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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내가 박노자 씨를 좋아한다

이래서 내가 박노자 씨를 좋아한다. 평소 그의 점잖은 선비풍의 글을 읽다가 이렇게 단어는 얌전하게 쓰면서도 속 내용은 신랄한 비아냥거림을 접하게 되면 평소 얌전한 사람이 노래방에서 노래빨날리는 광경을 보는 듯한 신선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평소의 글투에도 약간 장난기가 섞여 있는 진중권 씨나 우석훈 씨의 글이나 말과는 또 다른 쾌감을 제공한다.

박노자 씨 말마따나 우리나라의 신자유주의 노선의 관철은 역설적으로 정치적 레토릭의 급진화와 경제적 노선의 보수화의 교묘한 줄타기를 했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의해 가속화될 수 있었다. 막 독재의 틀을 벗어난 인민에게 몇몇 탈권위적 정치행태를 보여주면 경제적으로는 충실한 우파 노선을 걷기에 편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은 그들을 ‘좌파’라고 부르기 서슴지 않았다. 물론 그 정부들의 하부 추종자들 중에서는 ‘나름 좌파’도 섞여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박노자 씨도 그렇게 봤는지 모르지만 나도 솔직히 그들이 이전의 두 정부를 ‘좌파’정부로 몰아세운 것은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뜻이 그렇다는 것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그들이 그런 정도의 머리는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그 친구들 하는 행동을 보면 진정으로 그 시절을 ‘상종 못할 빨갱이 놈들의 세상’이었고 지금은 ‘사람 사는 정의로운 세상’으로 상정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째서 이들이 자신들 스스로가 노무현 정부 시절 득달같이 비판하던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에 대한 의문제기를 이제 시민들이나 네티즌들이 주장하자 이들을 마치 ‘돌아온 반도(叛徒)’ 대하듯이 대하고 있는지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좌파/우파 구분법이 진정성이 없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나폴레옹 귀양 갈 때와 파리 입성할 때의 헛소리가 이렇게 차이가 나겠는가 말이다. 머리가 어느 정도 있었다면 양쪽의 주장 간에 수위조절을 했어야 할 것이다.

여하튼 이런 꼴을 보고 있자면 이 세상이 진짜 메트릭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제 정신도 아니고 정치이념의 ABC도 모르는 것들이 기자질을 하고 있고 하버드 수석 졸업했다고 뻥치는 과대망상증 환자가 국회에 입성하겠는가 말이다. 하긴 학살자 부시가 세상의 지배자인 세상이니 그 정도는 약과인지도 모르겠다.(주1)

박노자 씨의 ‘조중동의 치명적 실수’ 읽기

 

(주1) 부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오늘자 동아일보는 부시 측근의 부시 재임시절의 비리와 오판에 대한 폭로에 대해 “뒤늦은 정의감? 두둑한 인세?”라는 제목으로 그것들을 폄하하면서 관련사진에는 생뚱맞게 부시의 인간적인(?) 면모가 담긴 사진을 첨부하였다. 전형적인 용비어천가적인 기사였다. 남의 나라 대통령에게까지 이렇게 사탕발림을 하는 신문이니 정말 할말 다했다

수돗물 민영화에 관한 오해 몇 가지 (1)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민영화’라는 개념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노선을 가장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단어가 되어버린 것 같다. 대운하도 민영화를 통해, 공기업도 민영화를 통해, 의료보험도 민영화를 통해, 수돗물도 민영화를 통해 개발하여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로드맵이 일부는 정부 그 자체의 발언을 통해 일부는 반대세력의 발언을 통해 국민들의 뇌리 속에 자리 잡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중에게 대운하는 국토유린이라는 공포감을, 공기업 민영화는 대량감원이라는 공포감을, 의료보험 민영화는 Sicko에서 볼 수 있듯이 돈이 없어 버려야 하는 자신의 잘린 손가락이라는 공포감을, 그리고 수돗물 민영화는 하루 14만원에 달하는 물 값이라는 공포감을 안겨주고 있다. 사실이 이렇다면 정말 이명박 정부 치하는 지옥 그 자체다.

나는 이중에서도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고 또 나 스스로의 생각의 정리를 위해서도 수돗물 민영화에 대한 진실과 오해를 주제로 하여 몇 개의 별도의 글을 통해 시리즈 형식으로 글을 적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오해 : 수돗물 민영화는 이명박 정부의 발명품?

