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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개혁안(Health Care Bill)이 파놓은 또 하나의 함정

이미 국내외 언론에 보도된바 크리스마스이브에 미국 상원에서 건강보험개혁안(Health Care Bill)이 통과되었다. 미 하원이 지난달 건강보험개혁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상원도 24일 60대 39로 건보개혁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로써 10년간 8천710억 달러를 투입, 현재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인들 중 3,100만~3,600만 명이 보험 혜택을 받아 실질적으로 전 국민의 94%가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크리스마스이브 상원통과는 여러 재밌는 기록을 낳았다. 대표적으로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처음 건보 개혁을 주창한 이후 7명의 미국 대통령들이 건보개혁 추진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안을 통과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고, 상원이 크리스마스이브에 표결을 실시한 것은 114년 만으로 1895년 이후 처음이라는 기록도 작성했다. 물론 가장 큰 기록은 이 놀랄만한 일을 흑인 대통령이 집권 1년 만에 해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갈 길은 그리 만만치 않다. 우선 상원의 법안은 지난달 하원에서 통과된 건보개혁안과는 달리 정부 주도의 공공보험(public option) 도입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주1) 양원제이다보니 같은 주제로 다른 법안을 통과시키는 희한한 꼴이 연출되었는데 어쨌거나 상하원은 절충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상원과 하원이 동의하는 법안이 표결을 거쳐 가결되면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으로 법안이 입법화된다.

이번 상원 통과에서 공화당 의원은 39명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세기 건강보험개혁안을 무력화시켰던 대표논리인데 개혁안이 반(反)시장주의적, 좀더 직설적으로 사회주의적 조치라는 주장이다. 그들이 자체적으로 5천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는 증세 예상액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의 생리에 맞지 않다. 또한 이렇게 하더라도 현재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철저한 보수주의에 입각한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反)시장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혐오는 별도로 하고라도 증세와 재정적자 심화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국책사업의 공통적인 근본모순이다. 좌우를 가리지 않는 재정지출에의 유혹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바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이다. 알다시피 한나라당은 4대강 떡칠에 쓸 돈이 포함된 새해 예산안을 기습 처리했다.

미국의 민주당은 국민건강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고, 한국의 한나라당은 녹색성장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정치적, 기술적 관점에 따라 어느 것에는 손을 들어주고 어느 것은 비판할 수 있지만 두 사업 모두 생산적인 분야와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 전후방 연계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많지만 – 분명하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정치성향이 다른 두 정부는 어쩌면 공히 사회 인프라에 대한 공공재원 투입을 통한 경제위기 돌파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인고 하니 건강보험개혁안 통과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말하는 것이다. Naked Capitalism에 따르면 건강보험개혁안을 반대하는 이들이 보수주의자들만은 아니라고 한다. 소위 리버럴이나 진보주의자들 중 일부도 반대자가 있는데, 그들은 주장에 따르면 통과된 새 법안이 월스트리트에 대한 또 하나의 구제금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이전에 시장에 진입할 수 없었던 새로운 수요자들을 국가가 강제로 시장에 편입시켰다는 주장이다.

Here’s the opportunity, Wall Street’s newest and bestest gamble: there is a huge untapped market of some 50 million people who are not paying insurance premiums—and the number grows every year because employers drop coverage and people can’t afford premiums. Solution? Health insurance “reform” that requires everyone to turn over their pay to Wall Street. Can’t afford the premiums? That is OK—Uncle Sam will kick in a few hundred billion to help out the insurers.[전문보기]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현행 법안이 보조금 지급 등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고, 절충안에서 더 좋은 안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우선 보조금만 보면 미국은 보조금 지급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보조금 지급이 수혜자의 부담은 덜지언정 민간보험회사의 이윤을 덜지는 않을 것이다. 더 급진적인 안에 대해 비관적인 것이 공공과 민간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지극히 시장주의적인 ‘공공보험’조차 상원 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더 급진적인 조치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다.

