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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vs 애플 특허소송’에 대한 또 다른 관전 포인트

사실 누가 봐도 최근 몇 년 사이의 삼성의 스마트폰은 애플의 아이폰과 닮았다. “앱등이의 글일 뿐”이라고 어떤 분이 폄하하기도 했지만 이 글을 보면 그러한 의혹은 점점 더 짙어진다. 애국주의다, 보호주의다, 삼성이 자초한 일이다, 지재권의 보호 범위가 애매하다 등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는 이번 판결은 어쨌든 지적재산권에 대한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는 계기가 된 판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특허권이나 지적재산권이 창조자의 권리를 적절하게 보호해주고 있는가, 그것을 보장해줌으로써 시장의 효율을 증대시키고 있는가 하는 회의적 시각은, 이제 지적재산권 자체를 부정하는 급진적 진영뿐만 아니라 경제에 대한 주류적 가치를 인정하는 이들에게조차 확산되고 있다. 즉, 특허나 지재권에 대한 기업의 과용 및 오용이 오히려 그것이 보호하거나 도모하고자 했던 것들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특허권의 확산은 세 가지 방식으로 대중에게 피해를 입힌다. 첫째, 이는 테크놀로지 기업들이 시장에서보다는 법정에서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정확하게 발생하게 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둘째, 기존 기술을 사용하지만 또한 그것을 가지고 뭔가를 만드는 회사에 의한 후속적인 개선을 방해할 것이다. 셋째, 미국의 특허 시스템의 더 광범위한 문제들을 가속화시킨다. 예를 들면 특허 트롤(troll)들(실제로 어떠한 것도 만들 의사가 없는 특허 보유자에 의한 투기적인 소송들); 방어적인 특허출원(주로 경영비용을 증가시키는 소송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특허 취득); 그리고 “혁신 정체”(너무 작은 특허들이 너무 많은 참여자들에게 퍼져있기 때문에 새로운 단일 생산물을 창조하기 위한 복합적인 기술을 조합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Apple v Samsung, iPhone, uCopy, iSue]

이코노미스트의 이 기사가 바로 이 시스템을 지지하고 있는 주류의 고민을 잘 말해주고 있다. 창조자의 권리를 정당하게 보호해주고, 이를 통해 창의를 도모하여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특허 시스템이 이제 스스로 몸집이 커지고 모순에 빠져 더 큰 시스템의 발전을 훼방 놓는 심술꾸러기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즉, 특허 시스템의 배타적인 권리 보호가 경제 순환에 일종의 동맥경화 증상을 초래하고 있다는 판단인 셈이다.

오늘날 통상적인 지혜로는 베끼는 것은 창조성에 나쁜 것이란 생각이다. 그 생각은 만약 우리가 사람들이 새로운 발명품을 베끼도록 허용한다면, 아무도 처음에 창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카피캣은 새 아이디어들을 개선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이익의 대부분을 뺏어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특허와 저작권이 기반을 둔 이유다. : 베끼는 것은 혁신을 위한 동기를 파괴한다.[In Praise of Copycats]

월스트리트저널의 “모조품 경제 : 어떻게 모방이 혁신을 일으키나”라는 책 소개 글이다. 책은 후발주자의 모방에도 불구하고 번창하는 산업들의 예를 통해 특허와 저작권이 가지고 있는 근본철학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밌는 것은 이번 소송의 승자 애플의 창시자 스스로가 모방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위대한 아이디어를 훔친 것에 대해 언제든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애플은 혁신을 전혀 멈추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iMac을 내놓았고, OS X(“레드몬드, 복사기를 가동시켜.”)를 내놓았고, 그리고 iPod를 내놓았다. [중략] 만약 베끼는 것이 혁신을 멈추게 한다면, 왜 애플은 그들이 카피를 당했을 때 혁신을 멈추지 않았는가? 모방 당하는 것은 어떡하든 혁신하고자 하는 그들의 능력을 멈추게 하거나 지연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가속화시켰을지도 모른다. 애플은 월계관에 안주할 수 없었던 것이다.[Who Cares If Samsung Copied Apple?]

