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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정국이 경제논리로 정당화되는 시대

예전에 보수언론에서 전(前) 대통령의 입방정에 대해서 시도 때도 없이 씹어댔는데 현(現) 미스터 프레지던트께서는 벌써 이 단계를 넘어선 듯이 보인다. 일례로 지방의 한 톨게이트에 하루에 오가는 차량이 220대인데 사무실에 직원까지 근무하는 곳이 있더라는 너무나 구체적인 발언으로 아랫사람들이 그 도로가 어디인지 찾아다니는 해프닝을 얼마 전에 연출한 바 있다. 확인결과 그런 톨게이트는 없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듣보잡 수치를 들이대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런데 또 엊그제 미스터 프레지던트께서 또 하나의 듣보잡 수치를 내놓으셨다. 법과 질서만 잘 지켜도 GDP가 1%는 높아진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물론 비즈니스후렌들리하신 분께서 언급하신 법질서는 천한 것들에 대한 법질서임이 분명하다.

이에 발맞춰 새 법무부 장관께서는 앞으로 각종 집회마다 참가해 폭력을 일삼는 상습 시위꾼을 엄정 처벌하고 불법ㆍ폭력집회와 정치파업 주도자 및 배후조종자의 법질서 파괴 행위는 사태가 종료된 뒤에도 끝까지 책임을 묻는 `무관용 원칙`을 관철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함으로써 GDP를 1% 높일 수 있게 되었다. 이쯤 되면 법무부는 거의 경제부처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국가안보와 사회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던 공권력의 폭력이 이제는 경제학으로 둔갑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 중 하나가 모든 자산이나 가치에 대해 가격을 매기고 증권화시키는 securitization 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경제” 프레지던트께서는 사회갈등까지도 경제수치로 환산하시는 특별한 신공을 보여주셨다는 점이 놀랍다.

그런데 도대체 어떠한 경제 분석 기법으로 법질서 수호가 1%의 GDP로 환원되는지 궁금하다. 쇠파이프와 죽창의 오남용 방지를 통한 전후방 연계효과로 분석하셨는지 시위진압을 위해 휘둘러지는 곤봉의 마모정도에 따른 감가상각을 적용한 것인지 도대체 오리무중이다. 하루 220대 발언(주1) 때 공무원들은 열심히 톨게이트를 찾아다녔지만 이번에는 1% 근거 찾기도 포기하고 그냥 법무장관이 알아서 기는 형국이다. 언론도 아무런 태클도 걸지 않는다. 명색이 경제신문인 언론까지 말이다.

사회갈등에 대한 통합의 과제를 등한시 한 채 백골단 부활로 상징되는 공안정국의 부활까지도 ‘경제논리’로 환원되는 시대가 정말 무섭다. 북괴의 남침야욕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는 변명이 오히려 순진하게 여겨진다. 보나마나 뻔하지만 새 정부의 경제성장률은 당초 공약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제 그때 핑계거리가 하나 생겼다. 불법시위 세력 때문이다.

(주1) 이런 듣보잡 수치에서 또 어떻게 200대도 아니고 220대인지 신기하다

MB의 장관인선은 헌법 파괴?

“헌법에는 총리가 장관을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총리 권한을 침해, 인수위가 장관후보를 인선해 보고하는 것은 헌법을 파괴하는 것”

사실이 이렇다면 현재 국민들을 엄청 열 받게 하고 있는 장관 후보 생쇼는 그 시작부터 잘못 되었다는 이야기인가? 그래서 위 발언자의 말이 맞는지 헌법을 확인해보았다.

제94조 행정각부의 장은 국무위원 중에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에는 정말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 그러니 기왕의 정부들이 관행처럼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을 뽑아놓았던 행위는 – 소위 인수위가 선정하는 그림자 내각? – 위헌이라는 이야기다. 이거 지금이라도 위헌소송을 내야하나? 🙂

아 참고로 위의 발언은 2003년 2월 18일 당시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이 노무현 당선‘자’의 인수위에 대한 비판이다. 문제는 왜 이제는 이런 바른 말을 하는 분들이 없냐는 것이 아닐까 싶다.

스카우트를 보면서 들었던 잡념

임창정 주연의 스카우트를 봤다. 선동렬이라는 실존인물의 스카우트 일화를 다룬 코미디물일거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전혀 – 전혀? 거의 –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치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소설처럼 실존인물과 허구인물이 뒤섞여 광주라는 시대와 장소가 가지는 맥락에서 선동렬이라는 인물과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사건이 기묘하게 만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영화다. 애초에 이런 정보를 모르고 영화를 봤다는 사실은 관객으로서의 내가 불성실하거나 기획사의 마케팅이 잘못 되었거나 둘 중에 하나다.

어쨌든 그렇다고 많이 당혹스럽지는 않았고 그런 대로 재밌게 본 편이다. 그런데 하여튼 80년 광주에 임창정이 우연치 않게 찾아가게 된 계기를 선동렬이 마련해 준 것까지는 이해가 갔으나 그 뒤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가 버린 옛 애인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좀 억지스러운 구석이 있다. 어쨌거나 앞에 말했던 것처럼 나름 재미있게 보았고 임창정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며 서럽게 우는 장면에서는 제법 감동도 먹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등장하는 백일섭을 보면서 나머지는 보는 동안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백일섭은 이 영화의 정치적 입장에 동의하는가? 이덕화와 함께 연예계에서 알려진 이명박 빠이면서 얼마 전에 이회창에 대한 위협적 언사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그인데 과연 그는 이 영화의 정치적 의도를 알고 있었을까?

백일섭이 정치적 의도를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 선동렬의 아버지로 분한 그가 등장하는 부분은 정치와 관련 없는 에피소드일 뿐이었다 – 이런 의문은 영화의 정치적 의도와 배우의 정치적 입장은 꼭 일치하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결국 그 의문은 팀 로빈스나 워렌 비티(주1)처럼 정치적 소신이 제법 뚜렷한 이들은 직접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영화를 만들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배우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꼭 그가 출연하는 영화의 그것에 매치시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결론 맺었다. 어차피 배우는 껍데기다. 위장이다. 살인자로 출연하는 배우가 살인자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주1) 워렌 비티는 의 엑스트라들에게 자본주의의 노동력 착취에 대한 존 리드의 이론을 강의했다. 그들은 강의를 들은 후에 파업에 들어갔다. 믿거나 말거나.

