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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성장, 실천가능한 정책으로 제도화해야”

이 대통령은 이어 “주택을 건설하는 업자들이 집에서 외출할 때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전원이 전체 차단될 수 있도록 하는 설비를 해 놓고 나서 에너지를 절약하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맞는 것 아닌가”라며 “국민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당위성만 얘기하지 말고 실천 가능한 정책을 만들어서 국민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李 “녹색성장, 실천가능한 정책으로 제도화해야”]

MB께서 연말에 또 웃음을 주시는데.. 가카 두꺼비집이라는 것이 있사옵니다. 그리고 전원 차단하고 나가실 분들 주의사항 하나. 냉장고를 위한 자체 발전설비 갖추시길.

연기금의 주주행동주의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KB금융지주는 최근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회장 내정 과정에서 사외이사들만으로 회장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사외이사들의 집단 권력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중략]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의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한 적은 없다. 국민연금은 KB금융지주 지분 5.49%(9월2일 기준)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추천 인사들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사외이사에 선임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파견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국민연금 “KB금융 사외이사 추천하겠다”]

속 보이는 해프닝으로 끝난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건과 연계하여 흥미로운 일이 하나 진행되고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이 국민연금이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민연금은 지분 5% 이상을 가진 국내 상장사가 140여개에 달하지만 내가 아는 한은 사외이사 추천 등의 적극적인 의사결정 개입은 매우 드문 일이다. 다른 보도를 보면 이러한 국민연금의 행동이 일회성에 그칠 것 같지는 않다.

국민연금공단은 18일 제12차 이사회에서 내놓은 ‘2010년도 사업운영계획보고’에서 내년 국민연금이 주요주주로 있는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이날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국민연금이 주요주주인 기업에 대해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겠다”고 전했다.[국민연금 “내년 투자기업 의결권 행사 강화”]

즉, 국민연금이 이전의 소극적으로 행사해오던 주주권을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의지인데, 이는 사회책임투자나 주주행동주의를 주장하는 서구의 행동주의자들의 의견과 비슷하다. 기업윤리운동 등을 주도하는 시민단체들의 의견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사회책임투자 주창자들은 결국 적극적인 투자행태, 그 중에서도 주주로서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는 행위가 투자수익의 향상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를 경험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한편 연기금 중 주주행동주의로 유명한 곳은 세계최대의 연금펀드라 할 수 있는 캘퍼스다.

이러한 기업지배구조는 일반적으로 주주행동주의라는 미국 전통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은 1980년대 후반 이래 가장 큰 기관투자가로 군림해온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에 의해 강제적으로 미국 내에 생겨났다. 이 연금은 캘퍼스(Calpers)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주주행동주의를 이끈 선구자 중 하나다.[사회책임투자 세계적 혁명, 러셀 스팍스 지음, 넷임팩트 코리아 옮김, 홍성사, 2007년, p252]

결국 국민연금이 국민은행에 사외이사를 추천한다는 계획과 ‘2010년도 사업운영계획보고’의 내용은 이들이 캘퍼스가 추진해오던 주주행동주의 노선을 다져나가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개입주의적 노선이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당연한 노선으로 하여야 하는 이른바 우파 정부 하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과거 정권에서 민주당도 지적하였듯이 연기금의 주식 투자를 ‘경기 부양용 도박자금’, ‘연기금 사회주의’라고 비판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일면 모순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미 시작부터 대운하 건설, 금융시장에 대한 적극적 개입, 노동운동에 대한 적극적 개입 등을 통해 국가개입주의적 노선을 분명히 해왔다. 이전의 두 정부가 신자유주의 노선에 연성의 개입주의를 구가하였다면 이 정부는 과거 정부가 박아놓은 못 – 이를테면 좌파적 정책? – 을 빼야한다는 강박관념이 금융위기 상황과 맞물려 그 개입주의의 정도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남한의 우익들은 개입주의적 모델을 당연시 했던 박정희식 모델의 전력도 있거니와 ‘연기금 사회주의’를 부르짖은 것도 박근혜였지(주1) 이명박은 아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의 이번 주주권 강화 계획을 이명박 정부의 어떤 흑심이 있는 음모로 간주하고 반대하여야 할까? 엄밀하게 ‘주주권 강화’ 자체만 놓고 보자면 나는 그것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주주권의 행사는 당연한 권리인데, 국가의 의사결정능력은 시장의 그것보다 열등하다는 선입견으로 말미암아 국가 혹은 국가에 준하는 기관의 투자는 당연히 의사결정을 나머지 주주에게 일임한다는 식으로 간주하였던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도 혹은 노선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지만 그것을 운용함에 있어 결국 국민연금 혹은 그 의사결정 위임자가 주주권을 어떠한 목적으로 행사하느냐가 중요한 가치편향적인 시각을 제공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번 2010년 사업운영계획 보고에서는 주주권 행사의 목적이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라고 밝혔다. 문구상으로만 보자면 그것은 캘퍼스의 주주권 행사 목적과 유사하다. 특히 ‘장기적 가치’를 높이겠다는 것을 문구 그대로 받아들이면 단기적 이익에 주력하는 주주자본주의의 맹점도 보완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다만 위 인용기사의 다른 부분을 보면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기사에 따르면 “기금운용본부장의 하부조직으로 있던 준법감시인을 이사장 직속으로 확대·개편해 내부통제기능을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솔직히 나는 이것이 내부통제기능을 강화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얼핏 이사장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사회간접자본(SOC)과 민영화 기업 등 대체투자 분야로 투자를 넓힐 방침”도 수자원공사의 4대강 투자와 맞물려 괜히 찝찝해지는 대목이다. 과연 국민연금은 정부의 4대강 투자요청을 뿌리칠 자신이 있을까?

