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매스미디어

동아일보가 언론이 아닌 이유

이유는 다른 것이 없다. 올라오는 기사를 보면 언론이라고 하기가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언론이라 하면 자기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같은 보수지여도 조선은 상대적으로 동아보다는 자기 목소리가 있다. 현 정부에 대해서도 – 물론 저간의 사정이 있는 것 같지만 – 조선은 일정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논조를 편다.(지들이 보수의 정수라는 자존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동아는 그러한 뚝심이 없다. 자존심도 없다. 그저 청와대 찌라시에 맛 들여서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다음의 두 기사다.

이 대통령 강한 불신표명에 공공기관장 ‘긴장'(조선일보)
李대통령 “조직혁신 자신없는 사람 떠나야”(동아일보)

34개 공공기관의 청와대 업무보고 소식을 전한 두 개의 기사를 비교해보자. “도덕적 약점없이 출범한 정권”의 수장이신 이 장로님께서 “조직에 대한 자신이 없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는 초법적인 협박성 발언으로 분위기를 급랭시켰다는데 같은 보수지가 같은 사안에 대해 전하는 내용이 사뭇 대조적이다.

적어도 조선은 장로님의 발언 이후 이어진 공공기관의 업무보고내용을 전달하여 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동아의 기사를 보면 이건 기사가 아니다. 이렇게 따옴표가 난무하는 기사는 보다보다 처음 본다. 그냥 이 장로님의 발언전문을 인용하면서 사이사이에 추임새만 집어넣은 것이다. 이런 글이 기사면 내 글은 퓰리처상 감이다. 그래서 동아일보가 언론이 아닌 것이다.

“2008년 최악의 예언들”

비즈니스위크가 “2008년 최악의 예언들(The Worst Predictions About 2008)”을 발표했다. “이와 같은 수확이 매년 있는 것은 아니라는(a crop like this doesn’t come along every year)” 자부심어린 논평도 곁들이고 있다. 프레디맥과 패니메에 대한 헛소리, 베어스턴스에 대한 헛소리, 대선에 대한 터무니없는 전망, 나아가 시장 전체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이 가차 없이 난도질당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예언이 있는데 비즈니스위크가 두 번째로 꼽고 있는 엉터리 예언이다.

AIG는 “2분기에 대규모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Bijan Moazami

이 예언은 맞지 않았는가 말이다. 3분기에 엄청난 구제금융을 받아 파티도 열고 임원들끼리 유지 보너스까지 나눠먹었으니 그가 틀린 것은 1분기의 시차일 뿐이다.

심심풀이로 보시길.

조선일보, 거대 미디어 제국을 꿈꾸는가

방통위 ‘대기업·신문 방송진출 허용’ 수용키로”란 기사에 말보태기도 귀찮고 예전에 쓴 글이나 재탕한다. 2007년 11월 15일 작성한 글이다. 빌어먹을 놈들..

11월 15일자 조선일보를 보자.

2면에 보면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공중파 방송의 중간광고 허용에 관한 기사가 비중 있게 실려 있다. 방송위원회에서 열린 공청회를 비판하는 기사다. 이미 표결을 통해 결정된 사안을 가지고 공청회를 하는 방송위원회를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사 바로 아래 딸린 기사였다.

“美, 신문, 방송 교차소유 확대”라는 제목의 기사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서 현재 미국에서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동일한 지역에서의 신문과 방송의 “교차 소유(cross-ownership)”를 허용할 예정이라는 내용이다. 그동안 법으로 교차 소유를 금지한 사유는 미디어 독점을 막기 위해서였다. 허용하고자 하는 이유는 “언론사들이 경비 절감 등을 통해 지역의 뉴스 콘텐츠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다.

조선일보는 다시 미디어 섹션에서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서 “신문, 방송 겸영 통해 뉴스품질 높여야”라는 기사로 이 소식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기사에는 미국의 미디어 업계의 목소리를 전하면서 교차 소유를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국내 환경을 이에 비교하고 있는데 기사에 따르면 “신문사는 각종 규제법규에 의해 팔다리가 꽁꽁 묶인 상태”라고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두 유력 대선후보의 ‘교차소유’에 대한 입장이 긍정적임을 전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후보는 “매체 간 교차소유는 기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재밌는 사실은 FCC의 교차소유 허용은 아직 표결도 들어가지 않았고 해당 기사들은 오로지 FCC의 회장 케빈 마틴의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틴 회장은 교차소유 안건이 다음달 18일 FCC에서 표결에 부쳐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FCC 위원들 중 공화당 추천인사가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한 것뿐이다. 결국 그러한 내용을 이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보도하는 것은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요컨대 이러한 무리한 기사와 기사의 배치로 보건데 조선일보는 방송위의 중간광고 허용결정을 신문의 향후 위상 제고에 활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사실 마틴 의장의 이러한 제안은 사실 광고수입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문업계가 방송사 소유를 통해 수익성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조선일보는 뉴스의 품질을 말하고 있으나 실은 그들이 비판하는 지상파의 중간광고 허용만큼이나 경제적 이익에 목말라 있을 뿐이다.

