서버를 두고 포르노사이트를 운영하던 한국인 운영자가 우리나라 경찰의 함정수사에 걸려 체포된 뒤 보니 스마트폰에 몇천 만원 어치의 비트코인이 들어가 있는 지갑이 있더라던 재밌는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중국 사회주의의 증표(證票) 소비

계획경제 체제에서 소비는 ‘증표를 지참한 물건 구매’를 통해 이루어진다. 소비자는 화폐가 아니라 직장에서 분배받은 증표를 주고 해당 물건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증표 소비’다. 당시에 사용되었던 각종 증표는 120여 종에 달했다. 당시 쓰촨성에서 소비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방식을 보여주는 유행어가 있었다. 이를 보면, 국가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민이 ‘먹고 마시고 싸고 하는 것’ 전부를 관리한다. “계획은 천하를 통일했고, 이 정도 수준은 중국 역사상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일이다.”[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1, 조영남 씀, 민음사, 2016년, p211]

중국에서의 계획경제는 마오쩌둥 시대에 체계가 잡혔다. 계획경제에 대해서는 楊江의 ‘건국이래신대경제열점(建國以來十代經濟熱點, 1995)’에서는 “공유제 경제를 기초로 강제성 계획과 행정명령을 주요 수단으로, 위에서 아래로 고도로 집중된 계획 관리를 실행한 경제체제”로 규정하고 있다. 조영남 씨의 책에 따르면 1976년 전체 공업 생산량 중에서 국가 소유(전민소유제)가 80%, 집체 소유가 20%를 차지했으며, 유통 부문에서는 국영 상점이 90.3%, 집체 상점이 9.5%를 차지했다. 이렇듯 견고한 공유제와 계획경제가 결합하면 소비 역시 어느 정도 계획화되지 않을 수 없었을 테고 그 결과가 바로 ‘증표 소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화폐의 기능을 대체한 증표는 “필요한 욕망의 이중적인 동시 발생(double coincidence of wants)1의 필요를 줄일 효율적 수단”이라는 화폐의 기능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 소비에 특정 증표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중국의 계획경제가 이러한 증표 발행을 통해 소비를 가능케 한 것은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선 자본으로도 쓰일 수 있는 화폐의 발행이나 유통 없이 소비를 가능케 함으로써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나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증표를 사용하면 생산량이 열악할 지라도 증표 발행량으로 소비를 생산량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증표는 사회주의 중국 건설 초기에 소비재 생산 대신 중공업으로의 자원 투입을 집중시키기 위해 고안된 유사 화폐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계획경제의 보조 수단이기는 하지만, 조악한 계획경제의 조악한 보조 수단이었다. 이러한 증표 소비는 – 그러할 생산물의 잉여가 많지도 않았겠지만 – “한계효용의 법칙”과는 무관하게 필수품 수요에 대한 단순한 양적 매칭이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얼핏 자원배분이라는 시장의 기능 없이도 생산과 소비가 유기적으로 매칭될 것 같지만, 다시 증표는 어떻게 분배될 것인가 하는 자원배분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딜레마는 관료와의 유착으로 해결했을 것이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도 이러한 증표 소비의 영역은 존재한다. 정부가 특정 소비재의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발행하는 바우처(voucher), 기업이 자사의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발행하는 상품권, 특정 지자체에서 지역사회의 경제를 독려하기 위해 발행하는 지역 화폐 등 다양한 증표가 존재한다. 소비 행태가 고도화되는 사회일지라도 특정한 목적에 따라 이렇게 증표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증표의 기능을 하는 소비에 대한 자격증 발급은 특히 주택과 같은 생애소비재적 성격을 가진 소비재에서는 특히 적용 가능한2, 또는 사안에 따라서 정책적으로 적극 고려해야 할 보조수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물물교환에 의존하는 시장경제는 한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잉여생산물을 가지고 있는 이가 교환을 하려면 서로의 다른 잉여생산물에 대해 동시에 소유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어야 교환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런 동시 발생의 필요를 줄이는 수단이 바로 화폐다.
  2. 실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청약통장, 청약자격 제한 등으로 그렇게 하고 있고

독일과 스위스의 대조적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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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2-euro” by This photo (C) Lars Aronsson – Own work. Licensed under CC SA 1.0 via Wikimedia Commons.