좌우(左右)를 구분하는 백한번째 방법

좌익(또는 좌파)과 우익(또는 우파)을 구분하는 데에는 백가지 방법이 있다. 또는 훨씬 더 많다. 사람 사는 세상이 두부모 자르듯이 명쾌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번 들여다보자.

천차만별 좌우구분

우선 소위 좌파정당이라 자처하는 민주노동당에서의 좌우구도다. 당내에는 소위 ‘평등파’와 ‘자주파’가 있다(또는 있다고 하고 없다는 사람도 있다). ‘평등파’는 좌파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자주파’를 우파라 한다. 그런데 ‘다함께’라는 단체에 소속된 정치적 세력이 있다. 이들은 좌파들이 극좌파라 부른다. 그런데 ‘다함께’에서는 ‘자주파’를 ‘민족주의적 좌파’라고 부른다. 소위 좌파도 또 지향점이 조금씩 틀리다. 이 좌파에는 ‘유럽 취향의 사민주의자’, ‘신좌파적 감성의 사회주의자’, ‘생태사회주의자’, ‘과거 스탈린식 공산주의자’ 등 굉장히 폭넓게 아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로 폭을 넓혀보자. 북한을 ‘좌파 국가’(이런 표현 실제로는 없고 보다 정확하게는 사회주의 국가)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바로 위와 같이 남한의 정치적 지형이 많이 달라진다. 그런데 여하튼 북한을 사회주의 체제로 보기도 하고 수구적인 왕조체제로 보기도 한다. 남한 정치는 또 어떠한가. 어떤 이는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를 적극 수용한 우파 정부로 보고 어떤 이는 가진 자를 핍박(!)한 좌파 정부(주1)로 본다.

정리가 되었는가. 뭐 된 것 하나도 없지. -_-;

이글은 제목에도 썼지만 좌우를 구별하는 101번째 방법이다. 앞서의 100가지 방법을 정리하거나 비난할 생각은 별로 없고 필자가 앞으로 글을 쓰거나 세상을 바라볼 때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한 나만의 기준 정립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선 좌익(左翼, left)의 사전적 의미부터 알아보자.

사회주의적 ·급진주의적 ·공산주의적인 과격한 혁신사상 또는 그러한 경향을 가진 인물이나 단체.

이 용어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프랑스 대혁명 당시, 상대적으로 사회변동에 온건한 지롱드당이 의회의 오른쪽 부분에, 급진적인 자코뱅당이 의회의 왼쪽 부분에 위치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한편 우익은 좌익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좌익(左翼)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 우익은 보수적·민족적·국수적·반동적인 것을 가리킨다

고 정의되어 있다.

우선 좌우익과 좌우파의 구분에 대해서

우선 좌우구분법에 대해 생각해보기 전에 필자는 좌우익/좌우파의 구분법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예전에 어느 신문에선가 좌우익과 좌우파의 구분법에 대한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 개인적으로 그 구분법을 따르려 노력하고 있다. 즉 좌우익은 절대적인 기준이고 좌우파는 상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좌익은 사회주의 사상을 신봉하거나 그러한 경향을 가진 인물이나 단체이고 좌파(左派)는 특정집단 내에서 좀 더 급진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나 분파를 일컫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같은 이치로 우익은 현재 시점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신봉하거나 그러한 경향을 가진 인물이나 단체이고 우파(右派)는 특정집단 내에서 좀 더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나 분파를 일컫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 구분법에 따르면 스스로를 사회주의 정당이라 자처하는 정당이 있다면 그 정당은 좌파정당이라기보다는 좌익정당이다. 한편 그 당 내에서 사회주의로의 도달방법에 대해 변혁적인 방법을 택하느냐 의회주의적인 방법을 택하느냐로 의견이 갈라지면 그것은 ‘당내 좌파’와 ‘당내 우파’가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영어로는 좌익이나 좌파나 다 left-wing 이다. 영어에서는 이런 식의 구분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구분법이 쓸모가 있다고 본다. 특히나 한반도에서 좌우의 구분이 날림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제부터는 좌와 우의 구분에 대해서 생각해보겠다.

좌우의 구분에 대해

지금부터의 의견은 ‘龍川 미리내’님의 “대토목 공사와 한국의 우파”라는 글에 대한 상념이 많이 녹아 있다. ‘龍川 미리내’님은 이 탁월한 글에서 남한의 위정자들이 가지고 있는 천박한 정치철학으로 말미암아 좌우파 개념이 혼돈 내지는 아노미 상태에 빠져 있고 이것이 오늘날 새로 탄생할 정부의 대운하 해프닝에서 절정을 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龍川 미리내’님은 그의 글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IMF 침공으로 인하여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거칠 여지가 없이 노동의 유연화(실제는 해고의 자유 확대)와 같은 가장 우파적인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라고 이야기하셨는데 이 글의 백미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남한사회의 비극은 바로 소위 민주화세력(남한 사회를 당으로 비유한다면 이들은 분명 당내 좌파다. 다만 모두다 좌익은 아니다.)이 독재세력(이들은 당내 우파이자 우익이었다)에 대한 반발이었든지 또는 IMF 침공 탓이었든지 국가의 경제노선을 좌익 또는 좌파적이 아닌 전적으로 시장경제 우선의 우익노선을 취했다는 점이다.

어떠한 점에서 우익인가

앞서 살펴본 한 사전에서는 우익을 “보수적·민족적·국수적·반동적인 것을 가리킨다”라고 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 좀 더 확장해보자면 현대 정치사와 경제사에서 우익은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노선을 지향하고(주2)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인 시장경제’에 대해 맹종 내지는 최소한 친화적인 입장을 견지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정치적 자유주의’는 우익내의 좌우파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물론 자기들 스스로도 종종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혼동하지만 말이다(특히 유시민).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햇볕정책을 펼치면서 민족의 화해를 시도하는 한편으로 노동자를 탄압하고 자유무역협정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지극히 정상적인 우익정부이다. 그런데 이 정부가 또 한나라당과 같은 수구적이고 반동적인 정치집단이 보기에는 ‘좌파’가 되어버린 것이다. 정리하면 지난 10년간의 집권세력은 ‘한나라당이 보기에 좌파적인 우익정부’이다.