그동안 신문, 방송 겸영 사안은 한나라당이 이종매체간의 교차소유를 허용하는 신문법 개정 법안을 제출했는가 하면 조선일보가 신문법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보수세력과 신문사의 지속적이고 주요한 현안과제였다. 이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디딤판이 위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바로 ‘선진국’ 미국의 언론환경의 변화다.

미국에서 신문, 방송의 교차소유가 허용될 경우 국내 언론환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테고 여하한의 경우 국내에서도 교차소유가 허용되면 공중파 방송국에 신문사가 대주주로 참여하여 거대한 미디어 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계산이다. 그리고 해당 기사들은 그러한 분위기를 유도하려는 일종의 낚시 기사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에서 신문이 방송을 소유하거나 또는 방송이 신문을 소유하는 것이 조선일보가 말 한대로 “뉴스품질”이 높아지는 좋기만 한 일일까?  신문의 경우를 보면 우리나라 시장은 소위 조중동 3개 사가 전체 시장의 70%를 점하고 있고, 방송의 경우 지상파 방송이 전국 가시청 가구 점유율이 50%를 훨씬 넘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언론환경은 어느 나라 못지않은 독과점 시장이다. 이런 상태에서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를 허용한다면 엄청난 미디어제국이 탄생하는 것이다.

어쨌든 현재까지도 미국을 비롯한 유럽각국은 언론독점의 심각한 폐해를 잘 알고 있기에 신문, 방송 겸영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FCC의 이번 규제완화 시도는 2003년에도 있었다. FCC는 지난 2003년에도 규제완화 법안을 내놓고 표결에서 이를 통과시킨 바 있다. 하지만 미국 항소법원이 이 법안에 대해 무효판결을 내림에 따라 FCC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만큼 언론에 대한 규제완화 사안은 첨예한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고 중대한 사안임을 알 수 있다.

지상파의 중간광고에는 시청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신랄한 비난을 해대는 한편으로, 신문사의 방송사 소유와 경영에 대해서는 뉴스의 품질을 높이는 시도로 칭송하는 모습이 현재 우리 언론의 상황이다.

관련글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1/15/2007111500091.html
http://www.kpf.or.kr/public/public_paper_02_viewdetail.php?txtId=20030801C001003
http://www.kpf.or.kr/datas/pdsindex/simimg/200702061422468.pdf
http://www.ccdm.or.kr/board2/board_read.asp?bbsid=declar_01&b_num=31148&page=8

사과드립니다 기자님

지난번에 동아일보 기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오바마의 아내 미셸과의 만남을 자기 딴에는 로맨틱하게 그리려 했는데 어이없는 표현이 눈에 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 왜 하필 초콜릿일까? 백인 커플이면 키스할 때 바닐라 아이스크림 맛이 날까? 기자란 사람이 이런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우리나라는 역시 아직 인종에 대한 배려의 개념정립이 안 되어 있는 나라다.[원문보기]

그 글에 대해 mhsarang님이 다음과 같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오바마는 처음 회사의 직속 상관이었던 미쉘에게 몇 번의 데이트 신청을 거듭 거절당했지만 회식 자리를 마친 어느날 아이스크림을 사주면서부터 데이트가 시작됐다고 털어놨다. 미쉘의 아이스크림 먹는 모습에 반해 바로 키스를 한 오바마는 ‘첫 키스가 초콜릿 맛’이었다고 쑥스럽게 밝히며 수줍은 청년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 검색해보니 지난 4월 타이라쇼에 나와서 한 얘긴가봐요.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이 부분은 사실에 근거한 내용이네요 ㅋ 다만, 그 속에 무슨 뜻을 담았을지는 그 기자분만 알고있겠죠. 흥미로운 글 잘 읽고 갑니다 ^^[원문보기]

이 부분에 대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채 인종차별적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사과드리는 바이다. 이 듣보잡 블로그에 이런 글이 올라오는 것에 신경도 안 쓰고 계시겠지만 말이다. 🙂

오늘 하루 동아는 한겨레다

“인종의 벽 허물고 ‘변화의 신대륙’ 문 열다”

내 예상보다 훨씬 강도 높은 헤드라인이었다. 역시 동아다. 오늘 하루 동아는 한겨레였다.(오바마 관련기사에 있어서만큼은) 자신들이 목놓아 떠들던 브래들리 효과도 기우에 그쳤다고 논평했다. 편리한 건망증.

