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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는 절대악인가

이 글은 현재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민영화 논리에 대한 반대급부로 국가의 공공서비스 기능을 수호하자는 주장에 대해 보다 세세한 면에서 그러한 주장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인식에서 쓴 글이다. 필자 역시 아직은 걸음마 수준으로 생각하는 주제이기에 논리가 다소 튈 수도 있고 모순될 수 있지만 아이디어 공유차원에서 공개하기로 한다. 따라서 생산적인 딴죽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공공서비에 대한 민영화(또는 사유화) 또는 공공기관 매각은 80년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본격화되었다. 사실 더 올라가자면 수에즈 운하, 미국의 철도사업들도 공공서비스이면서도 민간에 의해 건설, 자금조달, 운영이 되었던 민간위주의 사업이었다. 또한 프랑스의 경우 나폴레옹 시절부터 상하수도를 민간기업에 맡겨 운영하였다.

그렇지만 그러한 민영화 현상이 범세계적인 보편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영국 쌔처 정부의 정부조달 사업에 대한 민간의 참여허용, 제3세계에서 공공시설의 설치에 민간의 자금을 끌어들인 BOT(Build-Operate-Transfer) 등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시킨 것은 WTO, FTA 등 자유무역협정과 무역의 세계화다. 이를 통해 각국은 자본자유화, 공공서비스의 표준화의 작업 등을 거쳐 해외투자자의 투자를 수월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영화는 1990년대 초반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현재 공급되는 사회기반시설의 10%이상이 민간에 의해 서비스를 제공받게 되어 있다. 세계적으로는 물산업(상수도 및 하수도 건설 및 운영)을 예로 들면 현재 전 세계 인구의 9%가 민영화된 서비스를 공급받고 있으며 2015년에는 약 12%의 인구가 민영화 서비스를 받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명박 인수위가 대운하, 금융기관, 방송, 의료보험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민영화의 이슈를 제기하자 블로고스피어 등 여러 곳에서 저항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다. 어쩌면 반가운 현상이지만 한편으로 이에 대한 대안도 마련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1) 공공서비스의 형평성, 또는 계급편향의 문제

자본주의라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시장에 의해 공급될 수 없는 이유는 이른바 통신, 도로와 같은 공공재는 비배제성, 비경합성이라는 고유의 특성 때문에 시장에서 공급될 수 없는 ‘시장의 실패’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보편적으로 국가에서 공급을 해왔고 상대적으로 싼 가격을 유지하여 인플레이션을 차단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서비스 공급체계가 이른바 무임승차(free ride)의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염자부담원칙(polluter pay principle)과 배치되는 개념인데 한편으로 계급간 형평성 또는 평등주의 논리에 의해 보완되기도 한다. 예컨대 건강보험같은 경우 부자들의 소득으로 빈자들의 의료비를 채우는 고통분담의 차원에서 공공서비스를 바라봐야한다는 취지기에 수긍이 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충분히 부담능력이 있는 이가 무임승차할 수 있는 개연성은 남는다. 예를 들어 서울과 인천간 고속도로를 국가보조금으로 지었다면 이 도로를 이용하지 않는 지방 사람들에게는 억울할 노릇이다.

또한 도로공사가 직영하는 도로와 민자도로가 가격에서 차이가 나는 점은 근본적으로 민자도로가 시설의 투자비를 상각하여 통행료에 반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로공사처럼 투자비를 반영시키지 않는 방식이 좋은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빚으로 남든지 국가가 보조하든지 해서 현 세대와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다. 도로 만들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 하나가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국가는 결국 지배계급의 지배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들이 공급하는 공공서비스 역시 계급편향적일 수밖에 없다는 문제다. 예를 들자면 지속적으로 적자가 나는 철도운영에 있어 예전에 찾아본 바에 의하면 여객부문은 흑자인데 수송부문은 적자였다. 이는 결국 기업의 물류비용을 국가가 개인의 여객부문에서 보충하고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회복지적 성격이 강한 의료보험 등도 역시 어떻게 보면 기업이 책임져야 할 노동재생산비용임에도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2) 공공서비스의 비효율 문제

이는 특히 환경관련 시설의 공공서비스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인데 현재 상수도 민영화 등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물산업 육성정책과 관련 있다. 결국 정부의 민영화 논리는 우리나라의 상하수도 서비스가 기초자치단체에 의해 공급되고 있어 비효율과 시스템의 부재로 인해 불필요한 비용이 과다지출되고 있고 관리와 효율적인 투자 또한 제때 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일정정도 사실이다. 상하수도의 누수율은 심각한 지경이고 시설도 노후화되었다. 그리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안이 민영화, 광역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관리주체의 난립이나 영세성으로 인한 비효율의 문제는 실제로 심각한 문제다. 어찌 하였든 사실은 공공서비스의 과점체제를 인정하는 문제를 논의선상에 올려야 하는 것도 사실인데 실은 이러한 논의는 진보진영에게 있어 일종의 계륵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해당 공무원의 고용불안의 문제, 공정경쟁 우선논리와의 상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지난 세기 현실 사회주의 등 진보적인 대안이 제시했던 사회상은 사실 똑 까놓고 말해 국가가 주인인 독점자본주의 시스템과 유사함을 인정하여야 한다. 진정한 사회화를 통한 대안경제 체제는 이러한 독점자본의 형태에서 점차적으로 각 사회세력이 통제능력을 갖춘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바로 독점과 공정경쟁의 모순이 작동하는 것이다.