예전에 민주노동당 시절 심상정씨의 한 팸플릿에도 국민연금을 활용한 기업사회화의 시나리오를 제시한 적이 있다. 이를 사회주의적 본원적 축적이라고 여긴다면 그리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닌 만큼, 연기금은 좌우익 모두에게 명분 있는 주요 투자재원으로 여길 건더기가 많다. 문제는 어느 진영이든지 그것을 주주(즉 연금가입자)의 투자이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자신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투자사업에 활용하고픈 유혹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연기금을 통한 주식시장 부양은 박근혜씨가 표현한바 ‘연기금 사회주의’가 아니고 그저 ‘연기금 오용(誤用)’일 뿐이다.

(주1) 그렇다면 박근혜씨는 아버지가 사회주의자였음을 인정하는 것일까?

3단 논법

1.
“지구상에서 이런 식으로 파업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에요. 지금 일자리가 없어서 길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일자리가 보장된 사람들이 이 어려울 때, 경제가 어렵고 더욱이 연말에 말이지….” [이 대통령 “지구 상에 이런 식 파업 없어”]

2.
Canadian National and the union representing 1,700 striking locomotive engineers reached a tentative deal Wednesday.[CN Rail tentative deal reached]

3.
캐나다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 정부는 자유주의 정부일까?

오늘날 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국가의 간섭과 복지 국가를 지지하는 미국식의 자유주의를 지칭한다. 자유주의에서 자유는 경제적 자유와 개인자유로 구분할 수 있다. 경제적 자유와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려면 국가가 시장경제와 개인의 자유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중략] 이러한 자유주의는 국가와 자유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경제적 자유와 개인의 자유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Libertarian), 양쪽도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Authoritarian), 경제적 자유에는 개입하지 말고 개인의 자유에는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Conservative), 경제적 자유에는 개입하고 개인의 자유에는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Liberal)으로 구별된다.[David Boaz, Liberationism, A Primer; The Free Press, 1977, p. 22. / 자유주의만이 살길이다, 한국하이에크 소사이어티 엮음, 평민사, 2006년, p80에서 재인용]

우리가 흔히 혼동하고 있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의 차이와 이것들에 대한 입장에 따른 사상적 지형을 대체로 잘 설명해주고 있는 글이다. 물론 이러한 분류의 오류는 분명하다. 대의제 정치지형이라면 국가는 인민의 의지에 대한 신탁의 형태를 띠는 것이므로 또 하나의 독립적인 의지의 주체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애초에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 개인의 범위에는 자연인뿐 아니라 기업이라는 법인(法人)이 포함되어 애초 불공정한 게임의 개연성이 있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민주대의제라는 제도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자본은 면밀히 유착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여하튼 위 분류법으로 현재 한국정치를 보면 현재의 한국사회는 어떠한 입장에 경도되는 사회일까? 적지 않은 이들이 적어도 리버타리안과 리버럴은 우선 배제하지 않을까 싶다. 남은 둘 중에서 우선 컨저버티브에 대해 살펴보자. 이는 미국정치에서 많이 관찰되는 유형이다. 시장의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기독교적 신념에 따라 동성애 반대, 임신중절 반대, 공적의료보험 반대, 총기 소유의 자유 등에 소리 높인다. 오쏘리타리안은 제3세계에서 흔히 발견되는 유형이다. 민주적인 선거로 선출되었건 칼로 정권을 잡았건 오만한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경제와 정치를 마음대로 농단한다.

