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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복수 中에서

이 위기는 이 세계에서 자유화된 자본시장과 합리적인 범위에서의 금융안정이 함께 결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어느 특정한 문제는 대규모의 순자본 유입과 이와 관련한 경상계정과 거대한 위기를 창출하는 자국내 재무적 밸런스의 경향이 있었다. 이번이 그 중 가장 큰 것이다.
교훈은 있어야 한다. 단순히 금융부문의 규제에 그쳐서는 안 된다. 통화정책에 그쳐서도 안 된다. 그것은 어떻게 자유화된 금융이 세계경제를 불안하게 하기보다는 도움이 되게 하느냐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The crisis demonstrates that the world has been unable to combine liberalised capital markets with a reasonable degree of financial stability. A particular problem has been the tendency for large net capital flows and associated current account and domestic financial balances to generate huge crises. This is the biggest of them all.
Lessons must be learnt. But those should not just be about the regulation of the financial sector. Nor should they be only about monetary policy. They must be about how liberalised finance can be made to support the global economy rather than destabilise it.[출처]

적어도 이번 사태로 인해 소위 자유무역, 경제통합, 금융 세계화, WTO, FTA 등 경제의 자유화를 상징하는 온갖 장치들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경감시켰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이 줄어들 것 같다.

이에 대한 대니 로드릭 Dani Rodrik 교수의 코멘트는 여기를 참조하시길

新냉전 시대의 도래?

원래 ‘자유무역’이나 ‘세계화’라고 하는 개념은 이론적으로 어떻게 무장을 했던지 간에 현실세계에서는 선진 자본주의 체제의 대량생산에 부응하는 시장 확보의 논리로 활용되었다. 자립경제에 가까웠던 중국과 – 어느 정도는 인도? – 달리 유럽의 열강들은 자체시장이 크지 않았기에, 소위 산업혁명(주1)으로 통해 생산된 상품을 소화해낼 수요처의 확보가 절실하였다. 그 해결책이 바로 식민지 개척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오늘 날의 ‘자유무역’과 ‘신자유주의’를 ‘이름만 바뀐 식민주의’라고 비난하고 있다.

한편 ‘자유무역’과 ‘세계화’는 또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해지곤 한다). 바로 경제권 통합을 통한 국가간 분쟁의 종식이었다. 즉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서구는 경제권의 통합이 각 나라간의 분쟁을 줄여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나치와 파시스트의 등장에서 보듯이 또 다른 분쟁의 불씨를 증폭시키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러한 두려움은 현실 세계에서 GATT체제의 출범과 (냉전이라는 변수가 가미된) 마샬 플랜(주2)의 실행으로 이어졌다. 사회주의권을 제외한 경제권을 한데 묶겠다는 구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상적으로 모든 국가가 자유무역으로 묶여지게 되면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혀지게 되어 특정 국가의 도발이 매우 어려워지리라는 시나리오인 셈이다.(주3)

그렇게 세월이 흘러 90년대 소련을 위시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이후 유일패권을 장악하게 된 미국이 자신들의 경제 시스템을 각국에 이식하면서 이러한 믿음은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에 있어 세계최강인 미국에 비할 나라가 없으니 Pax Americana 시대에 걸맞게 세계경제가 미국의 스탠다드로 자신들의 체제를 정비하고 – 결과적으로 미국은 더 많은 사업기회를 가질 것이고 –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적어도 국지적인 지역분쟁 이외의 – 특히 강대국 간의 – 돌출행동은 있을 수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칠 것 없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여기에 누가 감히 대놓고 개기는 나라는 없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마저….

그런 의미에서 이번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전쟁 – 엄밀히 말해 그루지야의 대리전쟁 – 은 이전까지의 일극체제의 균열을 알리는 상징적인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동안 미국에게 대들 생각 말라는 등소평의 유지를 이어 받은 중국이 얌전하게 올림픽이나 개최하며 세계평화를 노래하고 있는 동안 러시아는 남오세아티아人들을 돕겠다는 순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親서방 성향의 그루지야로 거침없이 진주해버린 것이다. 미국에 대한 (거의) 공개적인 도발인 셈이다. 서방의 전면적인 도움을 기대했던 그루지야는 서방의 의외의 침묵에 서둘러 휴전을 선언했지만 이미 사태는 엎질러진 물이었다.

지금까지 미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냉전에 접어들었는지의 여부에 관해서는 많은 잉크가 엎질러졌다. 워싱턴에서 우리는 소비에트 이후의 미국-러시아 제휴의 시대는 끝났다고 들었다.
So far, much ink has been spilled over whether the U.S. and Russia are in a new Cold War. In Washington, we hear that the era of a post-Soviet U.S.-Russia alliance is over.[After Georgia, Day of Reckoning for Washington, Business Week, August 17 2008]

다시 자유무역과 세계화가 분쟁을 종식시킬 것이라는 믿음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결과적으로 그 기대는 끊임없이 도전받아왔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확실하게 허물어졌다. 사회주의 체제 포기 이후 빈사상태에 시달리던 러시아, 그리고 실질적으로 자본주의 노선으로 수정하였던 중국을 살린 것은 분명히 자유무역과 세계화였다. 한동안 정신이 혼미했던 러시아는 세계화에 편승하여 막대한 자연자원 수출을 통해 기사회생하였고 중국은 저가 제조업 상품을 양산해내며 전 세계의 공장 노릇을 담당하였다. 반대급부로 미국을 위시한 서구각국은 자국의 경기하락을 이겨내고 예전의 소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체제유지가 망한 체제의 국가들을 통해 가능하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 어떠한 결과를 낳고 있는가를 보면 그리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금융의 세계화와 자유무역은 역으로 전 세계적으로 ‘생산 및 투자동조화 현상’(주4)으로 인한 경기동조화 현상 심화와 석유 등 원자재가격의 폭등(또는 폭락 등 변동폭 심화)(주5)등 부작용을 낳았다. 또한 이와 병행한 자원의존성 심화는 자원민족주의 성향을 부추겼다. 물론 상당히 오랜 기간 러시와와 그루지야가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반목하기는 했지만 석유문명이 백척간두에 서있는 지금 송유관을 둘러싼 양 측의 대립은 더욱 확대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자유무역과 세계화로 세계평화를 이룩하겠다는 이상주의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1) 우선 남북문제가 온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리고 다국적기업과 초국적자본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국제표준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WTO와 같은 자유무역이 호혜평등한 무역관계를 조성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지나치게 순진한 믿음이라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6) (2) 세계화로 인해 가장 큰 힘을 얻은 금융시장, 주되게는 월스트리트가 오히려 실물시장의 교란요인으로 등장한 것이 세계화의 큰 패착 중 하나다. (3) 마지막으로 쇠락한 러시와와 중국의 전체주의적 기조를 나머지 자본주의 국가들이 오히려 자본자유화 가속화의 수단으로 이용하였던 것이 큰 원인이다.

