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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컬럼]트럼프는 북한을 위협하는 대신 이것을 시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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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Delury는 서울에 있는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부교수다.

시리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미사일 공격은 좌우 양측으로부터 환호를 불러일으켰고, 몇몇 열광자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군사적 해결”에 관한 논쟁을 촉발하게끔 했다. 한국에 대한 행정부의 대다수 레토릭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비교는 매우 위험한 오해다. 타격을 하면 북한이 반드시 더 강하게 보복할 것이다. “외과적” 공습으로 그들의 능력을 – 핵 또는 다른 것들 – “선제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군사적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무기 프로그램을 저지하려는 그 어떠한 무력의 사용도 전쟁을 촉발할 수 있고, 이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미국 우선의 시대이니 우리는 북한의 포나 단거리 미사일의 사정권에 놓인 서울에 사는 1천만 명에게 닥칠 죽음과 파괴를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 곳의 기지들에 있는 군인과 그들의 가족을 포함하여 남한에 거주하는 약 14만 명의 미국 시민과 이웃 일본에 있는 추가적인 시민들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인가? 또는 남한의 미국과의 1,450억 달러의 상호무역을 포함한 다른 세계와 얽힌 1조 4천억 달러의 경제는 신경 쓰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이 아시아에서 가장 복잡한 공항인 인천 국제공항이나 세계 6위 규모의 컨테이너 항구인 부산에 쏟아지는 것은 신경 쓰고 있는 것인가? 중국의 관문에 대화재가 발생하거나 일본이 휩쓸려 들었을 때 세계 경제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

분명히 미국의 대중과 정당을 초월한 의회는 이러한 비용들이 감내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행정부에 존재하는 많은 분별력 있는 전략가와 정책결정자를 고려할 때 군사적 악담은 허세라 결론내리는 것이 이성적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러한 것들은 현실적으로 임박한 질문, ‘직접 대화나 개입으로 나아갈 외교적 옵션을 선택하기보다 중국의 경제제재를 통한 경제적 압력에 직면해 그들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지만, 북한이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권력이동을 함에 따라 경제제재와 압력에 돈을 투자했다. 불행하게도 북한은 이란과 같은 정상적인 무역국처럼 호주머니 사정이 막바지에 몰리지 않았다. 북한 사람들은 이미 국제 경제로부터 진작 고립되었고 국제사회와 절연되어 왔기 때문에 고립이 심화되어도 그들의 셈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정은에게 있어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그가 북한의 경제를 향상시킬 수 있는 야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고, 그의 내부 정책들은 이미 완만한 성장세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첫 번째 관심사항은 정권의 생존과 국가 안보이며, 그는 이를 위해 핵 억지력이 필수적이라고 간주하고 있다(슬프게도 합리적인 추론이다). 8년간의 경제제재와 압력은 – 김정일의 죽음 직전의 짧은 외교적 시기를 빼고는 – 평양이 핵무기를 필요로 하지 않게 깨닫게 하거나 북한이 그들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무기고를 확장하는 것을 방지케 하는데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식의 접근 방법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정말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고 싶다면, 그것은 대중을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이 김을 무릎 꿇리는 것을 헛되이 기다리며, 무모한 전쟁의 위협으로 시야를 흐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보다 신중한 조치는 핵분열 물질 생산 사이클의 동결, 국제핵에너지기구 감독으로의 복귀, 그리고 핵 실험과 장거리 탄도 미사일(위성 발사를 포함한)에 관한 유예에 관해 협의하는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 대신에 미국은 최소한 남한과의 연합 군사 훈련의 연기와 같은 당면한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김은 어쩌면 그 훈련 규모의 축소와 같은 더 덜한 요구에도 응할지 모른다. 또는 그는 어쩌면 다른 종류의 거래에 – 예를 들어 1953년의 정전협상을 한국전쟁의 종식을 위한 여하한의 종류의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대화의 시작 – 응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옵션들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테이블에 다가서는 것이다. 2개월간의 대규모 훈련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이 그러한 일을 벌일 좋은 타임이다.