박정희는 좌익인가 좌파인가 우익인가 우파인가

‘龍川 미리내’님은 박정희의 경제정책이 분명히 “좌파적”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맞는 말이다. 그의 연차별 경제개발계획, 새마을 운동과 같은 시도들은 분명히 소비에트식 사회주의에 영향 받은 바 크다. 그렇지만 핵심은 그런 한편으로 그가 또는 그의 정권이 인민권력의 가능성이나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철폐에 대해 한 번도 로드맵에 올려놓은 적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것들을 철저히 탄압했다는 점에서(주3) 그는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경제전술을 베낀 변방나라의 변태적 우익’이다.(주4)

한편 이명박 당선자의 대운하 사업을 살펴보자. 이 해프닝은 언뜻 후버댐 등 대규모 토목공사를 국가적으로 추진하였던 루즈벨트의 뉴딜 사업을 연상시킨다. 또한 노동자들을 놀리느니 구덩이라도 팠다가 다시 메우는 것이 국가적으로 이익이 될 거라는 케인즈의 유머도 생각난다.(주5) 분명 그 역시도 시장이 아닌 정부가 주도하는 대규모 사업을 통한 경기부양을 유도한다는 차원에서 변종우익이다. 하지만 그의 정치경제 철학은 사실 박정희 정권보다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그것에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더 헷갈리는 변종우익이다. 하여튼 대운하도 정부 재정이 아닌 민간투자사업으로 한다고 하니 완전히 반시장적이라고도 하기 어렵다.

사실 그의 우익적인 행태는 지금 대운하가 문제가 아니라 금산분리 철폐나 신문-방송 교차 소유 허용과 같은 실질적이고 더 파급력이 큰 시장주의적인 정책에 방점이 놓여 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때로 이명박 측에서 그러한 보다 근본적인 우익적 조치에 대한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해 대운하라는 지극히 ‘허경영’스러운 해프닝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여튼 결국 좌익의 핵심적인 키워드에는 ‘권력의 형태’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에 대한 관점도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도 정리 안 되지만

어쨌든 쭉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요약하자면 좌익과 우익은 그 정치경제적 노선에 따라 어느 정도는 절대적인 가치를 두어 구분할 수 있고 구분하는 편이 편하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해놓으면 사물의 본질이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온다. 소금에 아무리 검은 물을 들이고 쪼개고 쪼개도 ‘짠 맛’이 나지 않으면 소금이 아닌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좌파와 우파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상대적인 가치를 두어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막말로 내 왼쪽에 있는 이는 좌파고 내 오른쪽에 있으면 우파다. 말섞기도 짜증나면 극좌파고 극우파다.

polanara 님의 댓글에서 화두를 얻어 글을 썼으니 polanara님이 댓글을 달아준 그 “너무나 차이나는 프랑스와 한국의 우익”에 대한 언급으로 글을 끝내겠다.

사르코지와 이명박은 분명히 우익이다. 남들이 보기에도 우익이고 스스로도 우익을 자처한다. 하지만 한쪽은 노동자에 대한 더 많은 분배를 주장했고 또 한쪽은 노동자의 자원봉사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둘 다 반(反)시장적인 발언을 했다. 그런데 사르코지는 ‘좌파’적인 발언을 한 것이고 이명박은 ‘극우파’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 같으면 둘을 싸잡아 욕했을 것이다. 반(反)시장주의자라고.

여하튼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우익일 뿐이다. 우익은 우익의 길로 간다. 권력이 인민의 손으로 넘어가지 않는 한에는 가끔씩 재밌는 ‘좌파쇼’나 ‘극우파쇼’를 보여줄 뿐이다.

(주1) 나는 개인적으로 우익언론이 현 정부를 이렇게 부르는 것이 일종의 정치적 선동이고 실제로는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이는 그런 생각은 한국의 우익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주2) 국수적, 반동적이란 표현까지는 포함시키지 않겠다. 그럴 것 같으면 사실 소비에트 붕괴시의 공산당은 우익으로 보아야 한다.

(주3) 박정희 시대에 빈민촌에서 탁아소를 운영한 이를 빨갱이라고 몰아서 잡아간 일도 있다고 한다

(주4) 그리고 실제로 아시아, 아프리카 등 많은 제3세계 국가의 당시 독재자들은 경제노선으로 미국식의 시장자본주의 노선보다는 소련식의 계획경제 노선을 채택했고 효과를 보기도 했다

(주5) 그런 면에서 피라미드를 지은 이집트 왕조는 케인즈 주의 왕조였던가?

너무나 차이나는 프랑스와 한국의 우익

최근 이래저래 스캔들 메이커가 되고 있는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가히 혁명적인(!) 발언을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AFP 통신에 따르면 그는 지난 화요일 주 35시간 근무제를 폐지하겠다는 강경발언- 솔직히 우리 입장에서야 주 40시간 근무라 해도 부러울 판이다. – 에 따른 반발 직후인 수요일에는 기업이윤을 주주배당, 노동자, 투자에 대해 각각 1/3씩 나누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한 국내언론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매일경제는 AFP의 기사내용을 거의 번역한 것이나 진배없는 내용으로 별도의 의견 없이 기사를 게재하였다. 조선일보는 사르코지의 이러한 발언이 주 35시간 근무제 폐지에 따른 좌익과 노동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회유책이라고 논평하였다. 지난번 프랑스 파업당시 강경책으로 일관한 사르코지에 대한 찬양에서부터 최근 그의 연애 스캔들까지 사르코지를 밀착취재하고 있는 동아일보는 굳이 이 기사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의 발언의 진위가 무엇이든 솔직히 부럽다.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사르코지가 우익에 트로이의 목마를 타고 몰래 잠입한 좌익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물론 농담이다) 적어도 노동자에게 이 정도는 베풀어야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감내하자는 발언을 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사르코지로 비견될만한 어느 분이 비슷한 시기에 하신 말씀을 들어보자. 노동을 자원봉사 하듯이 하란다. 이른바 실용 리더십이라고 두 양반이 닮았다는 보도도 있던데 참 한숨 나온다.

