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紙가 기사 제목을 근사하게 뽑았기에 소개한다.

타임紙가 기사 제목을 근사하게 뽑았기에 소개한다.

네오나찌들이 전혀 실행할 필요가 없는 전쟁범죄였다고 비난하는 드레스덴 공습에 대하여, 드레스덴은 아름다운 관광도시였던 것만큼이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도시였으며 따라서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타당한 결정이었다는 영국 역사학자 Frederick Taylor 의 인터뷰 중 일부다. 다른 것을 떠나서 자국의 주요도시를 파괴한 공습에 대하여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와 인터뷰를 한 슈피겔이 대단해보인다.
슈피겔 온라인 : 과장된 사상자수가 학문적 연구에 반하는 것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지요. 연합군의 공격의 희생자로서의 드레스덴의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고 보는데요. 드레스덴이 정말 그렇게 결백했나요?
테일러 : 드레스덴은 의심할 바 없이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예술의 중심이자 나찌 이전의 독일 인본주의에 관한 모든 위대한 것들의 상징이죠. 또한 동시에 상당한 정도로 나찌의 주요한 산업중심이기도 했습니다. 타자기, 담배, 가구, 사탕 등을 생산하던 공장들이 1939년 이후 군사용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도시의 7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전쟁 관련 업무에 종사하였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지역 철도 이사회는 동부전선의 전쟁 수행에 깊숙이 관여하였고 또한 강제수용소 시스템에 죄수들을 수송하는 데에도 관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드레스덴이 합당한 폭격 목표에 해당하느냐는 것이 아니라 1945년 2월의 시점에서 그 방법과 강도가 정당한 것이었느냐에 있을 것입니다.
슈피겔 온라인 : 당신은 그것이 정당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테일러 : 개인적으로 그것(폭격 : 역자 주)의 논리를 추적할 수는 있지만 매우 부정적입니다. 이는 전쟁이 민주주의 국가에서조차 어떻게 도덕적 재고가 고갈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소름끼치는 사례라 할 것입니다. 18세의 나이에 그의 고향의 폭격에서 살아남아 그 파괴에 대해 다방면에 걸쳐 글을 남긴 Goetz Bergander는 그만의 독특한 용서의 방식으로 폭격을 “도를 넘어선 것(outsize)”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확실히 그 폭격의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The Logic Behind the Destruction of Dresden, Spiegel, 02/13/2009]
전에 “新냉전 시대의 도래?”라는 글에서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한편 ‘자유무역’과 ‘세계화’는 또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해지곤 한다). 바로 경제권 통합을 통한 국가간 분쟁의 종식이었다. 즉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서구는 경제권의 통합이 각 나라간의 분쟁을 줄여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나치와 파시스트의 등장에서 보듯이 또 다른 분쟁의 불씨를 증폭시키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다음 글이 바로 그러한 “두려움”에 대한 묘사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국과 영국의 관리들은 국제 무역을 촉진시키는 새로운 시스템, 포괄적이고 유례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그들은 무엇을 피해야만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고율의 관세, 특혜 조약, 무역 장벽, 무역 통제, 그리고 “인근국 무력화(beggar thy neighbor)” 정책 등으로 양 대전 사이에 무너지고 만 무역 시스템을 되살리는 것이 그들의 주안점이었다. 그런 무시무시한 보호주의로는 전지구적 불황과 그에 따르는 정치적 문제들 그리고 끊임없는 전쟁만 일으킬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확신이었다. 그들의 꿈은 당시 전지구적 성장을 촉진시킨 19세기 후반의 개방적 무역 시스템의 회복이었다.[시장對국가(원제 The Commanding Heights), Daniel Yergin and Joseph Stanislaw, 주명건譯, 세종연구원, 1999, pp63~64]
지금의 유럽 상황을 – 특히 서유럽 상황 – 떠올려보면 지나치게 공포감이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이제 독일은 더 이상 가공할만한 세계대전을 일으킬 만큼 ‘나쁜 나라’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양차대전의 후유증과 소비에트의 침략야욕(?)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인들과 바다건너 자본주의 세계의 최강자로 군림한 미국인들에게 위와 같은 논리가 비약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공감이 가기도 한다.
시간을 다시 되돌려 현재를 보자. 그들이 실현해낸 자유무역은 지구적 차원에서 안보를 지켜냈을까? 전쟁을 막아냈는가? 궤멸적인 제1세계에서의 집단전쟁은 막아냈을지 몰라도 지역분쟁은 끊이지 않았다. 꼭 그것이 역설적으로 자유무역이 원인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또 자유무역이건 보호무역이건 간에 제1세계의 최강자 미국은 – 서유럽의 분쟁을 막아내고자 했던 그 나라 –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이니셔티브를 위해 거의 유일하게 전 세계 곳곳에서 대놓고 대량학살로 이어지는 전쟁을 수행한 악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그리고 자유무역이 전 세계를 통합한 이후 – 특히 금융에 대한 장벽해체 이후 – 많은 신흥국들이 전쟁에 준하는 경제폭탄을 맞아 신음하기도 했다. 급기야는 자유무역이 금융 강국 본토인 미국과 서유럽마저 혼절시키고 말았다.