한번 살펴보자. 누가 러시아의 푸틴에게 가장 힘을 실어 주었을까? 말로는 민주주의의 세계전파를 외치면서도 자본주의의 세계전파 및 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해 푸틴의 전체주의적 국가로의 회귀를 눈감아왔던, 오히려 활용했던 미국과 그 외 서구유럽(주7), 그리고 그의 돈줄이 된 석유가격을 착실히 올려준 국제원유시장이 그 힘의 원천이다. 푸틴은 서구 열강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 독재를 눈감아주는 그 와중에 자원민족주의로 힘을 키웠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의 이익을 위한’ 세계화가 분쟁의 새로운 불씨를 만든 셈이다.

많은 이들이 올림픽이라는 신기루에 현혹되어 있는 사이, 어쩌면 新냉전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예전의 냉전과 차이가 나는 점이라면 (1) 체제경쟁의 차원이 아니라는 점 (2) 예전과 같은 형식상으로는 다수의 국가들이 대립하는 블록 간의 대립이 아니라는 점 등일 것이고, 이러한 점에서 과거와 같은 첨예한 대립양상은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하나의 차이점이 이러한 낙관을 상쇄해버릴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과거와 달리 자본주의 문명을 (일시적으로라도) 멈추게 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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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산업혁명의 기원과 경과 등에 대해서는 강철구 교수의 ‘영국 산업혁명의 요인들’이 좋은 텍스트이므로 참고바람

(주2) 마샬플랜은 또한 베르사유 조약에서 독일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내도록 강제하여 결과적으로 독일경제의 피폐화와 나치의 준동을 돕게 하였다는 주장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있다.

(주3) 사회주의 블록이라는 체제 밖의 도전은 지배계급 블록의 강화와 노동자 계급의 억압의 좋은 빌미가 되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사회복지의 확충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주4) 이는 전 세계가 특정상품의 희소성에 대하여 동시다발적으로 공급을 늘리고 그에 따른 산업시스템이 함께 조정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러한 현상을 달리 지칭하는 표현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여기에서는 내 나름대로 작명하여 썼다. 이러한 사례의 가장 단적인 예는 바이오연료나 CDO등을 들 것이다.

(주5) 현재까지도 석유선물시장의 존재와 금융세계화가 유가폭등의 주범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설왕설래하고 있으나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현재와 같이 주도적이었던 시장과 지금의 시장은 명백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주6) 그리고 그러한 세계화의 우회로로 오히려 지역주의 블록을 강화하는 FTA를 확대하여 세계화 네트워크를 강화하겠다는 믿음 역시 현재로서는 맹신에 가깝다.

(주7) 그들에게는 러시아의 자본주의화가 목적이었지 그들이 주창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이식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잡념 : 미국산 쇠고기 개방 사태에 대해

요즘 한미 간에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조건 없는 개방을 합의한 일로 말미암아 민심이반이 들불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블로고스피어를 비롯한 인터넷에서 특히 이러한 현상이 심한 것 같은데 벌써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원에 서명한 사람이 수십만에 달하고 있다 한다. 주요 신문에서 계속하여 중계보도 하듯이 기사로 삼을 정도다.

뭐 이 블로그가 특별할 것도 없지만 평소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지라 한두 마디 끼적거릴까 해도 솔직히 지금은 별로 흥이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번 문제에 대해 글을 진지하게 적자고 하면 건드려야 할 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무작위로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자면 ‘문명의 발달과 육식과의 상관관계, 그리고 그것의 정당성’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단위면적당 곡물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육식이 ‘자본주의적인 평등 확산’(주1) 현상에 따라 더욱 확산되고 있고 이에 따라 생산성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집단사육, 항생제 투여, 동물사료 배식 등의 시도가 오늘날의 비극을 불러왔다는 것을 우선 인정해야 한다.

‘식량안전망’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만 막으면 우리는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 것인가? 한국산 소는 절대 안전한가? 이러한 고민 하에 일본은 미국산 쇠고기 개방시 일본산 소를 전수조사 하였다 한다. 그렇다고 광우병 걸리지 않은 소는 안심하고 먹어도 되나? 항생제 투여는 면죄부가 발급되는가? 결국 이러한 고민의 해결책이 유기농 작물 등에 대한 ‘근거리 농업 네트웍’(주2)을 통한 소비일 것이다.(주3)

‘근거리 농업 네트웍’이 형성되어야 하는 논거에는 가까워서 믿을 만 하다라는 것보다는 가까우니 그나마 믿을 만 하다는 논리이다. 공산품이야 소비에 있어서만큼은 소비자가 상대적으로 환경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데(주4) 농수축산물은 근대에 들어와서 환경문제가 전면에 개입하게 된다. 이점이 이전의 고전경제학파들이 주장하는 자유무역의 우월성을 격파하는 무기가 된다. 소위 비교역적 품목(non-trade concerns)론이 그것이다. 쉬운 예로 리카도가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던 당시 유럽 내륙의 곡물이 유전자 조작 곡물이었다면 그는 법의 폐지 주장을 재고하였을 것 아니냐 이거다. 요컨대 ‘자유무역에 있어서 농수축산물의 예외성 인정’에 관한 문제다.

두서없이 늘어놓았는데 요컨대 쇠고기 개방 문제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복잡한 사안이다. 그것은 자유무역의 부작용, 식량의 생산과 소비 체계의 부조화, 육식 소비로 인한 환경적 재해,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소비불평등 등 여러 근본적이고 철학적이고 경제학적인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물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이 이러한 문제의 실체에 조금이나마 접근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부시 행정부의 등장이 미제국주의의 실체를 두드러지게 했다면 이명박 정부의 등장이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두드러지게 한 측면도 있다. 그런 한편으로 자칫 일부에서 보이는 이명박 정부를 절대악으로 상정하는 저항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우려도 있지 않은가 우려되기도 한다.

각설하고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태를 나 스스로도 나의 식습관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를 삼고자 한다. 나 스스로도 상당히 먹거리를 개념 없이 소비하는 멍청한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내 입속으로 들어가고 내 살이 될 음식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통되는지에 대해서는 단순히 호불호의 문제가 아닌 것이므로 많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p.s. 시위 현장에 대한 사진을 봤는데 ‘한우를 살려주세요’라는 퍼포먼스를 봤다.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아니 한우를 잡아먹을거면서 ‘한우를 살려주세요’라니??!!

함께 읽어볼 글 : ‘광우병 정국’ 단상, 국민이 몰랐던 네 가지 진실

(주1) 자본주의라고 불평등만 조장하라는 법은 없고 중국과 인도의 하등인종들도 돈만 있으면 제1세계의 백인들이 누리는 식생활과 문화생활을 누릴 자격이 어느 정도 생기는 것이 자본주의적인 평등이라 하겠다. 이건 그냥 내가 임의로 만든 표현이다.