3)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 유지비용의 문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 사회기반시설이나 공공서비스의 양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제1세계나 제3세계나 모두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로 인해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는가. 바로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유지관리비용이다.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서비스의 내용이 달라지기에 그 유지관리비용이 이전과는 다른 수준임에는 분명하다. 도로만 하더라도 이전의 도로와는 질적으로 다른 기능을 제공하니 그만큼 비용이 증가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국가로서는 이러한 비용이 예산에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나 이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고 그 위험비용 또한 엄청나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도 다리가 무너진 사건은 현재의 사회기반시설 유지체제가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할 때 국가로서는 어떠한 유혹에 빠지는가 하면 바로 민간에게 상당수의 반대급부를 주고서라도 민영화하여 위험을 이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계량적으로 측정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위험이전효과도 상당할 것이다. 민간이 실제로 그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가는 또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향후에 공공서비스를 계속하여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로 가져가 달라고 요구할 것 같으면 이에 대한 재원마련의 대안도 내놓아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즉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내서라도 이러한 부분에 대한 가격 차이를 메워줘야 하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조세저항 없이, 그리고 세금의 무임승차 없이 예산을 마련하는가가 관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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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올바른 공공서비스 제공의 모습은 그 형식에 있다기보다는 그 내용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실제로 어느 공사가 주인 없는 회사라고 방만한 경영을 일삼는다면 그것은 차라리 국민세금 더 들어가기 전에 매각해버리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민간 기업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라도 국가가 통제를 통해 가격과 서비스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다면 고려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privatization 이 민영화로 이해되는 현상일 것이다. 즉 민(民)이라 불리는 주체 중 개인이나 사회운동단체 들은 실제 민영화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극히 제한적인 반면 자금조달 능력이 있고 이윤추구가 목적일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 민영화의 이슈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현실적으로는 일종의 사회적 타협의 방법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인데 현재의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특히 한미FTA 등 자유무역협정은 오히려 사회적 타협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한편으로 기업에게는 국가를 제소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는 것이다.

American Apparel의 도발적 광고, 장삿속인가 정치적 항거인가

가만 보면 의류광고는 다른 상품광고보다 좀 튀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일단 패션이라는 테마를 알리니 만큼 어떻게 해서든 튀는 행동으로 주위를 환기시킴으로써 브랜드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 한편으로 패션계에 기인들이 제법 있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기도 한데 뭐… 패션하고는 조금 거리가 멀어서 그런가보다 하는거다.

여하튼 이런 튀는 광고의 대표 격은 잘 알다시피 베네통이다. 루시아노 베네통이 1969년 한 옷매장의 문을 열면서 시작된 베네통 브랜드는 ‘United Colors of Benetton’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후 유럽 최대의 의류업체로 성장한다. 그런데 정작 이 브랜드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광고의 상식을 뛰어넘는 도발적인 주제와 형식을 담은 광고 때문이었다. 강한 정치적 메시지, 충격적인 비주얼, 대담한 아이디어는 이후 베네통 광고의 특징으로 자리 잡고 베네통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렸다.

베네통 광고 사진 맛보기

최근 베네통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보다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선보이는 의류광고가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미국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브랜드인 American Apparel의 광고다. 최근 이 회사의 광고의 광고모델로 등장한 이는 바로 이 회사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남미 출신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이 사진을 찍은 이는 회사의 설립자이자 CEO Dov Charney다.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어메리칸어패럴의 광고

LA타임스와 뉴욕타임스 등에 지난달부터 게시된 이 광고의 의도는 분명하다. 이 사진은 이주정책의 개혁을 목적으로 하는 사진이다. 즉 현재 미국의 이주정책은 일종의 차별정책이며 불법화된 이주노동자들이 법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합법적인 경로를 열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이동의 자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그늘에서 살고 있다.”라고 Dov Charney는 이야기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회사들이 광고에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 않은 가운데 앞서 말한 베네통이나 나이키 등 일부 업체에서만 다소 도발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런 광고에 대해 시장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한 광고회사의 CEO는 “이 이슈는 선거에서 결정될 문제다.(주1) 그러나 그들은 어쨌든 매우 급진적인 회사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이 광고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American Apparel에 따르면 회사로 그들을 지지하는 편지들이 답지하고 있다고 한다. Charney 씨는 대부분의 대기업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비밀스러운 로비를 선호하지만 자신은 공개적인 방법을 선호한다면서 자신의 광고를 옹호하였다.

“우리의 옷을 만드는 이들에 대해 분명히 하자면 그것은 미국 태생의 노동자들과 미국 이외 지역 태생의 노동자들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나는 이민을 지지하는 것이 나의 브랜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책임 있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게끔 하는 면이 있다.”

어찌 보면 다분히 비즈니스적 마인드에 철저한 발언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American Apparel은 오랜 동안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주창자였으며 과거에도 꾸준히 이주정책에 관한 광고를 지역신문에 게재해왔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한편으로 일부 이주정책 전문가들은 이 광고에 대해 비판적이다. 코넬 대학의 Vernon M. Briggs Jr 교수는 불법이주에 대한 대응은 차별이 아니라 단순히 범법행위에 대한 단속이며 해당 광고는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저임금 노동을 영속화시키려는 자족적인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고 혹평하였다.