그러니 어쩌면 딱 이 시점이 자유무역이 과연 지구촌을 평화와 번영으로 이끄는 유일한 대안인가 하는 고민을 해볼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쟁도 못 막고 경제위기도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강하게 추측되는 자유무역이 과연 신주단지처럼 모셔야할 절대진리인가 하는 의문 말이다. 미국의 새 대통령 오바마도 자유무역(free trade)보다는 공정무역(fair trade)이란 표현을 즐긴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그것이 좌파진영에서 쓰는 같은 표현과는 다른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지만 말이다.
블로그 주제의 다양성(?) 재고 차원에서 2003년 작성한 글을 갱신하도록 한다. 당시에 민간군사기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어 정리해둔 글이다.
■ 전쟁의 비즈니스化
전쟁의 최고의 수혜자는 누구일까? 바로 승전국의 위정자들일 것이다. 국내의 혼란한 정쟁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장래 고갈될 에너지의 확보를 위해, 또는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의 무마를 위해 강대국은 전쟁을 벌이며 이를 통한 열매의 단 맛을 즐긴다. 또 다른 수혜자는 막대한 전쟁수행비용의 떡고물을 받아먹는 합법 또는 불법적인 무기생산/거래업자, 용병회사,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군사관련업자들이다.
문제는 오늘 날 이러한 전쟁관련산업들이 과거에 비해 보다 광대한 범위에서 합법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냉전 이후 소위 과거 용병의 보다 세련된 형태인 민간군사기업(PMCs : Private military companies)은 보다 대규모화, 합법화를 통해 강대국의 위정자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분쟁에 보다 깊숙이 개입되고 있으며, 향후 분쟁의 지연 또는 확대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개연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분쟁, 또는 전쟁은 그들에게 시장(市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늘 날 전쟁은 보다 철저히 비즈니스化되어가고 있다.
■ 민간군사기업(PMCs : Private military companies)의 급부상
ICIJ(Public Integrity’s 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오늘 날 적어도 90개의 합법적인 회사가 전 세계 110개 국가에서 군대와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전체 시장규모는 약 1,0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군사훈련, 물류, 배식 등 직접적인 전투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한 예로 민간군사기업들은 200개가 넘는 미국 내 대학에서 군사훈련 과정을 맡고 있다. 미래 미군의 사관생도들이 민간회사의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민간군사기업을 통한 군대 민영화의 논리는 다운사이징과 아웃소싱 등 민영화를 통해 군의 효율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 증가하고 있는 지역내 소규모 분쟁에 대한 직접적 개입의 회피가 용이하다는 논리이다.
이런 논리에 따라 미군의 유틸리티 체계에 대한 민영화의 법적 근거인 USC 2688 가 미의회에서 승인되었다. 또한 1997년 11월 10일 당시 국방부 장관인 윌리엄 코헨(William S. Cohen)은 군대의 전기, 상수도, 가스와 같은 유틸리티시스템을 민영화시킬 것을 지시했다. 다만 특수한 보안을 요하는 부분이나 민영화해봤자 경제적 이득이 없는 부분은 제외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결과적으로 1994년 이후 미국방부는 미국에 기반을 둔 12개의 민간군사기업과 3천여 건의 계약을 체결하였다. 문제는 이들 계약 모두가 단순한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ICIJ가 펜타곤을 통해 입수된 서류를 살펴본 결과 각 계약의 사업내용과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에서 이러한 민간군사기업들이 실제분쟁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로 한다.
■ PMCs의 분쟁개입 사례
최근 미국이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한 시에라리온은 현재 끔찍한 살육이 진행 중이다. 반군이 혁명통일전선(RUF : Revolutionary United Front)은 엄청난 살육을 자행하고 있으며 이에 정부군을 지원하기 위해 서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인 ECOMOG의 외피를 쓴 나이지리아 군과 남아프리카의 용병회사인 Executive Outcomes 등이 개입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미군이 파견되지도 않은 이 살육의 현장에서 미국의 깃발이 보이고 있다. 그들은 바로 오레곤에 위치한 민간군사기업 ICI(International Charter Incorporated of Oregon)다. 미정부와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이 회사의 주업무는 결국 정규군을 파견하기에는 애매하고 고약한 지역에 파견되어 통상적인 미국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데에 있다.
