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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프리드먼, 그리고 자유

케인즈의 일반이론에서의 주요주제 하나는 공황조짐이 있는 상황에서의 통화정책이었다. 그러나 밀턴 프리드먼과 안나 슈워츠는 그들의 “미국에서의 화폐의 역사” 에서 Fed는 대공황을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나중에 이 주장은 프리드먼 그 자신의 것들을 포함한 인기 있는 저작들에서 Fed 가 공황을 초래했다는 주장으로 변신했다.
A central theme of Keynes’s General Theory was the impotence of monetary policy in depression-type conditions. But Milton Friedman and Anna Schwartz, in their magisterial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claimed that the Fed could have prevented the Great Depression ? a claim that in later, popular writings, including those of Friedman himself, was transmuted into the claim that the Fed caused the Depression.[Was the Great Depression a monetary phenomenon?, Paul Krugman, 2008.11.28]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주장을 세상의 모든 일을 유태자본의 음모로 환원시키는 음모론자들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당시 연준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이자율을 낮추어 경제활동에 활력을 불어넣기보다는 무자비하게 통화량을 수축시켰다. 그리하여 1929년 457억 달러에 달하던 통화량이 4년 후인 1933년에는 3백억 달러에 불과해서 극심한 디플레가 조장되었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은 1929년 대공황의 주범이 연준은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겠지만 유수의 경제학자들간에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경제학자인 스탠퍼드 대학의 프리드먼(Milton Friedman) 교수도 1996년 1월 방송국 대담에서 그러한 사실을 인정했다.[세계 경제를 조종하는 그림자 정부(경제편), 이리유카바 최, 2002년, 해냄출판사, p154]

한편 이 책에서는 말미에 지급준비금 보유율을 1백 퍼센트까지 증가시켜야 한다거나 월별 인구 증가 예상에 준해 월별 화폐 공급량을 산출한다는 등의 COMER(통화경제개혁위원회 : committee on monetary economic reform)라는 단체의 주장을 싣고 있는데 그다지 맘에 와 닿는 주장은 없다. 잘은 몰라도 통화주의 이론을 조악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주1). 한편 이들이 이론적 지주로 여기는 프리드먼은 어떠한 세계를 꿈꾸고 있을까? 그의 글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터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래 글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페비언 사회주의와 뉴딜 자유주의(주2)로 향한 여론의 흐름은 이제 약화되었지만, 앞으로 나타날 여론의 물결이 아담 스미드나 토마스 제퍼슨의 정신에 입각한 자유의 확대와 정부의 축소로 향할 것인지, 아니면 마르크스나 모택동의 정신에 입각한 일당독재정부로 향할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선택의 자유, 밀턴 프리드먼, 박우희譯, 1980년, 주식회사 중앙일보, p190]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프리드먼은 “마르크스나 모택동의 정신에 입각한 일당독재정부”는 거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 그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아담 스미드나 토마스 제퍼슨의 정신에 입각한 자유의 확대와 정부의 축소”일 것이다. 아담 스미스라면 이미 국부론을 통해 경제학의 기반을 다진 이고 그 다음으로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의 제3대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내 관심을 끄는 이는 토마스 제퍼슨이다. 왜 프리드먼은 토마스 제퍼슨을 끄집어냈을까? 그것은 그가 바로 알렉산더 해밀턴이라는 인물과 대척점에 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알렉산더 해밀턴은 누구인가? 그는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이다. 그는 미국의 건국 이후 영국의 영란은행을 흉내 낸 중앙은행을 설립하였고, 미국의 경쟁력 약한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 자유무역을 반대하였고, 당시 13개로 뿔뿔이 흩어져 있던 주정부를 아우르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수립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기에 많은 이들의 많은 반발을 샀다. 그를 반대한 부류는 월스트리트와 금융을 금권주의의 탐욕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남부의 부유한 농산물의 자유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는 이들, 그리고 신생미국이 영국과 같은 강력한 정부보다는 보다 자유로운 자치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었다. 그 중심에는 토마스 제퍼슨이 있었다.