지난 대선의 열기가 달아오를 즈음부터 어느 샌가 ‘이명박 = 민영화’의 공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명박이 다른 보수진영 후보에 비해 “두드러지게” 민영화에 대해 적극적이었다고 볼만한 개연성이 당시로서는 그렇게 많지 않았음에도 이 이미지는 유권자 – 특히 이명박의 반대자 – 들에게 꽤나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그리고 물론 이명박은 집권 후에 민영화의 칼을 본격적으로 빼어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수돗물에 관해서만큼 이명박 혼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너무 부당한 일이다. 즉 수돗물 민영화의 초석을 다진 것은 현재 쇠고기 파동의 원인인 한미FTA가 그러하듯이 노무현 정부 시절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의도적이던 의도치 않았던 간에 이른바 ‘수돗물 민영화’는 적어도 인터넷 공간 안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순수 창작품으로 혼자 독박 쓰고 있는 상황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다음 인용글을 보면 이는 사실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지난 2006년 2월 14일 환경부, 건설교통부 및 산업자원부는 국내 물산업을 고도성장을 견인하는 핵심미래산업화하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2015년까지 글로벌 물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물산업 육성방안’을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하였다.”[“미래 전략 산업, ‘물산업’ 육성방안”, 김덕진/환경관리공단 상하수도지원처 팀장, 그린삼성 웹진 2006년 봄호]

이 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수돗물을 포함한 국내 물관련 시설을 “산업화”하겠다는 구상의 ‘물산업 육성방안’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씨가 의장으로 있던 국무회의의 의결을 통해 최종 확정된 사안이었다. 그러니 그 육성방안의 최종완성품인 물산업지원법을 6월에 입법예고하려는 이명박 정부는 그 옳고 그름을 떠나 적어도 수돗물 민영화에 있어서만큼은 노무현 정부 정책의 계승자인 셈이다.

이 오해는 무엇이 문제인가

사실 이러한 오해 – 또는 곡해 -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지금의 美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이 자연스럽게 한미FTA의 부당성과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문제와 유사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즉 현 저항의 상당수 주장은 ‘이명박이라서 문제다 노무현은 그렇지 않았다’식의 과거의 향수에 젖은 유의 주장이 득세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신자유주의 노선의 전면화를 치적으로 내세운 노무현 정부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 그러니 ‘쇠고기는 두렵지만 FTA는 모르쇠’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수돗물 민영화도 비슷한 처지가 될 공산이 크다. 물론 이 사안에 대해서는 그 중심운동세력이 쇠고기 문제와 달리 좀 더 좌파적 경향을 띈 단체에 의해 주도될 공산이 크긴 하지만 그 대중화를 위해 동원되는(?) 자원들은 여전히 수돗물 민영화가 순수한 이명박의 죄과라는 오해를 하게 될 것이고 결국 그 경향은 反신자유주의라는 기치보다는 反수구 또는 反한나라당 정도의 행보에서 그칠 개연성도 무시할 수 없다.

p.s. 사실 개인적으로 수돗물 민영화에 대해서는 – 더불어 총체적인 민영화 반대 운동에 대해서 – 현재 득세하고 있는 反이명박 위주의 세력뿐만 아니라 자칭 ‘좌파 세력’의 주장에도 일정 정도 불만이 있다. 이는 차차 – 기회가 될 때 –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진보신당을 “비판적”으로 지지 한다

이 블로그에 나는 나름 진보적인(?) 관점을 지닌 경제 분석 글을 주로 올렸다. 그런 한편으로 정치에 관한 이야기, 특히 정당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다. 정치인의 이름은 몇 번 거론했으되 정당에 대해서는 거의 거론하지 않은 것 같다. 왜 그랬는지 생각하면 딱히 이유는 없다. 원래 블로그란 손가는 대로 끼적거리는 데니까 뭐 이유를 댈 이유도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정당을 지지하여 왔는가 생각해보면 나름 일관되게 좌파적 성향을 지닌 정당, 또는 정치인을 지지하여 왔었다. 한 5년 정도 민주노동당의 당원이기도 하였다.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나 역시 대선 이후의 엑서더스 대열에 동참하였다. 사실 그 이전부터 이번 대선과 비슷한 스타일의 지역위원회에서의 갈등 때문에 상당히 오랜 동안 애정 없이 지내온, 쉽게 말하면 당과의 별거상태로 지내긴 했었다. 아무튼 대선을 계기로 탈당했다.

하지만 진보신당에는 입당하지 않았다. 왜 가입하지 않았냐고 한다면 우선은 귀차니즘인 것 같다. 민주노동당의 탈당도 귀차니즘 때문에 상당히 지체되었으니 할 말 다했다. 두 번째는 태생에 대한 불만이다. 현재로서는 명백히 노회찬/심상정 당의 모양새다.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셋째는 정당정치에 대한 회의감이다. 민주노동당의 가능성과 한계를 보면서 느낀 점이다.

나 스스로 정치적 지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지속적인 화두인데 최근 내린 결론은 적어도 사회주의자는 아니라는 것이 결론이다.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려서 나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표현이 결국 ‘자기파괴적 자본주의자’다. 자본주의적 삶을 지향하면서 끊임없이 그 한계를 알아채며 좌절하는 그런 녀석인 것 같다.