시에라리온에서 이들의 역할은 수송과 의료후송 서비스를 통해 나이지리아 군을 지원하는 것이다. 전투는 나이지리아 군이 수행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전투에서 불가피하게 ICI 직원이 총상을 입게 되었고, 그렇게 되면 그들은 전투와 완전히 무관할 수 없는 행위에 개입하게 되었다. 응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군당국과 ICI는 이와 관련한 ICIJ의 질문에 일체 응답하지 않았다.
미국은 시에라리온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한때 자신들이 지원했던 라이베리아의 독재자 찰스 테일러가 암암리에 지원하고 있는 반군에 의한 시에라리온의 학살과 불안으로 인해 미국에 다섯 번째로 많은 석유를 공급하고 있는 나이지리아와의 관계가 악화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시에라리온에 있는 다이아몬드 광산일 뿐이다. 결국 ICI에게 이번 전쟁은 비즈니스이고 미국으로서는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일종의 외교수단이다.
민간군사기업의 활동영역은 이라크전에서 보다 두드러지게 성장하였다. 민간군사기업은 배식에서부터 B-2폭탄의 관리체계 유지에 이르기까지 전투를 제외한 거의 전방위에 이르고 있다. 민간군사기업 직원의 숫자는 군인 10명 1명 꼴로 군인 100명당 1명 꼴이었던 지난 걸프전에 비해 거의 10배나 성장하였다.
그 활동영역도 질적으로 성장하였는데 현재 민간군사기업의 자문단은 새로운 이라크 군인과 경찰의 훈련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콜롬비아에서 마약소탕에 참여하였던 딘코(DynCorp)가 맡게 되었다. 2002년에만 23억달러의 매출을 올린 이 회사는 민간군사기업의 간판급 기업이다.
이쯤 되면 과연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단순한 서비스 공급자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 PMCs의 이윤창출 방법
기업형태가 세련화되고 합법화되었다고 해서 이전의 용병들이나 무기거래상 들과 이윤창출 동기 및 과정이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보다 합법화된 공간에서 교묘하고 세련된 방법(이를테면 민영화 프로젝트의 입찰참가 등)으로 행동한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그 근본에는 역시 탈법적이고 정치적인 속임수가 존재한다.
이윤창출의 첫 번째 수단은 시장(市場)의 확대이다. 이들에게 전쟁은 끔찍한 비극의 현장이 아니라 회사매출을 실현하는 시장일 뿐이다. 이는 특정 지역에서의 분쟁 시 정부군과 반군이 서로 다른 민간군사기업의 도움을 받아 전쟁을 수행할지도 모른다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빚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기업의 도움을 받을지도….
더군다나 장래 시장이 침체될 경우 민간군사기업은 새로운 시장 창출을 위한 비정상적 노력을 기울일 개연성마저 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경향은 비정부 분야에서 이러한 민간군사기업과 계약을 체결하여 군대를 유지하고 있다. 예로 World Wildlife Fund 라는 회사와 CARE같은 민간단체에서 민간보안회사를 고용하여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다.
두 번째 수단은 비용절감이다. 그들은 비용의 과다청구, 업무시간(?) 부풀리기, 질 낮은 군사훈련 등을 통해 이윤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딘코의 해고당한 어떤 이에 의해 폭로되었는데 그는 회사가 육군 헬기의 기술담당에 비적격자들을 배치하여 비용을 부당하게 절감하였다고 말하였다. 이는 소위 효율화와 전문화를 통한 비용절감이라는 민영화의 기본논리의 어두운 측면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은 효율화를 통해서 비용을 절감하고자 하는 동기만큼 질 낮은 서비스 제공을 통한 비용절감의 동기도 강하다.
그리고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권력실세와의 긴밀한 인간관계이다. 코소보 전쟁에서 미군 2만명의 식사, 식수, 세탁, 우편 등을 독점했던 KBR은 7700만 달러 규모의 이라크 유전 진화와 복구 등 재건사업권을 따냈다. 이 회사의 모회사는 헬리버튼이고 딕 체니 부통령은 이 회사의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다.
■ 그밖에 무엇이 문제인가?