오히려 다른 이의 모방이 애플을 혁신하게 추동했다는 이 가정은 조금은 극단적으로 들리기는 한다. 하지만 결국 애플이 오늘날 IT업계의 최강자로 나서게 된 근본적 이유는 어쩌면 자신들의 그들의 특허를 보호하려는 수동적 자세보다는 모방을 통한 창조와 혁신을 멈추지 않은 적극적 자세 덕분일 것이다. 애플이 처음에 제록스의 GUI를 흉내 냈을 때 제록스가 특허권 보호를 들어 법정이 그것을 막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erte님이 아래와 같이 제보해주셨는데

글 재미나게 잘봤습니다. 다만 끝에 나온 제록스 관련 이야기는 적절한 예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애플이 제록스에게 주식을 싸게 양도하고 저 권리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록스가 애플에게 소송을 걸었는데 졌다네요…

사실 확인을 해보니 erte님 말대로 제록스는 애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이 판결을 통해 소송에서 졌다고 한다. 말씀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당초 내가 쓴 원문의 취지가 본질을 크게 왜곡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되어 원문을 살려두고 이 각주를 글 밑에 붙여두기로 한다. 제보해주신 erte님께는 foog.com 평생 무료구독권을 드리고, foog.com 본사 경비실에서 찾아가세요.

물론 애플과는 규모가 다른, 이제 막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벤처기업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대기업이 모방하여 시장을 빼앗아가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다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 또는 노동자에 대한 특허 시스템은 기존의 시장 지배력에 대한 역학관계와 함께 다뤄져야 할 것이다. 이미 특허는 자본가에게 있어 일종의 “생산수단”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의 독점과 과보호는 독점자본주의를 강화시킨 것이 여태의 역사다.

1981년 출시된 Xerox 8010 Star의 그래픽유저환경(출처)

공정거래법 개정은 “삼성은행”의 길을 열어주려는 것인가?

어제 서태지가 이지아와 결혼을 한다는 것도 아니고 이혼소송 – 정확하게는 위자료 소송 – 중이라는 황당한 뉴스가 인터넷과 매스미디어를 정복하였다. 그 와중에 깨어있는(?!) 많은 네티즌들은 이런 대형 뉴스가 터진 것은 필시 다른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음모라면서 그 다른 무엇으로 BBK 사건 관련 판결 소식과 공정거래법 개정에 관한 소식을 지목하였다.

그런데 위의 트윗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BBK와 공정거래법 관련하여 몇몇이 주장하고 있는 중에 사실관계와 부합하지 않는 부분도 있음을 유의하여야 한다. 언제나 정신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려는 태도는 좋으나 때로는 지나친 강박이나 잘못된 사실관계를 통한 억측으로 인해, 기득권으로부터 아마추어의 음모론에 불과하다는 놀림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에 관한 혹자의 주장은 이 법의 개정이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 정책의 일환이고, 이로 인해 삼성이 은행을 소유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큰 흐름에서 보자면 현 정부의 금산분리 기조가 장래에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본 사안과 국한해서 보자면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시나리오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정하고자 하는 법률은 공정거래법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일반지주회사가 금융회사를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아래 조항을 개정하려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008년 발의된 이 개정안은 지난해 4월 여야 합의로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를 통과했으나 특혜시비 등이 불거지면서 법사위에서 1년 남짓 계류되던 상황이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8조의2(지주회사 등의 행위제한 등)
5. 금융지주회사외의 지주회사(이하 “일반지주회사”라 한다)인 경우 금융업 또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국내회사의 주식을 소유하는 행위. 다만, 일반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설립될 당시에 금융업 또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국내회사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때에는 일반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설립된 날부터 2년간은 그 국내회사의 주식을 소유할 수 있다.

개정안은 위의 조항을 수정한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보유 허용과 금융부분 규모가 클 경우 중간금융지주회사 의무화, 증손회사 지분율 요건 100%에서 20%(비상장회사 40%)로 완화, 지주회사 행위제한 유예기간 ‘2+2년’에서 ‘3+2년’으로의 연장 등을 담고 있다. 현재 이러한 개정으로 인한 수혜기업은 금융자회사를 거느린 SK, CJ, 두산 등으로 알려져 있다.