현실에서는 ‘자기파괴적 무산계급’이 상당히, 깜짝 놀랄 정도로 많다. 분명히 경제지표로 보면 우리나라 인구 구성의 절대다수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받을 상태에 놓여 있음이 분명한데 그들은 어찌된 일인지 자신들의 경제적 상태를 고착화 내지는 악화시켜줄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자기파괴적’이다. “경제를 살리자”라는 근본 없는 구호에 도취된 것인지 알량한 자산으로 인해 허위의식을 갖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모순된 투표행태임은 분명한 것 같다.

이 모순은 집권당뿐 아니라 전 집권당의 의원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 야당을 지지하는 이들에게서도 제법 발견된다. 적어도 집권당의 지지자보다는 덜 모순되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실질적으로 현재의 정치현장에 유의미한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남겨놓는 데에 철저히 실패한 전임대통령의 서민적 이미지를 ‘노간지’라 부르며 환호하는 팬덤 현상을 보면 박근혜에게 박정희의 향수를 느끼며 환호하는 이들과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더욱 희극적인 모습은 현재의 신자유주의화 현상에서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당시의 집권당(이름도 잊혀져 가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알리바이를 주장하는 이들의 행태다. 현재의 의료보험 민영화나 은산분리 등에 대해 게거품을 무는 이들이 실상 전임 정부가 그러한 초석을 다지는 일을 해온 데에 대해서는 편의적으로 눈을 감는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고 용감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알아야 할 점은 막말로 통합민주당이 다수당이 될지라도 기차는 달린다는 점이다.

자꾸 맥 빠지는 이야기뿐인데 결국 이번 선거 최대의 관전 포인트는 한나라당이 단독 개헌가능의석을 확보하는 것이냐 하는 것일 것이다. 사람들 눈이 삐었다든지 세상이 미쳐가고 있달 지 푸념해봐야 현실은 그런 상태다. 결국 이런 비참한 한국의 정당정치 상황에서 나는 정당정치에 대한 회의감을 뒤로 한 채 투표장으로는 갈 것이다. 그리고 나의 계급적 이익을 완전히 대변한다고는 여겨지지 않지만 가장 근사치로 접근한 진보신당을 선택할 것 같다. 그것은 ‘부패한 보수’대신 ‘무능한 보수’를 지지하자는 그런 비판적 지지가 아닌 다른 의미에서의 비판적 지지라고 스스로 이름붙이고 싶다.

“찍어줄 테니까 좀 똑바로 해봐”

최근 밝혀진 힐러리 클린턴의 위선

“나는 처음부터 NAFTA 에 대한 비판자였다.”
“I have been a critic of NAFTA from the very beginning.”

현재 대통령 캠페인에 나선 유력주자 힐러리 클린턴의 말이다.

그런데 최근 11,000 쪽에 달하는 빌 클린턴 시절의 백악관 서류가 공개되면서 그의 발언이 거짓임이 드러났다고 한다. Free Press의 공동설립자인 John Nichols는 최근 Common Dreams에서 주장하기를 이 문서에

– 그는 NAFTA의 열정적인 지지자였고
– 의회에서의 조약승인을 위한 전략회의를 최소한 다섯 번 이상 주재했고
– 의회승인을 독려할 120명의 오피니언리더 여성들의 비공개 회합에서 연설했고
– 노동계, 농민단체, 환경단체, 인권단체들의 보다 나은 협약요구를 봉쇄했다

는 사실이 적혀있다고 한다.

그리고 John Nichols는 결국 클린턴의 적극적인 역할에 따라 발효된 NAFTA로 말미암아 미국은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잃었고 기록적인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며, 멕시코에서는 수많은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 경제적 난민으로 전락하여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전하고 있다.

어쨌든 이 글도 본문도 본문이거니와 댓글들의 논쟁을 읽는 재미도 솔솔했다.

먼저 militantliberal 이라는 이는 멕시코 농민들이 생업을 포기하여야 했으면 미국으로 오지 말고 멕시코 공장에 취직했으면 될 것 아니냐면서 John Nichols 의 주장이 허점이 있다고 비판하였다. nyengo 는 이에 대해 멕시코에는 분명히 공장이 있지만 이 공장은 기본적인 노동조건과 안전조건을 갖추지 않은 착취공장(sweatshops)이며 노동자들은 생활수준 이하의 임금만을 받고 있다면서 그의 발언을 비판하였다. BeForKids 는 그나마 그 공장들마저 최근 대부분 아시아로 이전했다고 전하고 있다.

vaudree 는 논쟁이 NAFTA의 옳고 그름 여부로 가고 있다며 힐러리 클린턴은 몰래 NAFTA를 지지했지만 맥케인은 대놓고 지지한 것 아니냐며 차라리 클린턴을 우리가 감시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며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비판적 지지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formernadervoter 는 John Nichols의 글이 날카롭지만 그것이 오바마에 대한 지지글로 읽혀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결국 힐러리 클린턴와 오바마는 정치적 쌍둥이며 이미 대선은 ‘미국 주식회사(corporate America)’의 승리로 귀결되었다고 냉소적으로 말하고 있다.