확실히 여러 면에서 군 관련 서비스의 민영화는 비용절감적인 측면도 있다. 그 반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이 산업분야에는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관련산업의 놀라운 성장에 비해 관련 제도와 공적영역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통상 민영화의 성공요소에는 공공의 적절한 법적 근거와 입찰제도, 그리고 사후감시를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규제장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이 산업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국제법(활동범위가 국제적이므로)이나 국내규정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더욱이 민간군사기업을 움직이는 데에는 의회의 감시의 눈길을 피할 수 있다. 장래 더욱 비대해질, 그래서 그 자체가 권력이 될지도 모르는 민간군사기업을 통제할 국가기제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러한 감시와 통제의 미비의 결과로 장래 우발적인 지역분쟁 개입의 가능성이 보다 많아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개입 시 발생할 수 있는 고의적인 또는 고의하지 않은 사고는 분쟁을 더욱 격화시킬 수도 있다. 한 예로 1998년 한 미국회사가 구성한 첩보기관에서 일하던 콜롬비아 공군이 실수로 한 마을에 폭탄을 떨어뜨려 17명이 사망하였다. 페루에서는 CIA와 계약한 한 민간업자가 제공한 잘못된 정보에 의해 선교사들이 타고 가던 비행기를 격추시켰다. 이쯤 되면 과연 전투 영역과 비전투 영역이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 결론을 대신하여
전쟁은 인간사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어온 필요악이었다. 전쟁을 통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희망을 잃었다. 반면 다른 이들은 전쟁을 통해 권력을 얻고 막대한 부를 얻었다. 21세기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오늘 날 전쟁은 시류에 맞게 새로운 질적 변환을 겪고 있다. 군대는 합법적인 민영화 회사가 제공하는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군산복합체는 전쟁터를 구식 무기의 소비장소 또는 신무기의 실험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뉴스채널은 매출극대화를 위해 전쟁터를 전자오락 화면으로 조작하고 있다.
인류의 진보를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에게 보다 깔끔해진 전쟁의 이면이 보다 추악해졌다는 사실은 하나의 역설이다. 더불어 효율과 공공영역의 축소만이 올바른 사회개혁이라고 생각하는 신자유주의론자에게도 역설이긴 마찬가지이다.
만에 하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건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일까? 남한? 미국? 무기업체? 아니면 민간군사기업?
관련사이트
전쟁의 비즈니스화에 대한 자료 : http://www.theexperiment.org/articles.php?news_id=1884
전쟁의 비즈니스화에 관한 기사 : http://www.icij.org/dtaweb/icij_bow.asp?Section=Chapter&ChapNum=1
미군의 유틸리티 민영화 과정 : http://www.gdsassociates.com/milpriv/
미군의 유틸리티서비스 민영화 진행현황 : http://www.acq.osd.mil/ie/utilities/status/status1qtrfy02.htm
군대 민영화에 관한 논문 : http://www.cfr.org/public/armstrade/privmil.html
민간군사기업에 관한 기사 : http://www.moscowtimes.ru/stories/2003/07/23/202.html
시에라리온 사태에 관한 기사 : http://www.icij.org/dtaweb/icij_bow.asp?Section=Chapter&ChapNum=2
라이베리아 찰스테일러 대통령에 관한 기사 : http://nwkold.joongang.co.kr/200008/445/nw445014.html
ICI 의 홈페이지 : http://www.icioregon.com/
DynCorp 의 홈페이지 : http://www.dyncorp.com/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참전 군인들이 오는 3월 13일에서부터 16일까지 그들이 저질렀거나 목격한 전쟁범죄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집결할 것이라 한다.
‘전쟁에 반대하는 이라크 참전군인들(Iraq Veterans Against the War)’이라는 단체는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의 성고문이나 해디타 에서의 가족몰살 사건과 같은 범죄는 많은 정치가들이나 군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소수의 벌레 먹은 사과(a few bad apples)”에 의해 저질러지는 단순 사고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범죄들은 “점점 더 많은 피를 부르는 점령(an increasingly bloody occupation)”의 전형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즉 2004년에서부터 2005년까지 이라크에 주둔했던 미육군 하사 Logan Laituri 의 말에 따르면 정책결정자들이 군인들은 국제조약과 같은 규칙을 따를 필요가 없는 무법의 선례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군인들은 예를 들면 길을 걷던 중 비무장의 민간인을 쏘아도 처벌받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전쟁에 반대하는 이라크 참전군인들’은 이번 모임을 ‘겨울 군인(Winter Soldier)’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표현은 미국의 혁명가 Thomas Paine이 1776년 쓴 아래와 같은 문구에서 따왔다고 한다.
“These are the times that try men’s souls. The summer soldier and sunshine patriot will, in this crisis, shrink from the service of his country; but he that stands it now, deserves the love and thanks of man and woman.”
이 모임의 주최 측은 이번 집회에서 사진이나 비디오를 통한 증거도 공개될 것이라고 한다. 증언들은 위성 TV와 ivaw.org 의 스트리밍비디오로도 방영될 것이라고 한다.
보다 자세한 소식은 Common Dreams 의 해당 기사를 보실 것
개인적으로는 영화 감상할 때 롱테이크니 트래킹샷이니 하는 현란한 영상문법보다는 내러티브에 빠져드는 편이다. 영화에서의 영상기법이나 소설에서의 문체는 그 자체로도 감상포인트이긴 하나 역시 매력적인 이야기를 꾸며주는 양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탠리큐브릭의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시각적 요소의 탁월함과 현란함은 그 자체로도 매료될만한 마법을 지니고 있다.