가상의 독일마르크에 비해 유로가 상대적으로 싸다는 사실은 독일에게 이로운 점이다. 독일의 재정적 질서 이외에도 통화 연합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그리스 등 모두 최근의 독일만큼 성공적이지는 않은 나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유로의 힘에 영향을 주었고, 독일의 수출업자에게는 이로운 것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수출은 독일 경제의 주요 축이다. 강한 통화는 국제시장에서 생산품 가격을 높임으로써 독일 수출업자를 어렵게 할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ING의 이코노미스트 Carsten Brzeski는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 정책이 더 약한 나라를 도와주는 경향이 있으며 이 정책 경향이 독일과 같은 수출국에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통화는 당신 자신의 통화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언제나 절하되어 있는 상태일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지난 한 해 동안의 ECB의 순응적인 통화정책 덕택에 더 싸지는 단일통화로 인해 독일 경제에 250억 유로가 더해졌을 것이라고 예측했다.[How Does Euro Membership Help Germany?]

유로존에서 탈퇴해야 할 나라는 그리스가 아니라 독일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바로 경제력이 질적으로 차이 나는 국가들이 단일통화를 쓸 경우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의 경우 통화가 비싸지고 이로 인해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독일의 경우 단일통화권에서 그런 상황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혁신적으로 재분배가 되지 않은 한, 독일의 경제선순환과 경제력이 약한 나라들의 경제악순환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금요일에 스위스의 중앙은행인 스위스국립은행(SNB)은 2분기 200억 스위스프랑(200억 달러)의 손실을 발표했다. 금년의 좋지 않았던 첫 석 달에 연속하여 SNB의 2015년의 현재까지의 손실은 501억 스위스프랑이라는 터무니없는 금액에 달하는데, 이는 스위스 GDP의 7.5%에 해당한다. SNB의 손실은 매우 크지만 예상 못한 것은 아니다. 몇 년간, 은행은 스위스프랑이 1유로에 1.2 프랑으로 2011년 9월 세팅된 환율캡 위로 올라가지 않도록 외환시장에 개입해왔다. 1월에 ECB가 1조1천억 유로에 달하는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가동하자 SNB는 돌연 통화 페그 정책을 포기했다. 이로 인해 즉각적으로 프랑의 가치는 유로에 비해 20% 이상 상승하였다.[Switzerland’s central bank makes a massive loss]

또 하나의 수출 강국 스위스가 단일통화권에 합류하지 않아서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기사다. 통화정책의 자주성은 견지하고 있지만 양적완화와 같은 비정상적인 조치에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스위스는 결국 올 1월 통화 페그를 포기했고 그 대가는 매우 비쌌다. 수출업자는 경쟁력 악화로 인해 피해를 입었고 – WSJ글에 따르면 업체의 1/3 정도가 영업 손실이 예상된다고 – SNB는 5,5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에 엄청난 환차손을 감내해야 했다. 다시 돌아가서 독일은 이런 혼란을 겪지 않고 싼 유로의 단물을 빨아먹고 있다.