저임금 노동착취를 목적으로 하든, 브랜드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든, 또는 정말 순수하게 Dov Charney의 정치적 목적이든 다 좋다. 어쨌든 일개 기업이 다분히 민감한 주제인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해 도발을 한 것이다. 그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편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Dov Charney와 같은 사회적 이벤트는 별로 기대도 하지 않지만 사태는 미국에 비해 나쁘면 나빴지 좋을 것 하나 없다.

인권을 존중한다면서 인권위원회까지 설치한 참여정부는 이 땅의 이주노동자들을 3D 업종을 메워주는 소중한 이웃이라고 여기기보다는 범법자라고 여기고 있다. 업주의 저임금 착취노동, 과잉단속, 불법추방으로 이어지는 탄압 속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산업재해로 죽기도 하고 심지어는 도망치는 과정에서 사고로 죽어갔다.

이천 냉장창고 사태는 그러한 한반도 이주노동자 현황의 결정판이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통해 단속반이 공장이든, 길가든, 집이든 ‘불법체류자’라고 의심되면 언제라도 이주노동자를 심문하고 단속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 하고 있다. 우리의 형과 아버지가 타국에서 그러한 수모를 당했다고 생각해보라. 실제로 몇 십 년 전만해도 선진국에 광부로 일하러 갔던 우리의 선배들의 모습이 그러했을 것이다.

[인권오름] ‘인간사냥’에 쫓기는 이주노동자

흔히 이 사회의 주류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유무역을 지지한다. 물론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자유무역은 이동성이 뛰어난 자본에게 더욱 유리한 형태인 것이 사실이다. 오늘 날 거대자본은 임금의 많고 적음, 국가의 세금이나 우대정책 등에 따라 전 세계를 무대로 자유롭게 생산기지와 오피스를 옮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서류들이 바로 WTO의 각종 조약이나 FTA들이다.

한편 노동자들은 자본에 비해 훨씬 이동성이 떨어진다. 살고 있던 곳을 떠나기 쉽지 않고 바로 대부분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타국의 노동자들은 정부의 탄압을 받기 때문이다. 무역의 자유를 신봉하는 이들이 바로 노동의 자유는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유도 있고 또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은 체제적 속성이기도 하다. 사실 자국 노동자마저 생산비용으로 환원하는 이들이니 살갗이 틀린 이들에게야 더 모진 것이 당연한 일일게다.

 

(주1) 현재 미국 내 불법노동자의 수는 1천5백만에서 2천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로 인한 각종 사회문제 때문에 사실상 이주노동자 문제는 2008년 대선의 최대 이슈 중 하나가 되고 있다(관련기사)

유시민표 진보정당의 정체가 의심스럽다

앞서 “좌우를 구분하는 백한 번째 방법”이란 글에서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를 혼동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유시민 의원을 뽑았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시지 않는다.

유시민 의원이 16일, 그러니까 오늘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했다고 한다. 탈당사유는 “지금 신당에는 제가 꿈꿨던 ‘진보적 가치’가 숨 쉴 공간이 너무나 좁아 보인다”라는 것이고 진보적 정책노선을 가진 ‘좋은 정당’을 5년을 내다보고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한다.

좋은 이야기다. 유력한(?) 정치인이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소신을 밝혔으니 말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와 같이 진보에 대한 가치정립이 제대로 되지 않고 그에 대한 유권자들의 믿음이 희박한 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그 진보가 어떠한 진보인가 하는 문제다. 진보를 굳이 좌우로 나누자면 아직까지 이 사회에서는 ‘좌’쪽에 가까운 가치일 것이다. 앞서 글에서의 좌익이냐 좌파이냐 하는 구분법으로 살펴볼 것 같으면 좌익, 즉 몇몇 핵심적인 정치적인 가치와 경제적인 가치를 포함하여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굳이 표현한다면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다원주의’, ‘자유주의’적인 가치를 포괄하는 것,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사회공공성’, ‘약자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보호’, ‘강자에 대한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통제’와 같은 가치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시민 의원의 다음 말을 들어보자.