개미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하는 장면이나 참호 속을 시찰하는 장면은 유사한 장면의 연출에 있어 고전으로 남을만한 – 또는 지금 재탕을 해먹어도 여전히 매력적일만한 – 표본으로 남을 교과서적인 사례이다. 물론 지나친 비주얼함이 극의 집중에 방해가 될 만도 하나 적어도 개인적으로 그로 인해 내러티브를 따라가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반전(反戰)영화로 자리매김하였고 프랑스 군인에 대한 – 또는 군대 체제에 대한 – 신랄한 시각으로 말미암아 1975년까지 프랑스에서 상영이 금지되었다는 이 작품은 큐브릭의 영화이력의 이정표로 인정되고 있는 역작이다. 그의 개인사적으로도 의미있는 작품일 수도 있는데 영화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배우 Susanne Christian 은 그의 평생의 반려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최대의 격전지였던 서부전선에서 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던 Broulard 장군은 개인영달을 위해 가능성 없는 개미고지의 점령을 명령하고 Dax 대령은 이 부조리한 상황에서 부하들의 피해를 뻔히 알고도 진격명령을 내린다. 일부 부하들이 진격을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진격은 막대한 피해만 남긴 채 실패한다. 분노한 Broulard 장군은 희생양을 위해 무고한 사병 셋을 군사법정에 회부한다.
전직 변호사였던 Dax 대령은 그들을 변호하지만 법정에는 기소장도 없었고 증거제출도 거부한 채 사병들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그 와중에 Broulard 장군의 용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령이 양심적인 장교의 고백에 의해 밝혀지지만 군부는 사형언도를 취소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내용을 Broulard 장군의 축출에 활용한다. 이러한 더러운 암투에 Dax 대령은 진저리를 치지만 부하사병들이 포로로 잡힌 한 독일소녀의 노래에 나지막한 허밍으로 동참하는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된다.
명백히 잘못된 명령임에도 이에 복종하였으나 이내 부하들을 감싸기 위해 희생양을 자처한 Dax 대령의 캐릭터는 선과 악의 명확한 이분법보다는 고뇌하고 끊임없이 부유하는 나약한 인간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평가들의 호평을 얻었다. 그럼에도 말미부분에 암시되는 새로운 희망은 약간 작위적인 면이 없잖다. 차라리 부하사병들이 독일소녀의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기보다는 그녀를 더 그악스럽게 약 올렸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위와 아래에서 모두 배신당하는 Dax 대령의 모습이 더 드라마틱하지 않을까?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은 끝 모를 지루하고 무의미한 전쟁터의 상징이었다. 20세기 초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이전의 전쟁과 달리 무기의 발달과 참전국의 확대로 인해 대량학살이 동반되었던 그 이전의 어느 전쟁보다도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부전선은 밀고 밀리는 와중에 무의미한 죽음이 난무하던 곳이었다. 후대의 어느 역사가에 따르면 이러한 참혹한 전쟁에 대한 공포심으로 말미암아 연합국이 나치 독일의 준동에 수동적으로 대응하였고, 심지어 그들을 어느 정도 용인하려 – 동맹국을 내주고서라도 – 하였다는 주장까지 있을 정도다.
레마르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반전영화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이 작품은 1차 세계대전을 연합국 참전군인의 눈이 아닌 독일 참전군인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의 할만하다. 대개의 전쟁영화는 승리자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 또한 당연히도 그 배급자도 역시 승전국인 영미권이 주이기에 – 웬만한 웰메이드 전쟁영화조차도 선악이분법의 구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독일의 평범한 시민이자 학생이었다가 참전한 이들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본다는 설정이 우선 이 작품이 전쟁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반석이 되고 있다.
군인들의 시가행진, 시민들의 환호, 참전을 부추기는 애국교수의 열변, 크게 감화되어 입대를 결심하는 학생들의 열기가 극 초반 숨 가쁘게 진행되며 극은 중반으로 돌입한다. 애국주의에 감화되어 도착한 전쟁터는 이념이 설 자리가 없는 삶과 죽음이라는 단순함이 자리 잡고 있는 생지옥이었다. 전우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며 호승심은 공포로 바뀌어 가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친구의 죽음으로 친구가 갖고 있던 신발이 내 차지가 되고, 전우의 죽음이 더 많은 식량배급으로 이어진다는 것에 만족하는 이성마비의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결국 살아남은 이들에게 유일한 위안거리는 잠깐의 휴식과 전우들뿐이다. 잠깐의 휴가동안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머릿속으로만 전쟁을 하는 국수주의자들은 멋대로 승리를 예견한다. 결국 역설적이게도 군인들의 휴식처는 전쟁터가 되고만 것이다.
선구자적으로 사용한 크레인샷을 통해 비참한 전쟁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 주인공이 애국교수가 혼쭐이 날만큼 전쟁의 참혹함을 학생들에게 설명해주는 장면, 그리고 나비를 좇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등이 이 영화의 명장면이다.
