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대안경제

“기업이 더 적은 인력을 고용하기 위해 노력했던 적이 일찍이 없었다”

요즘만큼 미국의 기업이 더 적은 인력을 고용하기 위해 노력했던 적이 일찍이 없었다. 의류업 일자리를 중국으로 옮기고 콜센터 운영을 인도로 넘기던 아웃소싱의 물결은 이제 거의 모든 업계 차원에서 미국 내의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 같다. [중략] 계약 모델(contractor model)이 너무 일반적이어서 포춘誌에서 10년 중 7년 동안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꼽힌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에서도 대략 정규직에 준하는 정도의 외주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다고 이 이슈에 대해 잘 아는 이가 전했다. 대략 7만의 TVC가 – 임시직(temps), 판매자(vendors), 계약자(contractors)의 줄임말 – 구글의 자동운전 승용차를 시험하고, 법률서류를 검토하고, 생산품을 더 사용하기 쉽게 만들고, 마아케팅과 데이터 프로젝트들을 관리하고, 또 다른 많은 일들을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근무 중에 빨간 배지를 착용하고 알파벳 직원들은 하얀 것을 착용한다. [중략] 얼마나 많은 미국의 노동자가 계약자로 일하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 직업군이 정부부처에서 집계하는 직업군에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대략 국가 노동력의 3~14%까지가 또는 2천만 명의 인구가 이 직종에 종사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중략] 궁극적으로 몇몇 대기업들은 가장 핵심적인 고용 인력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지치기 당할 수 있다. 컨설팅 회사인 액센추어는 10년 내에 세계에서 가장 큰 2천 개의 회사 중 한 곳은 “중역실 이외에는 풀타임 고용인이 아무도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작년에 예측했다.[The End of Employees]1

기업은 확실히 20세기 최대의 발명품이다. 물론 그보다 훨씬 전에도 오늘날 우리가 기업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런 기업이 지구 단위로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된 것은 20세기가 되어서부터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깨달은 것은 분업이 생산성을 높이고 이 과정이 한데 모이면 한층 효율적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매뉴팩처가 등장했고, 소규모의 매뉴팩처는 점차 대공장으로 흡수된다. 칼 맑스는 이러한 대공장 기업이 자본주의를 융성하게 만드는 장소가 되는 동시에 노동자들이 조직화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업 스스로와 자본주의를 패퇴시키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21세기 들어 이제 기업이 기업 스스로를 해체시키려 하고 있다. 액센추어의 예언처럼 중역실 이외의 모든 고용이 사라진다면, 이는 기업이 변신 프라모델처럼 여러 부속품이 결합됐다가 필요에 따라 또 다른 무언가로 변신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의미고, 그것을 우리가 알던 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조짐은 이전 세기에도 있었다. 기업은 주식시장과 LBO를 통해 소유주와 자본가의 개념을 해체하는가 하면, 아웃소싱을 통해 노동력의 형태를 다양화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이제는 전 업종, 전 업무에서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아웃소싱과 다르다 하겠다.


자동차인 줄 알았더니 로봇(출처 : 영토이)

앞서 말했듯이 20세기형 기업은 비교적 동질의 노동력을 지닌 노동자를 한데 모아 분업화된 공정에 참여시킴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20세기형 기업은 “또 하나의 가족” 혹은 유사 군대조직과 비슷한 규율과 가부장적 질서에 익숙하다. 이런 질서는 심지어 그 기업에서 태어난 반항아 노동조합에서도 유지됐다. 그런데 이제 社內 노동력은 더 이상 가족도 군대도 아니다. 운전사는 빨간 배지를 단 A 파견회사 소속이고 프로그래머는 노란 배지를 단 B 파견회사 소속이다. 20세기 자본주의가 소규모 매뉴팩처를 합병 또는 해체시키는 과정을 겪었다면 21세기 자본주의는 이를 다시 해체시키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과정은 20세기 이전의 그것처럼 뭔가 목가적인 뉘앙스의 자영업자의 형성과정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개별 부속품을 담당하는 파견회사는 파견회사대로 하나의 거대화된 새로운 형태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다. 1970년대 SF영화인 Rollerball에서는 기업의 독점이 완성되어 회사명이 그저 “기업(Corporation)”이라 불릴 따름이라는 설정인데, 파견회사 역시 비서 파견이 전문인 거대기업은 그저 “비서 회사”로 불릴 따름인 세상이 21세기형 기업의 해체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과정은 궁극적으로 자동화를 통한 인간 노동의 배제 자체를2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을 띄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균(菌) 본위제

