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화와 증권화, 자본주의에게 약일까 독일까?

베어스턴스,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에서 일하다가, 이제는 월스트리트의 악행을 고발하는 작가로 전업한 노미 프린스(Nomi Prins)의 신작 중 일부다.

이제는 없어진 투자은행 드렉셀번햄램버트에서 1987년 최초의 CDO를 만든 이는 바로 마이클 밀켄이다. 이 CDO는 기본적으로 수많은 정크본드들로 구성된 증권의 일종이다. 1990년대 후반 같은 증권이 하이일드(정크본드의 멋진 이름)와 이머징마켓(남아메리카, 아시아, 동유럽)의 채권으로 채워 넣어졌다. 2003년에 채워 넣어진 것은 서브프라임 대출이었다. [중략] 나의 국제 투자은행으로의 업종변경은 1993년 런던의 베어스턴스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유럽의 분석그룹을 이끌었다. [중략] 1996년부터 유럽의 회사들에게 그 새로운 CDO들을 소개하는 것이 나의 업무의 일부였다.
It was Michael Milken who constructed the first CDO in 1987 at the now-extinct investment bank Drexel Burnham Lambert. This CDO was basically a security made up of a bunch of junk bonds. In the late 1990s, the same security was stuffed with high-yield(a nice name for junk bonds) and emerging-market(Latin American, Pan-Asian, and Eastern European) bonds. In 2003, the stuffing was subprime loans. [중략] My foray into international investment banking began with Bear Stearns in 1993 in London. I ran the European analytics group. [중략] From 1996 on, it was part of my job to introduce those new CDOs to European companies. [It Takes A Pillage, Nomi Prins, Wiley, September 2009, pp 11~12]

1980년대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에서 가장 유명한 이들을 꼽으라면 살로먼브라더스(Salomon Brothers)에서 모기지 채권을 “증권화(securitization)”시킨 루이스 라니에리(Lewis S. Ranieri), 그리고 위에 언급된 정크본드의 황제 마이클 밀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월가의 머니게임의 뒷면을 다룬 라이어스포커(Liar’s Poker)에 따르면 밀켄은 “부하들을 돈에 빠져 죽을 지경으로 만들”고는 나지막이 행복하냐고 묻곤 했다고 한다. 책의 삽화에도 그려져 있지만 이는 마치 사람을 돈으로 홀리는 악마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라니에리와 밀켄은 독점적인 특허권도 없는 금융가에서 부하들을 돈에 빠져 죽게 만들 정도로 돈을 벌어들였을까? 대답은 무지 간단하다. 위험을 감수하고 – 나중엔 이 위험마저 팔아넘기지만 – 채권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었다. 모기지 채권과 정크본드(투자부적격 채권)은 모두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고위험 채권이었다. 모기지는 지나치게 장기고 정크본드는 말 그대로 쓰레기채권이었다.(주1) 이런 쓰레기들을 재포장하여 파는 재주를 가진 이들이 바로 라니에리와 밀켄이었던 것이다.

여러 채권들을 ‘합쳐서(pooling) 재포장’ 또는 인용문의 ‘채워 넣기(stuffing)’ 작업을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밀켄이 창조했다는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 부채담보부채권), 비슷한 형식이지만 기초자산으로 모기지 채권을 담은 CMO(Collateralized Mortgage Obligation ; 모기지담보부채권)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크본드가 되었든, 이머징마켓 채권이 되었든, 모기지 채권이 되었든 여러 상품성 없는 채권이 금테 두른 채권으로 둔갑하였던 것이다.

CMO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수억 달러 단위의 일반 모기지 채권을 끌어 모아 그것을 하나의 신탁펀드에 담아야 한다. 신탁펀드에 투자한 사람들에게는 일정한 이자(금리)를 제공하는데, 이때 신탁 투자자들은 자신의 투자를 증명하는 증서를 받는다. 이 증서가 바로 CMO다. 그런데 CMO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3억 달러짜리 CMO가 있다고 하자. 이 CMO는 1억 달러씩 세 조각으로 나뉘는데, 각 조각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일정한 이자를 받지만 그 조건이 다르다. 첫 번째 1억 달러 조각에 투자한 사람은 신탁펀드에 들어있는 3억 달러 전체 모기지 채권으로부터 원금이 중도에 상환되면 이를 아무 조건 없이 받아야 한다. 3억 달러 중, 우선 1억 달러 어치의 모기지 채권이 중도 상환될 때까지 나머지 두 조각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약속된 이자를 받게 된다. 다시 말해 첫 번째 1억 달러 조각이 먼저 중도 상환이라는 매를 맞을 때 두 번째, 세 번째 조각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안전하게 이자를 받는 것이다. [중략] 이렇게 되면 첫 번째 조각의 모기지 채권은 만기가 상대적으로 단축되지만, 세 번째 조각의 모기지 채권은 일반 모기지 채권보다 만기가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중략] 이제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하는 모기지 채권의 만기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 중도 상환이라는 돌이 날아들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지 않고도 모기지 채권에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CMO의 세 번째 조각 정도는 연기금에서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게 되자, 투자자들의 모기지 채권 수요가 극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중략] 1983년, 첫 번째 CMO가 발행됐을 때 미국의 연기금 펀드들은 6천 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연기금은 모기지 시장에 전혀 투자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1986년 중반까지 연기금들은 CMO에 3백억 달러를 투자했고 투자 증가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라이어스포커, 마이클 루이스 지음, 정명수 옮김, 위즈덤하우스, 2006년, pp232~234]