예로 지주회사인 SK주식회사는 현재 SK증권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 대신 2010년 12월말 현재 SK증권 지분을 각각 22.7%, 7.7%인 SK네트웍스와 SKC의 지분을 각각 39.12%, 42.5%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법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SK네트웍스와 SKC는 지분을 전량 매각하여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매각명령과 함께 엄청난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주1)

이와 관련하여 SK그룹의 최태원 회장과 청와대의 정진석 정무수석이 저녁자리를 가졌고, 정 수석이 법사위의 박영선 의원에게 전화해 법안의 처리에 대해서 물은 사실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본인은 그러한 만남이 이 법의 개정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발뺌하고 있는 상황이나 박지원 민주당 대표는 적정한 해명 없이 그냥 개정해주지 않겠다는 상황이다.

이제 공정거래법의 개정으로 삼성은행이 탄생할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자. 한마디로 안 된다. 물론 은행은 금융업에 해당하기에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 기업의 은행소유의 길이 가까워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은행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이들 법은 비금융주력자의 주식보유를 제한하거나 승인사항으로 하고 있다.

금융지주회사법
제8조의2(비금융주력자의 주식보유제한 등) ① 비금융주력자(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 제14조의2의 규정에 의하여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등에서 제외되어 비금융주력자에 해당하지 아니하게 된 자로서 그 제외된 날부터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간이 경과하지 아니한 자를 포함한다. 이하 제2항에서 같다)는 제8조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은행지주회사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9(지방은행지주회사의 경우에는 100분의 15)를 초과하여 은행지주회사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다.  <개정 2009.7.31>
②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비금융주력자가 제1항의 한도(지방은행지주회사의 경우를 제외한다)를 초과하여 보유하고자 하는 은행지주회사의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아니하는 조건으로 재무건전성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요건을 충족하여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얻은 경우에는 제8조제1항 각호외의 부분 본문에서 정한 한도까지 주식을 보유할 수 있다.  <개정 2008.2.29>

은행법
제15조의2(비금융주력자의 주식보유에 대한 승인 등) ① 비금융주력자가 해당 은행(지방은행은 제외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의 최대주주가 되거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임원의 임면 등의 방법으로 해당 은행의 경영에 관여하는 경우로서 은행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4를 초과하여 주식을 보유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② 금융위원회는 제1항에 따른 승인을 할 때 해당 은행 주주의 보유지분분포·구성내역 등을 고려하여 해당 비금융주력자가 은행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하여 사실상 영향력 행사의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는 경영관여 등과 관련하여 필요한 조건을 붙일 수 있다.

그러므로 삼성이 법 개정으로 이득을 얻을 것이 있다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금융계열사가 10개나 되어 금융지주회사법의 적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금융부문과 비금융부문이 완화됨으로써 경영권 승계에 중요한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재용 씨도 그날 술자리에 있었다는 주장도 나온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바 금산분리는 명확하게 지켜지고 있는가? 나는 오히려 공정거래법 개정보다 론스타 펀드의 외환은행 소유 관련 사안이 과연 금산분리가 지켜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정황으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론스타 펀드의 갖가지 의문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비금융주력자로 볼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아직도 이 의문투성이의 – 이지아의 과거보다 더 베일에 싸여 있다 – 펀드의 진짜 투자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자유선진당의 임영호 의원은 2003년 9월과 올 3월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시 두번 모두 론스타의 특수관계인 중 산업자본으로 판단할 수 있는 26~34개사가 누락됐다고 주장하였으나 금융위원회는 여전히 딴청을 부리고 있다.

오늘날 간접투자, 세계화, 증권화가 일반화되어 있는 자본시장에서 사실 몇몇 법률을 통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갈라 세우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할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명분은 분명함에도 론스타와 같은 펀드가 적정히 통제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수단이 마련되지 않거나 정책당국이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한다면 그것이 더 큰일인 것이다.

(주1) 하지만 이 경우에도 SK는 지주회사 외부의 계열사에게 주식을 넘겨서 큰 피해가 없을 것이고, 공정위의 그간의 행적으로 볼때 징계가 솜방망이에 그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를 쓰고

며칠 전 블로그에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라는 글을 올린 후 자칭 ‘댓글의 무덤’ 블로그에 적지 않은 댓글이 달리는 이변이 발생했다. 내 글의 냉소에 재밌어 하시는 분이 많았고, 일부 불편하시는 듯한 분도 계셨고, 또 극히 일부 ‘반어법’ 자체를 이해 못하시는 분도 계셨다. 아무렴 글이야 쓰는 사람의 손을 떠나가면 감상은 읽는 자의 몫이니 이를 탓할 일은 아닌 듯싶다.