결국 John Nichols의 글은 자유무역에 대해 노동자의 편을 들며 보다 공정한 무역으로의 선회를 주장하는 정치가의 위선을 폭로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개인적으로는 formernadervoter(이 양반도 상당히 마이너이로군요)의 말처럼 그것이 오바마에 대한 지지로 귀결되거나 더 나아가서는 정치적 염세주의로 전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진보세력의 유의미한 정치적 지지세 확보의 가능성이 지난한 미국에서는 –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 굉장히 힘든 주문이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노무현은 차라리 솔직했고 초지일관이어서 퇴임 뒤에 인기를 얻는 것인가? 아니면 그런 정치적 태도와는 상관없는 단지 “노간지” 덕분인가?

오바마에 대한 세가지 반응, 그리고 개인적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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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ackObamaportrait” by United States Senate – http://web.archive.org/web/20070613015950/http://obama.senate.gov/files/senatorbarackobama.jpg (Was published on the “About” page in 2007).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폴크루그먼과 같은 대가가 블로그를 한다는 사실도 재미있거니와 그의 이력과 별로 어울리지 않게 올리는 글이 담백한 구어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의 블로그를 보면 거창한 이론이나 장광설로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대개 촌철살인 스타일의 간단한 말 몇 마디로 상황을 정리하곤 한다.

그런 그가 최근 재밌는 포스트를 하나 올렸다. 제목은 이른바 “Yes We Can blogging”

그가 1990년 필리핀에서 겪었던 에피소드에 관한 내용으로 “시류와 상관없이” 올렸다는 글이다. 당시 그는 UN의 한 개발프로그램 때문에 필리핀을 방문 중이었는데 그곳 무역산업부의 슬로건이 “Yes, the Filipino can!” 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폴크루그먼을 비롯한 UN사절단은 무역산업부 장관과 면담을 가졌는데 장관은 그 자리에서 필리핀의 통조림(즉 Can) 산업에 대해 열변을 토했고 폴크루그먼은 무심코 “Yes, the Filipino can!”이라고 외쳤다는 내용이다.

그 당시에도 썰렁했을 것 같고 블로그에 올라온 그 글을 다시 읽어도 썰렁하다. 대학자도 저런 썰렁한 콩글리쉬 스타일의 농담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그가 “시류와 상관없이”라는 단서조항을 붙인 것이 오히려 그의 의중을 말해준다. 바로 미대선의 유력주자 배럭오바마의 슬로건인 “Yes We Can”을 빗댄 글이다. 은근히 힐러리클린턴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는 것 같은 폴크루그먼이 악의 없이(?) 올린 글이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한편 미국의 다른 개혁진영은 오바마의 이 슬로건에 적잖게 감동을 받은 듯 하다. 류동협씨의 블로그 포스트에 따르면 래퍼이자 제작자인 윌아엠(Will.I.Am)과 밥 딜런의 아들인 감독 제시 딜런(Jesse Dylan)이 오바마의 연설에 감명 받아 “Yes We Can”이라는 노래를 만들었고 가수, 운동선수, 배우 등 40여명이 이 뮤직 비디오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유투브 등 UCC사이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한다.

패러디와 지지가 있다면 반대도 있다. 공화당 진영에서야 물론 전폭적으로 그를 반대할터이고 진보진영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있다. 개인적으로 팟캐스트로 청취하고 있는 더그헨우드 진행의 시사프로그램 Behind The News 최근 방송에서는 한 흑인 운동가가 출연하여 오바마의 보수성을 고발하였다. 그리고 그가 집권에 성공하게 되면 오히려 향후 흑인정치의 발목을 잡게 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하였다. 실제로 최근 오바마가 레이건을 개혁의 상징이라고 언급하였던 해프닝이나 정책에 관한 그의 보수성(일례로 헬스케어에 대한 보수성) 등을 볼 때 그가 현재의 정계에서 피부색만큼 급진적이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정치 초년병에 대한 상반된, 그러나 폭발적인 반응은 개인적으로 5년전 대선주자였던 노무현 현 대통령 – 비록 노무현 대통령은 오바마에 비해서는 정치선배지만 – 에 대한 반응을 연상시킨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상태에서 변방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모양새하며 범 진보세력의 폭넓은 지지, 이에 대한 급진세력의 반발 등이 여러모로 비슷한 모양새다. 한편으로 후보의 급진적 이미지가 실제보다 과장되어 보이게 하는 시대적 상황도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뭐 바다 건너의 문제이니 국내대선보다야 당연히 관심이 덜 가거니와 그에 대한 정체도 잘 모르겠으니 호불호를 따질 계제는 아니다. 어쨌든 큰 이변이 없는 한 오바마든 클린턴이든 민주당이 정권을 탈취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들 후보에게 바람이 있다면 한미FTA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자본을 위해서라면 문제겠지만 미국의 민중을 위한 실질적인 FTA가 되도록 재검토하여 주었으면 한다. 이을 통해 다시 한 번 국내에서도 한미FTA의 계급 및 국가간 편향성에 대한 이슈가 제기되고 자유무역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이 지랄맞은 국회의원 들이 날림으로 한미FTA를 국회통과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긴 하다.