어쨌든 그의 발언은 엄밀하게 말해 뭐 좌익적인 발언도 아니고 분배에 중점을 두겠다는 발언도 아니다. 그것은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가 곧 노동자이고 이들의 가처분소득이 늘어나지 않으면 경기진작은 있을 수 없다는 자본주의 경제의 평범한 진리를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회주의 블록 붕괴 이후의 자비심을 잃은 주주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유연성 증가에 따른 노동자 임금손실분을 카드론이나 모기지론과 같은 미래소득에 대한 저당으로 해소하려 하였고 그 부작용이 지금 서브프라임에서 터지고 있는 것이다.

다음의 글들은 사르코지의 해당 발언에 관한 AFP 기사의 전문번역이다. 원문은 여기를 클릭하실 것.

Sarkozy proposes companies pay a third of profits to employees
사르코지가 기업에게 이윤의 3분의 1일 종업원에게 줄 것을 제안하다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스 사르코지가 수요일 기업이윤의 1/3은 주주와 투자분으로 남겨놓은 양과 같은 양만큼 종업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그는 의회에서 “기업이윤의 1/3이 각각 주주, 종업원, 그리고 투자에 쓰이는 체제는 일관되고 논리적인 체제입니다.” 라고 발언하였다.

그는 “그게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를 분명히 말하고 무엇보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 역자주)를 말해야 할 겁니다.” 라고 덧붙였다.

중도우익 정부를 감독하는 사르코지는 프랑스의 관습과 경제를 개혁하여 성장과 삶의 수준을 촉진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당선되었다.

이미 지난해 초 대통령 캠페인 당시부터 뜨거운 이슈였던 구매력에 관한 대중적 관심은 여전히 여론조사에서 투표자들의 최우선 관심사이다.

사르코지는 그의 급진적인 제안이 구매력을 촉진시키는데 일조할 것이고, 이와 더불어 그가 이행하고자 하는 노동시간 연장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윤분배가 구매력과 상관없다는 발언, (또는) 임금분배를 위해 내가 제안했던 것만큼이나 근본적인 혁명(적 조치 : 역자주)이 구매력과 상관이 없다는 발언은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다.”라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나는 소비력에 관한 이 문제를 (종업원)의 참여와 이윤분배에 대한 일종의 혁명으로 제안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그가 화요일에 금년에 결론내고 싶다고 말한 주당 35시간 노동이라는 뜨거운 이슈로 돌아가 대통령은 이것이 분명히 소비력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분명히 주 35시간 노동은 소비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결과적으로) 임금인상에 급브레이크가 걸렸기 때문입니다.”

주 35시간 노동을 끝내자는 사르코지의 화요일의 발언은 좌익으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샀고 우익으로부터는 찬사를 받았다.

이 이슈는 어떻게 프랑스 경제와 후한 사회복지 체제를 개혁할 것인가에 대한 이견들의 피뢰침으로 제기되었다.

노동자의 노동은 자원봉사가 아니다

흔히 성장과 분배 중 어느 가치에 비중을 두느냐가 정치적, 경제적 포지션에서 이른바 ‘우파’냐 ‘좌파’냐를 나누는 기준이라고들 말한다. 실제로 전후 현대 정치의 역사는 이러한 성장 위주의 정책과 분배 위주의 정책이 그 집권주체에 따라 번갈아가면서 시행된 것인 양 – 실제로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었는지는 좀 더 생각해볼 일이지만 – 보이는 측면이 많다.

일단 ‘선(先)성장론’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 논리의 주창자들은 우선 파이를 키워야만 나눠먹을 떡이 생기고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선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가 골고루 나눠 갖는 것은 나중 일이라는 주장을 내세운다. 사실 그리 틀린 말도 아니긴 하다. 문제는 나중에 골고루 나눠주는 것에 대한 확신 일게다.

솔직히 이러한 논리가 적어도 이 땅에서는 상당히 먹혀들어간 것이 사실이다. 해방 이후 자원빈국에 자본빈국이었던 나라가 짧은 시간에 고도성장을 하게 된 계기는 노동자들의 임금수탈에 가까운 저임금 고착화를 통한 수출경쟁력 확보였다. 그 성장이 비록 노동집약적이고 종속적인 발전이었으나, 결과론적으로 오늘날 세계 11위의 무역규모를 가진 나라가 되었고 국민들의 생활수준도 전체적으로 향상되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조되어야 할 것은 남한경제의 국제경쟁력 확보의 결정적 요소는 바로 저임금이었기에 – 즉 파이가 커져도 금새 나눌 수 없는 구조였기에 – 상당히 오랜 기간 임금상승은 억압받아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1982년 각국의 임금차이를 보면 한국에 비해 각각 미국 7.3배, 일본 5.3배였고, 심지어 비슷한 경제수준의 국가인 대만 1.2배, 싱가포르 2.4배였다. 아직도 파이는 가진 자의 몫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가진 자들이 파이를 나누어주기 시작했을까? 대표적인 시기는 바로 1987년 정치적 자유화가 전개되고 이에 따라 노동조합 운동이 활성화되었던 시기였다. 1989년을 예로 들면 노동생산성은 7.2% 상승하였고 명목임금은 25%이상 상승하였다. 파이 나누기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일종의 계급투쟁의 산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세월은 흘러 이제 세기가 바뀐 2008년. 선거의 화두는 ‘경제’였다고들 이야기하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경제대통령이라고 자처하던 분이 당선자가 되었다. 승리의 원인도 많은 이들이 – 물론 주로 우익 언론들이 – 경제를 살려달라는 유권자의 주문이라고들 한다. 작년 경제성장률 예측치가 4.8%임에도 경제가 죽었다고 외치는 것이 어폐가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경제성장률과 괴리감이 큰 유권자들의 체감지수 탓일 것이다.

