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현재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민영화 논리에 대한 반대급부로 국가의 공공서비스 기능을 수호하자는 주장에 대해 보다 세세한 면에서 그러한 주장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인식에서 쓴 글이다. 필자 역시 아직은 걸음마 수준으로 생각하는 주제이기에 논리가 다소 튈 수도 있고 모순될 수 있지만 아이디어 공유차원에서 공개하기로 한다. 따라서 생산적인 딴죽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공공서비에 대한 민영화(또는 사유화) 또는 공공기관 매각은 80년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본격화되었다. 사실 더 올라가자면 수에즈 운하, 미국의 철도사업들도 공공서비스이면서도 민간에 의해 건설, 자금조달, 운영이 되었던 민간위주의 사업이었다. 또한 프랑스의 경우 나폴레옹 시절부터 상하수도를 민간기업에 맡겨 운영하였다.
그렇지만 그러한 민영화 현상이 범세계적인 보편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영국 쌔처 정부의 정부조달 사업에 대한 민간의 참여허용, 제3세계에서 공공시설의 설치에 민간의 자금을 끌어들인 BOT(Build-Operate-Transfer) 등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시킨 것은 WTO, FTA 등 자유무역협정과 무역의 세계화다. 이를 통해 각국은 자본자유화, 공공서비스의 표준화의 작업 등을 거쳐 해외투자자의 투자를 수월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영화는 1990년대 초반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현재 공급되는 사회기반시설의 10%이상이 민간에 의해 서비스를 제공받게 되어 있다. 세계적으로는 물산업(상수도 및 하수도 건설 및 운영)을 예로 들면 현재 전 세계 인구의 9%가 민영화된 서비스를 공급받고 있으며 2015년에는 약 12%의 인구가 민영화 서비스를 받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명박 인수위가 대운하, 금융기관, 방송, 의료보험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민영화의 이슈를 제기하자 블로고스피어 등 여러 곳에서 저항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다. 어쩌면 반가운 현상이지만 한편으로 이에 대한 대안도 마련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1) 공공서비스의 형평성, 또는 계급편향의 문제
자본주의라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시장에 의해 공급될 수 없는 이유는 이른바 통신, 도로와 같은 공공재는 비배제성, 비경합성이라는 고유의 특성 때문에 시장에서 공급될 수 없는 ‘시장의 실패’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보편적으로 국가에서 공급을 해왔고 상대적으로 싼 가격을 유지하여 인플레이션을 차단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서비스 공급체계가 이른바 무임승차(free ride)의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염자부담원칙(polluter pay principle)과 배치되는 개념인데 한편으로 계급간 형평성 또는 평등주의 논리에 의해 보완되기도 한다. 예컨대 건강보험같은 경우 부자들의 소득으로 빈자들의 의료비를 채우는 고통분담의 차원에서 공공서비스를 바라봐야한다는 취지기에 수긍이 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충분히 부담능력이 있는 이가 무임승차할 수 있는 개연성은 남는다. 예를 들어 서울과 인천간 고속도로를 국가보조금으로 지었다면 이 도로를 이용하지 않는 지방 사람들에게는 억울할 노릇이다.
또한 도로공사가 직영하는 도로와 민자도로가 가격에서 차이가 나는 점은 근본적으로 민자도로가 시설의 투자비를 상각하여 통행료에 반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로공사처럼 투자비를 반영시키지 않는 방식이 좋은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빚으로 남든지 국가가 보조하든지 해서 현 세대와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다. 도로 만들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 하나가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국가는 결국 지배계급의 지배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들이 공급하는 공공서비스 역시 계급편향적일 수밖에 없다는 문제다. 예를 들자면 지속적으로 적자가 나는 철도운영에 있어 예전에 찾아본 바에 의하면 여객부문은 흑자인데 수송부문은 적자였다. 이는 결국 기업의 물류비용을 국가가 개인의 여객부문에서 보충하고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회복지적 성격이 강한 의료보험 등도 역시 어떻게 보면 기업이 책임져야 할 노동재생산비용임에도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2) 공공서비스의 비효율 문제
이는 특히 환경관련 시설의 공공서비스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인데 현재 상수도 민영화 등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물산업 육성정책과 관련 있다. 결국 정부의 민영화 논리는 우리나라의 상하수도 서비스가 기초자치단체에 의해 공급되고 있어 비효율과 시스템의 부재로 인해 불필요한 비용이 과다지출되고 있고 관리와 효율적인 투자 또한 제때 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일정정도 사실이다. 상하수도의 누수율은 심각한 지경이고 시설도 노후화되었다. 그리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안이 민영화, 광역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관리주체의 난립이나 영세성으로 인한 비효율의 문제는 실제로 심각한 문제다. 어찌 하였든 사실은 공공서비스의 과점체제를 인정하는 문제를 논의선상에 올려야 하는 것도 사실인데 실은 이러한 논의는 진보진영에게 있어 일종의 계륵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해당 공무원의 고용불안의 문제, 공정경쟁 우선논리와의 상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지난 세기 현실 사회주의 등 진보적인 대안이 제시했던 사회상은 사실 똑 까놓고 말해 국가가 주인인 독점자본주의 시스템과 유사함을 인정하여야 한다. 진정한 사회화를 통한 대안경제 체제는 이러한 독점자본의 형태에서 점차적으로 각 사회세력이 통제능력을 갖춘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바로 독점과 공정경쟁의 모순이 작동하는 것이다.
3)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 유지비용의 문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 사회기반시설이나 공공서비스의 양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제1세계나 제3세계나 모두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로 인해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는가. 바로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유지관리비용이다.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서비스의 내용이 달라지기에 그 유지관리비용이 이전과는 다른 수준임에는 분명하다. 도로만 하더라도 이전의 도로와는 질적으로 다른 기능을 제공하니 그만큼 비용이 증가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국가로서는 이러한 비용이 예산에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나 이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고 그 위험비용 또한 엄청나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도 다리가 무너진 사건은 현재의 사회기반시설 유지체제가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할 때 국가로서는 어떠한 유혹에 빠지는가 하면 바로 민간에게 상당수의 반대급부를 주고서라도 민영화하여 위험을 이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계량적으로 측정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위험이전효과도 상당할 것이다. 민간이 실제로 그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가는 또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향후에 공공서비스를 계속하여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로 가져가 달라고 요구할 것 같으면 이에 대한 재원마련의 대안도 내놓아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즉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내서라도 이러한 부분에 대한 가격 차이를 메워줘야 하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조세저항 없이, 그리고 세금의 무임승차 없이 예산을 마련하는가가 관건일 것이다.
**
어떻게 보면 올바른 공공서비스 제공의 모습은 그 형식에 있다기보다는 그 내용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실제로 어느 공사가 주인 없는 회사라고 방만한 경영을 일삼는다면 그것은 차라리 국민세금 더 들어가기 전에 매각해버리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민간 기업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라도 국가가 통제를 통해 가격과 서비스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다면 고려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privatization 이 민영화로 이해되는 현상일 것이다. 즉 민(民)이라 불리는 주체 중 개인이나 사회운동단체 들은 실제 민영화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극히 제한적인 반면 자금조달 능력이 있고 이윤추구가 목적일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 민영화의 이슈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현실적으로는 일종의 사회적 타협의 방법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인데 현재의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특히 한미FTA 등 자유무역협정은 오히려 사회적 타협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한편으로 기업에게는 국가를 제소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