참고할만한 글

좌우(左右)를 구분하는 백한번째 방법

좌익(또는 좌파)과 우익(또는 우파)을 구분하는 데에는 백가지 방법이 있다. 또는 훨씬 더 많다. 사람 사는 세상이 두부모 자르듯이 명쾌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번 들여다보자.

천차만별 좌우구분

우선 소위 좌파정당이라 자처하는 민주노동당에서의 좌우구도다. 당내에는 소위 ‘평등파’와 ‘자주파’가 있다(또는 있다고 하고 없다는 사람도 있다). ‘평등파’는 좌파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자주파’를 우파라 한다. 그런데 ‘다함께’라는 단체에 소속된 정치적 세력이 있다. 이들은 좌파들이 극좌파라 부른다. 그런데 ‘다함께’에서는 ‘자주파’를 ‘민족주의적 좌파’라고 부른다. 소위 좌파도 또 지향점이 조금씩 틀리다. 이 좌파에는 ‘유럽 취향의 사민주의자’, ‘신좌파적 감성의 사회주의자’, ‘생태사회주의자’, ‘과거 스탈린식 공산주의자’ 등 굉장히 폭넓게 아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로 폭을 넓혀보자. 북한을 ‘좌파 국가’(이런 표현 실제로는 없고 보다 정확하게는 사회주의 국가)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바로 위와 같이 남한의 정치적 지형이 많이 달라진다. 그런데 여하튼 북한을 사회주의 체제로 보기도 하고 수구적인 왕조체제로 보기도 한다. 남한 정치는 또 어떠한가. 어떤 이는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를 적극 수용한 우파 정부로 보고 어떤 이는 가진 자를 핍박(!)한 좌파 정부(주1)로 본다.

정리가 되었는가. 뭐 된 것 하나도 없지. -_-;

이글은 제목에도 썼지만 좌우를 구별하는 101번째 방법이다. 앞서의 100가지 방법을 정리하거나 비난할 생각은 별로 없고 필자가 앞으로 글을 쓰거나 세상을 바라볼 때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한 나만의 기준 정립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선 좌익(左翼, left)의 사전적 의미부터 알아보자.

사회주의적 ·급진주의적 ·공산주의적인 과격한 혁신사상 또는 그러한 경향을 가진 인물이나 단체.

이 용어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프랑스 대혁명 당시, 상대적으로 사회변동에 온건한 지롱드당이 의회의 오른쪽 부분에, 급진적인 자코뱅당이 의회의 왼쪽 부분에 위치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한편 우익은 좌익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좌익(左翼)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 우익은 보수적·민족적·국수적·반동적인 것을 가리킨다

고 정의되어 있다.

우선 좌우익과 좌우파의 구분에 대해서

우선 좌우구분법에 대해 생각해보기 전에 필자는 좌우익/좌우파의 구분법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예전에 어느 신문에선가 좌우익과 좌우파의 구분법에 대한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 개인적으로 그 구분법을 따르려 노력하고 있다. 즉 좌우익은 절대적인 기준이고 좌우파는 상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좌익은 사회주의 사상을 신봉하거나 그러한 경향을 가진 인물이나 단체이고 좌파(左派)는 특정집단 내에서 좀 더 급진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나 분파를 일컫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같은 이치로 우익은 현재 시점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신봉하거나 그러한 경향을 가진 인물이나 단체이고 우파(右派)는 특정집단 내에서 좀 더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나 분파를 일컫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 구분법에 따르면 스스로를 사회주의 정당이라 자처하는 정당이 있다면 그 정당은 좌파정당이라기보다는 좌익정당이다. 한편 그 당 내에서 사회주의로의 도달방법에 대해 변혁적인 방법을 택하느냐 의회주의적인 방법을 택하느냐로 의견이 갈라지면 그것은 ‘당내 좌파’와 ‘당내 우파’가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영어로는 좌익이나 좌파나 다 left-wing 이다. 영어에서는 이런 식의 구분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구분법이 쓸모가 있다고 본다. 특히나 한반도에서 좌우의 구분이 날림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제부터는 좌와 우의 구분에 대해서 생각해보겠다.