여하튼 냉소적인 톤에 조금 불편하셨을 분도 있을 것 같아서 노파심에 한마디 변명하자면, 사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독후감을 쓰려고 생각한 순간부터 반어법이 아니라면 독후감을 쓸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썼다. 너무 악취가 심한 이 암담한 현실에 무력감이 어깨를 심하게 짓눌러, 냉소가 아니라면 탈출구가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사실 희극이라는 장르는 부조리한 현실을 어쩌지 못해 그것을 웃음으로라도 승화시키고자 발달한 장르로 알고 있다. 그래서 가진 자들과 모순된 현실에 대한 풍자가 희극의 최고봉으로 여겨져 왔다. 예를 들어 찰리 채플린의 ‘독재자’나 조나산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풍자를 통해 그 어떤 직설적인 비판보다 더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각설하고 또한 노파심에서 한마디 더하자면 나의 글은 당연히 삼성이라는 기업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또한 삼성의 노동자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삼성일가의 노력(무시하지 못한다), 삼성 노동자의 희생, 사회적 뒷받침 등 모든 노력들의 총합체인 삼성이라는 기업은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고마운 경제주체이다. 이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자본주의 독점기업 상당수가 그러하듯이 – 다만 유독 삼성이 두드러지게도 –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삼성은 – 보다 정확하게는 삼성일가와 그 하수인들이 – 권력의 매수 등 불법적/탈법적 수단을 통해 사익(私益)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고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는 – 아니 옮겼다고 추정되는 –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책에서도 김용철 씨가 주장하고 있듯이 그러한 각성은 반기업적/반자본주의적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장 친기업적이고 친자본주의적 행위랄 수도 있다.(물론 자본주의 실재와 그 이상향이 일치하지 못한다는 반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 입장에서 비판할 수도 있고) 즉 역설적으로 주주자본주의의 이해에 가장 반하고 있는 이는 책에 따르면 삼성일가일 것이다.

그들의 행동은 자본주의적이라기보다는 봉건적이다. 소수지분을 가지고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에 대한 지배구도를 확립한 후 편법적인 장난질을 통해 엄청난 부를 친자식에게 증여하는 행위는 자본주의 경영학과 아무 관련이 없고 삼성이 지향한다고 추정되는 기업철학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런 행위에 대해 사법부는 미사여구를 동원해 면죄부를 주었다고 김용철 씨는 주장한다.

하지만 사법부가 정당화시킨 것은 어쩌면 금권주의, 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삐뚤어진 사회인식, 국내기업에 대한 외국인들의 부정적 시각, 그리고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봉건적 후계구도 등 부정적 유산뿐이다. 이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골드만 CEO의 다음 직책이 재무부 장관인 미국처럼 삼성임원이 관료로 직행하는 ‘선진국형 정경유착’의 시대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이윤의 추구도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 애초 불가능한 일을 꿈꾸는 백면서생의 생각 일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자본주의 초기의 그 악랄한 자본가라 욕먹은 이들도 나름의 윤리는 있었다. 대표적인 독점자본가였던 록펠러는 극히 청교도적인 사고방식으로 기업을 경영하였고 2세는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경영일선을 맡지 않았다.

적어도 그때는 그런 낭만이라도 있었다.

특검을 특검 해야 하나?

법조계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검사’라는 것은 정권이나 여하한의 특정세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위치에서 엄정하게 사건을 수사하여야 하는 직무로 알고 있다. 그런데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지난번 BBK 특검도 그러했고 이번 삼성특검도 그러한 것이 도대체 수사를 ‘엄정하게’가 아니라도 대충이라도 하기는 했는지 궁금하다.

이것은 내가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건희 회장을 너무나 싫어해서 그들이 범죄자로 낙인찍히고 감방에라도 들어갔으면 하고 바라서가 아니다. 한때 혐의자와 인너써클에 있었던 이들이 그들의 범법행위를 주장하고 사회구성원 상당수가 이를 믿을 정도로 상당한 정황도 있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건을 특별하게 수사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데에는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정확한 논리를 제공해줘야 한다.