“전쟁과 테러는 자본에게 위험(Risk)인가?”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군산복합체나 민간군사기업에만 국한시켜 생각해본다면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No”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전쟁은 위험이라기보다는 ”기회(opportunity)“ 에 가까울 것이다. 그들에게 전쟁은 오히려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창출되어야 하는 ”시장(market)” 인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일상적이고 평화적인(!) 사업 분야에 주력하는 다른 기업들에게는 어떠할까? 예를 들어 비즈니스컨설팅 회사라면? 비즈니스 자문과 기술체제 통합이 주특기인 베어링포인트 BearingPoint – 2001년 KPMG그룹에서 사명(社名)을 베어링포인트로 변경한 – 라면 확실히 전쟁의 수혜기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후 복구 사업은 반드시 건설과 같은 눈에 보이는 사업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1990년대에 베어링포인트는 미국국제개발처(USAID)와 계약을 맺고 코소보, 세르비아 등지에서 전후 복구 사업을 진행시켰는데 이들이 수행한 작업은 전쟁으로 인해 붕괴된 금융 시스템을 포함한 경제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것 등이었다. 그리고 이 작업이 철저히 미국식 자본주의 시스템의 이식에 주목적이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베어링포인트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삼아 911 테러 이후 한층 “전쟁 사업” 분야를 강화해나갔다. 이들은 911 테러 이후 국가안보에 관련된 안보 행정 컨설팅을 주도하는가 하면 펜실베이니아 주의 범죄 소탕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는 지난 해 이맘 때 석연치 않은 입찰절차에 의해 이라크의 경제재건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사업자로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2003년 7월 미국국제개발처(USAID)는 이라크의 총체적인 경제재건 프로그램 사업에 입찰을 한 10개의 기업 중에서 베어링포인트를 최종사업자로 선정했는데 선금은 약 9백만 달러에 달하며 최종계약은 거의 7천9백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미국의 희생양인 아프카니스탄에서는 사정이 어떠할까? 역시 베어링포인트가 사업을 수주했는데 총계약 금액은 6천4백만 달러에 이른다. 정말 대단한 기업이 아닐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의 최종적인 목적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이라크의 경제 전반을 재생시킨다는 데에 있는데 다음과 같은 좀 더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보면 다분히 이라크의 주권을 침해하는 내용이며, 그 경제개혁이라는 것이 이라크 인민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라크의 새로운 주인 미국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라크 예산 수립
– 경제 관련 법안 작성
– 세금징수 계획 세팅
– 무역과 관세 법률 수립
– 국영기업의 민영화 혹은 기업 내 이라크 지분 매각
– 은행 재개장 및 소규모 금융을 통한 민간부문 활성화
– 새로운 화폐 발행 및 환율 책정 등
내용을 보면 한마디로 이라크 현 정부는 그야말로 식물정부임을 알 수 있다. 마땅히 새로운 정부가 수행해야할 내용을 일개 기업이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전 국가의 민영화가 따로 없다. 우려스러운 점은 사업자 선정부터 이들이 수행하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자본주의체제의 최고봉이라는 이른바 비즈니스컨설팅 기업으로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도덕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 예로 지난 2001년 국가안보(homeland security) 사업의 수주를 위해 6만 달러를 들여 로비를 시도했고, 2002년에는 관련된 정보기술의 판매를 위해 42만 달러를 들여 로비를 시도했다. 당시 이 회사의 부사장인 리차드 로버츠 Richard Roberts 가 증언하기를 자신은 BearignPoint가 멤버인 미국정보기술연합(ITAA)의 입장을 위해 로비에 주력했다고 밝혔는데 ITAA는 정부에 각종 법안의 초안을 작성해주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베어링포인트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온존을 위한 최첨단(?) 비즈니스컨설팅을 수행하는 기업임에도 그 어느 부패한 기업 못지않은 정경유착을 통해 사업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선진(?) 자본주의를 자신들의 정부가 침략한 국가에 이식시키고 있다.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경제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썩을 대로 썩은 미국의 컨설팅 기업이 만들어놓은 경제재건 프로그램은 얼마나 현지 정부와 현지 주민들에게 혜택을 안겨줄 것인가? 이들 나라의 은행 재건 프로그램에 Bank of America, Citigroup, J.P. Morgan 과 같은 금융그룹들이 하도계약자로 활동한다는 사실은 상황이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국영기업과 기업 내 이라크 지분을 민영화한다 함은 애초부터 미국자본에 의한 이라크 강탈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베어링포인트의 경제 프로그램은 “강도질”에 다름 아니다.