요컨대 실제로는 여전히 파이가 커지고 있는데 실감을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 원인은 다양한데서 찾을 수 있겠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대형소매업체의 시장지배에 따른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붕괴,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90년대 이후 증가한 노동유연화에 따른 고용불안과 실질임금하락 등이 있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자주 들어왔던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인 것이다.

일본은행(BOJ) 부총재가 최근 “기업 수익 증가가 임금 인상과 소비를 촉진하는 선순환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일본경제에 비관적인 발언을 했다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월 7일 보도에서 그 원인을 시간제 근로자나 임시직 등 비정규직의 증가로 인한 내수부진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일본의 비정규직 비중은 3분의 1 이상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실질적으로 비정규직 비중이 전체 노동력의 절반을 진작 넘어섰다.

다시 정치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명박 당선자는 그 어느 역대 대통령보다도 성장론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을 7%라는 가공할 수치로 상정하였다. 현대판 바벨탑이 될지도 모르는 대운하를 파헤쳐서라도 달성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 같다. 유권자들은 어쩌면 – 아마도 – 이러한 도전정신(?)에서 박정희의 환영이 보였는지 그에게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파이가 커지면 자신에게도 돌아올 파이 조각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여태 팔 아프게 여기 썼지만 문제는 그 기대감의 달성가능성은 무척 낮다는 것이다. 먼저 성장하고 나중에 나눠줄 때 나눠주는 주체는 먼저 성장의 열매를 향유한 이들이고 그 열매를 공유하고자 하는 이들은 한판 싸움을 벌여야 함을 이미 앞서 예로 든 민주노조 운동 등 계급투쟁의 역사가 증명해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유권자들은 그런 일들이야 다 알지만 그래도 당선가능성이 높은 이명박 당선자에게 선처를 호소한 것인가?

어제 보도에 따르면 이 당선자는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 신년인사회에서 태안반도의 자원봉사자들처럼 노동자들이 자원봉사 하는 기분으로 자세를 바꾼다면 기업이 성장하는 데 뭐가 어렵겠냐는 말씀을 하셨다 한다. 도저히 파이를 나눠먹자고 선처를 호소할 분위기가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뭐로 보고 하시는 말씀인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기업의 성장을 위한 자원봉사용이 되었단 말인가. 이는 일종의 듣도 보도 못한 역(逆)분배론이다.(주1)

이어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원가가 절감되고 기업이 얻는 이익도 확대되고, 세금도 많이 내려가고, 이런 선순환의 기틀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자신만의 선순환론을 주창하였는데 재밌는 것이 위의 일본은행 부총재의 선순환론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원칙적인 임금인상과 그에 따른 소비촉진은 빠져 있고 기업이익 확대와 세금감소가 언급되어 있다.(주2) 즉 이 당선자는 이 발언을 통해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는 자원봉사자로 경제의 선순환 고리에서 아예 삭제시켜버린 셈이다.

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시장친화적인 정치지도자 정도의 정상적인 스탠스를 취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대운하 등에서 보이는 ‘묻지마 개발’ 방식이 그렇거니와 어제의 ‘자원봉사형 노동자’상은 그의 통치방식이 시장경제와 별로 상관없는 그저 친재벌적인 방식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모습들이다.

 

(주1) 이와는 너무나도 대비되게 최근 프랑스의 우익 대통령 사르코지는 자본가들을 경악케 할 만한 제안을 했다 한다. 바로 기업이 번 이윤을 ‘주주 : 노동자 : 재투자 = 1:1:1’ 식으로 나누자는 것이라 한다. 같은 우익인데 어쩌면 이렇게 다르단 말인가!!

(주2) 근데 생산성이 향상되거나 기업이익이 확대되면 왜 세금이 내려가는지 잘 모르겠다. 기업이익이 확대되면 세금감면 조치가 자동적으로 취해진다는 이야기인가.

대운하, 모든 절차 밟아 1년 안에 착공한다니

연합뉴스 기사를 보니(원 기사 보기) 이명박 당선자가 “대운하는 모든 절차를 밟아 추진하겠다”고 이경숙 인수위원장에게 말했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이제사 뭔가 좀 제대로 되가나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재밌다. “국내 민간 투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 착공까지는 취임 후 1년이 걸린다고 확실히 (이 당선인(주1)이)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모든 절차를 밟아 5개월 안에 애를 낳겠다.”
“모든 절차를 밟아 열다섯 살이 되기 전에 성인이 되겠다.”

뭐 이런 멘트랑 비슷한 수준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추진기간의 무리함에 대해 이야기했고 다른 매체에서도 같은 소리를 냈지만 민간투자사업을 추진하려면 필요한 각종 절차, 즉 사전타당성 검토(VFM;Value For Money), 기본계획 수립, 각종 영향평가, 민간사업자 선정을 위한 사전절차 및 협상, 자금조달이 각각의 절차에만도 몇 개월 길게는 1년이 넘게 걸리는 일이다. 그러니 어림잡아도 3~4년은 걸려야 정상이다.

그런데 당선자는 그런 사업을 “모든 절차를 밟아 1년이 걸린다”라고 이야기하신 것이다.

기사는 그런 한편으로 이 당선자가 이천 화재사고에 대해 언급한 내용도 보도했다. 이 당선자는 “소방안전 시설이 준공되기도 전에 검사가 끝났다는 보도를 보면서 현장에 안 가보고도 어떻게 준공했느냐는 생각이 든다”면서 “원인을 처음부터 제공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대비와 새로운 각오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비와 각오는 대운하에도 그대로 적용해야 옳은 일이다. 냉동창고 하나 짓는데도 안전시설이 준공이 되어야 검사가 끝났다고 할 판에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대운하를 만드는 마당에 모든 안전여부, 환경영향 여부, 자금조달 가능성 여부, 향후 국민부담의 정도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꼼꼼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절차가 1년이 소요된다면 … 그것은 돌관 공사도 이만저만한 무식한 돌관 공사가 아니다.

 

(주1) 어느 블로그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당선인이라는 표현은 틀렸고 당선자가 맞다고 본다. 필자도 얼마 전에 모든 매체가 당선인이라고 하기에 무심코 당선인이라고 했다가 다시 고쳤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계속(물론 초지일관은 아니지만) 당선자라는 표현을 쓰는 매체가 있다. 바로 조선일보다.