좌우의 구분에 대해

지금부터의 의견은 ‘龍川 미리내’님의 “대토목 공사와 한국의 우파”라는 글에 대한 상념이 많이 녹아 있다. ‘龍川 미리내’님은 이 탁월한 글에서 남한의 위정자들이 가지고 있는 천박한 정치철학으로 말미암아 좌우파 개념이 혼돈 내지는 아노미 상태에 빠져 있고 이것이 오늘날 새로 탄생할 정부의 대운하 해프닝에서 절정을 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龍川 미리내’님은 그의 글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IMF 침공으로 인하여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거칠 여지가 없이 노동의 유연화(실제는 해고의 자유 확대)와 같은 가장 우파적인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라고 이야기하셨는데 이 글의 백미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남한사회의 비극은 바로 소위 민주화세력(남한 사회를 당으로 비유한다면 이들은 분명 당내 좌파다. 다만 모두다 좌익은 아니다.)이 독재세력(이들은 당내 우파이자 우익이었다)에 대한 반발이었든지 또는 IMF 침공 탓이었든지 국가의 경제노선을 좌익 또는 좌파적이 아닌 전적으로 시장경제 우선의 우익노선을 취했다는 점이다.

어떠한 점에서 우익인가

앞서 살펴본 한 사전에서는 우익을 “보수적·민족적·국수적·반동적인 것을 가리킨다”라고 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 좀 더 확장해보자면 현대 정치사와 경제사에서 우익은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노선을 지향하고(주2)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인 시장경제’에 대해 맹종 내지는 최소한 친화적인 입장을 견지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정치적 자유주의’는 우익내의 좌우파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물론 자기들 스스로도 종종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혼동하지만 말이다(특히 유시민).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햇볕정책을 펼치면서 민족의 화해를 시도하는 한편으로 노동자를 탄압하고 자유무역협정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지극히 정상적인 우익정부이다. 그런데 이 정부가 또 한나라당과 같은 수구적이고 반동적인 정치집단이 보기에는 ‘좌파’가 되어버린 것이다. 정리하면 지난 10년간의 집권세력은 ‘한나라당이 보기에 좌파적인 우익정부’이다.

박정희는 좌익인가 좌파인가 우익인가 우파인가

‘龍川 미리내’님은 박정희의 경제정책이 분명히 “좌파적”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맞는 말이다. 그의 연차별 경제개발계획, 새마을 운동과 같은 시도들은 분명히 소비에트식 사회주의에 영향 받은 바 크다. 그렇지만 핵심은 그런 한편으로 그가 또는 그의 정권이 인민권력의 가능성이나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철폐에 대해 한 번도 로드맵에 올려놓은 적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것들을 철저히 탄압했다는 점에서(주3) 그는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경제전술을 베낀 변방나라의 변태적 우익’이다.(주4)

한편 이명박 당선자의 대운하 사업을 살펴보자. 이 해프닝은 언뜻 후버댐 등 대규모 토목공사를 국가적으로 추진하였던 루즈벨트의 뉴딜 사업을 연상시킨다. 또한 노동자들을 놀리느니 구덩이라도 팠다가 다시 메우는 것이 국가적으로 이익이 될 거라는 케인즈의 유머도 생각난다.(주5) 분명 그 역시도 시장이 아닌 정부가 주도하는 대규모 사업을 통한 경기부양을 유도한다는 차원에서 변종우익이다. 하지만 그의 정치경제 철학은 사실 박정희 정권보다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그것에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더 헷갈리는 변종우익이다. 하여튼 대운하도 정부 재정이 아닌 민간투자사업으로 한다고 하니 완전히 반시장적이라고도 하기 어렵다.

사실 그의 우익적인 행태는 지금 대운하가 문제가 아니라 금산분리 철폐나 신문-방송 교차 소유 허용과 같은 실질적이고 더 파급력이 큰 시장주의적인 정책에 방점이 놓여 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때로 이명박 측에서 그러한 보다 근본적인 우익적 조치에 대한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해 대운하라는 지극히 ‘허경영’스러운 해프닝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여튼 결국 좌익의 핵심적인 키워드에는 ‘권력의 형태’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에 대한 관점도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도 정리 안 되지만

어쨌든 쭉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요약하자면 좌익과 우익은 그 정치경제적 노선에 따라 어느 정도는 절대적인 가치를 두어 구분할 수 있고 구분하는 편이 편하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해놓으면 사물의 본질이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온다. 소금에 아무리 검은 물을 들이고 쪼개고 쪼개도 ‘짠 맛’이 나지 않으면 소금이 아닌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좌파와 우파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상대적인 가치를 두어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막말로 내 왼쪽에 있는 이는 좌파고 내 오른쪽에 있으면 우파다. 말섞기도 짜증나면 극좌파고 극우파다.

polanara 님의 댓글에서 화두를 얻어 글을 썼으니 polanara님이 댓글을 달아준 그 “너무나 차이나는 프랑스와 한국의 우익”에 대한 언급으로 글을 끝내겠다.