그런데 특검의 결과는 그러한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결론내리고 있지만 그 결론의 진행과정이 논리적이라거나 엄정했다는 정황을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의 세금을 써가며 수사를 하였으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흉내라도 내야 할 텐데 혐의자랑 설렁탕이나 먹은 것을 수사라고 주장하는 특검의 말을 믿으라고 우기고 있다. 이번 삼성 특검 역시 BBK 특검의 설렁탕 수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오죽하면 경제지까지 특검의 결과가 엄정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특검이 이건희 회장 등 핵심 관련자 모두를 불구속 기소키로 한 것은 방대한 수사 범위 등 수사 자체의 어려움에도 기인하지만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대표되는 현정부의 ‘경제살리기’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기사보기)

이래서야 희망이 없다. 사회가 아무리 혼탁하여도 어느 집단은 그래도 청렴하고 엄정하여 그들을 믿을 수 있다고 의지할 기둥이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소위 민주화 세력이 그 역할을 담당했고 결국 군사독재를 종식시켰다. 지금은 이들 세력도 체제내화되었고 자본가를 위한 우익정부라고는 하지만 시민사회도 성숙한 만큼 국가기구들 역시 적어도 체제 안에서는 신뢰감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특검이 정부의 그 정체도 알 수 없는 ‘경제살리기’라는 허위의식을 의식하여 수사결과를 정치적으로 고려하였다면 그것은 정말 특검의 본 의도를 망각한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나는 특검이 경제를 살리자는 우국충정에서 그리 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권력이 두려웠을 것이다. 아니면 권력의 인너써클에 끼고 싶었을 것이다. 그뿐이다.

이제는 어떡해야 할까? 특검을 특검 해야 하나?

좌파 후보는 ‘성장’을 이야기하여야 한다

왕따 당하고 있는 좌파 후보

실질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소위 ‘좌파’ 후보로 자임하는 후보는 두 명이다. 하나는 비교적 잘 알려진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 다른 하나는 언론으로부터 철저히 따돌림 당하고 있는 한국사회당의 금민 후보다. 두 후보 간의 지지율의 차이는 있으나 둘 다 대선의 메인스트림에서 소외받기는 매한가지다. 권 후보의 지지율은 대략 2~3%대로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도보다도 떨어져 당의 역대 최저 지지율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금민 후보의 지지율은 1%대 미만으로 1%대의 벽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러한 지독한 우편향의 정치지형은 이념적 포지셔닝에 대한 일천한 역사적 경험도 한 몫 하겠지만 내부적인 역량의 한계도 있음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두 후보는 다른 어떤 후보들보다 현재의 경제, 정치,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고는 있지만 국민들에게 그 비판이 전달되지도 않고 있고, 비판을 넘어서는 대안이 유권자의 마음을 효율적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명박 후보에게서 희망을 찾는 어처구니없는 희극적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재의 정치지형이다.

선거판이 X판이어서 그런가 후보의 잘못인가

이 두 좌파 후보가 선거판에서 돌풍을 일으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선거판이 BBK 등으로 진흙탕이 되고 있는 탓이겠지만,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점은 선거판의 천박함을 뛰어 넘을 ‘경제적 대안과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이명박 후보의 ‘경부대운하’ 공약은 터무니없는 공약이긴 하지만 적어도 유권자들에게 확실히 각인되는 ‘경제적’ 약속으로 느껴진다. 박정희 식 개발독재의 냄새도 진하게 배어 있다. 유권자들은 박정희의 독재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때의 경제적 활력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우파 후보들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들고 있다. 일자리가 없으면 건설경기를 살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주장한다. 이런 약속에서 ‘토건국가’ 비판은 파고들 자리가 없다. 정확히 말해 현재의 ‘고용 없는 성장’은 자본집약적 산업구조화, 주주자본주의 강화, 제조업 공동화 등으로 말미암은 노동유연성 강화와 고용불안에 기인하고 있음에도 유권자 대다수는 삽질이라도 해야 일거리가 생긴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한편 문국현 후보는 이 틈새시장을 ‘일자리 나누기’라는 상품으로 교묘히 파고들고 있다.

