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대안경제

어떤 주인의식 없는 주주에 관한 이야기 (한국 버전)

지난 4월 말, 40조 원 규모의 ‘위기극복과 고용을 위한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설치하는 내용의 산업은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중략] 코로나19 극복과 국민경제의 안정을 위해 혈세를 투입하는 만큼 기간산업기금 지원을 받는 기업에 대한 대주주의 책임 분담과 고용안정보장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산업은행법 개정안의 내용을 뜯어보면 지원대상 기업의 경영을 정부가 감독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전무하고, 고용유지 대책은 기업의 자율에 맡기고 있습니다. 일례로, 개정안은 기간산업기금이 출자 등 자금지원으로 보유하게 된 기업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코로나19 시대, 기업 공적자금 지원에 대한 단상, 이지우 경제금융센터 간사, 참여사회 통권 276호, 참여연대, p54]

지난번 ‘재난 자본주의’에 대한 글을 쓴 바 있는데, 위 글쓴이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번 구제 금융이 ‘재난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국가와 자본가와의 결탁의 한 사례일지도 모르겠다. 알다시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기업은 노동자를 고용하여 산업을 영위하며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존재다. 기업의 규모가 커져온 와중에 이런저런 사유로 기업이 위기에 몰리면 실업이 증가하는 등 전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 악영향이 대공황이나 팬데믹 상황에서처럼 시스템을 통째로 흔들 경우 국가는 기업에 구제 금융을 실시하곤 한다. 문제는 국가가 자본가에게 통제권 및 재산권 제한 등 위기의 책임을 확실히 묻지 않을 경우, 자본가는 위기로부터 이득을 얻는 ‘재난 자본주의’ 혹은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의 수혜자가 된다는 점이다.

제29조의4(기간산업안정기금의 관리ㆍ운용 및 회계 등) ⑤ 한국산업은행과 회사등은 제2항제1호에 따른 자금지원으로 인하여 보유하는 기간산업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출자지분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아니한다. 다만, 제29조의5제2항에 따른 자금지원의 조건을 현저하게 위반하여 자금회수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42조(자금지원 등에 관한 특례) ① 제3장의2에 따른 자금지원으로 기간산업기업에 출자하는 경우 해당 기업은 「상법」 제344조의3제2항 및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65조의15제2항에 따른 한도를 초과하여 의결권이 없거나 제한되는 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개정 한국산업은행법]

위 조항을 근거로 산업은행은 보유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게 된다. 즉,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에서는 상법자본시장법에서 의결권이 없거나 제한되는 주식을 발행하는 경우 이 총수가 발행주식 총수의 일정비율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는 조항 등을 무력화시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금융위의 보도 자료를 봐도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참여연대의 비판처럼 “고용”을 위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굳이 추측해보자면 여전히 산은의 골칫덩이인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등과 같은 “자회사”를 더는 늘리지 않겠다는 의중이 아닌가 한다. 관치 논란도 싫고, 혹여 골칫덩이 자회사가 되면 처치도 곤란하니 의결권 없는 주식이나 보유하겠다는 심산이 아닐까?

이렇게 관(官)이 굳이 사기업을 통제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이유는 개정안 제41조의 “한국산업은행 및 그 임직원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없이 업무를 처리한 경우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면제한다.”는 조항에서도 엿볼 수 있는 데, 그 유명한 ‘변양균 신드롬’이 생각나는 조항이다. 그간의 부실기업에 구제 금융을 실시하는 목표가 기업의 재무적 위기의 해소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져있었다면 이번 구제 금융의 목표에는 팬데믹으로 인하여 악화될 수 있는 고용상황의 안정이라는, 어찌 보면 재무상태 개선과 양립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는 목표가 또 하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관(官)이 의결권도 갖고 싶지 않고 “중과실이 없으면” 책임도 면제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런 관치에 대한 두려움은 비단 우리나라 정부만의 두려움이 아니기는 하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미행정부의 행태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당시 그들은 씨티그룹에 보통주가 아닌 우선주를 투입한달지, 말 그대로 “국유화”한 패니메와 프레디맥에 대해 실은 정부가 “후견체제(conservatorship)”의 역할만 할 뿐이라는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대(對)기업 통제기피증은 “국유화”라는 개념에 대한 공포감도 한몫했겠지만, 결국 관료 엘리트와 자본가들의 공동운명체적 행보를 통해 “재난 자본주의” 혹은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가 구현된 전형적 사례인 것이다. 그 결과 위기는 현재까지 이연되었고 지난번 글에서 말한 것처럼 Fed는 또다시 엄청난 부실채권을 사들여 자신의 자산 건전성을 망가뜨리고 있다.