균 본위제를 지키며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문득 균들이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그들은 부패하지 않는 경제가 활개치는 이 세상을 어떻게 볼 지 궁금해지곤 한다. [중략] 그런데 부패하지 않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공황도 거품붕괴도 허용하지 않는다.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등의 재정출동이나 제로 금리정책과 양적완화 같은 금융정책을 통해 돈이라는 이름의 비료를 대량으로 살포하는 수법을 써서 한없이 경제를 살찌우려고만 한다.[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더숲, 2014년, p147]

‘본위제(本位制, standard)’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그리 정교한 것은 아니지만 그 발상이 재미있어서 인용해보았다. 젊은 시절 “블랙기업”에 가까운 식품회사에 근무하다가 뜻한 바가 있어 제빵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권유로 칼 맑스의 자본론을 읽고 난 후 자신의 일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게 된 특이한 저자의 이력이 잘 드러나는 아이디어다.

천연 효모를 써서 좋은 빵을 만들겠다는 집념을 가졌던 저자는 균(菌)에 대해 많은 연구와 고민을 거듭하였고, 그 결과 ‘균(菌) 본위제’ – 굳이 보다 정확한 표현을 찾자면 배금주의에 대항하는 배균주의 정도가 아닐까 싶다 – 라는 신선한 가치관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균의 작용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기물을 부패 혹은 발효란 이름으로 분해한다.

그렇다면 정말 경제 시스템에서 금본위제 대신 균본위제를 채택하면 어떻게 될까? 균은 유한하다. 더구나 유기물을 분해시킨다. 변하지 않는 화학적 특징 덕분에 교환가치로 인정받는 금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균을 화폐로 사용하면 필연적으로 경제는 부패, 즉 거품이 항상적으로 꺼지게 될 것이다. 거품이 생길래야 생길 수 없는 경제 시스템이 될 것이다.

항상 부패가 작동하는 경제의 결과는 비교적 명확하다. 금본위제에서 제공되는 신용이라는 촉매를 활용하지 않는 경제 시스템은 문명의 혜택에서 소외된 여러 소수민족의 부락경제 정도로밖에 발전하지 못한다. 또는 아예 대안경제의 목표를 가지고 가공의 신용창출을 허락하지 않는 대안화폐 공동체와 같은 실험적 공간에서 그런 경제를 찾아 볼 수 있다.

사견으로 여러 대안경제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범위에서 성공적으로 안착되지 않는 한은, 경제의 발전에서 거품의 생성은 일종의 필요악이다. 대표적인 거품이 대출이다. 오늘날 기업활동에서 자동차 구입에 이르기까지 소위 “레버리지”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그 레버리지가 없었다면 세계 경제규모는 지금의 10분의 1도 안 됐을 것이다.

다만 저자도 주장하듯 경제를 부패시키지 않고 계속 살찌우려 하는 현재상황이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부패하지 않는 빵을 상상할 수 없듯이 한없이 부풀어만 가는 경제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번 읽은 ‘스트레스 테스트’의 저자 티모시 가이트너는 분명 경제의 구원투수였지만 또한 부패하지 않는 방부제 그득한 빵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알파고가 경제시스템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회?