(주2) 이것도 그냥 내가 임의로 만든 표현이다.

(주3) 문제는 이런 대안이 집단적인 생활협동조합 등 건전한 소비자 운동으로 승화될 수도 있고 소위 럭셔리한 organic shop에서의 과시적 소비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

(주4) 극적인 예외가 있었는데 얼마 전에 미국에 수출된 중국산 아동용 장난감이 환경적으로 유해하여 대규모로 리콜된 사례가 그것이다

자유무역에 관해 함께 생각해볼 두 가지 화두[쇠고기 개방 논쟁에 관련하여]

요 며칠째 쇠고기 수입 전면개방에 대한 논란이 블로고스피어를 달구고 있다. 대체로 이러한 조치를 이명박 정부의 조공외교라고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려되는 점은 논의의 진행방향이 조금은 소모적인 방향이라는 사실이다. 광우병의 발병확률에 관한 논쟁, 채식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극단적인 주장, 실은 전면개방은 이전 정부의 플랜이었다는 주장 등 조금은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주장이 난무하다. 그래서 쇠고기를 포함한 농수축산물의 자유무역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몇 자 적어보려 했으나 또다시 도지는 귀차니즘 때문에 4년 전 쓴 조금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글을 또다시 퍼 올리도록(요즘 맛 들였다) 하겠다. 관계제위들의 이해를 바라면서.

■ 자유무역은 절대선?

두 가지 차원에서 소위 ‘자유무역’이라는 개념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즉, 자유도(自由度)의 증가가 국부(國富)의 증가와 비례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절대적인 논리는 국부의 증가 뒤에 (1) 일국과 지구 범위, 그리고 기업간에 벌어지고 있는 경제양극화에 대해서는 편의적으로 무시하고 있다는 점과 – 물론 국제적 빈부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논리도 지속적으로 유포되고 있기는 하지만 일단 논외로 하고 – (2) 자유무역을 오로지 경제효율의 문제로만 환원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다음 두 가지 화두를 통해 ‘과연 자유무역이 절대선 이냐’하는 반문을 제기해볼 필요가 있다.

■ 두 가지 화두

1) 자유무역과 반독점의 문제

일국 차원에서도 시장경제의 자유는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금과옥조로 여겨지고 있다. 다만 예외가 있다. 바로 독점이 되었을 경우이다. 시장의 선도자들이 그들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독점 또는 과점의 형태로 경제행위를 영위하였을 경우 – 아무리 극단적인 자유경쟁을 지향하는 나라이라 할지라도 – 그들의 행위는 정당한 제재를 받는다. 심지어 회사를 쪼개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반독점이라는 정당한 논리가 국제적으로도 통용되는 것일까?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자유무역의 흐름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제껏 다국적 또는 초국적 기업이 국제무역에서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한 거래행위를 하는데 있어 국제기구로부터 제재를 받은 경우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그들은 국제기구의 자문으로 참여하기도하고 많은 무역협정의 초안자로 나서기도 한다.

왜 일국의 단위에서는 정당하지 않은 이러한 행위가 국제적으로는 용인되는 것일까? 주요하게는 일국에서조차 사실은 독점기업 혹은 다국적기업이 정치와 경제를 휘어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비록 극단적인 자유주의적 경제체제의 해악을 경험한 일국의 정부가 반독점을 주장한다 할지라도 이는 정치역학에 의해 자주 무시되기도 하였다(AT&T는 독점금지법에 따라 분사가 된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무사히 살아남았다).

둘째로 비록 ‘다국적’ 기업이라는 명칭이 부여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들은 일국의 이해관계와 상당 부분 겹친다. 그러하기 때문에 일국의 정부, 특히 미국과 유럽의 정부들은 자국이 소유한 다국적 기업의 독점과 부당한 개입을 통한 초과이윤의 취득을 막으려는 의지가 – 또한 능력도 – 없다.

특이하게도 국제적 차원에서 보자면 오히려 먹거리, 특히 농산물에 있어 철저한 독점시스템이 용인되고 있는 듯 하다. 즉, 카길 등 아직까지 그 대주주들의 정체조차 정확히 드러나지 않은 채 베일에 둘러 쌓여있는 곡물메이저들은 전 세계의 곡물시장을 쥐고 흔들면서 자신들이 의도한대로 전 세계 먹거리 시장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장 장악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천연덕스럽게도 ‘자유무역’의 논리이다. 리카도가 곡물법이 정하고 있는 관세를 철폐하자고 주장한 이유는 영국내 독점적 지주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였다. 오늘날같으면 리카도는 어떤 판단을 하였을까?

2) 사회안전망의 하위범주로서의 환경/식량안전망

이미 세계는 그 이동성에 있어 1일 생활권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이동성의 급격한 증가는 전 세계 인민들의 여행/레저의 향유의 기회를 넓혀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이동성의 증가는 특히 SARS, 조류독감과 같은 전염성 질병의 지역적 범위를 지구적 범위에서 넓혔고 이로 인하여 각국의 위생안전체계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고, 그 심리적 공황사태로 인한 경제위축도 향후 큰 이슈가 될 전망이다.

한편 자유무역이 그 위세를 넓혀가던 기간 동안의 상당 기간에도 여전히 먹거리의 자유도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주요하게 원거리 수송에 있어서의 기술적 낙후성과 각 국의 먹거리 문화가 다양했기 때문에 시장성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정 기간이 흐르면서 (1) 먹거리의 원거리 수송이 보다 용이해지고 (2) 먹거리의 소비패턴이 서구화되었고 (3) 곡물메이저들이 다른 문화권의 먹거리도 지속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그 시장은 지구적인 범위로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먹거리의 무역에 있어 자유도의 증가는 이른바 사회안전망이라는 개념에 환경/식량안전망이라는 새로운 하위범주가 추가될 필요가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즉, 과연 지구적(global)범위의 먹거리 무역이 지역적(local) 범위에서의 그것보다 더 환경적으로나 식량의 안전성(safety) 차원에서 긍정적이냐라는 질문은 어쩌면 단순한 경제적 효율의 문제보다 먼저 제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원거리로 수송되는 먹거리는 단거리로 수송되는 먹거리보다 (1) 더욱 많은 농약 또는 방부제를 첨가하거나 (2) 원가절감을 위하여 유전자를 조작하거나 (3)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하여 대규모 플랜트의 농업을 지향할 것이다. 이는 원산지의 환경오염 – 일례로 대규모 플랜트의 경우 동일 농작물이 다년간 경작됨에 따른 토지의 건강성이 크게 침해될 개연성이 크다 – 과 소비지역의 소비자들의 보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물론 소비지역의 소비자들이 이러한 개연성에 주목한다면 인근지역의 보다 믿을 수 있는 먹거리 – 이를테면 소규모로 상업화된 유기농 식품 – 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 차원에서 볼 때 그러한 먹거리는 시장가격보다 비싼 일종의 명품 먹거리일 것이고 이로써 소비지역의 소비패턴은 소비양극화의 양상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또다시 가난한 노동자 계급은 자국의 농민과 함께 먹거리의 자유무역에 대해 반대하여야 할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 맺음말