사르코지와 이명박은 분명히 우익이다. 남들이 보기에도 우익이고 스스로도 우익을 자처한다. 하지만 한쪽은 노동자에 대한 더 많은 분배를 주장했고 또 한쪽은 노동자의 자원봉사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둘 다 반(反)시장적인 발언을 했다. 그런데 사르코지는 ‘좌파’적인 발언을 한 것이고 이명박은 ‘극우파’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 같으면 둘을 싸잡아 욕했을 것이다. 반(反)시장주의자라고.

여하튼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우익일 뿐이다. 우익은 우익의 길로 간다. 권력이 인민의 손으로 넘어가지 않는 한에는 가끔씩 재밌는 ‘좌파쇼’나 ‘극우파쇼’를 보여줄 뿐이다.

(주1) 나는 개인적으로 우익언론이 현 정부를 이렇게 부르는 것이 일종의 정치적 선동이고 실제로는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이는 그런 생각은 한국의 우익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주2) 국수적, 반동적이란 표현까지는 포함시키지 않겠다. 그럴 것 같으면 사실 소비에트 붕괴시의 공산당은 우익으로 보아야 한다.

(주3) 박정희 시대에 빈민촌에서 탁아소를 운영한 이를 빨갱이라고 몰아서 잡아간 일도 있다고 한다

(주4) 그리고 실제로 아시아, 아프리카 등 많은 제3세계 국가의 당시 독재자들은 경제노선으로 미국식의 시장자본주의 노선보다는 소련식의 계획경제 노선을 채택했고 효과를 보기도 했다

(주5) 그런 면에서 피라미드를 지은 이집트 왕조는 케인즈 주의 왕조였던가?

한미FTA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의 알리바이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Roh Moo-hyun - cropped headshot, 2004-Oct-26.jpg
Roh Moo-hyun – cropped headshot, 2004-Oct-26” by U.S. State Department Photo – http://www.state.gov/secretary/former/powell/photos/37467.htm.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한미FTA가 옳고 그르냐는 논쟁을 떠나서 노무현 현 대통령 또는 현 정부의 지지자들 중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이들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를 추진하는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알리바이를 들이대는 이들이다.

“공공의료 시스템 파괴의 주범은 이명박이 아닌 노무현”이라는 필자의 글에 capho라는 아이디를 쓰시는 분이 쓴 다음 글을 보라.

“행정부 수반이 단독으로 FTA협상을 수락하는 최종 단독 결정권자가 아닙니다.
국회의 비준을 거치는데 왜 노무현 탓으로 귀결 되는지? FTA협상과정에서 해당 독소조항을 받아들인 실무자의 면면을 근저까지 살펴보지 않는 한,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의 동의를 거치는 FTA협상을 무조건 노무현 때문 이란건 비약에 다름이 없습니다.(하략)”

대통령은 한낱(!) 행정부 수반으로 FTA가 협상을 잘못 했다면 그것은 바로 실무자와 한나라당의 탓이라는 논리다.(주1)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가 타결되기까지 어떠한 입장을 표명하였는지 다음 어록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어록을 보고서도 여전히 대통령의 알리바이를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으면 그때부터는 종교의 영역이니 필자는 더 이상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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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 미국과도 자유무역협정을 맺어야 한다. 조율이 되는대로 협상을 시작하도록 하겠다”(2006년 1월18일, 신년연설)

o “한미 FTA는 우리의 자존심이 걸린 일로 압력 같은 것은 없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여건을 조성하고 제안해서 성사된 것이다”

“국내 이해단체의 저항 때문에 못가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해야 하며, 협상조건에 따라서는 결렬될 수도 있으며 양보 못하는 절대조건이 있을 수 있다”(2월16일, 대외경제위원회)

o “우리가 2002년 (월드컵에선) 16강이 소망이었는데 4강까지 가버렸다. FTA를 통해서 G10 안으로 간다,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2월2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o “요즘 FTA 때문에 걱정들을 많이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어떤 시련에 부닥치거나 위기에 도전해서 좌절하거나 실패한 일이 있느냐. 결국 하기 나름이다” (4월14일, 폴리텍 창원대학 방문행사)

o “한미 FTA는 그것을 통해 물건을 더 파는 것보다는 제도를 미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 각 분야의 세계의 제도와 뒤섞이지 않으면 수준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5월14일, 두바이 동포간담회)

