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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원전사고 악화원인은 무엇일까?

France’s ASN nuclear safety authority said on Tuesday the nuclear accident at Tokyo Electric Power Co’s (9501.T) Fukushima Daiichi plant could now be classed as level six out of an international scale of one to seven. Level seven has been used only once, for Chernobyl in Ukraine in 1986. The 1979 accident at the Three Mile Island nuclear power plant in the United States was rated a level five.[French nuclear agency now rates Japan accident at 6]

일본의 대지진에 이은 후꾸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악화되고 있다. 프랑스의 핵관련 당국은 화요일 이번 사태를 레벨6급의 위험으로 분류하였는데, 레벨7까지 간 경우는 1986년의 체르노빌 사태 단 한번이었다고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미국에서 레벨 7로 분류할 수도 있다고 하니, 도쿄에서 불과 24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지역이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일본은 그야말로 국가적인 위기라고 할 수도 있다.

이번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궤멸적인 지진과 쓰나미였다. 한편으로는 사태의 확산과 피폭자 수의 증가에 대해서는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던 기업인 도쿄전력(東京電力)의 정보 미공개와 늑장대응 때문이라는 비난도 들린다. 일본정부의 에다노 관방장관은 초기 원전사태가 별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가, 급기야 도쿄전력이 제대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고 호소하며 뒤늦게 정부 차원의 통합대책본부를 만들기로 하였다.

도쿄전력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데에는 그 회사가 민간 기업이며 주식이 상장되어 있기에 주가하락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아닌 게 아니라 이 기업의 주식은 지금 곤두박질치고 있다). 1951년 설립된 도쿄전력은 일본의 4200만 주민에게 전력을 공급한다. 세계 4위의 민간발전회사로 매출액은 457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이 정도의 회사라면 민이건 관이건 을 떠나서 지극히 관료화된 조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한편 애초 사고가 시작된 후꾸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1호기는 1971년에 지어진 노후화된 시설임에도 여태 운영된 것에 대한 비판도 있다. 한 NGO의 주장에 따르면 가동 당시 발전소의 수명은 30년이라고 했었다. 그러하기에 낡은 시설을 연한을 넘겨가며 계속 가동해온 것은 도쿄전력의 이윤동기, 그것을 허가한 정부의 나태함의 책임이라는 것이다(이러한 상황에 자극받은 독일 정부는 즉시 1980년대 가동을 시작한 원전을 일시정지시켰다).

지진이라는 天災가 방사능 사고라는 人災로 진화한데에는 도쿄전력의 이윤동기가 한몫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비용대비 매출극대화는 민간기업의 본능이며 도쿄전력 역시 이러한 유혹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러한 기업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 관료주의도 책임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민간이 아무리 시장 자유주의적으로 행동한다 할지라도 결국 그것은 당국의 통제 하에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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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kushima I by Digital Globe” by Digital Globe – Earthquake and Tsunami damage-Dai Ichi Power Plant, Japan.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우리나라의 경우 전력시장은 한국전력이라는 거대 공기업으로 오랜 기간 존재하다가 1990년대 후반 이후 전력사업구조개편의 일환으로 발전사업의 민자유치가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2001년 한전의 발전부문이 수력/원자력 1개 회사, 화력 5개 회사 등 6개의 발전회사로 분리되었다. 한전 자회사의 민영화와는 별도로 6개의 대형 민간발전사업자가 있다. 이중 문제가 되고 있는 원자력 부문은 한국수력원자력이 담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영화가 되었다고는 하나 한수원은 실질적으로 정부 소유인 한전(정부와 정책금융공사가 53% 소유)이 100%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 산하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이 도쿄전력과 다르기에 이윤동기에 덜 민감하다고 할 개연성도 있겠으나, 관료주의도 무시할 수 없는 人災의 한 요소이며 우리 역시 1978년 설치한 고리원전 1기를 2007년 10년 더 쓰기로 결정한 바 있다. 국가 역시 채산성이란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정황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발전량 중에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현재 34%에 달한다. 이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료원은 유연탄으로 43%다. 하지만 발전단가에 있어 원자력을 따를만한 연료원이 아직까지 없으며, 유연탄 역시 온난화라는 심각한 부작용 때문에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와 있는 상황이라 단 기간 내에 대체연료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를 교훈삼아 에너지 정책의 인식을 전환하여야 할 시기다.

