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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폭등의 원인제공자는 연기금 펀드?

“그리고 어느 한 나라에서 금융공황이 발생하였을 때에 과연 그 폭발력은 어떠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분명하게도 그 폭발력은 연기금 등 노동자들의 자산에 의해 더욱 증폭될 것이다. 물론 연기금은 그 폭발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것이다. 노동자들이 미래를 위해 쌓아놓고 있는 연금, 보험과 같은 미래의 자산이 오히려 현재의 다른 노동자들을 해고시키는 M&A의 자산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 한 나라의 환율을 혼란에 빠트리는 환율조작의 자산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행여 있을지 모를 금융공황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몇 해 전에 어느 인터넷매체에 기고하기 위해 썼던 글의 일부분이다(원문보기). 그 글에서 연기금 펀드의 사용처로 예를 든 것은 M&A, 환투기 등이었는데 Business Week 에 올라온 기사(원문보기)를 보니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바로 ‘원자재 투기’

“그것은 5월 20일 국가안보와 국가문제를 위한 상원위원회의 청문회에서의 증언에 따르면 유가의 폭등의 원인의 상당한 부분이 상품시장에 돈을 들이부은 기관투자가들의 투기 때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연기금 펀드가 높은 유가를 가속화시키는가?, Business Week, 2008/5/21)
“That’s because speculation by institutional investors pouring money into the commodities market may be largely to blame for spiking oil prices, according to testimony on May 20 before the Senate Committee on Homeland Security & Governmental Affairs.”(Are Pension Funds Fueling High Oil?, Business Week, 2008/5/21)

“Financial Speculation in Commodity Markets: Are Institutional Investors and Hedge Funds Contributing to Food and Energy Price Inflation?”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 청문회에서 헤지펀드 스폰서인 Masters Capital Mgmt, LLC의 경영자 Michael Masters는 기업과 국가의 연기금 펀드, 국부펀드(주1) 등이 새로운 투기자로 득세하면서 이들이 각종 인덱스에 투기수요를 불러일으키는 주요원인이 되고 있다는 취지의 증언을 하였다. 정황적으로 최근 2~3년 사이 이들 펀드들은 상품시장에서 주요한 투기자로 나섰고 바로 이 시기에 유가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였다.

그나저나 왜 이 문제와 관련해 연기금 펀드가 특히 가격폭등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것일까? Masters 의 발언을 좀 더 살펴보자.

“그러나 청문회에서 Masters는 그가 전통적인 투기자와 인덱스 투기자 또는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장기 헤지의 수단으로 상품시장에 진입한 수동적인 투자자를 구분하였다. 상품거래소는 투자자들이 시장에서 취할 수 있는 포지션(주2)의 수를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Masters 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는 일종의 허점을 통해 이 시장들에서의 한도 없는 투기를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스왑 허점(swaps loophole)’ 덕분에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와 같은 투자은행들은 보고의무나 다른 투자자들에게는 적용되는 거래 포지션의 제한 의무로부터 면제된다. 그 허점은 연기금 펀드가 투자은행들과 함께 스왑 계약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선물시장에서 제한 없는 수만큼의 계약을 거래할 수 있다.”(연기금 펀드가 높은 유가를 가속화시키는가?, Business Week, 2008/5/21)
“But in the hearing, Masters distinguished between traditional speculators and what he calls index speculators, or passive investors who enter the commodities markets as a long-term hedge against inflation. Commodities exchanges limit the number of positions an investor can take in the market, but Masters says the Commodity Futures Trading Commission has allowed unlimited speculation in these markets through a loophole. This so-called swaps loophole exempts investment banks like Goldman Sachs (GS) and Merrill Lynch (MER) from reporting requirements and limits on trading positions that are required of other investors. The loophole allows pension funds to enter into a swap agreement with an investment bank, which can then trade unlimited numbers of the contracts in futures markets.”(Are Pension Funds Fueling High Oil?, Business Week, 2008/5/21)