동결은 근원적인 역학을 바꾸고 각 당사자가 문제의 근본이라 여기는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장기적 전략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첫 걸음일 뿐이다. 우리는 김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대화를 시작할 때까지 그것을 얻기를 포기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권력을 잡은 이후 그의 야망이 핵 억지력 이상으로 나아가 진정 경제개발로 가고자 한다는 강한 신호가 존재한다. 전쟁 위협이나 경제제재의 심화보다는 동아시아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취하고 있는 경로로 – 권력에서 번영으로 – 김을 살짝 찔러 넣어주는 것이 보다 생산적인 방법일 것이다. 만약 김이 북한의 개발 독재자가 되고 싶다면 미국의 최선의 장기 전략은 그가 그렇게 되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그러한 과정의 첫 단계에서 핵 억지력을 포기할 것이라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게 궁극적으로 그가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현실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다.

이제는 채널을 다시 열고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의 능력이 현재 있는 곳에 머무르게 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으로 뛰어오르기 위한 시점이다. 그래서 미국은 서울의 새 정부 및 다른 이들과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북한을 지역적 안정과 번영에 녹아들게 만들 장기 전략을 지원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김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을 절대 줄이지 않을 것이고, 경제제재는 북한 대중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압박은 그곳에서의 인권침해를 개선하는데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대중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이 경제적으로 성공하게 하여 나라를 차츰 차츰 개방하게 돕는 것이다.

단순히 경제적 고통을 가중시키고 군사적 공격을 위협하고 긴장을 높이게 되면, 미국은 북한 체제의 최악의 추세로 가도록 도울 뿐인 것이다. 김의 핵에 대한 야망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북한의 능력은 높아질 뿐이다. 코스를 반대로 바꿀 때다.

전쟁의 아이러니, 세제개편

일본은 1938년 전시총동원법이 제정된 이후 전면적인 전시체제에 들어섰는데 모든 산업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편되었고 국가 재정규모는 팽창하여 1936년에 약 22.8억 엔이던 것이 1940년에 109.8억 엔에 이르렀고 전쟁이 막바지이었던 1944년에는 861.6억 엔으로 급격히 팽창하였다. 한편 이들 각 연도에 군사비가 국가 총재정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36년에 47.2%이던 것이 1940년에는 72.4%, 1944년에는 85.3%까지 이르게 되었다.[역사 속 세금이야기, 문점식 지음, 세경사, 2012년, p231]

전쟁은 당연하게도 “큰 정부”를 만든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일본은 큰 정부가 탄생하는 극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인용문에서도 보듯 일본 경제는 1936년에서 1944년이라는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재정규모가 무려 37배 이상 늘어났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군사비는 그 재정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군사비로만 놓고 볼 때에 그 규모의 증가추이는 68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쯤 되면 당시 일본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전쟁기계 그 자체였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참전국이 이렇게 재정규모를 극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배경에는 세금이 있다. 전쟁비용 조달은 자체비용, 침략국 수탈, 채권발행 등이 있겠으나 근현대에 들어서 일반화된 수단은 바로 조세다. 특히 양차대전은 각국이 세제 개혁을 통해 항구적인 재정조달수단을 확보하게 되는 주요한 계기가 된다. 세금이라는 것이 결국 국가가 국민에게 별도의 직접적인 반대급부 없이 돈을 걷는 방법인 만큼 전쟁이라는 엄중한 상황은 그런 인기 없는 정책을 – 특히 직접세의 경우 – 밀어붙이 좋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1940년까지 미국에서 소득세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소득세제도가 도입된 이후 30년 동안 전체 인구의 6% 정도만이 소득세를 납부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소득세제도가 국가 재정의 가장 중요한 중심이 되었다. 재무부장관이었던 헨리 모겐타우는 전쟁기간 중에 라디오·신문을 통하여 만화가, 아나운서, 가수 등을 동원하여 전 국민을 상대로 세금 납부 촉구 홍보를 하였다. 이처럼 효과적인 홍보 전략과 국민들의 애국심에 힘입어서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2년간 연방정부는 전쟁비용의 약 반을 세금으로 충당하였다. [같은 책, pp225~226]

인용문처럼 당초 직접세인 소득세는 전체 세수에서 미미한 비중만을 차지할 뿐이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비용이 많이 드는 통치행위를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었기에 정부는 정치권을 설득하고, – 의회가 있는 경우 의회 동의를 얻어 – 납세자를 설득하여 – 공권력과 애국심 호소 등을 통하여 – 세수를 확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법인세와 소득세 납부액이 1939년 기준 국민총생산의 1% 정도였는데 전쟁 중인 1943년도에는 8%까지 증가하였다고 한다.