“한미FTA를 통한 전면 개방으로 다양한 기회 속에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국가적 인프라를 제공하는 한편, 전통적 진보 가치인 사회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21세기형 유연한 진보”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유연한 진보이자 진보정당’이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한미FTA를 반대하는 민주노동당은 ‘유연하지 않은 꽉 막힌 진보(?)정당’인 셈이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가 생각하는 ‘유연’의 판단기준은 ‘한미FTA의 찬반 여부’일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유시민 의원으로 대표되는 사이비 진보의 비극이다. 그들은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그리고 ‘자유무역협정’에서 쓰이는 ‘자유’라는 단어가 모두 같은 뜻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박정희 독재세력에 대한 반대테제로 상정한 자유는 박정희의 정치적 독재에 대한 자유, 박정희의 국가주도 경제에 대한 자유라 생각한다. 그러니 관치는 나쁜 것이고 시장은 좋은 것이다. 시장의 자유를 저해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 시장의 자유는 자유무역을 통해 만개한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궁금한 것이 한미FTA를 통해 전면 개방될 이 사회에서 어떻게 유시민 의원이 만들 진보정당 또는 다른 정치세력이 “전통적 진보 가치인 사회투자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더불어 좌익의 핵심적인 가치인 약자에 대한 보호, 강자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가능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한미FTA는 분명 ‘자유’무역협정이다. 그런데 적어도 현재 체결된 한미FTA에서의 자유는 시민사회의 자유, 경제적 약자의 자유가 아니라 기업의 자유, 시장의 자유다. 모든 시장은 개방되고 공공과 민간이 똑같은 기준으로 경쟁하며 모든 사회적 가치는 화폐로 환산된다. 기업은 국가가 공공성을 이유로 기업 활동을 제한할 경우 기업의 자유를 제한하였다는 명목으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유시민 의원이 예를 들어 사회투자를 확대하겠다며 특정 공공서비스의 독점적 시장을 인정하는 조치를 취했을 때 투자자들이 그러한 조치가 한미FTA 조약을 위반하였다고 소송을 걸 때 어떻게 그가 생각하는 “전통적인 진보 가치”를 수호할 것이고 그의 지지자들에게 무슨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가 하는 점이 궁금하다.

한미FTA는 필요악이라고 할 것인가?

나는 유시민 의원이 어찌 되었든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한 사회와 같이 정치적 스펙트럼이 지극히 편협적인 곳에서 ‘진보’라는 이름을 단 정치집단이 하나라도 많아져서 나쁠 일은 없다고 본다.

그런데 그 진보정당이 한미FTA를 찬성하는 진보정당이라면 나는 그것은 모순이라고 본다. 그의 판단기준으로 보자면 한미FTA 반대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힐러리와 오바마는 ‘유연하지 못한’ 정치인이고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진보정당은 미국의 민주당보다 훨씬 유연한(?!) 정당일 테니 적어도 나는 그 정당을 “진보정당”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미FTA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의 알리바이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Roh Moo-hyun - cropped headshot, 2004-Oct-26.jpg
Roh Moo-hyun – cropped headshot, 2004-Oct-26” by U.S. State Department Photo – http://www.state.gov/secretary/former/powell/photos/37467.htm.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한미FTA가 옳고 그르냐는 논쟁을 떠나서 노무현 현 대통령 또는 현 정부의 지지자들 중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이들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를 추진하는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알리바이를 들이대는 이들이다.

“공공의료 시스템 파괴의 주범은 이명박이 아닌 노무현”이라는 필자의 글에 capho라는 아이디를 쓰시는 분이 쓴 다음 글을 보라.

“행정부 수반이 단독으로 FTA협상을 수락하는 최종 단독 결정권자가 아닙니다.
국회의 비준을 거치는데 왜 노무현 탓으로 귀결 되는지? FTA협상과정에서 해당 독소조항을 받아들인 실무자의 면면을 근저까지 살펴보지 않는 한,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의 동의를 거치는 FTA협상을 무조건 노무현 때문 이란건 비약에 다름이 없습니다.(하략)”

대통령은 한낱(!) 행정부 수반으로 FTA가 협상을 잘못 했다면 그것은 바로 실무자와 한나라당의 탓이라는 논리다.(주1)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가 타결되기까지 어떠한 입장을 표명하였는지 다음 어록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어록을 보고서도 여전히 대통령의 알리바이를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으면 그때부터는 종교의 영역이니 필자는 더 이상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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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 미국과도 자유무역협정을 맺어야 한다. 조율이 되는대로 협상을 시작하도록 하겠다”(2006년 1월18일, 신년연설)

o “한미 FTA는 우리의 자존심이 걸린 일로 압력 같은 것은 없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여건을 조성하고 제안해서 성사된 것이다”

“국내 이해단체의 저항 때문에 못가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해야 하며, 협상조건에 따라서는 결렬될 수도 있으며 양보 못하는 절대조건이 있을 수 있다”(2월16일, 대외경제위원회)

o “우리가 2002년 (월드컵에선) 16강이 소망이었는데 4강까지 가버렸다. FTA를 통해서 G10 안으로 간다,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2월2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o “요즘 FTA 때문에 걱정들을 많이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어떤 시련에 부닥치거나 위기에 도전해서 좌절하거나 실패한 일이 있느냐. 결국 하기 나름이다” (4월14일, 폴리텍 창원대학 방문행사)

o “한미 FTA는 그것을 통해 물건을 더 파는 것보다는 제도를 미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 각 분야의 세계의 제도와 뒤섞이지 않으면 수준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5월14일, 두바이 동포간담회)

o “FTA도 찬반이 다 있지만, 개방하고 교류했던 나라는 망한 나라도 있고, 흥한 나라도 있지만 개방않고 교류하지 않은 나라 중에는 흥한 나라가 없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대원군의 쇄국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만드는데 얼마만큼 기여했는지를 실제 잘 몰랐다. 동학혁명의 소위 배외(排外)주의가 그 시기에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맞다고 해서 오늘도 그런 배외주의가 우리 민주주의, 민족주의의 기치가 될 수 있는 것이냐”(6월12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대표 오찬)

o “한국이 미국처럼 세계시장에서 강자로서 우월적 위치에 서 본적이 없어서 (FTA에 대한) 한국인의 불안은 너무나 당연하다. 신속성과 내용의 충분성 모두를 충족시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6월22일, 한미 재계회의 대표단 접견)

o “한미 FTA 추진은 대통령으로서 다음 세대를 고민하고 내린 결단이다. ‘한미 FTA의 손익계산서’에서 이익은 도외시한 채 손실부분만 잘라서 이야기하는 것은 공정한 사실을 알리는 것은 아니다” (7월14일, 국민경제자문회의)

o “정보공개는 대통령이 보고받는 수준으로 최대한 하겠다. 고도의 협상전략 외에는 다 공개하겠다는 뜻이다.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은 FTA 협상을 위한 환경조성에 필요한 일이었지만 FTA 협상의 대상은 아니었다”