애초 현 정부는 집권초기 한미FTA라는 우익의 주요정책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어가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는 등 신자유주의적 노선을 분명히 하다 국민들로부터 강력한 저항에 부닥친 적이 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그들은 컨저버티브 쪽에 가까운 행태를 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강력한 저항과, 이어 불어 닥친 금융위기로 말미암아 한미FTA는 적어도 당분간은 시급한 정치적 의제에서 밀려난 느낌이다. 그리고 꺼내든 카드는 구시대적인 관치다. 박정희 식 개발독재를 연상시키는 4대강 정비사업 속도전, ‘일자리 나누기’라는 미명 하의 기존 직원들의 감봉, 기업들의 특정회사에 대한 기금 출연 요구 등의 행태는 적어도 리버타리안이 지향하는 ‘경제적 자유’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즉 오쏘리타리안 행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희한하게 이러한 비이성적인 행태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에 대한 지지도는 50%를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어떤 식의 설문조사였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적어도 바닥이 없을 것처럼 떨어지던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민심의 향방은 소위 이명박식 중도실용주의, 보금자리 주택 공급 등 일련의 대중추수주의적인 서민행보와 표면상으로는 호전되고 있는 경제상황이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더불어 민심이 그의 권위주의적인 경제개입에 대해서도 별로 개의치 않지 않는가 하는 추측도 해볼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오랜 기간 그러한 행태에 익숙해있기 때문일까. 심지어는 그에 대한 향수까지 지니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남자에게서 박정희의 냄새가.

나는 현대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이미 국가는 그 자체로 거대한 시장참여자라는 점, 대의제 하에서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유권자의 의지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국가의 개입이 원천적으로 배제되어야 한다는 리버타리안의 아이디어는 실현 불가능한 이데아에 대한 아집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불가피한 국가개입을 어떻게 최적화시키느냐 하는 문제다. 이는 물론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대해 수많은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만큼이나 치열한 논쟁에 휩싸여온 주제다. 개입의 범위, 타당성 분석, 의사결정 과정, 투입재원 확보 등 해결하여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것이 소위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통제’의 한계인데, 재밌는(?) 것은 현 정부는 그러한 절차를 과감히 생략한다는 점이 오히려 강점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직면한 재정위기, 그리고 대안

비즈니스에 대한 국가의 점증하는 개입은 이 위기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정책결정자는 대규모의 경기부양 패키지를 시행하고, 비틀거리는 기업들을 지원하고, 규제개혁을 맹세하고 있다. 그들은 한때 경영자들이나 이사회의 고유영역이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이전의 위기로 정부의 역할은 영원히 바뀌었고, 이번에도 똑같을 것이다. 경영자들은 다음의 두 가지 점에 대해 그들의 전략을 재고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 새로운 규제 체제를 형성하는데 돕고 그 아래서 경쟁하는 것을 준비하라.
둘째, 여러 산업에서의 급격하게 지출을 늘리고 있는 주요고객으로써 공공부문의 중요성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

그러나 현재의 위기를 넘어 점증하는 적자와 인구 노령화 현상은 많은 나라에서 미래의 재정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정부는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할 막대한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공공과 민간 부문 간의 창조적인 파트너십이 이러한 도전에 응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될 것이다.

[원문출처 Trend to Watch: A Bigger Government Role]

인용문에도 서술되어 있다시피 정부가 각 산업분야의 주요고객이라는 사실은 이제 돌이킬 수 없다.(주1) 그 정부가 경제정책에 있어 자유주의(또는 진보주의) 정부이건 보수주의 정부이건 간에 마찬가지다. “이전의 위기”, 즉 대공황으로 말미암아 현대 자본주의는 정부 또는 국가가 더 이상 야경(夜警) 국가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에 양 측 모두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1930년대에 발생해 여론을 분열시키고 혼란을 야기했던 몇몇 문제들에 대한 국가적 합의를 이루어냈다. 경제가 자동적으로 안정을 이루면서 만족스런 수준의 낮은 실업을 유지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경제 안정과 높은 고용에 공헌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도 인정되었다. 이를 위한 기본적 임무가 총수요의 성장을 안정시키는 것임도 합의되었다.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 도구가 정부예산이라는 점도 인정되었다.[대통령의 경제학, 허버트 스타인 지음, 권혁승 옮김, 김영사, 1999년, p89]