좌파가 오히려 성장을 부르짖어야 한다

경제적 대안에 있어 ‘대운하’ 공약과 같은 단순무식하고 개발주의적인 공약을 좌파 후보들이 낼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탓에(?) 좌파 후보들은 늘 ‘성장 없는 분배’만 외치는 이들이라는 비난에 시달려야 하고 이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좌파 후보들은 ‘성장’은 제켜두고 ‘보전’과 ‘분배’에만 몰두하는 것이 사실인가. 어찌 보면 좌파 후보들마저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의 도그마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 후보는 ‘그렇지 않다’라고 자신 있게 말해야 한다. 사회총체적으로 볼 때 성장은 필요불가결하다. 국민의 수가 늘어나고 이들의 삶의 질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이 사회공공성이나 환경보전(주1), 그리고 지속가능한 삶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 성장에 대한 적정한 통제와 정당한 분배를 주장하는 좌파적인 대안이 ‘분배 -> 소비 -> 생산 -> 성장’ 으로 이어지는 경제 선순환적인 진정한 성장 대안임을 주장하여야 한다.

어떻게 성장의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

즉 좌파 후보들은 현재의 우파들의 성장론은 명백하게 주주 자본주의와 금융 자본주의의 특성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주주와 투기적 금융자본의 약탈적인 자원독점을 정당화시키고 있으며 이의 확대재생산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비판하여야 한다. 또한 이러한 시스템은 자원분배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은 모기지론이나 신용카드 빚으로 소비를 해야 하는 구조를 온존시켰고 이것이 현재 직면한 전 세계적인 신용경색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폭로해야 한다. 한마디로 시장맹신의 무정부성이 우파 성장론의 핵심이다.

한편 성장을 이야기함에 있어 일차적으로 제기되는 물음은 역시 투자재원이다. 자본은 자본주의를 싫어하는 이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이명박 후보는 대운하 건설재원을 민영화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했다. 민영화가 철밥통을 깨는 개혁으로 치장되고 있는 요즘 같은 세상에 참 하기 편한 발언이다. 미래세대의 부담일진데 그들은 유권자들도 아니다. 그러니 좌파들은 이런 무책임한 소리를 하면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올바른 성장’을 위해 좌파는 어떤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가.

현재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대표적인 재원이 바로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4월 적립금 규모가 200조원을 돌파하여 8월말 현재 213조원으로 세계 5위의 거대 기금으로 성장했다. 국민연금의 주인은 국민이다. ‘투자의 사회화’를 이야기할 때에 이보다 더 명분 있고 현실성 있는 재원은 사실상 없다. 따라서 향후 선거에서 ‘성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좌파 후보라면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여야 하는 일종의 당위성이 부여된다고 할 수 있다.(주2)

두 후보의 공약 비교

사실 이 부분이 권영길 후보의 공약과 금민 후보의 공약의 주요한 차이점 중 하나다.

먼저 권 후보의 공약을 들여다보자. 결론적으로 말해 국민연금의 활용방안에 대한 언급, 더 나아가 경제체제 정비의 재원조달 방안이 없다. 그의 경제 관련 공약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재벌과 외국자본 중심의 수출주도형 경제를 중소기업과 노동대중 중심의 내수주도형 경제로 전환할 것이다. 주요 기간산업과 은행을 재국유화할 것이다. 한미FTA를 무효화하고 외국투기자본을 강력하게 규제할 것이다.”(원문 보기)

이 문장으로만 본다면 권 후보의 공약은 사회주의적인 대안 – 또는 反자본주의적 대안 – 이라기보다는 민족주의 내지는 폐쇄형의 자본주의 경제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출주도형 경제를 내수주도형 경제로 전환하고 외국투기자본을 규제한다는 발상은 사실 비판할 부분이 많지만 논지에 벗어나므로 언급하지 않겠다. 문제는 “주요 기간산업과 은행을 재국유화”하는 부분에 대한 ‘어떻게‘라는 부분을 이 공약이 나와 있는 장이나 다른 공약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주3)

금민 후보는 이에 반해 ‘연기금으로 거대기업 국민통제’를 타이틀로 하여 국민연금을 통한 투자의 사회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이 기금으로 주식에 투자하거나 회사채 시장이 형성될 경우 회사채에 투자하면, 국민이 대주주 역할을 할 수”(원문 보기)있다는 로드맵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투자우선순위, 금융공공성, 사회책임성(주4)을 담보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더불어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2000년 7월 발효된 영국의 수정연금법의 사례를 들고 있다.