자본주의 캠프 선봉에는 해밀턴이 있었고, 민주주의 캠프 선봉에는 제퍼슨이 있었다. 해밀턴이 이끄는 연방주의자 Federalist 들은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지했으며, 특히 금융과 상업활동에서 정부의 개입을 강조했다. 지역적으로는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방을 기반으로 했다. 반면 제퍼슨이 이끄는 공화주의자 Republican(놀랍게도, 오늘날 민주당의 원조인 이들을 당시에는 ‘공화당’이라고 불렀다)들은 연방정부의 권한을 제한하는 것을 지지했고 이들의 지역기반은 남부였다. 농민들과 대지주들이 공화당의 지지 세력이었다. [머니맨, 헨리 브랜즈, 차현진 해설.옮김, 청림출판, 2008년, p92]

자 이제 편이 갈라졌다. 프리드먼이 아담 스미스와 함께 제퍼슨을 언급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것은 그가 절대적인 가치인 자유를 – 특히 경제활동의 자유를 – 마르크스나 모택동이나, 그리고 결정적으로 해밀턴과 같은 강력한 중앙정부 주창자들로부터 수호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이전의 봉건제나 절대군주제에서 정당성을 획득한 주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절대군주 하에서의 경제에 대한 독재로 인한 폐해는 실제로도 심하였다고 한다.

특히 프리드먼의 주특기(?)인 통화문제에 있어 군주의 횡포가 심했는데 그것은 바로 무절제한 화폐 초과공급을 말하는 것이다. 즉 화폐주조권을 가지고 있던 절대군주는 금함량을 속이는 방법 등으로 화폐를 유통시켜 자신의 사금고를 채우곤 했다. 발권기관의 수익을 뜻하는 시뇨리지의 어원도 불어의 ‘군주 seigneur’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이러니 나라의 경제는 피폐해져 인민들의 생활은 비참하게 찌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절대군주제는 무너지게 된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거기에서부터 자유주의는 싹트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적 타당성을 획득한다.

프리드먼이 대표하는 시장자유주의는 마르크스, 모택동, 해밀턴이 지향하는 강력한 중앙정부가 이토록 피를 흘려가며 지켜온 자유를 빼앗아가는 행위라고 간주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서 마르크스와 모택동은 좌익을 대표하고 오히려 해밀턴은 금권주의를 대표하는 바, 상반된 이들 같지만 둘 다 시장의 자유를 유린한다는 점에서는 공범인 셈이다. 더 나아가 ‘그림자 정부’의 저자 이리유카바 최는 현대의 자본주의는 사실 사회주의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시장의 지배자인 자본가가 경제사에 등장한 이래 권력층은 – 심지어 절대군주조차도 – 자본가의 자유는 유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들은 공생관계를 변함없이 맺어왔다. 프리드먼이 싫어하는 해밀턴은 유치산업(幼稚産業) 보호론을 통해 미국에서의 자본가의 육성을 도모했었다. 독재자 박정희는 재벌의 독점권을 옹호하였다. 오늘날 미국정치의 경우에는 부시 행정부처럼 정부 자체가 자본가로 메워지기도 했었다. 그들에게 있어 주요한 패퇴는 기껏해야 아직 대지주가 힘을 발휘하던 시절의 영국에서 ‘곡물법(corn law)’을 폐지할 힘이 없었던 시기나, 대공황으로 인한 금융억압으로 인해 행동에 제약이 가해지던 정도였다.

해군이 면직산업 발전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해 준 것은 1753-63년의 7년 전쟁에서 프랑스에게 승리한 것이었다. 이 전쟁에서 프랑스 함대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함으로써 영국이 인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영국이 패배했다면 인도나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식민지를 내놓도록 요구 당했을 것이므로 면직산업에게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나폴레옹과의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넬슨 제독이 해상권을 장악한 덕분에 랭카셔의 수출은 1793-1815년 사이에도 급속하게 증가했다. 반대 상황이었다면 면직산업의 미래도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식민제국과 해군력이 원료 공급지와 시장을 하나로 묶는 것을 도와줌으로써만 영국 면직산업은 유지될 수 있었다.[면직산업과 의료,시장, 통상로 보호의 문제, 강철구, 2008.8.11]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의 글이다. 이 당시 영국과 프랑스 양국의 정치체제는 말할 것도 없이 군주제였다. 그들은 비록 독재자이긴 하였지만 자신들의 권한을 자국 산업의 성장을 위해 사용했다. 그러한 면에서 어쩌면 시장참여자 중에서 자본가에는 애초에 강력한 국가로부터 찾아올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 월街의 사태를 보더라도 그들은 든든한 조력자가 아닌가 말이다.