정리해보자면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투기수요 급증과 이에 따른 가격폭등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규정상의 허점과 감독소홀
– 달러 약세와 이로 인한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수요 증가
– 위의 요인들로 인한 상품시장의 확대(최근 5년간 20배의 규모로 성장)
– 이에 따른 수요급증, 그리고 가격폭등(지난 5년간 인덱스 펀드의 석유수요는 중국의 그것과 유사한 규모로 증가)

정치가들의 이러한 행보는 물론 소비자들의 후생과도 긴밀히 연결되지만 또한 제조업자, 운송업자와 같은 산업자본의 금융자본에 대한 공격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바로 전미정유업자조합(the Petroleum Marketers Association of America)과 같은 이해당사자가 의회에 에너지 시장에서의 투기행위에 대한 감독을 요구한 것이다.(주3)

물론 이러한 투기적 요인도 가격상승의 원인이지만 석유자원의 궁극적인 고갈이 멀지 않았다는 소위 Peak Oil 주장도 만만치 않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이러한 주장이 점점 현실성을 더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수요-공급 요인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 가격상승의 요인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 그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여태 말한 연기금 펀드, 헤지펀드, 투자은행 등 주요투자자들의 시장참여에 따른 과잉 유동성이라고 본다. 가격상승을 예상하여 투자했는데 가격이 오른 것인지 가격상승을 예상하고 몰려든 것이 가격을 올린 것인지 굳이 선후관계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을 만큼 여러 정황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였다고 여겨진다.

유가가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며 서민들의 주머니를 갉아먹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석유는 고갈되고 있고 대체자원의 개발은 만만치 않고(주4) 달러약세는 반전되기 어렵다. 그 상황에서 투자자 혹은 투기자들은 이른바 ‘대체투자(alternative investment)’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관건은 그나마 정책당국이 그러한 투기수요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제하여 거품을 줄여나가느냐 하는 정도에 달려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말이다.

참고글

(주1) 고유가에 따라 산유국의 국부펀드가 가장 공격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점은 매우 특이한 모양새다

(주2) 매도와 매수행위를 좀 폼나게 부르는 방법으로 시장에서 매수계약을 보유한 것을 롱포지션(Long Position)이라 하고 매도계약을 보유한 것을 숏포지션(Short Position)이라 한다

(주3) 물론 모든 석유자본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엑슨모빌과 같은 거대석유기업은 고유가로 말미암아 천문학적인 수입을 만끽하고 있다.

(주4) 사실 원유는 단순한 에너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 현대 자본주의의 감초라 할 수 있다

한국 증시를 타깃으로 하는 헤지펀드

한국 증시를 타깃으로 하는 헤지펀드가 생긴다. 싱가포르에 소재해 있는 한리버 코어 펀드는 3천만 달러를 자산으로 펀드를 시작하여 하여 첫해 5천만 달러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이 펀드는 중장기적으로 다른 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하겠지만 초기에는 오로지 한국시장만을 다룰 예정이라 한다.

펀드의 목표수익률은 연간 20%다. 이들이 구사할 전략은 주식시장에서 매수(Long)와 공매도(Short) 전략을 동시에 활용해 안정적인 수익률을 추구하는 일종의 차익거래의 개념인 롱숏(Long-short) 전략(롱숏 전략에 대한 참고 글)이다.

이들이 왜 유독 한국시장에 투자를 하겠다고 할까? 우선 첫 번째 이유는 한리버의 경영진이 세 명의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 경영진의 성이 모두 한국 성인데다(Klaus Kim, Shawn Kim, Eunice Lee) 신한은행에서 함께 일하면서 처음 만났다 하니 필시 한국인들이 의기투합하여 싱가포르에 이 회사를 설립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최근의 한국 주식시장 폭락이 저가매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 둘째 새 정부의 탈규제 정책이 기업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 셋째 한국시장이 롱숏 전략에 적합하게 이른바 ‘부문간 순환 거래(sector-rotating trading)’의 경향이 있다는 점 등이다. 아마도 세 번째 언급은 이른바 테마주에 자금이 쏠리고 손바꿈이 심한 현상을 일컫는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이 펀드에 구체적인 연기금의 이름이나 투자규모는 밝히지 않고 있으나 ‘한국의 연기금(Korean pension funds)’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적인 자금운용이 특징인 연기금이 헤지펀드와 짝을 맺는 경우는 최근 들어 두드러진 현상이었으나 한국의 연기금이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역시 이례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순수 국산 헤지펀드의 설립을 용인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라 향후 이러한 현상이 보다 일반화될 가능성은 높다. 이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 펀드 역시 싱가포르에 런칭되었다 뿐이지 한국인들이 경영진인 회사에서 대부분을 한국 기관의 투자금으로 한국 증시에 투자하는 한국 펀드이다. 소위 말하는 ‘검은 머리의 외국인’이다.