장기적으로, 그리고 지구적으로 보면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부조가 갖고 있는 모순에 대한 해법이 근본적인 접근법을 통해 해결을 모색해야겠지만, 단기적으로 미국의 상황에서 그들의 건강보험개혁안은 시장주의자들이 반대하는 시장주의 개혁안으로 전락해버릴 개연성이 큰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새로이 수혜를 받는 3천만 명의 미국인들이 영화 Sicko에서처럼 비용 때문에 잘린 손가락들 중 어떤 손가락만 붙여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면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주1) 이 옵션은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지급방식과 다르다. 이를테면 정부가 별도로 공영 건강보험회사를 하나 만드는 걸 말한다. 공영건강보험회사는 민간 보험회사와 경쟁한다. 보험료 인하를 유도해 서민층의 무보험 사태를 구제하자는 계획이다.

오바마와 코카콜라

멜로 영화의 고전이 되어버린 프랑스 영화 ‘남과 여’(1966년)를 보면 주인공들이 그들의 자녀와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남과 여는 각각 와인을 즐기는 와중에 남자주인공 장은 아들 앙뚜완에게 어떤 음료수를 각각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로 뭐라고 하는지를 묻고는 아이들을 위해 그 음료수를 주문해준다. 그 음료수는 바로 코카콜라. 1966년의 작품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 당시면 이미 프랑스에 가장 미국적인 음료 코카콜라가 대중적인 기호식품으로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음을 알려주는 장면이랄 수 있다.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코카콜라의 프랑스 입성이 ‘남과 여’의 정적인 전개만큼 평화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먹을거리에 자존심이 강한 프랑스에게 있어 코카콜라는 처음에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타락한 음료였다. 1950년대 전후 미국 대중문화의 유럽으로의 유입시기에 발맞춰 진입을 시도한 코카콜라는 프랑스의 좌우를 넘어선 연합전선의 십자포화를 맞아야 했다. 와인 등 전통음료산업의 위기감, 자본주의 세계화에 대한 거부, 특히 미국식 대중문화의 거부감 등 온갖 복합적인 요인이 결합되어 있었다.

‘나는 민주주의라는 게 뭔지, 또는 공화제의 진정한 의미가 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에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눌 때면 우리가 미국이라는 처녀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점에 대해 모두가 의견을 같이 하곤 했다. 우리에게 그 처녀란 미국이었고 민주주의였으며, 코카콜라, 햄버거, 청결한 잠자리, 혹은 미국의 생활방식이었다.’[코카콜라의 신화, 프레드릭 앨런 지음, 현준만 옮김, 열린세상, 1996년, p63]

<신은 나의 동반자>라는 책에서 콜로넬 로버트 L. 소코트가 적은 글을 재인용한 글이다.  코카콜라를 생산하는 이들이 한때 그들의 슬로건을 The United Taste of America로 진지하게 생각한 것만큼이나 코카콜라를 소비하는 이들도 코카콜라를 단순한 음료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였음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프랑스로 대표되는 그 반대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코카콜라 그 자체가 이미 1950년대에 미국적 대중문화의 대표적 코드 중 하나였음은 자타가 모두 인정하였던 셈이다.한편 프랑스와 코카콜라 간의 무역전쟁은 뇌물공세, 금지입법, 이념전 등 다양한 양상을 띠더니 급기야 양국간 감정싸움으로까지 발전하였다. 미국언론은 프랑스를 쇄국주의라 비난했고 먀살플랜의 원조금을 삭감시켜야 된다는 주장까지 해댔고, 급기야는 프랑스가 코카콜라를 반대하는 이유는 프랑스 좌익들이 코카콜라의 나라를 좋아하지 않아서라는 매카시즘까지 동원되었다. 결국 미국 내 프랑스상품 불매운동이라는 무역전쟁으로 발전한 이 사태는 코카콜라의 프랑스 내 판매를 실질적으로 허용하는 새로운 보건법의 제정으로 막을 내렸다. 코카콜라의 승리이자 우익의 승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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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a-Cola logo” by The Coca-Cola Company – Brands of the World.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그 뒤로 코카콜라의 세계화는 거칠 것이 없었다. 미국 대중문화는 모든 대중문화 중 선두에 서있었고 코카콜라는 그 상징이었다. 그 결과로 코카콜라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이고 경쟁력 있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이를 통해 200여 나라에 500여개가 넘는 브랜드의 음료를 팔고 있으며, 회사 전체로는 총 매출 약 320억 달러(연차보고서  참조, 2008년 기준)의 초국적 매머드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한 종류의 음료수 브랜드가 쌓아올린 거대한 제국의 현황이다. 한때의 적들도 이제는 코카콜라의 길들여진 입맛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앞길이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외부에서가 아니라 내부에서 싹트고 있다. 한때 월스트리트저널이 진지하게(!) 몸매가 너무 좋아서 인구의 반절 이상이 비만인 미국이라는 나라의 대통령 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의견개진을 한 바 있는 오바마가 바로 그 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언론기사에 따르면 오바마는 `탄산음료세(Soft-Drink Taxes)`를 검토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비만 퇴치와 관련해 정크푸드와 탄산음료에 과세하자는 주장은 오래전에 제기됐으며 오바마의 이번 발언은 그러한 맥락의 연결선상에 있다.