한편 앞서 살펴본 화폐주조권이 독점되어 있기에, 연준이 – 현대판 군주(?) – 그것을 잘 못 사용하였기에 그들 자체가 대공황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프리드먼과 슈워츠는 앞서 언급한 “미국에서의 화폐의 역사”에서 연준이 최종대부자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지 못하여 은행 공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책적 실수도 있었지만 금본위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측면도 있다. 더 나아가 이번 금융위기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원인이 결합되어 폭발한 당시의 대공황을 단순히 통화의 수축만을 원인으로, 그것도 음모론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책의 실패를 바탕으로 최종대부자의 기능을 없애버리자는 – 또는 통화량 조절이외에는 다른 짓은 하지 말라는 – 발상은 허리띠를 안 매고 다니면 살이 빠질 것이라는 착각에 불과할 뿐이다.

이쯤에서 프리드먼이 보호하고자 하는 자유가 도대체 어떠한 자유인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이것이 아닐까?


“나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한 것은 고맙다. 그러나 내가 보너스를 받을 자유는 빼앗지 말라.”

최상위 임원들의 임금과 보너스를 강력히 제한하겠다는 발표 하루 뒤 AIG는 이들 임원 중 몇몇은 내년에 “유지 보너스”로 수백만 달러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One day after announcing strict limits on salaries and bonuses for its top tier of executives, AIG revealed that some of those executives will receive millions in “retention bonuses” next year.[AIG to pay retention bonuses to executives, Financial Times, 2008.11.26]

(주1) 원래 통화주의 자체가 조악한 것일지도…

(주2) 여기에서의 자유주의는 우리가 오늘 날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것의 사상적 뿌리와는 다르다. 이는 미국에서는 자유주의, 즉 liberalism을 1차 세계대전 당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진보당의 작가들이 진보주의 progressivism의 대체물로써 선점하였기 때문이다.

원유운반선

석유회사들이 바다에 수백만 배럴을 저장해두고 수요가 오르고 이에 따라 가격이 오를 때까지 기다릴 것을 계획하고 있다.

브로커들의 말에 따르면 현재까지 석유회사들은 최대 수출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하루 생산량보다 많은 1천만 배럴을 저장할 수 있는 배들을 예약하였다고 한다.

브로커들에 따르면 화요일 미국의 석유무역업체인 Koch와 Royal Dutch Shell이 추가적인 초대규모원유운반선(Very Large Crude Carriers ; VLCC)을 최근 예약 완료했다고 한다.

이 회사들은 즉각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브로커들 말에 따르면 현재 하락한 이자율에서 선박을 주문하는 비용이 원유 가격과 정제업체의 이윤의 반전을 기다림으로써 오는 수익보다 더 적을 것이라는(즉 비용 대비 수익이 더 클 것으로 : 역자주) 설명이다.

(중략)

화요일 현재 즉시 배달되는 원유는 배럴당 50달러 정도로 매우 낮지만 – 이는 2007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 – 내년 3월과 4월의 계약은 53달러 이상이다.

이 때문에 OPEC에서의 몇몇 투기적인 거대 석유생산업자는 향후의 판매를 위해 배위에 원유를 저장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동석유수출업자들은 OPEC의 생산량 감축에 책임이 있기에 원유를 땅속에 두는 것이 여전히 값싸다.

“생산업자들이 떠다닐 저장소에 원유를 넣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유일한 이유는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을 땅속에 꺼내기 위해 싸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 걸프 산업관계자의 말이다.

[Oil firms to store crude on ships as oil tanks 중에서 발췌]

이 기사를 보고 생각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폴 크루그먼이다.

만약 가격이 최종사용자의 수요와 생산이 일치하는 지점 위에 있다면 초과 공급이 있다는 것이고 이 공급은 재고로 쌓여야 할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만약 석유가 재고로 쌓일 수 없다면 현물가격에 거품은 없는 것이다.[More on oil and speculation]

그의 주장은 석유회사들이 석유를 재고로 쌓아두는 식의 매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현물가격에 거품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 기사를 보면 석유회사들이 ‘선제적인’ 매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그들은 OPEC가 생산량을 감축하는 방식으로 공급을 축소하듯이 석유를 제때에 배달하지 않고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는 방식으로 공급을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 보면 참 똑똑한 사람들 많다.