연기금을 통한 기업통제, 과연 가능한가

물론 ‘연기금을 통한 기업통제’라는 공약은 좌파 입장에서는 여전히 우편향적인 공약일터이고 우파 입장에서는 지극히 혁명적인 불온한 발상이라는 애매한 지점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그 논의도 이제 막 시작된 시점이다.(관련 기사 보기) 미국의 진보진영에서 독특한 포지션을 점하고 있는 마르크스 이론가 더그 헨우드 Doug Henwood 는 그의 저서에서 공공연금이 기업의 대주주로 나섰음에도 실제로 다른 주주들보다 보다 급진적인 주장을 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이는 공공재원의 의사결정구조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여하튼 기업을 군대를 동원하여 통째로 접수할 생각이 아니라면 대안 경제 체제를 고민하는 데에 있어 연금 활용론은 앞으로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로드맵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상태에서 지금 진보 진영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재벌과의 사회적 타협이라는 이슈가 실현가능할 것이다. 힘도 없고 돈도 없는데 재벌이 뭐하러 진보진영과 타협을 하겠는가.

소비의 사회화에서 투자의 사회화로

지난 대선에 민주노동당은 ‘무상교육 무상의료’라는 ‘소비의 사회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공약 역시 아직 실현이 요원한 현실에서 폐기되어서는 안 되는 공약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우파 후보들마저 서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각종 환심성 복지공약을 남발하는 상황에서는, 그리고 좌파의 근본적 존재의의를 놓고 보자면 이제는 ‘투자의 사회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워야 한다. 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소비재원도 마련될 턱이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경제는 ‘투자 -> 생산 -> 유통 -> 소비 -> 재투자’의 흐름이 연속되는 유기체적인 시스템이다. 그 생산력의 중추는 역시 ‘노동’이지만 노동은 돈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돈을 쥐고 있는 자가 노동을 쥐고 있는 자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장래의 대안 체제는 돈을 생산주체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지 않았을 때에 나타나는 부작용이 현재 벌어진 삼성의 부정부패일 터이고, 더 나아가서는 시장파괴와 환경파괴인 것이다. 그 악순환이 이제는 선순환으로 전환되어야 할 시점이다.

참고글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41758

 

(주1) 성장은 당연히 환경을 파괴한다는 생각이 꽤 설득력 있게 맹목적인 일부 환경보호론자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2) 이미 박근혜 씨가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연기금 사회주의라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적절한 지적이었다

(주3) 사실 민주노동당에서 연기금을 통한 투자사회화를 공약으로 내걸은 후보는 심상정 후보 하나다

(주4) 현재 삼성 사태를 근본적 해결로써 바로 삼성에 대한 사회적 투자를 통해 사회적 기업으로 바꾸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와 이데일리의 “삼성”관련 외신 인용 생쇼

오늘 자 조선일보 웹사이트가 “외신들도 삼성사태 `촉각`..”국가경제 해칠수도” ”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자사의 것이 아닌 이데일리의 기사를 전재한 것이다.

원래 기사
조선일보 기사

우선 기사의 제목들을 한번 살펴보자.

외신들도 삼성사태 `촉각`..”국가경제 해칠수도”
WSJ, 삼성전자 등 그룹株 부담 `우려`
FT “삼성 GDP 17% 해당..외국인 투자 끊길까 걱정”

보수언론의 ‘제목신공’의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즉 제목이 ‘외신들께서 삼성 사태는 국가경제를 해칠 수도 있다고 걱정하시고 특히 월스트리트저널께서는 그룹株 부담을 염려하셨고 파이낸셜타임스께서는 외국인 투자가 끊길까 걱정해주셨다는’ 인상이 강하게끔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사의 첫머리도

“비자금 로비와 분식회계 혐의 등 이른바 `삼성 사태`로 삼성그룹 뿐 아니라 한국의 국가 경제도 해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들이 진단했다.”

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원래 궁금한 것은 찾아봐야 하는 성격이라 우선 파이낸셜타임스의 해당기사를 찾아보았다.(월스트리트저널은 이름에 걸맞게 유료신문이라서 못 찾아보았다)

두 기사를 상호 비교해본 결과 두 기사가 공통적으로 삼성이 이번 사태로 인해 얼마나 타격을 입게 될 것인가에 할애하고 있었다. 다만 이데일리의 기사 나머지는 외신을 방패삼아 삼성을 단죄하려는 세력을 국가경제를 아랑곳하지 않는 이상주의자로 매도하는 쪽으로 유도하려는 반면 정작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사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

외신이 외국인 투자자 끊길까 걱정했나?