이전의 몇 차례의 전쟁,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 사회주의 블록의 존재로 인해 미국은 그나마 전쟁당사국들의 경제재건에 있어 일정 정도의 자율성 – 물론 이러한 상대적 자율성도 다분히 종속적이었다고 비판받고 있지만 – 을 보장해주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적이 사라진 지금 미국의 전쟁 프로그램은 한마디로 파괴와 재건 양 쪽 모두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진행시키겠다는 “올인”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쯤에서 보면 침략전쟁의 파병을 통해 떡고물이라도 주워 먹겠다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사고방식은 마치 동물세계의 야비한 청소부 하이에나를 연상시키고 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살점이라도 있으면 다행일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미국의 한 유력 언론이 미국의 현부통령 딕 체니 Dick Cheney 와 그가 CEO로 있었던 헬리버튼 Halliburton 과의 더러운 유착관계를 다시 한번 폭로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Time 지는 6월 1일자 인터넷 판에 “The Master Builder”라는 기사를 올렸는데 이 기사에서는 자본주의 기업이 어떻게 전쟁과 정치를 그들의 비즈니스에 효과적으로 이용하는지에 대해 상술하고 있다.
핼리버튼이 이라크의 재건에 관련되어 현재까지 미국정부와 맺은 계약금액은 미국 기업 중에서도 최고금액으로 약 170억 달러에 달한다(이라크 과도정부의 2004년 예산은 130억 달러이다). 그리고 그러한 막대한 금액의 계약은 어떠한 경쟁입찰도 없는 수의계약으로 체결되었다. 이에 민주당의 거센 반대가 있었고 경쟁이 도입되었지만 또 핼리버튼이 계약당사자가 되었다.
한편 그들이 이라크에서 수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군인들을 위한 식사공급에서부터 석유수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과다청구와 빈약한 운영관리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미육군은 이라크에서 미군을 위해 식당을 운영하던 핼리버튼의 계열사 Kellogg Brown & Root(KBR)에 지급하여야 할 1억6천만 달러의 지불을 유보했는데 그 이유는 계산에 착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외에도 핼리버튼은 이라크 현지 기업으로의 하도 과정에서의 리베이트 요구, 각종 불공정 계약 등으로 내부인의 양심선언, 쿠웨이트 정부의 조사 등 끊임없는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다.
민주당 상원의원 헨리 왁스맨 Henry Waxman 은 이러한 상황을 “낭비, 사기, 오용의 조리법(a recipe for waste, fraud and abuse)” 이라고 칭하고 미국의 납세자들에게는 더할나위없이 끔찍한 상황이라고 규정지었다. 결국 단순히 생각해봐도 수의계약을 비롯한 정경유착의 의혹은 과다청구 혹은 계산착오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과다청구분의 상당 부분은 그들의 뒤를 돌봐주는 정치 마피아들의 주머니에 들어갈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심증은 상당한데 딕 체니와의 유착관계에 대한 물증이 없다고? 물증도 있다. 일단 공식적으로 딕 체니는 핼리버튼 으로부터 지난해 미지급 보수라는 명목으로 약 17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 Time 지는 딕 체니와 헬리버튼의 관계를 증명하는 이메일을 최근 입수했다. 이 이메일은 2003년 3월5일 미 육군 공병대 간부가 더글러스 페이스 국방차관에게 보낸 것으로 당시 이라크 공사계약 감독 책임을 맡은 페이스 차관은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내일 백악관에 보고하기로 하고 승인했으며, 부통령실이 계약을 주선한 이래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으로 본다”고 적고 있다. 사흘 뒤 핼리버튼이 계약을 따냈다. 물론 부통령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부인과 딴청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너무나 뻔한 이러한 구역질나는 비리와 유착을 단순히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버그 정도로 봐야 할까? 우리가 닮고 싶어하는 미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의 실수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언뜻 일탈행위로 보이는 정경유착과 전쟁을 통한 매출창출의 결합은 실은 제국주의적 속성에 근거한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의 본성이다. 국제기구를 통해 개발도상국에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강제하는 합법적인(!) 국제적 수탈과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만약 올해 선거에서 존 케리가 부시를 누른다면 이라크 재건의 주계약자가 다른 회사로 바뀔 뿐 이라크의 진정한 독립에는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도 없을 것이다.
전쟁은 어떤 이들에게는 악몽이자 지옥이다. 많은 이라크 민중들은 끔찍한 죽음과 미군의 가혹행위를 경험해야 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또한 그 전쟁터의 환경파괴는 해당지역의 자연과 인간에게 씻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준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전쟁은 비즈니스이자 전쟁터는 사업장이다. 이 모든 것이 죽음과 고통이 돈으로 환전 가능한 21세기 형 자본주의적 전쟁의 최신버전이다. 전쟁은 진작에 단순한 영토분쟁이나 자원수탈의 수단을 넘어섰다. 전쟁은 침략국의 총체적인 산업정책의 정책수단이 되었다.