여론조사에선 흑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한 백인 유권자들이 정작 투표장에서는 백인 후보에게 투표한다는 이른바 ‘브래들리 효과’는 기우(杞憂)에 그쳤다.[투표함 열자마자 “오바마”… ‘개표 드라마’는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삑싸리’는 여전했다.

오바마 당선인의 멘터(조언자) 역할을 맡았던 그녀는 나이는 세 살이나 어렸지만 오바마 당선인을 지도해 주던 ‘선배’였다. 곧 두 사람은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이 감정은 데이트로, 그리고 얼마 후 초콜릿 아이스크림 맛이 나는 첫 키스로 이어졌다.[‘동등한 파트너’ 미셸]

오바마의 아내 미셸과의 만남을 자기 딴에는 로맨틱하게 그리려 했는데 어이없는 표현이 눈에 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 왜 하필 초콜릿일까? 백인 커플이면 키스할 때 바닐라 아이스크림 맛이 날까? 기자란 사람이 이런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우리나라는 역시 아직 인종에 대한 배려의 개념정립이 안 되어 있는 나라다.

그런데 그러한 인종배려 무개념의 하이라이트는 중앙일보의 김상택 만평이다. 그의 오바마에 대한, 그리고 흑인 인종에 대한 개념 없는 독설은 이때 드러났고, 선거 하루 전까지도 이 지롤을 떨다가,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되자 엉뚱한 만평으로 흰소리를 해대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의 그림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형식에 걸맞지 않는, 아니 형식을 모욕하는 내용으로 스스로를 모독하는 대표적인 만평가가 되어버렸다.

‘초콜릿 아이스크림’이라는 표현에 대한 느낌은?
( surveys)

뉴시스(수정)

Adviser를 ‘보좌관’이라는 표현대신 ‘참모’라는 표현으로 수정

뉴시스가 특파원의 펜을 빌려 뉴욕타임스의 미대선 부통령 후보 새라 패일린에 대한 구설수 기사를 옮겨 적었다. 그런데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페일린 유세 의상비용 15만달러 구설수 <NY타임스>”라는 제목의 이 뉴시스 기사는 여러모로 국내 언론의 외신보도(또는 베끼기) 능력 부재를 드러내는 기사다.

1) 뉴욕타임스? 타임스?

가장 황당한 부분이다. 기사에서는 총 일곱 번에 걸쳐 “뉴욕타임스”를 “타임스”라고 칭하고 있다. 이 두 신문이 같은 신문이 아니라는 나의 상식이 틀리지 않았다면 기자는 지금 엄청난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2) 번역인가 반역인가?

뉴시스 기사의 일부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선거유세에서 캠페인 비용이 후보의 개인 패션에 의해 쓰여지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지만 홍보예산으로 처리되는 것 중에 잠재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위 문단이 인용한 것으로 여겨지는 뉴욕타임스의 원문이다.

Advisers to Mr. Obama – as well as those of his rival in the Democratic primaries, Senator Hillary Rodham Clinton – said that campaign money was never spent on personal clothing but that potentially embarrassing purchases could be blended into advertising budgets.

화자가 “오바마의 참모들(Advisers to Mr. Obama)”에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으로 변신했다. 아니면 힐러리가 오바마의 참모로?

이외에도 사소한 번역 오류가 몇 군데 눈에 띄지만 내가 무슨 빨간펜 선생님도 아니고 이쯤에서 마치겠다.

3) 이런 기사를 굳이 특파원이 써야하나?

특파원이라면 미국에 나가계실 텐데 비싼 체재비 들여가며 계시는 동안 이런 번역문(기사?)을 쓰시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비단 뉴시스의 이 특파원 뿐만 아니라 여러 (소위) 특파원들은 외신 번역기사로 지면을 채우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그리고 솔직히 뉴시스의 번역기사의 의미를 굳이 찾으라면 종이신문의 촬영사진 정도다. 언론 소비자들이 – 적어도 내가 – 특파원에게서 바라는 것은 ‘김상철의 글로벌포커스’ 정도의 생생한 현장감과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능력이다.

동아의 마지막 보루는 ‘브래들리 효과’?