G7 재무장관 공동성명서에 대한 폴 크루그먼의 감상

지구상에서 국제 회담의 공동성명서보다 지루한 것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 전화번호부가 더 재미있다 – 최소한 웃긴 이름이나 이상한 이름들이 가끔 있다. 그러나 공동성명서는 다른 이의 심기를 건드리는 어떠한 단어도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 신중한 조사를 거친다.
There is nothing, nothing on this planet more boring than a communique from an international meeting. The phone book is more interesting – at least there’s an occasional funny or odd name. But communiques are carefully vetted to make sure that not a single word ruffles anyone’s feathers.[출처]


G7 재무장관 공동성명서
에 대한 폴 크루그먼의 감상

조셉 스티글리츠의 폴슨 계획 비판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는 이번 폴슨의 계획을 무용지물로 간주하고 있다. 그 이유로 크게 두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이는 적하(滴下) 경제학에 – 또 다시 – 의존하고 있다. 아무튼 월스트리트에 많은 돈을 던져주면 메인스트리트에 드문드문 흘러들어가 보통의 노동자와 주택소유자를 도울 수도 있다. 적하 경제학은 거의 전혀 성공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이번에도 성공할 것 같지 않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 계획은 근본적인 문제가 신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문제의 일부인 것은 의심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근저에 깔린 문제는 금융기관이 매우 악성의 부채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주택 버블이 있었고 대출은 가격 인플레이션에 기초하여 일어났다.

First, it relied – once again – on trickle-down economics: somehow, throwing enough money at Wall Street would trickle down to Main Street, helping ordinary workers and homeowners. Trickle-down economics almost never works, and it is no more likely to work this time.
Moreover, the plan assumed that the fundamental problem was one of confidence. That is no doubt part of the problem; but the underlying problem is that financial markets made some very bad loans. There was a housing bubble, and loans were made on the basis of inflated prices.[Stiglitz: Bailout Blues]

‘적하 경제학(trickle-down economics)’은 “정부가 투자 증대를 통해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富)를 먼저 늘려주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론(?)으로 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던 시절 채택한 정책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냈던 스티글리츠가 이 이론을 좋아할 리 없다. 실제로도 이 논리를 그대로 따른 조지 부시의 대규모 감세 정책은 경제 활성화에 기여를 하지 못했다. 두 번째 그의 주장은 실물경제가 박살나고 있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신뢰의 상실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진단하고 있는 현 정부의 오진에 대한 비판이다. 같은 민주당 색채의 폴 크루그먼이 그럼에도 이번 폴슨 안이 반드시 하원을 통과하여야 한다고 믿고 있는 반면 그는 보다 더 회의적인 것 같다.

선물시장과 hedge에 대한 간단한 설명

뉴스에서 보도하는 유가는 사실 선물시장에서의 가격이다. 이 시장에서 거래자들은 유형(有形)의 석유를 교환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장래에 – 통상 몇 달 후에 – 어느 시점에 약정된 가격에 석유를 교환하는 계약들을 교환한다. 그러한 계약을 통해 기업들은 초기에 가격들을 묶어둠으로써 포지션을 헤지한다. 항공사는 연료가격이 올라감에 따른 그들의 익스포져(exposure)를 줄이기 위해 선물계약을 구입하기도 한다. 반대로 석유회사들은 미래의 가격이 떨어질 것에 대비해 이윤을 확실하게 하기위해 선물계약을 팔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 대신 석유 공급업자가 선물계약을 사서 그들의 위험을 증가시키면서 유형의 석유의 가격이 폭등함에 따라 막대한 이익을 거두게 된다면?[유가는 조작되는 것인가? 中에서]

이 문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hedge라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말 사전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자.

1 산울타리, 울타리;울타리 같은 것(⇒ fence [유의어])
a dead hedge 마른 나무 울타리
a quick(set) hedge 산울타리
2 경계;장벽, 장애 《of》
a hedge of convention 인습의 장벽
3 (손실·위험 등에 대한) 방지책 《against》;(내기에서) 양다리 걸치기;【상업】 연계 매매(連繫賣買), 다른 상거래로 한쪽 손실을 막기