또한 탄산음료에 대한 과세는 오바마가 현재 박차를 가하고 있는 헬스케어 시스템 개혁에 대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만하다. 즉 헬스케어의 전 국민 적용에 따라 필연적으로 증가되어야 할 예산을 탄산음료세로 충원한다는 것이 그들의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기사에 따르면 현재 코카콜라, 펩시콜라, 카길 등 관련업체들이 이런 제안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로비 중이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논리가 과거 프랑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국가가 세금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안 된다는 이념적 코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A vast majority of Americans have heartburn when the government uses the tax code to tell them what to consume, We’re going to remain vigilant.”
“절대 다수의 미국인들은 정부가 소비할 것에 대해 세금을 통해 사용하겠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속 쓰림을 느낀다. 우리는 불침번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원문 보기]

아름다운 코카콜라 병 디자인, 그 유려한 로고, 하얀 수염에 빨간 옷을 입은 산타할아버지, 여유롭게 콜라를 마시는 하얀 북극곰 등. 사실 우리는 코카콜라를 마셨다기보다는 코카콜라를 둘러싼 풍경을 향유해왔다. 하지만 그러한 환상이 현실에서의 뚱뚱하고 병든 몸에 대한 대가라면 그 대가는 너무 비싼 것도 사실이다. 소비를 만끽할 수 있는 상품이 반드시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옳아야 한다는 당위는 없지만, 적어도 선후관계와 사실관계는 알고 소비하는 것이 ‘합리적 소비자’로서의 덕목일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코카콜라는 서둘러 환골탈태하여야할 대표적 기업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헤지펀드 매니저들의 비관적 견해의 근거

클래리움(Clarium Capital Management LLC를 의미함)은 낙심한 구직자들과 그들이 풀타임 일자리를 얻을 수 없어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을 포함한 실업률을 관찰하고 있다. 해링턴의 말에 의하면 이러한 조정을 통해 본 7월의 실업률은 16%로 노동부에 따른, 널리 보도된 9.4%보다 상당히 더 높은 수치다.
Clarium watches the unemployment rate that accounts for discouraged job applicants and those working part-time because they can’t find full-time positions, Harrington said. July joblessness with those adjustments was 16 percent, according to the Department of Labor, rather than the more widely reported 9.4 percent.
매크로(헤지펀드) 매니저들의 회의적인 생각은 부분적으로 지난해의 금융위기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에서 비롯되었는데, 그들의 말에 따르면 정부는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여전히 그들의 대차대조표에 팔기 어려운 자산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Macro managers’ pessimism is fueled in part by the U.S. government’s response to last year’s financial crisis, which they say fails to address the root cause. Banks still hold hard- to-sell assets on their balance sheets, the managers said.[Goldman Sachs Wrong on Economic Recovery, Macro Hedge Funds Say ]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가 최악의 상황은 지나갔고 경제회복기에 들어섰다고 전망한 것에 대해 매크로 헤지펀드들의 펀드매니저들이 매우 낭만적인 생각이라고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기사의 일부분이다. 여러 잡다한 이야기가 적혀있는데 눈에 띄는, 그리고 중요하다 생각되는 두 문단을 꺼내 다시 옮겨적는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소위 비자발적인 실업까지 합치면 실제 실업률은 16%에 달한다는 것이 헤지펀드 매니저들의 생각이다. 위에서 “낙심한 구직자들(discouraged job applicants)”을 아마도 구직을 포기해서 아예 정부의 실업률의 모수(母數)에 잡아넣지 않은 이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러면 실업률이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파트타임들은 엄밀히 말하면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여하튼 어떤 식으로든 그들도 반(半)실업자인 셈이다.