재무부는 250억 달러 규모의 정부 보유 우선주뿐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민간 주주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데 동의했다. [중략] 놀랍게도 재무부는 씨티에 자구책을 모색하라는 요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보통주 전환을 통해 정부가 확보한 씨티 지분은 전체 주식의 3분의 1이 넘었다. 그뿐 아니라 연방예금보험공사에는 씨티그룹의 자회사이며 부보은행인 씨티은행의 영업을 정지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었다.[정면돌파, 실라 베어 지음, 서정아/예금보험공사 옮김, 곽범국 감수,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p302]

그런 “재난 자본주의”의 악몽이 산업은행에서 재연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비대면(非對面) 경제

코로나19 사태를 소재로 무언가 글을 쓰려는 전업 작가가 있다면 이번 사태가 미치는 그 방대한 영향력으로 인하여 어떠한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될 것 같다. 앞으로는 전 세계를 공간적 배경 삼아 정치, 사회, 경제, 기술, 법률, 문화, 환경,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코로나19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불안감 혹은 기대감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태가 몇몇이 말하는 “문명사적 전환”의 서막이라는 것이 호들갑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는 총론을 쓸 능력이 없는 경제적인 관심사나 블로그에 끼적거리는 블로거이므로 그때그때 생각나는 각론에 대해서나 사견을 적어놓을까 생각하고 있다.

오늘 논할 키워드는 “비대면(非對面) 경제(Non-face-to-face Economy)”다. 감히 예언하자면 앞으로의 시대는 이전과 다른 차원의 비대면 경제의 시대가 될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이미 다양한 경제활동을 비대면으로 영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온라인 쇼핑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제 시장에서 상인을 대면할 필요 없이 원하는 상품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1 인터넷의 발전, 온라인 결제, 배달업의 발전 등으로 인해 가능해진 경제활동이다. 한국은 온라인 쇼핑에 있어서만큼은 이미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세계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고2 여타 국가들 역시 온라인 쇼핑은 전체 쇼핑 활동 중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한편 비대면 경제는 온라인 쇼핑과 같은 소비의 영역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사전적 의미로 ‘얼굴을 접하지 않고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것’은 생산의 영역에서도 가능한 일이고 앞으로 그 비중이 획기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는 이전의 ‘소비의 비대면화’를 넘어서 ‘노동의 비대면화’ 시대로 접어들 것이라 판단된다. 이번 사태로 인해 재택근무가 반강제적으로 활성화되며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의외로 재택근무로도 기업이 제법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기업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던 주5일제 노동이 당연시되듯 앞으로 ‘주3일 사무실 + 2일 재택 옵션’이 자연스러워 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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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간 우리는 왜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노동을 했던 것일까? 그것은 일종의 규율이다. 사실 기업은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군대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기업’이라는 경제단위가 경제의 큰 축을 차지하면서 자본가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군대식 규율이었다. 특히 제조업 공장에서의 규율이 강한 편이었고, 이는 사무직 노동자의 근무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3 그렇기에 노동자가 한 공간에 모여 규율을 지키는 것은 일종의 부가 노동이랄 수 있다. 그렇기에 노동의 비대면화는 어찌 보면 업무 진행에는 큰 차질이 없을지라도 이러한 규율을 효과적으로 아우르기에는 부족하였기에 아직까지 일상화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서 기업은 노동자들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제대로 규율을 지켜가면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 한편 기업의 전면적인 재택근무를 막는 장애물은 관성(慣性)과 보수주의다.4 기업역시 시도해보지 않았던 영역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5 하지만 팬데믹이라는 외부의 충격에 의해 사태가 심각한 동안 꽤 많은 기업이 자율 반 타율 반으로 재택근무 체제로 전환하였고 의외로 업무성과가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 인지하게 됐다. 일종의 재택근무에 대한 패러다임 적 전환의 순간이 온 것이다. 사태의 조기종식이 요원한 현 상황에서 이에 많은 기업은 진지하게 강도 높은 재택근무를 고려할 것이다.