건교부의 대운하 말 뒤집기 관전기 2탄

건교부가 대운하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건교부는 경제성에 대한 타당성 분석을 언급하면서 수자원공사 등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물동량을 고려한 비용대비편익(B/C)을 산출한 값이 0.16밖에 안돼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나왔지만 관광수입, 지역산업파급효과 등까지 고려하면 상향 조정될 것이라는 입장을 개진할 것으로 전해졌다. (매일경제, 건교부 “대운하특별법 상반기 추진필요”, 2008년 1월 6일)

B/C에 대해 알아보자. B는 ‘편익(Benefit)’을, C는 ‘비용(Cost)’을 의미한다. 그래서 B/C라 함은 ‘편익나누기 비용’으로 이 수치가 1보다 크면 타당성이 있다고 보는 간단한 분석기법이다. 결국 대운하의 비용이 20조 원이라 가정하였으니 건교부 추정에 따르면 편익은 3조2천억 원인 셈이다. 이런 형편없는 사업을 추진하라고 건교부가 건넨 충고는 나머지 16조8억 원을 관광과 지역산업 부양 등의 효과로 땜빵하라는 것이다.(주1)

여하튼 이 부분에서 애매한 것이 바로 편익 부분이다. 단순히 경제적 편익이라 하면 계산하기가 편하다. 그것은 오직 운하 운영관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수입, 예를 들면 운영회사(민간 또는 정부)가 벌어들이는 통행료 및 기타 부대 수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적 편익이라면 좀 더 복잡해진다. 앞서 언급한 기대수익뿐만 아니라 운하건설과 유지로부터 파생되었다고 여겨지는 모든 부대수입(관광, 지역산업 등)과 물류비용 절감에 대한 기회비용, 기타 화폐가치로 계상되지 않는 각종 편익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경제적 타당성으로 분석하면 매우 간단하고 계산이 그나마 나름대로 객관적인데 비해 사회적 효용성을 위주로 한 타당성 분석이라면 계산이 매우 복잡하고 주관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운하주변 어느 관광지에 손님이 붐비거나 도시의 고용이 늘었는데 그 중 몇 퍼센트가 운하 효과라고 명확히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분석자의 주관이 더욱 많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건교부가 B/C 비율 0.16짜리 사업도 상향 조정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치는 것이다.

인수위는 경제성 분석과 관련, “대운하는 민간투자업체가 주축이 돼 추진하는 BTO(Built Transfer Operate) 방식으로 추진하기 때문에 민간에서 경제성 분석을 하는 것이 맞다”며 “경제성 분석을 5대 건설업체가 컨소시엄으로 할지, 다른 업체와 묶어서 할지는 전적으로 민간이 스스로 결정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건교부 “대운하특별법 상반기 추진필요”, 2008년 1월 6일)

따옴표 친 인용부분은 맞는 이야기다. 경제성 분석은 민간이 한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그것은 편익을 단순히 대차대조표 상의 이익, 민간이 벌어들일 통행료 및 기타 부대수입만을 고려한 것이다. 사회적인 전후방 연계효과는 고려하지 않는다.

다만 앞서의 인용문과 연계하여 지적할 부분은 민간이 경제적 분석을 하게 되면 각종 비용과 편익의 시간가치까지 고려한다. 돈의 가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절하되기 마련이므로 이를 할인율로 할인하여 계산하는 기법이다. B/C 분석은 통상 이러한 시간가치를 반영하지 않는다. 즉 같은 1,000원이어도 B/C분석에서는 1년이 가도 1,000원이지만 민간이 사용하는 NPV기법으로 하면 1년 후에는 5% 할인율 기준으로 대략 952원이 된다.(주2) B/C 비율 0.16짜리 사업을 NPV분석으로 계산할 경우 더욱 형편없는 수치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둘째로 ‘경제적 분석’은 민간이 하는 것이 맞지만 그럼에도 정부 측에서의 ‘사회적 편익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행 민간투자사업을 비롯한 모든 공공사업이 다 그렇게 하고 있다. 이른바 ‘예비 타당성 분석’이나 ‘Value For Money’라는 어려운 용어의 분석도 있다. 이 작업이 선행되어 그 타당성결과를 민간의 사업계획과 비교하여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다. 이를 인수위가 모르고 저 이야기를 했으면 무식한 것이고 알고도 저 이야기를 했으면 국민을 속인 것이다.

그리고 한마디 더하자면 지금 아는지 모르는지 다들 그렇게 떠들고 있는데 5대 건설사 운운하면서 그들을 마치 이 사업의 추진주체로 당연시하는 발언들은 엄밀하게 보자면 모두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발언들이다. 친시장 정부의 첫 작품이 이렇게 반시장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은 참 역사의 코미디다.

 

(주1) 대운하 하나 덕분에 그 주변이 관광, 지역산업으로 16조 원 이상의 편익을 누리려면 그야말로 나라를 몽땅 뒤집어 엎는 난리를 피워야 할 것 같다.

(주2) 계산방법은 “NPV=미래가치/(1+할인율)^해당년도” 다. 이 방식으로 계산하면 1000/(1+5%)=952 가 산출된다.

인수위를 보면서 민영화의 본뜻을 곱씹어본다

적어도 인수위 내에서는 금산분리 완화 조치가 당연시되고 있는 분위기다. 언론은 금감위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자신들의 몇 개월 전의 강경한 금산분리 철폐 반대 입장에서 선회하여 금산분리 완화에 찬성하였다는 보도를 흘렸다.(주1) 경제신문은 금산분리 완화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철폐”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그것이 가지는 함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인수위 측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금산분리 철폐의 궁극적인 대상은 우리금융지주회사이고 이를 노리는 자는 삼성이라는 것이 통설인데 삼성에 대한 저잣거리의 눈길은 얼어붙을 듯이 싸늘하다.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허가하면 싱가폴의 테마섹과 같은 외국의 산업자본들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는 비판도 있다.