“한국이 개방해서 실패한 게 별로 없다. 농업 얘기할지 모르지만, WTO (국제무역기구)로 개방됐고 그 외에는 패배할게 없다. 국가적 전략을 이데올로기 싸움이나 정쟁의 대상으로 악용해서는 안된다”

“(통상절차법 관련) 국회가 조약체결권을 갖고 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8월9일, 연합뉴스 특별회견)

o “만일 일본과 중국이 미국과 FTA 교섭을 한다면 ‘노무현이 뭐 하냐’고 아마 우리나라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8월31일 KBS특별회견)

o “한미 FTA는 양국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고 한미관계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기회다”(9월13일 미국방문중 헨리 폴슨 미재무장관 면담)

o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국회가 무슨 밤낮없이 논의를 하고 있느냐. 서류 안 보여준다고만 논쟁할 뿐이지, 느긋하게 하고 있다. 제일 바쁜 데는 협상팀이다”(9월28일 MBC 100분토론)

o “우리 사회의 진보개혁 세력이 앞으로 정치적, 사회적으로 주도적인 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개방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2007년 1월23일 신년연설)

o “이라크 파병, FTA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사실은 인정하고 따질 것은 따지는 것이, 지식을 가지고 논리를 말하는 사람들의 자세다”(2월17일 청와대브리핑 기고문)

o “결코 한국은 미국화 될 수 없다. 한국 사람들 호락호락 하지 않다. 대원군, 대한제국 때 우왕좌왕 하다 무너지던 때와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이다. 지도자가 좀 뭣해도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다”

“한국이 협상을 너무 잘해서 오히려 안 열어주고 미국도 자꾸 열어달라고 애를 안써서 오히려 아쉬움이 있다. 협상이 끝나도 서비스 열리지 않는다면 주도적, 자발적으로 열어야 한다. (2월27일 인터넷매체 합동회견)

o “한미 FTA의 영향이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더 크고 국민도 더 불안해하는 등 양국 간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도 어려운 선택이었다”(3월7일 폴슨 미재무장관 접견)

o “FTA 체결을 안 할 수도 있고, 기간은 연장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고, 또 그 범위 안에서 높은 수준, 낮은 수준, 중간 수준, 이 모두를 전부 검토해서 철저하게 따져 국가적 실익, 국민적 실익 중심으로 가면 된다”(3월13일 국무회의)

o “염치도 없다. 한.미 FTA 하면 (농민들이) 또 돈 내놓으라고 하고, 한.중 하면 또 내놓으라고 하고,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FTA가 체결되고 나면 이 나라의 FTA를 반대하는 모든 정치인들과 직접 앉아서 토론할 것이다. 제일 하고 싶은 얘기가 거짓말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음 어느 쪽이 정권을 잡아도 안할 것 같았는데, 저는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정치적 손해 가는 일을 하는 대통령은 노무현 밖에 없다고 스스로 믿고 있기 때문에 특단의 의지로 결정했다”(3월20일 농어업분야 업무보고)

o “최후의 순간까지 국익을 위해 최선의 협상력을 발휘해달라”(3월30일 청와대 협상상황 보고회의)

o “최종 결정은 내가 내린다” -노무현 대통령(3월 29일 카타르 교민 초청 간담회)
(주1) 실무자 탓으로 책임을 돌리는 행위를 과거 독재정권에 적용하면 독재자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다 아랫사람들이 잘못 한 것이다.

공공의료 시스템 파괴의 주범은 이명박이 아닌 노무현

‘의료보험의 민영화와 당연지정제 폐지’에 관한 블로고스피어의 논쟁을 보면서 한 가지 어이없는 일은 위의 두 급진적 조치가 ‘인간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촉발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어떤 이는 – 아마 현 정부 지지자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 이명박 지지자들에게 ‘너희들이 어떤 사람을 뽑았는지 앞으로 똑바로 지켜보라’는 훈계까지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료보험의 민영화와 당연지정제 폐지’는 현 정부가 초석을 이미 다 다져놓은 상태다. 당연지정제의 경우 이미 2005년 민주화의 산 증인 김근태씨가 복지부 장관으로 있던 시절 폐지를 검토했다가 참여연대가 항의성명을 내는 등 저항이 일자 서둘러 봉합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현 정부가 슬그머니 저질러놓은 사건이 있다. 바로 자유경제구역과 한미FTA다. 이 두 가지 수단만 있으면 의료자본은 한국의 의료보험 체계를 언제든지 깨부술 수 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요양기관)에 규정하고 있다.