현대의 세제개편은 이렇듯 소득세 납세자 수가 대폭 증가하며 간접세 중심 세제에서 직접세 중심 세제로 비중이 옮겨가게 된다. 한편 전쟁이 직접세의 당위성을 당연시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 징수를 가능케 하는 수단은 대공황과 전쟁 국면에 각국이 도입한 국민계정(national accounts)일 것이다. 국민국가 단위의 경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이런 시도는 1920년대 소비에트 블록에서 시작되었고,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거시경제학의 득세와 세수 증대라는 목적을 위해 본격화되었다..

전쟁의 아이러니다. 파괴를 위한 존재가 세제개혁과 관료기구의 성장을 추동했고, 전후 이는 자본주의 진영 역시 야경국가가 아닌 적극적인 경제주체로 활동해야 함을 일깨워준 계기가 된 것이다. 그보다 더한 아이러니는 누진세 도입이다. 전쟁 당시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94%였는데 누진세 도입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이는 바로 칼 맑스였기 때문이다. 자본가에 의한 전쟁을 반대한 칼 맑스가 주창한 누진세가 전쟁을 통해 정착된 셈이니 가장 지독한 역사의 아이러니 중 하나인 셈이다.

‘1984’가 말하는 전쟁의 본질

전쟁 행위의 본질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동력의 산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대중을 지나칠 정도로 편안하게 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그들을 지혜롭게 하는 데 사용되는 물품들을 박살내거나 하늘로 날려버리거나 바다 속 깊이 빠뜨리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가 실제로 파괴되지 않는다고 해도 무기 공장은 소비 물자 생산에 사용될 노동력을 소모시키는 역할을 한다.[1984, 조지 오웰 씀, 정회성 옮김, 민음사, 2005년, p268]

조지 오웰의 작품 ‘1984’에서의 집권세력인 오세아니아 정부에 의해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은 에마뉘엘 골드스타인1이 자신의 저서에서 서술한 전쟁의 본질이다.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기 위해 인간의 노동력의 산물을 파괴하는’ 전쟁이 내포한 본질은 오히려 후자라는 사고의 역발상이 흥미롭다.

전쟁은 고대로부터 다른 이의 경제적 자산을 약탈하기 위한 것이고, 오늘날에는 일국의 군수산업이 여타 국가의 전쟁을 통해 융성하고 해당 노동자나 지역을 풍요롭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구 전체적인 범위로 보면 골드스타인의 말이 옳을 것이다. 궁극에는 무의미하게 노동력의 산물을 파괴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처음에 서로의 아이들을 학살했다는 이유로 끔찍한 살육을 자행하고 있지만 본질은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진정 그들을 위해서라면 복수를 위해 백린탄을 터트려 양민을 학살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 특히 이스라엘은 – 광기어린 공포로 노동력을 소모하고 있을 뿐이다.

예전에 ‘군사 케인즈 주의’의 허상에 대해서도 쓴 적 있지만 군사행동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정신적으로 성숙치 못한 행동일 뿐이다. 집권세력의 권력 온존을 위해 끊임없이 조장되는 전쟁 위기론에 국민은 애국주의에 고취되어 현실의 고통을 잊거나 정당화한다. 그런 의식에 성숙함은 없다.

가리타니 고진은 ‘전쟁의 영구 포기’를 선언한 일본 헌법 9조의 평화주의 조항을 통해 일본이 진정한 어른이 됐다고 주장하였다. 점령군에 의해 강제된 것이고 모순되게도 자위대라는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런 모순은 아베라는 미숙아가 헌법을 부정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노동력의 낭비를 막기 위해 전 세계가 전쟁을 영구적으로 포기하는 날은 언제 올 것인가?

요즘 읽고 있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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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ch22” by http://nickweatherhead.com/images/catch22.jpg. Licensed under Wikipedia.