그래서 인수위는 현재까지는 지난번 이명박 당선자가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이야기했던 부분을 되풀이하고 있다. 즉 대기업의 참여에 대해서는 일정정도 불이익을 줄 것이고 그 대신 중소기업의 컨소시엄이나 연기금의 참여를 고려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제개혁연대는 성명을 통해 이러한 주장이 근거가 박약하다고 비판하고 있다(관련기사).

우리금융지주회사와 같은 큰 물고기의 경우 중소기업 컨소시엄으로도 펀딩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고 국민연금 등이 참여할 것 같으면 적극적인 주주행사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 정부는 ‘중소기업 컨소시엄’론으로 일부 지방은행을 떡밥으로 던져주고 궁극에 우리금융지주회사, 더 나아가 산업은행 등을 거대 산업자본의 사냥감으로 던져줄 개연성도 있다는 점에서 경제개혁연대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다소 애매한 점이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의 은행소유 론인데 현재 이들 연기금을 산업자본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의아한 점은 왜 연기금, 대표적으로 국민연금은 때만 되면 다 자기들 주머니인양 여기 투자한다 저기 투자한다 하는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형식상으로는 국민연금이 자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하는 대외선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으로부터 이 돈이 자유롭지 못하고 정치권이 정책집행수단으로 이 돈을 탐내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박근혜 씨로부터 ‘연기금사회주의’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주식투자비중과 BTL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높이려 했다. 대외적인 변명거리는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 제고였지만 속셈은 주식시장과 경기부양이었다.(주2)

새 정부가 과연 금산분리를 완화한 후 정말 국민연금이 은행을 소유하게끔 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어설픈 점쟁이 노릇으로 굳이 예측해보자면 중소기업 활용론과 국민연금 활용론을 들먹이다가 앞서 경제개혁연대나 박근혜 씨가 주장하고 있는 논리에 물타기를 하며 거대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정당화해버릴 수도 있다.

여하간 새 정부의 입장은 현재로서는 참여정부와는 약간 다른 입장에서 국민연금을 바라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의료보험 등과 싸잡아 공적부조에 대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벌써 인수위는 참여정부가 작년에 추진키로 한 실손형 민영의보 폐지정책을 무효화시킬 것을 공언하였다(관련기사). 해당 조치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 보험업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각종 공적연금도 마찬가지 노선을 걸을 가능성도 있다. 즉 공적연금의 폐지와 민간연금의 전면 확대가 그것이다.(주3) 때마침 기금운용 등 공적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도 극에 달해 있다. 게다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공적연금과 의료보험이 현재와 같은 추세로는 멀지 않은 시기에 재원이 고갈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관련기사). 그렇다면 시장친화적인 새 정부의 선택은? “골치 아프게 우리가 갖고 있지 말고 민영화시켜버리지!”

금산분리도 넓게 보면 민영화고 의료보험, 우정사업도 민영화하겠다고 한다.(주4) 이러한 민영화 쓰나미(아직 이 표현 쓰기는 좀 그런가?)의 논리는 제법 설득력이 있다. 관료주의, 정부의 비효율, 재원고갈 등 각종문제점을 좌파적인 反시장 정책의 결과로 비판하고 시장기능 활성화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논리일 것이다. 이는 상당부분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상당부분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영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엄밀히 지금 민영화에서 ‘민(民)’이라는, 즉 백성이라는 주체가 개입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사실 백성은 소위 ‘공공(公共)’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는 공공에 대한 영단어 public이 바로 라틴어(語)의 푸블리쿠스(publicus:인민)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공공이라 함은 그것이 정부의 형태를 취함에 있어 인민이 권력을 신탁한 것이라 보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이렇게 보면 ‘공’과 ‘민’은 사실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정시기를 거치며 공공 또는 국가소유의 재산을 기업에 불하하는 것이 ‘민영화’라는 인식과 거의 동일시되었는데 이는 실질적인 ‘민’이라 할 수 있는 대의체가 너무 미약한 탓이다. 결국 일부 시민사회가 일부 기능을 수행하기는 하였으나 절대다수의 정부기능의 민영화는 곧 기업으로의 민영화, 엄밀하게는 사유화(私有化)를 의미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재미있는(?) 말장난인데 민영화의 어원인 privatization 은 사실 앞서 표현인 사유화로 함이 맞다. 그러니까 사적인 주체가 소유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영화하면 민간이 운영을 한다는 운영의 개념으로 대체된다. 표현이 급격하게(!) 순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결국 지금 사회여론은 어떤 이유에서건 민영화(사유화 whatever)에 대해 그리 적대적이지 않다. 문제는 그 공적기능을 떠안을 주체가 백성 중에서는 가장 강한 기업이라는 백성밖에 없다는 점이다. 은행이든 연금이든 의료보험이든 우리나라와 같은 가당찮은 시민사회서 뿐만 아니라 제법 헛기침 좀 한다는 서구사회에서조차 기업에 비해서는 절대적인 열세다.

그래서 제시되는 것이 연기금의 사회적 책임투자(주5), 자본과의 사회협약,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등의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을 정치적 세력이 유의미하게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 현재 시점에서의 우리나라의 정치적 지형도는 암담하다. 보수 세력이 국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그나마 진보정당이라고 자처하는 세력이 지리멸렬이다. 인민은 스스로가 공적연금, 은행, 기타 여하한의 생산수단의 운영주체임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이들에게 권력을 신탁하여 버렸다.

 

(주1) 다른 보도에서 금감원은 이를 부인하였다.

(주2) 요즘은 사모펀드와 해외자원개발펀드에까지 투자하고 있다. 투자다변화는 좋은데 이런 위험도 높은 사업에 투자할 능력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주3) 이렇게 공적연금을 아예 폐지한 대표적인 사례로 칠레가 있고 서구언론에서 연금개혁의 성공사례로 칭송받고 있다.

(주4) 기타 통신 등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수위조절을 하겠다고 한다.

(주5) 연기금 자체가 민영화의 공격대상이라는 점에서 약간 도돌이표 식인데 결국 연기금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보면 실질적인 ‘민영화(own by public)’이라는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현존재니까

한반도대운하, 빚잔치 자신있으면 추진해라

한반도대운하의 추진속도가 예상외로 빨라지고 있다.