물론 아직도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은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위기를 심화시킨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러한 시장의 완결성과 자주성에 대한 신화는 거의 지탱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미국 자본주의에서 복지예산 지출 등을 포함한 공공서비스의 증가와 해외에서의 전쟁수행을 위한 군비지출이라는 – 정치적으로 상반되지만 경기부양이란 효과측면에서는 유사한 – 정부지출의 두 가지 축은 그 효과를 이미 입증하였고, 정치적 고려사항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저항도 만만치 않다. 공공서비스에 관해 현재 미국은 헬스케어 개혁을 둘러싼 거대한 이데올로기 전쟁에 직면하여 있고, 그것을 넘어서서 인구노령화 및 사회간접자본 노후화와 이로 인한 소요비용 증가라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군비지출은 2차 대전이나 베트남전 등에서 국내 경기부양 효과는 입증되었지만 원초적인 문제는 국지전이 경기부양을 위해 주기적으로 일어나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일으키려 조작하면 – 부시처럼 – 그것이 바로 전쟁범죄다.

일단 오바마 정부는 어느 면에서는 전통적이지만 이전과는 뉘앙스가 다른 정부의 역할을 수행하려 하고 있다. 즉, 환경친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녹색경제 – 예를 들면 고속철도 -, 헬스케어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세제개혁을 통한 재정건전화를 노리고 있다. 문제는 하바드비즈니스가 지적한 것처럼 공공서비스 제공에 있어 막대한 재정 압력에 시달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현재 금융위기 때문에 쏟아 부은 돈이 그 압력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지난 번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오바마 정부 들어서도 변함없이 국가채무는 늘어나고 있고(그래프 보기) 재정적자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이와 더불어 국가채무도 위험한 상태로 다다르고 있다. 균형예산이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는 아니지만 늘어나는 빚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그러한 면에서 현재의 경제호조 분위기는 다분히 일시적인 착시현상 일뿐이라는 심증이 강하게 든다.

궁극적인 재정건전화 및 이를 넘어선 경제건전화는 소모적인 예산 및 자원낭비를 통한 눈가림식의 경기부양이 아니라 – 애맨 땅을 팠다가 다시 묻어도 GDP는 증가한다 – 선순환적인 생산 프로세스에 도움이 되는 곳으로의 자원투입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평범하지만 당연한 진리다. 물론 공공서비스에로의 투입방식(목적 및 투자주체)의 정당성 여부와 순환효과에 대해선 갑론을박의 여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다분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의 헬스케어나 한국의 4대강 정비처럼 말이다.

(주1) 원문에 따르면 1903년 GDP대비 6.8%에 불과하던 정부지출은 2010년 예산 기준 GDP대비 41.3%로 증가하였다(그래프 보기)

JP모건이 “무려” 1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자산 기준 1위 은행인 JP모건이 한국의 녹색산업과 기업에 무려 10억달러를 투자키로 결정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과 윌리엄 달리 JP모건 자산운용 부회장은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10억 달러 규모의 한국녹색펀드 투자의향서(LOI)에 서명했다. JP모건의 LOI에 따르면 JP모건은 총 10억달러 이상의 펀드를 조성할 예정인데 이중 30∼40%는 해외에서 모집할 예정이다. 나머지 60∼70%는 한국내에서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후략][JP모건, 한국 녹색산업에 10억달러 투자]

전형적인 낚시성 경제기사다. 기사 내용을 보면 상황은 이렇다. JP모건 자산운용이 이른바 녹색산업 투자목적의 10억 달러의 펀드를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이중 30~40%는 해외에서, 나머지는 국내에서 자금을 조달한다는 내용이다. 그들은 자산운용사이므로 펀드 운용수수료를 취할 목적으로 펀드를 조성하는 것이 일상적인 기업 활동이지만, 실제로 그들이 투자하지는 않으며 향후에라도 ‘JP모건’이라는 이름이 붙은 기업이 해당 펀드에 돈을 투자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JP모건, 한국 녹색산업에 10억달러 투자”라는 제목은 틀린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적인 자산운용사의 기업 활동에 대통령과 장관께서 친히 참석하시어 “투자의향서”에 서명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저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대유행하던 ‘외자유치 쇼’의 일환일 뿐이다.