위 설명은 CMO의 구조화 작업을 잘 설명하고 있는 글이다. 요컨대 일반 채권을 세 단계로 나누어 단기에서 장기 채권까지 각각의 채권 수요자들의 입맛에 맞게 기초자산을 재정비하는 과정이 설명되어 있다. 구조화 금융의 특성상 이러한 작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즉, 아래와 같이 일반회사의 자본 및 대출의 구조로 채권을 분류하여 리스크를 체계화하고 이에 따른 수익률을 차등화 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구조화 금융을 통해 순이에게 1년 동안 8%, 철이에게 3년 동안 10%에 빌려준 돈을 함께 묶어 무차별적으로 묶어 똘이에게 반년짜리 5% 채권, 영이에게 3년짜리 8%채권을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 노미 프린스가 유럽에 가서 유럽의 회사들에게 – 아마도 미국에 기초자산이 있을 – 채권을 마치 양판점에서 공산품을 팔듯이 표준화되고 – 신용평가기관에 의해 – 공인인증 마크가 붙은 양산(量産)된 채권을 팔러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증권화, 구조화가 아니었다면 유럽의 회사들은 미국의 미시간 주에서 집사러 돈을 빌린 듣보잡 마이클의 채무를 떠안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노르웨이 나르빅(Narvik)市도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조화와 증권화, 자본주의에게 약일까 독일까?

(주1) 1980년대 팝문화와 어우러진 로맨틱코미디 ‘웨딩싱어’에서는 여자 주인공 줄리아(드루 배리모어 분)가 남자 주인공 로비 하트(아담 샌들러 분)에게 자신의 약혼자를 소개하면서 ‘Junk bond trader’라고 소개하자 약혼자가 기분나빠하면서 ‘high-yield bond trader’라고 정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4 thoughts on “구조화와 증권화, 자본주의에게 약일까 독일까?

  1. 박계성

    약은 약인데 마약이었죠. 덕분에 부동산경기가 확살아나서… 사람으로 치자면 천천히 자라야 하는 키가 훅커서 기흉에 걸린꼴이 되버렸죠… 덕분에 여러 나라들이 모여서 죽네사네…하다가 또 금리낮춰서 진통제 효과좀 보고 있는데 어찌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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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여담이지만 금통위에 재정부차관 참석한 사진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들더군요. 칭찬해줘야 할지 꾸짖어야 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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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aremighty

    junk bond가 상품성 없는 채권이라는 시각에 특히나 요새는 개인적으로 좀 반대입니다. 세상에서 가격만 싸다면 상품성이 없는 채권이라는 건 없어요. 단지 “비싼” 채권이 있을 뿐이죠. 개인적으로 밀켄은 충실하게 이 원칙을 적용시켜서 “risk가 높은 걸 비싸게라도 팔 수 있는 시장”을 창조했을 뿐이지, 싸게 사서 비싸게 넘긴게 밀켄의 성공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는 금융기관이나 투자자가 아닌 파는 기업쪽 입장에서도 밀켄의 공이 정말 크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Risk-return이 적절히 유지되는 한,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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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상품성 없는 채권”은 절대 아니죠.(세상에 채권 중에 상품성 없는 것이 있을까요?^^) 밀켄이나 라니에리는 정크본드와 모기지가 시장에서 유통되기 어려운 특성을 간파하고 수요자의 입맛에 맞게 잘 포장해준 능력이 뛰어난거죠. 그 능력에 대해 그들은 프리미엄을 붙인 것이고요. 우리나라의 최근 예를 들어보자면 풋백옵션 붙은 대우건설주식이 정크본드라 할 수 있겠죠. 산업은행이 PEF에서 매입하겠다며 1만8천원을 제시했다는데 – 풋백옵션은 3만1천5백원 – 만약 1만8천원보다 더 높은 가격에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이 있었다면 산업은행이 큰 소리치고 나머지 은행들이 볼멘 소리를 할 이유는 없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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