향후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 노동환경에는 어떠한 변화가 올까? 트위터에 재택근무가 ‘잠옷을 입고 근무할 수 있어 장점, 잠옷을 입어도 근무해야 하는 게 단점’이라는 취지의 트윗이 인기를 얻었는데 어쨌든 노동자로서는 출퇴근 시간의 절약이라는 꿀 같은 시간을 얻을 수 있다. 주 52시간 노동과 결합하면 꽤 많은 여가를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6 한편, 반면 기업이 노동자의 퍼포먼스를 노동시간이 아닌 별도의 퍼포먼스 측정 수단으로 측정할 경우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노동의 유연화 헬게이트가 열릴 수도 있다.7 또한 노동시간 이외 추가적인 노동을 강요받는 의사(擬似)노동의 증가8라는 악영향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유연적 축적이 자본주의의 생존기제로 자리 잡기 시작한 즈음부터 그러했지만, 노동자와 노조로서는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하는 존재론적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노동조합은 기업의 군대식 문화를 親노동적인 조직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9 따라서 기업이 脫공간 脫규율적으로 행동하며 보다 교묘하고 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노동을 규율하게 되면 노동자와 그 조직 역시 그 방식에 적응하여 변해야 할 것이다. 현대차노조, 대한항공노조, 금융노련과 같은 기업별/산별조직이 아닌 뭔가 더 큰 그림에서의 조직이 필요할 것이다. 재택근무가 산업민주주의의 대안이 될지 새로운 군사적 기업문화의 변태가 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재난 자본주의”의 종식을 바라며

내가 재난 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를 정의하는 방식은 대단히 직설적이다. 그건 민간 업계가 대규모 위기를 통해 이윤을 직접적으로 창출하는 방식을 묘사한 것이다. 재난에서의 부당이득과 전쟁에서의 부당이득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지만, 9/11 사태 이후의 부시 정부 치하에서 정부가 결코 끝나지 않을 안보 위기를 선언하고 동시에 그것을 사유화하고 외주화하였을 때 더더욱 심화되었다. 이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사유화된] 침공과 점령뿐 아니라 국내에서의 사유화된 안보 상태도 포함한다. “충격 원칙(shock doctrine)”은 대규모 위기를 활용하여 체계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엘리트를 부유하게 하고, 나머지 이들을 쳐내는 정책들을 밀어붙이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다. 위기의 와중에 사람들은 위기에서 –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 살아남기 위한 일상의 긴급 상황에 주력하고 권력자들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위기의 와중에 우리는 공에서 잠시 눈길을 떼곤 한다.[Coronavirus Is the Perfect Disaster for ‘Disaster Capitalism’]

나오미 클라인의 이 발언에서처럼 적어도 미국은 이라크 전쟁과 9/11 사태 이후 안보와 재난에 있어 “패러다임적 전환”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라크 전쟁은 전쟁을 전쟁 기능의 상당한 부분을 민영화한 전쟁이었고, 9/11 사태 이후 부시는 엄청난 예산을 국토안보부 예산으로 빼앗아가 공공서비스의 기능을 마비시켰고, 이 결과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할 때에도 적절히 대처할 수가 없었다. 금융위기 당시에는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을 살리느라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고, 그 결과 아직까지 미국의 중앙은행은 정상적인 상태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호황기에는 부자를 위한 “정상적인” 자본주의가 작동하고 위기 시에는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 즉 “재난 자본주의”가 작동하여 어느 시기에도 돈을 버는 기제가 작동(사례 1, 사례 2)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과 거의 비슷한 시점에 첫 확진자가 발생한 미국은 현재 한국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상황이 악화되어 가고 있다. 이 저변에는 진영논리로 극단화된 정치 상황도 한 몫 하겠지만, 이건 한국도 만만치 않으므로 결국 그 극단화된 정치 상황에서조차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모자란 인간이 정권을 잡고 있는 현실과 앞서의 상황 등으로 철저히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추구하는 의료 인프라의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기산업, 군산복합체 등과 함께 미국 자본주의에서 도저히 건드릴 수 없는 분야 중 하나라 여겨지는 민영의료 체계는 이번에 다시 한 번 그 비효율성을 만방에 과시하고 있다.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닌 것은 여타 국가의 의료 공공서비스의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니 함께 반성할 일이다.1

반면 ‘전국민건강보험제도’가 없는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에 가장 취약한 시스템이라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400만원에 이르는 검사비용을 개인에게 부담시키며, 민영보험에 의탁한 병원들은 돈이 안 되면 검사와 치료 등 필수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백만명이 감염될 수 있는 대재앙에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속수무책이다. 민영화의 허점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는 점에서 향후 근본적인 시스템 재편이 빅이슈로 떠올랐다. 결국 복지시스템을 비난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약 1500조원에 가까운 돈을 국민 개개인에게 현금수표로 지급 등을 하고, 전시군수물자법을 발동해 민간기업을 국가의 재난대응에 징발하겠다고 밝혔다.[코로나19,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체제 변화 촉발]