금융 세계화의 한 에피소드로 기록해놓을 만하다.

관련기사 보기

노동자의 돈이 노동자를 목조르는가

2년 전에 쓴 글인데 ‘어쩌면 이미 사회주의 세계일지도’라는 제 글에 달린 이승환님의 댓글에 대한 답변으로 다시 퍼 올립니다.

얼마 전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주식투자 문제가 불거지자 박근혜씨를 비롯한 한나라당 수뇌부들은 이러한 시도가 소위 ‘연기금 사회주의’적인 조치라며 반발하였던 적이 있다. 당시 연기금의 자금동원이 연기금 자체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증권시장의 부양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추측이 강하게 일었고 결과론적으로 연기금의 전면적인 주식투자는 유야무야 되었지만, 이는 연기금이 한 나라에서 차지하는 꽤나 독특한 지위를 잘 말해주는 에피소드였다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가 노동자의 노후를 보장해주는 이른바 퇴직금 성격의 각종 연기금은 독일을 통일한 비스마르크의 작품이다. 또한 기업연금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적었던 미국을 중심으로 1차 대전 이후 발전해왔다. 이러한 제도는 날로 성장해가는 노동계급의 강성기조를 누그러트리기 위한 기회주의적인 조치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지만 어쨌든 이후 자본주의가 발전해감에 따라 연기금은 각국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국가 또는 기업의 공적 부조의 기본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 연기금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미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증권시장에 연기금을 재원으로 하는 펀드가 등장하였고 1940년대에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제네럴 모터스(General Motors : GM)의 찰스 윌슨(Charles E. Wilson) 회장이 기업 연금 도입에 앞장섰던 인물이라고 한다. 한편 경영 전문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이에 대해 “연기금 펀드가 주식에 투자하면 몇 년 안에 미국 내 주요기업의 소유주가 노동자가 될 것”이라고 엄살을 떨었고, 한때 미국의 전설적인 노동 투사 유진 뎁스(Eugene V. Debs)를 위해 선거운동을 했었던 윌슨 회장은 “바로 그렇게 돼야한다”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세계 최대기업의 우두머리가 실은 사회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는 낭만적인 추측도 해볼 수 있는 이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이미 미국의 경우 193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최근에야 일어났던 논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것의 사회적 함의는 차치하고서라도 연기금의 규모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한 나라의 전체 부(富)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 우리의 경우도 국민연금은 자산규모가 110조 원대에 달하여 한 해 예산을 넘어서고 있을 정도다 – 그것이 그 나라의 증권시장 또는 기타 자금시장에 본격적으로 투입될 때는 무시 못 할 주요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196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의 증권시장에서는 탄광노조가 1,600만 달러의 주식에 투자하였고 연방정부의 예산이 1천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1961년 미국 전체 무보장 연기금 펀드가 174억 달러 어치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등 연기금 펀드는 시장에서 막강한 플레이어로 활약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미국이 사회주의 국가인 것은 아니다. 보다 교묘해진 기업의 지배구조는 실질적으로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예언이 엄살이었음을 말해줄 따름이다. 오히려 노동자의 돈이 펀드에 투임 됨에 따른 예기치 못한(?) 부작용의 개연성만 늘어났다.