우리나라는 이른바 수출 드라이브 기조에 의해 국부를 쌓아간 신흥공업국이라는 독특한 입장에 서있는 나라다. 마치 아시아판 마샬플랜의 모범적 사례로 비춰지는 남한 땅에서 ‘자유무역’을 반대한다는 것은 일면 참으로 모순
된 행동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이러한 논리는 국내외 보수언론과 자유무역 주창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유포되고 있는 논리이다.

일면 일리 있는 주장이긴 하지만 우리 산업 – 특히 제조업 – 의 일부부문이 수출정책을 통해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가지게끔 된 것을 들어 – 일종의 틈새 시장을 파고들어 성공한 한국인의 근면성에 영광있으라 – 다른 부문도 자유무역을 통해 경쟁력을 획득할 수 있으리라 보는 맹목적인 관점 또는 국부의 절대적 증가를 위해 취약부문을 포기해도 된다고 논리를 펴는 것은 별로 경제학적 관점에서 유효하지 않아 보이며, 어쩌면 그러한 관점은 한국전쟁에서 입은 은혜를 이라크 파병을 통해 갚자는 해묵은 보은론처럼 들리기도 한다.

‘자유무역’이라는 개념 그 자체로 경제에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의 판단기준이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즉, 보다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누구를 위한 자유무역이냐’, 또는 ‘지속가능한 자유무역이냐’ 하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 경제와, 심지어 정치권을 떡 주무르듯이 주무르고 있는 상황에서는 –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100개의 경제주체 중에서 51개가 기업이고 나머지가 국가이다 – 자유무역의 자유가 계급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더불어 그 자유무역이 환경의 지속가능성 – 석유자본의 마구잡이식 개발이나 물의 상품화 등은 그들이 환경의 지속가능성에 별로 관심이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 과 소비자의 보건에는 별 관심이 없는 방향으로 진행될 경우 – 농약의 과다사용, 유전자 조작식품 등 – 그 피해는 때로 상상을 초월하는 지구적 규모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최근 밝혀진 힐러리 클린턴의 위선

“나는 처음부터 NAFTA 에 대한 비판자였다.”
“I have been a critic of NAFTA from the very beginning.”

현재 대통령 캠페인에 나선 유력주자 힐러리 클린턴의 말이다.

그런데 최근 11,000 쪽에 달하는 빌 클린턴 시절의 백악관 서류가 공개되면서 그의 발언이 거짓임이 드러났다고 한다. Free Press의 공동설립자인 John Nichols는 최근 Common Dreams에서 주장하기를 이 문서에

– 그는 NAFTA의 열정적인 지지자였고
– 의회에서의 조약승인을 위한 전략회의를 최소한 다섯 번 이상 주재했고
– 의회승인을 독려할 120명의 오피니언리더 여성들의 비공개 회합에서 연설했고
– 노동계, 농민단체, 환경단체, 인권단체들의 보다 나은 협약요구를 봉쇄했다

는 사실이 적혀있다고 한다.

그리고 John Nichols는 결국 클린턴의 적극적인 역할에 따라 발효된 NAFTA로 말미암아 미국은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잃었고 기록적인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며, 멕시코에서는 수많은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 경제적 난민으로 전락하여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전하고 있다.

어쨌든 이 글도 본문도 본문이거니와 댓글들의 논쟁을 읽는 재미도 솔솔했다.

먼저 militantliberal 이라는 이는 멕시코 농민들이 생업을 포기하여야 했으면 미국으로 오지 말고 멕시코 공장에 취직했으면 될 것 아니냐면서 John Nichols 의 주장이 허점이 있다고 비판하였다. nyengo 는 이에 대해 멕시코에는 분명히 공장이 있지만 이 공장은 기본적인 노동조건과 안전조건을 갖추지 않은 착취공장(sweatshops)이며 노동자들은 생활수준 이하의 임금만을 받고 있다면서 그의 발언을 비판하였다. BeForKids 는 그나마 그 공장들마저 최근 대부분 아시아로 이전했다고 전하고 있다.

vaudree 는 논쟁이 NAFTA의 옳고 그름 여부로 가고 있다며 힐러리 클린턴은 몰래 NAFTA를 지지했지만 맥케인은 대놓고 지지한 것 아니냐며 차라리 클린턴을 우리가 감시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며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비판적 지지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formernadervoter 는 John Nichols의 글이 날카롭지만 그것이 오바마에 대한 지지글로 읽혀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결국 힐러리 클린턴와 오바마는 정치적 쌍둥이며 이미 대선은 ‘미국 주식회사(corporate America)’의 승리로 귀결되었다고 냉소적으로 말하고 있다.

결국 John Nichols의 글은 자유무역에 대해 노동자의 편을 들며 보다 공정한 무역으로의 선회를 주장하는 정치가의 위선을 폭로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개인적으로는 formernadervoter(이 양반도 상당히 마이너이로군요)의 말처럼 그것이 오바마에 대한 지지로 귀결되거나 더 나아가서는 정치적 염세주의로 전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진보세력의 유의미한 정치적 지지세 확보의 가능성이 지난한 미국에서는 –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 굉장히 힘든 주문이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노무현은 차라리 솔직했고 초지일관이어서 퇴임 뒤에 인기를 얻는 것인가? 아니면 그런 정치적 태도와는 상관없는 단지 “노간지” 덕분인가?

자본주의로 세상을 구원하려는 실험

은행이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가난하고 미천한 방글라데시의 여인네들에게? NO WAY!

미시신용

바로 그러한 선입견을 깬 이가 무함마드 유누스 Muhammad Yunus 다. 그는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났지만 유복한 보석세공사의 집안에서 태어나서 공부도 잘한 덕택에 영국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고 돌아와 고국에서 교수로 편안한 삶을 살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이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이른바 미시신용 microcredit 의 개념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금융제도를 착안한다.