나오미 클라인은 이번 사태에 “그린뉴딜”과 같은 대안에 기대하는 눈치다. 개인적으로 그들의 그린뉴딜의 세세한 부분을 잘 알지 못하여 과연 그 방향이 옳은 지는 좀 더 고민해야할 것이지만, 적어도 이 “문명사적인 전환의 시기”에 세계는 사회활동을 단순히 재개(再開)하는 차원이 아니라 여태 내딛지 않았던 새로운 사회로 발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뉴딜”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현재까지는 한국의 “K-방역”을 배우려는 미증유의 상황으로 강대국의 역량이 재편되어가는 양상이지만, 어쨌든 먼지가 가라앉은 다음에는 또다시 전통적인 열강의 헤게모니 다툼이 치열해질 것이다. 그때는 적어도 이성적인 몇몇 지도자가 힘을 발휘하여 “재난 자본주의” 작동 논리에 제동을 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한 독립형 일자리 경제

확실히 오늘날의 새로운 기술들은 노동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언제나 그러했었고, 사람들은 특정 경제 부문에서 다른 부문으로 교체될 것이다. 하지만 기술 혁신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동안, 특히 오늘날의 독립형 일자리 경제(gig economy)는 그것이 어떻게 고용인의 권리를 약화시키고 경제적 불안정을 증가시키고 있는지를 반영하고 있다. 노동자의 공포감은 실재(實在)하는데, 이것이 노동운동이 이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이유다. 오늘날 기후변화 혼란의 상황에서 쓰이고 있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의 개념을 기술 관련 분열에 확장하는 것이 자동화로 인해 소외되는 사람이 없음을 보장할 수 있는 가치 있는 혁신이 될 것이다.[Rewriting the Future of Work]

우리나라에서도 카카오 카풀 서비스 개시를 계기로 날이 갈수록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분야가 바로 이 ‘독립형 일자리 경제’ 분야다. 그간의 택시 서비스에 불만이 많았던 상당수 소비자들은 택시 노동자의 편이 아닌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에도 한 노동자가 분신(焚身) 시도로 운명을 달리하셨지만, 여론은 그다지 동정심을 보이지도 않고 그저 무관심할 뿐이다.1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워낙 기술 혁신에 빨리 적응하는 편인 한국의 소비자들은 천편일률적이고 불친절한 것으로 낙인찍힌 택시 서비스에 거는 기대가 거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이고 불친절한 그 택시 서비스가 아직도 우리 대중교통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많은 노동자가 그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불친절한 “개저씨”일 확률이 높은 택시 기사라 할지라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겠다는 – 기술 혁신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 당위에 있어서만큼은, 소비자인 우리도 동의해줘야 한다. 다만 그것이 러다이트(Luddite)적 해결책이 아닌 바로 인용문에서 언급하는 “정의로운 전환”의 방식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 업계와 정계에서 합의되어야 할 대전제이기도 하다.

2016년 UNIA — 스위스에서 가장 큰 건설노동 및 산업노동 관련 노동조합 — 은 보주(Vaud) 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혹독한 날씨일 경우 받을 수 있는 특별한 보장을 쟁취해냈다. 이제 겨울에 노동조합과 고용주 조합과 주정부 간의 협의 메커니즘을 통해 호우, 강설 또는 차가운 날씨일 경우 외부 건설 현장에서의 노동은 중단될 것이다.[A Just Transition Must Include Climate Change Adaptation]

아직 우리에게는 익숙한 개념이 아닌 “정의로운 전환”이 실제로 적용된 사례다. 우리나라도 갈수록 연교차가 벌어지고 있어서 올여름에도 폭염 경보가 발령된 날에는 서울시가 발주한 건설 현장의 실외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진보”적 시장의 일시적 조치에 의한 것이지 제도나 노사협상이나 제도로 정착된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의 우리 노동운동 단체에서도 이러한 권리를 항구적으로 확보를 위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 권리를 첫 인용문의 저자가 주장하듯 기술 혁신 분야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완전월급제’도 하나의 대안이다. 한편으로 새로운 서비스 혁신을 도모하는 경제 분야에 안전한 노동이 제공될 기반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카풀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자격요건이 느슨한데, 별도의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시험을 거치지 않고도 일반 운전면허만 있으면 운전자로 일할 수 있다. 범죄 이력도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다. 이것은 서비스 질 차이라 할 수 있다. 소비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안전한 노동의 하부구조를 새로 짜서 플랫폼 기업에 강제하는 것은 정부의 고유한 권리이기도 하다.