유로존이 어떤 식으로든 수술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스위스 프랑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 대한 斷想

최근 스위스 프랑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몇몇 사태는 제3자의 시각으로 관전하기에는 – 몇몇 실패자에게는 무척 고통스러운 상황이었겠지만 – 매우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자국 통화를 유로에 고정시켜놓거나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수준까지 내려 실질적인 통화 보관료를 받는 등 환율 방어에 힘썼던 스위스가 “기습적으로” 페그 정책을 포기한 후 스위스 프랑의 가치가 급격히 올라갔고, 이로 인해 몇몇 주요투자자들이 천문학적인 손실을 기록하여 펀드를 접는 등의 일련의 혼란스러운 사태가 요 며칠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실시 계획을 눈앞에 두고 스위스 중앙은행이 내린 결정이 원인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스위스의 정치적 특수성, 스위스의 무역구조 특성, 유럽의 경제상황 등이 다층적으로 맞물린 상황이 이번 혼란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당사자나 언론이 투자자들의 손익계산서를 계산중인 모양이지만 일단 가장 극적인 실패를 맛본 이는 스위스 프랑의 약세에 돈을 걸었다가 주요 펀드 하나를 통째로 잃어버린 에베레스트 캐피탈이라는 회사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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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ivative work: Papa Lima Whiskey 2 (talk) – This file was derived from: Mount_Everest_as_seen_from_Drukair2.jpg .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이들의 극적인 패배는 러시아의 경제상황에 올인했다가 역사적인 패배의 사례가 되었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제로섬 게임에 가까운 환율변동에 돈을 걸었다가 몇몇 투자자들이 참패를 맛본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또 다시 펀드 자본주의의 투기적 성격이 도마에 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실패의 배경이었을 단기적 성과주의, 높은 레버리지, 투기적 투자성향 등이 펀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다. 하지만 정작 헤지펀드들이 그러한 비판을 감수하면서 거둔 성적은 무척 초라하다.

이는 펀드 투자 자체가 제로섬 게임은 아니지만 그 업계도 지나친 경쟁으로 말미암아 진작 뜯어먹을 시체도 별로 없는 레드오션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보다 더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을 투자자들의 인내심의 주기는 점점 더 짧아진다. 펀드 매니저로서도 못해먹을 노릇일 것이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일부 탑클래스의 매니저들은 영구자본의 비중을 늘리거나 투자자에게 환매가 아닌 다른 투자자로의 주식 매도 등으로 펀드를 빠져나가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펀드 투자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사실 지속적으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극히 일부의 매니저에게나 가능한 시도일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펀드 투자가 이렇게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수익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펀드 자본주의는 투기 자본주의’라는 선입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자본주의 체제 건전화의 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펀드가 레버리지보다는 안정적인 영구자본을 투자재원으로 삼는다면 적어도 이번처럼 하루아침에 에베레스트에서 수직 낙하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폴 크루그먼의 책을 읽고 든 상념 트윗 모음

기업은 돈이 시중에 많이 풀렸다고 해서 가격을 높이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제품의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가격을 높여도 매출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에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다.[폴 크루그먼 지음, 박세연 옮김,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엘도라도, 2013년, pp214~215]

# 이 설명은 시중의 높은 유동성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는 통화주의자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하지만 통화주의자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현대의 부채 경제에서 유동성과 낮은 금리는 소비주체가 높은 가격에 너그러워지게 한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거품.

# 통화주의자의 오류는 유동성을 가격 인상의 거의 유일한 원인으로 보는 아집이다. 일본은 엄청난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디플레에 빠질 정도였다는 반증이 존재함에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재정건전성 요구와 결합하면 질리지도 않고 반복되고 이게 먹힌다.

# 그리고 통화주의자와 재정건전론자의 이론적 지원을 받는 정치인이 요구하는 것은 낭비성 예산 삭감인데 대부분 국방예산과 같은 그들의 이해와 직결된 예산이 아닌 공립학교와 같은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에 대한 공격이다. 홍준표는 이런 도움 없이도 병원을 날렸고.

# 개인적으로 공공서비스에 대한 이런 이론적이거나 실제적인 공격은 단기간 내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 보는데, 증세는 인기낮은 선택이고 기본적으로 예산체계가 경직성 복지 예산의 증가로 말미암아 지속적으로 재정압박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까이고 또 까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