<캐치22>를 재밌게 읽고 있는데 작품을 처음 대한 것은 영화다. 이제 와서 원작을 읽어보니 원작보다 훨씬 단순한 내러티브였지만 – 그럼에도 여전히 복잡한 -특유의 모순어법 유머는 여전하다. 1970년 작품이니 동 시대 M.A.S.H.와 함께 이른바 반전 영화 장르로 분류되지만 개인적으로는 M.A.S.H.보다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 다음으로는 영어, 즉 원어소설로 읽게 되었다. 새로 산 스마트폰에 텍스트 파일을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깐 뒤, 인터넷 공유사이트에서 얻은 텍스트파일을 출퇴근길에 읽는 재미가 솔솔 하였다. 하지만 지금 한글로 읽어도 어려운 글을 영어로 읽으려니 머리가 지끈거려 결국 번역본을 구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에 공군 조종사로 복무했던 조셉 헬러의 반자전적인 소설이다. 지독한 냉소로 참전군인들과 전쟁의 광기를 비웃고 있지만, 단순한 반전(反戰)이라는 주제를 뛰어넘은 인간들의 세상 자체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쟁이라는 이벤트 때문에 한 자리에 모인 이 인간들은 – 미치광이, 편집증 환자, 인디언, 탐욕스러운 의사, 영문도 모르고 소령이 된 소심증 환자 등등 – 저마다의 희한한 삶을 살아왔고 전쟁이 끝나면 또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그러한 삶을 계속 살아갈 인간군상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그런 기기묘묘한 삶의 엑기스를 뽑아내 그 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추출제일 뿐이다.

소설의 최대의 매력은 시종일관 그치지 않는 모순어법이다. 잘 알려진바 대로 <캐치22>라는 제목 자체가 이 소설이 지향하고 있는 그 모순어법의 대표적 사례다. 소설의 주인공 요사리안은 자신이 미쳤다며 의사인 다니카에게 전투기 출격임무에서 빼달라고 하소연하지만 다니카의 말인즉슨, 미친 군인은 임무에서 빼주지만 그러기 위해선 그 군인이 자신에게 그걸 요청해야 하고 그 요청을 하는 순간 그 군인이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는 상황을 설명해주는데 그 규정이 바로 소설에서 말하는 <캐치22>다. 마치 헤어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놓여있는 개미의 처지와 같다. 소설은 시종일관 등장인물을 이러한 상황에 배치시킨다.

인간은 누구나 <캐치22>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모순된 상황에 처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요즘, 그나마 가장 그러한 상황을 뚫고 전진했던 한 인물의 전기를 함께 읽고 있는데, 아이작 도이처가 쓴 <트로츠키>다. 그에 관한 가장 빼어난 전기로 알려진 이 책은 유려한 문체, 치밀한 상황 압축, 철저한 고증, 그리고 인간에 대한 명료한 이해력이 잘 어우러져 지루함이 없이 술술 읽히는 책이다. 이 책은 또한 통상적인 전기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주인공에 대한 미화(美化)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트로츠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곳곳에 배어 나옴은 어쩔 수가 없지만 그러한 순간에도 객관성을 잃지 않는다.

작가의 그런 객관적 시각을 통해 알 수 있는 트로츠키의 모습은 자본주의 극복을 꿈꾸면서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어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기를 바라는 러시아 인텔리겐차 정치집단의 상황, 즉 꿈꾸는 세상을 위해 악몽이 더욱 커지길 바랄 수밖에 없는 모순된 상황만큼이나 모순적인 모습이다. 부유한 유태인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소부르주아적 사고에 젖어 소년기를 보내지만 나로드니키로 전향한 이후 맑스주의자, 멘세비키, 마침내 레닌의 정치적 동지로 이어지는 그 삶은 정반합의 변증법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극적이기 때문이다. 글 자체도 좋지만 등장인물 자체가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인 셈이다.