“독립형 일자리 경제” 모델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어떻게 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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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ander Torrenegra from Secaucus, NJ (New York Metro), United States – On my first @Uber ride in Bogota heading to a Startup Weekend. Priceless easiness and safety. I love disruptive innovation., CC BY 2.0, Link

어제의 여의도가, 요즘의 한국이, 그리고 요즘의 전 세계가 “공유경제(sharing economy)”1라는 신종 비즈니스 모델 때문에 적잖이 몸살을 앓고 있다. “공유경제”라 불리는 분야에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지만, 가장 큰 갈등을 겪고 있는 분야는 우버나 카카오 카풀 등 최근 몇 년 사이 새로 등장한 신개념의 승차 서비스다. 이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은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이 비즈니스 모델을 바라보는 경영인이나 학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

우선 우버가 촉발한 갈등은 현재 서구 언론이 이 비즈니스 모델을 지칭하는 표현인 “독립형 일자리 경제(gig economy)”의 진위(?)를 둘러싼 갈등이다. 기그는 원래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에서 연주자를 즉석에서 고용하여 단기로 공연 계약을 맺던 것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서구 언론은 “공유경제”라는 보다 애매한 의미의 용어보다는 “독립형 일자리 경제”라는 고용 행태에 주목한 용어를 선호하고 있고 나도 이런 용어의 취사 선택이 어느 정도 합당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영국의 재판부는 우버와 우버 운전자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소송의 2심에서 운전자들의 손을 들어주며 “독립형 일자리 경제”라는 정의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즉, 우버 운전자들은 독립적인 사업자라기보다는 우버에 고용된 노동자이며 이에 따른 지위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 판결 내용이다. 1심에서 판사는 “런던에서 우버는 3만 개의 작은 비즈니스가 플랫폼으로 연결된 모자이크라는 개념은 약간은 바보같다.”라며 운전자의 노동자성을 옹호하였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버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우버 운전자가 노동자로 인정받게 됨에 따라 회사는 그들에게 최저임금과 휴가 수당 등의 비용을 지급해야 하며, 노동시간은 운전자가 승객을 이동시키는 시간이 아닌 우버 앱을 켜놓은 시간으로 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우버는 그동안 누리고 있던 결정적인 이점, 즉 전통적인 승차 서비스에서 갖추어야 할 노동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기회비용이 감소하게 될 것이다.

한편,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갈등은 조금은 다른 양상이다. 이미 우버와 같은 전면적 모델은 금하고 있는 와중에 택시 운전사들을 링크시켜 거대한 플랫폼을 형성한 카카오 택시는 이 황금알에서 만족하지 않고 ‘카카오 카풀’이라는 변종의 우버 모델을 도입하였는데, 이게 기존의 택시 노동자들의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서비스 성공 여부의 불투명함과 여론의 차가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10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모인 것을 보면 사태가 자못 심각함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만났던 택시 운전사나 관련 공무원의 말을 종합해보면 택시 노동자는 플랫폼을 독점한 카카오가 이전의 콜택시나 신규 업자에 비해 우월한 계약조건을 강제하고 있던 와중에 이번에 카택이라는 기존의 서비스와 경쟁관계가 되는 카풀 서비스를 런칭하는 상황에 분노의 폭이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우버가 내부에서의 노자(勞資)관계의 갈등이라는 카풀은 거대 플랫폼에 포섭되어 공존관계였던 기존 업계가 동업자의 배신에 분노한 형국이 된 셈이다.

이런 갈등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벤처 사업자라면 기득권 세력이 비즈니스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승자는 플랫폼의 독점자가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 와중에 영국 법원의 판결이나 한국 택시 노동자의 저항은 그들이 독점자로서 미처 마련하지 못한 자정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사회적 갈등의 초기 증상일 수 있다. 그들의 비즈니스가 “공유경제”와 “독립형 일자리 경제”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인지 고민하는 비용 정도는 치를 가치가 있을 것이다.