신용평가업계도 위기감이 감돈다. 알파고, 아니 ‘알파크레딧’이라는 이름의 AI가 신용평가 영역을 침범하는 시나리오는 충분히 현실적이다. “AI의 재무 분석 결과 00사 부도율 7.25%, 고로 신용등급은 BB+”와 같은 계량적 판단은 당장이라도 가능해 보인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고 빠르게. 사실 신용평가가 1200대의 슈퍼컴퓨터가 필요할 정도의 계산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신용평가사들은 분명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것이다. 한 증권사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AI가 신용평가업계에 도입될 경우 애널리스트 상당수가 보따리를 쌀 수도 있다”고 했다.[알파고가 신용등급을 매긴다면]

알파고가 인간들에게 – 그 인간들 중 거의 대부분은 한국인이겠지만 – 충격을 안겨준 지 꽤 지났지만 아직도 알파고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회자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경제지에서는 이미 주기적으로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에 관한 기사를 내고 있는 것 같다. 바둑이 꼭 경제와 관련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바둑이라는 작은 세계에서의 알파고의 가치판단과 정책결정이 경제 시스템이라는 더 큰 바둑판에 펼쳐질 것이라는 예감에 따른 보도내용이 많다.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켄쇼라는 애널리스트를 대체할 소프트웨어 이야기도 있고 인용한 기사와 같은 호사가적 가십성 기사도 있다.

인용기사처럼 인공지능이 신용평가에 도입된다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신용위기의 한 원인이기도 했던 국제신용평가사들의 등급평가에 관한 부조리는 크게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공무원이나 국제금융기구에 근무하는 엄격한 관리자에 의해 관리되는 인공지능 평가 시스템은 고객유치를 위한 등급장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선제적으로 등급조정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에 따라 투자자는 발 빠른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프로그램 매매처럼 냉정한 신용평가로 등급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SF영화나 스릴러가 인공지능을 소재로 만들어졌는데, 마이클 케인 주연의 Billion Dollar Brain 역시 그런 영화 중 하나다. 공산주의를 혐오하는 한 미국 자본가가 소련을 침공한다는, 비틀린 냉소적 정치 스릴러인 이 작품에서 소련 침공 계획의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바로 인공지능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냉정한 판단으로 명령을 내리기에 때로 브레인은 아군인줄 알았던 이까지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극중 한 배신자가 컴퓨터에 잘못된 명령을 몰래 입력하여 의사결정을 바꾸는데, 결국 인공지능의 태생적 한계를 잘 말해주는 장면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순환론이기는 하다. 인간의 결정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기계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기로 했지만, 그 기계는 인간이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면 궁극적인 해결책은 기계가 기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제도”나 “국가”라는 것도 어느 면에서는 인공물로 때로 매몰차 보일 정도로 우리의 행동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기계적인 판단을 내리는 소프트웨어랄 수 있다. 신용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기계적이고 냉정해야 할 신용평가 분석가가 실적에 시달리고 친분에 판단이 좌우된다면, 기계가 의사결정과정의 상당부분을 대체한다고 해도 변명거리가 없을 것이다.

한편 신용 시스템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된다면 우리 경제 시스템의 큰 부분 하나가 인공지능에 맡겨지는 셈이다. 이런 고급 의사결정에서 인공지능의 효율성이 검증된다면 장래에 보다 고차원적으로 전반적인 사회의 경제기획에 인공지능을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개인의 한계효용을 빅데이터 형태로 수집하여 이를 분석하고 파레토 효율이 도달하는 시점에서의 상품생산량을 결정해주는 과정에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SF적 미래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미래는 바로 신고전파의 한계효용이론이 적용된 계획경제 시스템이란 점이다.

시장경제 이론과 계획경제 이론의 조화로운 만남일지도?