그와 관련해서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주요한 시사점 하나는 각종 자금들이 갈수록 서로 얽히게 됨에 따른 연쇄금융공황의 가능성이다.

신자유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전 세계의 미국화이다. 그렇다면 증권시장 역시 미국의 예를 따라가는 것이 순서이다. 뮤추얼 펀드는 1924년 처음 월스트리트에 등장하였다. 우리는 최근 몇 년간 크게 유행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은 1930년대에 연기금을 펀드에 투입하였다.

우리 역시 일부나마 연기금의 주식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변액보험 등 이른바 간접투자 상품도 크게 유행하고 있다. 알다시피 얼마 안 있으면 우리의 퇴직금도 DB형이다 DC형이다 하면서 증권에 투자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날이 갈수록 많은 나라의 연기금이 증권투자, 그것도 고위험 고수익 위주의 헤지펀드에 돈이 맡겨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전의 일반인 주식투자와 다른 점은 소위 간접투자라는 명목 하에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투기자본의 탄알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NHK에서 제작하고 방영한 ‘투기금융자본의 실체’라는 다큐멘터리에는 한 씁쓸한 에피소드가 소개되고 있다. 일본의 문구점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연금은 연금의 운용수익률이 저조하자 이 돈을 헤지 펀드에게 위임하였다. 헤지 펀드는 이 돈을 일본 증권시장에 투자하여 모처럼 문구점 연금에게 좋은 수익률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헤지 펀드의 투자방법이 주가가 떨어질수록 돈을 버는 ‘공(空)매도’라는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연금의 한 임원은 ‘우리가 일본의 주가가 떨어진다고 좋아해야할 상황이라 기분이 묘하다’는 발언을 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원소유주로부터 멀어진 자산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에 작용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해관계는 좀 더 복잡해진다. 어느 개인 스스로야 증권시장이 활황이어서 경제도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그의 돈은 주식폭락에 베팅되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점점 더 많은 노동자의 연기금 또는 보험금이 이렇듯 더 높은 수익률을 쫒아 헤지 펀드를 통해 유가증권 시장에 투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것이 전통적이고 단순하게 우량주를 중심으로 지수를 선도하며 투입된다면 별무 상관없겠지만 문제는 만일 펀드의 자금운용책임자가 돈을 헤지펀드에 맡겼을 경우 고위험 고수익을 전략으로 삼는 헤지펀드는 그 돈을 공매도, 환율변동에 대한 베팅, 적대적 M&A 등 사회전체의 부의 증가나 건전한 기업의 자금조달과는 별반 상관없는, 오히려 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점점 더 많은 소위 정상적인(?) 펀드들마저 이러한 머니게임에 동참할 수밖에 없게끔 채권시장 등의 수익률도 악화되어가고 있다.

얼마 전 흥미로운 외신 기사가 있었는데 앞서 언급했던 GM에 관한 뉴스이다. 최근 GM은 퇴직연금의 지급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확정급여형(DB) 방식을 취한 이 회사의 보수적인 투자운용으로 말미암은 수익성 악화 탓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가 동일하게 우리의 국민연금에게도 고민거리인 셈이다. 전 세계의 실질적인 경제성장이 저성장 또는 정체인 상태에서 연금을 지급할 수혜대상을 늘어가는 상황이고, 그것은 곧 각국의 주요 연기금마저 헤지 펀드에 돈을 맡기고 싶을 유혹이 커질 수 있는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미국의 증권시장으로 돌아가 보자.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은 허다한 이유가 있겠으나 마진론을 기반으로 한 일반인들의 봇물 같은 주식투자도 한 몫 하였다. 이후 몇 번의 대공황과 같은 위기가 미국에 있었으며 그것이 비록 1929년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자본주의 금융시장의 무정부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이 금융자유화로 인해 전 세계가 동일한 원리에서 움직여갈 때에, 그리고 어느 한 나라에서 금융공황이 발생하였을 때에 과연 그 폭발력은 어떠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분명하게도 그 폭발력은 연기금 등 노동자들의 자산에 의해 더욱 증폭될 것이다. 물론 연기금은 그 폭발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것이다.