9.4%의 수치도 2차 대전 이후 서구에서, 특히 미국에서는 사상 두 번째로 10%에 근접한 수치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장래의 선순환적 경제성장의 동력을 갉아먹는 심각한 수치임에 분명하다. 나아가 실제 실업률이 16%에 달한다면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다. 노동자들이 저축이 투자로 이어지는 사회구조가 붕괴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정부의 재정적자로 메우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하나 금융부문의 자산부실이 아직도 그대로 창고에 쌓여있다는 이야기다. 버냉키가 악취 때문에 코를 부여잡고 줬다는 – 그래서 더 샌 돈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 천문학적인 지원금은 이러한 부실자산을 떨어내고 대차대조표를 건전하게 만드는데 별로 쓰이지 않은 모양이다. 사실 부실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파생상품의 특성상 단순히 한 기업의 부실을 뚝 떼어내 털어버리는 것처럼 털어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는 앞서 말한 심각한 실업률과 함께 경제회복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변수다. 실업률이 소비성향의 회복의 전제조건으로써 수요측면의 주요변수라면 부실자산을 털어내지 못한 금융부문의 존재는 투자 및 대출에 관한 공급측면의 주요변수다. 금융부문의 부실자산이 돈줄의 공급을 옥죄고 그나마도 소비여력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앞뒤로 꽉 막힌, 정부 혼자서 돈쓰고 난리치는 경제인 셈이다.

미국 정부는 금융부문의 국유화 논의도 배드뱅크 논의도 다 포기하고 결국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고서는 – 물론 월스트리트에만 – 기껏해야 그 돈으로 보너스 주겠다는 은행가들을 비난하기만 했을 뿐이다. 앞서 두 개의 대안이 더 옳았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그것들이 그 어떤 진지한 논의도 없이 그렇게 신속하게 폐기처분되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실업률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시피 숫자의 장난질로 은폐하려 하고 있다.

어쩌면 현재 오바마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헬스케어의 개혁이 예상치 못한(?) 반대에 부닥치고 있는 주요 원인은 단순한 이념적 혐오감에서라기보다는 정부가 은폐하고 있는 경제실상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이들의 증세에 대한 공포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한 푼이 아쉬운 미국인들은 장래의 안정적인 의료 서비스보다는 현재의 일자리와 불안감의 종식에 더 목말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직면한 재정위기, 그리고 대안

비즈니스에 대한 국가의 점증하는 개입은 이 위기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정책결정자는 대규모의 경기부양 패키지를 시행하고, 비틀거리는 기업들을 지원하고, 규제개혁을 맹세하고 있다. 그들은 한때 경영자들이나 이사회의 고유영역이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이전의 위기로 정부의 역할은 영원히 바뀌었고, 이번에도 똑같을 것이다. 경영자들은 다음의 두 가지 점에 대해 그들의 전략을 재고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 새로운 규제 체제를 형성하는데 돕고 그 아래서 경쟁하는 것을 준비하라.
둘째, 여러 산업에서의 급격하게 지출을 늘리고 있는 주요고객으로써 공공부문의 중요성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

그러나 현재의 위기를 넘어 점증하는 적자와 인구 노령화 현상은 많은 나라에서 미래의 재정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정부는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할 막대한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공공과 민간 부문 간의 창조적인 파트너십이 이러한 도전에 응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될 것이다.

[원문출처 Trend to Watch: A Bigger Government Role]

인용문에도 서술되어 있다시피 정부가 각 산업분야의 주요고객이라는 사실은 이제 돌이킬 수 없다.(주1) 그 정부가 경제정책에 있어 자유주의(또는 진보주의) 정부이건 보수주의 정부이건 간에 마찬가지다. “이전의 위기”, 즉 대공황으로 말미암아 현대 자본주의는 정부 또는 국가가 더 이상 야경(夜警) 국가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에 양 측 모두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1930년대에 발생해 여론을 분열시키고 혼란을 야기했던 몇몇 문제들에 대한 국가적 합의를 이루어냈다. 경제가 자동적으로 안정을 이루면서 만족스런 수준의 낮은 실업을 유지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경제 안정과 높은 고용에 공헌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도 인정되었다. 이를 위한 기본적 임무가 총수요의 성장을 안정시키는 것임도 합의되었다.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 도구가 정부예산이라는 점도 인정되었다.[대통령의 경제학, 허버트 스타인 지음, 권혁승 옮김, 김영사, 1999년, p89]