제40조 (요양기관) ①요양급여(간호 및 이송을 제외한다)는 다음 각호의 요양기관에서 행한다. <중략>

1. 「의료법」에 의하여 개설된 의료기관
2. 「약사법」에 의하여 등록된 약국
<중략>
④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요양기관은 정당한 이유 없이 요양급여를 거부하지 못한다.

이로써 국내에 각각 의료법과 약사법에 의해 개설된 병원, 약국은 요양급여, 즉 치료를 거부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원칙에 균열을 낸 것이 바로 ‘경제자유구역’이다.

노무현 정부가 경제자유구역의 설치 및 활성화를 위해 2005년 제정한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3조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

제23조 (외국의료기관 또는 외국인전용 약국의 개설 <개정 2005.1.27, 2007.12.7>) ① 외국인 또는 외국인이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한 「상법」상 법인으로서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법인은 「의료법」 제33조제2항에 불구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 <중략>
⑤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개설된 외국의료기관 또는 외국인전용 약국은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동법에 의한 요양기관으로 보지 아니한다.

요약하자면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국내 요양기관은 요양급여를 거부하지 못하지만 ‘경제자유구역법’에 따른 요양기관은 요양급여를 거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즉 당연지정제에서 면제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당연지정제의 정신은 누가 깼을까.

경제자유구역은 일종의 특정구역이고 특별법 지정을 통해 예외를 둔 것이니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을 통한 전 요양기관으로의 확대와는 다른 문제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순진한 생각을 깨부수는 것이 바로 한미FTA다.

즉 경제자유구역에서의 예외조항은 의료기관 영리법인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 폐지,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등 의료체제의 신자유주의화를 가속화시킬 것이고 이를 지지하는 튼튼한 지지대가 바로 한미FTA 일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한미FTA에는 ‘투자자-국가 분쟁 절차(Investor-State Dispute : ISD)’ 또는 ‘투자자 국가 제소권’이라 불리는 투자자의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가 발효되면 외국기업 또는 외국인투자기업은 허다한 공공서비스를 역차별이라 규정하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의료시스템에서의 그들의 공격대상은 보나마나 당연지정제와 강제가입제다. 이 소송은 국내에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헌법의 규정을 받지도 않는다. 이에 대해 시사인의 장영희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AIG 같은 미국계 보험회사들이 한국의 강제가입제가 부유층의 민간 보험 가입을 막아 자신들의 잠재 이익을 침해했다며 투자자 국가 제소권(ISD)을 동원한다면 건강보험의 무력화는 시간문제다.”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FTA?”, 시사인, 장영희 전문기자)

이외에도 한미FTA 조약에는 ‘역진 금지 기제(래칫)’ 등 다양한 투자자 보호 제도가 완비되어 있으니 그것만 있으면 대통령이 이명박 씨가 앉아 있든, 정동영 씨가 앉아 있든, 심지어 권영길 씨가 앉아 있든 상관없이 자본은 공공서비스를 맘대로 난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조약은 누가 만들었는가? 바로 노무현 현 대통령이다.

이 당선자는 먼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이=한미 FTA 체결은 정말 잘한 일이다. 사실 대통령이 한미 FTA를 할 줄은 몰랐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대한민국이 미국 시장을 먼저 겨냥한 것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노 대통령 임기 중에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으면 좋겠다. 나도 한나라당 의원들을 설득하겠다.
▽노=FTA 비준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盧대통령-李당선자 만찬 회동”, 동아일보, 조수진 기자)

세계최초의 주식회사에 관하여, 그리고 딴 소리

1.

회사(會社)란 무엇인가? 상법상의 정의는 상행위(商行爲) 및 기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단법인(社團法人)이다.(주1)자본주의의 발전은 회사라는 이러한 영리 단체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자본주의 이전에도 이윤을 위해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사업을 벌인 일은 많다. 하지만 그 당시의 사업공동체는 오늘날의 주식회사로 대표되는 사업체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조악한 것이었다.

특히 회사가 자연인이 아니면서도 권리와 의무를 갖는 존재라는 점에서 중세의 수도원과 대학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유한책임 – 특히 주식회사 – 의 원리는 길드와 상인조합의 그것을 적용한 것이다.

위와 같은 폐쇄적 공동체에게 주어졌던 특권이 공개적 사업공동체에 주어진 것은 1555년 영국에서의 일이었다. ‘머스코비 회사(Muscovy Company)’ 혹은 ‘러시아 회사(Russia Company)’로 불린 사업공동체에 법인의 지위가 부여되고 주식 발행 및 거래가 허용된 것이다. 이 회사는 정부로부터 ‘무역에 관한 특허권’을 부여받았기에 ‘수탁회사(Chartered Company)’라 불리었다.

이 회사는 여왕 메리 1세로부터 러시아무역독점의 특허권을 획득한 후 6천 파운드의 자본금으로 3척의 상선과 기타 상품을 구입하여 설립되었다. 이 시대 이전의 대부분의 무역상들도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끌어 모으긴 했지만 – 예를 들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처럼 – ‘주식’을 발행하고 법인의 성격을 지닌 것은 최초라 할 수 있다.

