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질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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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규율 성교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현재나 혹은 먼 과거의 어느 시기에 있었던 그런 금제(禁制, Verbotsschramken)가 당시에는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질투의 울타리는 이미 무너졌다. 그런데 질투의 감정이 비교적 늦게 발전하였다는 것은 지극히 확실하다. 근친상간의 관념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대웅 옮김, 도서출판아침, 1989년, 40쪽]

이 문구가 당시의 경건한 마음으로 가부장적인 가족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던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인용한 책의 제4판 서문을 직접 쓴 엥겔스는 서문에서 18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역사과학은 완전히 ‘모세5경’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 책에 상세하게 묘사된 가부장제 가족 형태가 최고(最古)대의 가족 형태로 인정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일부다처제라는 점만 제외하고는 현대의 부르주아적 가족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에게 과거에는 무규율 성교가 금제(禁制)가 아니었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곧바로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했다’라고 맞받아칠 것이다. 엥겔스는 책 전체에 걸쳐 그러한 맹신자들의 논리를 격파할 것인데, 그 서두에서 인류의 가족 역사가 무규율 성교가 횡행한 군혼(群婚)의 형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엥겔스는 책 제목처럼 역사에서의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을 찾아나가는 흥미로운 지적인 여정을 떠난다.

한편,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엥겔스가 무미건조한 톤으로 “질투의 감정이 비교적 늦게 발전하였다”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본능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질투 역시 본능이라고 여기는데, 엥겔스는 그 생각이 틀렸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질투라는 감정이 인류사에서 일으켰던 수많은 갈등, 범죄, 그리고 이를 묘사한 예술 작품도 실은 역사적 의식의 산물일 테니 인간은 후천적으로 발달한 감정에 휘둘리는 장기판의 말일 뿐이라는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결국 인간의 역사는 질투라는 감정을 가지게 되면서 획기적으로 이전과 달라지게 된다. 바로 질투는 군혼에서 일부일처제 혹은 일부다처제의 가부장제 가족 형태로 바뀌는 촉매가 되었고, 소유욕은 – 질투의 또다른 형태 – 공동체가 공유하던 재산을 혼자서 혹은 가족 안에서 소유하겠다는 사유재산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뒤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는 질투, 소유욕, 이기심을 죄악시하기도 하고 정당화하기도 하면서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인류의 역사는 질투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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