물론 아직도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은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위기를 심화시킨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러한 시장의 완결성과 자주성에 대한 신화는 거의 지탱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미국 자본주의에서 복지예산 지출 등을 포함한 공공서비스의 증가와 해외에서의 전쟁수행을 위한 군비지출이라는 – 정치적으로 상반되지만 경기부양이란 효과측면에서는 유사한 – 정부지출의 두 가지 축은 그 효과를 이미 입증하였고, 정치적 고려사항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저항도 만만치 않다. 공공서비스에 관해 현재 미국은 헬스케어 개혁을 둘러싼 거대한 이데올로기 전쟁에 직면하여 있고, 그것을 넘어서서 인구노령화 및 사회간접자본 노후화와 이로 인한 소요비용 증가라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군비지출은 2차 대전이나 베트남전 등에서 국내 경기부양 효과는 입증되었지만 원초적인 문제는 국지전이 경기부양을 위해 주기적으로 일어나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일으키려 조작하면 – 부시처럼 – 그것이 바로 전쟁범죄다.

일단 오바마 정부는 어느 면에서는 전통적이지만 이전과는 뉘앙스가 다른 정부의 역할을 수행하려 하고 있다. 즉, 환경친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녹색경제 – 예를 들면 고속철도 -, 헬스케어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세제개혁을 통한 재정건전화를 노리고 있다. 문제는 하바드비즈니스가 지적한 것처럼 공공서비스 제공에 있어 막대한 재정 압력에 시달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현재 금융위기 때문에 쏟아 부은 돈이 그 압력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지난 번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오바마 정부 들어서도 변함없이 국가채무는 늘어나고 있고(그래프 보기) 재정적자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이와 더불어 국가채무도 위험한 상태로 다다르고 있다. 균형예산이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는 아니지만 늘어나는 빚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그러한 면에서 현재의 경제호조 분위기는 다분히 일시적인 착시현상 일뿐이라는 심증이 강하게 든다.

궁극적인 재정건전화 및 이를 넘어선 경제건전화는 소모적인 예산 및 자원낭비를 통한 눈가림식의 경기부양이 아니라 – 애맨 땅을 팠다가 다시 묻어도 GDP는 증가한다 – 선순환적인 생산 프로세스에 도움이 되는 곳으로의 자원투입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평범하지만 당연한 진리다. 물론 공공서비스에로의 투입방식(목적 및 투자주체)의 정당성 여부와 순환효과에 대해선 갑론을박의 여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다분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의 헬스케어나 한국의 4대강 정비처럼 말이다.

(주1) 원문에 따르면 1903년 GDP대비 6.8%에 불과하던 정부지출은 2010년 예산 기준 GDP대비 41.3%로 증가하였다(그래프 보기)

Health Care

요즘 ‘매사귀차니즘’ 시즌에 접어들어 시사를 따라잡고 있지는 않지만 대강 살펴보기에도 큰 집 미국에서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헬스케어의 개혁이다. 시사만화는 헬스케어 개혁의 부진함을 질타하고 있고 오바마는 트위터에서 헬스케어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트위터 이용자들이 의회를 압박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주된 논점은 헬스케어를 여태 그래왔듯이 시장(市場)에서 공급하게끔 하여야 하는지 아니면 공공에서 공급하게끔 하여야 하는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다만 그 폭에 있어서는 좌우 양쪽에서 치열한 공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폴 크루그먼은 블로그에서 왜 헬스케어가 비시장적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헬스케어는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하나는 당신이 언제 치료를 필요로 할지 치료가 필요한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그런 상태라면 그 치료는 매우 비쌀 수 있다. [중략] 소비자선택은 헬스케어에 있어서만큼은 난센스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보험회사를 믿을 수도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건강, 또는 당신의 건강을 위해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중략] 헬스케어에 관해 두 번째 특징은 그것이 복잡해서 당신의 경험이나 또는 비교 구매에 의존할 수 없다는 점이다.[중략] 그러나 자유시장의 법칙에 근거해서 성공한 헬스케어의 사례는 없다. 단 한 가지 단순한 이유인데 헬스케어에서 자유시장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There are two strongly distinctive aspects of health care. One is that you don’t know when or whether you’ll need care – but if you do, the care can be extremely expensive. [중략] Consumer choice is nonsense when it comes to health care. And you can’t just trust insurance companies either. they’re not in business for their health, or yours. [중략] The second thing about health care is that it’s complicated, and you can’t rely on experience or comparison shopping. [중략]  There are, however, no examples of successful health care based on the principles of the free market, for one simple reason: in health care, the free market just doesn’t work. [출처]