과거로의 역주행

늦달님의 블로그에 들렀다가 또 우리 장로님의 아스트랄한 멘트를 접하였다. 우선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늦달님께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어렵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얼마나 큰 어려움이 우리 앞에 닥쳐오고 있는가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요즘의 시대적 상황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경험하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뛰어넘는 어려운 상황.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차량 통행량이며 미국을 가보면 썰렁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고 가까운 일본 동경만 가도 주말이 되면 차가 한산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유가가 내려가면서 주말에 예전과 같이 차가 밀리는 등 다시 원상으로 돌아간 것 같다.”[출처] 

늦달님의 염려에 상당부분 공감하는 바이며 그 분의 주장은 여기서 읽어보시면 되고, 굳이 내가 이 멘트를 퍼온 이유는 딱 아래와 같은 또 다른 주장이 생각나서이다.

“노동자를 청산(해고)하고, 주식을 청산하고, 농부를 청산(해고)하고, 주식을 청산해야 합니다. 시스템의 썩은 구석을 일소합시다. 높은 생활비와 호화생활이 주저앉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도덕적인 삶을 살 것입니다. 가치는 재조정되고 덜 경쟁적인 사람들의 폐허위에서 진취적인 사람들이 다시 싹틀 것입니다.” 

1931년 미행정부의 재무부장관이었던 앤드류 멜론이 당시 대통령 허버트 후버에게 했던 충고라 한다. 늦달님이 언급한 것처럼 정부가 아직 위축되어 있는 민간경제를 재정정책을 통해 유효수효를 창출하여 경기를 부양시켜야 한다는 개념이 없던 때이다. 그냥 이제라도 근검절약하며 살면 다시 좋은 날 올 것 이라는 생각이 재무장관의 머릿속까지 들어차 있던 시절이다.

장로님의 멘트와 비교하니 딱 어울린다. 누군가 멜론처럼 주말에 차가 많이 다니는 것 보니 국민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고 더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충고하고 장로님은 그 말을 공식석상에서 되뇌고 뭐 그런… 1930년대 정서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다. 이 야릇한 기시감하며… 시대를 거꾸로 살아가는 듯한 역주행의 느낌. 거기에 동양적인 가부장적 냄새가 진동을 한다.

조선일보, 거대 미디어 제국을 꿈꾸는가

방통위 ‘대기업·신문 방송진출 허용’ 수용키로”란 기사에 말보태기도 귀찮고 예전에 쓴 글이나 재탕한다. 2007년 11월 15일 작성한 글이다. 빌어먹을 놈들..

11월 15일자 조선일보를 보자.

2면에 보면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공중파 방송의 중간광고 허용에 관한 기사가 비중 있게 실려 있다. 방송위원회에서 열린 공청회를 비판하는 기사다. 이미 표결을 통해 결정된 사안을 가지고 공청회를 하는 방송위원회를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사 바로 아래 딸린 기사였다.

“美, 신문, 방송 교차소유 확대”라는 제목의 기사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서 현재 미국에서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동일한 지역에서의 신문과 방송의 “교차 소유(cross-ownership)”를 허용할 예정이라는 내용이다. 그동안 법으로 교차 소유를 금지한 사유는 미디어 독점을 막기 위해서였다. 허용하고자 하는 이유는 “언론사들이 경비 절감 등을 통해 지역의 뉴스 콘텐츠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다.

조선일보는 다시 미디어 섹션에서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서 “신문, 방송 겸영 통해 뉴스품질 높여야”라는 기사로 이 소식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기사에는 미국의 미디어 업계의 목소리를 전하면서 교차 소유를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국내 환경을 이에 비교하고 있는데 기사에 따르면 “신문사는 각종 규제법규에 의해 팔다리가 꽁꽁 묶인 상태”라고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두 유력 대선후보의 ‘교차소유’에 대한 입장이 긍정적임을 전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후보는 “매체 간 교차소유는 기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재밌는 사실은 FCC의 교차소유 허용은 아직 표결도 들어가지 않았고 해당 기사들은 오로지 FCC의 회장 케빈 마틴의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틴 회장은 교차소유 안건이 다음달 18일 FCC에서 표결에 부쳐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FCC 위원들 중 공화당 추천인사가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한 것뿐이다. 결국 그러한 내용을 이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보도하는 것은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요컨대 이러한 무리한 기사와 기사의 배치로 보건데 조선일보는 방송위의 중간광고 허용결정을 신문의 향후 위상 제고에 활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사실 마틴 의장의 이러한 제안은 사실 광고수입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문업계가 방송사 소유를 통해 수익성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조선일보는 뉴스의 품질을 말하고 있으나 실은 그들이 비판하는 지상파의 중간광고 허용만큼이나 경제적 이익에 목말라 있을 뿐이다.