그의 돈 빌려주는 방식은 가난한 이들에게 – 특히 여성들에게 집중적으로 – 무담보 소액대출을 통해 일종의 가족 사업을 벌일 밑천을 대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자선의 성격이 짙었겠으나 의외로 회수율이 99%에 달할 정도로 상식을 깨는 수준이었기에 그의 사업(?)은 번창일로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의 ‘그라민은행 프로젝트(Grameen Bank Project)’의 성공의 보답으로 2006년 노벨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다.(주1)

소셜비즈니스

그는 최근 Common Dreams 웹사이트에 “어떻게 소셜비즈니스가 가난 없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가(How Social Business Can Create a World Without Poverty)”라는 글을 기고했고, 이글을 통해 그가 실천해낸 미시신용이 어떻게 제1세계, 나아가 전 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가를 설명하였다.

그의 핵심적인 주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행위를 함에 있어 이윤추구는 정당한 것이지만 그만으로는 반쪽짜리이며 배려, 관심, 나눔, 동정 등의 요소들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갖추고 있는 개념이 바로 소셜비즈니스(주2) 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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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hammad Yunus at Chittagong Collegiate School” by Hossain Toufique Iftekher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자본주의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

소셜비즈니스의 핵심은 다음 문장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자선은 아니되 사회효용적인 차원에서 이익이 되는 방향을 의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장에서 ‘돈빌려주는 사람(owner)’은 이익을 취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A social business is not a charity. It is a nonloss, nondividend company with a social objective. It aims to maximize the positive impact on society while earning enough to cover its costs, and, if possible, generate a surplus to help the business grow. The owner never intends to take any profit for himself.

그렇다면 그가 소셜비즈니스를 통해 꿈꾸는 사회는 어떠한 사회일까? 분명 가난이 추방된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극복된 사회는 아니다. 그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본성을 너무 편협하게 해석하였지만 번영을 가져다주었고 산업을 자극시켰다는 점에서 분명 매력적이라고 보고 있다. 비록 그것이 미국의 유럽 사회에만 집중적으로 번영을 가져다주었지만 이제 그가 발전시킨 미시신용을 통해 제3세계 국가의 빈민들도 이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

Capitalism has the capacity to do good in the world, provided we recognize that the motivation for the entrepreneur need not be exclusively economic and personal.

의미 있는 실험, 그러나

그의 실험은 분명히 의미 있는 것이었다. 예전에 본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이들이 그의 은행에서 돈을 빌려 어엿한 자산가(주3)가 되기도 하는 광경을 직접 보았고 실제로 그의 프로젝트를 통해 약 600만 명이 혜택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엔 미시신용이라는 이러한 그의 아이디어를 원용한 사업도 창출되고 있다. 일례로 웹사이트에서도 이러한 사이트가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Prosper.com 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비판도 있다. 그의 프로젝트 성과가 실제보다 부풀려 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다. Common Dreams 에 유누스가 쓴 글에 댓글을 단 alexnosal 이라는 누리꾼은 방글라데시에는 미시신용이 있겠지만 미국 주식회사에는 이미 거시신용 macrocredit 이 버티고 있는데다 모든 것은 프랜차이즈化 되어 있어 미국에 유누스의 방법을 적용하기에는 너무 많은 장벽이 있다고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비판

방글라데시와 같이 금융의 인프라가 절대부족한 곳에서는 그의 프로젝트가 마치 먹물이 백지에 스며들듯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상인들도 금방 기반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alexnosal 라는 이의 글처럼 제1세계 – 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에서 과연 품앗이로 빌린 소액의 돈으로 할 만한 마땅한 사업이 있을까? 동네빵집? 파리바께뜨 아니면 장사가 안 되는데 그게 한두 푼으로 되는가?

보다 근본적인 비판은 kropotkins이라는 이가 제기하고 있다. 무정부주의자임이 분명한 이 누리꾼은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는 체제라면 왜 여전히 ‘주인(owner)’와 ‘금전의 문지기(monetary gatekeeper)’가 존재하여야 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또한 그는 결국 국가와 자본주의의 절멸만이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의 전제조건이라고 일갈하고 있다.

If the point is to have a socialy benificial system then why would we still need owners and monetary gatekeepers.

그럼에도 의미 있는 실험

무정부주의자는 그를 쓰레기로 폄하하였지만 분명 그의 실험은 의미 있다. 또한 제1세계에서도 이른바 사회책임투자 펀드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우리에게 또 다른 개념을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유(free)로운 경제’도 중요하지만 ‘공정(fair)한 경제’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즉 유누스가 말한 배려와 나눔이 없이 오직 돈벌 자유만 판치는 경제가 아닌 서로 골고루 분배하는 경제가 이 사회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인간적인 자본주의자’ 유누스가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GATT 가 출범할 적에 그 본래 목적은 사실 ‘자유무역’의 촉진이 아닌 ‘공정무역’의 촉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공정무역’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자유무역’이 대체하고 있다. 경제학자는 자유무역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복잡한 수식을 써가며 설명하여 왔다. 하지만 그 무한자유가 제1세계, 제3세계 공히 피착취 계급에게는 ‘공정한 게임’이 아니었음이 이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이를 설명할만한 수식을 경제학자들이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아니면 유누스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돈이라도 빌려줘 보던가.

그런데 한 실험에 의하면 경제학과 학생들이 가장 이타적인 행위에 인색하다고 한다. 수업을 너무 충실하게 들은 탓(덕택)인지….(주4)

(주1) 그런데 노벨 경제학상이 아니라 노벨 평화상이다. 세계는 아직도 가난한 이에게 돈을 빌려주어도 떼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경제학 이론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모양이다.

(주2) 우리 말로 하면 ‘사회사업’이 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회사업과 너무 혼동되어서 그냥 원어 식으로 표현한다

(주3) 그들 동네에서 자산가였는데 사실 여전히 궁핍하긴 했다

(주4) 혹시 경제학도시라면 화내지 마시길… 실험은 실험일뿐…

경제학자들이 자유무역을 다시 생각하고 있다(Economists Rethink Free Trade)

Business Week의 최근 기사로 자유무역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맹신이 최근 회의적으로 돌아서고 있는 현상을 다루고 있다. 원문은 여기를 클릭