요컨대, 이번 사고는 에너지원으로써의 원자력에 대한 근본적 회의, 발전사업의 소유형태 및 관리운영의 시스템에 대한 반성,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보의 처리방식 등의 화두를 전 세계에 던져주고 있다. 해답은 쉽지 않다. 앞서 말했듯이 원자력은 어느새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고, 민영화의 대안이 단순히 재국유화일 수는 없는 것이고, 여전히 상당수 정보는 권력자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세기초인데 세기말과 같은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가을에 생각나는 ‘아지노산뻬이(味の三平)’의 미소라멘

벌써 홋카이도(北海道) 여행을 다녀온 지 얼추 1년이 다 되어 간다. 여행이란, 늘 가기 전엔 가벼운 흥분감, 현지에서는 객지(客地)에 머묾으로 인한 적당한 피로감, 그리고 다녀온 후엔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는 긴 여운을 남기게 마련이다. 촌놈이 가장 최근에 다녀온 해외여행이 홋카이도인지라 자연스레 아직도 내 뇌리 속엔 그때의 추억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시 다녀오자마자 설렁설렁 여행기를 썼지만 그때 미처 적지 못한 추억이 홋카이도의 도청 소재지 삿포로에서 먹은 맛있는 라면에 관한 추억이다. 삿포로는 겨울이면 눈축제로 유명한 곳이지만, 또한 라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미소라멘(된장라멘)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삿포로에 도착한 우리들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당연히 라멘식당이었다.

당시 분(分)단위로 여행계획을 짰던 우리 멋진 의사총각이 안내한 곳은 바로 삿포로를 미소라멘의 본고장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식당, 즉 1961년 처음 미소라멘을 개발한 ‘아지노산뻬이(味の三平)’라는 식당이었다. 소위 진짜배기 원조식당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렵사리 찾아간 곳은 놀랍게도 조그만 상가 안에 자리 잡은 그야말로 3평(坪)짜리 – 3평은 더 되었지만 – 식당이었다.


길다란 바로 되어 있는 단촐한 테이블

도저히 원조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일단 그 유명한 원조집이라면 근사하게 독립건물을 차려놓고 장사를 할 줄 알았는데 상가 안에, 식당가도 아닌 문구를 파는 층에 홀로 식당이 있다는 점에서 놀랐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말 그대로 원조집이었음에도 식당 어느 곳에도 – 간판에도 – “원조집이에요~”라고 자랑을 늘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조집이라는 자랑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식당에 들어간 우리는 한동안 ‘여기가 과연 그 아지노산뻬이가 맞을까’하는 대화를 나지막이 나눴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이곳은 원조집의 상호를 가로챈 짝퉁 식당일지도… 어쨌든 막 버스를 타고 도착한 여행객의 피로감으로 인해 우리는 서둘러 자리에 앉아 미소라멘을 시키고 원조집이든 아니든 식당의 음식솜씨를 기대해보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둘러본 가게 안은 깔끔했고 사람들은 저마다 라멘을 먹는 일에 열중해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주방에 요리사 대여섯이 빼꼭히 들어가 열심히 요리를 하는 장면이었다. 특히 노년, 중년, 그리고 청년 3대가 함께 요리를 하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소위 일본 특유의 대를 이은 장인정신을 눈앞에 보고 있는 심정이랄까?


정면에서 바라본 식당

잠시 후 나온 라멘을 입에 넣은 순간 우리는 모두 한 입 가득 면을 씹으면서도 “오이시~(”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된장의 구수함이 꼬들꼬들한 면이랑 나물과 잘 어울려 뱃속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맛이었다. 그 맛과 온기는 매서운 삿포로의 겨울도 잠시 잊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든든했고, 만에 하나 굳이 이 아지노산뻬이가 짝퉁식당이어도 상관없을 만큼의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맛있는 미소라멘

덕분에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식당을 나설 수 있다. 지금도 잘한 일이라 생각되는 것이 길찾느라 수고스럽긴 했지만 본고장에 제대로 된 음식은 이런 거구나 할 만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후일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일본 요리점에서 시킨 미소라멘의 달기만한 짝퉁 맛을 보고는 ‘원조집의 맛은 이렇지 않아’라고 가볍게 비판할 수 있는 “된장질”의 자격을 갖게 된 것이다!

일본 여행기 – 바탕화면 이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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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기 – 노보리베쓰에서 도야까지

우리 일행이 머물렀던 마호로바 호텔

당초 노천목욕을 즐기는 로망을 실현하는 것도 일본행의 – 특히 홋카이도행의 – 하나의 목적이었음은 새삼 말할 나위없다. 그런데 첫날 갔던 탕에서는 노천탕이 없었다. 아내가 여탕에는 노천탕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다행히 일본은 하루마다 번갈아가며 남탕과 여탕을 바꾼다.(일종의 음양의 기(氣)를 바꿔준다는 의미라는데 정확한 유래는 모르겠음) 그래서 욘사마와 나는 아침에 서둘러 노천탕으로 갔다. 비록 시야가 확 트인 노천탕은 아니었지만 앞으로는 단풍이 어느 정도 물든 산이 보이는 노천탕이었다.