여기에서는 3번의 의미로 쓰였다. 즉 손실이나 위험에 대한 방지책, 그리고 매우 적절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일종의 양다리를 걸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즉 개념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김치가게 하는 A가 한달 후에 현재 한 포기 1천 원 하는 배추를 살 생각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한 포기 1천5백 원으로 오를 것 같았다.(꿈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이야기해주셨다) 그래서 배추 파는 B한테 가서 한달 후에 한 포기 1천원에 배추를 사겠다고 약속한다. A는 결국 배추가 5백 원이 되든 2천원이 되든 포기당 1천원에 가격을 고정시켰기 때문에 위험을 방지한 셈이다.(그런데 배추는 5백 원으로 폭락하여 A는 할아버지 욕을 엄청 했다) 결국 A는 한달 후에 자기가 팔기로 예정되어 있는 김치의 원가상승을 헤지하기 위해 배추를 미리 사두는 양다리 걸치기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어쨌든 결국 현재 각종 경제신문이나 전문가용 자료에도 hedge 는 그냥 그 영단어를 우리말로 표기한 ‘헤지’가 쓰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유가폭등으로 인해 운영비용이 크게 증가하여 손익이 크게 줄었다 한다. 심지어 운행을 하면 할수록 손해가 날수도 있다. 그래서 심지어 직원들에게 무급휴가를 권장하기도 하였다 한다. 그렇다면 아시아나항공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내 관련부서 혹은 어드바이저가 현재 배럴당 110달러인데 3개월 후 배럴당 115달러까지 갈 것이라고 예측하였다고 하자. 그런데 그 시점에서 1만 배럴이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아시아나항공은 선물시장에서 1천 배럴짜리 10계약에 대해 롱포지션, 즉 계약을 사들인다. 그들의 예측대로 유가가 115달러까지 갔다면 그들은 5만 달러를 절감한 셈이다. 오히려 구매한 계약을 그 시점에 다른 이에게 넘기면 5만 달러를 버는 셈이다. 물론 필요해서 샀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이제 석유공급업자 C를 보자. 아시아나항공과 달리 배럴당 110달러가 100달러로 떨어진다고 예측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이들은 현물시가인 110달러 언저리에 미리 팔아두는 것이 유리하다. 그래서 자신들이 3개월 후 시점에 인도할 10만 배럴에 대해 지금 가격인 110달러에 계약을 판다. 그들의 예측대로 가격이 100달러로 떨어졌다. 그러면 그들은 더 손실을 입을 100만 달러를 그대로 지킨 셈이다. 그런데 이 미친 석유 공급업자 C가 선물계약을 파는 대신 사들였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는 예측대로 유가가 100달러로 곤두박질쳤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공급할 현물 석유에서 100만 달러의 기회비용을, 선물계약에서 추가로 1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여 총 200만 달러의 거금을 하늘로 날려버렸다. 확실히 미친 짓이다.

그렇다면 이 미친 짓이 대단한 짓이 되게 하는 방법은? 100달러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는 시장을 뒤집어서 115달러가 되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바로 현물시장의 벤치마크 지수가 되는 선물시장에 엄청난 양의 롱포지션을 선점하여 가격을 올리는 것이다. 즉 위의 계산대로 C는 10만 배럴짜리 10계약을 파는 대신 거꾸로 사들인다.(자기들은 판매업자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주1) 그렇게 되면 3개월 후 결과가 어떻게 될까? C는 현물을 팔아서 100만 달러의 추가이익을 얻게 된다. 선물계약가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선물시장에서도 적지 않은 이익을 얻게 된다.

바로 이것이 저자들이 주장하는 선물시장 조작을 통한 현물가격의 부당이득의 원리다. 물론 이에 대해 시장참여자, 경제분석가, 심지어 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갑론을박이 존재한다. 특히 폴 크루그먼은 평소 다소는 진보적이었던 학문적 입장에서 벗어나 자기는 정치적 입장을 배제하고 말하건 데 선물시장이 현물시장을 뒤흔들 수는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체적인 논지는 현물을 매점할 만큼의 여유고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Guillermo Calvo 같은 거시경제학자는 석유수요가 (특히 단기적으로) 매우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약간의 재고만으로도 충분히 선물시장에서의 개입이 가능하다고 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현재와 같이 수요나 공급의 급격한 변동이 있지 않은 상태에서 – 물론 언론은 이 변동폭이 상당하다고 떠들지만 – 믿어지는 시점에서 많은 평범한 소비자들은 후자의 입장을 지지하는 편인 것 같다.

(주1) 물론 10계약 따위로 시장을 조작, 또는 매점한다는 불가능하지만 여기서는 그 정도의 분위기가 이미 성숙되었다는 것을 가정하고 말하는 것이다.

무책임의 전형, 알란 그린스펀

지난 글에서 나도 그린스펀의 개념 없고 무책임한 발언에 한마디 한바 있는데 폴 크루그먼도 그린스펀의 몰염치에 질렸는지 최근 그에게 직격탄을 한 발 날렸다.