모순된 세상에서 모순된 인간으로 살아간 트로츠키의 처세술은 뛰어난 지식 습득능력과 진화능력이었다. 머리에 별로 든게 없어도 엄청난 언변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던 트로츠키는 그 논쟁을 하면서 어느새 상대의 핵심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드래곤볼에 이런 괴물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그는 퇴행적인 나로드니키에서 빠른 시간 내에 혁명의 주도자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동지들로부터는 변절자로 낙인찍히겠지만 결국은 혁명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궤도를 신축적으로 수정하였다는 점에서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사리안은 전투기 출격임무에서 빠지고 싶어 아등바등하지만 뫼비우스 띠 위에 놓인 개미처럼 불평을 털어놓으면서도 그 길을 계속 걸어 다닐 뿐이다. 아직 내가 읽은 부분까지 에서는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외부로 시각을 돌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고 있다. 반면 트로츠키는 약삭빠르다 싶을 정도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과감히 깨부수어 나가곤 했다. 심지어는 가장 신랄한 언어로 모욕하고 조소를 퍼부었던 – 그의 독설은 그 진영에서조차 심하다 할 정도였다 한다 – 적진에 뛰어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향점이 불투명한 이와 명쾌한 이의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당신은 어떤 인간형인가?

군사 케인즈주의

Massive Defense Spending
Leads to Job Loss

by Dean Baker

석유회사와 다른 통상의 용의자들이 후원하는 전국 단위의 광고가 하나 있는데, 대중들에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지구온난화를 감속시키는 조치가 엄청난 일자리 감소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이 광고는 낮은 성장과 수십만의 일자리 감소를 경고하고 있는데, 심지어 의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현재의 법안들의 몇몇 수정안들이 법제화될 경우 수백만의 일자리 감소에 이를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실 표준 경제 모델은 에너지 가격을 인상시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목적의 조치가 낮은 경제성장과 관련하여 비용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낮은 경제성장은 그 영향이 확실히 대부분 이 괴담에서 지적하는 것보다 미약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더 적은 일자리를 의미하기는 한다.

그러나 일자리 감소에 관한 석유회사의 괴담은 어떠한 전후관계도 없는 것이다. 이 모델에서 대부분 정의상의 시장산출물을 방해하는 여하한의 정부 조치는 더 낮은 경제성장과 더 적은 일자리로 이어져 효율을 저해한다. 지구온난화를 저감시키는 노력들은 이 범주에 속하지만, 대부분의 모든 것들과 모든 범주의 많은 아이템들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국방지출은 정부가 자원을 시장에 의해 결정된 용도로 사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 대신 그것을(자원을 : 역자 주) 무기와 물품을 사고 병사와 다른 군무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한다. 표준 경제 모델에서 국방지출은 효율을 감소시키고, 성장을 저해하고, 일자리를 갉아먹으면서 경제를 직접적으로 고갈시킨다.

몇 해 전에 경제와 정치 연구 센터(the 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는 앞서가는 경제 모델링 회사인 글로벌인사이트에게 GDP 1%포인트에 상당하는 국방지출이 지속시키는 증감의 영향을 분석하는 작업을 의뢰했다. 이는 대략 이라크 전쟁에서의 비용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글로벌인사이트의 모델은 20년 후에 경제는 추가적인 국방지출의 결과로 0.6%포인트만큼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낮은 성장은 국방지출이 증가하지 않았을 상황에 비교해볼 때에 거의 70만 개의 일자리가 감소된다고 암시하고 있다. 건설과 제조업은 특히 이 예측에서 많은 일자리 감소가 있었는데, 각각 21만개와 9만개의 일자리였다.

우리가 글로벌인사이트에게 모델링해달라고 부탁한 시나리오는 현재의 정책과 연계된 국방지출의 증가를 매우 과소평가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최근의 분기에 국방지출은 GDP의 5.6%에 달한다. 비교해보면 911 공격 이전에 의회의 예산처는 2009년의 국방지출이 GDP의 2.4%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우리의 911 이후의 무장은 공격 이전의 기준선과 비교할 경우에 비해 3.2%포인트에 해당한다. 이는 글로벌인사이트의 일자리 감소 예측이 훨씬 더 낮음을 의미한다.