노동자들이 미래를 위해 쌓아놓고 있는 연금, 보험과 같은 미래의 자산이 오히려 현재의 다른 노동자들을 해고시키는 M&A의 자산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 한 나라의 환율을 혼란에 빠트리는 환율조작의 자산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행여 있을지 모를 금융공황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실제로 그것이 전체 투기자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겠지만 비중이 늘어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개인투자자의 증권게임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연기금이나 변액보험의 높은 수익률로 기뻐하고 있을 즈음 어느 누군가는 아파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세계화된 금융시장의 고통스러운 자화상이다.

인수위를 보면서 민영화의 본뜻을 곱씹어본다

적어도 인수위 내에서는 금산분리 완화 조치가 당연시되고 있는 분위기다. 언론은 금감위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자신들의 몇 개월 전의 강경한 금산분리 철폐 반대 입장에서 선회하여 금산분리 완화에 찬성하였다는 보도를 흘렸다.(주1) 경제신문은 금산분리 완화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철폐”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그것이 가지는 함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인수위 측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금산분리 철폐의 궁극적인 대상은 우리금융지주회사이고 이를 노리는 자는 삼성이라는 것이 통설인데 삼성에 대한 저잣거리의 눈길은 얼어붙을 듯이 싸늘하다.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허가하면 싱가폴의 테마섹과 같은 외국의 산업자본들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는 비판도 있다.

그래서 인수위는 현재까지는 지난번 이명박 당선자가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이야기했던 부분을 되풀이하고 있다. 즉 대기업의 참여에 대해서는 일정정도 불이익을 줄 것이고 그 대신 중소기업의 컨소시엄이나 연기금의 참여를 고려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제개혁연대는 성명을 통해 이러한 주장이 근거가 박약하다고 비판하고 있다(관련기사).

우리금융지주회사와 같은 큰 물고기의 경우 중소기업 컨소시엄으로도 펀딩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고 국민연금 등이 참여할 것 같으면 적극적인 주주행사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 정부는 ‘중소기업 컨소시엄’론으로 일부 지방은행을 떡밥으로 던져주고 궁극에 우리금융지주회사, 더 나아가 산업은행 등을 거대 산업자본의 사냥감으로 던져줄 개연성도 있다는 점에서 경제개혁연대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다소 애매한 점이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의 은행소유 론인데 현재 이들 연기금을 산업자본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의아한 점은 왜 연기금, 대표적으로 국민연금은 때만 되면 다 자기들 주머니인양 여기 투자한다 저기 투자한다 하는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형식상으로는 국민연금이 자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하는 대외선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으로부터 이 돈이 자유롭지 못하고 정치권이 정책집행수단으로 이 돈을 탐내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박근혜 씨로부터 ‘연기금사회주의’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주식투자비중과 BTL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높이려 했다. 대외적인 변명거리는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 제고였지만 속셈은 주식시장과 경기부양이었다.(주2)

새 정부가 과연 금산분리를 완화한 후 정말 국민연금이 은행을 소유하게끔 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어설픈 점쟁이 노릇으로 굳이 예측해보자면 중소기업 활용론과 국민연금 활용론을 들먹이다가 앞서 경제개혁연대나 박근혜 씨가 주장하고 있는 논리에 물타기를 하며 거대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정당화해버릴 수도 있다.

여하간 새 정부의 입장은 현재로서는 참여정부와는 약간 다른 입장에서 국민연금을 바라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의료보험 등과 싸잡아 공적부조에 대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벌써 인수위는 참여정부가 작년에 추진키로 한 실손형 민영의보 폐지정책을 무효화시킬 것을 공언하였다(관련기사). 해당 조치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 보험업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각종 공적연금도 마찬가지 노선을 걸을 가능성도 있다. 즉 공적연금의 폐지와 민간연금의 전면 확대가 그것이다.(주3) 때마침 기금운용 등 공적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도 극에 달해 있다. 게다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공적연금과 의료보험이 현재와 같은 추세로는 멀지 않은 시기에 재원이 고갈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관련기사). 그렇다면 시장친화적인 새 정부의 선택은? “골치 아프게 우리가 갖고 있지 말고 민영화시켜버리지!”