Greenspan: not a mensch(그린스펀 :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라는 글에서 크루그먼은 자신의 부모님이 어릴 적 늘 mensch(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는데 이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라는(take responsibility for your actions)’ 의미였다고 전제했다. 그리고는 이어서 그는 그린스펀이 버블 이후 경기전망에 대해 지나치게 – 무책임할 정도로 – 낙관적이었으며, 이는 결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행위가 아니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지역경제가 상당할 정도의 투기적인 가격 불일치를 경험할 수도 있다. 미국 전체에서의 국가적인 심한 가격왜곡은 거의 일어날 것 같지 않다. 그 규모와 다양성(주1)을 고려하면 말이다.
Overall, while local economies may experience significant speculative price imbalances, a national severe price distortion seems most unlikely in the United States, given its size and diversity.[Remarks by Chairman Alan Greenspan The mortgage market and consumer debt At America’s Community Bankers Annual Convention, Washington, D.C., October 19, 2004]

크루그먼은 더 나아가 그린스펀이 WSJ 와의 인터뷰 에서 “가격이 2009년 이후까지 계속 떨어질 거라는(prices could continue to drift lower through 2009 and beyond)” 요지의 인터뷰를 한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순되게도 그린스펀은 2006년에는 최악의 상황이 지나갔다고 발언했었기 때문이다.

이 하강세의 끝이 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항목인 새로운 모기지에 대한 신청이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I suspect that we are coming to the end of this downtrend, as applications for new mortgages, the most important series, have flattened out.[Greenspan: Housing market worst may be over, MSNBC, Oct. 9, 2006]

“미국의 집값은 2009년 첫 반기 쯤에 안정화되거나 바닥을 찍을 것 같다. 가격은 2009년 내내 떨어질 수도 있고 그보다 더 갈 수도 있다.”
“Home prices in the U.S. are likely to start to stabilize or touch bottom sometime in the first half of 2009. prices could continue to drift lower through 2009 and beyond.”[Greenspan Sees Bottom In Housing, Criticizes Bailout, Wall Street Journal, August 14, 2008]

확실히 크루그먼의 말대로 무책임한 발언이다. 자신의 임기 동안에는 위기가 지나갔느니, 심지어는 위기란 없느니 온갖 거짓을 늘어놓고 이제 와서는 가격하락이 2009년까지 갈 것이라는 둥, 프레디맥과 페니매에 대한 Fed의 처리방식이 잘못 되었다는 둥 훈장질이니 말이다. 거기에다 얼마 전에 서브프라임 사태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에 대해선 거의 안면몰수의 분위기다.(주2)

한편 요즘 인터넷에서 이른바 경제에 대한 Pundit 으로 통하고 있는 블로그인 Calculated Risk(주3) 는 크루그먼의 해당 글을 인용하면서 이미 자신이 지난 2006년 그린스펀의 헛소리를 까주었다고 강조하는 글을 올렸다. 배구에 비유하자면 크루그먼이 토스하고 Calculated Risk 가 스파이크를 매긴 셈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그린스펀이 모기지 신청이 ‘안정세로 접어들고(flattening out)’ 있다고 주장하던 기간 동안의 ‘MBA 구매지수(the MBA Purchase Index)’(주4)를 살펴보면 어디 한 군데도 ‘안정세로 접어들고(flattening out)’ 있는 구간을 볼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아래 표를 보면 과연 그의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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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 중에 그린스펀은 시장자유주의에 대한 그의 신념대로 월스트리트에 대한 감독기능을 해체시켜 폭주기관차의 브레이크를 없애는 한편, 저금리 정책 등 유동성 공급을 통해 시장의 버블을 키워놓았다. 그리고는 거품은 없다고, 가격변동 현상은 국지적이라고 떠들던 그가 이제 와서는 감 놔라 대추 놔라 훈장질을 해대고 있다. 훈장질도 잘하면 모르겠는데 이민자 늘려서 집 팔아야 한다는 자다 봉창 뜯는 소리나 하고 있다. 정말 크루그먼 말대로 무책임의 전형인 셈이다.