자본주의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이코노미스트의 칼럼에 대해

그러나 당신이 만약 자본주의를 시장경제에서의 개인의 상호작용으로 정의한다면, 이 시스템은 후퇴하지 않고 전진하고 있다. Airbnb와 Etsy와 같은 신경제 웹사이트들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휴가기간 동안 집을 빌려주거나 예술품과 공예품을 파는 등 새로운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 과거에 집주인들은 임차인을 찾는데, 취미생활자는 구매자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집합적인 웹사이트들에서는 이런 일들이 훨씬 쉬워졌다.[Advancing, not retreating]

분명히 Airbnb와 Etsy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거나 발전시키면서 사회적 효용을 증가시킨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근거로 ‘자본주의가 전진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는 글쓴이가 “자본주의 = 시장경제에서의 개인의 상호작용” 등식 자체가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사이트에서도 몇 번 살펴보았듯이 시장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에서만 존재한 것이 아니며, 심지어 구(舊)사회주의 블록 일부에서는 이른바 “시장 사회주의” 실험을 시도한 나라들도 있을 정도로 시장이란 제도는 다양한 경제체제에서 존재가능하다.1 심지어 어떤 이는 계획경제는 자본주의의 특징이며 칼 맑스가 지향한 것은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의 시장경제라는 뉘앙스의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이도 있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맑스는 ‘위로부터의’ 계획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특성이라고 보았고, 그 ‘전제적’ 성격을 비판했다. 맑스는 자본주의의 전제적인 계획생산에 대해 “자유로운 생산사들의 연합”(‘코뮌주의’)을 대치시켰고, 후자로부터 생산의 진정한 재조직과 ‘아래로부터의 참여계획’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 맑스의 코뮈니즘은 전제적 계획에 따른 공동생산의 의미를 지닌 ‘공산주의(共産主義, 국가자본주의)’와는 무관하다.[맑스적 코뮌주의의 생태문화사회적 성격]

몇 번 주장하였듯이 자본주의 체제의 중추기능을 하는 기업은 거의 대부분 계획경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위 인용문의 글쓴이가 이야기하듯 ‘전제적’ 성격이 상당히 강하다.(이번 엘리엇 사태나 롯데 사태에서의 행태를 보라) 시장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소유의 집중이나 – 또는 그 소유보다도 더 왜곡된 권력 집중이 – 진정한 시장경제의 발전을 방해한다고 보는 입장이었고, 인용문의 글쓴이가 주장하는 ‘코뮌주의’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스트가 “자본주의 발전”의 사례로 든 애어비앤비는 적어도 현재까지의 모습으로 봐서는 대기업보다 덜 위계적이고 수혜자가 폭넓다는 측면에서 덜 ‘전제적’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의 초기형태일지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국면에서 등장한 “국익”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신장섭 교수는 국민연금이 수익률과 국익을 고려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삼성물산 주가가 합병발표 뒤 15~20% 올랐다”며 “국민연금은 투자기관이기 때문에 필요한 수익률을 내야하고 국민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국익을 지키는 범위에서 투자해야 한다” [중략] “삼성그룹은 잘한 점도 있고 잘못한 점도 있지만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한국경제에 어떤 공이 있는지 모르겠다”[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국민연금 어느 편에 서야 하나]

KIC 고위 관계자는 8일 “지난 2010년 10월 투자 수익률 제고 차원에서 엘리엇 펀드에 5000만달러(약 568억원)를 투자했으며 지금까지 약 40%의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안다”면서 “엘리엇이 삼성물산 보유 지분(7.12%)을 일시에 다 팔고 나가면서 ‘먹튀’ 행태를 보이거나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지속적인 공격을 가해 시장 질서와 국익에 반하는 모습을 보이면 투자금 회수를 적극 고려하겠다”고 밝혔다.[한국투자공사 “엘리엇이 국익 해치면 투자금 5000만달러 회수 고려”]

참 재밌는 상황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의도가 의심스러운 합병 건에 대해 외국계 펀드가 딴죽을 걸고 나오자 난데없이 “국익(國益)”이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이 표현을 최초로 언급한 이는 인용기사 중 언급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 토론회에서 국민연금이 “국익을 지키는 투자”를 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한편 엘리엇에 투자하고 있는 KIC는 엘리엇이 “국익에 반하는 모습“을 보이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이제 우리는 국익의 실체를 파악하여야 한다. 국익이라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추상적인 표현을 경제적으로 굳이 규정해보자면 ‘국가 및/또는 그 국가에 거주하는 국민 전체의 경제적 이익’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경제적 이익이 국민경제 단위를 경계로 하여 그 손익을 따져야 한다는 명분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형평성 측면으로는 어떠할까? 국익이라는 국가주의적 뉘앙스를 감안하자면 그 경제적 이익은 보다 많은 국민의 이익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신 교수의 “국민연금에 국민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이란 개드립은 무시하고라도 국민연금이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해주는 것이 소위 국익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의견에는 크게 이의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의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은 단순히 경영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사익추구의 의도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의결권 자문사들이 삼성물산의 주주는 합병 건에 반대해야 한다고 권하는 것이다.