금산분리도 넓게 보면 민영화고 의료보험, 우정사업도 민영화하겠다고 한다.(주4) 이러한 민영화 쓰나미(아직 이 표현 쓰기는 좀 그런가?)의 논리는 제법 설득력이 있다. 관료주의, 정부의 비효율, 재원고갈 등 각종문제점을 좌파적인 反시장 정책의 결과로 비판하고 시장기능 활성화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논리일 것이다. 이는 상당부분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상당부분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영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엄밀히 지금 민영화에서 ‘민(民)’이라는, 즉 백성이라는 주체가 개입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사실 백성은 소위 ‘공공(公共)’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는 공공에 대한 영단어 public이 바로 라틴어(語)의 푸블리쿠스(publicus:인민)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공공이라 함은 그것이 정부의 형태를 취함에 있어 인민이 권력을 신탁한 것이라 보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이렇게 보면 ‘공’과 ‘민’은 사실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정시기를 거치며 공공 또는 국가소유의 재산을 기업에 불하하는 것이 ‘민영화’라는 인식과 거의 동일시되었는데 이는 실질적인 ‘민’이라 할 수 있는 대의체가 너무 미약한 탓이다. 결국 일부 시민사회가 일부 기능을 수행하기는 하였으나 절대다수의 정부기능의 민영화는 곧 기업으로의 민영화, 엄밀하게는 사유화(私有化)를 의미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재미있는(?) 말장난인데 민영화의 어원인 privatization 은 사실 앞서 표현인 사유화로 함이 맞다. 그러니까 사적인 주체가 소유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영화하면 민간이 운영을 한다는 운영의 개념으로 대체된다. 표현이 급격하게(!) 순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결국 지금 사회여론은 어떤 이유에서건 민영화(사유화 whatever)에 대해 그리 적대적이지 않다. 문제는 그 공적기능을 떠안을 주체가 백성 중에서는 가장 강한 기업이라는 백성밖에 없다는 점이다. 은행이든 연금이든 의료보험이든 우리나라와 같은 가당찮은 시민사회서 뿐만 아니라 제법 헛기침 좀 한다는 서구사회에서조차 기업에 비해서는 절대적인 열세다.

그래서 제시되는 것이 연기금의 사회적 책임투자(주5), 자본과의 사회협약,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등의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을 정치적 세력이 유의미하게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 현재 시점에서의 우리나라의 정치적 지형도는 암담하다. 보수 세력이 국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그나마 진보정당이라고 자처하는 세력이 지리멸렬이다. 인민은 스스로가 공적연금, 은행, 기타 여하한의 생산수단의 운영주체임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이들에게 권력을 신탁하여 버렸다.

 

(주1) 다른 보도에서 금감원은 이를 부인하였다.

(주2) 요즘은 사모펀드와 해외자원개발펀드에까지 투자하고 있다. 투자다변화는 좋은데 이런 위험도 높은 사업에 투자할 능력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주3) 이렇게 공적연금을 아예 폐지한 대표적인 사례로 칠레가 있고 서구언론에서 연금개혁의 성공사례로 칭송받고 있다.

(주4) 기타 통신 등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수위조절을 하겠다고 한다.

(주5) 연기금 자체가 민영화의 공격대상이라는 점에서 약간 도돌이표 식인데 결국 연기금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보면 실질적인 ‘민영화(own by public)’이라는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현존재니까

연기금 주식투자 옳은 일인가?