(주1) 이 다양성이란 그린스펀이 그 당시 신봉하고 있던 파생상품 시장에서의 증권화나 유동화의 자유도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2) 여하튼 지난 글에서도 지적하였듯이 그의 이러한 안면몰수는 그가 인터뷰만 해주겠다고 하면 좋아서 침을 질질 흘리며 어떠한 비판도 없이 이를 기사화할 소위 ‘경제부’ 기자라는 족속들이 미국 주류언론에 계속 존재하는 한에는 적어도 2009년 혹은 그 이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주3) 미국의 경제위기를 맞아 미국의 블로그 계에서는 이른바 투자와 거시경제에 대한 여러 블로그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중 가장 권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블로가 가운데 하나다. 전직 투자은행의 임원이었다고 주장하는 익명의 필자와 다른 또 하나의 금융전문가가 운영하고 있다.

(주4) 미국의 ‘모기지 은행 협회(MBA : Mortgage Bankers Association)’가 모기지의 신청, 구매, 리파이낸싱 추이를 살펴 매주 발표하는 지수로 주택시장의 선행지수로써의 의미를 가진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공공기관의 공공성에 관하여

미국 주택금융시장의 큰 손인 이른바 ‘정부보증회사(GSEs:Government sponsored enterprise)’ 패니메(연방저당협회 : Federal National Mortgage Association)와 프레디맥(연방주택대출저당공사 : Federal Home Loan Mortgage Corp.)이 유동성 위기설에 휘말리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였고 미국의 부동산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시장에서 프라임 시장으로 옮겨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또 다시 미국정부는 두 기관을 국유화 내지는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가 하면 주식시장에서는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5일(현지시간) 미국의 양대 국책 모기지 기관인 패니매와 프레디맥 등의 주식에 대한 공매도를 제한하기로 했다.(관련기사)(주1)

패니메와 프레디맥은 어떤 회사인가? 이들은 주택과 관련된 대출을 일으키거나 보증을 설 수 있는 기능을 하는 주식회사다. 패니메는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1938년 설립한 정부기관이었다. 이 기관은 그뒤 30년간 미국의 2차 모기지 시장에서의 독점기관이었다. 1968년 베트남전의 전비 등으로 예산압박을 받은 정부는 패니메를 민영화시키고 상장하였다. 1970년 패니메와 똑같은 일을 수행하는 프레디맥이 탄생하였다. 이들은 2차 시장에서 모기지를 사서 이른바 모기지를 채권으로 하는 증권 MBS(mortgage-backed securities) 상품을 기획하여 공개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판매한다. 즉 부동산의 증권화(securitization)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이들은 시장의 과점을 형성하고 있는 회사인데 그렇게 강자로 행세할 수 있는 배경은 바로 앞서 말한바와 같이 이들이 ‘정부보증회사(GSEs:Government sponsored enterprise)’라는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두 기관은 마치 사기업인 것처럼 주식이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지만 월스트리트에서는 누구나 이들 기관이 도산할 가능성에 대비해 미국 정부가 암묵적인 보증을 서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 암묵적 보증으로 인해 두 기관은 싼 비용의 자금 차입을 통해 차입 비중을 높일 수 있다.

Financial Times 에서는 바로 이러한 점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지난번에 나역시 주장한 바와 같이(!) 미국은 실질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미국에서 실현되고 있는 버전은 내가 아는 한 가장 기만적인 것이다. 정직하고 용기 있는 사회주의 정부라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을 것이다. : 이는 사회적 목적(주택소유자들의 자금조달, 월스트리트의 나의 친구들을 돕기)의 의의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지원을 할 것이다; 그리고 조달을 위해 추가적인 세금(또는 공공지출의 삭감)이 있을 것이다.

There are many forms of socialism. The version practiced in the US is the most deceitful one I know. An honest, courageous socialist government would say: this is a worthwhile social purpose (financing home ownership, helping my friends on Wall Street); therefore I am going to subsidize it; and here are the additional taxes (or cuts in other public spending) to finance it.[Time for comrade Paulson to pull the plug on the Fannie and Freddie charade, FT.com, 2008.7.12]

한편으로 극우적 음모론자의 냄새가 풍기기도 하는 이 기사는 패니메와 프레디맥의 정부보증회사라는 독특한 지위로 인한 시장의 비효율에 대한 우파들의 전형적이고 신랄한 공격이다. 이러한 분위기와 관련해 폴 크루그먼은 “Ideology and GSEs”라는 글에서 이번 사태가 이념적 논쟁으로 비화되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당신이 여기서 알 필요가 있는 사실은 우익들이 – WSJ 사설, 헤리티지 등 – 패니와 프레디를 매우, 매우, 매우 싫어한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패니가 주택시장에서의 핼리버튼인가?(주2) 꼭 그렇지는 않다. 원칙적으로 정부보증회사의 투자의 일면적 특성은 거대한 도덕적 해이를 낳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 정부보증회사의 현실상의 특권남용은 제한적이었던 것 같다.