어쭙잖은(!) 로망을 어느 정도 실현시키고 끼니를 때운 후에 우리는 재빨리 도야市로 향한 여정에 올랐다. 노보리베쓰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 도시는 역시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도야코(洞爺湖)라는 호수와 쇼와진잔(照和新山)이라는 산이 유명한 곳이었다. 우리의 – 아니 욘사마의 – 계획은 1)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맡기고 2) 도야코에 가서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고 3) 유람선을 타고 4) 우스잔(有珠山) 로프웨이(케이블카)를 탄다는, 야심에 찬 계획이었다.[과연 이것들을 하루에 다 할 수 있을까??]

계획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시내버스를 타고 도착한 노보리베쓰 기차역, 전형적인 시골 역이었다. 이 곳에서 기차를 타고 도야까지 가는 여정이었는데 무려 40분 연착! 시간 잘 지키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이 이토록 긴 시간을 연착해놓고도 별다른 사과도 없다. 아~ 과연 시골역이란! 사람들도 그러려니 하고 있다. 덕분에 기차역 관광은 실컷 했다. 심심해서 역내 풍경, 역사무실, 역 입구에 서있는 곰 박제, 나무에 앉아 있던 까마귀, 현상수배자 포스터까지 카메라에 담았다. -_-

역내 풍경

역바깥 풍경.. 정말 시골역이다.

어디나 그렇지만 역시 기차여행은 근사했다. 특히 홋카이도 남부의 해안가를 타고 가는 노선인지라 수시로 넓고 푸른 바다가 보여 기분이 상쾌했다. 가져온 아이팟으로 일본여행에 어울리게 일본의 유명한 팝그룹 안젠치타이(安全地帶)의 노래를 감상했다. 욘사마가 안젠치타이가 홋카이도 출신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가져간 카메라로 바깥 풍경도 부지런히 찍어댔다.(내가 매일 흉보곤 하던 찌질한 여행객의 모습 그대로) 때마침 근사한 구름 한 덩이가 마치 포효하는 짐승의 모습을 하고서는 우리를 따라왔다. 그래서 연속사진으로 찍기도 했다.

우리를 따라오던 짐승구름!

그런 와중에 도야에 도착했다.

도야로 가던 도중에 본 푸른 바다

일본 여행기 – 노보리베쓰市

우리가 일본의 홋카이도에 머무른 기간 동안 일본의 재무상이 갑자기 돌아가셨고 홋카이도의 홈구단 니혼햄 파이터스가 퍼시픽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인천공항에서 2시간여를 날아 도착한 신치토세 공항은 적당히 구름이 끼어 쾌적했고 공기는 맑았다. 다소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온 일본인지라, 거기에다 여행계획과 항공권 예약 등은 여행 자체보다 여행계획 수립 자체를 더 좋아한다는 설이 있는 다른 총각이 – 자신을 욘사마로 불러 달라 요구하는지라 욘사마라 부르기로 하자 – 세운지라 다른 나라에 왔다기보다는 약간 긴 국내여행을 한 느낌이었다.

신치토세 공항은 홋카이도 최대의 도시 삿포로市에서 전철로 약 40분 거리의 남단에 위치한 곳이다. 우리의 – 아내와 나, 그리고 욘사마 – 첫 목적지는 더 남쪽에 있는 노보리베쓰市. 온천으로 유명한 휴양도시다. 일본을 대표하는 온천관광지라는데 가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노보리베쓰市를 향하는 버스를 탄 후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랑비의 스산함이 느껴지는 가을날의 온천으로의 여행도 나름의 설렘이 있었다.