오스카르 랑게와 같은 “시장 사회주의자”들은 시장경제가 정상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토대라 여기면서 우리나라의 재벌과 같은 사익추구 집단의 존재가 시장경제의 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즉 삼성 “오너” 일가의 지배권 강화를 위한 꼼수 시도가 아니라면 시장에서 양 합병 주체는 각각의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사익에 의해 왜곡된 삼성물산은 직원을 동원해 소액주주를 찾아가 합병 찬성 위임장을 받으러 다니고 있다.

신 교수 주장대로 국민연금이 합병 건에 찬성하면 국익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엘리엇이 시세차익을 얻지 못하고, 제일모직에도 상당한 지분이 있는 국민연금의 삼성그룹 주식 가치가 오를 수도 있고, 통합 삼성물산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기업이 성장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KIC가 손해를 보고, “오너” 일가가 부당한 이익을 얻고, 위임장을 받으러 다니던 삼성물산 직원이 구조조정으로 잘릴 수도 있지만 이런 손해들은 국익의 대차대조표에서 한편에 밀어두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을 대변하는 국민연금은 왜 더 나은 국익을 추구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합병이 성사되면 주주 가치의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삼성 측의 조건부 립서비스 말고 지금부터라도 주주 가치의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국익에 도움이 되는 여타 조치를 – “오너” 일가의 예상 이익에 대한 특별과세, 협력업체와의 상생, 직원들의 고용안정 등 – 합병 찬성을 조건으로 협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진정 국익을 논하려면 그 정도의 협상도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로봇이 내 일자리를 빼앗는 것인가?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인가?

NPR은 최근 시장보고서를 내고 향후 20년 내 로봇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직업군 20개를 선정하였다. 이 직업군에는 전기전자제품 조립공, 보석가공연마사, 계산대 점원 등 단순반복 작업이 주를 이루는 제조업 및 서비스업의 직종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회계 장부 담당자나 은행원과 같이 상대적으로 복잡한 작업을 하는 서비스업 직종도 포함되어 있으며, 패션모델과 같은 의외의 직종도 포함되어 있다.

▲11위, 차량운전사=운전사,개인운전사들이 자동화될 가능성은 97.8%다. 운전자들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이다. 구글의 자율주행차는 인간이 개입 없이 수천마일을 시험해 왔다. 또한 트래비스 캘러닉 우버 최고 경영자(CEO)도 궁극적으로 모든 자동차가 운전자들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로봇이 내 일자리 뺏는다. 안전한 직업군은?]

특히 운전사는 이미 구글의 무인운전차량 개발 프로젝트 등을 통해 끊임없이 무인화의 도전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직종이다. 머지않은 시대에 우리는 SF영화 토털리콜에서나 보던 피노키오처럼 생긴 로봇 운전자가 행선지를 묻는 택시에 승차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상용화 시대를 앞당기고 있는 주체는 당연히 인용기사에 언급된 구글이나 우버와 같은 사적기업이다. 특히 우버는 구글보다 더욱 더 상용화에 목을 매고 있다.