What you need to know here is that the right – the WSJ editorial page, Heritage, etc. – hates, hates, hates Fannie and Freddie. [중략] But is Fannie the Halliburton of the housing market? Not quite. In principle, the one-sided nature of the GSE’s bets could have produced enormous moral hazard, but in practice the GSE’s actual abuse of privilege seems to have been limited.[Ideology and the GSEs, Paul Krugman, 2008.7.14]

폴 크루그먼은 패니메와 프레디맥의 독특한 위치에 대해 긍정하는 편이고 이들에 대해 정부가 어떠한 형태로든 지원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들 회사의 특권남용이 제한적“이었던 같다(seems)”라고 변호하고 있다.

그러나 Doug Henwood 의 책을 살펴볼 것 같으면 그들의 특권남용이 꼭 제한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파니 메이와 프레디 맥은 그들이 누리는 특혜적 지위를 계속 보장받기 위해 통상적인 로비 활동을 아주 특별하게 활용한다. 예를 들어 1996년에 파니 메이는 전 회장이 클린턴 후보 진영의 예산팀을 지휘하게 되자, 자금에 쪼들리는 봅 돌 공화당 후보 진영에 홍보 전문가를 자원봉사자 방식으로 파견했다. 파니 메이의 로비스트 명단에는 민주, 공화 양당의 전직 상원의원, 하원의원, 백악관 관리들이 두루 포함돼 있고, 선거자금 기부도 적극적으로 한다. 이 기관은 또 두둑한 자문 계약료의 유혹을 앞세워 학자들과도 교분을 맺는다. 이는 연준과 세계은행도 활용하는 방법이다. 미국 의회 예산국의 추정에 따르면 연방정부의 암묵적인 보증으로 가능해진 파니 메이와 프레디 맥의 저금리 혜택 가운데 3분의 2는 차입자들에게 전가되며, 나머지 3분의 1은 이들 기관의 경영자나 주주들에게 돌아간다.[월스트리트 누구를 위해 어떻게 움직이나, Doug Henwood, 이주명 옮김, 사계절, 156p)

결국 이들 기관들의 독특한 지위와 일반기업 못지않은 적극적 로비를 통한 저금리가 어쨌든 차입자 들에게 혜택을 주기는 했지만 또 그 상당부분이 주주와 경영자들의 몫이 되었다는 사실은 폴 크루그먼의 변호에도 불구하고 (비록 극우들은 사회주의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내에서의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와 완전히 무관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특혜적인 저금리는 완전한 공공기관도 아닌 민영화된 정부보증회사라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시장의 비효율, 그리고 그것이 누적되어 결국 80년대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때의 사태보다 더 커다란 규모의 구제금융에 나설 수밖에 없을 처지에 몰리기까지 위험이 감추어져졌다는 개연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이를 두고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socialism for the rich)”라고 비아냥거리고 있지만 나는 “부자들을 위한 관료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즉 어쩌면 자본주의 내에서의 공공기관의 역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덜 공공적일지도 모르며, 우리는 그러한 기관들이 취해온 행태를 사회주의적이냐 자본주의적이냐 라기보다는 그 기관의 존재의의를 위한 임무수행보다는 내부조직의 온존과 안위에 초점이 맞춰지는 관료주의의 관점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살펴볼 수 있는 그 한 사례가 최근 이른바 공모PF사업에서 발주처라 할 수 있는 공공기관이 사업신청자가 자신들에게 지불할 땅값에 가장 큰 평가비중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공공’기관이 땅장사를 한 것이다. 그 피해자는 물론 향후 그 개발단지의 입주자다.

(주1) 그동안 헤지펀드가 이러한 공매도 방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해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비록 두 기관의 주식거래에 국한되기는 하였지만 이는 실로 혁명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주2)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딕체니 정부하에서 온갖 특혜를 받아 그야말로 말그대로의 정부보증회사나 다름없는 세계 유수의 건설회사이자 군사기업 핼리버튼의 현재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핼리버튼이 정부보증회사라는 사실은 WSJ도, 헤리티지도, 그리고 파이낸셜타임즈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