장석효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위 한반도대운하 TF팀장은 건설사 사장들이 대운하 사업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이명박 당선자 핵심 측근은 또 “두바이 소재 펀드가 한반도대운하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며 “대통령 취임식 직후에 MOU(주1)를 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인수위는 2월 초 공청회를 열고 네덜란드 운하 기술진이 다음 달 입국해 기술적인 부분을 조언할 것이라 한다. 각종 실무도 발 빠르게 진행되어 당분간은 추진이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한 전문가들을 민망하게 만들고 있다. 역시 불도저 추진력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상황이다. 어떤 이는 총선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진위야 알 수 없다. 하여튼 의지표명이 상상외로 강하다.

지난 번 짧은 글에서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대운하의 추진가능여부는 자금조달에 달려 있다. 적게 잡아도 인수위 주장의 20조원 정도로 예상되는 사업비를 국고로 댄다는 것은 나라 곳간을 거덜 내겠다는 발상이고 이를 잘 아는 이명박 당선인 측은 경부대운하의 15조원의 자금조달은 민간투자사업을 통해 조달하겠다고 말한바 있다. 바로 그 이유로 5대 건설사, 두바이 펀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단편적인 정보를 통해 한반도대운하의 사업타당성 여부를 검토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나 일단 그 재무적인 타당성 여부를 간단하게나마 가늠해보도록 하겠다.(주2)

재무적 타당성의 기본은 투입과 산출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다. 투입은 건설비용을 비롯한 각종 부대비용이 될 것이다. 산출은 대운하를 통해 얻어지는 통행료 수입, 골재판매, 기타 관광 등 부대사업 등 경제적 이득이다.(주3) 투입에 대해서는 아직도 말이 많으나 그래도 어느 정도 오차가 적게 예측이 가능하다. 문제는 산출이다.

대운하는 국내에서 유례가 없는 사업이다. 외국에서도 내륙운하에 대한 사례가 많지 않을 것이다. 국내에 적용도 어려울 것이다. 한마디로 수요분석에 대해서는 시계제로인 사업이다. 도로사업의 경우에도 예측 교통량과 실제 교통량의 편차가 40~50%가 나는 바람에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 상황인데 운하는 어떻겠는가.(주4)

투입은 예측할 수 있는데 산출을 예측할 수 없으면 투자는 이루어질 수 없다. 민간투자사업의 자금조달 방식인 프로젝트파이낸싱의 전제조건이 재무타당성 분석이기 때문이다. 산출예측이 불가능하면 자금조달도 없다. 기업의 돈은 “신정부에 대한 자선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수위는 그래도 대운하를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해관계가 그렇다면 방법은 있다. 바로 수요에 상관없이 투자를 보장해주는 방식을 채택하면 된다.

“관건은 과연 경부운하가 그만한 수익이 날 것이냐는 점. 건설사들은 선박 통행료나 정박료 등을 받아 투입공사비를 회수하게 될 텐데, 건설사들은 이 부분을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사업비 규모가 얼마든 수익성을 보장해줘야 민자사업이 진척될 수 있을 것”이라며 “만약 수익확보가 되지 않으면 정부가 예산을 받아 공사비손실을 보전해줘야 하는 부담까지 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대운하 본격 시동] 건설업계 “구미는 당기는데…”, 2008년 1월 1일, 한국일보)

이를 전문용어로 “정액구매보증계약(take-or-pay contracts)”이라고 한다. 현재 민자 발전소 사업, BTL 사업, 과거의 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에서의 운영수입보장이 이에 가깝다. 운영수입보장은 폐지되었다. 민간사업자가 수요위험을 책임지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국내건설사와 두바이 펀드가 수요위험을 못 지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업은 추진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고 싶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투자를 보장해주면 된다.

통상 민간투자사업의 사업운영기간은 20년의 장기이고 이 기간 동안 민간의 회수분은 초기투자에 수익률과 물가상승률을 감안하여 계산할 때 대략 4~5배 된다. 20조원이 최종투자비라 가정할 때 80~100조 원을 국가가 지불하여야 된다는 이야기다. 이를 운영기간으로 나누면 매년 4~5조 원의 돈이다. 적은 돈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명박 당선인은 민간투자사업 추진을 재고할 수도 있지 않은가. 또는 대운하 자체를 재고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만 그대로 밀고 갈 동인도 있다. 자신의 임기 안에 민간에게 그 돈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은 임기 안에 공사 진행상황이나 보고 있고 이에 따른 경기부양효과를 누리면 되는 것이고 뒤치다꺼리는 차기정부의 몫이다.

이것이 대충의 예측 시나리오다. 이보다 더 암울한 시나리오를 쓴다면 두바이 펀드 등 해외 투자펀드들이 더 높은 (확정) 수익률을 요구하는 경우다. 그렇게 되면 국가채무(주5) 는 곱절로 뛸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 한국은 신용도가 그저 그런 제3세계일뿐이다. 아부다비 국부펀드가 세계 최대의 금융회사 씨티그룹에 투자할 때조차도 확정수익률이 10%를 넘었다.(주6) 그러면 우리는 그보다 낮은 수익률로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대가 챔피언이다.

(주1) MOU는 “양해각서 [memorandum of understanding, mou]”의 약자로 통상 지방/중앙정부와 투자자간의 향후 사업추진에 대한 개략적이고 느슨한 사업추진방안을 규정하는 문서로 아무런 법적근거는 없다. 보통 사업추진을 대내외에 선전하기 위해 요식행위로 추진한다.

(주2) 기술적 타당성과 환경에의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능력 밖이므로(!)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 만화를 http://blog.naver.com/etacarina85/130021721758 에서 보시도록…

(주3) 사회적 효용은 민간투자사업 타당성 분석에서 민간 측의 고려요소가 아니다.

(주4) 그래서 현재 신공항 고속도로도 주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비싼 통행료를 책정하였고, 별도로 국고지원까지 받고 있다.

(주5) 사실 현재 민간투자사업을 위해 국가가 지불하는 돈은 채무로 계상되지는 않는다. 일종의 말장난인데 사실이 그렇다.

(주6) 지금 우리나라 민간투자사업의 Take-or-pay 방식 사업의 통상수익률이 6% 초반 언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