오바마의 승리가 점점 가시화되니까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 특히 개인적으로 즐겨보는 동아일보의 이른바 ‘브래들리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거의 종교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수언론으로 지칭되는 조중동과 진보언론으로 지칭되는 한겨레/경향의 ‘브래들리 효과’에 대한 입장을 비교해보았다. 역시 확연히 차이가 난다. ‘브래들리 효과’를 주문처럼 외우는 것은 역시 동아다. 상황을 분석하기보다 주문을 외우는 동아 파이팅!

브래들리라는 이름을 가진 – 스펠링은 전혀 다르지만 🙂 – 밴드도 있다. 이들 노래를 들으면서 신문기사를 감상하시길.

오바마 승리 낙관 아직 이르다(동아, 2008년 10월 20일)
결론적으로 막판 변수와 브래들리효과(백인 유권자의 흑인 후보에 대한 이중적 투표 행태) 등을 고려할 때 오바마 후보의 승리를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USA 선택 2008]또 오바마가 웃었다(동아, 2008년 10월 17일)
하지만 ‘컴백 키드'(come back kid)로 불리는 부도옹(不倒翁) 매케인 후보가 사력을 다한 추격전을 펼칠 것으로 보이며, 역대 대선에는 없던 ‘브래들리 효과'(흑인 후보에 대한 백인들의 이중적 태도)를 비롯한 변수들이 남아 있어 승부가 끝났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벼랑끝 몰린 매케인 ‘이유 있었네’ (조선, 2008년 10월 17일)
하지만 그의 당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언하긴 이르다. 투표일까지 아직 3주가량 남은 데다 백인 유권자들이 흑인 후보를 지지하다가도 막상 투표장에선 백인 후보 쪽으로 마음을 바꾼다는 ‘브래들리 효과’가 막판 변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브래들리 유령’도 14%p 뒤집기는 힘들다(한겨레, 2008년 10월 16일)
여전히 변수다. 하지만 현 지지율 상황을 역전시킬 정도는 아닐 것이다. 특히 젊은층 유권자가 다수인 지역에서는 브래들리 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 실제로 오바마는 젊은층 사이 지지율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오바마 진영 “백인 노동자를 설득하라”(중앙, 2008년 10월 15일)
유에스에이투데이와 갤럽이 10∼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바마는 지지율 51%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44%)를 7%포인트차로 앞섰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오바마를 지지한다’거나 ‘지지후보가 없다’고 답해놓고 투표소에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찍는 유권자들이 나올 가능성 (브래들리 효과)이 있어 오바마는 지지율 격차를 두 자리 숫자로 늘리기 전에는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막판 ‘브래들리 효과’ 두 캠프 모두 촉각(동아, 2008년 10월 14일)
시카고대의 마이클 도슨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시장, 주지사, 상하원 의원 선거 등에서 브래들리 효과가 약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통령선거는 차원이 다르다”며 “백인의 흑인후보 지지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브래들리 효과’는 없다?…전문가들 “역효과도 있다”(경향, 2008년 10월 13일)
선거 여론조사 전문가인 마이클 트라곳 미시간대 교수는 “브래들리 효과는 시작부터 이름이 잘못 붙여진 것”이라고 말했다. 8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당시 여론조사는 인종 변수를 포착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재자투표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해 투표 결과 예측에 실패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美대선 한달 앞으로]표밭전쟁 ‘4가지 지뢰’(동아, 2008년 10월 4일)
네 번째로 꼽았지만 ‘브래들리 효과’(여론조사에서 앞선 흑인 후보가 실제 개표에서는 패배하는 현상) 재현 여부는 앞의 모든 변수를 모두 삼킬 만한 메가톤급 태풍의 눈.

미(美) 대선 D-35 … 막판 4가지 변수는?(조선, 2008년 9월 30일)
이런 현상은 여론조사에서는 흑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한 후 투표장에서는 백인 후보를 선택하는 ‘브래들리효과(Bradley Effect)’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2

두 후보는 예상대로 세 차례의 토론 가운데 가장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이변은 없었고 결정적 한방이나 실수도 없는, 거의 무승부에 가까웠다.

하지만 ‘컴백 키드'(come back kid)로 불리는 부도옹(不倒翁) 매케인 후보가 사력을 다한 추격전을 펼칠 것으로 보이며, 역대 대선에는 없던 ‘브래들리 효과'(흑인 후보에 대한 백인들의 이중적 태도)를 비롯한 변수들이 남아 있어 승부가 끝났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토론뒤 CNN의 여론조사에서 “누가 더 잘했는가”라는 질문에 오바마 후보가 58%를 기록, 31%를 기록한 매케인 후보를 앞섰다. CBS방송이 무소속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53%가 오바마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USA 선택 2008]또 오바마가 웃었다, 2008년 10월 17일, 동아일보]

누가 토론을 잘 했냐고 질문한 여론조사에서 오바마가 20%이상을 앞섰는데 동아일보는 이런 상황을 “거의 무승부에 가까웠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럼 지난 대선에서도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가 거의 무승부에 가까웠던 것이었나??!!