많은 평범한 미국인들은 자유무역을 고임금 직업의 파괴자로 간주하며 내켜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들에게 자유무역은 어떠한 나라가 비생산적인 산업들과 결별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여 손실된 직업들보다 더욱 더 나은 임금이 제공되는 새롭고 기술집약적인 직업들을 생산해내는 전적으로 대단히 좋은 것이다. 이러한 학문연구기관들의 자유무역에 대한 지지는 왜 민주당과 공화당을 불문하고 역대 대통령들이 수십 년 동안 자유무역 의제를 추구하여 왔는지에 대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그들이 상담하는 전문가들은 언제나 그들에게 자유무역이 보다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는 최상의 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자유무역의 성전에서 쉽게 일어나지 않을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 회의감이 슬슬 기어들어 오고 있다. 우리는 그 이론에 대한 총체적이고 극적인 부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그들의 아이디어가 많은 중산층이 경험하고 있는 소득에서의 혼란스러운 스태그내이션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현재 손해를 보고 있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더 많은 일들이 행해지지 않을 경우 있을 보호무역주의자들의 반격을 두려워하고 있다. “전에 당신은 극단주의자들을 무역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이들로 만들었었다.” ‘페터슨 국제경제 연구소(the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의 Gary C. Hufbauer의 말이다. “이제는 10년이나 15년 전에는 논의되지 않았을 법한 광범위한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다음 대통령은 불과 몇 년 전에 그들이 확고하게 믿었던 확신에 대해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 전문가들과 상담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전임 부의장이자 클린턴 행정부에서 경제자문위원회의 멤버였던 Alan S. Blinder에서부터 부시의 경제자문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국제경제학자인 다트머스의 Matthew J. Slaughter에 이르기까지 해당 직종의 많은 이들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효과에 대해서 재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외국에서의 저임금 노동의 성장에 대해서 연구하였고 어떻게 고속 텔리커뮤니케이션이 더 많은 일거리들을 해외에서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게 만들었는지를 목격하였다.(예를 들면 신용카드사의 상담을 맡는 백오피스는 미국식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도인들로 채워진 인도에 세워지고 있다.:역자 주) 그들은 이제 그러한 요소들이 그들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두려워하고 있다.

단지 얇은 조각의 이득
아무도 무역이 미국에게 총체적으로 해롭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페터슨 연구소와 다른 기관들의 추정에 따르면 지난 몇 십 년 동안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가 미국의 연간 소득에 5천억 달러 내지 1조 달러의 가치를 부가하여 왔다.

그러나 자유무역으로부터의 이익이 점차적으로 상층부의 소수 그룹에게만 돌아가고 있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다트머스의 Slaughter는 절대 다수의 미국인들에게 최근 몇 년간 임금증가가 사라져버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내팽개쳐진 낮은 기술직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물가효과를 조정한 실질소득은 박사학위나 전문자격증을 소지한 4%를 제외한 전 고등교육 직종 군에서도 감소하였다. Slaughter는 그러한 수치가 무역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에 참여하지 못하는 미국인의 비율이 매우 클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중요한 변화이다.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잠시 멈추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Blinder는 고통이 이제 막 시작하였는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궁극적으로 미국에서의 4천만 개의 서비스 관련 일거리가 인도나 다른 저임금 국가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미국에서의 1억4천만 개의 일자리의 4분의 1보다도 큰 수치다. 새로이 위협받게 될 직종은 회계나 리서치같은 숙련직들이다.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숫자의 미국 기업들이 해외로 옮길 수 있다. “이는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를 수반하는 조정기가 될 것이다.” Blinder 의 말이다.

왁자지껄한 학문적 논쟁은 벌써부터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Hillary Clinton 은 비교우위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Paul A. Samuelson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이야기했다. “점증하는 세계화와 정보기술이 우리의 중산층을 강화시키는지 아니면 공동화시키는지에 대한 물음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이슈이다” 그녀의 최고위 경제자문 Gene Sperling가 최근 쓴 글이다. Barack Obama의 자문인 시카고 대학의 Austan D. Goolsbee는 자유무역이 소득압박의 배후주범인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많은 미국의 노동자들이 열린 시장에서의 이득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무언가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정치적 후폭풍이 있을까 두려워 하고 있다.

행동을 위한 요청
무엇을 해야 하나? Blinder는 실업보험의 광범위한 확대와 직업을 잃어버린 제조업 노동자들을 유지하고 있는 ‘무역조정지원제도(Trade Adjustment Assistance program)’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주장하고 있다. 더 낮은 임금으로 새로운 직장을 가지게 된 실직노동자들에 일부 지원을 하는 직업훈련과 급여보험도 그의 제안에 포함되어 있다. Clinton과 Obama, 그리고 공화당 의원 John McCain이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Slaughter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자유무역으로부터의 이득이 보다 많은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소득재분배의 몇몇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여름 Foreign Affairs에 Slaughter가 같이 쓴 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글에서 그는 국내 중간소득 이하를 버는 모든 노동자의 근로소득세를 걷지 않는 “세계화의 새로운 협약(A New Deal for Globalization)”을 제안하였다. Slaughter는 양 당의 캠페인 자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까지 그는 지지자가 없다. 그러나 무역에 관한 논쟁이 얼마나 멀리 이동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자유무역에 저항하는 알바

ALBA가 무슨 뜻일까? 아르바이트의 한국식 표현? 그렇기도 하지만 ALBA는 스페인어로 “새벽”을 뜻한다. 동시에 ALBA는 “아메리카 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의 대안(the Bolivarian Alternative for the Americas)”의 첫 글자를 딴 남아메리카의 대안적인 무역 동맹이다. ALBA는 지난 2004년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에 대항한 공정한 무역의 대안으로 우고 차베스 Hugo Chavez 와 피델 카스트로 Fidel Castro 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에보 모랄레스 Evo Morales, 니카라구아에서 다니엘 오르테가 Daniel Ortega가 당선되자 이들도 합류하였다. 자금조달은 베네주엘라의 오일머니덕분에 가능했다.

여하튼 ALBA는 지난 25일과 26일 양일에 걸쳐 카르카스에서 여섯 번째 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에서 도미니카도 합류하였다. 그리고 에콰도르, 온두라스, 우루과이, 아이티 등에서 각각 대표사절을 파견하였다. 이 자리에서 차베스는 인민의 필요를 대변하는 무역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독재적인 세계자본주의”를 맹비난하는 한편으로 미국의 경제공황을 경고하면서 각 나라가 보유자산을 미국의 금융기관에서 인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다니엘 오르테가는 환경위기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였다. 그는 “개발을 위한 자본주의 모델은 명백히 지속가능하지 않다. 만약 당신 나라의 경제가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는 투기적 자본에 의해 통제된다면 그 나라는 인간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단 우리가 자유무역 모델을 포기하면 우리는 실업, 가난,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출발점에 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현재 천연가스와 석유를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고 있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는 토지, 물, 에너지와 같은 핵심적인 공공자원은 사적이윤이 아닌 공공선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라틴아메리카는 언제나 헤게모니를 증대시키기 위한 음모가 감추어져 있는 미국의 지원을 바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ALBA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바로 그 시각 콘돌리자 라이스 Condoleezza Rice 는 베네주엘라의 이웃나라인 콜롬비아를 방문하고 있었다. 라이스는 미국과 콜롬비아간 자유무역협정의 조속한 추진을 촉구하기 위해 콜롬비아의 대통령 알바로 우리베 베레즈 Alvaro Uribe Velez 를 만나고 있었는데 차베스는 그를 “제국의 날품팔이”라고 비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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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lem of the Bolivarian Alliance for the Americas” by Enigmaticland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ALBA의 로고

구체적인 협상내용으로 들어가서 살펴보자. 협상 내용은 상호이윤추구라기보다는 원조적인 성격이 강하다. 예를 들면 니카라구아는 베네수엘라가 우유, 옥수수, 콩, 소고기 등을 공급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베네주엘라는 니카라구아에 우대조건으로 석유를 판매하기로 했다. 쿠바는 베네주엘라에게 석유를 할인받는 조건으로 의사들을 파견하기로 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력이 나머지 국가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는 인상이 강하다.