유황온천 특유의 계란 상한 냄새가 나는 노보리베쓰市에 다다라 도착한 호텔은 마호로바 호텔. 온천도시의 숙박시설 중에서도 고급 축에 든단다. 이 호텔을 예약한 이유는 유카타를 입고 이 호텔에서 제공하고 있는 다다미방인 호텔 룸에서 일본식 식사 대접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이 욘사마의 설명. 일본에서의 첫날을 정통(?) 일본식으로 누려보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여하튼 서둘러 체크인을 한 후 우리는 바로 노보리베쓰市 관광에 나섰다. 관광이랬자 손안에 들어올 만한 크기의 온천마을 쇼핑가와 온천수가 뿜어져 나오는 산에 올라 구경하는 것이 거의 전부의 볼거리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볼거리가 초라했던 것은 아니었다. 부슬비에 우산을 받쳐 들고 점점 심해지는 유황천 냄새를 맡으며 첫 번째 들른 곳은 지고꾸다니(地獄谷).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고, 노보리베쓰市의 마스코트(?)인 도깨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지옥까지는 아니어도 기이한 외계 어디쯤의 행성 풍경을 연상시키는 살벌한 풍경이었다. 나무가 자라지 않는 낮은 민둥산 사이사이로 새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교통이 지금처럼 편하지 않았을 그 옛날, 어렵사리 이 곳에 도착한 이들이라면 이 험상궂은 풍경에 현세가 아닌 듯한 착각에 빠졌을 법하다.

지고꾸다니를 뒤로 하고 산등성이를 마저 올랐다. 나무 발판으로 만든 정갈한 산책로와 산속 오솔길을 거쳐 도착한 곳은 오유야마 전망대. 전망대 아래로 직경이 한 50미터쯤은 되어 보이는 아름다운 노천 온천 오유야마가 보였다. 역시 김이 모락모락 나오고 있었다. 우리를 제외하고 유일한 한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던 아빠, 엄마, 아이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고 우리 셋도 역시 아빠 분의 도움으로 한 컷. 욘사마 담배 한대 피운 후 다음 목적지인 천연족탕으로.

그 곳은 천연 – 물론 천연이지 – 온천수가 냇가에 흐른다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 곳에서 직접 맨발을 담글 수 있다는 곳이다. 얼마나 뜨거울까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찾아갔더니 이미 일본인 서너 명이 발을 담그며 거닐고 있었다. 우리도 양말을 벗고 들어갔다. 생각만큼 온도가 높지 않았다. 높아야 섭씨 30도 후반 내지 40도 초반? 그래도 하얀 온천물에 발을 담글 수 있다는 것은 이색적인 체험임에 틀림없었다.

대충 산행을 끝마치고 터벅터벅 온천마을 쇼핑가로 내려왔다. 쇼핑가는 기껏해야 100미터 채 되지 않았고 기념품 가게에는 어느 나라의 기념품 가게나 그렇듯 관광객들을 현혹할만한 수준의 기념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벌꿀을 이용한 식품을 만드는 어느 가게에 들러 고구마로 속을 한 떡 종류와 꿀을 넣은 아이스크림을 맛보았다. 색다른 맛이라 맛있어 하며 먹었지만 가격은 각각 100엔과 300엔, 우리 돈으로 5천원이 넘는 가격이다. 아~ 환율의 압박!

호텔에 돌아오니 5시 반 경. 7시에 식사를 차리기로 하였으니 유카타를 팬티 위에 둘둘 말아 입었다. 그러고 밖에 나오니 약간 낯간지럽기도 했지만 어차피 모든 겉옷들이 사실 속은 달랑 팬티 한 장이지 않은가. 지하에 있는 탕으로 가는 와중에 허리띠를 안 둘러서, 수건을 안 가져와서 등등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치고서야 탕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내는 여탕에 나와 욘사마는 남탕에. 아쉽게도 혼탕은 없었고, 그 와중에 앞서 글에서 이야기한 ‘황당한 문화충격’ 사건이 있었다. 뜨뜻한 탕에 몸을 담그니 기분이 좋았지만 노천탕은 찾질 못해서 그냥 발길을 돌려야 했다.

황당한 문화충격
여행은 저와 아내, 그리고 우리 부부가 잘 아는 총각 한명과 갔습니다. 온천은 빠질 수 없는 관광코스. 기대했던(!!) 남녀혼탕은 없었고요. -_-a 남녀 탕을 하루에 한 번씩 바꿔서 운영하더군요. 그래서 아내는 여탕에, 저와 총각은 남탕으로 갔습니다. 호텔 지하에 있는 노천탕이었는데요. 룸에 비치된 유카타를 입고, 탕 안에서 쓸 작은 수건과 탕 밖에서 쓸 큰 수건을 가지고 갑니다. 저는 그냥 작은 수건을, 총각은 큰 수건을 가지고 갔습니다.

여하튼 둘 다 발가벗고 탕에 들어서는 순간, 제 눈을 의심할 장면이 눈앞에! ‘이라샤이마센’하며 반겨주는 탕의 종업원이 남자가 아닌 아줌마! @_@ 너무 당황스러운지라 갖고 있던 작은 수건으로 중요부위를 가릴 생각도 못하고 스쳐지나 왔습니다. 그런데 아줌마가 뒤따라오던 총각에게 뭐라 하더군요.(총각은 일본어 대화 가능자) 대충 큰 수건은 탕밖에 둬야 한다는 취지로 짐작되었습니다.