실은 이럴 것이다. 동아일보는 당초 오바마가 잘 했다고 대답하는 의견이 메케인이 잘 했다고 대답하는 의견보다 한 40%는 더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그런데 20% 안으로 좁혀졌으니 목표수치보다 낮아져서 “무승부”라고 한 것이다. 사실 그네들 눈에는 이 정도면 거의 표준오차 범위 이내가 아닐까 싶다.

20% 차이나는 게임이 무승부입니까?
( surveys)

월스트리트저널의 호들갑

어쨌든 “검은 9월”(뮌헨올림픽에서 선수 납치사건을 자행한 그 검은9월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은 지나갔다. 나야 변방 남한에 사는지라 월스트리트저널의 종이신문을 받아보지는 못하지만 이를 받아볼 수 있었던 gawker.com에서는 지난 9월 동안 월스트리트저널 종이신문의 헤드라인이 사뭇 격정적인데 매우 놀란 듯 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시류에 맞춰 차분한 첫 페이지 디자인을 포기했다. 이 차분했던 비즈니스 신문은 지난달에 점점 증가한 금융 경고를 – 그리고 그에 기여도 한 – 드라마틱한 헤드라인으로, 때로는 첫 페이지의 전체 여섯 개의 칼럼에 걸쳐 묘사했다. 점점 커가는 헤드라인의 크기는 점증하는 위기의 시각적 잣대다. 최초의 튀는 헤드라인은 9월 15일 월요일 리만브러더스가 동요하면서 등장했다. 이후 이 저널은 여덟 번의 첫 페이지에 걸쳐 공포스럽게 대처했다. 가장 최근인 오늘 뉴스에 대한 무시무시한 요약까지 말이다. : 구제금융안 거절당하다, 시장 폭락, 새 스크램블로 문제를 풀라고 강요하다. 이번 달(그리고 유대인의 한 해)이 끝났다. 그러나 신문이 큰 폰트로 호들갑을 떠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원문 보기]

사실 구태여 이 가십을 번역해 소개하는 것은 아래 재밌는 댓글 하나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

MrInBetween 님 말씀하시길

만약 그리고 시장이 하루에 7% 오르게 될 때면 WSJ는 오늘 자와 같은 크기로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으로 난리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예예예예예예예예예-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If and when the market jumps 7 percent in a single day, I expect the WSJ to blow it out with a font just as big as today’s, and with this headline:

YEEEEEEEEEEEEE-HAAAAAAAAAAAAAA!

내 귀에 미디어제국

벌써 쓴지 10개월쯤 된 글 하나에서 일부분을 인용하도록 한다.

그동안 신문, 방송 겸영 사안은 한나라당이 이종매체간의 교차소유를 허용하는 신문법 개정 법안을 제출했는가 하면 조선일보가 신문법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보수세력과 신문사의 지속적이고 주요한 현안과제였다. 이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디딤판이 위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바로 ‘선진국’ 미국의 언론환경의 변화다. [중략]

우리나라에서 신문이 방송을 소유하거나 또는 방송이 신문을 소유하는 것이 조선일보가 말 한대로 “뉴스품질”이 높아지는 좋기만 한 일일까?  신문의 경우를 보면 우리나라 시장은 소위 조중동 3개 사가 전체 시장의 70%를 점하고 있고, 방송의 경우 지상파 방송이 전국 가시청 가구 점유율이 50%를 훨씬 넘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언론환경은 어느 나라 못지않은 독과점 시장이다. 이런 상태에서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를 허용한다면 엄청난 미디어제국이 탄생하는 것이다.[중략]

지상파의 중간광고에는 시청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신랄한 비난을 해대는 한편으로, 신문사의 방송사 소유와 경영에 대해서는 뉴스의 품질을 높이는 시도로 칭송하는 모습이 현재 우리 언론의 상황이다.

그리고 아래는 오늘자 동아일보 기사의 일부분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이날 “한국은 방송시장의 엄격한 소유 겸영 규제로 신규 투자 및 인수합병(M&A)에 의한 성장이 제한돼 왔다”며 “선진국처럼 M&A를 통해 종합 미디어기업이 탄생할 수 있도록 미디어 간 교차 소유 허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시중씨는 이름을 잘 지은 것 같다. 현재 하는 일과 딱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