“공유경제”의 비극

우버나 리프트와 같이 사적으로 독점화된 “공유경제” 서비스가 공급과잉을 유발하여 (1) 택시운전서와 우버 운전사와 같은 노동자가 가난을 “공유”하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고, (2) 늘어난 차량으로 인해 시내 교통 상황은 더 악화되는 외부경제를 유발하고 있다는 고발 뉴스

좌익 진영의 사회기반시설 건설을 위한 연기금 활용론에 대하여

향후 사회기반시설 건설에 국민연금기금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임대형 사업은 정부가 기본 수익을 보장하므로 국민연금기금의 공공성·안정성·적정수익성을 동시에 제공한다. 국민연금기금이 참여할 경우 사회기반시설의 전성·건설·운영하는 과정에 지역 사회·연금가입자·연금공단이 주체가 되는 민주적 공공부문 지배 구조 모델도 만들어질 수 있다. 필요하다면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연기금투자법’(가칭)을 제정하여 국민연금기금의 사회기반시설 투자를 위한 법적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오건호 지음, 레디앙, 2011년, p185]

거의 모든 좌익은 민간투자사업을 반대한다. 국제적으로는 PPP(Private Public Partnership)이라 불리는 이 사업방식은 도로, 철도, 환경시설 등 통상 공공재(公共財) 혹은 인프라스트럭처로 명명되며 정부부문이 공급하던 재화 및 서비스를 민간자본의 힘을 빌려 제공하는 방식을 말한다. 광의의 “민영화”라 하면 소비에트 사회주의 블록에서 취했던 재화 및 서비스 일반의 국유화가 아닌 모든 민영화 방식을 아우르는 것이지만 민간투자사업은 그 중에서도 상기 사업방식에 특정된 민영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PPP사업의 본격화가 이른바 레이거노믹스와 쌔처의 “신자유주의 시대”와 일치한다는 정황 탓에 앞서 말했듯이 PPP는 좌파에게 “공공재의 사유화” 수단이자 “공공의 적”으로 간주되어 왔다. 진보적 성격이 강한 문재인 정부 들어서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되어오던 사업이 재정사업으로 전환된달지, 유료도로법 개정을 통해 강한 공적통제를 시도한달지, 사업 재구조화를 통해 통행료 인하를 추진하는 등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 할 수 있다. 20년간의 민간투자사업의 전환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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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cuated Highway 401 Color” by Kenny Louie.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인프라스트럭처 자금조달 수단에 대해 알아보자. 크게 두 개로 나누자면 재정사업과 민자사업이다. 두 수단을 섞는 방식도 있고, 일부 사업은 원인자부담금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 두 수단을 달리 말하면 비(非)시장적 수단과 시장적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민자사업과 시장적 수단은 뉘앙스가 다른데, 연기금이 민자사업에 투자할 경우 민간자본이라기보다는 사회자본에 가까워 민영화보다는 “시장화”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전 세계적으로 각종 연기금은 이미 민자사업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대체투자(Alternative Investment)” 시장은 전통적인 투자시장인 주식, 채권 등과 달리 Private Equity, 부동산, 인프라스트럭처 사업, 원자재 등에 투자하는 시장을 말한다. 이 시장은 전통적인 투자시장의 계속되는 낮은 수익에 대한 피난처가 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100개의 가장 큰 규모의 대체 펀드 그룹의 자산은 지난 해 6% 성장한 3조3천억 달러에 달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중 가장 핫한 투자자들이 바로 연기금들이란 점이다.[대체투자, 인프라스트럭처, 공익성 등에 관한 단상]

이런 상황에서 보면 오건호 씨 등의 국민연금 활용론은 순진한 측면이 있다. 그들은 민자사업 일반을 “절대악”으로 치부하면서 국유화/사회화를 주장하는데, 그 자금수단으로 이미 시장화를 통해 투자를 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활용론을 손쉽게 꺼내기 때문이다.1 이 활용론의 최신버전이 권미혁 의원의 주장이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국민연금은 민자사업이 목표수익률에 미치지 못하여 최근 민자사업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이미 시장에 진입한 투자자에게 공익(公益)을 위해 더 낮은 수익률로 각종 사업을 떠안으라는 복안이 타당한지 자문해야 한다.

우리 정치세력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연금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아무렇게나 꺼내 쓸 수 있는 쌈짓돈으로 여기는 것 같다.2 하지만 시장경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사회적 투자의 가장 큰 돈줄인 국민연금은 정치인이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러한 정무적 관점이 시장을 교란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 투자의 합리성을 저해할 수 있다. 연금의 수익률이 공익(公益)인가? 낮은 도로 통행료가 공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