더 많은 지출의 영향은 즉각 비례하여 경제 모델에 반영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이는 다소 비례보다 더 반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단지 글로벌인사이트의 예측을 3으로 곱하기만 하면, 우리의 증가하는 국방지출이 장기적으로 GDP의 1.8%포인트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현재의 경제에서 약 2천5백억 달러에 해당하는 것이거나,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의 수입이 800달러 감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국방지출의 증가로 인해 예상되는 일자리 감소는 2백만 개에 달할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지구온난화에서 기인하는 노력에 의한 일자리 감소를 반영하는 표준 경제 모델은, 또한 2000년 이후 장기적으로 2백만의 일자리에 근접하는 경제비용을 발생시키는 국방지출의 증가도 반영한다.

몇몇 이유로 인해 아무도 더 많은 국방지출과 관계된 일자리 감소는 주목하지 않는다. 사실 국방지출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나쇼날퍼블릭래디오, 또는 어떠한 주요 미디어에서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생략의 핑계거리는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만약 우리가 온실가스를 감소시키기 위한 노력에 대한 경제적 영향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하고 싶다면, 경제적 영향은 맥락이 맞아야 한다. 우리는 석유회사가 이익을 유지하는데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를 유권자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만약 미디어가 어떠한 전후관계 없이 지구온난화를 포함한 조치들로 인한 일자리 감소 예측을 논한다면, 대중은 또한 그들의 모티브를 따져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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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석유메이저들의 비난을 반박하기 위한 글이다. 이 글은 본래의 의도 이외에도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려주고 있다. 즉, 좌우 양측에서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주장하고 있는 소위 ‘군사 케인즈주의’(Military Keynesianism)의 효용성이 근거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케인즈는 정 할일이 없으면 땅이라도 팠다가 다시 묻으면 어쨌든 GDP가 늘어나니 경기부양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우익 후손들은 – 그리고 군사기업들은 – 이 논리에 따라 국방지출과 같은 비생산적 지출에 정당성을 부여했고, 좌익 후손들은 우익들이 그러한 욕망 때문에 조만간 어디에선가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둘 다 국방지출이 경기부양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전제에 동의하고 논쟁을 벌이는 셈이다. 하지만 본문에서도 밝혔듯이 국방지출은 경제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 단기적으로 일자리를 늘이고 GDP를 증가시키는 착시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생산적인 선순환 과정에 속해있지 않은 이상 – 미사일이 매개체가 되어 생산에 기여할 일이 있을까? – 그것은 허깨비일 뿐이다.

단기적인 경기부양에 효과는 있을 수 있지 않은가는 주장도 만만치 않지만 사실 현대전이 경제에 도움을 준적은 없다. 전쟁이 특정경제에 도움을 준 경우는 전쟁이 특정경제에 비용을 부과하지 않고 순수하게 이득만을 안겨줄 경우에 한한다. 2차 대전에 참전하기 전의 미국과 한국전쟁의 생산기지 역할을 한 일본이 그 경우에 해당한다.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몇몇 저자들은 2차 세계대전이 미국경제를 살린 원인은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였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그들은 미국의 참전 이전, 영국을 위한 미국의 엄청난 무기 생산이 우리 경제를 살린 요인이라고 주장한다.Contrary to popular belief, some writers say that the reason that WWII actually stimulated the U.S. economy was not because of America fighting the war. Specifically, they argue that America’s ramped-up production of armaments for the British before the U.S. entered the war was the thing which stimulated our economy.[Guest Post: “War ALWAYS Causes Recession”]

이처럼 전쟁이 한 경제에 긍정적이려면 순이익이 증가하여야 한다.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등 미국이 치룬 주요전쟁들은 미국의 일방주의, 이에 따른 주요 국가들의 비협조, 그리고 특히 미군 특유의 값비싼 단위비용으로 말미암아(주1) 오히려 순손실을 발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물론 이라크 전쟁에서는 유전확보라는 부수적인 효과를 감안할 수도 있고 이것은 상당부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아있는 미국과의 분쟁지역은 이라크에서와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유일하게 이란이 있으나 명분이나 국제공조 등, 이전의 일방주의와 다른 명분을 얻기 위해 기울여야 하는 노력을 감안하면 경제적 실익은 없다.