머스코비 회사가 활약하던 이 시기는 영국이 아프리카와 서인도제도에서 노예독점권을 깨뜨리면서 스페인과 제해권 다툼에서 승리한 시기이고, 신대륙의 발견과 더불어 영국해군의 사기가 한껏 고양된 시기였다. 그러므로 머스코비 회사를 비롯하여 이후 설립된 여러 수탁회사들의 목적은 콜럼버스, 마젤란 등이 발견한 신대륙의 상권을 정부와 상인이 공동으로 장악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라 할 수 있는 머스코비 회사는 17세기에 네덜란드 상인이 강력한 경쟁자로서 대두하고, 러시아 황제의 영국 상인에 대한 태도가 냉담해지자 점차 쇠퇴하여 갔다. 그렇지만 1600년 설립된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 등 뒤를 잇는 수탁회사들은 200여 년을 넘게 존속하는 등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며 성장해갔다.

2.

21세기 세계화가 일상적인 화두가 되어버린 요즈음은 ‘회사’ 또는 ‘기업’은 이미 한나라에서, 그리고 지구촌에서 가장 강력한 법적권리주체다. 그들의 선조인 수탁회사들이 정치권력의 비호 아래 그들의 잇속을 챙겨주는 한편으로 부를 축적한 ‘정치권력 기원의 정경유착’의 형태를 보인 반면(주2) 오늘날에는 경제 권력의 극대화를 위해 정치권력을 조율하는 ‘경제권력 기원의 정경유착’의 형태로 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주3)

개인적으로 기업의 행태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들을 비롯한 친기업주의자들의 논리가 오랜 인류의 역사를 통해 축적한 보편타당의 원리의 왜곡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극대화를 위한 행동을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정당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프랑스 혁명 등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자유주의 사상의 발전에서 ‘침해받을 수 없는 인권’ 등을 ‘침해받을 수 없는 이익추구 행위’ 등으로 치환함으로써 자신들의 사익추구를 정당화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의 전 시기에서 기업은 일상적으로 권리를 제한받아 왔다. 대표적으로 ‘주식회사 설립금지’가 바로 그 사례다. 주식회사는 주주가 회사의 채무 등에 대하여 유한책임을 진다는 것으로 이익추구 행위를 정당화한 이 중 가장 유명한 아담스미스마저 반대하였던 방식이다. 그리하여 오랜 기간 주식회사는 여러 법적제한을 받아오다. 19세기가 되어서야 허용되었던 제도다.

오늘 날 거칠 것 없이 영역을 확장하는 금융자본 역시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서구 전반에 걸쳐 각종 제재를 받아왔었다. 그러던 것이 미 정부의 경제정책과 더불어 탈규제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오늘날 금융세계화로 지칭되는 지구촌 전반의 금융 탈규제와 자유화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각종 탈규제와 이를 통한 기업집중 및 거대화, 이후의 초국적화는 기업을 어느덧 국가라는 단위를 넘어선 거인으로 둔갑시켰다. 이미 오래전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경제단위 중 대다수를 국가가 아닌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주4)

그러다보니 어느덧 자유주의는 ‘정치적’이라는 수사 대신에 ‘경제적’이라는 수사를 대표하는 표현이 되었고 ‘기업의 자유’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자유’가 되어버렸다. 그 하이라이트가 ‘WTO협정’과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이들 ‘자유’라 이름 붙여진 협정 들은 머스코비가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특허권(charter)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예전의 특허권이 개별 회사가 일개 국왕에게 개별 사업에 대해 부여받았던 한시적인 독점권이었다면 이번 특허권은 전체 회사가 – 물론 초국적 독점기업이 가장 유리하다 – 세계 모든 정치지도자에게 모든 사업에 대해 부여받는 영구적인 독점권이다. 심지어 한미FTA는 ‘투자자-국가소송제’라는 국가의 항복문서까지 별책부록으로 있다.

East India House by Thomas Malton the Younger.jpg
East India House by Thomas Malton the Younger” by Thomas Malton the Younger (1748-1804) – Yale Center for British Art [1].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3.

그러면 기업을 하지 말란 이야기냐 혹은 정부의 과도하고 무원칙한 규제가 타당하다는 이야기냐 하는 분이 계실까 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몇 마디 더 적도록 하겠다.(물론 무원칙하고 과도한 규제는 반대한다)

기업은 1인1표가 아닌 1주1표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배치되는 개념이다. 민주주의라 함은 자유주의와 함께 인류가 오랜 투쟁을 통해 쟁취해낸 보편타당한 정치원리다. 경제체제가 어떻게 되었든 민주주의는 사회구성원의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를 지켜야 하는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복지제도 등 공적 부조는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주5)

기업은 한편으로 사회구성원 대다수에게 일자리를 주는 순기능을 하면서도 이윤극대화라는 내부동인에 의해 자신들의 자유를 외치면서 사회전체의 공익을 침해하면서 발전해온 측면이 크다. 더욱이 오늘 날 가속화되고 있는 민영화 논리는 민간의 효율성이라는 또 다른 자유주의 논리로 무장하고 사회적 자산과 복지제도를 공격하고 있다.(주6)

자연인도 극단의 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 사회를 위해 그의 자유는 일정 정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세금을 내지 않으면 사회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뼈 빠지게 일해서 세금으로 내는 것이다. 오늘날 초국적 기업은 세금감면을 미끼로 던지는 국가, 혹은 지방정부로 이리저리 자유롭게 움직인다.(주7)

이를 가리켜 비판자들은 ‘바닥을 향한 경주(race to the bottom)’라고 부른다. 개별 정부는 고용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기업에 단물만 빨리고 공적재원은 세금감면 탓에 바닥날 것이기 때문이다.