그는 요컨대 헬스케어라는 서비스는 (1) 소비자 스스로가 소비의 시기와 소비 여부를 선택할 수 없다는 특수성과 (2) 서비스의 형태가 복잡해서 – 즉 어떤 의미에서는 표준화가 어려워서 – 과거의 경험치나 비교견적이 어렵다는 점을 들고 있다. 우리가 이른바 공공재의 특성이라 이해하고 있는 비경합성이나 비배재성과는 다른 뉘앙스의 특성분석이다. 논리는 수긍이 가지만 일부 이견도 있다.

그런데 내 짧은 지식으로는 여전히 대부분 시장을 통해 공급되고 있는 허다한 보험은 어느 정도는 위와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건강의 이상과 같은 불확실성 또는 잠재위험은 개인의 여타 삶이나 – 예를 들어 화재로 인한 재산 파괴 – 비즈니스의 분야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에 그것들을 제거(hedge)하기위해 이해당사자들은 보험에 든다. 또한 유사한 성격으로 외환이나 금리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각종 파생상품이 오늘날에도 시장에서 공급되고 있다.

폴 크루그먼의 입장을 확대해석하면 이러한 것들의 서비스는 시장에서 공급되어서는 위험하다는 논리로 확장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현재 금융위기는 수요이든 공급이든 간에 통제되지 않은 그러한 각종 보험 성격의 상품들이 기초자산을 – 헬스케어로 치면 보험수혜자? -훨씬 초과하는 시장규모를 가지게 된 바람에 악화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 이제 크루그먼은 그것들도 사회화(또는 비시장화)시켜야 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미국 금융권의 악성자산을 정부에서 인수해주는 것이 욕먹을 일이 아니라는 논리를 간단한 셈법으로 풀어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즉 기업의 이자비용이 정부의 이자비용보다 비싸서 할인율이 높으므로 악성자산을 정부에 이전시키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그 논리에 찬성하면서 그렇다면 왜 악성자산은 정부에 넘기는 것이 타당하지만 비즈니스는 여전히 사기업 혹은 시장의 영역이라 하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가 유지비용은 싸지만 기대수익은 시장보다 적다는 논리를 전개할 수도 있다. 즉 정부는 공적영역의 특징으로 간주되고 있는 – 이 또한 편견일 수도 있지만 –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수익성의 극대화가 가능한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유연성 발휘가 핵심 포인트가 아닌 헬스케어는 정부가 떠안아도 되지만 그밖에 유연성이 요구되는 보험시장이나 파생상품시장은 여전히 시장의 영역으로 남겨놓아야 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왠지 혼자 북치고 장고치는 느낌이지만 요는 이렇다. 건강은 인간의 생로병사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대체소비나 소비감소 등의 시장변동성이 거의 없는 상품이다. 소비자는 그 서비스로부터 역으로 선택당하는 입장이고 그 형태도 매우 복잡하여 시장으로부터 그것을 공급받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고 유지비용이 싼 정부가 공급한다(또는 최소한 비시장화시킨다). 다른 불확실성이나 잠재위험도 그에 상응하긴 하나 그 정도가 덜하고 시장변동성도 있는지라 시장에서 공급하여도 무방하다(또는 더 효율적이다). 이 정도가 나름대로 구성해본 헬스케어 사회화 논리의 보론이랄 수 있다.(주1)

헬스케어는 전체 인류역사에 비추어 볼 때 공적 부조가 국가의 예산 범위 내에서 공급가능하다는 것이 실증된 이후부터 발달한 극히 최근에 시작된 서비스다. 그 기간 동안 대부분 국가는 그 서비스를 일차적으로 시장 바깥의 부문에서 공급하였지만 미국은 그것을 철저히 시장화 시켰고 그로 인해 그 짧은 기간 동안 서민들이 많은 고통을 겪어 왔다. 갈 길은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헬스케어 시장을 둘러싼 엄청난 이권과 사회화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알러지 반응이 그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부디 이번에 올바르게 헬스케어를 개혁하여 손가락이 두 개 잘린 사람이 보장범위가 한정적이어서 어느 한 손가락만을 봉합할지 선택하여야 하는 나라가 안 되길 기원해본다.