군사적 지출과 서비스업은 제조업과 달리 가시적인 생산물을 창출하지 못한다. 1,2차 산업이 그 기능을 담당할 뿐이다. 하지만 서비스업은 일정 정도 생산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기능을 하는 긍정적 기여를 한다. 이와 달리 군사적 지출의 유일한 기여는 거주민의 심리적 안도감 정도다. 나머지 비용지불은 군수기업에게 돌아갈 뿐이다. 다시 말해 케인즈의 승수효과는 없다. 또는 마이너스다.

(주1) 특히 이라크전쟁은 군대 유지기능의 대폭적인 민영화 등으로 말미암아 비용이 대폭 증가했다

US War Privatization

다음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중 계약에 관한 위원회(Commission on Wartime Contracting in Iraq and Afghanistan)’가 최근 발표한 내용 중 일부다.

24만 명 이상의 고용인들이, 이들 중 80%가 외국인인, 미군과 국무부, 그리고 미국 국외발전기관의 작전과 프로젝트들을 지원하기 위해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서 일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의 계약고용인들의 숫자는 미군의 숫자를 넘어섰다. 계약업체들이 필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위원회는 그들을 활용함에 따라 수십억 달러의 돈이 낭비되고, 갈취되고, 악용되고 있는데 이는 부적절한 계획, 빈약한 계약서 작성, 제한적인 경쟁, 부실한 감독기능, 그리고 다른 문제들로부터 기인한다.
이러한 수치는 계약업체들에 대한 미국의 의존에 관한 국방부의 최근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그 보고서는 또한 2009년 2분기에 국방부를 위해 일하는 “사설보안업체”의 숫자가 23% 증가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9% 증가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이들은 그 나라에서의 “군사력의 증강과 상호관련”되어 있다.
More than 240,000 contractor employees, about 80 percent of them foreign nationals, are working in Iraq and Afghanistan to support operations and projects of the U.S. military, the Department of State, and the 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Contractor employees outnumber U.S. troops in the region. While contractors provide vital services, the Commission believes their use has also entailed billions of dollars lost to waste, fraud, and abuse due to inadequate planning, poor contract drafting, limited competition, understaffed oversight functions, and other problems.
These statistics support a recent DoD report on the extent of the US reliance on contractors. That report also found that there has been a 23% increase in the number of “Private Security Contractors” working for the Department of Defense in Iraq in the second quarter of 2009 and a 29% increase in Afghanistan, which “correlates to the build up of forces” in the country. [출처]

아들 부시가 일으킨 이라크전쟁은 전쟁에서 민간군사업체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전쟁이었다. 부시와 딕체니 등 공화당 정권은 당시 민영화를 통해 군대 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미명 하에, 별다른 경쟁도 거치지 않고 수의계약을 통해 막대한 이권이 걸린 전쟁수행과 이에 따른 복구사업을 소수의 민간군사업체들에게 넘겨왔다. 이것은 인종학살이라는 전쟁범죄와 함께 미국의 납세자들의 돈으로 용병의 배를 살찌우는 가공할 범죄라 할 수 있다.

위 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어이없는 사실 하나는 이런 범죄가 오바마 시절에도 변함없이 자행되고, 심지어는 그 계약자 수가 더 늘어났다는 점이다. 경쟁강화를 통해 더 많은 업체들에게 기회를 줬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군대 민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없이 민간계약을 늘인다는 사실은 결국 전쟁수행에 아무리 고상한 명분을 갖다 붙여도 결국 그것은 이윤창출의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미국이 군사지원을 했어야 할 대상

스피어단장은 잠재적인 재난에 대한 얘기들을 계속했다. 끝으로 나는 그에게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아니면 미국이 개입하여 프랑스가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한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만일 우리가 탱크와 다른 군사장비를 남부 베트남 대신에 공산주의자들에게 준다면 우리는 그들을 도로상으로 끌어올려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방식으로 그들과 싸울 수 있을 겁니다.”그는 이 말을 농담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제임스 레스턴 회고록 데드라인, 제임스 레스턴 지음, 송문홍 옮김, 동아일보사, 1992년, p297]

미국이 아직 본격적으로 베트남에 개입하기 전 사이공에서의 군사 임무를 맡고 있던 영국의 스피어(Spear) 여단장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