가장 중요한 조치는 각국 정상들이 동맹을 강화하고 세계은행과 같은 미국 주도의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개발은행을 설립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른바 ALBA 은행은 10억 달러내지 15억 달러의 자본으로 출범하기로 했다. 역시 베네주엘라가 주요 자금조달원이 될 것이다. 이 펀드는 예를 들면 도미니카의 풍부한 강물과 니카라구아의 기술이 결합된 수력발전 에네지 벤처 프로젝트에 투입될 것이다. 차베스와 여섯 나라의 지도자들은 이미 지난달 70억불을 자본으로 계획하고 있는 남미은행(the Bank of the South)을 설립하였고 이 은행은 세계은행이나 IMF보다 더 완화된 조건으로 대출을 제공할 것이다.

ALBA의 미래는 얼마나 더 많은 나라들이 참가할 것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에콰도르나 아이티의 경우는 참가를 원하고 있으나 심각한 내부반대에 직면해 있다. 다른 나라 역시 보수언론의 강한 반발로 인해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이들은 경쟁이 아닌 상호원조에 입각한 무역이라는 점을 자국에 설명하려 해도 일단 차베스, 카스트로, 오르테가가 거론되면 알르레기 반응을 보이는 우익들 때문에 상황이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쿠바의 Martin Luther King 센터의 조엘 수아레즈 Joel Suarez 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ALBA의 사회운동 위원회 활성화를 들고 있다. 이 위원회는 농민, 여성, 환경주의자, 노조 등의 대표자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적 차원의 참여가 곤란한 나라는 사회운동단체가 우선 참여함으로써 점차 외연을 확대하자는 취지다. 이러한 제안에는 심지어 미국의 사회운동단체도 포함하고 있다.

또 하나 ALBA의 미래를 흐리게 하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경제력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이 아닌가 싶다. 만약에 오일머니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우고 차베스라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참가하고 있는 각국의 지도자들과 사회운동단체 들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어찌 되었든 현재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실험은 현재 자본에 의해 주창되는 “자유무역”이 의미하는 바는 ‘자본의 자유’, ‘이윤추구의 자유’이고, 이에 비해 남미 좌파세력이 주창하는 “공정무역”에는 ‘인민을 위한’, ‘서로 돕는’, ‘환경을 위한’이라는 개념을 바탕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 실험의 성공이 향후 이 지구의 물질문명의 앞날에 중대한 이정표를 제시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고전에서 마주친 자유무역론

퀴즈로 글을 시작하도록 하자. 다음 글은 어디에서 등장하는 글일까?

“당신은 당신만의 특별한 무역이나 당신의 사업이 보호관세에 의해 원조 받고 있다고 속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법률은 장기적으로 이 나라의 부를 감소시키고, 우리의 수입품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이 땅에서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입니다.”
“You may be cajoled into imagining that your own special trade or your own industry will be encouraged by a protective tariff, but it stands to reason that such legislation must in the long run keep away wealth from the country, diminish the value of our imports, and lower the general conditions of life in this land.”

Adam Smith 의 국부론? 아니다. 정답은  Arthur Conan Doyle 경이 1901년에서 1902년에 걸쳐 Strand 잡지에 기고하였고 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추리소설의 걸작으로 남은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이다. 조금은 의외의 공간에서 만난 경제에 관한 글이다.

소설에서 이 글은 Times 신문의 기사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이 기사는 음울한 전설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는 Henry Baskerville 경에게 배달된 익명의 경고장에 오려붙여진 단어들의 원 기사로 사용되었다. 정체모를 사람이 보내온 경고장은 다음과 같다.

“As you value your life or your reason keep away from the moor.”

이 문장을 보면 moor 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모두 위의 기사에서 찾을 수 있는 단어들이었고 Sherlock Holmes 가 이 사실을 재빠르게 알아차린다는 설정이다.

여하튼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경제에 대해선 그다지 많이 알지 못한다는 언급만을 한 채 다시 자신들의 관심사인 범죄에 관한 대화로 돌아간다. 그렇더라도 어찌 되었든 이 장면은 그 당시 자본주의 최강국인 영국에서 펼쳐지고 있던 무역에 관한 논쟁들의 단편을 보여주는 풍속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에 관한 오랜 투쟁은 이 소설이 발표된 1900년 초입을 더 거슬러 올라가 1800년대 초부터 본격화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1815년에 제정하여 1846년에 폐지한 영국곡물법을 들 수 있다.

‘곡물법(穀物法 , Corn Law)’이란 무엇인가? 이 법은 곡물의 수출입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로 같은 이름의 법이 중세에서부터 있었지만 19세기 초반의 영국 법률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소맥의 가격이 일정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수입을 금지함으로써 표면상의 목적은 곡물 가격의 등락에 대해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국 지주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보호무역주의 악법이었다.

그 당시 자유무역의 선봉장 리카도 David Ricardo 를 비롯한 여러 명망가들이 법의 폐지를 주장하였으나 의회의 다수파를 이뤘던 지주계급은 이 법을 강력히 옹호하여 결국 1846년이 되어서야 법이 폐지되었다. 리카도는 생전에 법의 폐지를 볼 수 없었다.

그 이후 곡물규제는 마침 위의 소설이 발표되고 있던 시점인 1902년과 1932년에 다시 필요하게 되어, 1902년에는 수입 곡물과 밀가루에 최소한도의 관세가 부과되었으며, 1932년에는 해외 수입의존도 증가를 우려하여 제정법으로 영국산 밀을 보호했다.

요컨대 이당시 보호무역주의는 명백히 봉건시대의 지배계급인 지주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폭거였다. 즉 지나치게 높은 곡물가격은 임금상승의 요인이 되어 산업경쟁력을 해치게 된다.(주1) 이것이 당시 지주계급에 대항하는 신흥 부르주아의 일반적인 정서였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의 생계비용의 큰 몫을 차지하는 곡물가격의 앙등은 좀 더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부려먹어야 하는 자본가 계급의 계급이해에 합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 당시의 자유무역 주창자들은 당시의 지배계급인 지주들의 기득권을 깨부수기 위하여 투쟁하였던 일종의 진보주의자들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곡물법의 폐지는 자본가 계급들이 실질적으로 경제의 헤게모니를 쥐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p.s. 어쩌면 이것이 그 당시의 자유무역 주창자들과 오늘 날의 주창자들의 다른 점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처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아직까지 사회주류가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당시에는 노동자들과 함께 제3계급으로 분류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하지만 오늘날 자본가 계급은 분명히 지배계급이다. 그리고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이들은 더 이상 지배계급이 아닌 소농들이거나 기업농, 즉 또 다른 자본가계급이다. 요컨대 계급지형이 싹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기회 되면 이야기를 풀어 가보도록 하겠다(maybe or maybe not).