4.

두서없이 이야기했지만 이상이 바로 사람을 닮은 또 하나의 거대한 권리주체, 기업의 자유가 제한되어야 할 이유다. 기업의 건전한 경제활동은 사회 공공성이 침해받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사회전체의 경제적 효용이 있는 한에서만 허용되어야 한다. 선출되지 않는 권력 기업이 극단의 자유까지 보장받게 되고 나머지 사회의 공공성은 해체된다면 그것이 가져올 결과는 공멸뿐이기 때문이다.

 

(주1) 오늘 날의 회사 형태는 합명회사, 합자회사, 주식회사, 유한회사 등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주2) 아직도 부르주아지는 평민들과 함께 제3계급일 뿐이었다

(주3) 어쩌면 우리는 이미 기업이 하나의 국가권력과 동일시되는 ‘로보캅’이나 ‘에일리언’과 같은 디스토피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4)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상품은 ‘Made in USA’나 ‘Made in China’가 아니라 ‘Made by Samsung’ 혹은 ‘Made by Google’이라고 해야 타당할 것이다.

(주5) 복지제도는 어쩌면 체제 옹호적이고 사회재생산에서 자본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기능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주6) 복지제도에 대한 극단적 자유주의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았는지 보려면 마이클무어 감독의 Sicko를 보라

(주7) 개인도 이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개인이 이렇게 하면 비참한 이주노동자 신세로 전락할 뿐이다

대선 주자들과 유권자들에게 한미FTA는 논쟁거리도 안 되나

지난 4일 미국 상원은 하원에서 가결되어 올라온 미국-페루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가결 처리하였다. 표결은 찬성 77표, 반대 18표 등 압도적 표차였다. 민주당 의원들이 그들의 전통적인 지지 세력인 노조를 등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이번 결과는 조지 부시의 정치적 승리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미행정부는 이로써 좌파들이 세를 넓혀가고 있는 남미에서 자신들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현재 의회에 계류돼 있는 한국, 콜롬비아, 파나마 등과의 나머지 FTA의 조속한 비준도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현재 대선을 살펴보자면 실질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건 이전의 어느 대통령보다 그들의 권력을 크게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바로 한미FTA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한미FTA가 국회비준을 거쳐 발효되면 이 나라에는 감히 통수권자도 헌법도 건드릴 수 없는 소위 투자자를 위한 치외법권이 생긴다. 그 치외법권이 가능하게 하는 무기는  협약에 장착된 “투자자-국가 분쟁 절차(Investor-State Dispute : ISD)”와 “간접 수용(indirect expropriation)” 등이다.

해외 투자자는 이들 조항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사적소유가 ‘이른바’ 한국 정부가 주장하는 공공의 이익에 의해 침해받는 여하한의 행위에 대해 한반도 바깥에서 칼날을 들이댈 것이다. 여태껏은 그나마 국세청이나 서울시가 론스타의 탈세행위를 적발해내고 세금을 추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미FTA 발효 이후에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통령은 물론 헌법도 이들을 막을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대선 레이스에서는 상위 4명의 후보가 한미FTA를 찬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언론도 네거티브 그만 두고 정책을 논하라고 노래하면서도 정작 FTA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전혀 불만이 없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5천 년 이 땅의 역사에서 가장 큰 경제적 충격으로 다가올 – 찬성론자의 긍정적 의미이건 반대론자의 부정적 의미이건 간에 – FTA가 바로 차기 국회, 그리고 차기 대통령이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인데도 누구도 마치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 양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에 비하여 미국에서는 민주당의 차기 대권 주자 중 하나인 힐러리 클린턴 및 당지도부가 표면상으로는 한미FTA를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지지기반인 노조의 – 특히 자동차 노조 – 표를 의식하여 그들에게 더욱 유리한 협약체결을 강제하기 위한 노림수이다. 협약 발효로 직접적인 피해계급은 양국의 노동자, 농민들이다. 민주당은 적어도 피해계급을 보호해주는 척은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한미FTA를 반대하는 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폭력으로 진압하였다. 미국보다도 이념적 포지션이 우편향 적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러니 적어도 한미FTA에 대한 대권 주자들의 입장으로만 놓고 본다면 이번 대선에서의 주요 후보들의 차별성은 어떤 이가 주가조작의 혐의가 있고 다른 이들은 그것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는, 이른바 통수권자의 준법정신과 도덕성에 대한 진흙탕 논쟁이라는 점 빼놓고는 별 의미가 없다. 물론 대권주자의 범법 혐의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바람에 어느새 FTA 대책을 비롯한 정책적 대안 제시가 바람에 흩어져 버렸다는 것이 문제다.

비관적인 전망으로는 한미FTA가 이번 대선에서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리는 만무할 것 같다. 현재의 한미FTA를 공식적으로 반대 내지는 또 다른 대안을 주장하는 후보는 권영길 후보와 금민 후보 뿐이다. 둘의 지지율을 합쳐봐야 민망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한 목소리로 한미FTA에 대한 대중과 정치권의 주의를 환기시켜야 한다. 그럼으로써 적어도 총선에서는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부터 한미FTA반대 내지는 재협상의 카드를 꺼내들게끔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