필자는 먼저 이데일리 기사의 고갱이라 할 수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을 부패했다고 인식하면서 한국의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해 관계를 끓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 한 신문 사설을 인용하기도 했다”

라는 이데일리 기사의 원문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정말 외국의 유력 경제신문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데일리나 조선일보의 우려가 괜한 우려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원문이 바로 이것이다.

“삼성은 지구상에서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중요한 기업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만약 삼성이 부패했다고 생각하게 되면 다른 한국 기업들도 똑 같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고 한국에서 가장 큰 신문매체인 조선일보 사설이 주장했다.
“Samsung is an important business representing Korea’s economy on the global stage,” the Chosun Ilbo, Korea’s biggest newspaper, wrote in an editorial. “Foreign investors may end up thinking that if Samsung is . . . corrupt, then other Korean businesses must be much the same.”

파이낸셜타임스가 한 말이 아니라 조선일보의 말을 인용했을 뿐이다. 의도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데일리는 구태여 조선일보를 언급하지 않고 “한 신문 사설”이라고만 말하고 있다. 좌우지간 이게 무슨 생쇼인가.

1)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삼성이 부패하면 한국 모든 기업이 부패했다고 외국인투자자가 간주할 것이라는 자괴적이고 근거없는 비논리적 주장을 한다.(그럼 우리는 엔론이 부패해서 모든 미국기업이 부패했다고 여겼던가.)

2) 파이낸셜타임스가 이 헛소리를 인용한다.

3) 이데일리가 그 기사를 받아 “한 신문 사설을 인용”하였다고 쓰면서 슬쩍 제목에 “FT 삼성 GDP 17% 해당..외국인 투자 끊길까 걱정”이라고 마치 파이낸셜타임스가 직접 한 말인 것처럼 말을 교묘하게 바꾼다.

4) 조선일보가 지가 한말을 재인용한 이데일리의 기사를 받아 전재한다.

참 재밌는 양반들이다. 이런 식의 헛소리 확대재생산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뫼비우스식 자기파괴적 헛소리 확대재생산”이라고 하면 옳을지?

외신이 국가경제 해칠까 걱정했나?

파이낸셜타임스의 결론은 이렇다.

“분석가들은 이러한 관심이 결과에 상관없이 변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모니터하여야 할 부분은 삼성이 이 문제를 어떻게 콘트롤하며 어떻게 그들의 지배구조를 변화시킬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라고 서울의 자금분석가가 이야기했다. “삼성은 지주회사로 지배구조를 바꿀 것을 고려하고 있고 이를 위해 비록 삼성생명을 상장하여야 함 할지라도 그 과정을 가속화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Analysts say that the attention could, regardless of the outcome, act as a catalyst for change.
“What we need to monitor is how Samsung is going to control this and how this will change their ownership structure,” says one equity analyst in Seoul. “Samsung has been rumoured to be considering converting their ownership into a holding company so they may try to accelerate that process, although in order to achieve that they will have to list Samsung Life.””

분석가가 삼성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변할지 주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결론뿐 아니라 다른 부분을 찾아봐도 – 조선일보 사설을 인용한 부분을 제외하고 – 삼성 문제와 한국경제의 문제를 연관시키는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이데일리 기사제목처럼 “국가경제를 해칠 수도”있다는 부분은 없다. 오히려 “이번 사건이 변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뉘앙스의, 주주 자본주의적 입장에서의 지극히 정상적인 멘트를 날리고 있을 뿐이다.

기업비리 조사가 국가경제를 망치는 것인가?

도대체 한 기업의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을 조사한 후 기업비리를 단죄하여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왜 국가경제의 위기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묻어두고 가는 것이 국가경제를 지키는 길인가? 마치 주가조작의 혐의가 있는 대통령 후보에 대한 검증을 네거티브 공세라고 치부하여 정치선진화를 앞당기는 것처럼 말이다.

요컨대 한마디로 이데일리의 기사는 조선일보가 생산해낸 거짓 주장을 외신이 한마디 인용하고 이데일리가 다시 받아 기사화하여 재생산한 생쇼다. 하여튼 이데일리건 조선일보건 좀 허튼 주장을 하더라도 이런 민망한 기사쓰기는 지양하였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