우버는 언젠가 자사의 계약 운전사 수만 명을 대체할 수 있을 무인차를 꿈꾼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무인차 개발 역량을 전혀 갖추지 못한 우버는 곧바로 ‘드림팀’ 구성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바로 카네기멜론대의 국립로봇공학센터(NREC)다. 투자자들에게서 조달한 50억 달러의 현금으로 무장한 우버는 일부 NREC 소속 과학자들에게 수십만 달러의 보너스와 현재 연봉의 두 배를 제시했다. [우버, 산학협력 맺은 카네기멜론大 연구진 빼가]

처음에 “공유경제”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달았던 우버가 번창하는 실제 이유는 “주문형(On-Demand) 경제”나 “하인(Concierge) 경제” 모델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임은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말한 바 있다. 즉 우버는 운전이라는 서비스 노동에 활용할 노동력을 비정규/비정형화하여 비용을 절감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모델에 대한 비판도 적잖은 상황이지만, 우버는 사실 그 상황마저 뛰어넘는 궁극의 무인화의 길로 가려하고 있다.

잠깐 옆길로 새자면 처음에 대리운전 업체 비슷하게 시작한 우버가 학교의 연구 인력을 빼나가는 블랙홀이 된 과정이 참 흥미롭다. 결국 우버는 앞서 말한 비용 절감 모델을 스마트폰 앱이라는 수단을 통해 ‘규모의 경제’ 化하여 성공하였다. 벤처캐피탈은 그 가능성에 베팅하여 투자를 했고, 우버는 그 잉여자금을 현재 수익모형의 다음 단계에 베팅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역동적인 투자환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각설하고, 관건은 우버가 이렇게 산학협력을 빙자한 인력 빼오기를 해올 정도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일 것이다. 사견으로 우버가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기업인가는 그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해낼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Siri에게 “차 좀 불러줘”라고 주문하면 집 앞에 무인운전차량이 대기해 있는 장면을 목도할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가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텔레마케터인 24세 여성인 미선 씨는 무인택시라면 운전사의 성희롱이나 난폭운전이 없어질 것이라며 좋아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본인의 직종이야말로 로봇化로 인해 없어질 직종 1위라는 점이다. 언젠가 그는 출퇴근을 위해 무인택시를 탈 필요도, 택시비를 지불할 돈도 없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는 로봇化로 인해 노동뿐 아니라 월급으로부터도 해방되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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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biddenplanetposter” by Copyrighted by Loew’s International. Artists(s) not known. – http://wrongsideoftheart.com/wp-content/gallery/posters-f/forbidden_planet_poster_01.jpg.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이렇듯 사적소유에 의해 지탱되는 자본주의는 기술발전 등으로 인한 자동화 혜택의 절대다수가 주주에게 귀속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한편 칼 맑스는 자본을 “가변자본”과 “불변자본”으로 나누고, 개별 자본은 가변자본인 인간의 노동을 가치의 변화가 없는 불변자본인 기계로 대치하여 상품의 가치를 전유하려는 속성이 있음을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개별 자본에게 있어 합리적인 이러한 의사결정이 사회의 이윤율을 하락시킬 것이라 예측하였다.

말인즉슨, 우버 등 개별자본이 로봇化를 통해 경쟁력을 가져 상대적 고수익을 누리는 것은 자본주의 고유 속성이고 이런 자동화가 차츰 일반화되면 노동자로부터의 착취율이 떨어져 사회 전체의 이윤율이 감소한다는 것이 칼 맑스의 논리다. 이 법칙이 “경향적 저하의 법칙”이란 희한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애매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시사점은 있다. 노동자는 이제 착취당할 여지도 없게 되고 무인택시를 이용할 소비자도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이 바로 오늘날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첨단 자본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이 기업에게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이유다. 개별 자본은 자동화를 통해서든 구조조정을 통해서든 계속 수익극대화를 추구하고 제도는 이를 정당화하고 있지만, 그로 인해 총자본이나 사회전체는 성장이 둔화되거나 심지어 정지할 수 있는 위기로 몰리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다만 노동자라는 생산자가 동시에 소비자라는 평범한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을 뿐이다.