Published on Wednesday, September 3, 2003 by the Charleston Gazette
Private Military Firms – New Element in War
의회가 오늘 다시 소집되었을 때 그들은 부시 행정부가 민간군사기업에게 얼마나 많은 납세자의 돈을 지불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가장 큰 수혜자는 Halliburton이다. 이 회사의 수뇌는 2000년 George W. Bush와 함께 부통령에 도전하기 위해 사임했던 Dick Cheney였다.
Halliburton은 수의계약으로 이라크에서의 용역을 위해 17억 달러 짜리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The Washington Post에 따르면 곧 수십 억 달러의 계약을 계속 체결할 예정이다.
Halliburton과 그 계열사인 Brown and Root는 아프카니스탄에서의 미군의 작전에서 1억8천3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문제는 납세자의 달러를 챙겨 부자가 되는 민간군사기업에 국한된 게 아니다. 민간군사기업의 이용은 – 이들 중 몇몇은 실제 전쟁 임무 수행을 위한 용병을 제공한다 – 더 중요한 물음을 제기한다.
그들의 일(전쟁의 대리수행 : 역자주)은 누구의 책임인가? 미국인가 아니면 그들의 민간 고용주들인가?
민간군사기업들은 그들의 행위를 누구에게 설명하여야 하는가? 의회와 미국의 국민들에게 설명하는가 아니면 단순히 그들의 주주들에게 대답만 하면 되는가?
진정한 의회의 감시가 존재하는가?
P.W. Singer의 개척자적인 새 책 ‘Corporate Warriors: The Rise of the Privatized Military Industry,’에서 이러한 질문들을 제기하고 있다. Singer는 워싱턴에 위치한 부르킹스 연구소의 학자이다.
Brown and Root와 같은 몇몇 민간군사기업은 무기수송, 식량준비, 우편수송과 같은 군사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Military Professional Resources Inc. 와 같은 기업들은 작전 수행에 관한 직접적인 어드바이스와 기술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Executive Outcomes와 같은 이들은 실제 전투에 관여한다. 남아프리카의 전직 군인들을 이용하여 Executive Outcomes는 앙골라의 더러운 전쟁과 같은 몇몇 분쟁지역에서 양측 모두를 위해 싸운다. 몇몇 군사기업들은 분쟁을 부추키기도 한다.
걸프 전쟁 동안 그 지역의 100명의 미국인 중 한 명이 민간군사기업을 위해 일했다. 오늘날 이라크에서 10명의 미국인 중 한 명이 민간군사기업을 위해 일하고 있다.
민간군사기업은 그들의 고용주가 충분한 현금이나 발굴되지 않는 광산 따위를 가지고 있다면 어느 편에서든 어떤 곳에서든 일을 한다. 민간군사기업은 콜롬비아, 콩고, 보스니아, 수단, 쿠웨이트, 스리랑카, 뉴기니아,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 그리고 적도부근의 아프리카에서 일거리를 찾아왔다.
어떤 군사기업은 U.N.과 같은 인도주의 그룹이나 다국적기업의 안전을 위해 일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진한 감시는 문제를 불어올 수 있다. 발칸에서의 분쟁 시 그들 대부분이 미군의 군사전문가인 DynCorp의 민간고용인들은 성범죄, 매춘, 그리고 불법적인 무기거래에 관련되었었다.
민간군사기업의 빠른 성장은 또 다른 골치 아픈 문제를 야기한다.
“예측 가능한 힘의 균형과 전쟁억지력 관계는 오늘날 매우 불안해졌다.” 라고 Singer는 쓰고 있다. “그러한 변화로 인해 누가 정확히 ‘좋은 녀석들’인지 알아채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Singer는 “정부가 지난 십 몇 년간 자신들의 군사 서비스를 민영화한 석연치 않고 위험한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어떤 것이라도 아웃소싱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떠한 것이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Singer는 신문에서 자신의 책을 끝낸 6월 이후에도 이러한 걱정은 더더욱 늘어갔다고 이야기했다.
부시 행정부는 전쟁 이후의 이라크를 위한 군사, 준군사, 그리고 경찰 조직을 훈련시키기 위해 세 개의 군사기업을 고용하였다. 위험의 증가와 보험비용의 증가로 인해 몇몇 민간고용인들은 그들의 임무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미국 군인이 보다 혹되게 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에 그들이 임무지를 이탈하면 군인들은 군법회의에 회부된다. 민간계약자들은 그렇지 않다.
부시 행정부는 또한 라이베리아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200여명의 해병과 네이비실을 파견했다. 그러나 비밀리에 백악관은 그 문제많은 나라에서 일할 민간군사기업과 선수금 1천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
의회는 이 폭발적인 산업분야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 Peter Singer는 증언을 위한 첫 증인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