그동안 신문, 방송 겸영 사안은 한나라당이 이종매체간의 교차소유를 허용하는 신문법 개정 법안을 제출했는가 하면 조선일보가 신문법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보수세력과 신문사의 지속적이고 주요한 현안과제였다. 이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디딤판이 위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바로 ‘선진국’ 미국의 언론환경의 변화다.

미국에서 신문, 방송의 교차소유가 허용될 경우 국내 언론환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테고 여하한의 경우 국내에서도 교차소유가 허용되면 공중파 방송국에 신문사가 대주주로 참여하여 거대한 미디어 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계산이다. 그리고 해당 기사들은 그러한 분위기를 유도하려는 일종의 낚시 기사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에서 신문이 방송을 소유하거나 또는 방송이 신문을 소유하는 것이 조선일보가 말 한대로 “뉴스품질”이 높아지는 좋기만 한 일일까?  신문의 경우를 보면 우리나라 시장은 소위 조중동 3개 사가 전체 시장의 70%를 점하고 있고, 방송의 경우 지상파 방송이 전국 가시청 가구 점유율이 50%를 훨씬 넘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언론환경은 어느 나라 못지않은 독과점 시장이다. 이런 상태에서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를 허용한다면 엄청난 미디어제국이 탄생하는 것이다.

어쨌든 현재까지도 미국을 비롯한 유럽각국은 언론독점의 심각한 폐해를 잘 알고 있기에 신문, 방송 겸영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FCC의 이번 규제완화 시도는 2003년에도 있었다. FCC는 지난 2003년에도 규제완화 법안을 내놓고 표결에서 이를 통과시킨 바 있다. 하지만 미국 항소법원이 이 법안에 대해 무효판결을 내림에 따라 FCC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만큼 언론에 대한 규제완화 사안은 첨예한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고 중대한 사안임을 알 수 있다.

지상파의 중간광고에는 시청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신랄한 비난을 해대는 한편으로, 신문사의 방송사 소유와 경영에 대해서는 뉴스의 품질을 높이는 시도로 칭송하는 모습이 현재 우리 언론의 상황이다.

관련글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1/15/2007111500091.html
http://www.kpf.or.kr/public/public_paper_02_viewdetail.php?txtId=20030801C001003
http://www.kpf.or.kr/datas/pdsindex/simimg/200702061422468.pdf
http://www.ccdm.or.kr/board2/board_read.asp?bbsid=declar_01&b_num=31148&page=8

거품

사람들이 ‘거품’이라는 단어를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에는 십중팔구 ‘필요보다 과다한 것’, ‘불필요한 것’, ‘제거하여야 할 것’ 등의 부정적 의미로 쓰곤 한다. 그렇지만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거품이 그렇게 쓸모없는 것만은 아니다. 거품 없는 맥주를 생각해보라. 그 달콤한 목 넘김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거품 없는 빨래를 생각해보라. 왠지 하다만 것만 같은 찝찝함이 느껴질 것이다.

각설하고 대선 승리 1주년이심에도 현장에서 보내신다고 언론으로부터 칭찬받으신 이 장로님께서 그 현장에서 그만의 거품론을 설파하셨다고 한다. 요는 “기업이 됐든 나라가 됐든 거품을 빼야 한다”는 주문. 언론은 이를 “공기업을 포함한 기업 전반의 강력한 구조조정 필요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더불어 그 소리는 이 장로님의 “회사도 노조도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는 주문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계의 칼바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참여정부가 만들어놓은 비정규직 악법을 바탕으로 비정규직 노동착취 시한을 지속적으로 늘이려는 시도에서부터 노동단체에 대한 물리적 탄압, 공무원 조직 흔들기, 이주노동자에 대한 무자비한 단속 등 탄압은 전방위 무차별적이다. 특히 GM이 망한 이유가 노조 때문이고 노동자를 자원봉사자쯤으로 생각하는 이 장로님의 노동관은 우익세력의 태생적인 후진적 노동관과 맞물려 이러한 경향을 지속확대시킬 것이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무리들. 한국노총.