이 모델에서 랑게는 신고전파의 전통 특히 바로네가 정식화해놓은 전제들을 그대로 따랐다. 이러한 형태의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를 기초로 하고 있다. 개인들은 각자 자신의 직업과 소비재를 자유롭게 선택하며, 이것들은 “진짜 시장”에서 매매된다. [중략] 피고용자들은 소득을 얻고 또 추가로 “사회적 배당금” 즉 “사회가 소유하는 자본 및 천연자원에서 나온 소득의 개인 몫”을 얻게 되어 있다.[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 조하나 보크만 지음, 홍기빈 옮김, 글항아리, 2015년, pp75~76]

칼 맑스 등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꿈꾼 생산력이 극대화된 미래에 인간은 고통스러운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그리고 시장 사회주의자 오스카르 랑게가 꿈꾼 사회는 어쩌면 칼 맑스도 이야기한 “자유로운 생산자 연합”의 보다 구체적인 로드맵일 수도 있다. 문제는 노동자가 무인택시를 즐기며 “사회적 배당”을 받으려면 노동자 스스로가 기업의 주주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그런 길이 제한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현실에서 “사회적 배당”의 특징을 지닌 존재는 연기금으로부터의 연금 정도다.

장하준 교수의 삼성활용론 중 국민연금의 역할에 관하여

지금 삼성전자의 경우, 국민연금공단이 7~8%의 지분을 갖고 있다. 회장 유고가 발생하는 경우, 국세청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3세들로부터 상속세를 삼성전자 주식으로 받아(주식 가격을 더 높게 쳐줄 수도 있다) 국민연금공단에 인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공단이 삼성전자의 확고한 최대 주주가 되고 삼성 가문의 지분은 크게 줄어든다. [중략] 삼성전자가 국민경제에 유리한 방향으로 경영하도록 압력도 행사할 수 있다. 이건희의 후계자가 엉뚱한 경영을 일삼는다면 일정한 기간 뒤에 CEO 자리에서 쫓아낼 수도 있다.[“필요하면 삼성법도 좋다”]

장하준 교수는 국내의 좌우 진영 모두에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현실주의자” 혹은 “실용주의자”의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에 대한 위와 같은 입장이 그의 전형적인 시각인데 어느 진영도 선뜻 동의할 수 없는 해법일 것이다. 좌파의 입장에서는 “봉건적인” 기업 지배권을 보장해주는 것이고 우파의 입장에서는 “연기금 사회주의”의 도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법 제102조(기금의 관리 및 운용) 보건복지부장관은 국민연금 재정의 장기적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킬 수 있도록 제103조에 따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한 바에 따라 다음의 방법으로 기금을 관리·운용하되…

국민연금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금 운용원칙은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우파의 이념공세를 막을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원칙 자체가 국민연금을 주주 자본주의로부터의 방패막이로 사용하려는 장 교수의 생각과 배치되는 것이다. 국민연금 역시 다른 주주처럼 단기차익을 시현하려는 맘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누가 보장하는가?

기관투자자에 포함되는 펀드, 연금기금, 생명보험사는 청구권의 만기(maturity of liabilities)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펀드, 특히 공포펀드의 경우 환매요청과 거의 동시에 자금을 인출할 수 있으므로 청구권의 만기는 초단기에 해당한다. 반면, 생명보험사의 보험계약은 비교적 장기이며, 퇴직연금, 국민연금 등 연금기금의 청구권의 만기는 초장기라 할 수 있다.[기관투자자가 자본시장 발전에 미치는 영향 및 정책과제, 자본시장연구원, 2014년 2월]

청구권의 만기가 길다는 점은 확실히 연금의 단기수익 추구 성향을 경감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다소 안정적인 경영에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연금은 수익 추구 집단이다. 주식시장 부양을 위해 연금을 동원한달지 하는 여태의 행태가 장 교수가 “국민경제에 유리한 방향”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또 다시 연금을 호출한 명분은 아닌 것이다.

국민연금에 돈을 붓고 있는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분명 연금은 궁극적으로 수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연금의 주주행동주의가 옳은 것이냐 혹은 국민경제에 유리한 방향이 연금에 유리한 방향이냐 등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운용원칙이 좀 더 고유특성에 맞게 조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