재빨리 몸 씻는 곳에 앉아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총각이 나가더니 결국 큰 수건을 옷 보관 바구니에 놓고 오더군요. 그 와중에 저는 ‘아.. 역시 일본은 다르구나’ 하며 처음 경험한 문화충격으로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있었죠. 화장실에서도 아줌마가 있으면 머뭇거리게 되는데 목욕탕에서 마주칠 줄이야. 어쨌든 내 옆에 앉은 총각에게 말을 건넸죠.

“야. 너무 황당하지 않냐?”

총각 왈.

“그러게. 왜 큰 수건은 못 갖고 들어오게 하는 거야?”

방에 돌아와 아내에게 물으니 노천탕은 여탕에 있었다. 하루마다 탕이 바뀌므로 내일 아침에 다시 들르면 될 일이었다. 상은 각 상으로 우리 부부가 머무는 방에 차려졌다. 회 몇 점맛보기 요리들, 된장으로 간은 한 쇠고기 요리, 그리고 샤브샤브 등이 대충의 상차림이었다. 특별히 감동할 정도의 맛은 아니었지만 여행지에서의 이국적인 상차림인지라 나름 즐기는 맛이 있었다. 서비스로 제공된 와인이 감질 맛나서 입가심으로 마시기로 하고 사온 캔 맥주를 꺼내 마셨다.

일본에서의, 홋카이도에서의, 노보리베쓰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일본 경제의 추락

Japan’s economy suffers record contraction
By Peter Symonds
22 May 2009
from World Socialist Web Site

이번 주 발표된 정부자료에 의하면 일본의 경제는 2009년 1/4분기 4% 감소하였고 연단위로는 15.2% 감소하였다. 국내총생산은 1955년 이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 최악으로 폭락하였고 이는 주요 선진국 중 가장 큰 폭이다.
The Japanese economy shrank by 4 percent in the first quarter of 2009 or an annualised rate of 15.2 percent, according to government data released this week. The plunge in Gross Domestic Product (GDP) was the worst since records began in 1955 and the largest of any major industrialised country.
실질적으로 전 부문에 걸쳐 큰 폭으로 하락하였다. 수출은 전 분기 대비 26% 하락하였다. 가계소비는 1.1% 하락하였는데 2008년 4/4분기의 0.8%보다 높은 수치다. 기업 자본지출은 4/4분기의 6.7% 축소보다 더 악화된 10.4% 하락하였다.
Virtually every sector was sharply down. Exports fell by 26 percent compared to the previous quarter. Household consumption was down by 1.1 percent – larger than the 0.8 percent decline in the fourth quarter of 2008. Corporate capital spending shrank by 10.4 percent – worse than the 6.7 percent drop in fourth quarter.

[중략]

세계 경제 혼란이 일본에서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이 나라는 전 세계적인 수요 감소로 인해  주요 수출부문이 궤멸당하고 있어 심각한 악영향을 받고 있다. 주요하고 제조업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주요경제 체제인 독일은 1/4분기 3.8%, 연단위로 14.4%의 감소로 고통받고 있다.
While the global economic turmoil did not begin in Japan, the country has been badly hit by the worldwide fall in demand that has devastated its crucial export sector. Significantly, Germany, the other major economy dependent on manufacturing exports, suffered a first quarter contraction of 3.8 percent or 14.4 percent annualised.

[중략]

요사노 재무장관은 이번 주 현재 4.8%인 실업률이 높아질 것 같다고 경고했다. 일본의 공식적인 실업 통계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위기를 은폐하고 있다. 십년간의 경제 재구조화 이후 저임금의 임시직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력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특히 해고에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벌써 그들의 임금과 보너스를 삭감 당했다. – 이것이 소비자 지출이 줄고 있는 한 원인이다.
Finance Minister Yosano warned this week that unemployment, which is currently 4.8 percent, was likely to grow. Japan’s official jobless statistics mask a broader social crisis. After a decade of economic restructuring, low-paid, temporary workers constitute about a third of the workforce and are particularly vulnerable to dismissal. Many more workers have already had their pay and bonuses cut – one of the factors that has reduced consumer spending.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지난 몇 십년간 볼 수 없었던 수준에서의 지배계급과 노동계급간의 갈등이 커가고 있다.
As in other countries, what is building up in Japan is a confrontation between the ruling elites and the working class on a scale not witnessed for dec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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