 

(주1) 한편 맬서스는 리카도와 배치되는 입장에서 농업의 보호를 주장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오늘날 농업보호를 위해 많이 주장되는 농업의 비교역적 조건, 즉 농업의 식량자원으로의 이용가능성을 들고 있다. 오늘 날에는 이에 덧붙여 농축산물의 위생문제도 많이 거론되고 있다.

American Apparel의 도발적 광고, 장삿속인가 정치적 항거인가

가만 보면 의류광고는 다른 상품광고보다 좀 튀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일단 패션이라는 테마를 알리니 만큼 어떻게 해서든 튀는 행동으로 주위를 환기시킴으로써 브랜드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 한편으로 패션계에 기인들이 제법 있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기도 한데 뭐… 패션하고는 조금 거리가 멀어서 그런가보다 하는거다.

여하튼 이런 튀는 광고의 대표 격은 잘 알다시피 베네통이다. 루시아노 베네통이 1969년 한 옷매장의 문을 열면서 시작된 베네통 브랜드는 ‘United Colors of Benetton’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후 유럽 최대의 의류업체로 성장한다. 그런데 정작 이 브랜드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광고의 상식을 뛰어넘는 도발적인 주제와 형식을 담은 광고 때문이었다. 강한 정치적 메시지, 충격적인 비주얼, 대담한 아이디어는 이후 베네통 광고의 특징으로 자리 잡고 베네통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렸다.

베네통 광고 사진 맛보기

최근 베네통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보다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선보이는 의류광고가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미국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브랜드인 American Apparel의 광고다. 최근 이 회사의 광고의 광고모델로 등장한 이는 바로 이 회사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남미 출신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이 사진을 찍은 이는 회사의 설립자이자 CEO Dov Charney다.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어메리칸어패럴의 광고

LA타임스와 뉴욕타임스 등에 지난달부터 게시된 이 광고의 의도는 분명하다. 이 사진은 이주정책의 개혁을 목적으로 하는 사진이다. 즉 현재 미국의 이주정책은 일종의 차별정책이며 불법화된 이주노동자들이 법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합법적인 경로를 열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이동의 자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그늘에서 살고 있다.”라고 Dov Charney는 이야기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회사들이 광고에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 않은 가운데 앞서 말한 베네통이나 나이키 등 일부 업체에서만 다소 도발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런 광고에 대해 시장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한 광고회사의 CEO는 “이 이슈는 선거에서 결정될 문제다.(주1) 그러나 그들은 어쨌든 매우 급진적인 회사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이 광고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American Apparel에 따르면 회사로 그들을 지지하는 편지들이 답지하고 있다고 한다. Charney 씨는 대부분의 대기업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비밀스러운 로비를 선호하지만 자신은 공개적인 방법을 선호한다면서 자신의 광고를 옹호하였다.

“우리의 옷을 만드는 이들에 대해 분명히 하자면 그것은 미국 태생의 노동자들과 미국 이외 지역 태생의 노동자들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나는 이민을 지지하는 것이 나의 브랜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책임 있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게끔 하는 면이 있다.”

어찌 보면 다분히 비즈니스적 마인드에 철저한 발언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American Apparel은 오랜 동안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주창자였으며 과거에도 꾸준히 이주정책에 관한 광고를 지역신문에 게재해왔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한편으로 일부 이주정책 전문가들은 이 광고에 대해 비판적이다. 코넬 대학의 Vernon M. Briggs Jr 교수는 불법이주에 대한 대응은 차별이 아니라 단순히 범법행위에 대한 단속이며 해당 광고는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저임금 노동을 영속화시키려는 자족적인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고 혹평하였다.

저임금 노동착취를 목적으로 하든, 브랜드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든, 또는 정말 순수하게 Dov Charney의 정치적 목적이든 다 좋다. 어쨌든 일개 기업이 다분히 민감한 주제인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해 도발을 한 것이다. 그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편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Dov Charney와 같은 사회적 이벤트는 별로 기대도 하지 않지만 사태는 미국에 비해 나쁘면 나빴지 좋을 것 하나 없다.

인권을 존중한다면서 인권위원회까지 설치한 참여정부는 이 땅의 이주노동자들을 3D 업종을 메워주는 소중한 이웃이라고 여기기보다는 범법자라고 여기고 있다. 업주의 저임금 착취노동, 과잉단속, 불법추방으로 이어지는 탄압 속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산업재해로 죽기도 하고 심지어는 도망치는 과정에서 사고로 죽어갔다.

이천 냉장창고 사태는 그러한 한반도 이주노동자 현황의 결정판이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통해 단속반이 공장이든, 길가든, 집이든 ‘불법체류자’라고 의심되면 언제라도 이주노동자를 심문하고 단속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 하고 있다. 우리의 형과 아버지가 타국에서 그러한 수모를 당했다고 생각해보라. 실제로 몇 십 년 전만해도 선진국에 광부로 일하러 갔던 우리의 선배들의 모습이 그러했을 것이다.

[인권오름] ‘인간사냥’에 쫓기는 이주노동자

흔히 이 사회의 주류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유무역을 지지한다. 물론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자유무역은 이동성이 뛰어난 자본에게 더욱 유리한 형태인 것이 사실이다. 오늘 날 거대자본은 임금의 많고 적음, 국가의 세금이나 우대정책 등에 따라 전 세계를 무대로 자유롭게 생산기지와 오피스를 옮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서류들이 바로 WTO의 각종 조약이나 FTA들이다.

한편 노동자들은 자본에 비해 훨씬 이동성이 떨어진다. 살고 있던 곳을 떠나기 쉽지 않고 바로 대부분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타국의 노동자들은 정부의 탄압을 받기 때문이다. 무역의 자유를 신봉하는 이들이 바로 노동의 자유는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유도 있고 또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은 체제적 속성이기도 하다. 사실 자국 노동자마저 생산비용으로 환원하는 이들이니 살갗이 틀린 이들에게야 더 모진 것이 당연한 일일게다.

 

(주1) 현재 미국 내 불법노동자의 수는 1천5백만에서 2천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로 인한 각종 사회문제 때문에 사실상 이주노동자 문제는 2008년 대선의 최대 이슈 중 하나가 되고 있다(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