현재 여야가 국회에서 생쇼를 벌이고 있는 화두, 한미FTA는 이 장로님의 바람대로 기업과 나라의 거품을 확실히 빼줄 것이다. 미국 자동차 3사는 전례 없는 보조금을 받아가며 국가의 우산 아래 소생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현 시점에, 정작 국내산업과 – 특히 중소제조업과 농수산업을 – 공공부문은 무한경쟁의 전쟁터로 내몰려 아비규환에 빠질 것이므로 거품이 확실히 빠질 것이다. 약간의 부작용은 거품만 빠지는 것이 아니고 맥주마저 함께 엎질러지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 상황을 두고 한나라당만 욕하는 이들이 존재하는데 분명히 더 지랄 맞은 코미디 집단은 민주당과 전 대통령인 노씨다. 미디어 토씨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한나라당은 그러하기에 일부러 이런 블랙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얼치기 자유주의자들이었던 그들이 창작해낸 한미FTA와 비정규직 악법이 한나라당 집권을 통해 만개하고 있을 뿐이다. 연성독재가 준(準)강성독재의 토양을 마련해준 것이랄까?

장로님 근데 궁금한 게 왜 부동산 거품은 냅두시나요?

강성노조 때문에 GM이 망했다?

RenCen.JPG
RenCen” by Yavno at en.wikipediaOwn work (Original caption: “I created this image entirely by myself”).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John Quelch 교수가 최근 How General Motors Violated Your Trust 라는 글을 통해 GM이 왜 망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어느 변방 나라의 어느 장로님이 노조를 GM이 망하게 된 주원인으로 지적하였고 언론이 ‘노조경제학’ 운운하면서 화답한 것과는 사뭇 다른 해석이다. John Quelch가 제시한 GM이 망한 여덟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Focus on products, not customers.(소비자가 아닌 생산물에 집중한 것)
2. Too many products, too many brands.(너무 많은 생산물, 너무 많은 브랜드)
3. Too many dealers.(너무 많은 딜러들)
4. Losing market control.(시장통제의 상실)
5. Bigger is better.(더 클수록 좋다)
6. No global brand.(세계적 브랜드의 부재)
7. Not invented here.(여기서 발명되지 않았다)
8. Finance focus.(재무에의 집중)

정확한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Quelch 교수가 거론한 이유들을 보면, 거대기업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교과서적인 관료주의의 오류들을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혁신부재 상황은 노동자가 경영에 참가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는 한에는 상당부분 경영진의 잘못이다. 그러한 상황을 우리 통치자와 언론은 노동탄압의 도구로 사용하려 하고 있는 현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본 글에는 노조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지만 댓글을 보면 노조에 관한 언급도 등장한다. 주요 댓글을 살펴보자.

I’m surprised (well, not really) there was no mention of the terrible union deals.(Nick)
형편없는 노조와의 협약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이 놀랍다(음 사실은 아니지만).(Nick)

I have to disagree with Nick. “…terrible union deals…” have little to do with the current situation at GM. On the contrary, I believe that unions deserve to as for even more money. The bulk of overhead is not in the union salaries, but in management and managerial bonuses. So, cutting down on managerial overhead is the way to go. By the way, Lucent did just that – they laid of 1000 managers.(Aleksey)
나는 Nick의 견해에 반대한다. “..  형편없는 노조와의 협약 ..”은 이번 GM사태와 거의 관련이 없다. 그와 반대로 나는 노조가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엄청난 간접비에 노조의 임금은 없었다. 그러나 관리자급과 경영진의 보너스는 있었다. 그러므로 경영진의 간접비를 삭감하여야 하는 것이 가야할 방향이다. 그런데 Lucent는 그저 1000명의 관리자를 해고했을 뿐이다.(Aleksey)

진실은 알 수 없다. 내가 알기로도 분명 미국의 자동차 노조는 어느 노조보다도 강력한 협상력을 가지고 있는 노조였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대가가 위의 Aleksey가 말하듯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는 정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한 기업의 흥망성쇠가 오로지 강성노조의 횡포나 굴복에 좌지우지하는 것 인양 호도하는 반노동적 기업관으로는 상황을 전혀 개선시킬 수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노조를 기업몰락의 원흉으로 보는 이가 국민은 어떻게 볼지 또 한번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