(주1) 파생상품 등을 그럼 마냥 시장에 내버려두자는 이야기냐 하면 그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이 블로그에 몇 번 오신 분들이라면 익히 아실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생략

US War Privatization

다음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중 계약에 관한 위원회(Commission on Wartime Contracting in Iraq and Afghanistan)’가 최근 발표한 내용 중 일부다.

24만 명 이상의 고용인들이, 이들 중 80%가 외국인인, 미군과 국무부, 그리고 미국 국외발전기관의 작전과 프로젝트들을 지원하기 위해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서 일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의 계약고용인들의 숫자는 미군의 숫자를 넘어섰다. 계약업체들이 필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위원회는 그들을 활용함에 따라 수십억 달러의 돈이 낭비되고, 갈취되고, 악용되고 있는데 이는 부적절한 계획, 빈약한 계약서 작성, 제한적인 경쟁, 부실한 감독기능, 그리고 다른 문제들로부터 기인한다.
이러한 수치는 계약업체들에 대한 미국의 의존에 관한 국방부의 최근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그 보고서는 또한 2009년 2분기에 국방부를 위해 일하는 “사설보안업체”의 숫자가 23% 증가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9% 증가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이들은 그 나라에서의 “군사력의 증강과 상호관련”되어 있다.
More than 240,000 contractor employees, about 80 percent of them foreign nationals, are working in Iraq and Afghanistan to support operations and projects of the U.S. military, the Department of State, and the 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Contractor employees outnumber U.S. troops in the region. While contractors provide vital services, the Commission believes their use has also entailed billions of dollars lost to waste, fraud, and abuse due to inadequate planning, poor contract drafting, limited competition, understaffed oversight functions, and other problems.
These statistics support a recent DoD report on the extent of the US reliance on contractors. That report also found that there has been a 23% increase in the number of “Private Security Contractors” working for the Department of Defense in Iraq in the second quarter of 2009 and a 29% increase in Afghanistan, which “correlates to the build up of forces” in the country. [출처]

아들 부시가 일으킨 이라크전쟁은 전쟁에서 민간군사업체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전쟁이었다. 부시와 딕체니 등 공화당 정권은 당시 민영화를 통해 군대 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미명 하에, 별다른 경쟁도 거치지 않고 수의계약을 통해 막대한 이권이 걸린 전쟁수행과 이에 따른 복구사업을 소수의 민간군사업체들에게 넘겨왔다. 이것은 인종학살이라는 전쟁범죄와 함께 미국의 납세자들의 돈으로 용병의 배를 살찌우는 가공할 범죄라 할 수 있다.

위 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어이없는 사실 하나는 이런 범죄가 오바마 시절에도 변함없이 자행되고, 심지어는 그 계약자 수가 더 늘어났다는 점이다. 경쟁강화를 통해 더 많은 업체들에게 기회를 줬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군대 민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없이 민간계약을 늘인다는 사실은 결국 전쟁수행에 아무리 고상한 명분을 갖다 붙여도 결국 그것은 이윤창출의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자본주의를 위해 포기할 수 있는 것

회사는 “민간 이사회와 관리팀에 의해 운영될 것입니다.” 그는[오바마:역자 주] 그들이 다운사이징과 비용절감의 전문가들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면서 “그들은 – 그리고 정부가 아니며 – 지시를 내리고 이 회사를 어떻게 변모시킬지 의사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계속해서 “연방정부는 주주로서의 권리행사를 자제할 것이고.. 간단히 말해 우리의 목적은 GM을 자립하게 하는 것, 간섭하지 않은 것, 빨리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The company “will be run by a private board of directors and management team,” he insisted, making it clear that they would be experts in downsizing and cost-cutting. “They – and not the government – will call the shots and make the decisions about how to turn this company around,” he continued. “The federal government will refrain from exercising its rights as a shareholder. … In short, our goal is to get GM back on its feet, take a hands-off approach, and get out quickly.”[출처]

‘사회주의’ 또는 ‘국유화’에 대한 우익의 공포감은 급기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지극히 정당한 ‘주주’로서의 권리조차 포기하는 역설을 낳고 있다. 자본주의를 위해서라면 주주 자본주의쯤은 포기할 수 있다는 뚝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