o “FTA도 찬반이 다 있지만, 개방하고 교류했던 나라는 망한 나라도 있고, 흥한 나라도 있지만 개방않고 교류하지 않은 나라 중에는 흥한 나라가 없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대원군의 쇄국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만드는데 얼마만큼 기여했는지를 실제 잘 몰랐다. 동학혁명의 소위 배외(排外)주의가 그 시기에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맞다고 해서 오늘도 그런 배외주의가 우리 민주주의, 민족주의의 기치가 될 수 있는 것이냐”(6월12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대표 오찬)

o “한국이 미국처럼 세계시장에서 강자로서 우월적 위치에 서 본적이 없어서 (FTA에 대한) 한국인의 불안은 너무나 당연하다. 신속성과 내용의 충분성 모두를 충족시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6월22일, 한미 재계회의 대표단 접견)

o “한미 FTA 추진은 대통령으로서 다음 세대를 고민하고 내린 결단이다. ‘한미 FTA의 손익계산서’에서 이익은 도외시한 채 손실부분만 잘라서 이야기하는 것은 공정한 사실을 알리는 것은 아니다” (7월14일, 국민경제자문회의)

o “정보공개는 대통령이 보고받는 수준으로 최대한 하겠다. 고도의 협상전략 외에는 다 공개하겠다는 뜻이다.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은 FTA 협상을 위한 환경조성에 필요한 일이었지만 FTA 협상의 대상은 아니었다”

“한국이 개방해서 실패한 게 별로 없다. 농업 얘기할지 모르지만, WTO (국제무역기구)로 개방됐고 그 외에는 패배할게 없다. 국가적 전략을 이데올로기 싸움이나 정쟁의 대상으로 악용해서는 안된다”

“(통상절차법 관련) 국회가 조약체결권을 갖고 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8월9일, 연합뉴스 특별회견)

o “만일 일본과 중국이 미국과 FTA 교섭을 한다면 ‘노무현이 뭐 하냐’고 아마 우리나라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8월31일 KBS특별회견)

o “한미 FTA는 양국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고 한미관계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기회다”(9월13일 미국방문중 헨리 폴슨 미재무장관 면담)

o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국회가 무슨 밤낮없이 논의를 하고 있느냐. 서류 안 보여준다고만 논쟁할 뿐이지, 느긋하게 하고 있다. 제일 바쁜 데는 협상팀이다”(9월28일 MBC 100분토론)

o “우리 사회의 진보개혁 세력이 앞으로 정치적, 사회적으로 주도적인 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개방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2007년 1월23일 신년연설)

o “이라크 파병, FTA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사실은 인정하고 따질 것은 따지는 것이, 지식을 가지고 논리를 말하는 사람들의 자세다”(2월17일 청와대브리핑 기고문)

o “결코 한국은 미국화 될 수 없다. 한국 사람들 호락호락 하지 않다. 대원군, 대한제국 때 우왕좌왕 하다 무너지던 때와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이다. 지도자가 좀 뭣해도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다”

“한국이 협상을 너무 잘해서 오히려 안 열어주고 미국도 자꾸 열어달라고 애를 안써서 오히려 아쉬움이 있다. 협상이 끝나도 서비스 열리지 않는다면 주도적, 자발적으로 열어야 한다. (2월27일 인터넷매체 합동회견)

o “한미 FTA의 영향이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더 크고 국민도 더 불안해하는 등 양국 간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도 어려운 선택이었다”(3월7일 폴슨 미재무장관 접견)

o “FTA 체결을 안 할 수도 있고, 기간은 연장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고, 또 그 범위 안에서 높은 수준, 낮은 수준, 중간 수준, 이 모두를 전부 검토해서 철저하게 따져 국가적 실익, 국민적 실익 중심으로 가면 된다”(3월13일 국무회의)

o “염치도 없다. 한.미 FTA 하면 (농민들이) 또 돈 내놓으라고 하고, 한.중 하면 또 내놓으라고 하고,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FTA가 체결되고 나면 이 나라의 FTA를 반대하는 모든 정치인들과 직접 앉아서 토론할 것이다. 제일 하고 싶은 얘기가 거짓말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음 어느 쪽이 정권을 잡아도 안할 것 같았는데, 저는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정치적 손해 가는 일을 하는 대통령은 노무현 밖에 없다고 스스로 믿고 있기 때문에 특단의 의지로 결정했다”(3월20일 농어업분야 업무보고)

o “최후의 순간까지 국익을 위해 최선의 협상력을 발휘해달라”(3월30일 청와대 협상상황 보고회의)

o “최종 결정은 내가 내린다” -노무현 대통령(3월 29일 카타르 교민 초청 간담회)
(주1) 실무자 탓으로 책임을 돌리는 행위를 과거 독재정권에 적용하면 독재자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다 아랫사람들이 잘못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