‘연기금 주식투자 옳은 일인가’ 라는 질문에 우선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누구를 위한 연기금 주식투자인가 하는 문제이다. 즉 Orientation 과 Destination 이 확실하게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Orientation 은 국민의 돈이고 Destination은 연기금이 고갈되지 않고 실질적인 노후보장 방안으로 자리매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기금 주식투자라는 의제 역시 지난번 행정수도 이전처럼 이러한 당연한 수순이 배제된 채 정치논리에 의해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지난번 행정수도 이전 논쟁에서의 문제점은 정부와 여당이 충청권 득표 전략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상정해놓고 뒤에 가서야 타당성 분석을 끼워 맞추는 식으로 진행되었고 이로 인해 사회적 반발과 국론분열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 있다. 이번 연기금 주식투자도 마찬가지이다. 주식투자의 논리는 연기금의 고갈위험에 대한 대비책의 차원에서가 아닌 시장 활성화라는 부수효과에 관심이 맞춰져 있다는 이야기다.

오늘자 언론보도에 따르면 노 대통령이 “현재 1백조 정도 연금기금이 있는데 이 돈이 묶여 있으면 결국 경제법칙에 의하면 수요를 줄이는 것”이라며 “정부에서 쓰자는 게 아니고 우선 주식투자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거 풀지 않으면 경제가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 발언에서도 이미 그의 생각은 연기금의 효율적 운용은 뒷전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분명 연기금이 쌓이게 되면 시장에서 돈의 흐름이 왜곡될 여지는 있다. 즉 연기금에 돈이 쌓이지 않았더라면 돈이 보다 고위험 고수익의 투자처로 흐를 개연성이 있을 텐데 연기금의 고유한 특성으로 말미암아 저위험 저수익의 투자처로 돈이 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주식시장 등 살벌한 전쟁터에서의 총알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정책운용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논지다.

그러나 그러한 논지는 연기금의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연기금이 시장을 왜곡시키리라는 것은 이미 연기금 제도 수립 당시부터 불문가지의 사항이었다. 정부는 시장의 실패로 말미암은 사회안전망의 부재를 보완하고자 연기금을 설치한 것이고 그로 인해 시장의 왜곡은 불가피한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경제법칙 운운하는 것은 노 대통령이 시장 무한자유주의에 경도되었다는 사실만을 확인해주는 꼴이다.

한편으로 연기금을 주식투자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주식시장이 장기적으로 반드시 우상향할 것이며, 주식수익률이 채권수익률을 상회한다는 경험적 수치를 근거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기적(?)인 상승경향이 보여주는 모습의 근본한계는 그 ‘장기’의 정확한 기간 산정이다. 물론 우리나라 역시 80년대에 비해서는 주식수익률이 높다 하겠으나 그 중 외환위기 기간의 하락폭은 국가의 존망을 좌지우지하지는 않았어도 연기금의 존망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파괴력은 있는 정도이다. 그 와중에 만약 연기금이 그 이전부터 주식투자를 했더라면 연기금 투자결정 단위는 주식이 2004년에는 분명히 오를 것이므로 손절매 하지 않겠다고 하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또 하나 외국에서는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율이 우리나라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백번양보해서 그러한 추세에 맞춰 주식투자 비율을 높인다 할지라도 물러서지 못할 부분이 있다. 미국마저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Social Security 는 전액 국공채에 투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기타 주정부 차원에서의 퇴직연금, 공무원 연금이 기금활용에 주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무원 연금이 Social Security 보다 수익률이 높으므로 더 좋다는 주장도 있으나 Social Security 가 수익률 7%, 가장 수익률이 좋다는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이 15%인 정도를 감안하면 주식시장의 폭락위험을 감수해가면서까지 8%의 추가수익을 바라본다는 것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도박이다.

서두로 돌아가서 연기금의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다. 주식투자, 채권투자, 미국 채권 투자, SOC 투자 등 갖가지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 요는 지금의 논의가 연기금을 납부한 국민의 안녕을 위해서가 아닌 시장의 탄알 보충을 위한 수단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해찬이나 노무현이나 다 연기금을 자기 주머니인양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막말로 연기금의 투자운용 결정은 연기금 투자위원회에서 할 일이다. 총리나 대통령이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총리나 대통령이 연기금에 낸 돈이 한 40% 정도 되면 또 모를까 그 돈은 전 국민이 십시일반 노후를 대비해서 낸 돈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